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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의 서재] 보스토크
    ‘꼭 붙잡음’이라는 뜻의 ‘포착’은 사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사진은 시간을, 정확히 말하면 특정 순간을 포착한다. 피사체의 움직임, 빛과 그림자를 재빠르게 붙잡아 프레임 속에 가둔다. 이번 달 ‘이미지 스케이프’에서 주신하 교수가 말한 것같이 사진은 언제고 찍을 수 있지만 “그 순간은 다시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사진은 몇 픽셀 그 이상의 크기와 무게를 갖는다. 사진이 분절된 시간이라면 장대한 서사의 일부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한 문장이나 한 줄의 노랫말처럼. 사진에 대한 단상을 그럴듯하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난 사진에 ‘ㅅ’도 모른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더 하자면 한때 사진이 글보다 못하다 여겼다. 글보다 사진이 많은 책은 소장 가치가 없어 보였다. 내 기준에서 이미지는 한 번 보고 뭔지 알아차리고 나면 그만이고, 글이 적고 사진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페이지는 훌훌 넘기다 금세 읽어버려 돈이 아까웠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내 책장에 사진이 많이 들어간 책이 꽂히기 시작했다. 『보스토크Vostok』, 올해만 들어 세 권째다. 『보스토크』는 2016년에 창간된 격월간 사진 잡지다. 창간호의 첫 문을 여는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것은 유쾌한 이야기다. 우리는 새로운 사진 잡지를 만들어 세상에 보낸다. 이 잡지는 한국의 사진 지형에 어떤 깊은 균열을 낼 것이고, 이 작은 세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2이 문장에는 『보스토크』가 사진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비장한 선언이 담겨 있지만, 필자는 이는 유쾌한 일일 뿐이라며 가볍게 일축한다. 『보스토크』가 실제로 어떤 균열을 만들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이에 버금가는 유의미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잡지는 예술, 디자인, 문학의 범주를 넘나들며 사진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사진계뿐만 아니라 사진계 밖의 독자도 끌어오고야 말겠다는 근사한 기획과 함께. 『보스토크』의 특집 앞에서 나는 종종 무장 해제되고 만다. 을지로 일대 재개발과 철거를 다룬 ‘사라지는 나의 도시’(2019년 3-4월호), 늦은 밤을 밝히는 일터의 풍경을 담은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2019년 5-6월호)는 안 읽고는 못 배길 주제였다. 다시 보지 못할 도시 풍경과 그 속의 사람들, 고된 노동의 하루 끝을 담아낸 사진을 소장하지 않는 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직장인으로서 예의가 아니라는 둥, 말 같지도 않는 명분을 만들어냈다. 또한 보스토크 편집부는 최신호인 ‘SF 스타일’(2019년 7-8월호)에서 사진과 SF 소설의 만남을 주선했다. 무려 현실 세계와 평행 세계를 연결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현실 세계의 대상을 다루는 사진과, 눈에 보이지 않는 평행 세계를 다루는 SF의 거리는 언제나 생각보다 멀다. … 우리는 양쪽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네 명의 사진가가 찍은 사진들을 폴더로 묶어서 네 명의 소설가에게 보냈다. 규칙은 간단하다. 받은 사진을 보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소설을 한 편 써서 보내줄 것. 소설가들에게는 사진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다.”3덕분에 나를 포함한 어떤 독자들은 사진에서 평행 세계로 진입하는 웜홀worm hole 같은 것을 찾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사진을 통한 다른 세계로의 여행, 그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을 즈음 어김없이 『환경과조경』의 마감도 돌아왔다. 바쁜 마감 중에 사진 하나하나를 깊게 들여다보는 일은 사치다. 하지만 얼마 전 사진에서 어떤 이야기의 단서를 너무 열심히 찾아다닌 탓인지, 평소보다 이번 잡지에 실린 사진을 오래 그리고 길게 보았다. 특히 표지를 장식한 유청오 작가의 사진, 갯벌 위의 구불구불한 두 줄에 자꾸만 눈이 갔다. 어째서 저런 모양을 하고 있나. 누가 만들어 낸 걸까. 파도일까, 아니면 바다 속 생명체일까. 만약 하나의 줄이 외계의 문자로 조합된 문장이라면? 평행 세계의 누군가가 남겨 놓은 신호일지도. 나는 보스토크 편집부가 보낸 사진을 손에 든 소설가처럼, 사진이 포착한 순간에 이따금씩 머물렀다. 그때마다 잠시 어떤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것도 같았다. 1. 보스토크 프레스 편집부, 『보스토크』, 보스토크프레스. 2. 김현호, “잡지는 가볍게 바다를 가르고”, 『보스토크』 2016년 11-12월호, p.6. 3. 『보스토크』 2019년 7-8월호, p.45.
  • [CODA] 시적 공간
    기억하기 쉬운 내 이름은 선생님들의 좋은 표적이었다. 날이 좋은 날에는 좋아서, 비 오는 날에는 비가 와서 이름이 불렸다. 칠판 앞에서 문제를 풀기도 했고, 난해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날도 있었지만, 가장 많이 한 일은 교과서를 읽는 것이었다. 문학보다는 비문학이 읽기 편했다. “이 바보!”나 “느이 집엔 이런 거 없지?” 같은 소설 속 대사를 감정과 사투리를 제대로 살려 읽을 걸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시 읽기 역시 곤혹스러운 일 중 하나였는데, 소설과는 조금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단어와 단어, 행과 행, 연과 연 사이 침묵의 길이가 문제였다. 몇 안 되는 글자를 후루룩 읽어버리려 하면 ‘누가 시를 그렇게 읽냐’는 꾸짖음이 돌아왔다. 단어와 문장을 음미할 수 있는 틈, 그 짧은 여유를 두는 일이 뭐 그렇게 민망했는지 애꿎은 내 이름만 원망했었다. 침묵의 힘을 깨닫게 된 건 뜻밖에도 영화 ‘동주’(2015)에서였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쿠미와 마주 앉은 동주는 자신의 시집의 제목을 천천히 발음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네 어절 사이사이에는 공백의 시간을 대신하는 영상들이 자리한다. 시인으로서 고뇌와 열망, 몽규를 향한 열등감이 빚어낸 동주의 모습들이 하늘, 바람, 별이라는 단어들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마지막 단어인 시를 발화하는 순간, 장면은 잠시 프리즈 프레임으로 멈춰서며 침묵을 직설적으로 영상화한다. 신기하게도 그 찰나의 정적이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동주를 보고 나선 종종 눈으로만 읽던 시를 소리 내 읽고 싶어졌다. 독자에게 소개할 만한 조경 작품을 찾다보면 이따금 시적 공간, 문학적 공간이라는 표현을 만난다. 시와 문학,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니 그러한 공간 역시 좋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게시물을 클릭하면 대체로 서정적 분위기가 가득한 사진이 모니터를 채우곤 한다. 좋은 곳도 있고, 마음에 차지 않는 곳도 있다. 그렇게 작품을 뜯어보다 보면 시적 공간, 문학적 공간이라는 표현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럽게 저편으로 잊혀지기 일쑤였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또 한 번 그러한 표현과 마주했다. “오랜 고목들이 풍성한 녹음을 만들어내고 있어 디테일한 식재 계획보다는 문학적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공간 계획에 더 많은 힘을 쏟았다.”(‘윤동주 문학동산’, pp.32~39) 사전에서는 ‘시적(문학적)’을 ‘시(문학)의 정취를 가진, 또는 그런 것’1이라 정의한다. 즉 시적(문학적) 공간이란 ‘시(문학)의 고요한 느낌이나 맛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느낌이나 맛은 지극히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지만, 그간의 작품 서치 경험에 비추어보면 많은 사람이 간결한 공간에 고즈넉한 자연이 가미된 곳에서 시적 분위기를 느끼는 것 같다. 오래전에 읽었던 건축가 이종건의 글이 생각났다. 그는 『시적 공간』에서 “시에 의한 사물의 의미화 작업은, 짓기 작업에서 사물(의 완성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곧 사물 페티시즘에 대한 경계를 시사한다. 건축가들은 대개 작품의 완성도를 디테일에서 찾는다. …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위한 디테일인지 묻는 일을 종종 망각한다는 것이다. … 우리 전통 건축이 보여주는 비정합적이고 느슨한 결구와 기하학적으로 경직되기보다 흐트러진 질서에 기초한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여전히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아있다”2고 말한다. 어쩌면 느슨함, 흐트러짐 등 시가 품고 있는 너그러움이 시적 공간과 맥이 닿아있는 게 아닐까. 우연히도 즐겁게 구독 중인 문학 잡지 『릿터Littor』 8/9월호의 주제가 ‘누가 시를 읽는가’였다. 출판인, 작가, 서점 종사자, 유튜버, 동영상 제작자, 뮤지션 등 다양한 분야의 필진과 수기 공모로 참여한 독자의 글이 실렸다. 수 편의 글 중 한 문단이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니까 꿈꾸다 말고 마시는 자리끼처럼 나는 시를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악몽과 꿈 사이에 청량한 물을 흐르게 하고, 꿈이 혈관에 스며들게 해서, 그토록 땀 흘리며 삼키던 열도 잠시 내려놓게 하는 것.”3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를 보내고 나니 거짓말처럼 바람에 시원한 기운이 그득하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이번 가을에는 내게도 꿈꾸다 말고 마시는 자리끼 같은 시 한 편과 그와 어울리는 공간 하나가 생겼으면 좋겠다. 1. ‘시적’, 네이버 어학사전, 2019년 8월 26일 접속. 2. 이종건, 『시적 공간』, 궁리, 2016, pp.119~120. 3. 김겨울, “흐르는 말들”, 『릿터』 8/9월호, p.11.
  • 어딜가든 동네정원, 2019 서울정원박람회 정원, 도시재생의 씨앗이 되다
    바삐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자연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다. 골목길 한편에 옹기종기 놓인 화분이나 콘크리트 틈에서 핀 꽃 한 송이에도 우리는 위로를 받곤 한다. 그래서일까 작게나마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정원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회적 관계망을 확산하는 매개체로 곧잘 이용된다. 다가올 10월, 이러한 정원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2019 서울정원박람회’가 서울로7017과 해방촌 일대에서 개최된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매년 정원 문화 확산과 정원 산업 활성화를 위해 서울정원박람회를 개최해 왔다. 5년 차를 맞이한 서울정원박람회는 한 가지 변화를 꾀했다. 노후 공원을 재단장해 시민들을 불러 모으는 대신 오래된 도시, 즉 시민들의 삶 속으로 직접 찾아가는 도시재생형 박람회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서울로7017과 백범광장 일대를 정원 문화를 확산하는 공간으로 꾸리고, 용산구 해방촌 곳곳에 시민들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동네 정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만리동광장에서는 다채로운 정원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정원 산업의 최신 정보와 트렌드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정원산업전이 진행되며 음악회, 버스킹 공연 등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문화 행사도 열린다. 백범광장에서는 여러 자치구가 정원 작가와 협업해 만든 자치구정원을 만나볼 수 있으며, 목공 체험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해방촌에는 작가와 학생, 지역 주민이 계획한 16개의 동네정원이 조성된다. 곳곳에 조성된 작은 정원이 도시재생의 씨앗이 되어 지역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동네에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축할 것이다. 지난 서울정원박람회가 ‘면’적이었다면 2019 서울정원박람회는 ‘점’에서 시작해 ‘선’을 그려나간다. 만리동 광장에서 출발해 서울로7017, 백범광장을 거쳐 해방촌까지 이어지는 가든로드는 그동안 소외되었던 노후 도시에 사람들의 발길을 유도하고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콘크리트가 가득한 해방촌 일대에 조성되는 작은 정원들이 공원 녹지 소외 지역을 초록으로 물들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PRODUCT] 세련되고 차별화된 공간을 연출하는 ‘스크린블록’ 입체적인 줄무늬가 새겨진 파스텔 톤의 경관 옹벽 블록
    블록은 아름답고 세련된 공간을 조성하는 유용한 소재다. 보도 블록부터 옹벽, 계단, 화단, 담장에 쓰이는 경관 블록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한 이노블록이 손쉽게 차별화된 경관을 연출할 수 있는 ‘스크린블록Screen Block’을 출시했다. 육면체의 스크린블록은 독특한 질감과 파스텔 톤의 색상이 특징인 조경용 경관 옹벽 블록이다. 한쪽 표면에 줄무늬 형태의 요철이 새겨져 있어 구조물이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내구성이 뛰어나 건축물 내·외장재로 사용되며, 크기가 크지 않고 색감이 부드러워 실내 공간에도 잘 어울린다. I형, R형, L형 스크린블록을 조합하면 독특한 디자인의 담장이나 파사드를 만들 수 있다. 무게도 가벼운 편이라 중장비를 동원하지 않고도 운반하고 설치할 수 있어 편리하다. 또한 콘크리트 백화저감시스템 처리가 되어 있어 백화 현상 없이 오랜 기간 미관을 유지할 수 있다. TEL.031-358-4711 WEB. www.inoblock.co.kr
    • / 이노블록
  • [에디토리얼] 맥하그의 유산
    1969년은 현대 조경사의 분수령이다. 분야의 혁신과 영역의 확장을 이끈 새로운 조경 전도사이안 맥하그Ian L. McHarg(1920~2011)가『디자인 위드 네이처(Design with Nature)』를 출간한 1969년을 기점으로 조경 이론과 실천은 변화의 함수를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출간 50주년을 맞은 2019년, 미국 조경학계는『디자인 위드 네이처』를 재조명하고 맥하그가 현대 조경에 남긴 유산을 재평가하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책의 산실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맥하그 센터(The McHarg Center)가 설립되어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전시회를 기획했다. 지난 6월에는 대규모 컨퍼런스가 열렸고, 오는 10월에는 그의 거대한 그늘 속에서 성장과 탈주를 거듭해 온 이론가와 조경가들이 모여 함께 집필한 책, 『디자인 위드 네이처 나우(Design with Nature Now)』가 우리 앞에 놓일 예정이다. 학과 도서실 책장 한구석에서『디자인 위드 네이처』 초판본을 꺼내 다시 펼쳐본다. 50년이 흐른 지금, 이 책이 제시한 철학과 방법론은 이제 선택지가 아닌 당위이고 변수가 아닌 상수다. 자연환경의 여러 요소와 시스템을 면밀히 조사·분석하고 그 결과를 중첩해 적지를 찾아내는 방법은 오늘날의 계획에서는 당연한 절차지만 1960년대에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자연과 싸워 자연을 이겨내는 역사를 일구어 온 인간이 비로소 그 결과에 대해 반성하고 미래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아채기 시작한 1960년대 말, 맥하그의 생태 계획은 환경 문제에 대한 자각과 새로운 인식을 낳은 시대정신과 맥과 결을 같이 하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발상이었던 셈이다. 맥하그를 기점으로 조경은 변신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 동력은 생태학이라는 이름의 과학이었다. 맥하그는 생태학의 힘을 빌려 조경과 조경 교육을 과학화했다. 뿐만 아니라 조경이 단지 왕후장상이나 자본가의 정원 뒤치다꺼리를 넘어 환경 문제의 해소에 기여함으로써 사회적 역할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험했다. 조경 전문업의 영토를 확장하고 조경만의 전문 기술로 광역 계획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모더니즘 시대에 정체된 조경의 탈출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맥하그식 생태 계획은 조경에서 포스트모던한 사고의 등장을 알리는 징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맥하그의 접근 방법이 환경결정론, 즉 또 다른 형태의 인간-자연 이원론이라는 부정적 평가는 이미 그의 전성기에도 팽배했다. 도구주의적 자연관을 극복하고자 한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인간 문화의 역동적 접점을 소홀히 여겼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맥하그의 유산은 조경의 과학-예술 이분법을 심화시킨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폭넓은 생태학의 가능성을 경직된 과학 일변도로 몰아감으로써 생태학에 담긴 상상력이나 창조성과 같은 측면을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조경의 과학화는 디자인의 침체를 낳았고, 조사, 분석, 설계의 일방향 프로세스는 형태의 디자인과 결코 교점을 갖기 어려웠다. 『디자인 위드 네이처』는 조경의 지향과 방법론을 바꾼 이론이자 동시에 사회적 영향력을 탑재한 실천이었다. 맥하그의 유산은 오늘의 토론을 초대한다. 현대 조경을 화장술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킨 진보의 토양인가, 현대 조경의 진행 방향을 뒤흔든 이단인가. 평가는 엇갈리지만, 적어도『디자인 위드 네이처』가 현대 조경 이론사의 서막을 열었다는 점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시의 시스템을 경관으로 매개하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의 배경에도,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회복탄력적(resilient)설계의 이면에도 맥하그가 자리하고 있다. ‘1969년 이후의 조경이론’이라는 제목으로 10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대학원 세미나에서 한 박사과정 학생이 제출한 글의 마지막 문단을 옮긴다. “변화하는 동시대 조경에 맥하그는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던진다. 우리에게 맥하그는 거대한 그림자다. 숲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아닌, 한 발짝씩 앞서 걸어가는 족적처럼 안심을 주는 그림자다. 강렬한 햇빛에 반사되어 쳐다보기도 힘든 정오의 땅 위에, 옅은 그림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지 않는가. 한 발자국 걸어 나갈 방향을 잡아준다는 점에서 맥하그의 생태적 조경관은 오래된 이정표와 같다. 이 이정표의 올바른 사용법은 우리가 계속 고민할 문제일 것이다”(신명진). 이번 호에는 뢰번 가톨릭 대학, 런던 대학, 글레스고 대학, 텍사스 대학 등 최근의 캠퍼스 프로젝트를 모아 싣는다. 대학 캠퍼스와 도시 공간의 함수 관계가 흥미롭다.
  • 런던 대학 윌킨스 테라스 UCL Wilkins Terrace
    런던 블룸즈버리(Bloomsbury)지구에 위치한 런던 대학(University College London)(UCL)은 넓은 캠퍼스 규모에 비해 사람들이 모일 만한 공간이 부족했다. 부족한 여가 공간을 제공하고자 기존의 서비스 야드(service yard)를 야외 테라스로 개선했다. 윌킨스 테라스(Willkins Terrace)로 인해 캠퍼스의 후미진 뒷마당은 대학의 중심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캠퍼스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여러 건물로 둘러싸인 기존의 서비스 야드는 각종 물품 보관소와 기계실 등이 모여 있어 미관이 좋지 않았다. 새로운 공공 공간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주변 건물로 통하는 동선을 확보하는 동시에 서비스 야드의 기존 동선을 어떻게 유지할지 고민해야 했다. 또한 대상지를 둘러싼 다양한 요소를 하나의 디자인으로 통일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76호(2019년8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Levitt Bernstein Team Matthew Goulcher, Kate Digney, Tony Hall, EleanorMayfield and Paul Martin Engineer Curtins Client University College London(UCL) Location London, United Kingdom Area 1,300m2 Cost£9,300,000 Completion 2017 Photographs Ben Blossom 레빗 번스타인(Levitt Bernstein)은 1968년 데이비드 번스타인(David Bernstein)과 데이비드 레빗(David Levitt)이 공동 설립한 디자인 스튜디오로, 런던과 맨체스터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건축, 조경, 도시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주거, 교육, 예술, 상업 공간 등을 설계한다. 실용성을 갖춘 디자인을 통해 평범한 건물이나 공간을 쾌적하고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며, 나아가 삶의 질 향상과 이웃 간 교류를 증진시키는 데도 기여하고자 한다.
    • Levitt Bernstein
  • 뢰번 가톨릭 대학교 레하 기숙사 KU Leuven Rega Residence
    뢰번 가톨릭 대학교(Katholieke Universiteit Leuven)(KU Lueven)의 정원과 건물 아래에는 번트Vunt 강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캠퍼스의 몇몇 건물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번트 강을 덮고 있던 구조물 일부가 붕괴되었다. 문제는 나무의 뿌리에 있었다. 강을 덮은 콘크리트 지반 위에서 자라는 나무뿌리가 물을 찾는 과정에서 바닥에 균열을 만든 것이다. 몇 년에 걸쳐 커진 균열은 콘크리트 지반을 붕괴시켰다. 손상된 지반을 복구하고, 그 위에서 자라는 나무를 위한 해결 방안을 도출해야 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76호(2019년8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Ontwerpbureau Pauwels Location Sint Maartenstraat 55, 3000 Leuven, Belgium Design 2015 Completion 2016 Photographs Ontwerpbureau Pauwels 온트베르프뷔로 파울즈(Ontwerpbureau Pauwels)는 1985년 미셸 파울즈(Michael Pauwels)가 벨기에 뢰번에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다. 조경가, 도시계획가, 그래픽 디자이너, 수문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7인이 팀을 이루어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미지, 의미(상징), 용도의 조화를 통해 경관의 맥락을 만드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 프로젝트에 다채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팀원 및 클라이언트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Ontwerpbureau Pauwels
  • 글래스고 대학 City of Glasgow College
    글래스고 대학(Glasgow College)은 글래스고 시의 재생을 선도하는 중심지로, 칼리지 힐(College Hill)이라 불리는 도심지에 위치한 시티 캠퍼스(City Campus)와 클라이드Clyde 강 유역에 자리한 리버사이드 캠퍼스(Riverside Campus)로 구성된다. 글래스고 대학 프로젝트는 교육 공간 마련을 넘어 도시에 사회적, 생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더불어 대학 생활을 자연스럽게 도심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또한 글래스고 시를 대표하는 경관 요소인 언덕과 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시티 캠퍼스와 리버사이드 캠퍼스의 건물들은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하지만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각기 다른 대상지의 조건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캠퍼스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성 있는 경관을 만들어야했다. 이를 위해 프리캐스트 콘크리트와 우드랜드 가든(woodland garden)같은 요소를 반복해 배치함으로써 캠퍼스 전역에 통일감을 부여하고, 공간의 성격에 따라 다른 소재와 식물을 적절히 활용해 특색을 주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76호(2019년8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ure rankinfraser landscape architecture Architects Michael Laird Architects and Reiach and HallArchitects Engineers Arup Main Contractor Sir Robert McAlpine Location Glasgow, Scotland Design 2012 Construction 2014~2018 Area City Campus: 38,700m2 Riverside Campus: 21,600m2 Photographs rankinfraser landscape architecture, Reiach andHall Architects, Michael Laird Architects 랜킨프레이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rankinfraser landscapearchitecture)는 크리스 랜킨(Chris Rankin)과 케니 프레이저(Kenny Fraser)가 2008년에 설립했다. 영국 애든버러 뉴타운에 사무소를 두고 스코트랜드를 중심으로 한 영국 전역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자연과 도시, 경관이 독특한 상호 관계를 이루고 있는 애든버러가 경관을 탐구하고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며, 도시의 풍경이 경관을 디자인하는 태도와 접근법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 rankinfraser landscape architecture
  •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델 메디컬 디스트릭트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Dell Medical District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이하 UT 오스틴)는 2012년 캠퍼스 전반에 걸친 마스터플랜을 계획했으며,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의과대학과 병원을 새로 개설했다. 우리는 2013 캠퍼스 마스터플랜(2013 Campus Master Plan)부터 2013 메디컬 디스트릭트 마스터플랜(2013 Medical District Master Plan), 2014 UT 오스틴 캠퍼스 경관 마스터플랜 및 디자인 가이드라인(2014 UT Austin Campus Landscape Master Plan and Design Guidelines)수립을 차례로 수행했으며, 이어서 의과대학 캠퍼스 조경 설계를 맡아 진행했다. ‘델 메디컬 디스트릭트(Dell Medical District)’는 델 메디컬 스쿨(Dell Medical School)과 그 부속 병원인 델 시튼 메디컬 센터(Dell Seton Medical Center)가 위치한 6만6천 제곱미터의 부지다. 월러 크리크(Waller Creek)의 생태적 복원과 오스틴 시와의 연계성 강화를 중점적으로 고려해 조경 계획을 수립했다. 이와 함께 캠퍼스의 역사성을 드러내고 지속가능성이 높은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76호(2019년8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Sasaki Associates Client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Location Austin, Texas Area 16.2ac Completion 2017 Photographs Albert Vecerka, Dell Medical School,Sasaki Associates 사사키 어소시에이츠(Sasaki Associates)는 1953년 히데오 사사키가 설립한 설계사무소로 건축, 인테리어, 도시계획, 조경, 전략 기획,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비판적 사고와 열려 있는 탐구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가 사는 공간을 물리적 차원을 넘어 다양한 경험을 만드는 맥락과 콘텐츠를 담는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 Sasaki Associates
  • 코케달 기후 적응 프로젝트 Kokkedal Climate Adaptation
    침수에 취약한 대상지 ‘코케달 기후 적응 프로젝트(Kokkedal Climate Adaptation)’의 대상지는 덴마크 노스 질랜드(North Zealand)코케달 지역에 위치한 69헥타르 규모의 마을이다. 3,000여 명이 이곳에 거주하며,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대규모 주택 조합이 모여 있다. 주거지 동쪽에는 우세뢰(Usserød)강이 있는데, 2011년 큰 홍수로 강이 범람해 주민들이 심각한 침수 피해를 보았다. 2012년 ‘클리마틸파스닝 코케달(Klimatilpasning Kokkedal)’ 설계공모전이 개최되어 코케달 지역을 기후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하고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계획안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안전상의 이유로 이용하기 어려웠던 하천 유역이 정비되고 홍수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파편화된 공간들이 연결되고 매력적인 외부 공간이 늘어났으며, 주민들은 자연과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76호(2019년8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Schønherr Engineer Ramboll Contractors Ebbe Dalsgaard, P. Malmos, Hededanmark Client Fredensborg Municipality, Realdania, Lokale- &Anlægsfonden AB Hørsholm Kokkedal, Housing Association 3B Location 61ha urban area including the river valley, the towncenter, Egedalsvænge, Byengen, Nordengen, Skovengen andEngen, Denmark Cost 118million DKK Area 69ha Design 2012~2016 Completion 2017 Photographs Carsten Ingemann, Leif Tuxen for Realdania,Schønherr 조경설계사무소 쇤헤르(Schønherr)는1984년 토르벤 쇤헤르(Torben Schønherr)에 의해 설립되어 코펜하겐과 오르후스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노력하며,프로젝트에서 일관성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사회성,기능성,경제성을 고루 갖춘 종합적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예술적 감수성과 합리성을 설계 원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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