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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재난 완충 지대, 공원의 가치
    ‘포스트코로나, 생활권녹지체계·바람길 등 주목’(「라펜트」 2020년 5월 13일), ‘집콕에 오픈 공간 중요’(「서울경제」 2020년 6월 3일), ‘공원과 녹지에 대한 접근이 정신 건강에 중요한 이유’(Inner Self). 분야를 막론하고 대도시의 대표적 오픈스페이스인 공원이 팬데믹 극복을 위한 도시 공간적 디자인 해법임을 주장하고 있다. 근거가 없다고 볼 수도 없다. 구글이 매일 업데이트하는 ‘코로나19 지역사회 이동성 보고서(COVID-19 Community Mobility Report)’에 따르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2020년 3월 22일부터 기준치 대비 공원 이용이 꾸준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계절적, 정책적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거주지나 기타 여가 시설에 비해 공원 이용률이 예전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최근 국내외 사례를 통해서도 도시공원이 팬데믹 사태에 지친 도시민의 많은 기대와 신뢰를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원, 공중 보건의 최전방 공원과 팬데믹의 실증적 인과 관계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코로나19와 공원 간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기보다, 공원에 연관된 신체적·환경적 조건―비만율, 어린이 건강, 미세 먼지 등―이 전염병과 인과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팬데믹 상황에서 공원의 실질적 가치에 대한 물음을 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구글 자료와 같이 우리가 전염병에서 벗어나고자 공원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다. 역사를 거슬러 보면 도시공원의 확산은 공중 보건 및 위생의 발전과 한 궤에 놓여 있었다. 공중 보건과 도시 경관의 형성을 연구한 조경가 사라 J.칼에 따르면, 19세기 전후 병원균으로 인한 도시 질병 확산의 설계적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인구 밀도를 완화하고 공기를 여과하는 ‘도시의 허파로서 공원’ 개념이었다.1 거리 위생을 위한 도시 인프라스트럭처 및 행정 시스템이 이제 막 자리잡던 시기에, 전염병의 확산은 악취와 오염물의 온상인 과밀된 노동자 거주지와 연관되었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특히 인구 과밀, 도시 위생, 공중 보건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도시공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교외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일반 도시 노동자의 보건 복지 차원에서 도시공원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근현대 조경을 연구하며 이와 관련된 번역과 집필 활동을 겸하고 있다.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코로나 시대의 생활권 도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논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코로나19가 잦아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검사(testing), 추적(tracing), 치료(treatment)를 중심으로 하는 3T 방역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없다면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공존에 필요한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도시의 재구성이다. 코로나 시대의 도시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코로나19 발생 이후 나타난 변화에서 도시 재구성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다행인 것은 바이러스가 ‘강요’하는 도시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도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선진국에서 도시의 지속 가능성과 공동체 존속을 위해 추진해 온 생활권 도시, 즉 보행이나 자전거만으로 일, 주거, 상업 공간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도시가 요구된다. 동네 중심의 일상 생활권 도시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원거리 이동의 제한이다. 실제로 원거리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일상이 변했다. 시간을 많이 보내는 장소가 오프라인 공간, 일터, 여행지에서 온라인, 집, 동네로 바뀌었다. 비대면의 필요성과 선호는 자연스럽게 온택트ontact(온라인을 통한 외부와의 연결)를 늘렸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외출을 자제하면서 홈택트hometact(집에서 보내는 시간과 가족과의 접촉)가 증가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로컬택트localtact(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한 여가 생활과 관계 형성)다. 방역을 지역 단위에서 수행하면서 지역 정부와 주민 간 접촉이 늘어났다. 멀리 갈 수 없으니 사는 동네에서 쇼핑과 여가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언론은 온택트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지만, 실생활에서는 홈택트와 로컬택트도 온택트만큼 활발해졌다. 온택트, 홈택트, 로컬택트의 동시적 부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모종린은 미국 코넬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조교수를 역임하고 1996년부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경제발전론과 세계화이며, 2008년부터 대학 격차, 외국인 투자, 영어 교육, 이민, 지역 발전 등을 주제로 한국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 제고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해 왔다. 저서로는 『한국발전론: 정치경제 불균형 극복의 동학』(2013), 『작은 도시 큰 기업』(2014), 『라이프스타일 도시』(2016), 『골목길 자본론』(2017) 등이 있다.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미래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코로나19의 영향력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분야 중 하나는 문화·예술이 아닐까 싶다. 21세기 들어 초연결성을 통해 비약적으로 확장한 현대미술 시장이 코로나19로 인한 이동 및 소통의 제한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온갖 아트 페어와 수십, 수백의 갤러리가 문을 닫고 미래를 기약했다.1 미술관, 극장, 영화관, 콘서트홀 같은 장소는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예술이 관객에게 선보여지는, 즉 비로소 존재가 완성되는 지점이다. 코로나19는 이런 예술의 마지막 단계의 필수 요소인 관객을 사라지게 만들었고,2 따라서 문화·예술계가 이미 오랫동안 안고 있던 생존의 문제가 한 차원 심화되었다. 함께 뉴욕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동기 상당수가 졸업 직후 지구촌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지만, 지금만큼 분리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없었다. 수십 년간 수백, 수천 명의 예술가와 문화기획자, 큐레이터, (어딘가 누군가의) 어시스턴트, 비평가와 예술 애호가가 만들어낸 미술 시장이 정말 한 번에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미술 시장을 미술계와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혹자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예술과 일상의 벽이 상당 부분 허물어지고 예술의 형식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예술은 여전히 일상과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철학자 칸트는 이 부분에 대해 미적 쾌를 앞세우며 예술의 목적을 존재 그 자체에 두기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많은 것들이 예술의 근본에 녹아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공중 보건과 복지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점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현재, 인간 삶의 연장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여겨지는 분야에는 명분이 요구된다. 즉 예술은 쾌의 향유를 넘어 끝까지―인류의 끝까지― 가치와 목적을 고민해야만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문경원·전준호, 뉴스 프롬 노웨어 2012년 처음 발표되었을 때보다 현재 더 크게 다가오는 작품이 있다. 문경원과 전준호의 작업,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다. 19세기 말에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쓴 동명의 단편 소설을 오마주하고, 모리스의 소설이 지니고 있었던 목적을 재현한다. 하나의 완결적인 작품이 아닌, 확장 가능한 근미래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을 이어가는 장기 프로젝트이자, 미래에 대한 집단적collective 고민을 통해 현재를 반성한다. 아이디어와 생각의 공유에 그치지 않고, 홈페이지, 온라인 뉴스레터, 출판, 영상 등 다양한 형태가 결과물로 등장한다...(중략) 각주 정리 1. Andrew Dickson, “Bye bye, blockbusters: can the art world adapt to Covid-19?”, The Guardian 2020. 4. 20. 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20/apr/20/art-world coronavirus-pandemic-online-artists-galleries. 2. 박리디아, “코로나19에 빼앗긴 관객과 다시 만나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0년 5월 4일.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근현대 조경을 연구하며 이와 관련된 번역과 집필 활동을 겸하고 있다.
  • 3기 신도시 기본구상 및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국제공모 고양창릉, 부천대장 지구
    지난 8월 3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3기 신도시 기본구상 및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국제공모’ 고양창릉, 부천대장 지구의 당선작을 발표했다. 이로써 3기 신도시 5개 지구(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의 밑그림이 완성됐다. 이번 공모는 ‘더불어 발전하는 공존과 상생의 공생 도시’를 주제로 신도시의 공간 구조에 대한 아이디어와 입체적 도시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요구했다. 친환경, 교통 친화, 친육아, 풍부한 일자리를 갖춘 미래상에 부합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주요 골자다. 기존의 평면적 계획 방식과 달리 지구 내 특화 구역을 설정하고, 이에 대한 입체적 도시 공간 계획을 수립한 점이 특징적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기 위해 국제공모로 시행했으며, 약 1,500세대 규모의 ‘첫마을 시범사업 계획’을 계획안에 포함시켰다.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팀에게는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용역’ 및 ‘첫마을 시범단지 설계 용역’의 우선 협상권을 부여한다. 또한 팀 내부인 중 1인은 총괄계획가 지위를 부여받아 지구계획 수립 시 도시, 환경 등 다른 분야의 총괄계획가와 함께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고양창릉 지구는 서울 바로 옆 GTX_A가 지나는 자리에 위치하며, 약 330만m2의 면적이 6곳의 권역별 중앙공원 등 다양한 형태의 공원과 녹지로 조성된다. 특히 30기계화보병사단이 있던 부지는 서울숲 2배 규모의 도시숲으로 조성되며, 지구 중심을 관통하는 창릉천을 정비해 호수 공원을 함께 조성할 예정이다. 부천대장 지구는 김포공항 바로 아래에 자리한다. 신사업을 유치한 자족 용지와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산업 여가 복합 도시를 목표로 한다. 문화, 생태 등을 주제로 한 4개의 테마 공원을 조성하고, 공원 내부에 복합 문화 센터를 배치해야 한다. 굴포천에는 캠핑장, 야외 공연장 등을 포함한 22만m2 규모의 수변 공원이 조성된다...(중략) 고양창릉 지구 최우수작 포용적 연결도시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 일로종합건축사사무소 + 수퍼매스 스튜디오(Supermass Studio) 부천대장 지구 최우수작 오픈 필드 시티Open Fields City 디에이그룹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 + KCAP 아키텍츠 앤드 플래너스(KCAP Architects&Planners) 주관LH 대상지 고양창릉: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창릉동 일대 부천대장: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 일대 면적 고양창릉: 8,130,000m2 부천대장: 3,430,000m2 방식 공개공모 시상내역 최우수작(각 1점): 각 지구별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수립 용역 및 첫마을 시범단지 설계용역 우선 협상권 /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용역비 23억원(고양창릉), 13억원(부천대장) / 첫마을 시범단지 설계 용역비 59억원(고양창릉, 부천대장) 우수작(각 1점): 1억원 장려작(각 2점 이하): 7천만원 심사위원 이상대(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도시) 한효덕(LH토지주택대학교, 도시) 김현수(고양창릉 지구, 단국대학교, 도시) 이제선(부천대장 지구, 연세대학교, 도시) 이규인(아주대학교, 건축) 유석연(서울시립대학교, 건축) 오승훈(경기대학교, 교통) 성종상(서울대학교, 조경) 박인권(예비심사위원, 서울대학교, 도시)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 [3기 신도시 기본구상 및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국제공모] 포용적 연결도시
    신도시에 접근하는 방식 2011년 한국의 도시화율이 90%에 달했다. 그간 우리는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녹지를 훼손하고 바다를 매립해왔다. 계속해서 이 같은 자연 파괴를 불가피한 선택, 필요악으로 여겨야 할까. 신도시의 목표와 조성 방식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뉴노멀을 맞이해 삶의 방식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이제까지 도시 생활의 범주는 밀집-실재-접촉이었고, 신도시는 확산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조성되었다. 뉴노멀을 맞이해 우리는 분산-가상-선택의 도시 생활에 적합하도록 공간을 교차적, 병행적으로활용해야 한다. 다양성, 선택 지속성, 재생의 관점으로 도시를 고민하고자 한다. 도시와 네트워킹하는 도시, 연접 지역과의 상생 대부분의 신도시는 빈 땅에 홀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가용지의 부족 때문에 앞으로의 신도시는 기존 도시 사이에 건설될 것이다. 고양창릉 지구는 택지 개발 지구, 기존 도심의 취락지와 녹지, 세계 문화유산과 접해 있다. 경계부의 선형 자체가 매우 불규칙해 ‘끼인 도시’의 형상을 띤다. 이처럼 파편화된 도시, 마을, 문화재 사이에서 때로는 중심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주변에 흡수되는, 인근 지역과 상호 작용하며 도시 내부의 분산된 거점들을 연결하는 ‘도시와 네트워킹하는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 일로종합건축사사무소 + Supermass Studio / 2020년10월 / 390
  • [3기 신도시 기본구상 및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국제공모] 오픈 필드 시티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평야와 대지를 풍요롭게 하는 하천이 흐르는 부천대장 지구에 원지형의 생태적 특성인 물을 머금은 도시를 제안한다. 인접 도시와의 접점에 자연과 들판의 풍경을 담고, 기존 도심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 자연과 삶, 놀이, 일이 공존하는 공생의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 고립된 들판에서 활기찬 도시로 부천대장 지구는 인천계양 지구, 서울, 부천 원도심의 중앙에 위치하지만 봉오대로, 벌말로에 의해 고립되어 있다. 미래를 위해 남겨둔 이 땅에 주변 지역과 소통하고 땅이 가진 생태적 가치를 존중하는 계획안을 수립해 차별화된 풍경을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여섯 가지 과제를 설정했다. 첫째, 열린 도시를 만든다. 주변 도시와 함께 성장하도록 교통과 산업의 중심이 되는 도시를 계획한다. 둘째, 보행자 중심의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든다. 1일 생활권을 형성하는 건강하고 활기찬 도시를 목표로 한다. 셋째, 주거, 녹지, 교육, 업무 등 다양한 용도가 복합되어 자족 기능을 갖춘 용도 복합 도시를 만든다. 넷째, 기반 시설을 지하화하고 첨단 기술을 도입해 미래를 위한 도시를 만든다. 다섯째, 기존의 물길과 땅의 패턴을 이용해 자연에 순응하는 생태 도시를 만든다. 여섯째, 도시의 접점을 고려한 스카이라인과 랜드마크를 계획해 다양한 풍경을 연출하는 경관 도시를 만든다. 입체적 도시 공간 토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평면적 도시계획에서 탈피해 입체적 용도 복합을 꾀한다. 생활권 중심에 위치한 용도 복합 밴드는 직주 근접을 실현해 도심 공동화를 방지하고, 생활SOC가 결합된 주상 복합은 소생활권 커뮤니티의 중심이 된다. 복합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에듀 카페트는 지역 사회가 소통하는 교류의 장이자 미래 확장 가능성을 가진 포용적 공간이 된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 디에이그룹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 + KCAP / 2020년10월 / 390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파라메트릭 플랜팅 I
    수련 나는 식재(planting)를 디자인 교육으로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말 웃긴 일, 지독하게 웃긴 일이야. 몇 년 전 사무실을 시작하고 태경이에게 처음 배웠다. 뭐 사실 배운 건 아니지. 그가 가르쳐준 적은 없으니까. 어깨너머로 배우고 렌더링해주면서 배우고(그림 1), 매일 아침 아이스 라테를 책상 위에 준비해놔야 했어. 주말에는 청계산을 등반해 폭포수를 맞으며 학명을 암기하곤 했지. 정말 웃긴 일이야,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과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지독하게 슬픈 사실이지. 인과의 측면에서 이보다 선행된 원인을 굳이 밝히자면,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겠냐 만은, 수련 생활을 시작하기 전 실수로 배운 포레스트 팩(Forest Pack)이 결정적 빌미를 제공하고 만 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 내일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는. 사실 지나고 보면 단 하루도 예측할 수 없었던 건데, 사람의 뇌라는 게 늘 편향된 착각을 만드니까. 교육받은 습관에 따라 논리적인 미래를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기대가 어김없이 무너지지. 그래도 뭐 또 괜찮아지잖아. 무려 망각의 동물이니까. 정말 그럴듯한 핑계지. 어제까지만 해도 논리를 말하다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망각이라니. 핑계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만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인 거야. 굳이 아이스 라테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 실수 그래서 실수를 하고 만 거야. 하지만 실수를 하려고 실수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실수는 원하지 않은 미래의 다른 표현일 뿐이야. 포레스트 팩을 배우기로 결심한 건 단지 유치한 영웅 심리였어. 당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 그러니까 나중에 잘난 척을 실컷 할 수 있겠다 싶었지. 충분하지 않아? 사람들은 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잖아. 그 외의 복잡한 얘기는 다 거짓말이야. 사람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 미래가 청계산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서로의 이해관계가, 각자의 호승심이, 어제의 바람과 오늘의 썩은 사과가 교차된 미래를 만든 것뿐이야. 통제할 수 없지. 바꿀 수도 없고. 식재를 렌더링 플러그인에서 시작해 배울 줄 누가 알았겠어. 그렇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았어. 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태경이도 여전하지. 모두가 환상과 망각 사이에서 전전긍긍할 뿐이지. 그렇지만 얘기해야 할 거야, 포레스트 팩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고 도망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럴 수 있다면 마음을 왜 먹겠어. 잘 안 되는 거겠지. 얘기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결핍에 오갈 데가 없겠지. 다 털어놔야겠어. 망설인다고 누가 이해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 맥스 생태계 포레스트 팩(그림 2, 3)이 뭐 그렇다고 대단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영역이라고 봐야 돼. 건축 프로그램이 아니거든. 뭐 그렇다고 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말해온 브이레이나 루미온 같은 것들과는 분명히 결이 다르지. 나도 여기서부터 조금 너무 나갔다는 느낌이 들긴 했어. 그런데 나란 인간은 어쩔 수 없어. 그만큼의 결핍이 무언가의 과장으로 이어진 걸 테니까. 인과율이지. 그래서 왜 또 이렇게 질질 끌고 있는 거냐면 3ds맥스 시장의 맥락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야. 나는 이제 맥락의 노예가 되고 말았어. 설계 교육의 부작용이지. 맥락이 없으면 아마 치킨도 먹을 수 없을 거야. 건축계가 캐드, 스케치업, 라이노, 브이레이와 루미온, 그래스호퍼, 레빗 등의 미디어와 함께 발전해왔다면, 3ds맥스와 마야Maya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CG 영화의 세계에 있었어.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미디어를 상대해왔지. 건축에서는 어디까지나 중간 과정으로, 맥스의 세계에서는 최종 결과물로 말이지. 그리고 이 차이가 완전히 다른 시장 구조와 프로그램의 개발 방향을 만들어온 거야. 단적으로 건축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그렇게 진지할 필요가 없었어. 요즘에는 좀 달라지고 있긴 하지만, 복합 학문이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인문학과 시공 결과물 사이에 어색하게 껴 있었지. 하지만 맥스의 세계에서는 컴퓨터 그 자체가 전부잖아?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이 최종 판매 제품이라고. 따라서 처음부터 제대로 프로그램 교육을 받지. 아마추어를 위한 프로그램은 필요가 없어. 개발자들이 대중적인 플랫폼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극단적인 전문성만 추구하면 돼. 그래서 어렵지, 복잡하고. 소위 말해 프로페셔널 생태계만 존재하는 거야...(중략) *환경과조경390호(2020년 10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공간잇기] 묵묵히 한곳을 지켜온 사람들
    그는 늘 용산에 있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각종 전자 제품의 부품 도급을 맡고 있는 박종승 사장은 적산 가옥이 즐비한 1960년대 용산 만초천 근방 골목의 어느 집에서 태어났다. 동네 형들을 따라 만초천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희미한 기억에서 시작되는 그의 추억은 늘 용산에 머물러 있다. 개구쟁이 유년 시절과 말썽쟁이 학창 시절을 거쳐 첫사랑, 첫 사업, 신혼집, 첫 아들 모두 용산과 함께했다. “용산에서의 기억 중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질문을 받자 그의 입가에 천진한 미소가 번진다. “있고말고요. 아주 많죠. 제 인생은 용산전자상가 터가 변해온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처럼 옅어진 기억이라도 또렷이 떠오르는 게 있다. 지금의 용산전자상가 자리에 만초천이 흐르고 바로 옆에 청과물 시장이 있었을 때,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장보러 다닌 게 어린 시절 기억의 시작이다. 김장철이면 배추를 몇백 포기씩 사다 이웃 아주머니들과 친척 어른들이 골목길에 자리잡고 모여 온 동네가 며칠 동안 시끌벅적했다. 그는 골목과 청과물시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심부름을 했다. 어느 이웃집 아주머니 앞에 서건 입을 아, 하고 벌리면 육즙이 좌르르 흐르는 삶은 돼지고기를 싼 갓 만든 겉절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심부름값으로 최고였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생 최고의 맛으로 남아 있다. 용산은 조선 시대부터 전국의 물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서울의 주요 관문이었다. 일제 식민지기에는 일본인 거류지로 쓰여 적산 가옥이 많이 들어섰다. 용산전자상가 앞 한강을 향해 곧게 뻗은 도로에 있던 만초천은 지형을 따라 용산나루로 굽이굽이 흐르며 한반도와 만주를 연결하는 물류의 출발지로 역할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청과물시장은 전국에서 올라온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준비를 위한 도시정비계획의 일환으로 청과물 시장은 1983년 송파구 가락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1987년,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옮겨 빈 자리에 당시로선 신산업인 컴퓨터와 각종 전자 제품을 취급하는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섰다. 1990년대의 메카, 용산전자상가 1990년대 전자 산업 유통의 중심지 용산전자상가는 크게 나진상가, 선인상가, 원효상가, 전자랜드, 터미널상가(현 서울드래곤시티 호텔)로 구분된다. 현재 약 21만m2의 부지에 4,000여개 점포가 있는 국내 최대의 전자상가다.1 조성 초기인 198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 최고의 전자상가로 불렸으며, 이후 조립형 컴퓨터, 게임, 조명, 음향, 영상, 전자 제품 관련 각종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망라하는 도소매 및 유통 관련 업종이 30여 년 간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가전 및 전자 제품 업종의 중심은 세운상가와 청계천변 상가였다. 1980년대 후반, 신산업으로 떠오른 퍼스널 컴퓨터PC에 관심이 많고 컴퓨터 조립 기술을 습득한 젊은 상인들, 전산원 같은 전문 교육 기관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배운 청년들이 새로운 기회의 땅 용산에 둥지를 틀었다. 최고 전성기였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소위 잘 나가던 용산전자상가는 조립 PC와 부품을 사려는 사람들과 새 전자 제품을 구매하려는 얼리어답터들의 핫 플레이스였다. 그러나 발 디딜 틈 없던 호황기에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일부 상인들이 나타났고, 용팔이(용산+팔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기며 부정적 인식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는 용산전자상가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어 다수의 성실한 상인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잘못 걸리면 바가지 쓴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듣고 필자도 컴퓨터 좀 만질 줄 안다는 선배들과 팀을 이뤄 용산전자상가에 갔던 기억이 난다. 고품질의 다양한 전자 제품을 성능과 가격을 비교하며 살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았기에, 제품 비교 전시장으로 손색없는 용산전자상가에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늘 번영할 것 같던 용산전자상가는 2000년대 후반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전자 산업의 생태계를 따라가지 못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하나둘 빈 점포가 늘어났다. 젊고 패기 넘치던 청년 상인들은 어느덧 머리 희끗한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산업으로의 구조 전환에 성공하지 못해 쇠퇴한 용산전자상가를 다시 일으키려는 노력이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토박이 상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 [북 스케이프] 정원도시 에도
    이달에 있을 공원 아카이브 전시 자료를 뒤지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다.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로 곳곳에서 나오는 남산공원 자료 중 선인장 조형물 하나가 연구진의 흥미를 끈다. 남산식물원 조성 초기 거대한 선인장 조형물이 입구를 장식했는데, 상세한 도면과 지침까지 발견된 것이다. 남산식물원에는 유독 선인장이 많았는데 식물원의 철학보다는 기증자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1971년 재일교포 김용진은 자신이 수집한 208종 1만7,800본의 선인장과 분재, 철쭉 등을 기증했고, 이는 그대로 남산식물원 2~4호관의 컬렉션이 되었다.1 그런데 왜 선인장이었을까? 김용진이 선인장을 수집하던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의 일본, 이른바 전후 쇼와 시대에 선인장이 크게 유행했다. 원예업자 와타나베 에이지(渡邊英次)가 접목 선인장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래, 선인장은 일본의 주력 원예 산업으로 발달했다. 한국은 1970년대 접목 선인장을 도입했고 이어 1980년대 세계 1위의 선인장 재배 국가가 되었다.2 남산식물원의 선인장 컬렉션, 그리고 집에 있던 『월간 원예』에 자주 등장하던 알록달록한 선인장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쇼와 시대의 선인장 유행이 전후 부흥기 사람들의 변덕이려니 생각했다. 독특하고 희귀한 것을 수집해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은 보편적인 욕망이니 말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선인장은 꽤 오래전 일본에 전파되었다. 선인장은 일본어로 ‘사보텐(サボテン)’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누’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사방(sabao)’에서 유래한다. 에도 초기의 철학자이자 식물학자인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의 책 『야마토 혼조(大和本草)』(1709)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기름때를 잘 씻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에도 시대에는 『본초강목本草綱目』을 토대로 한 『야마토 혼조』 외에도 여러 이론서가 출판되었다. 식물 자체를 다루는 책뿐 아니라 정원과 명승지를 안내하는 도서도 있었다. 18세기 초의 에도(오늘날의 도쿄)는 동시대 런던과 파리를 능가하는 대도시였다. 또 정원이 많기로 유명했는데, 이 넓고 깊은 원예 취미와 정원 문화는 어떻게 형성된 걸까? 이나가키 히데히로稲垣栄洋의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3 ...(중략) 각주 정리 1. 방용식, “남산식물원 ‘역사로 남았다’”, 「시정일보」 2006년 10월 29일. 2. 박필만 외, “어서와! 선인장은 처음이지?”, 『RDA 인터레벵』 175호. 3.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 조홍민 역,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글항아리, 2017.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림빈 바이러스 감염 걱정 없이 뛰놀 수 있는 비대면 놀이터
    쓸쓸한 놀이터 풍경 접근 금지 테이프를 두른 미끄럼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그네, 적막에 휩싸인 놀이터는 이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쓸쓸한 풍경이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어린이가 아닐까. 답답함을 떨치기 위해 이따금 산이나 바다, 가까운 교외로 탈출을 감행할 수 있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집밖을 나서기 어려우니 말이다. 재택근무와 화상 미팅 등을 통해 온라인의 위대함을 체험했지만, 놀이터에서 또래와 함께 어울리며 신체 활동을 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경험을 대체하는 방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듯 하다. 림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놀이터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던 독일의 디자이너가 바이러스 걱정 없이 뛰놀 수 있는 놀이터 디자인을 제안했다. 예술가 마르틴 빈더(Martin Binder)와 심리학자 클라우디오 리멜레(Claudio Rimmele)가 설계한 비대면 놀이터 ‘림빈(Rimbin)’이다. 림빈은 경계를 뜻하는 단어 림rim과 무언가를 담는 통을 의미하는 빈bin의 합성어다. 경계가 있는 통과 같은 개별 플랫폼을 아이들에게 제공해 안전하게 놀이를 즐기면서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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