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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
정보 수집, 취재, 기획, 편집, 교정, 마감. 쉼표로 생략된 이야기가 많지만 에디터는 대강 이 정도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일 년을 보낸다. 첫 과제인 정보 수집은 귀동냥, 제보, 대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중에서도 검색은 얄팍한 정보를 재빠르게 수집하기에 제격이다. 이따금 키보드와 모니터를 통해 세계 곳곳을 탐방한다. 이번 호 지면을 가득 채운 놀이터도 그 대상 중 하나다.
마스크 없이 랜선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는 여행은 보통 두 단계로 진행된다. 검색어는 ‘놀이터’. 이 여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많아야 스무 개 남짓, 그나마도 ‘MZ세대를 위한 놀이터’, ‘새들의 놀이터’처럼 각종 캐치프레이즈 때문에 검색된 기사를 제외하면 영양가 있는 정보가 얼마 남지 않는다. 검색어를 ‘playground’로 바꾼다. 훨씬 다채로운 결과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색색의 옷을 입은 독특한 형태의 조합 놀이대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공원이나 광장에 가까워 보이는 곳도 많다. 파빌리온이나 실험적 예술 작품도 거리낌 없이 놀이터라 부르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 공간에 얽혀 저마다의 놀이를 즐기고 있다. 단어가 품는 범위뿐만 아니라 물리적 면적 자체도 월등히 크다.
놀이터는 제법 여러 번 다룬 소재다. 특집으로 소개한 적도 있고, 참고할 만한 놀이터 전문 서적이 없던 시절에는 독일의 『Kinderspielplatze mit hohem Spielwert(놀이 가치가 높은 어린이 놀이터)』를 번역해 실었다. 113호(1997년 9월)에는 전통 놀이 공간을 이르는 ‘전승놀이터’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심우경 교수(당시 고려대학교 원예과학과)는 과거 “우리의 놀이는 주로 아름다운 산천에서 행해졌으며 고정된 시설이 아니고 빈터(마당)만 있으면 철에 따라서 남녀노소가 따로 함께 놀았”다고 말한다. 즉 산과 들을 비롯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장소를 놀이의 터로 삼았단 이야기다.
그렇다면 미끄럼틀과 그네가 놓인, 우리가 익숙하게 봐 온 놀이터는 언제 등장했을까. 김성문 대표(판타지 코리아)는 4호(1983년 10월호) 특별기획 지면에서 놀이터가 탄생한 이유를 “산업화의 영향에 의해 도시가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며 “어린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고층 건물과 주차장, 도로 등의 시설로 점령”되었고, 어린이를 보호하고 그들의 활동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놀이터’라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함께 수록된 삽화가 인상적인데, 자동차 사이에 낀 그네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도시의 모든 공간이 그렇듯 놀이터도 도시를 반영한다.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놀이터 시설 구성의 밀도도 높아지게 된다.”(기아미+김연금, 50쪽) 땅에서 한계를 맞닥트린 놀이터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해 솟는다. 트리하우스는 나무 주변을 감싸 오르고(영도초등학교 트리하우스, 부산 새들원), 둘레길을 닮은 데크는 지면에서 서서히 떠오르며 다이내믹한 등굣길과 놀이 공간을 선사한다.(배봉초등학교 놀이키움). 좁은 공간에서 놀이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어린이꿈공원). 이러한 입체적 시설은 중력을 거스르며 놀고 싶은 어린이의 욕구를 해소시키고 주변을 색다른 높이에서 바라보는 생경한 경험을 주지만(하늘바다놀이터), 사실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다채롭게 활용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밧줄과 암벽을 타고 공중에 매달린 그물 위를 쏘다니며 모험심을 키울 수 있게 되었지만, 내키는 만큼 달리고 실컷 공놀이를 할 수 있는, “멀쩡한 놀이터를 놔두고…스탠드 기둥에 찰싹 붙으며 도망 다니는, 매미 놀이”(문교초등학교 언덕 놀이터)를 할 수 있는 너른 터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바벨탑에서 시작해 세계 곳곳에 우뚝 선 마천루까지, 수직을 향한 인류의 욕망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위로 오르는 행위를 신분 상승에 비유한 영화 ‘기생충’에서 기우는 어둑한 지하를 향해 말한다.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놀이터에는 계단 따위는 없을수록 좋다. 도전 정신을 키울 수 있는 사다리도 좋지만, 휠체어와 유모차도 오를 수 있는 나지막한 경사가 더 좋다. 모두가 수직 도시를 꿈꾸는 이 시대에 놀이터는 평평하고 널찍한 수평을 바라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더불어 궁금해졌다. 더 높은 구조물을 짓고, 더 깊숙이 땅을 파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 시대에 결국 땅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 또 무엇을 남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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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거리의 공기를 정화하는 ‘미스트에어타워’
향균 및 공기 정화 기능을 갖춘 안개 분사 시스템
아이디플러스IDPLUS의 ‘미스트에어타워Mist Air Tower’는 안개 분사기와 전기 집진기를 이용한 미세먼지와 기온 저감 기능은 물론, 향균 및 공기 정화 시스템까지 갖춘 복합 환경 시설물이다. 하층부에 달린 환풍기로 주변 공기를 빨아들여 타워 내부에 장착된 전기 집진기에서 폐렴균, 황색포도상구균, 초미세먼지 등의 유해 물질을 걸러내 깨끗한 공기로 다시 배출하는 원리다. 전기 집진기에는 플라즈마 장치, 집진 필터가 내장되어 미세먼지와 악취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기존의 안개 분사 시스템이 수도관을 통해 끌어온 물을 미세한 입자의 안개로 분사해 온도를 낮추고 미세먼지를 저감했다면, 미스트에어타워는 안개 분사 기능에 주변 공기를 정화하는 시스템을 더해 폭염이나 대기 오염 등의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미스트에어타워는 조형물을 연상케 하는 역삼각형 타워, 나무를 닮은 타워, 단순함이 돋보이는 일자형 타워 등 다양한 옥외 공간에 어울리는 여러 디자인으로 설계되었다. 깨끗한 공기가 필요한 버스 정류장, 유동 인구가 많은 길거리, 공연장, 놀이터 등에 설치하면 손쉽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TEL. 02-3661-2040 WEB. www.id-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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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다시, 변신을 꿈꾸는 샹젤리제
도시계획의 종주 도시 파리가 또 한 번의 변신을 꿈꾼다. 지난 1월 초, 안 이달고(Anne Hidalgo)파리 시장은 샹젤리제 거리를 ‘특별한 정원(extraordinary garden)’으로 개조하는 계획을 발표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로로 이름 높지만 자동차와 오염, 관광과 소비에 점령당한 샹젤리제 거리를 생태적이고 포용적인 장소로 되살려낸다는 장기 프로젝트다. 2030년까지 약 2억5천만 유로3,34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개선문이 있는 샤를 드골 광장과 콩코르드 광장을 잇는 길이 2km, 폭 70m의 샹젤리제 거리는 프랑스의 국가 상징 가로이자 화려한 명품 쇼핑 거리로 유명하다. 1667년, 태양왕 루이 14세의 정원사이자 베르사유의 설계자인 앙드레 르 노트르가 튈르리 정원에서 도시로 뻗어 나가는 길을 설계하면서 가로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랑 쿠르(Grand Cours)라 명명된 넓은 산책로 양쪽으로 두 줄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늘어섰고 프랑스식 정원도 조성됐다.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치가 즐겨 걸어 ‘여왕의 산책로’라고도 불리던 이 길은 18세기에 들어서며 변모한다. 1709년, 산책로를 확장하면서 ‘엘리제의 들판’이라는 뜻의 샹젤리제(ChampsElysees)로 이름도 바뀌었다. 엘리제는 그리스 신화의 낙원이다. 18세기 말, 가로수가 하늘을 덮을 정도로 높고 풍성하게 자란 샹젤리제 거리는, 혁명의 도시 파리 시민들이 일상의 산책과 피크닉을 즐기는 대중적 공공 공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파리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1944년 8월 25일, 드골 장군은 개선문에서 출발해 콩코르드 광장까지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시민들과 함께 행진했다. 프랑스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샹젤리제 거리는 파리를 대표하는 역사적 장소로 발돋움한다. 파리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샹젤리제 거리를 안다. 감미로운 멜로디의 샹송, ‘오aux 샹젤리제’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어를 모르더라도 부를 수 있는 경쾌한 후렴구를 따라 부르다 보면, 마치 열병식 장면처럼 가로수가 직선으로 늘어선 파리의 도심을 흥겹게 산보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샹젤리제에는…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있다.”
하지만 임대료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번화한 거리, 도시의 욕망과 소비가 겹겹이 쌓인 샹젤리제는 고유의 장소성을 잃은 지 오래다.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메르세데스 벤츠 같은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만 즐비하다. 시간당 평균 3천 대의 차량이 통과하는 혼잡한 대로는 파리를 순환하는 고속도로보다 대기 오염을 더 많이 유발한다고 한다. 코로나19로 관광이 중단되기 전에는 매일 10만 명이 이 길을 걸었는데 그중 72%가 관광객이었다고 한다. 정작 파리 시민은 찾지 않는 ‘한물간’ 관광지, 고급 공항 면세점의 야외 버전 같은 이곳을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e)식으로 말하면 바로 비장소(non-place)일 것이다.
엘리제(낙원)의 영예를 더 이상 담지 못하게 된 샹젤리제 거리를 개선하기 위해 2018년 ‘샹젤리제 위원회’가 결성됐고, 시민 9만6천 명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구상이 이번에 아달고 시장이 발표한 ‘특별한 정원’ 프로젝트다. 차도를 반으로 줄여 보도 폭을 두 배로 넓힌다. PCA 스트림(Stream)의 설계안 동영상을 보면, 2030년의 샹젤리제 거리는 넓은 녹지대와 풍성한 나무 터널 사이를 마음껏 걷고 어디서나 앉아 쉴 수 있는 도시 산책자의 낙원이다. 파리 올림픽이 열릴 2024년까지 콩코르드 광장과 그 주변을 개선하고 나머지 구간은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바꿔나간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지난해 6월 재선에 성공한 안 이달고 시장의 도시 혁신 공약, ‘파리를 위한 선언’이 있다. 이달고는 새 임기 6년간의 시정 비전으로 생태, 연대, 건강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시가 직면한 위기에 맞서기 위해 사회 정의와 환경 보호를 모든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생태적 이상을 포기할 때가 아니다. 도시를 회복해야 건강도 지킬 수 있다. 생태는 미래를 위한 가치의 중심이다.” 이번 샹젤리제 거리의 ‘특별한 정원’화는 파리 전역의 차량 속도 시속 30km로 제한, 집과 직장과 학교를 15분 안에 오가는 ‘15분 도시’로 차량 교통 제어, 주차장 면적을 절반으로 줄이고 도시 전체에 자전거도로·보도·녹도 형성, 고층 개발 백지화와 대형 숲 조성, 시민들의 새로운 연대 등의 공약을 구현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다.
팬데믹의 충격에서 세계의 어느 도시도 자유롭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선진적인 경제 시스템과 정치 체제를 자랑하던 도시일수록 공간적 기반 자체가 흔들렸다. 코로나 이후의 도시가 가야 할 길을 예견하는 많은 목소리가 녹색과 공공성에 초점을 맞추는 지금, 이달고의 파리 선언과 샹젤리제 계획은 ‘뉴노멀’을 준비하는 지구촌 많은 도시들이 뒤따를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샹젤리제와 파리의 변신에 마냥 환호를 보내는 태도에 대해서는 경계의 시선도 필요하다. 자동차의 추방, 자동차의 도시에서 사람의 도시로의 전환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구상에 왜 ‘정원’이라는 상표를 달았을까. 복잡한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얽힌 도시 혁신에 낭만의 정원을 대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은유로서의 정원은 시민의 공감을 얻기 쉽지만, 이 낭만적인 은유가 다른 도시들로 속속 전파되면 피상과 장식으로 흐를 우려도 적지 않다. 우리는 자연의 외피를 흉내 내며 녹색을 앞세운 계획들이 졸속의 전시적 화장술로 치달은 선례를 숱하게 목격하지 않았던가.
이번 호에는 『LA+』가 실험한 ‘생물체 설계공모’, 한국전쟁의 민간인 희생자를 기억하는 ‘진실과 화해의 숲 설계공모’, 신도시의 조경 네트워크를 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5-1생활권 조경 설계공모’ 수상작들을 싣는다. 전혀 다른 성격의 세 가지 설계공모에서 동시대 조경의 넓은 스펙트럼과 쟁점들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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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풍경의 주인
차들이 빼곡한 지하 주차장에서 자신의 자동차를 찾는 친구의 모습이 꽤나 능숙해 보였다. 대학 시절 학교에 차를 몰고 다니는 동갑내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믿기 어려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꽤 많은 친구들이 차를 소유하고 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친구 뒤를 쫓으며 나란히 세워진 차들을 살핀다. ‘큰 건 버스(혹은 트럭), 작은 건 승용차’인 나 같은 까막눈은 혼란스럽다. 룰을 모른 채 무작정 바둑판을 보는 느낌이랄까.
문득 자동차도 표정이 있다고 했던 후배가 떠오른다. 헤드라이트는 눈과 눈썹, 그 사이를 코, 아래 긴 부분을 입이라 생각하면 표정이 보인다나. 그래서 어떤 차는 화가 나거나, 놀라거나,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다. …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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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지금은 맞고, 그때도 맞다
오래된 기억 하나를 들춰 본다. 학부 때 일이다. 조경 관련 수입 서적을 방문 판매 하는 분들이 있었다. 아마도 기억날 것이다. 여러 학교와 사무실을 다니면서 책을 팔았기 때문에, 나름 조경계의 유명인사로 통했다. 학부생 형편에 화려하고 무겁고 비싼 책들을 살 여력이 없었기에, 나는 그분들의 단골이 되지는 못했다. 어느 날 처음 보는 좀 젊은 분이 왔는데, 비싼 수입 서적이 아니라 『환경과조경』 합본을 팔고 있었다. 대략 열 권 정도 되는 잡지를 모아 하나의 소장본으로 묶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딱히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창간호부터 묶은 것이라 책값의 일부를 외상으로 남기고 덜컥 사고 말았다. 다음에 오시면 나머지를 드리겠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뒤로 만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입대 휴학을 하고 또 복학을 하는 사이에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도 그 두꺼운 책을 꼭 챙겨 다녔는데, 책값을 다 치르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부터 책장에서도 사라져버린 책. 내가 『환경과조경』을 처음 접한 기억이다.
김모아 기자로부터 오는 전화나 메일에는 조금 긴장을 하게 된다. 원고 청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환경과조경』에 꽤 많은 글을 썼는데도 원고를 청탁받으면 늘 부담이 된다. 400호 기념 기획에 대해 들었다. 내가 맡은 부분(51호~100호)의 시기를 따져보니, 거의 30년 전이다. 1992년 6월호부터 1996년 8월호까지, 4년이 조금 넘는 시간.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 연구소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설계사무실로 옮겨 실무 초년병 시절을 보낸 시기다. 원고 청탁서와 함께 전달된 목차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오래된 프로젝트들이 보였고 반가운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소식이 감감한 선배들의 흔적들도 보였다. 청춘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중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음에도 지나간 청춘의 시간은 너무도 가깝다. 우리 회사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소개되니 반갑기도 하고, 지금은 조경계의 중추 역할을 하는 동료 선후배들의 호기 넘치는 패기를 지면에서 마주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잡지가 발행된 시기(1992년~1996년)는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리우환경회의의 결과로 지 구 환경에 대한 이슈가 어느 때보다 활발했고, 정부 조직에서도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되는 변화 가 있었다. 1995년에 실시된 지방 선거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열렸다. 1989년에 전격 시행된 해외여행자유화 조치로 많은 사람이 손쉽게 해외여행을 하기 시작했던 반면, 새로운 무역 기구의 출현으로 시장 개방이라는 압력을 견뎌야 했던 시기다.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컴퓨터 기술로 인해 설계 환경이 비약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인터넷이라는 낯선 세계를 접하게 된 것도 이때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잡지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분야의 유일한 잡지 매체로서, 전문 분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특집, 특별기획, 기획시리즈, 긴급진단, 긴급제안, 특별기고와 같은 다분히 전투적인 제목의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생성된 수많은 글은 당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선배 세대의 생생한 기록이 되었다.
‘환경’과 조경이라고?
계간지로 출발한 『조경』이 『환경 그리고 조경』으로 제호를 바꾼 때가 통권 9호(1985년 여름호)다. 어떠한 연유에서 ‘환경’을 삽입하게 되었는지 짐작만 할 뿐,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있다. 2014년 1월 309호로 새 출발을 하면서도 『환경과조경』의 제호는 유지됐다. 조경 분야에서 환경의 이슈를 다루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되던 1990년대 중반은 꽤 진한 러브콜이 오고 갔던 시기로 보인다. 장관 인터뷰 기사와 여러 환경 관련 이슈들이 특집이나 특별 기획의 형태로 자주 등장한다.
71호(1994년 3월호)와 72호에서 ‘지구환경오염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와 전망’이라는 특집을 연속으로 기획했고, 연이어 73호에서는 ‘환경보전적 21세기 농촌상’을 다뤘다. 81호(1995년 1월호)에는 신년 특별기획으로 ‘친환경적 도시관리’, ‘산림생태자원보전’, ‘녹색서울과 남산’이라는 정책적 주제를 다룬 글들이 실렸다. 86호(1995년 6월호)에서는 ‘환경영향평가의 재조명’이라는 특집으로 무려 7명의 필자가 등판해서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63호(1993년 7월호)에서는 긴급진단이라는 구성으로 ‘지금 우리는 지구환경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절박한 이슈가 등장하는데, 막상 내용을 살펴보니 조경사업법 제정, 조경공사 표준품셈 합리화 방안, 수목단가의 합리적 산정 등 업계 현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주제에서 벗어난 좀 뜬금없는 구성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통권 100호(1996년 8월호)에서 다룬 특집 ‘하천환경 복구 진단’은 12명의 필자가 총출동하여 하천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룬 역대급 기획이었다. …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박승진은 『환경과조경』 5호가 발행될 때 대학에 입학해 조경을 공부했다. 47호가 나올 때 학교 연구소에서 생애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69호와 함께 설계사무실에 들어가서 실무를 익혔다. 그리고 13년을 다녔다. 227호가 발행되던 날, 작은 설계 스튜디오를 열었다. 며칠 전, 393호가 배달되었고 여전히 작업실에서 설계 도면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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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체 설계공모
LA+ Creature International Idea Competition
당선작
니코 델릭+앰비카 파머Niko Dellic+Ambika Pharma
맹그로브투구게
캐서린 발베드레+쉬유쯔+엘리자베스 세르비토Catherine Valverde+Xu Youzi+Elizabeth Servito
호랑이도롱뇽
류빙젠+신희정+정에스더
Liu Bingjian+Shin Heejung+Jung Esther
아메리카뱀장어
아서 람Arthur Lam
조류
페라스 압둘라+칼라 로즈 오스트랜더
Feras Abdallah+Calla Rose Ostrander
북아메리카비버
가작
왕이루+왕윈Wang Yiru+Wang Yun
산호
코너 오셰이Conor O'Shea
십칠년매미
댄 파커+스타니슬라프 루다브스키
Dan Parker+Stanislav Roudavski
큰솔부엉이
세이디 이매+나탈리야 디카노브
Sadie Imae+Natalya Dikhanov
사막비개구리
흐엉 딘Huong Dinh
북부표범개구리
아이토르 프리아스.산체스+호아킨 페라일레스.산티아고+아스티 미예르
Aitor Frias-Sanchez+Joaquin Perailes-Santiago+Aashti Miller
왕거미
마르치아 미칼리Marzia Micali
참문어
왕저우Wang Zhou
바다코끼리
케이k
표고버섯
힐러리 드빌트Hillary DeWildt
갈색사다새
주최 LA+
설계 대상 인간이 아닌 생물체가 살 수 있는 장소, 구조, 사물,시스템, 프로세스
참가 자격 어떠한 자격도 필요하지 않음, 개인 또는 3명 이하로구성된 팀
제출물
sheet1(8.75×10.5인치): 지정된 스케일의 마스터플랜과 단면도
sheet2(17.5×10.5인치): 설계 내용을 보여줄 수 있는 자유로운형식의 이미지
sheet3(선택 사항, 17.5×10.5인치): 설계 내용을 보여줄 수 있는자유로운 형식의 이미지
text: 생물체의 보통명과 라틴명, 설계설명서(400단어 이내)
일정
제출 마감: 2020년 10월 20일
수상작 발표: 2020년 12월 8일
심사위원장 리차드 웰러(Richard Weller, 심사위원장,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교수)
심사위원
티모시 모턴(Timothy Morton, 라이스 대학교 교수)
케이트 오르프(Kate Orff, SCAPE 대표)
크리스 리드(Chris Reed, Stoss 대표)
제니퍼 월치(Jennifer Wolch, UC 버클리 환경대자인 대학 학장)
앤드류 그랜트(Andrew Grant, 그랜트 어소시에이트 대표)
패러 닉슨(Farre Nixon, 쿤큐 디자인 이니셔티브 디자이너)
시상
당선작(5개 팀): 상금 2,000 USD, 상장, 『LA+』에 작품 수록
가작(10개 팀): 상장, 『LA+』에 작품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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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체 설계공모] 공동의 집을 돌보는 방식
멧돼지가 내려온다
“멧돼지 집중 포획으로 안전을 위해 외출을 자제해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세종시청.” 재난 문자에 익숙해져 가던 2020년의 어느 날, 휴대폰 화면 위로 또 다른 재난 문자가 도착했다. 이미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세종의 한 아파트 단지를 질주하는 멧돼지 떼 영상이 화제였다. 인간과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고 도시로 침범해 들어온 멧돼지 소식에 당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멧돼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들이 당혹스러울 터. 몇 년 새 자신들의 터전이 ‘휴먼’ 35만(세종시 인구는 35만 명이다)을 위한 도시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아직 세종시는 멧돼지와 공생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는지 매년 멧돼지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19년에는 400마리가량을 포획했다는데, 동물원, 사육장, 도축장, 실험실이 아닌 도시 내에 이들이 거주할 만한 곳이 있을까.
주폴리스
자연 대 문화, 야생 대 도시, 비인간 대 인간이라는 이분법은 오랜 믿음이다. 그러나 어디에서 도시가 끝나고 야생이 시작되는 것일까? 자연과 문화의 분리는 과연 여섯 번째 대멸종 앞에서 유효한가? 일찍이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지구의 절반을 보호 구역으로 떼어놓자고 제안한 바 있으나, 최근에는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하는 ‘비인간으로의 전환(nonhuman turn)’2이 진행 중이다. 조경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영역 간 하이브리드뿐 아니라 생물종에 있어서도 혼종성 개념을 적용하며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꿈꾼다. 주폴리스(zoopolis), 공동서식지(cohabit), 공동창조(co-creating)와 같은 용어가 그 사례다. 그렇다면 자연과 문화를 단절하지 않는 문화는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자연과 문화는 물질적 통합과 영적 화해를 이룰 수 있을까?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을 모색한 공모전 ‘생물체 설계공모(LA+ Creature Design Ideas Competition)’를 통해 힌트를 얻어 보자.
공모 개요
‘생물체 설계공모’는 저널 『LA+』가 주최한 공모전이다. 새로운 섬 속 유토피아를 그렸던 2017년의 ‘새로운 섬 설계공모(LA+ Imagination Design Ideas Competition)’, 뉴욕 센트럴 파크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오픈스페이스를 구축했던 2018년의 ‘센트럴 파크 우상 타파 설계공모(LA+ Iconoclast International Design Ideas Competition)’를 잇는 세 번째 판이다. 이번에는 ‘생물체creature’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인간이 도시 속에서 동물과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 우리의 도시, 경관, 그리고 마음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물었다. 참가자에게 요청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인간이 아닌 생물체를 의뢰인으로 선택하고 그의 요구 사항을 규정할 것. 둘째, 의뢰인의 삶을 개선하는 장소, 구조, 사물, 체계, 또는 과정을 설계할 것. 셋째, 설계를 통해 의뢰인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공감을 향상시킬 것.…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김정화는 근현대 정원과 공원에서 일어난 식물, 아이디어, 제도의 국제적 교류를 연구하며 조경학을 가르치고 있다.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의 일원이며, 2021년부터 막스플랑크예술사연구소(Kunsthistorisches Institut in Florenz.Max Planck Institut)의 4A_Lab에서 연구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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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화해의 숲 조성사업 국제설계공모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대전시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수천 명의 민간인이 학살을 당했다. 이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2020년 9월, 행정안전부와 대전시 동구는 골령골에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 시설을 마련하는 ‘진실과 화해의 숲 조성사업 국제설계공모’를 개최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를 기리고 유족을 위로하는 국민적 화해의 상징물로 역사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공모의 목표였다. 참가자들은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념관을 설계하고, 대상지의 독특한 장소적 조건을 활용하면서 추모, 교육, 전시, 교류, 휴식 등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위한 열린 공원을 계획해야 했다. 또한 전국에서 발굴된 2,505구의 유해뿐만 아니라 추가 발굴될 유해를 공원에 안치해야 하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2020년 9월 1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총 42개국 109팀이 참가했다. 심사는 2단계로 진행됐다. 심사위원회는 12월 3일부터 10일까지 1차 심사를 통해 10개 작품을 선정하고, 12월 15일(기술심사)과 12월 17일(본심사) 진행된 2차 심사를 통해 결선 진출작의 순위를 가려냈다. 그 결과 당선작은 설계회사SGHS의 ‘환유적 병렬구조’에게 돌아갔다. 당선작은 비극의 현장과 연결된 공간들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지형을 따라 추모 공간을 배열하고 주변 숲을 확장하고 연결해 방문객들이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을 제시했다.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사건과 희생자들의 역사적 기억을 숲의 공원으로 표현해 주목을 받았다는 평이다. 당선팀은 2022년까지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마치고, 2024년까지 건축 공사를 마치게 된다. 아울러 2022년까지 부지 내 유해 매장 추정지에 대한 발굴 작업이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중략)
당선작
환유적 병렬구조
설계회사
2등작
침묵의 시선
카타콩브+사파리건축사사무소
3등작
나빌레라
아텔리어 남
4등작
기념물로서의 나무
MHK 아르히텍턴
4등작
그 다리
돔아키텍츠
4등작
진실과 화해의 숲의 여름
스튜디오 아이랜더
주최 대전시 동구
위치 대전시 동구 낭월동 12-2 일원
면적98,601m2(건축 연면적: 3,805m2)
공사비259억원(건축/토목/조경 및 부가세 포함)
설계비6억3천2백만원(건축 기본, 실시설계/조경 기본설계 및 부가세 포함)
설계기간 설계용역 계약 체결 후 약 12개월
방식 공개 공모
시상내역
당선작(1점): 건축의 기본설계, 실시설계 및 조경의 기본설계 계약
2등작(1점): 1,500만원
3등작(1점): 1,000만원
4등작(3점): 500만원
심사위원
찰스 왈드하임(Charles Waldheim, 찰스 왈드하임 오피스 대표)
기시 와로(Kishi Waro, 교토 대학교 교수)
프란시스코 사닌(Francisco Sanin, 시러큐스 대학교 교수)
안드레아스 프리스(Andreas Fries, 헤르조그 앤 드뫼롱 파트너)
이성관(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 대표)
정재헌(경희대학교 교수)
최이규(계명대학교 교수)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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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화해의 숲 국제설계공모] 환유적 병렬 구조
당선작
비극적 사건과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숲의 공원을 만들고자 한다. 구체적 정보를 제시해 역사의 어두운 면을 기억하고 반성하도록 강요하기보다, 비극적 현장과 관련된 영역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공원이라는 장소를 통해 자유롭고도 경건한 추모 활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사색적 분위기의 산책로는 관람객 개개인의 기억을 서서히불러일으키고, 이 기억들은 대상지에 얽힌 과거와 연결될 것이다.
추모 공간을 자연 지형, 숲, 개울, 발굴지와 연계해 다양한 방식으로 병치하고, 관람객들이 대상지의 역사에 소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공간을 마련한다. 기념관, 다리, 파빌리온 등 선형 건축물들은 대상지의 윤곽을 따라 서로 연결되어 배치되고, 역사적 의미와 기억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하나의 숲을 정의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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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화해의 숲 국제설계공모] 침묵의 시선
2등작
가장 긴 무덤
골령골 학살은 한국 근대사의 비극적 사건 중 하나다. 7,0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오랜 세월 간과되다 70년 만에 유해 발굴이 시작됐다. 길이 1km에 달하는 이 거대한 매장지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린다. 고통스러운 역사를 소환하기 위해 ‘가장 긴 무덤’을 설계 콘셉트로 삼고 그 개념을 형태학적으로 해석했다.
역사적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공원을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눠 듣기, 느끼기, 보기, 만지기 등의 감각적 추모 방식을 각 구역에 적용한다. 발굴 현장과 대조를 이루는 건축물을 설계해 관람객들이 과거를 효과적으로 상기할 수 있게 유도한다. 대상지가 추모 공원인 동시에 시민에게 열린 공원이 되도록, 사람들에게 애도의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면서 일상에 친숙하게 다가가는 공원을 계획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