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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상조경 ; 독일옥상조경의 사례와 기법
    e-매거진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1996년06월 / 98
  • 배낭하나 달랑매고 즐거운 도시를 찾아서
    누군가의 말처럼 ‘미끈하게 잘생긴 도시’란 어떤 도시일까? 쭉쭉 도로가 나서 반듯한 두부모처럼 생긴 도시일까?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옛 도시의 모습을 담은 도시일까? 내가 봤던 수많은 도시들. 파리, 그라나다, 프라하, 니스....그러다 어느덧 내가 선호하는 도시형이 생기게 되었다. 과거가 존재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으며 따뜻한 사람들의 표정이 있은 도시. 물리적인 덩어리로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정답게 부디끼며 살아가는 도시가 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길지않은 시간속에 유럽을 다 봤다는건 유명한 곳에서 깃발꽂고 정복자의 모습처럼 찍은 사진수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터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좀 더 애정어린 눈길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34일간의 즐거웠던 여행은 내 기억속에서 잊어지지 않으리라 생각되며 많은 도움을 주었던 파리에 있는 친구들과 여행자들에게 감사하며 또 어디론가 떠나 것을 꿈꾸고 있다. ※ 키워드: 파라,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로마 ※ 페이지:132~135
    • / 1996년06월 / 98
  • 우리조경역사를 세계에 알리는 노력 기울여야
    한국의 조경학과가 설립된 것이 약20여년이 넘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곳에서 느꼈지만 서양인에게 소개된 동양의 조경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과 일본의 것들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며 우리 나라도 하루빨리 아름답고 모범이 될만한 조경작품과 우리의 조경역사를 세계에널리 알리는데 더욱 노력을 기울였으며 한다. ‘우물안 개구리’라는 옛말처럼 조경이라는 하나의 나무만을 볼 것이 아니라 숲을 볼 수 있는 우리 조경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키워드:유학준비,포트폴리오 ※ 페이지:136~139
    • / 1996년06월 / 98
  • 주경야독하는 조경인의 장 ; 진주산업대학교 야간 조경학과
    “밝음은 항상 어두운 곳에서 시작된다”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배움의 장. 어두운 밤을 밝히며 주경야독에 여념이 없는 조경인들이 있어 귀추가 주목이 되고 있다. 바로 . 산업체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을 재교육한다는 취지로 국립인 진주산업대학교에 개설돼 있는 이 학과는 지난 1980년 전문대학 조경과로 시작하여 1993년 4년제 조경학과로 승격하였으며 1994년 부터는 야간학부를 개설, 학부생과 편입생을 모집하여 지금까지 40여명의 야간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창밖으로 어둠이 찾아올 무렵, 수업이 시작되는데 직장에서의 피로가 채 풀리기도 전에 오직 배우고자 하는 일념하나로 수업에 몰두하는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은 11시경 수업이 끝날때까지 변할줄 모른다. ※ 페이지:146~147
    • / 1996년06월 / 98
  • 후쿠하라 가쿠엔캠퍼스 조경기본계획
    상상력이 풍부한 계획과 설계는 복합적인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조경설계를 보는 새로운 방식은 점증하는 경제적, 환경적 압력에 대처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부지 반응형 설계와 개발을 조화롭고 미적인 경관을 창조하고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기회하고 여긴다. 아울러 자연문화의 창조적 고양과 보존에 전념하며, 또한 작업이 다루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특정한 부지와 상황에 반응하는 조경설계는 대체로 분석의 과장이다. 우리는 광범위한 경제적, 문화적, 기능적 상호 관련성을 디자인 과제 속에서 평가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상호 관련성에 대한 신중한 연구와 이해가 디자인 개념을 형성하는데 필요하다. 평가 과정에서 행해지는 세심한 주목은 기능적 변수를 존중하면서도 창조적이게 할 수 있는 자유를 우리에게 부여해 준다. 공공 클라이언트와 상대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개별 시각의 보호에 대한 책임이 수반되며 동시에 종합적 건강과 안전, 복지를 위해 디자인해야 한다. 우리는 협동 정신과 프로페셔널리즘을 바탕으로 이러한 도전에 마주할 각오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곧 우리 디자인 철학의 하나이다. 이와 같은 목표를 위해 우리는 디자인 과정상의 참여자로 여타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훌륭한 디자인의 특별 보증서라고 믿고 있다. ※ 키워드:후쿠하라 가쿠엔캠퍼스,Koichi Kobayashi , ※ 페이지:156~163
    • / 1996년06월 / 98
  • 21세기 민족식물박물관으로 탈바꿈될 민통선(DMZ인접지역)
    비무장지역 일대는 한반도의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고 한반도 생태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허리이며 다양한 자연환경을 지닌 생태계보전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지역이다. 따라서 이 일대는 현재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더욱 중요성이 증가할 가능성을 지니는 곳인 만큼, 후손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지역이나마 반드시 현상태로 관리,보존해야 할 지역이다. ※ 키워드: DMZ인근지역, 민족식물박물관, 이은복 ※ 페이지:50~51
    • / 1996년06월 / 98
  • 광화문 ; 육조거리
    아!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웅대하도다. 그대의 모습이여! 지금으로부터 약50년전 옛날 그대가 왕국의 강대한 섭정 대원군의 물러섬 없는 강한 의지에 의해 왕궁을 지키라고 해서 남향의 좋은 장소에 그대의 터전을 닦았던 것이다. 이곳에 조선이 있다고 말할 듯이 수많은 건출물이 전면 좌우에 줄지어 서 있고 넓은 대로가 직선으로 뻗어있고, 한성을 지키는 숭례문과 멀리 서로 호응하며 북으로는 백악이 있고, 남으로는 남산을 바라보며 황문은 그 위엄있는 자리를 태연히 차지하고 있다. 이리하여 세 개의 궐문을 가운데서 뚫어 거대하고 견고한 화강석을 높이 구축하고 그 위에 전통을 잘 지키고 있는 광대한 중층의 건물이 솟아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문은 좌우로 균등하게 높은 벽을 쌓고 그 끝에 각루가 아름다운 자세를 갖추고 있다. 쳐다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연한 그 위엄있는 아름다움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 나라의 최대의 왕궁을 지키기에 족한 정문의 모습이다. 「사라져 가려는 한 조선건축을 위하여」중에서 야나기 무네요시 1922년 9월 게재 ※ 키워드: 광화문, 육조거리 ※ 페이지:96~97
    • / 1996년06월 / 98
  • 인공의 힘으로 자연의 가치가 돋보이는 섬 ; 외도해상농원
    위치: 경남 거제군 일운면 와현리 산 109번지 일대, 대지면적: 전체 145,002㎡(43,863.10평) 사용 2,735㎡(827.34평), 건축면적: 487.29㎡(147.40평), 조경면적:50,760.8㎡(기존 조경부분 제외) 서례.시공: 외도해상농원 직영 척박했던 외도가 지난해 4월 15일 외도해상공원으로 탈바꿈해 보든 사람에게 공개되기까지는 ‘외도 개발’의 한길을 걸어온 이창호(63),최호숙(61) 부부의 한결같은 자연사랑이 한몫했다. 부부의 각고의 노력끝에 일반에게 공개된지 1년이 조금 지난 현재 외도 해상농원은 주말에는 5천명, 평일에도 2천여명의 발길이 머무는 손색 없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문화휴양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 키워드: 외도해상농원, 경남 거제군 일운면 와현리 산 109번지 ※ 페이지: 52~56
    • / 1996년06월 / 98
  • 버스표 하나로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승방이 있는 동네 ; 성북구 보문동(탑골)
    내고향은 성북구 보문동 3가에 있는 탑골이라는 곳인데 탑골승방이라고도 불리우는 보문사가 있는 동네이다. 탑골이라는 지명은 탑이 있는 동네라는 뜻인데 고려 예종때(1115년) 보문사 창건과 더블어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탑은 아직도 사찰경내에 보존되고 있다. 탑골은 원래 행정구역상 이조말엽에는 한성부 숭인방에 속해 있었으나 한일합방 이후에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신설동으로 개명되었고 그후 인구증가게 따른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성북구 보문동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동대문으로부터 약 2㎞정도에 위치한 이곳 탑골도 6.25동란 이전까지는 다른 시골마음처럼 산과 계곡, 개울이 어우러진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였다. 마을뒤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따라 산등성이로 이어진 오솔길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노송과 잡목이 우거진 그 오솔길을 따라 고개 너머 있는 초등학교로 통학하고 있었다. ※ 키워드: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탑골) ※ 페이지:176~177
    • / 1996년06월 / 98
  • 월드컵유치외교전에 따른 우리구장 건설에 대한 제언
    6월1일. 필자의 글이 활자화됨과 동시에 2002년 월드컵 유치가 확정되는 날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월드컵 유치 유무를 떠나 국민 1만불시대를 맞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 시점에서 국제 경기에 임하는 우리의 준비자세에 대해 한번 짚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필자가 탈고를 하는 순간까지도 2002년 월드컵 한국유치를 놓고 우리는 일본과 치열한 득표전쟁을 벌이고 있다. 해외에서까지 활발한 득표활동을 벌이고 있는 정몽준 유치위원장, 오완건 축구협회 부회장, 집행위원의 노고에 성공적인 결실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일단 한국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실정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축구협회의 발표에 의하면 전국에 등록된 각급학교 선수가 약 1만여명 정도이며 전국에는 26개소의 연습장 규모의 잔디구장이 있을 뿐, 그 외 선수들은 맨땅에서 세계적인 스타의 꿈을 향해 몸을 다치면서 공을 차고 있는 실정이라니 이 사실을 선진국 축구장 비율에 10%도 되지 않는 부끄러운 실정이다. ※ 키워드:월드컵유치외교전, 축구장건설 ※ 페이지: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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