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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국립공원의 이용개발과 보전관리
    미국에 있어서는 국립공원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한 홍보 계도의 기능으로서 교육 유도적인 방법과 계도 강제적인 방법의 양면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두드러진 것은 교육 유도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주당 55시간 노동제가 실시되어 유급휴가제도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이용자는 연간 36만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0년 후인 1926년에는 231만여명으로 증가하였고, 1936년에는 120만여명, 1946년에는 2,170만여명 1966년에는 3,308만여명으로 격증하였다. 반면에 관리인의 숫자는 지난 1980년 1인당 5만명이던 탐방객수에 비해 1994년에는 9만 4천명에 이르러 20년 동안 최악의 상태에 도달했으며 각 공원마다 도로가 파손되고 쌓이는 쓰레기더미로 인해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 키워드: 국립공원, 해외, 미국, 보전 ※ 페이지 : 134 - 139
  • 자연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독일의 환경정책- 생물다양성 보존정책을 중심으로
    독일에는 현재 약 7백 50개의 상이한 소생활권형(Biotope) 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자연적 생활공간 내지는 생활공동체는 온천 암석 소택지 밀물때 물에 잠기는 모래톱 산림 고산지역과 같은 근본적으로 비교적 소면적이 있으며 이들은 물질오염을 통하여 침해되고 있다. ※ 키워드: 생태, 독일, 자연, 해외, 환경 ※ 페이지 : 140 - 147
  • 조경을 통한 체험은 일상사에 융해 - 조지 하그리브스와의 대담
    “우리의 조경과 80년대 나타난 많은 새로운 조경작품들이 공유하는 부분은 둘다 미니멀리스트, 또는 포스트-미니멀리스트적인 태도를 이어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저희의 다른점은 보다 악조건의 대지들을 기꺼이 상대했고, 보다 열린 설계, 열린 조경을 추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조경에서 항상 경관이 변화의 과정을 겪기 이전에 이미 그것이 장차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생각해 왔는데 이는 바로 시간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80년대에 이루어진 대부분의 조경들은 이러한 점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 키워드: 해외, 조지하그리브스 ※ 페이지 : 172 - 179
  • 제 5회 서울시 조경상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는 서울시 조경상 입상작이 확정 발표되었다. 서울시는 지난 9월 2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울시내 올해 조성된 조경작품들을 대상으로 공모 10월 12일 엄정한 심사를 거친 결과 금상에는 신정동 현대아파트, 은상에는 대법원청사 한국산업은행, 동상에는 미아교통광장 등촌동 동성아파트 한남동 삼성빌라가 선정되었다. 본지는 지면상 입상작 모두를 수용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금상과 은상에 한해 소개하고자 한다. ※ 키워드 : 수상작 ※ 페이지 : 148 - 153
  • 한국조경연합회 조경살리기 나섰다 - 조경살리기 한마음운동본부 결성으로 대대적인 모금운동
    올 한해 조경계와 관련한 가장 큰 이슈는 무엇보다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에 따른 특수면허폐지 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경계는 이 문제에 대해 전문과 종합이 내부적으로 몇차례 접촉을 가졌지만 결국 지난 9월 건교부에 각각 2가지 안을 제출 한몸 뚱아리 두 목소리의 흉한 모양새만 또 드러냈다. 11월 18일 현재 건설교통부의 최종안이 완성되어 국회건설교통분과의 심의를 앞둔 상태로 조경의 앞날을 어느 누구도 점칠 수 없는 분위기이다. ※ 키워드: 단체 ※ 페이지 : 126 - 127
  • 각 지역별 환경 및 조경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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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깥세상 들여다보기 - 나도 조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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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우수잡지 선정방법 및 심사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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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품에 안기듯 달려가고픈 곳 - 삶의 정을 포근하게 느꼈던 외금강 온정리
    연기자 박규채가 풀어 놓는 고향, 금강산에 대한 이야기. ※ 키워드: 금강산, 박규채 ※ 페이지 : 180 - 181
  • 공원녹지행정의 전문화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 탁병오 서울특별시 환경관리실장
    서울은 왕도이며 수도였다. 조선조 태조가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한양방어를 위해 1395년에 조선괄도에서 장정 20만명을 동원해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급히 쌓느라 부실한 곳이 많아서 세종 4년(1422년)에 고쳐 쌓았다. 이때 장방형 마름돌을 사용했으며, 그후 숙종 30년(1704년)에 정방형 돌을 깍아 다시 한번 크게 보수하였다. ※ 키워드: 전통 ※ 페이지 : 132 -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