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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건설시장 개방과 산업구조의 변화
    국내 건설시장은 1995년을 기점으로 외국 건설업체에게 개방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8년까지 건설공사부터 설계·엔지니어링, 건설감리에 이르기까지 건설산업의 모든 분야가 개방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국내 건설시장에 참여한 외국건설업체는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 이유는 IMF로 인해 우리 건설시장의 여건이 나빴기 때문이나 건설시장의 보수성과 지역성이라는 특성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설시공분야의 경우에는 외국 건설업체의 참여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대형 국책사업에 기술적 자문을 담당하는 축으로 참여하고 있거나 대형시설물의 설계·엔지니어링 시장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요컨대 외국 건설업체의 국내 건설시장 점유율은 건설시장 개방 당시에 예상했던 것보다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 키워드 : 건설, 산업 ※ 페이지 : 128 - 131
  • 현충사 성역화 사업
    1972년 6월 중순, 미국으로부터 영구 귀국하여 청와대 근무를 시작한 지 한달 정도 된 어느 토요일로 기억되는데, 오전 근무를 마치고 귀가했을 때의 일이다. 수년만에 서울에서 처음 맞는 여름이라 입을만한 반소매셔츠가 없어서, 동네 어귀의 상점에서 셔츠를 한두벌 구입하기 위해 옷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식구 중 한명이 다급하게 상점 안에 들어서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30분전쯤에 청와대에서 급하게 찾는 전화가 걸려와서 황급히 필자를 찾아 무작정 동네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 가게전화를 빌려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보니, 김정렴 당시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급히 찾으시니 신속히 들어오라고 하는게 아닌가. 타고 왔던 차는 돌려보낸 뒤라, 택시를 잡아타고 바로 청와대로 들어가 비서실장께 인사를 드리니, 이번에는 준비된 차에 바로 오르라고 하신다. 영문도 모른 채 청와대 제2호차에 오르고 나니, 비서실장 말씀이 지금 현충사 공사현장을 방문하는 길인데, 대통령께서 오비서관을 동행시키라고 하셔서 급히 연락을 취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정소영 경제 수석비서관과 윤주영 문화공보부 장관, 충남도지사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충청남도 아산군에 위치한 현충사 성역화 사업 공사현장을 처음으로 둘러보게 되었다. ※ 키워드: 근대조경, 조경사, 현중사, 야사 ※ 페이지 : 32 - 35
  • 나의 시와 야생화 ; 잊지 못할 제주 여행
    시인 송수권의 제주 여행기. 아래는 글의 일부. 내가 들꽃을 찾아나선 지는 오래 되었다. 최근의 인상적인 경험은 제주 한라산 용눈이 오름을 찾았을 때였다. 김순이 시인이 토종꽃으로만 뒤덮인 ‘용눈이 오름’이란 곳이 있다하여 찾아 간 곳이다. 그곳은 한라산의 4백여 오름중 유일하게 야생화로만 뒤덮인 오름이었다. 11월인데도 아직 지지 않은 풀꽃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난만하게 피어 있었다. 융단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김순이 시인은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가 아름답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런 바다를 배경으로 피어있는 꽃들은 아름다웠다. 나의 가슴은 꽃들의 색깔만큼이나 진하게 물들고 있었다. 물봉선, 물매화, 체꽃, 오랑캐, 구름무늬, 하늘메꽃……. 꽃이름만 묻고 다니기에도 한나절이 걸렸다. 분화구를 끼고 능선을 넘으면 그때마다 쪽빛바다가 눈시울을 적시고, 그 눈시울에서 삼삼한 꽃들이 하마 제 이름 기억 못할까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 키워드: 여행, 제주, 야생화 ※ 페이지 : 96 - 97
  • 프랑스의 ‘경관법’을 통해 본 경관보호법규,제도
    프랑스에서 1993년 신설된 속‘경관법’의 내용과 신설에 대한 영향 및 영역에 관해 논하기에 앞서 필자는 우선 법에 관한 연구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법’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은 본 학문에서 논하는 것이 아니기에 피하고, 일단 이러한 법에 관한 연구가 무엇을 위해 도움이 되는지 먼저 밝히고자 한다. 프랑스에서 얼마전 신설된 법에 관한 필자의 연구는 일본의 몇몇 잡지가 우리에게 보여준 구미의 디자인 사례처럼 금방 인용 및 모방할 수 있는 자료들은 아니다. 이는 일단 법이 실현될 수 있는 행정적인 환경이 우리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고 또한 조경업계 및 국토계획 분야의 상황 역시 우리와는 현실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법이든 신설 혹은 개정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 시행착오들이다. 예를 들어 모세 이전에 살인이나 절도행위 등이 없었다면 십계명이 나왔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행착오들을 가늠하면서 법이 생기게 된 사회적 배경 역시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함무라비 법전을 보고 나서야 간신히 바빌론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법의 역사를 보면 그와 관련된 당시의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법개정 및 법제도의 변천을 보면 당시를 살아가는 상황의 변화, 나아가 길게는 패러다임의 변화까지 가늠할 수 있다. ※ 키워드: 경관법, 해외, 법, 제도 ※ 페이지 : 56 - 63
  • 일제잔재 청산과 문화재조경 바로세우기
    새끼시인에서 문화재관리국 직원으로 1950년대 후반 진주사범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필자는 문학을 지망하는 새끼 시인이었다. 재학시 때때로 교지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고 역사의식에 대한 책들을 탐독하기도 했는데 당시 시인 설창수 선생이 주관하던 지방문예지인 에 필자의 시가 2회에 걸쳐 추천받기도 했다. 그러던 필자가 졸업후 문화재관리국에 발령을 받아 공무원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딛게된 것이 1963년 1월 25일이다. 문화재관리국은 문교부의 외국으로 1961년 10월 2일 처음신설, 우리나라 민족문화유산을 전담 관리하 는 중앙 행정기관이었다. 당시 문화재관리국 청사는 경복궁의 건춘문 안에 있었는데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쓰였던 집이라 주위는 온통 왜식 정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 키워드: 조경가 ※ 페이지 : 36 - 39
  • (주)신기 ; 재활용 지주대로 해외시장에 도전장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하여 만든 지주대가 세계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주)신기(대표 김인찬)가 자체기술로 개발, 제작에 성공한 엔지니어링플라스틱 소재의 지주대는 기존의 나무지주대나 일반 합성수지로 만든 지주대와는 달리 환경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산업폐기물과 재생비닐을 주원료로 하는 신소재 지주대로 100% 재활용이 가능한 이 제품은무엇보다 소재 자체의 뛰어난 강도와 내구성, 그리고 나무를 유연성있게 지탱시켜 주는 탄력성이 특징. 특히 간편한 조립만으로 누구든 쉽고 빠르게 시공할 수 있는 간편함은 식재공사시 비용절감에다 작업능률까지 배가시키는 강점이기도 하다. ※ 키워드: 업체 ※ 페이지 : 100 - 101
  • 조경기술사 시험의 출제경향
    조경기술사 시험은 지난 1월호에 소개된 바와 같이 필기시험(논술시험), 자격심사, 면접시험의 단계로 진행된다. 이중 올해의 필기시험은 60회(3월 5일), 61회(5월 28일), 62회(9월 17일) 3회에 걸쳐 시행될 예정이다. 기술인에게 최고의 영예인 기술사 특히, 조경기술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격요건, 필기시험, 면접시험 등 그야말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응시자들은 이미 시험자격요건을 확인하고 시험에 응시하기 때문에 자격연한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또한 면접시험도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2년간 자격이 유효하고, 지금까지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2년 안에 면접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 없다는 측면을 생각하면 어려운 관문은 아니다. 결국, 1차 필기시험이야말로 기술사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할 가장 힘들고 험난한 관문이 된다. 필기시험은 매교시 100분씩 4교시 400분에 걸쳐 치루어지는 시험시간만으로도 만만치않은 논술형 시험이다. 일반적으로 1교시는 용어정의나 단답형 방식으로, 2, 3, 4교시는 필수와 선택문제가 혼합된 논술형 문제 위주로 출제된다. 합격기준은 평균 60점이 기준이나 지난 1월호에 소개된 바와 같이 절대평가 기준으로서의 60점은 무의미하다. 즉, 회차별로 필기시험의 합격자가 2~10명 정도이고, 한 회의 응시자가 60~120명선임을 감안한다면 시험본 회차의 응시자중 적어도 5~10% 안에는 들어야 합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 키워드 _ 조경기술사, 시험경향, 출제경향, 조경기사 ※ 페이지 _ 144-145
  • 조경사에 발을 들여놓기 30년
    1950년대 후반부터 나는 전남대학교 임학과에서 삼림입지학과 양죽론 그리고 조경학 강좌를 담당하면서 대나무의 연구에 관여하고 있었다. 우리 대학이 있는 지방은 대나무의 고장이었기에 대나무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강좌에 ‘양죽론’이라는 강의를 새로이 설강할만큼 연구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조경」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상륙, 1973년에는 서울대학교와 영남대학교에 조경학과가 새로이 설치되었고 조경학회도 창립되어 내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고심끝에 나도 우리 대학에 조경학과를 설치하고 학문의 방향도 조경쪽으로 돌려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사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나무에 미쳐 일생동안 대나무와 함께 할 뜻을 굳히고 있었다. 대나무 연구에서 조경사 연구로 1962년 12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고온과 저온의 갑작스런 변화로 시작된 이상기후는 마침내 3·4월에 이르러 전국의 대나무숲(竹林)에 큰 피해를 주어 상당수의 대나무가 말라죽어 갔다. 나는 당시 현지 답사를 통해 같은 지역이라도 대나무가 얼어죽지 않은 곳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그 간접적인 피해 요인은 국소적인 지형조건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피해지역을 찾아 그 피해상태를 파악하는 한편 이에 대한증명을 위해 국소지형(局所地形)에 대한 최저기온을 측정하고, 내한성을 판단하기 위해 대나무의 환원당(還元糖)을 조사하기로 하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최저온도계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주문하여 많은 양을 주문 제작하였다. 그리하여 산지에 고도 5m마다 설치한 온도계와 광주 소방서의 화재 감시탑에 수직으로 2m 간격으로 설치해 놓은 온도계의 기온을 날마다 측정하였는데 그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 키워드 _ 정동오, 조경사 ※ 페이지 _ 34-37
  • 조경에 젊음을 바치고 ; 관악캠퍼스 마스터플랜의 수립
    1973년 3월초 청와대에서 관악산 조림계획을 수립하여 조속히 보고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다. 그 당시 미립목지가 많았고 토사의 유실을 막기 위해 사방공사를 한 곳도 있었다. 관악산 시설지역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호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웅장한 관악산 자체가 시설지역에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박대통령이 판단하고 조림계획을 지시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관악산의 시각구조에 대하여 분석한 결과, 순환도로에서 중복부까지를 시설지역의 배경으로 보고 조림대상지역으로 하였다. 조림계획의 중대성과 시기상으로 조급함을 느끼게된 나는 서둘러 현황조사에 착수하였다. 지형도와 카메라, 야장을 준비하여 미립목지의 범위를 지형도에 표시하고 현황을 사진에 담고 야장에는 토질을 기재하면서 중복부까지 구릉과 계곡을 답사하였다. 현지답사를 마치고 기간이 임박하여 관리과 안봉준 계장과 여관에 투숙하면서 며칠 밤을 새웠다. 또한 정확성을 더하기 위하여 관악산 항공사진과 지형도를 대조하면서 도면에 임반을 구획하고 번호를 부여하면서 면적을 산출하였다. 장래의 경관미와 시각미를 우선하고 계곡, 사면 등의 특성에 따라 적지 적수로 수종을 선정하였다. 상록수는 리기다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낙엽수는 주로 단풍나무, 자귀나무, 낙엽송 등의 20여종이 선정되었다. 상록수와 낙엽수의 비율은 산림환경의 안정을 위하여 7:3으로 계획하였다. 면적당 식재주수를 산출하고 조림계획보고서를 작성하였으며 조림계획의 타당성과 보완을 위하여 수원농과대학 이창복 교수, 심종섭 교수, 임경빈 교수를 초빙, 김도연 관리국장, 안봉준 계장이 참석한 가운데 설명회를 가졌다. 이 보고서를 근거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임반별로 조감도를 그리도록 하였다. 조감도를 그리는 화가와 같이 임반별로 대표적인 지역의 현황사진을 골격으로 삼고 조림한 수목이 성목이 된 상태의 색조로 조감도를 완성시켰다. 각 수종에 고유번호를 부여, 표시하여 조감도에 부착하고 일목요연하게 이해가 되도록 작성한 조감도의 사진을 찍어서 앨범 좌측은 현황사진, 우측은 조림 후 장차 성림이 된 상태와 비교가 되도록 임반별로 스크랩하여 청와대에 보고하였다. ※ 키워드 _ 서울대캠퍼스, 강우창, 마스터플랜, 1970년대 조경 ※ 페이지 _ 134-137
  • 첫번째 조경교육의 장, 서울대 환경대학원 그리고‘조경학 개론’ 발간
    이번호에는 우리나라에서 첫번째 조경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월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당시 청와대의 요청으로 귀국한 필자는 조경분야의 육성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다른 무엇보다도 교육제도가 가장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중장기 ‘국토개발’을 위하여 전문분야인 ‘조경’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시기였던 만큼 학문적으로 조경학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한 인력이 거의 전무했던 당시 상황에서는, 우선적으로 대학에 조경학과를 설립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학과를 설립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수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또는 농과대학 내에‘조경’전공학과를 신설하는 안, 서울대 행정대학원 내에 기존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외에 조경학과를 신설하는 안, 행정대학원의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를 분리하여 독립적인 대학원을 새로 설립하되,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와 나란히 조경학과를 설치하는 세가지 안을 검토한 끝에, 세번째 안을 추진하게 되었다. 건축, 임학, 원예, 도시계획, 토목 등 조경 인접 분야에 있는 인력 중에서 조경에 관심있는 인원들을 선발, 2년 과정의 교육을 실시해서 각 대학의 조경학과 개설시 교수직을 담당케 하고, 기업의 건설 관련 담당자들을 재교육시켜서 건설분야 업무에 조경의 마인드를 접목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런 기본 구상 아래, 당시 선발대상으로 고려되었던 사람들은 조경과 관련있는 학부를 졸업한 사람들과 건설계통에 근무하고 있는 국가공무원, 토지개발공사(현 토지공사), 대한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등에 종사하고 있는 국영기업체 임직원, 육·해·공군의 시설 관련 초급장교들이었다. 그리고‘환경대학원’이란 명칭은, 조경이 원래 건축·토목·원예·미학이론 등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기본개념은 자연경관과 생태에 대한 순수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며, 대상과 관념의 관계가 종합적·과학적으로 설정되어야 하는 차별성을 갖고 있고, 또한 앞으로 조경분야가 산업사회 진입에 있어서 국토조경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 이 국토조경은 장차 대두될‘환경문제의 해소’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명명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조경’이란 용어보다도 더 생소했던‘환경’이란 개념을 조경분야에 접목시키게 된 것이다. ※ 키워드 _ 오휘영, 근대조경, 환경대학원, 조경학개론 ※ 페이지 : 3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