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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의 식물이야기(1): 연재를 시작하며, 금낭화와 가로수
식물부재의 조경계요즘 식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세간이라고 하는 이유는 증가하는 관심의 주체가 조경계가 아니라 조경계 외의 세상이라는 뜻이다. 설문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이메일로 식물에 대해 문의해 오는 ‘일반’독자들이 늘고 있고,‘ 야생화’에 대해서 혹은‘정원’에 대해서 특강을 부탁하는 조경계 외의 단체들도 종종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유추해 보는 거다. 일반인들이‘정원과 식물을 거의 동일시’여기고 있는 반면 정원을 만드는 조경인들은 정작 식물을 대하는 태도가 여전히 시큰둥하다. 유사한 소재를 가지고 조경과에서 특강을 했을 때 오는 반응은“뭔가 멋진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고작) 식물이야기인가?”정도라고나 할까. 식물을 제외한 조경은 과연 멋진 것일까?몇 해 째 대학에서 설계 강의를 하고 있는데 식물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은 스무 명 중 한두 명 정도에 불과하다. 도면에 멋진 라인을 그리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식물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식재설계에 신경 쓰라고 압박하는 일에도 슬그머니 지쳐가는 즈음인데〈환경과조경〉에서 고정희의 식물이야기를 연재하자고 한다. 필자는 식물학자가 아니고 다만 조경에서 식물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는 사람에 불과하다. 국내의 조경계에서 식물에 대한 관심도가 의외로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끊임없이 식물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마 계기가 되어주지 않았나 싶다. 식물에 대해 어떤 ‘멋진’이야기를 펼쳐놓아야 관심들을 가져줄까. 모든 사물이 그렇지만 식물 역시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혹은 용도 에 따라 별도로 조명되어져야 하는 소재이다. 조경에서 다루는 식물은 자연속에 존재하는 식물과 같은 것이지만 같지가 않다. 금낭화나 삼지구엽초 등의 아름다운 식물들이 도시 공간에서 자리 잡기 힘겨워하는 것이라든가, 고층 건물을 등지고 서있는 소나무가 강원도 숲 속의 소나무와 똑같은 광채를 내뿜지 못한다는 것들 때문에 식물을 하나씩 살펴보고 도감식으로 정리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금낭화에 실패한 사연금낭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처음 한택식물원을 방문했을 때가 금낭화가 만발한 계절이었다. 금낭화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부슬비가 오는 날 이어서인지 촉촉이 젖은 계곡을 가득 매웠던 금낭화 군락들의 모습은 형용할 말이 모자라게 황홀하였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데 그 후 한 번 정원에 심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금낭화는 Dicentra spectabilis 혹은 Bleeding Heart라는 비장한 이름하에 유럽에서도 많이 심는 식물로서 한국과 만주가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한국에서라면 어디나 꽂아놓아도 잘살 것이며 한택식물원에서 본 것과 같은 명장면을‘연기’해줄 것을 기대했었으나 그들은 별로 빛을 발하지 못했고 성장상태도 신통치 않았다. 그들의 연기력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연출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금낭화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결과였다. 부슬비 오는 날 보았던 금낭화 군락의 선명한 아름다움에 대해 좀 더 깊이 사고해 볼 필요가 있었던 거였다. 금낭화의 아름다움을 정원에 이식하고 싶은 마음이 급한 나머지 그들이 원하는 환경을 제대로 만들어 주지 않았고 그들은 성장 거부라는 반응으로 대답해 왔다. 금낭화는 습하고 그늘진 계곡에 무리지어 자생하는 다년생 초본으로서 키는 대개 70센티미터 정도이고 가장 큰 특징은 가지가 휘어지게 붙어있는 주머니 모양의 꽃들이다. 대체로 진분홍에 가깝지만 흰 것도 있다. 꽃이 물론 압권이어서 유명해졌지만 잎의 모양새도 좋은 편이며 볼륨감이 있다. 물론 심고 난 다음 바로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니고 3~4년 지나서 제 골격을 갖추게 되면 거의 관목과 같아서 자리를 제법 차지하는 식물이다. 꽃이 지고 나도 잎이 싱그러움을 보태주는 까닭에 여러모로 고마운 식물인데 이렇게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자라게 하려면 말할 것도 없이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습한 계곡이라는 그들의 성장배경을 도시 속에 고스란히 재현해 주는 것은 쉽지 않다. 계곡까지는 어찌어찌 흉내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계곡에 드리우는 아름드리 수목의 그늘이며 이끼며 습한 기운 등 시간의 흔적은 단시간에 재현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계곡 출신이라도 어디서나 그런대로 잘 자라는 노루오줌 혹은 관중 등에 비해 금낭화는 까다로운 편이다. 그 때 실패한 이후 금낭화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식물원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뒤편의 서늘한 담장 그늘 정도에 심어보면 어떨까 라는 의견을 제시해 주었다. 어느 정도 보호된 서식 환경이 필요하다는 조언이었다. 다음 기회에 꼭 시도해 보려고 한다. 물론 금낭화를 어디서 구해다 심었는가 하는 점도 상당히 큰 역할을 차지한다. 같은 식물이라도 재배되는 과정이 상당히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프로페셔널한 관리를 받고 포트에서‘뿌리가 완전히 돌아서 나온’식물은 식재 후 활착이나 성장 행태가 확연히 다르다. 조경공간에 식재되는 식물은 그 환경이 자연과 완연히 다르기 때문에 어린 시절 재배원에서 제대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자라갈 수 있다. 식물 재배원을 서구에서‘Nursery’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조경 식물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식물 하나하나의 성격과 서식환경 등을 파악하는 외에도 생산 및 유통과정을 이해해야 하며 어떤 현장에 어떤 방식으로 심어져야 원하는 장면이 연출될 것인가에 대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져야 한다. 필자의 경우는 즉흥적 연출에 크게 의존하는 편이므로 사전에 배식도면을 꼼꼼히 챙겼더라도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장면을 크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 현장소장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그래도 할 수 없는 것이 종이 위에서 연상하던 것과 현장의 상황이 늘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고 물론 아직도 배워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적용’기법이런 식으로 조경공간에 어떤 식물을 어떤 방식으로 심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을 엮어서 하나의 학문으로 체계를 잡은 것을‘식물적용학’이라고 한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식물 개체들에 대한 성격묘사라기 보다는 이들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심는가에 대한 원칙과 기법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원예학이 주인공들에 대한 성격묘사에 준한다고 한다면 식물적용학은 스토리텔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어떤 나무가 어떻게 생기고 어떤 꽃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배식했을 때나, 식물을 꽃이나 잎, 줄기의 색이나 형태, 질감 등을 보고‘감각적’디자인을 했을 때 오는 실패의 요인들을 줄이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식물은 유감스럽게도 볼 때 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꽃을 보는 식물이라고 꽃에만 치중하여 배식하는 경우, 꽃은 일 년에 2~3주, 길어야 4주 정도 피어있는 반면에 잎이나 줄기는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대개는 간과하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잎이나 줄기 등 부분적인 매력에 치중했을 때 그 식물이 가지는 부피식물이름 외우기 누군가 내게 그 많은 식물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식물공부를 하고 싶어도 대부분은 여기서 주눅이 들어 포기하고 마는 것을 안다. 식물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식물을‘아는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식물을 알게 되면 이름도 알게 된다는 간단한 이치인 것이다. 한 번 각자 알고 있는 친구와 지인, 친척, 탤런트, 스타들의 이름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면 어떨까. 그들의 이름을 영어단어 외우듯이 밤새 외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아닌가. 사람을 알게 되면 그의 이름도 알게 되고 그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 습관, 특징 등도 자연스럽게 같이‘알게’ 된다. 같은 원리가 식물에도 성립된다. 필자 역시 식물 이름을 일부러 외운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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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따라 밟아본 삼국지 유적과 경관(1)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맺은 탁주탁현 누상촌에 사는 유비는 한실종친이지만 집이 가난하여 짚신을 팔고 돗자리를 짜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 유비가 홍건적을 토벌하는 의병을 모집하는 방문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꼴에 저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쉬는데 뒤에서 장비가 버럭 같이 소리를 질러 꾸짖는다. 통성명을 한 후 장비는 재산을 내어 대사를 도모하자고 제안을 한다. 조상 대대로 탁현에서 장원과 토지를 가지고 살면서 술을 팔고 도야지를 잡아 지내오던 터였다. 이 두 젊은이가 근처 주막을 찾아들어 술을 들 때 관우가 또한 의병지원하기 전 술 한잔 하려고 들어와 통성명하게 된다. 하동 해량이 고향인데 토호 한 놈이 권세를 믿고 하도 사람을 업신여겨 때려죽이고 5, 6년 동안 강호로 피해 다니는 중이었다.세 사람은 장비의 장원으로 가서 한참 꽃이 만발한 복숭아동산에서 의형제를 맺기로 한다. 이튿날 도원에서 검정소와 흰 말 한 마리에 갖은 제물을 차려 놓고, ‘우리가 동년 동월 동일에 태어나지는 못했으나 동년 동월 동일에 함께 죽자’고 맹세하고 의를 맺어 형제가 된다. - 황석영『삼국지』1권에서 요약유적은 1800여 년 전의 사건과 관련되어 진본은 거의 없고 사실보다는 소설에 근거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허구와 실재가 혼재되어 있다. 유비를 옹호하고 조조에는 반대한다는(擁劉反曺) 후세의 춘추사관이 반영되어 촉한정통론이 우세했고, 중화주의를 내세우는 한족 중심주의가 나타난다. 일반 문화유적과 차이점은 유적의 대부분이 진짜가 아니라 소설로서의 삼국지와 신화,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허풍과 과장 끼가 있는 중국인들은 후세의 평가와 가치관에 따라 유적을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확대재생산해 왔으며, 이런 경향은 현재에도 이어져 199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도 많다. 유적이건 소설이건 삼국지의 저변에는 숙명적 결정론이라고 볼 수 있는 천명사상이 깔려 있다. 연재는 매회 한 장소씩, 사진과 함께 소개하며, 소설 내용의 일부분을 발췌하고 그와 관련된 유적과 경관을 소개한 다음 필자 나름의 해석을 포함시키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탁현은 현재 하북성 탁주琢州시로서 북경 서남쪽 6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소도시이다. 북경에서 두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이곳에는 과연 도원결의의 현장답게 장비의 본거지에 관한 유적, 도원결의 현장, 그리고 유비의 고향 등 몇 군데로 나뉘어서 유적들이 분산되어 있었다. 먼저 찾은 곳은 장비의 거점이라고 꿈에 나타났다는 장소로서 장비의 사당인 충의점이 조성되어 있다(사진1). 그리고 조금 떨어져 장비가 고기를 매달아 냉장시켰던 우물을 중심으로 장비점이 있다. 우물은 꽤 오래 된 것으로(사진2) 우물 가장자리에 밧줄로 고기를 매달아 오르내렸던 패어진 자국까지 있으니(사진3) 거의 진짜처럼 보인다. 장비점 충의점 유적은 우물만 진짜이고 문화혁명 때 모두 파괴된 것을 1990년대에 새로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장비점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역사주제공원에는 중심에 커다란 복숭아조각을 세웠고(사진4) 그 옆에 유비 관우 장비 세 젊은이가 결의형제를 맺어 술잔을 들고 있는 조소상을 좀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놓았다(사진5). 삼국지에 유비는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눈으로 자기 귀를 볼 수 있고, 팔이 남달리 길어서 두 손이 무릎을 지난다’고 했으니 중앙의 인물일 듯하고, 관우는 ‘수염의 길이는 두어 자는 되어 보이고 얼굴은 무르익은 대추 빛이라’ 했으니 우측에 있는 사람이고, 장비는 ‘두 눈은 부리부리한 고리눈, 제비턱에 범의 수염이 있다’고 했으니 좌측의 인물일 것이다. 조금 남쪽으로 삼의궁이라는 공원이 또 있는데 이곳이 옛날부터 진짜 도원결의 장소라고 알려져 있다. 삼의궁은 당나라 때 조성했는데 이미 그때 규모가 1만 제곱미터나 되었다고 한다. 여러 기념사당이 있고 그 모퉁이에 도원결의 장소를 나타내는 비석이 서 있어 모두들 이곳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사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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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u Seowon
소수서원Sosu Seowon which is located in 158, Naejuk-ri, Sunheung-myeon, Yeongju-city, Gyeonsangbuk-do is 7,504㎡area. After constructing in order to enshrine An-Hyang, it was given the name “aekwoondong Sosu Seowon”in the 5th year of King Myeongjong’ reign(1550). It is the first Seowon in Korea, and An-Chuk and Ju-SeBung is enshrined. The aesthetics of adap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with Myeongryundang, Ilsinjae, Jikbangjae, Yeongjunggak, Jirakjae, and Hakgujae. It was appointed as national historical relics no.55 in 21th of January, 1963.소수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8에 위치하며, 면적은 7,504㎡으로 중종 38년(1543) 회헌晦軒안향(安珦, 243~1306)을 배향하기 위해 서원을 완성한 후, 조선 명종 5년(1550)“백운동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이후, 안축安軸, 주세붕周世鵬등을 배향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서원으로, 명륜당, 일신재, 직방재, 영정각, 지락재, 학구재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다.
造營_조선조 중종 36년(1541)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이 곳 출신 학자인 안향1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를 설립하였다가, 중종 38년(1543)에 유생교육을 겸비한 서원2을 설립한 것이 서원의 시초이다. 이후 중종 39년(1544)에 안축, 안보 형제를 추가 배향하였으며, 명종 1년(1546)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안향의 후손 안현安玹(1501~1560)의 노력으로 서원의 경제적 기반이 확충되고 운영방책이 보완되어 확고한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그후 명종 3년(1548) 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서원을 공인화하기 위해 1549년 1월 경상도 관찰사 심통원沈通源(1499~?)에게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사액을 바라는 글을 올리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명종은 대제학 신광한申光漢(1484~1555)에게 서원의 이름을 짓게 하여“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紹而修之”는 뜻을 담은 소수紹修로 결정하고“백운동소수서원”이라고 명명했다. 즉‘소수’는 순흥에서 폐지된 학교를 다시 세워 단절된 도학을 잇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세조 2년(1456) 순흥으로 유배된 세종의 다섯째 아들 금성대군과 순흥 부사 이보흠의 단종복위 밀모사건으로 인해, 순흥부가 풍기군의한 면面으로 편입, 강등되고 순흥향교가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명종 5년(1550) 2월 21일“소수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는 왕명에 의해 성리학의 정통성을 서원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후 인조 11년(1633)에 주세붕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서원의 남설濫設과 부패로 고종 5년(1868)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현재 서원 내에는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제59호), 회헌영정(국보 제111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제485호), 주세붕 영정(보물 제717호) 등의 중요한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으며, 경내 건물로는 문성공묘, 명륜당, 일신재, 직방재, 영정각, 전사청, 지락재, 학구재, 서장각, 경렴정 등이 있다.立地_소수서원은 풍기 순흥면 동북쪽 영구봉靈龜峰아래 부석사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 동, 남, 북쪽으로는 죽계수3가 위요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송림이 위치하고 있다. 서원건립 전에는 숙수사라는 절터로서 지금도 목탑지와 당간지주(보물 제59호)4, 석등 등이 남아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부석사, 병산서원, 화천서원, 하회마을 등이 있다.1. 안향은 백이정(白正, 247~1323)과 함께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받아들이고, 이를 표방하면서 고려문화를 혁신하고자 한 첫 세대이다. 그는 고려 충렬왕 때인 1249년 11월 원나라에서 주자서(朱子書)를 손수 베끼고,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그려 가지고 왔으며, 주자를 흠모하여 주자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하여 자신의 호를 회헌으로 하였다. 1297년 12월 후원에 정사를 짓고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모셨으며, 1303년에는 김문정(金文鼎)을 중국 강남 지방에 보내어 공자와 칠십 제자의 화상,그리고 문묘에 사용할 제기, 악기 등을 구해오게 하였다. 1304년 국학의 대성전이 완성되자, 공자를 비롯한 선성(先聖)들의 화상을 모시고 문묘의 제도를 갖추게 하였다. 1304년 그는 섬학전(贍學錢)을 설치해 적극적으로 주자학을 수용하고, 국내 보급을 위해 노력한 성리학자이다. 충숙왕 6년(1319)에는 고려의 수도인 개경의 문묘 동무(東) 종사(從祀)되었다.2. 백운동서원은 중국의 주희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차용한 것으로, 주세붕은 그가 편찬한“죽계지(竹溪志)”서문에 사묘와 서원을 세우게 된 동기에 대하여, 교화는 시급한 것이고, 이는 존현(尊賢)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므로 안향을 모시는 사묘를 세웠고, 겸하여 유생들의 장수를 위하여 서원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3. 주세붕은“회헌선생실기(晦軒先生實記)”에서“왼쪽으로는 죽계수가 휘감아 흐르고 오른쪽에는 소백산이 높이 솟아 구름과 산과 언덕과 물줄기가 실로 여산(廬山)에 못지않다”, 구름이며, 산이며, 언덕이며, 강물 그리고 하얀 구름이 항상 골짜기에 가득하므로 이곳을‘백운동’이라 하였고, 감회에 젖어 배회하다가 사당건립의 뜻을 갖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4.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절에 행사가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간은 마주보는 면의 바깥면 중앙에 세로띠를 새기고, 꼭대기에서 1.17m 밑에서 부터 2.34m 까지 사이가 면이 쑥 들어가 있어서 마치 넓은 홈을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네모난 기둥 끝으로 올라가면 약간 가늘어지고, 맨 끝은 둥글게 경사지도록 하였다. 꼭대기 끝 안쪽 면에는 홈을 파서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현재는 지주 양쪽으로 길고 큰 돌 1장씩이 놓여있으며, 전체적으로 소박하며 돌을 다듬은 솜씨가 세련되어 보인다. 현 소수서원입구 소나무 숲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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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로 보는 조경이야기(4): 옥상정원. 채워진것과 비워진 것(1)
이론과 실전: 데리다 좀 그만 데려다 놓지?!라 빌레뜨 공원(parc de la villette)으로 촉발된 해체주의의 광풍은 1990년대 말의 건축계를 뜨겁게 달군다. 기존의 구조를 해체한다고 하는 츄미(Bernard Tschumi)의 당선작은 해체주의(deconstruction)로 이름 지어진다. 대체 무슨 구조를 해체한다는 것인지? 라는 의문으로 시작되는 공부는 러시아 구성주의부터 시작하여 데리다(Jacques Derrida)와 푸코(Michel Foucault)로 이어진다. 저 유명한 라 빌레뜨의 폴리는, 푸코의 광기와 켤레를 이루어 담론을 형성한다. 이제 형태를 이야기하면서도 모든 이들의 시선은 그 너머에 있는 철학가와 그들의 이론들을 향하고 있다. 그들의 이론들은 이제 많은 이들의 작품에 연이어 반복 사용된다. 문득 떠오르는 단순한 질문, 작품을 이해하기위해서 철학의 이론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처음 한두 번은 그렇다 치더라도 해체해야만 하는 근대적 의미의 구조라는게 애시 당초 없는 우리 한국의 실정에서, 어째서 그것이 연이어 반복 재생산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무엇을 해체한다고 하는 폴리인가? 설계가에게 이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훌륭한 이론이 훌륭한 설계를 만드는가? 새로운 이론이 참신한 설계를 담보하는가? 이론과 실전사이 불확실한 좌표위에서 디자이너는 과연 어느 지점에 있어야 하는가? 이 같은 혼란속에서 당시 쏟아져 나오는, 마냥 비슷하기만한 작품들을 보며 ‘이제 제발 데리다 좀 그만 데려다 놓고 네 이야기 좀 해보라’고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패널 한 가득을 채우고 있는 사변들뿐이다.작품을 작품으로 설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눈을 아래로 돌려 학생 설계를 볼라치면 더욱 가관이다. 작품을 이야기하는데, 무턱대고 “삭막한 콘크리트 숲이…”로부터 시작한다.제 아무리 지구를 구하는 개념이 있더라도 작품에 그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차라리 시를 쓰지 대체 뭐하러 설계를 하는가? 어떻게든 이론에 기대어서 설계를 포장해보려고 하는 비굴함이라니!…, 어쩌면 지금 문제되는 의미과잉의 습성은 이미 그 시절부터 잉태된 것은 아닐지 조심스런 의문도 가져본다.
냉소적이기만 한 필자의 태도는 그 자체만으로 당시의 주류를 거스르는 위험천만한 생각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솔직한 고민이었고, 어떤 의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각 장르의 방법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디자인이라는 장르에서는 그 방법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해야 익힐 수 있는 것일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남의 작품들을 사례로 하여 그 방법을 역으로 유추해보는 것일 테다. 바로 이 영역에서 구조주의는 좋은 방법으로 사용된다. 다만 언제나 실행이 문제인 법, 그를 위한 이론은 사실 책 한권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성취는 문학의 동네에서 일찍이 있어왔다. 국내에서는 구조주의 문학비평의 대가 이어령의 서시 분석이나 기빨, 처용가, 단심가와 하여가의 구조비교 등을 대표적인 성과로 들 수 있겠다.
채워진 것과 채우는 것 사이의 이야기빌라 사보아? 근대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제의 대표작 빌라 사보아? 조경잡지의 연재에서 분석한다는 건 어째 어울리는 그림이 아닌데? 라고 한다면, 부디 그 생각을 조금만 접으시길 바란다.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우선 첫째로는 애시당초 건축과 조경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미켈란젤로의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그랬고, 츄미와 렘 콜하스의 라 빌레뜨 공원에서 그랬다.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는 FOA의 요코하마 페리터미널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둘째로는, 공간을 조직하고 디자인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에는 건축의 선례를 빌어 이야기하는 것이 아무래도 더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빌라 사보아와 비슷한 시기에 완성된 Roberto Burl Marx의 옥상조경과 비교해보자. 선뜻 머리에 스치는 재현과 표현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현재까지도 조경의 발목을 잡고 있는 회화적 조경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듯하다. 반면에 빌라 사보아의 옥상정원을 보고 있노라면, 도덕경에서 노자가 설파한 공간론을 애써 소개하지 않더라도, 비워진 것은 채운 것을 위해, 역으로 채워진 것은 비워진 것과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겠다. 채워진 방들이 옥상정원을 둘러싸고는 있지만, 옥상정원의 모양과 그 내부의 요소들은 또한 다시 그 주변과의 관계에 의해 같이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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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Architecture, Asking a Possibility of Governance
조경,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묻다거버넌스와 시민참여거버넌스(governance)는 그리스어의 ‘kybenan’과 ‘kybernetes’에서 비롯된 용어로 키를 ‘조정한다(steer)’와 ‘항해한다(pilot)’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거버넌스는 한 조직 혹은 사회가 스스로의 방향키를 조정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는 커뮤니케이션과 통제의 역동력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여기서 시민참여는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의 핵심요소로서 거버넌스를 대표하는 전략적 수단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공공문제의 의사결정에서 직접 혹은 기타 합법적인 중간 기관을 거쳐 자신들의 이익을 표출시킬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거버넌스 체제하에서의 시민참여는 이러한 공식적인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다양한 행위자들 스스로 공공문제에 대해서 참여와 토론을 통하여 정부 의사결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참여방식도 포함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물질적 재정력과 다양한 정보와 권한이라 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대 행정에서는 시민사회의 중심인 NGO가 사회복지 서비스의 당사자, 이행자로서 자원을 공유 배분받는 것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부와 NGO는 대립관계에서 협조적인 관계로 개선되고 있다.도시문제에 있어서 시민의 참여, 시민제안 등 시민이 무대 앞으로 나선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60년대의 새마을운동이 관주도의 경제살리기 운동으로 전 국민 참여의 큰 획을 그었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시민주체의 지역활성화, 환경보존운동 등의 참여운동이 대세를 이루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국가,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도시만들기에 있어서 시민의 참여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자발적’인 ‘시민’이 존재하여야 하며, 나아가 ‘창조적’ 혹은 ‘창의성’있는 발상이 따라야 한다.
시민적 창의성과 거버넌스‘시민적 창의성’이란 공공성을 가진 목적에 상상력이 풍부한 해결방식을 적용하는 것이다.공공재에 관여하는 공무원과 기타 관계자가 자신들의 풍부한 상상력을 사회적, 정의적 가치의 틀 내에서 보다 고차적인 가치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고 수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여기에는 아이디어와 행동에 관한 책임감, 주인의식, 신뢰 등을 교섭할 수 있게 된다.서로 경합하는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교섭이 이루어지고, 균형이 취해지고, 조화를 이루는 것 그 자체가 창의성인 것이다. ‘시민적’이라는 것은 가치있고, 필수적이며, 공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으로 비추어지는 반면에, ‘창의성’이라는 것은 자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그리고 모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 양자가 결합할 때 시민생활은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다. 시민적 창의성은 시민의 열정과 비전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질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시민적 창의성이 행정과 결합하게 될 때에 이상적인 거버넌스가 형성되는 것이다.최근 ‘나’를 넘어선 ‘우리들’의 생각이 환경이나 도시문제에서 활발히 표현되고 있다. 상황에 따라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의 우려가 있을 때에는 절대적인 보존 우선의 모습을 보이기만 하던 환경운동의 모습이 근래에 들어서는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관도 시민단체에 기존의 보수적인 사고에서 발전하여 점차 이러한 창의적 제안들을 수용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나아가 민·관 거버넌스를 형성하기 위한 정책의 전환, 시민참여의 유도 및 지원, 시민참여에 의한 녹색도시 만들기의 제안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거버넌스단체부산그린트러스트의창립
거버넌스를 위한 과제앞으로 조경 거버넌스의 활성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극복해야하는지, 문제는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첫째, 대중의 관심과 참여에 관한 부분이다. 일부에서는 공원조성이나 관리 등의 부분에서 거버넌스의 사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기업이나 일반 대중의 관심이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며 또한 거버넌스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른다. 특히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리더라 할 수 있는 코디네이터(coordinator)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라 부르는 진행자가 필요한데 이러한 인재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시민과 기업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방법의 모색과 함께 리더양성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기금확보방안 등이 절실하다.둘째, 행정의 사고에 관한 부분이다. 행정은 거버넌스를 말하고 있지만, 아직 실무자들은 거버넌스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일부에서는 공원의 유지관리에 있어서 주민참여에 의한 거버넌스적 관리에 대해 행정적 일자리의 박탈이라는 피해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성과에 있어서는 과정(process)이나 질적인 면보다는 양적인 가시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참여자의 숫자에 치중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민과 관이 함께 일을 수행하는 경우에 있어, 행정이 부담한 비용의 사업부분에 대해서는 최종적인 사업의 평가나 비용정산 시 갑과 을의 관계로 착각하고, 민간을 파트너라기보다는 을(乙)로 생각하고 일방적인 지시에 의해 관(官)의 입장에서 풀어나가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회계정산의 경우 행정은 시민파트너를 마치 용역업체나 시공업체 수준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대비하는 공무원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는 현재 거버넌스를 실행하고 있는 서울그린트러스트, 부산그린트러스트에서 나타난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거버넌스의 정착을 위해 민관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요구된다.셋째, 사회적인 시스템, 제도적인 부분이다. 거버넌스를 시행할 제도적인 여건이 제대로 조성되어 있지 못하다. 공원이나 녹지의 조성 및 관리시 거버넌스를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아직 이를 위한 사회적인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일본에서는 최근 공원조성 시 지역의 주민참여를 토대로 한 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 외에도 거버넌스에 있어서 기금모금, 행정적 지원의 방법, 참여를 위한 사회적인 분위기의 창출 등을 위한 적극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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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tivities and Tasks of Hialeah Park Forum
하얄리아 공원포럼의 활동과 과제하얄리아 공원포럼하얄리아 공원포럼은 지난 2008년 초 하얄리아공원 조성이 조금씩 진전되어 감에 따라 공원조성의 주요 이슈들을 재점검하고, 공원의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찾으며, 나아가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원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기여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뜻을 합쳐 만들어졌다. 조경, 도시, 건축, 문화, 복지, 여성분야의 전문가들과 시, 시의회, 시민단체 및 언론계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공원의 거버넌스를 목표로 공부하고 연구하며 나아가 시민이 참여하는 공원 문화의 바탕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최근 부지에 대한 관리권이 부산시로 옮겨오고 부지출입이 가능해 짐에 따라 하얄리아 공원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방식도 점차 새로운 양태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공원에 대한 정보수집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얄리아 공원포럼은 이런 맥락에서 보다 구체적인 공원의 조성과 관리 운영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지속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모으는 활동의 장을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해 하얄리아 공원포럼의 활동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일은 부산시와 공동으로 정기적으로 진행하였던 공원거버넌스 세미나와 미국 국무성이 주최하는 IVLP(International Visitor Leadership Program)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이라 하겠다. 포럼의 활동으로서 세미나를 중시하는 것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원문화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익숙한 일이 아니며, 시의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조차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원의 기획과 조성, 운영과 관리에 시민참여가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으며, 또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하얄리아공원의 경우에는 어떤 가능한 방법들이 있을 수 있는지 논의하였다. 세미나는 작년 하반기에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포럼의 회원과 외부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발표하고 논의하였다. 3회 포럼 때에는 부산시장이 참석하여 회원들과 의견을 나누었으며 6회 때에는 하얄리아공원의 기본계획을 담당한 미국의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를 직접 방문하여 조경가 제임스 코너와 함께 공원의 계획과 설계 전반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이 세미나의 성과라면 논의의 테이블에 시의 담당 공무원들이 함께 참석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논의들이 언론을 통해 시민들에게도 자세히 전달되었다는 점이라 하겠다. 포럼에서의 논의가 잘 정리되어 신문을 통해 시민들에게 전달됨으로써 많은 시민들이 공원과 공원문화에 대해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의 공유는 자연스럽게 공원의 조성과 운영에 시민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선진사례들을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다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어 작년 12월에는 미국의 IVLP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미국 공원운영 및 관리 답사하얄리아 공원포럼의 회원들은 ‘공원개발과 관리’를 목적으로 2009년 12월 5일부터 12월 15일까지 샌프란시스코, 어바인, 샌디에이고, 뉴욕시를 방문하여 동시대 도시공원의 조성과 관리에 대해 여러 모로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이번 답사는 하얄리아 공원을 어떻게 하면 세계적인 공원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 좋은 아이디어를 구하는데 주목적이 있었으므로 크게 보아 공원관련 기관과 담당 공무원들을 만나는 일, 공원의 운영과 관리에 참여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를 방문하는 일, 공원 디자인을 담당하는 주요 조경회사를 방문하는 일, 그리고 대표적인 공원들을 직접 방문하는 일들이 주된 내용이었다.
수십 명의 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면서 얻은 결론은 우리시대의 공원들이 도시 내에 위치한 단순한 한 조각 녹지의 차원을 넘어서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으로서, 도시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서, 시민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커뮤니티의 장으로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의 목적지로서, 나아가 주변 지역의 활력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도시재생의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공원을 이루는 방법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공원의 모습을 근사하게 계획하고 설계하는 일이다. 공원을 설계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나, 그곳을 이용하는 이용자들 사이에서나 칭찬받고 사랑받는 공원의 물리적 바탕을 먼저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설계경기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조경가를 찾는 것은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이런 과정 속에서 조경가의 지혜와 이용하는 시민들의 바램들을 조화롭게 펼쳐내는 일이 좋은 공원의 출발이 된다. 두 번째는 그런 그릇을 채우는 일이다. 그동안 많은 공원들이 그릇을 만드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그것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점에는 소홀히 했지만 좋은 공원은 공원 속에 담기는 컨텐츠와 프로그램에도 섬세한 배려를 할 때 가능해 진다. 지속가능한 공원들은 공원의 물리적이고 생태적인 환경과 함께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함께 갖출 수 있도록 시와 시민이 힘을 모아 노력하고 있었다. 세 번째는 이러한 그릇과 내용물이 어느 한 시점에서만 작동되고 그쳐버리게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활기차며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는 구조를 갖추도록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원들은 전부 예외 없이 전문 운영조직을 갖추고 있는데, 이러한 조직은 일반적인 행정관리 조직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봉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협치(協治)의조직을 지향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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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endency of Governance seen in High Line
하이라인에서 보여진 거버넌스의 동향하이라인이 약 50년동안 화물수송에 이용되던 고가 철로였으며, 뉴욕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금전적인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6에이커에 해당하는 ‘공원 녹지’를 뉴욕 맨해튼과 같은 고밀도·고지가 지역, 그것도 사유지에 건설하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하이라인의 디자인은 개장 후 뉴욕 부문 미국건축가협회상(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 혹은 AIA New York Chapter Urban Design Award)을 비롯한 수개의 상을 휩쓸고 각종 매스컴을 장식할 만큼 훌륭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시작, 공원화가 결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친 연구, 그리고 여러 단체들의 관심과 협조가 없었다면 하이라인이 현재의 모습을 지니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이라인의 설계는 10여 년에 걸친 시간에 의해 마련된 여건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활약한 민간단체인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High Line, FHL)’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였을까?
하이라인, 어떻게 공원이 되었나?하이라인 구조물의 소유자는 CXS라 불리던 철도회사였으며, 하이라인 아래 부지의 소유자는 첼시 프로퍼티 오너스(Chelsea Property Owners, CPO)라고 불리던 개인들, 그리고 뉴욕 주였다. 하이라인의 철도로서의 이용이나, 다른 방식으로의 전환, 운영자의 변경은 연방정부의 조직인 지상교통 위원회(Surface Transportation Board, STB)의 최종적인 허가가 있어야 가능한 상황이었다. 1980년 이후 하이라인 철도의 사용이 중단되면서 각기 다른 두 레벨의 소유자들은 하이라인의 존폐 그리고 재이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고 궁극적으로 철거를 고려하였으나, 철거 비용을 부담할수 없었던 CPO, 다른 용도로의 사용이나 철도공사에 매각하는 안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던 CXS, 그리고 각기 다른 비전으로 목소리를 내오던 민간단체들의 오랜 시간에 걸친 공방은, 다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이라인 공원화 프로젝트를 이끈 민간단체인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High Line, FHL)’이 결성된 것도 이 시점이다. 1999년 하이라인의 버려져 있지만 고즈넉한 모습에 매료되어 있었던 첼시 주민들로 구성된 단체인 FHL은 하이라인이 공원으로 남아주기를 바랬을 뿐만 아니라, 공원화가 지닌 경제·사회적 가능성에도 믿음을 가졌다.연방 정부에 레일 뱅킹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개발 방향에 대한 뚜렷하고 실현 가능하며 매력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함과 동시에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관리할 수 있는 충분한 자본금과 역량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부지의 소유자도 아니고, 정부기관도 아닌, 그저 민간단체였을 뿐인 FHL이 택한 방법은 이미 뉴욕 시와 확실한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던 민간단체인 ‘공공 공간을 위한 디자인 트러스트(Design Trust for Public Space, DT)’에 제안서를 낸 것이다. DT는 정부 기관과 지역 주민들을 이어주고, 시로부터 의뢰를 받아 설계자와 발주자를 연결하거나, 혹은 시에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하는, 뉴욕 시를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신념으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DT는 FHL에 기금을 보조하여 두 건축가를 고용, 가상의 설계를 의뢰하기도 하고, 이들의 제안 내용을『Reclaiming the High Line』이라는 책으로 출판하는 등의 지원을 한다. 이 책에는 하이라인의 이용 계획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비롯하여, 자금 조성계획 등 구체적이고 심도 깊은 연구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와 함께 FHL은 뉴욕 시, 뉴욕 주와의 협력 관계가 프로젝트의 성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을 예견하고, 이를 구축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언론을 통해 꾸준히 자신들의 입장을 널리 알렸다.2002년 FHL은 또 한 번의 연구 용역을 수행하는데, 이는 하이라인의 경제적 타당성 분석이었으며, 해밀턴 라비노비츠 애슐러(Hamilton, Rabinovitz andAlschuler, Inc, HR&A)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는 공원 조성에 부수적으로 따르게 되는 부동산 가치상승의 통계를 하이라인의 상황에 적용시킨 후, 시에서 얻게 되는 세금 증가를 하이라인 공원화에 소요되는 예산과 비교함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르면 하이라인의 공원화 비용 6천5백만달러를 뉴욕 시에서 채권을 발행하는 형식으로 지원한 후 2022년까지 세금을 통해 환수하게 되는 돈은 1억 4천4백만달러이며, 이는 뉴욕 시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딜(Deal)이라 할 수 있었다.
FHL이 이끌었던 2008년 제2공구 디자인 공청회하이라인, 어떻게 설계되었고 공사되었나?FHL의 설립자는 첼시에 거주하던 두 아티스트인 조슈아 데이빗(Joshua David)과 로버트 해몬드(Robert Hammond)였다. 각각 작가와 화가인 두 사람은 하이라인의 철거를 막기 위해 비영리단체를 만들고 이를 위해 투신할 만큼 문화와 예술에 깊은 애정을 가진 동시에, 하이라인이 위치한 첼시 지역의 장소성에 익숙하고, 이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깊은 고찰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건축가를 영입하여 디자인 자체에 대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는데 주력했다. 좋은 디자인에 대한 기대와 그에 대한 존경, 그리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기꺼이 자금을 조달하려고 하는 노력은 설계자들에게 있어 상당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FHL이 민간단체이면서도 정부 기관들과 동등함 이상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까닭은 주민들의 의견을 대변한다는 사실이 주는 권위, 그리고 하이라인을 하나의 공원 프로젝트에서 나아가 브랜드로 진화시켰다는 점, 그로 인해 예상을 뛰어넘는 기금 조성에 성공했다는 점 등에서 찾을 수 있겠다.정확한 비율은 공식화되지 않았으나, 하이라인의 1, 2공구의 총 공사비용인 1억 5천만달러 중 30%가량에 해당하는 자금을 FHL이 담당하였다. 참고로 FHL이 지난 10여 년간 조성한 기금은 1억 3천만달러에 이른다. 주민 공청회에서 만난 두 사람이 생각한 것은 사람들의 하이라인 철거에 맞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자는 단순한 발상이었으나, 그 결과와 파급 효과는 가히 엄청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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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Governance?
거버넌스란 무엇인가1990년대 이후 정치학, 행정학, 사회학, 사회복 지학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용어가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일반 시민사회에서도 즐겨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럼에도 거버넌스가 어떤 개념과 의의를 지니 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학자들 사이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일반시민들이 혼란을 겪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런 현상일 수도 있다. 따라서 본 글은 학술적인 성격을 지양하고 일반 독자들이 거버넌스의 개념을 쉽고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시도된 글이다. 거버넌스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유 민주주의와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이해부터 갖추어야 하며 나아가 자유방임주의와 시장의 실패, 복지사회주의와 정부의 실패 및 제3의 길이라는 개념들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논의하면 아래와 같다.
자유 민주주의와 인간의 기본권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은 인간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보호·신장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생명, 재산, 행복추구 등 남에게 양도할 수도 없고 남으로부터 침해받을 수 없는 기본권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사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기본권을 보호·신장시키기 위하여 작은 정부를 구성하여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지나치게 신장되면 오히려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크기 때문에 정부는 제한된 권한과 이를 위한 통치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작은 정부를 구축하는 방안으로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 사법심사 등의 사상이 제시되었으며, 작은 정부 하에서 경제는 자유방임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가 인간의 기본권을 신장시켜 줄 것으로 믿었다. 작은 정부는 국방, 외교, 재정 등 최소한의 역할과 기능만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념 하에서 인간의 평등권은 기회균등을 의미하였으며 사람간의 경쟁을 촉진시키고 이를 보장하는 작은 정부야 말로 인간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최선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작은 정부의 틀 하에서 경제는 자유방임주의에 기초하여 운영되었으며 정부의 규제는 극히 최소한에 그쳤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는 시장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얻었다. 인간은 경쟁을 통하여 얻은 재화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를 시장을 통하여 구매하는 형태가 발전되었다. 19세기 산업자본주의는 이러한 이념 하에서 발전된 경제체제이다. 따라서 당시의 정부는 관세에 의하여 유지되는 작은 정부였으며, 인간은 대부분의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구매하는 형태를 띠었다.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역할 강화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이룩한 산업혁명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방임주의 및 자본주의의 이념에 기인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규제가 없는 체제 하에서 기업과 시장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그 결과 산업혁명으로 선진국은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인간의 평등권은 기회의 균등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는 결과보다는 절차의 정당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었다. 선진적으로 산업혁명에 성공한 국가에 있어서 전체적인 부의 크기는 신장되었으나 개인간에 발생한 부의 격차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게 되었다.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격차와 그들간의 갈등이 점차 사회문제로 확산되었다. 시장 메커니즘이 인간의 기본권을 보호·신장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를 두고“시장의 실패”라고 부른다.시장의 실패에 따른 빈곤, 사회계층의 격차 등이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칼 막스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벤덤의 공리주의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며,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던 미국에 있어서도 진보주의의 이름 하에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유산층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소득세를 도입하였다. 당시 소득세의 도입은 자유방임주의를 신봉하였던 유산층에게는 혁명의 수준에 가까운 조치였다. 그 후 미국의 대공황을 거치면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은 경제의 활성화, 소득의 재배분, 사회복지의 확대를 포함하는 등 더욱 강화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사회복지는 모든 국가의 지상 목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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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sign Competition for Naegok District
내곡 보금자리주택지구 조경설계 현상공모서울특별시 SH공사는 내곡 보금자리주택지구를 친환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공간으로 조성하고, 특히 자연과 경관을 고려한 최적의 공원·녹지 모델을 마련하고자 지구 전체의 공원, 녹지, 광장 및 가로수 등을 대상으로 현상공모를 실시하였다. 이에 지난 3월 9일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주)기술사사무소 렛 + (주)동일기술공사의 ‘내곡에 내곡을 담다’와 우수작으로 선정된 유림조경기술사사무소 + (주)성호엔지니어링의 ‘산과 물을 잇고 삶의 기억을 이어주는 도시의 별유풍경’을 소개한다.위치 _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신원동, 원지동, 염곡동 일원 | 지구면적 _ 769,000㎡ | 지구명 _ 서울 내곡 보금자리주택지구 | 설계범위 _ 공원, 녹지, 광장 및 가로수최우수작 _ 내곡에 내곡을 담다(주)기술사사무소 렛 + (주)동일기술공사
설계참여자 _ (주)기술사사무소 렛(장종수 대표, 박영준, 소현수, 최영은, 김현민, 정동진, 김창한, 우혜연, 이충연, 김하나, 노혜승, 남혜정, 곽보영, 김원준, 오정은, 박소연, 라원준, 장종현(경관계획실), 최진우, 김지석(이상 에코플랜센터) + 박경의, 이윤주, 안성순)+(주)동일기술공사(박동천, 최세재, 허명진, 이채형)
우수작 _ 산과 물을 잇고 삶의 기억을 이어주는 도시의 별유풍경유림조경기술사사무소+(주)성호엔지니어링
설계참여자 _ 유림조경기술사사무소(김은성 대표, 윤태록, 장유영)+(주)성호엔지니어링(이유경 대표, 최기호 부사장, 박병현, 이우찬, 권진온, 박희수, 김진경, 이경아, 최재범, 조성원,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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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sign Competition for Segok(2) District
세곡2지구보금자리주택지구 조경설계 현상공모서울특별시 SH공사는 환경친화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환경 조성을 위하여 세곡2보금자리주택지구의 조경 기본 및 실시설계(안)을 공모하였다.심사는 주변지역과 조화된 커뮤니티 형성 추구, 도시어메니티 향상 및 경관계획,생태적,친환경적 녹지공간 창출,사람 중심의 교통계획 및 가로계획 구축을 중점으로 이루어졌으며,이에 최우수 1점,우수 1점,가작 1점을 선정,수상하였다.녹지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요즘은 단순 기능의 거주지 조성만이 아니라 거주지 자체를 공원화시켜 주민들과의 커뮤니티 형성에 힘쓰고 있다.이번 공모전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미래 지향적인 환경과 커뮤니티 조성에 많은 혜안을 얻길 바라며 본지에 최우수 1점,우수 1점을 게재한다.최우수작 _ 세곡 이야기 기술사사무소 동인조경마당 +(주)그룹한우수작 _Fringe Landscape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주)서영엔지니어링설계참여자 _(주)CA조경기술사사무소(진양교 대표,서미경,조용준,사규진,남지인,한유진,김유진,민경찬,김수랑)+(주)서영엔지니어링(임영수,이규찬,강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