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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망대해를 함께 항해할 선원을 찾습니다!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엔진, 뉴스레터와 유튜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영화 ‘베테랑’에 나온 명대사다.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저 한마디는 베테랑 형사인 서도철이 형사로서 갖고 있는 자부심을 잘 보여준다. 극중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서 형사처럼 환경과조경도 나름 조경계에서 베테랑(?)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긴 세월을 버텨왔다. 『환경과조경』은 50년에 달하는 한국 조경의 역사를 곁에서 지켜보며 동고동락했다. 올해 『환경과조경』은 창간 40주년을 맞이한다. 동시대의 잡지들이 줄줄이 창간과 폐간을 반복할 때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고, 앞으로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있다고 감히 단언할 수도 없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물성을 가진 책이란 장르가 공급자들에게만 매력적인 장르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돈 주고 잡지를 사서 읽는 일은 독자들에게 매우 낯설다. ‘요새 무슨 책 읽어?ʼ가 아닌 ‘요새 넷플릭스에서 뭐봐?ʼ가 스몰토크의 주제로 오르내린다. 코로나19를 지나는 동안 넷플릭스는 상한가를 친 반면에 국내의 한 대형 서점은 문을 닫았다. 사실 우리는 망망대해에 선 돛단배와 같다. 언제 반파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파도가 언제 닥칠지 예상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파도를 읽지 못하면 파도 타는 법을 배워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많이 넘어져 봐야 비로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모터, 뉴스레터와 유튜브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기 위한 모터를 야심차게 만들고 있다. 하나는 뉴스레터, 다른 하나는 유튜브다. 지난 3월 31일 1호 발송을 시작으로 나무요일 뉴스레터는 한 달에 두 번 구독자의 메일함을 두드린다. 잡지에 소개된 최신 프로젝트와 과월호 연재의 전문을 뉴스레터로 볼 수 있다. 올해 열리는 IFLA 관련 Q&A와 최신 소식, 장면으로 보는 한국 조경의 역사, 설계 도면에서 읽을 수 없는 조경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 어디서 볼 수 없는 콘텐츠도 뉴스레터에서 선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개봉을 앞둔 콘텐츠가 편집부의 컴퓨터 속 폴더에서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받은 메일함에 뉴스레터가 없다면 링크(page.stibee.com/subscriptions/173067)에 접속해서 구독하기를 누르면 된다. 다음 호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한 이들을 위해서 지난 뉴스레터 보기(page.stibee.com/archives/173067)도 제공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서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자고 말했던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처럼 활자의 벽을 뛰어넘고자 유튜브(www.youtube.com/c/환경과조경) 영상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환경과조경ʼ을 통해서 잡지나 책에서 활자로 만나던 인터뷰이와 저자를 소개하거나, 최신호 잡지를 미리 만날 수 있는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IFLA 대학생 서포터즈인 리플러들이 MBTI 여행, 브이로그 답사기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ʼ를 소개하고 있다.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식물도
    나무에 하나둘 색이 입혀지고 있다. 출퇴근길 15분 남짓의 버스 안에서 형형색색 풍경을 보면 절로 마음이 들뜬다. 코로나19로 지난 봄들을 집에서만 보냈던 나의 야심찬 첫 번째 계획은 봄나들이였다. 밖에서 놀고 싶어 근질근질했던 몸을 이끌고 친구들과 노들섬으로 향했다. 파워 J인 성향인 나(ESFJ)는 어디든 가기 전 미리 그곳이 어디이고 어떻게 가야하며 무엇을 꼭 봐야 하는지 메모해놓는다. 이번에도 사전 조사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들려야 할 곳은 공식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이다. 노들섬 공식 홈페이지에서 스크롤을 내리다가 ‘식물도’에서 멈췄다. 이 지면의 소재를 고민하던 중 구세주 같이 등장했다. ‘도시 속 나를 위한 작은 식물섬’이라는 뜻의 식물도는 초록 크리에이터와 함께 만들어가는 체험형 식물 문화 공간이다. 식물 컬래버레이션 전시와 식물 상담, 가드닝 수업, 정원 가꾸기, 식물 크리에이터 강연 등 식물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식물도는 식물을 모티브로 향기 작업과 퍼퓸 오브제를 선보이는 작가 공간인 아뜰리에 생강, 식물이 필요한 공간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앤드어플랜트, 누구나 쉽게 식물과 친해질 수 있는 가드닝 편의점 형태의 서울 가드닝 클럽, 꽃과 식물을 이용해 원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우리애그린, 네 개 공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 식물도에 가보기 위해 약속보다 두 시간 빨리 노들섬에 도착할 계획을 세웠다. 노들역에 내려 한강대교를 따라 걸었다. 아직은 찬 강바람에 휘날리는 긴 머리카락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기를 반복하다 그 틈 사이에서 안녕로를 가로지르는 노들섬이 나타났다. 노들섬은 보통의 공원과 달리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지다. 다양한 복합문화공간 속 식물도에는 초록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길치인 사람도 한눈에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초록색이 가득하다. 도시 속 나를 위한 작은 식물섬이란 콘셉트에 진심인 듯 보였다. 온통 식물로 꾸며져 있어 어디에 눈을 두어도 식물과의 눈 맞춤을 피할 수 없었다. 베테랑 식집사(식물과 집사의 합성어로 반려 식물을 키우며 기쁨을 찾는 사람을 뜻한다)인 부모님을 따라 종종 양재동 꽃시장에 들러 식물을 키워 보았지만 나는 식물 키우기에 영 소질이 없다. 어깨너머 부모님을 따라하기도 하고 블로그나 유튜브로 공부도 해봤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죽기 일쑤였다. 식물도에 있는 많은 식물을 보니 잠자고 있던 식물 심기 욕망이 깨어났다. 식물 씨앗을 하나 살까 고민하던 중 ‘식물 복덕방’(식물 씨의 좋은 집 구하기)이 눈에 띄었다. 이왕 온 김에 씨앗 하나를 사서 집에 있는 빈 화분에 이사시켜주고 싶어졌다. 친구들과 한바탕 수다를 떨고 한 손에는 바질 씨앗이 든 봉지, 다른 한 손에는 식물 이사 준비물이 든 봉투를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가는 전철 속에서 바질 키우는 법을 검색하다 다 키운 바질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방법까지 섭렵했다. 아직 화분에 흙을 담지도 않았는데 벌써 바질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행복해졌다. 식물원을 연상케 하는 카페는 많이 가봤지만 식물을 콘텐츠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식물도는 그 어느 곳보다 신선했다. 집으로 데리고 온 바질 키우기에 한창 재미를 붙였다. 쉬는 날이면 밖에 나가 돌아다녀야 하는 E 성향이 강한 내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가 생긴 셈이다. 집에서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는 I에게도 꽤나 잘 맞는 취미 활동이지 않을까. 참, 집에 심어둔 바질은 이제 검은 흙을 비집고 싹을 틔우려 한다. 5월호가 나올 시점에는 녹색 줄기가 다 돋아 있기를, 이번에는 죽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email protected]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사랑은 구름 넘어 환상은 아니지만 멍청한 믿음은 좀 필요로 해
    L을 만나러 일 년에 너덧 번 정도 부산에 간다.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부산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아침 해에 빛나는 해운대와 광안리의 바다를 눈앞에 두면 여전히 가슴 속에서 뱃고동이 울리지만, “부산에 왔으면 바다는 꼭 보고 가야지” 생각하는 관광객의 마음가짐에서는 벗어났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산에 갈 때마다 일정 짜는 게 만만치 않은데,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는 쉽게 정해졌다. 공사를 막 끝낸 부산 롯데월드가 개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인파가 어마어마하다는 경고를 각종 SNS에서 읽은 터라, 이른 아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놀이공원으로 직행했다. 일반적인 놀이공원과 달리 테마파크에는 콘셉트가 있기 마련이다. 놀이 기구도 중요하지만, 방문자들을 일상과 동떨어진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에 얼마나 깊게 몰입시키는 지가 테마파크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요정의 나라, 마법의 세계 같은 말도 안 되는 설정에 사람들을 푹 빠트리려면 여러 장치가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길고 긴 진입로다. 파스텔톤 페인트로 치장한 실제로 오를 수 없는 성의 입구를 통과한다고 다른 세계가 펼쳐질 리 없다고 생각하는 이를 위한 점진적 환각제다. LA 디즈니랜드는 다리가 아플 정도로 긴 진입로에 20세기 초 미국 교외를 떠올리게 하는 빅토리아풍 건물을 잔뜩 세워 거대한 쇼핑 타운을 조성해 놓았다. 가짜라 생각하기엔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리조트 내 호텔로 향하는 관광객들이 바쁘게 끄는 캐리어 바퀴 소리도 디즈니랜드를 하나의 나라로 느끼게 만드는 데 한몫한다. 서울 롯데월드는 섬이 가진 독특한 특징을 이용한다. 사방을 둘러싼 호수, 오로지 다리를 건너야만 들어설 수 있다는 점이 놀이공원을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장소로 만든다. 부산 롯데월드에서는 특이하게도 공원으로 향하는 지하철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놀이 공원은 울산 태화강과 부산 부전을 잇는 동해선의 오시리아역에 있다. 지상철이라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센텀시티와 벡스코를 지나치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간격이 점점 커지고, 낮고 넓은 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도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 이 짧은 여정과 놀이공원이 들어선 기장은 부산에서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곳이라는 L의 설명이 설렘을 더했다. 한창 벚꽃이 만개했을 때라 꽃들이 남긴 분홍 궤적이 창문 아래쪽에서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한껏 달아오르던 마음이 식기 시작한 건 오시리아역에 내려서는 순간부터였다. 먼저 거대한 아울렛이 시선을 빼앗았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모티브로 삼은 건지 모서리마다 푸른색 선을 두른 흰색 등대 형태의 둔탁한 건물이 이제 막 연녹색 잎을 틔우기 시작한 산 앞에 좀 머쓱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오르막이 많은 부산의 특성상 놀이공원의 모습을 바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4차선 도로를 건너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정신 없이 길을 오르다 보면 널찍한 주차장과 외로운 섬처럼 놓인 테마파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공원 주변이 봄기운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이유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한 오시리아 관광단지가 아직 전부 완성되지 않은 탓이었다. 남은 1년 동안 테마파크 일대는 아쿠아 월드, 호텔, 복합 쇼핑몰, 골프 리조트를 갖춘 관광단지로 바뀔 예정이란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조감도 속 도로에 둘러싸인 테마파크의 진입로를 보면 볼수록 입안이 텁텁해졌다. 마법의 숲(부산 롯데월드의 주요 테마)과 현실을 잇는 옹색한 다리와 좁디좁은 성의 앞마당. 환상과 현실의 급격한 전환은 다시 이곳에 오고 싶다는 아쉬움보다는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눅진한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쓸쓸한 숲의 풍경을 뒤에 두고 내려오는 내내 즐겨 듣는 노랫말이 가슴 속에서 뱃고동 대신 둥둥 울렸다. “사랑은 구름 넘어 환상은 아니지만 멍청한 믿음은 좀 필요로 해”(‘용맹한 발걸음이여’, 잔나비) 적당한 강도의 환상에 푹 젖는 경험은 일상을 좀 더 힘차게 견디게 하는 동력이 되곤 한다. 그것이 비록 멍청한 믿음에 기반할지라도 말이다. 이번 달 나의 환상은 환경과조경의 뉴스레터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는 것, 또 유튜브의 구독자와 좋아요 수가 폭발하는 것이다.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면, 지금 당장 세 쪽 앞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email protected]
  • [PRODUCT] 자연을 닮은 모험 놀이터 허니콤과 어드벤처 코스 다양한 조합으로 즐기는 친환경 놀이 시설
    자연은 오감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놀이터다. 자연을 닮은 놀이터가 있다면 어떨까? 아이붐(I-BOOM)은 예건(YEKUN)의 복합 놀이 시설 브랜드로 아이들을 위한 친환경 놀이터를 제작하고 있다. 여러 놀이 유닛을 다양하게 조합한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흥미로운 모험을 즐기며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각 유닛에 적용된 1~2등급 목재 고유의 따뜻한 색감과 촉감은 아이들의 오감 발달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허니콤은 육각형 유닛 구조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만드는 놀이 시설이다. 벌집의 육각형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육각형 구조는 외부에서 가해진 힘을 분산시켜 안정적일 뿐 아니라 견고한 것이 장점이다. 단차가 있는 구조물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대소 근육을 쓰도록 만들고, 이런 활동은 아이들의 신체적 발달을 돕는다. 벌집 구조로 이어진 각 유닛 사이를 이동하는 동선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편안한 느낌의 목재와 무독성 소재를 사용해서 친환경적이다. 스테인리스 망을 통해 언제든지 부모가 아이를 확인할 수 있어 미연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어드벤처 코스는 아이붐 비밀 아지트 시리즈 중 하나로, 10가지 이상의 유닛 구조물을 자유롭게 배열한 놀이터다. 천연 원목이 가진 특유의 곡선을 활용했으며, 아이들이 인위적이고 획일적인 놀이터에서 벗어나 자연친화적이고 창의적인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숲 속에서 뛰어놀듯이 놀이대를 오르내리는 활동은 도심지 어린이들에게 부족한 자연 경험을 채워주며 신체 능력과 창의력도 키워준다. 각 유닛은 개별적으로도 설치가 가능해 소규모 공원이나 개인 정원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TEL. 02-324-0070 WEB. www.iboom.co.kr
  • [에디토리얼]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옴스테드
    1822년 4월 26일, 센트럴파크의 설계자이자 현대 조경의 창립자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태어났다.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는 다채로운 기념행사와 강연회가 줄을 잇고 있으며, 옴스테드의 도시 철학과 공원관을 재해석함으로써 동시대 도시의 기후위기와 팬데믹, 공간적 불평등에 처방전을 구하는 학술대회들도 연이어 열리고 있다.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을 갈무리한 다양한 아카이브도 구축되어 이제 클릭 몇 번이면 그가 남긴 글과 도면을 누구나 직접 만날 수 있다. 『환경과조경』은 이미 2년 전부터 2022년 4월호를 옴스테드 특집호로 엮는 구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속되는 코로나19의 여파로 한국조경학회와 연계한 옴스테드 세미나, 해외 기관과 공동 주관하는 전시회,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 옴스테드 세션 등 초기의 여러 계획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2022년 봄을 맞고 말았다. 채 두 달이 남지 않은 시점에 이번 특집 ‘옴스테드 200’을 다시 기획할 수밖에 없었지만, 참여 필자들의 헌신적인 수고로 그나마 옴스테드의 삶과 업적, 공원관, 저작과 작품, 기록물을 폭넓게 아우르는 지면을 꾸릴 수 있게 됐다. 옴스테드 관련 한국어 논문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을 급히 섭외했는데, 마감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모두 흔쾌히 집필을 수락해주었다. 오랜 기간 옴스테드 공원 철학의 형성 배경을 연구해온 조경진(서울대 교수)은 이번 원고를 통해 그의 책과 글에 담긴 공원관을 재해석하고 그 의의와 한계를 되짚었다. 옴스테드의 공원 복지 개념을 주제로 논문을 출판한 바 있는 김민주(환경과조경 출판‧기획팀)는 이번 특집에서 옴스테드가 남긴 글과 공공 프로젝트, 그리고 그를 다룬 주요 저작을 꼼꼼히 목록화했다. 옴스테드의 파크웨이와 19세기 북미의 어바니즘을 다룬 여러 편의 글과 논문을 발표해온 신명진(서울대 박사과정)은 옴스테드가 계획한 일련의 선형 공원을 도시 그린 인프라의 선례로 재평가하고 현대적 의미를 탐색했다. 조경사 연구자 두 명도 기꺼이 특집에 참여해주었다. 임한솔(ULC 에디터)은 옴스테드의 성장 과정, 두 번의 여행과 작가·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 센트럴파크 감독관 시절과 공모전 당선, 위생위원회 사무국장 경력, 전업 조경가로서의 다각적 실천 등 생애 전반과 업적을 살폈다. 김정화(막스플랑크예술사연구소 4A_Lab 연구원)는 미국의회도서관의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페이퍼’와 ‘옴스테드 어소시에이츠 레코드’, 페어스테드의 ‘옴스테드 아카이브’ 등 관련 아카이브를 면밀하게 소개하면서 각 아카이브의 배경과 구조적 특징, 최근의 변화와 움직임까지 개괄했다. 편집부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기자는 촌각을 다투는 시간의 한계 속에서 옴스테드 재단, 센트럴파크 컨서번시 등 관련 기관과 계속 접촉하며 다양한 문건을 협조받았고 특히 많은 시각 자료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 월간지의 특성상 조금 더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지만, 그 명성에 비해 한국어로 정리된 옴스테드 관련 자료가 매우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호 특집이 여러 독자들에게, 나아가 향후의 국내 옴스테드 연구자들에게 적어도 입문 가이드 역할은 할 수 있으리라 자평해 본다. 1903년 8월 28일,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매사추세츠 주 웨이벌리에서 81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특집을 꾸리며 여러 자료와 기록을 분주히 들추다 당시의 부고 기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의 사망 다음 날 「뉴욕 타임스」에 실린 장문의 부고를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센트럴파크와 프로스펙트 공원뿐 아니라 미국 여러 도시의 뛰어난 공간들을 디자인한 위대한 조경가”로 시작하는 부고 기사는, 그를 다룬 후대의 그 어떤 전기들보다 생생한 목소리로 옴스테드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담고 있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광풍 속에서 도시 위생과 시민 건강을 위해 미국 전역의 여러 도시에 대형 공원과 공원 녹지 시스템을 정착시킨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그는 도시 혁신의 비전을 지향하는 조경가(landscape architect) 직명을 창안하고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직능을 창설한 선구자였을 뿐 아니라 도시 사상가이자 사회 개혁가였다.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은 2022년, 기후변화와 팬데믹에 신음하는 지구촌 곳곳의 조경가들에게 도시와 공원, 사회와 공공 공간이 맺는 함수 관계를 다시 조회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옴스테드[email protected]
  • [풍경 감각] 행군과 식물
    군인 시절 가장 힘든 훈련은 행군이었다. 20년간 끼니와 운동에 소홀히 했던 내 몸은 무거운 짐을 지고 수십 킬로미터를 걷는 일을 버티지 못했다. 훈련 중 다친 무릎이 때때로 아팠지만, 부대의 모든 병사는 행군을 해야만 했다. 같은 무게의 군장을 메고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행렬. 짧은 휴식 시간을 기다리는 긴 발걸음. 그 곁에 있었던 식물을 기억한다. 농지 사이 연못에 핀 노랑어리연꽃, 개울 옆 풀밭에서 하늘거리던 금꿩의다리, 도로변에 줄지어 피었던 좁쌀풀과 개망초, 그리고 검은 숲속에서 하얗게 빛나던 은사시나무. 행군은 힘들었지만 식물은 아름다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니 행복하겠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때의 행군을 떠올린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해도 일은 일.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의 일도 공평하게 무겁고 기나긴 여정이다. 다만 나는 그 행렬 속에서 식물을 헤아리는 중이라고, 늘 하지 못했던 대답을 이 글로 대신한다.
  • 전주 야호 맘껏숲놀이터 Playforest_as you like!
    어쩌다, 놀이터 어린이 놀이터(이하 놀이터)와 관련된 문의가 종종 들어온다. 놀이터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 것이 벌써 25년 전 일이다. 그간 고민과 경험이 축적되었지만 어린이였던 시절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있으니 시간적 거리감에 늘 조심스럽고 걱정이 앞선다. 고백하자면 놀이터는 우선순위의 논문 주제가 아니었다. 당시 조경학과에는 여학생 수가 적었고, 소수자의 눈으로 조경학의 틈새를 찾겠다는 무모함이 어쩌다 놀이터로 이어졌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어린이와 놀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이 놀이터에 대해 논문을 쓰겠다고 무턱대고 결심했을 땐 지도 한 장 없이 낯선 곳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시절, 무작정 연세대학교 아동학과 교수에게 연락을 드렸다. 다른 과 학생이 놀이터에 관심을 가졌다는 기특함이었는지 길 잃은 아이에 대한 측은지심이었는지 모르나 교수님은 낯선 학생에게 첫걸음 떼는 법을 알려주셨다. 연세대학교 부속 교육 기관인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을 소개받아 교사와 대화하고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비로소 어린이의 놀이와 놀이 환경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우리 도시의 놀이 환경은 생각보다 열악하고 위험했다. 서울시 어린이집의 실외 놀이터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무모한 논문을 쓴 이후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놀이 기구는 화려해지고 다양해졌으며 각종 인증기준으로 안전 문제와 위생이 개선되었지만, 어린이와 바깥 놀이 환경에 대한 사회의 근본적 철학과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전문가로서 그 더딘 변화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껴온 터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어떻게든 기여해야 한다는 강박도 생겼다. 어쩌다 시작하게 된 놀이터는 어느덧 전문가로서, 또 세상의 어른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무가 되었다. 맘껏, 놀이를 기획하다 유니세프(Unicef)가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아동친화도시 사업에는 도시를 만드는 의사 결정 과정에 아동이 참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야호 맘껏숲놀이터(이하 맘껏숲)는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은 전주시와 유니세프한국 위원회의 매칭펀드로 조성한 아동 친화 공간이다. 어른 혹은 미리 정해진 규칙으로부터 자유롭게 맘껏 스스로 즐기자는 의미로 시작한 ‘맘껏’ 공간은 서울의 맘껏놀이터(2017), 군산의 맘껏광장과 맘껏카페(2019)에 이어 전주의 맘껏숲이 세 번째다. 전주시는 놀이터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놀이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 중이며 야호아이놀이과를 신설해 여러 유형의 놀이터를 만들어 놀이의 가치를 확산하고 있다. 덕진공원 어귀에 위치한 맘껏숲은 옛 야외 수영장 부지에 만든 놀이 복합 공간으로 전주 시민이라면 한 번쯤 이곳에서 놀았던, 놀이의 기억이 두껍게 쌓여있는 장소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은 18세 미만의 사람을 의미하는데, 놀이터 사업이 주로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청소년들이 공원과 놀이터에서 소외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놀이터의 주 이용자에 청소년을 포함하자는 설계팀의 생각에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청소년들이 모이면 우범화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우리는 다양한 발언과 참여의 기회를 통해 상충되는 의견들을 조율하며 공간의 정체성을 함께 만드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환경 교육가, 놀이 전문가, 생태학자, 조경가로 구성된 설계팀을 꾸렸다. 설계팀은 어린이, 청소년, 성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전주시 아동자문단과의 놀이 워크숍, 숲에서 놀아보는 팝업 놀이터, 청소년이 직접 디자인하여 시공하는 맘껏아지트 만들기, 도토리의 새싹을 틔워 만드는 도토리 텃밭 만들기 등 맘껏숲에서 진행할 다양한 프로그램을 미리 테스트하며 콘텐츠를 만들어갔다. 경험을 통해 놀이터가 적절한 실내 공간과 연계되지 않으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맘껏숲에도 바깥 놀이터와 이어지는 실내 공간이 꼭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날씨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실내 놀이터, 보호자가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공간, 운영자가 상주할 수 있는 건축물이 절실했다. 야외 놀이터 사업으로 발주됐지만, 기본 계획에 상자 형태의 건축물을 그려 넣어 시장에게 놀이터와 연계된 실내 공간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전달했다. 그 제안에 공감한 전주시가 별도의 예산을 편성했고 그렇게 맘껏숲에 들어설 맘껏하우스가 탄생했다. 전주와 덕진공원에 대한 기억과 애착을 가진 지역 건축가가 맡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실현되어 지금의 맘껏 하우스 풍경으로 이어졌다. 놀이터로서의 건축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덕진공원에 놀러가던 건축가 김헌(일상건축사사무소)은 어느새 세 딸의 아빠가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매주 이곳을 찾는다. 대상지는 약 30년간(1973~2001년) 야외 수영장이 운영되어 전주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던 곳이고, 김헌 역시 그들 중 하나다. 놀이터로 시작한 맘껏숲 프로젝트에 합류한 건축팀은 건축물이 바깥 놀이터와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놀이 공간의 일부가 되길 원했고 놀이터의 중심이 아닌 놀이터의 연장으로 기능하길 원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던 기억을 더듬어 비석치기, 땅따먹기, 두꺼비 집짓기 등 흙, 돌, 나무 같은 자연물을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자연이라는 놀이의 재료가 건축물을 구성하는 마감 요소들로 이어졌고 목재(글루램), 노출 콘크리트, 석재로 마감된 맘껏하우스가 탄생했다. 맘껏하우스의 놀이 공간을 만드는 건축적 장치는 틈과 프레임이다. 물리적으로 꼭 필요한 실내 공간만 확보해 실내로 규정되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그와는 반대로 외부 공간과 사이 공간, 즉 ‘틈’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다. 틈은 이동에 쓰이는 공간, 머물 수 있는 부피가 있는 공간, 시선과 소리가 통과하는 공간이 된다. 틈을 만든 이유는 아이들이 한 방향으로, 규정된 대로 움직이는 공간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틈은 놀이를 만든다. 변화하는 박공 글루램 프레임으로 건축물의 형태를 규정짓고 공간감을 갖게 했다. 프레임은 적당한 그늘을 만들고 안전을 위한 난간 역할을 하며, 각종 놀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지대가 된다. 그네, 집라인 등 놀이 기구를 만들어주는 것보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맘껏하우스의 목표다. 자연에서 놀기 맘껏숲이라는 이름은 덕진공원의 아름드리 개잎갈나무와 대나무를 포함한 다양한 나무와 숲, 그리고 연꽃호수라는 풍성한 자연이 놀이를 담는 그릇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도시의 모든 곳이 놀이터가 될 수 있으니, 맘껏 놀 수 있는 숲이 생긴다는 건 더 풍부한 상상과 가능성을 의미한다. 과업 초기에 답사한 일본의 플레이파크(Play Park)에서 충격에 가까운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 기성 제품 하나 없이 흙과 물, 불과 목재 등 자연의 소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위험을 스스로 감수하며 도전과 놀이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놀라웠다. 어린 시절 자연에서 놀았던 경험은 자연에 대한 태도와 감수성을 형성한다. 여행지가 아니라 일상으로 만나는 자연에 대한 기억이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만든다고 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놀이 시설물의 디자인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자연과 만나는 방식, 그 안에서 펼칠 놀이와 배움의 체험을 디자인하는 일일 것이다. 숲에서 논다는 것은 자연과의 일상적인 접촉 속에 자연의 변화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도토리의 싹을 틔워 도토리 텃밭을 만들었다. 그들이 심은 참나무 묘목이 맘껏숲의 일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양지바른 곳에 심었지만 공사 기간을 버티지 못해 사라졌다. 그러나 아이들이 숲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희망은 그들 마음에 살아있다고 믿는다. 숲은 아이들 마음에서 이미 태어났기 때문이다. 맘껏숲의 공간 덕진공원의 맘껏숲은 어린이, 청소년, 시민들이 함께 쓰는 공간이라 어느 정도의 영역성이 필요하다. 원형 언덕의 능선을 기준으로 맘껏하우스가 있는 놀이터는 주로 어린이 놀이 영역, 호수 쪽이 청소년과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영역으로 계획했지만, 배타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구조다. 놀이에서는 다양성과 연속성, 자발성이 중요하다. 건축물과 놀이터가 이어져 높낮이가 있는 잔디 언덕, 순환 동선과 작은 샛길이 선택의 다양성을 주는데,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공간 구분과 규칙을 허물고 넘나들며 놀이를 발명할 것이다. 슬라이딩 가벽에는 청소년들이 커버 댄스나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거울과 낙서벽을 설치했고, 이는 덕진공원의 호수를 조망하는 프레임 역할을 한다. 대나무숲 터널은 이미 있던 대나무숲 안에 작은 길을 낸 것이다. 맘껏아지트는 청소년들이 디자인하여 직접 제작까지 한 구조물을 존치한 것이고, 트리하우스는 별도의 예산으로 솜씨 좋은 목수들이 만들었다. 놀이 워크숍 때 시도한 밧줄 놀이 시설이 준공 이후 추가 설치됐는데, 좋은 공간은 이렇게 실험을 허락하고 나이 들며 진화한다. 맘껏숲은 운영 측면에서도 새로운 공공 놀이터의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전주시의 아동·청소년 정책 '야호 프로젝트'의 하나로 놀이 활동가가 상주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놀이터다. 어린이 놀이터 만들기의 숙제 통계청의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2019)에 의하면 전 세계 유소년(0~14세)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5.6%인 반면 한국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4%다. 더욱 충격적인 건 2067년에는 유소년 인구가 8.1%로 떨어진다고 예측했다는 점이다. 초저출생 상황에서 아동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중요 사안이며 놀이는 아동의 발달과 행복에 핵심 요소다. 놀이터는 공평한 생애 첫출발을 위한 중요 공공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놀이터 환경 역시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피해가지 못한다. 작년 말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놀러 온 다른 동네 아이들을 도둑 취급해 경찰에 신고한 황당하고 안타까운 뉴스를 기억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모든 어린이가 나이, 지역, 주거 형태, 계층, 성, 장애와 상관없이 충분하게 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과 제도를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한국의 놀이터 풍경을 지배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근거한 안전인증제도다. 놀이와 도전의 가치를 상실하고 안전만 강조하는 제도적 구속은 조합놀이대 중심의 틀에 박힌 놀이터를 양산하고 있다. 안전인증은 경직되어 운영되고 있고, 시설물 설치 후에 시행되다 보니 설계 단계에서 디자이너를 위축시킨다. 맘껏숲의 경우, 건축물과 놀이터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초기에는 건축물에서 튀어나온 무지개 다리 끝이 바로 미끄럼틀로 이어지게 설계했다. 그러나 어린이놀이시설로 규정된 미끄럼틀과 건축물이 연결되면 건축물 전체가 안전인증 대상이 된다는 황당한 이유로 디자인이 수정됐다. 안전인증으로 설계안이 의도와 다르게 변형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네와 흔들놀이 같은 기성품 대신 매달려 놀 수 있는 밧줄과 트리하우스를 도입했다. 조합놀이대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정해진 패턴으로 놀고 사고한다. 맘껏숲에는 대신 언덕, 개울과 물웅덩이, 나무, 나무토막, 흙, 놀이집, 낙서벽, 거울 등 놀이 시설뿐 아니라 놀이를 촉진하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노는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놀이 시설이 많지 않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할지 고민하는 긴 시간을 보낸다. 성급한 부모는 주저하는 아이를 보고 이곳은 재미없다며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어른 눈에 재미없어 보여도 아이는 이를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어른이 기다리지 못할 뿐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좋은 공간을 제공해줘야 한다. 어린이놀이시설의 안전은 놀이의 가치, 안전과 도전의 균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전주시의 경우, 아동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조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여론에 부딪혀 고전하다가 작년 말 조례를 통과시켰다. 아이들이 놀 권리를 주장하면서 학업을 소홀히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부모들의 우려와 놀면서 만드는 소음을 못 견디는 어른들의 불편함이 조례 제정을 지연하는 데 한몫 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충분히, 그리고 즐겁게 놀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 하니 어린이 놀이터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 본 원고는 2021년 건축공간연구원에서 발간한 『건축과 도시공간』 제44호 장소탐방에 필자가 김현민, 김헌, 최정인과 함께 작성한 '맘껏숲&하우스'에서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놀이의 다양성을 위한 조건들 김아연·김현민 인터뷰 서울의 맘껏놀이터, 군산의 맘껏광장과 맘껏카페에 이어 전주의 야호 맘껏숲놀이터(이하 맘껏숲)가 완성됐다. 하나의 연작처럼 느껴지는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아연(이하 아) 대학원 석사 논문 주제가 어린이 놀이터였고, 그 이후 어린이 놀이터 관련 연구를 몇 개 더 했다. 연구에서 그친 점이 늘 아쉬웠는데, 놀이 관련 이력을 발견한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다. ‘맘껏’은 맘껏놀이터를 만들 때부터 사용했는데,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사교육과 경쟁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아동 권리의 지향점을 잘 담았다고 여기는 단어다. 처음에는 맘껏숲까지 사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출발은 아이들의 놀 권리 증진과 바깥에서 놀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획한 아동 친화 공간 사업이었다. 도시에서 아이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무엇일지 고민하다보니 여러 유형의 공공 공간을 시도하게 됐다. 맘껏놀이터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를, 맘껏광장에서는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고민할 수 있었다. 맘껏숲은 같은 놀이 공간이지만 맘껏놀이터와는 조금 맥락이 다르다. 전주 덕진공원 안에 숲과 호수가 있는 대상지라 자연을 놀이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탐색할 수 있었다. 김현민 소장은 내 꼬드김에 넘어와 맘껏광장 프로젝트부터 합류하게 됐다. 김현민(이하 현) 협업 제안을 받은 시점이 사무실을 연지 얼마 안 된 때였다. 해보지 못한 일에 관심이 많았고, 그때 만난 게 맘껏광장 프로젝트다. 사실 놀이터라는 공간이 처음부터 크게 와닿은 건 아닌데, 김아연 교수가 제안했다는 점과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참 낯설다. 아동이나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설계할 때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 아 우선 아동에 대한 정의가 나라와 법마다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동이라 하면 흔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떠올리는데, 한국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18세 미만의 사람을 뜻한다. 아동에 대한 제한된 인식이 청소년들을 놀 권리 소외 계층으로 만들고 있다. 맘껏광장과 맘껏숲의 경우, 청소년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안했는데 반대가 심했다. 흡연이나 음주를 하는 탈선 장소로 변질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청소년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인식이 커 그들을 설득하는 데 노력이 필요했다. 청소년 역시 사회의 중요 주체이고, 그들에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도시의 일부분을 청소년에게 내어주었다는 의미에서 맘껏광장과 맘껏숲이 청소년 놀이 공간의 좋은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 현 청소년들을 지켜볼 수 있는 트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 맘껏숲의 경우 나무와 트리하우스, 공간을 분할하는 언덕이 시야를 가릴 수밖에 없어 반대가 컸다. 작품을 전시하거나 게시판으로 쓸 수 있는 아트펜스도 설계했는데, 같은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청소년은 참 고민이 많은 시기인데, 혼자서 깊은 고민을 하고, 학교가 끝난 늦은 시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없다. 청소년을 위한 여가 공간이나 놀이에 대한 토론 자체가 부족하다. 아 워크숍을 하며 청소년들이 원하는 공간에 대해 조사했는데, 다양한 의견을 관통한 공통점이 어른들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다. 학업과 진로로 인한 스트레스도 크지만, 어른들에게 늘 관리되고 통제되는 터라 쉴 때만큼은 오롯이 또래들끼리 있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맘껏놀이터와 달리 맘껏광장과 맘껏숲은 인근에 실내 공간을 갖추고 있다. 아 놀이 공간은 그릇 같아야 한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도록 비어있어야 하는데, 비워놓기만 하면 활성화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모을 수 있는 프로그램과 장치가 필요하다. 맘껏놀이터를 통해 배운 게 많다. 놀이터가 생각보다 활성화되지 않아 여러 차례 방문해 그 원인을 찾았다. 우선 맘껏놀이터는 동네 놀이터가 아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한복판에 있어 동네 아이들보다는 차를 타고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한번 들러 놀고 떠나는 곳이다. 이 경우 비워놓은 놀이터의 특색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아이들은 이미 조합놀이대에서 노는 방식에 익숙해진 상태다. 조합놀이대가 없는 놀이터에서는 어떻게 놀아야 할지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데, 맘껏놀이터를 방문하는 아이들은 그런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주 동선에서 벗어나 있고, 주변에 아이와 함께 온 부모가 편하게 앉거나 날씨와 상관없이 놀 수 있는 실내 공간이 없다. 카페 같은 실내 시설이 있으면 보호자가 편하게 아이를 지켜볼 수 있고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도 형성된다. 맘껏놀이터의 경우, 주변에 편의점이 있지만 놀이터와 등을 지고 있고 법적인 문제로 인해 한동안 문을 열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놀이터 쪽으로 유입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놀이터 디자인만큼이나 공간을 활성화할 수 있는 놀이의 콘텍스트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김현민 소장과 맘껏광장을 설계하며 아이들이 점유할 수 있는 아지트 같은 실내 공간,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는 항상성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맘껏광장에는 구조물 형식의 맘껏카페를 만들었다. 맘껏숲에도 실내 공간을 두고 싶었는데 주어진 예산으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무작정 전주시장에게 기본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 건물을 그린 도면을 들고 갔는데, 뜻밖에도 공감해주어 맘껏하우스를 추가로 계획할 수 있게 됐다. 전주시가 생태도시, 놀이터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시의 비전과 맞는 일이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편이다. 현 처음에는 사실 컨테이너 박스를 쌓은 정도의 제안이었는데, 여러 과정을 거쳐 예산이 확보되어 맘껏하우스를 짓게 됐다. 아 맘껏하우스를 설계할 건축가를 선정해야 했는데, 무엇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디자이너와 함께하고 싶었다. 늘 프로젝트를 하며 서울에 사는 사람이 지방에 작업을 하고 떠나는 점이 마음에 걸렸는데, 전주에서 활동하는 김헌 소장(일상건축사사무소)을 섭외하게 되어 기뻤다. 김헌 소장이 어렸을 때 덕진공원에 자주 들러 논 경험이 있어 그 의미가 더 컸다. 맘껏하우스는 맘껏숲과 같은 디자인 언어를 쓰는가. 아 디자인 언어가 같다기보다 놀이터와 건물이 하나로 연결되는 설계를 했다. 건물 자체가 놀이 공간의 일부처럼 녹아들기를 바랐다. 맘껏하우스 2층의 경우 반 이상이 외부 공간이다. 도로변에서도 진입할 수 있도록 1층에 큼직한 입구를 많이 두었고, 가장자리에 아이들이 걸터앉을 수 있게 했다. 현 맘껏하우스와 맘껏숲의 프로그램이 촘촘히 잘 엮여있다. 건축가는 건물 안에서 본 바깥의 풍경과 안과 밖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다. 아 다양한 아이들이 협업할 때 새로운 놀이가 탄생하는 것처럼, 건물과 놀이 공간을 친구처럼 만들었다. 건축가는 관리 문제로 인해 건물 내부에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게 된 점을 아쉬워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 놀다 무지개다리를 건너 맘껏하우스 2층에 들어서고 나선형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가 다시 바깥으로 나가는 식의 놀이 과정에 자연스럽게 건물이 끼어 있기를 바랐는데, 신발을 벗어야 하니 그 흐름이 끊기게 됐다. 맘껏놀이터, 맘껏광장, 맘껏숲의 공통점 중 하나가 벽, 거울, 언덕, 미끄럼틀이다. 네 요소를 즐겨 쓰는 이유가 있을까. 아 벽은 공간을 정의해준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고, 천장이 있건 없건 아지트라고 느껴지는 공간감을 형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벽은 낙서를 하거나 액자를 걸 수 있고, 거울도 설치할 수 있어 여러모로 훌륭하다. 거울은 아이와 청소년 모두에게 인기가 좋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는 일이 아동 발달에 중요하고, 청소년들은 기본적으로 외모에 관심이 많다. 커버 댄스 연습 등 취미 활동에 활용되기도 한다. 더 자주 사용하고 싶은데 깨지거나 훼손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놀이를 촉진하는 몇 가지 요소 중 하나가 높낮이다. 높낮이를 즐기기에 언덕만큼 좋은 것이 없고, 오르내리는 지형을 이용한 놀이 기구의 대표가 미끄럼틀이라 자주 쓴다. 사실 가장 설치하고 싶은 건 그네다. 어린이놀이시설의 설치 기준에 따라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부지가 작은 경우가 많아 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매번 그 점이 아쉬워 맘껏숲에는 건물과 놀이터를 잇는 무지개다리 하부에 밧줄을 주렁주렁 달아 그 밧줄을 엮어 그네처럼 타고 놀 수 있게 했다. 더불어 맘껏숲에는 트리하우스를 제안했고, 별도의 예산으로 설치했다. 기존 숲의 큰 나무들을 활용한 기획인데, 아이들이 나무를 새로운 관점에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 트리하우스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꿈꿨던 로망의 공간이지 않나. 현 트리하우스는 친구와 속닥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인 동시에 고지의 역할을 한다. 개인 공간이자 모험을 위한 놀이 시설이다. 아 아이들이 일상에서 오르기 힘든 높이를 트리하우스에서 경험할 수 있다. 아이는 도전하면서 성장한다.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자연 속에서 나무와 공존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 좋은 구조다. 트리하우스를 잇는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보이기도 한다. 놀이 공간에는 다양한 난이도의 놀이 기구가 필요하다. 난이도가 높으면 당연히 위험하고, 난이도가 너무 낮은 공간은 아이들이 위험을 찾아 이상한 방식으로 놀이를 즐기게 해 사고 발생률을 높인다. 좋은 놀이터는 놀이의 종류와 난이도가 다양한 곳이다. 아이들은 지금은 겁이 나는 놀이 기구를 보면서 내년에는 올라야지 생각하고 언니, 형을 따라하며 큰다. 오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며 또래 그룹끼리 교류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한 교류와 상호 보살핌의 기회를 청소년에게까지 확장해주고 싶었다. 평지에 새로운 언덕을 만들 때 겪는 어려움은 없나. 현 지형 스터디를 위한 모형을 크게 만들어 다각도로 검토했다. 언덕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 2.7m다. 생각보다 높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능선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어떤 각도에서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공간의 핵심 요소이기에 충실히 스터디했다. 아 지반 침하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성토를 해 지형을 만드는 일은 늘 쉽지 않다. 걱정은 있었지만 만들어놓고 보니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안 된다는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가 없다. 맘껏아지트가 눈길을 끈다. 단순히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넘어 시공까지 함께했다. 아 나 역시 그렇지만 유니세프는 놀이 공간 계획에 아이들이 주체로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맘껏광장과 맘껏숲을 만들 때는 청소년과 좀 더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이재영 교수(공주대 및 한국환경교육연구소) 팀을 섭외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사용할 공간을 직접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맘껏아지트로 해소해주고자 했다. 전주 야호학교 청소년과 함께 디자인하고 지역 목수와 직접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현 청소년 주체의 프로그램 운영 여건을 마련해준 것이 맘껏숲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놀이 공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앵커가 없으면 공간의 주인이 사라진다. 맘껏숲에는 놀이 활동가가 상주하며 다양한 계절과 시간에 따라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아 놀이 활동가가 있는 놀이터는 정말 다채로워진다. 그동안 분실과 사고의 위험으로 금기시됐던 블록 놀이를 맘껏숲에서 시도해봤는데,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물론 블록이 사라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설사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놀이 활동가가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다. 세 사업을 모두 다른 지자체에서 진행했는데 도움을 받은 정책이나 프로그램이 있나. 현 유니세프의 아동친화도시 인증 프로그램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고 전부였다. 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으려면 우선 아동권리 전담조직을 만들고 아동친화적인 법체계 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전담 조직이 있어도 놀이터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부서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마저 없다면 프로젝트가 더욱 복잡해진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좋은 담당자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맘껏광장의 경우 최초 예산이 5천만 원이었다. 기존 광장에 아동권리헌장을 출력해 붙이는 정도의 간략한 계획이었다. 실제로 작동하는 공간을 만들려면 적어도 6억은 필요하다고 하니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던 담당자의 당황 가득한 침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 달 정도 연락이 두절되어 프로젝트가 무산되었구나 하고 체념할 무렵, 담당 공무원이 시의원과 여러 사람을 설득해 일정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갈등을 조정하고, 추가 예산이 필요해지면 여러 단체를 설득해 기부금을 받아오기도 했다. 맘껏광장 벽에 설치한 거울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출력해 넣었는데, 이는 실시설계 단계밖에서 담당자들의 애정과 의지 덕분에 실현되었다. 현 전주에서는 뜻밖의 일이 장애물로 작용했다. 대상지인 덕진공원이 전통성을 강조하며 리노베이션되고 있어 맘껏숲에도 전통을 담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주 작은 디테일에까지 말이다. 그래서 무지개다리에 설치된 밧줄 윗부분에는 전통 노리개에서 볼 수 있는 매듭을 사용했고, 평상이나 팻말, 벽에 전통 요소을 넣었다. 심의를 통과해야 하니 과도하게 드러나지는 않되 군데군데 전통을 숨겨놓는 방식을 썼다. 아 아이들의 놀이는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보편적 특성을 갖는다. 놀이터에는 놀이만 담으면 되지 성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투영하는 게 불편했는데, 지나고 보니 결과물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상적인 놀이 공간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앞으로 실현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현 아이디어를 얻고자 일본의 플레이파크에 답사를 갔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특별한 시설이 없는 진흙탕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만들고 부수는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맘껏하우스에서 놀이 활동가, 야호학교 교사, 청소년이 모여 매주 목공 체험을 통해 시설을 만들고, 그 시설 자체가 놀이터가 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도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좀 더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아 물놀이 공간이라 하면 분수처럼 물이 솟구치는 시설이나 계류, 발을 담글 수 있는 연못을 떠올린다. 하루는 비 온 다음날 맘껏숲에 간 적이 있다.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바닥 일부가 진흙탕처럼 변해 있었는데, 담당 공무원은 하자 보수를 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렇게 물이 고인 곳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 놀이터나 진흙 놀이터가 된다. 놀이터를 설계할 때 늘 성인의 눈으로 공간을 보지 않으려 경계한다. 오히려 재미있는 놀이 기회를 뺏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실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놀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100퍼센트가 아닌, 덜 디자인된 공간인지도 모른다. 플레이파크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 많은데 상당히 지저분하다. 아이들이 놀다 보면 시설이 깨끗하게 관리될 수 없다. 사진이 잘 나오는 깔끔한 공간보다는 아이들이 놀며 망가뜨리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 현 놀이터에 대한 고정관념이 참 많다. 놀이터는 아이들만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짜 놀이터는 아이들뿐 아니라 온 동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어야 한다. 플레이파크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스스로 놀이거리를 찾아 논다. 고정관념과 정해진 놀이, 법규와 심의가 많다보니 놀이터의 다양성이 사라져가고 있다. 조금씩 바꾸어나가고 싶다. 맘껏숲놀이터 프로젝트 총괄 및 책임디자이너 김아연 맘껏숲놀이터 기본계획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윤승렬, 이현정), 한국환경교육연구소(이재영, 조경준, 조찬희), 스튜디오일공일 조경 설계 스튜디오일공일(김현민, 이현옥, 이세희, 이슬기, 최담희) 조경 시공 호원건설 맘껏아지트 한국환경교육연구소(이재영, 조경준, 심규태, 조찬희), 야호학교 청소년 및 틔움교사 트리하우스 미즈노 마사유키 + 가사골 교육놀이공동체 목재시설물 시공 쌔즈믄 미끄럼틀 시공 자인 외부 전기 시공 대아전력공사 맘껏하우스 건축 설계 일상건축사사무소(김헌, 최정인) 구조 설계 시너지구조 조경 시공 호원건설 건축 시공 태왕종합건설 건축기계·전기 설계 대화 건축 면적 146.73m2 연면적 178.52m2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316-11(덕진공원 내) 대지면적 4,684.18m2 건축주 전주시청 &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완공 2021. 5. 사진 김아연, 노경, 일상건축사사무소, 한국환경교육연구소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외 정원, 놀이터, 공원, 캠퍼스, 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김현민은 서울시립대학교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미국 SWA 그룹에서 다양한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술사사무소 렛, 비오이엔씨, 지드앤파트너스에서 폭넓은 실무를 경험한 뒤 2015년 스튜디오일공일을 설립했다. 실험성, 심미성, 실현성을 바탕으로 과정을 강조하는 실천적 디자인을 중시하며, 작은 정원에서부터 주거 단지, 오피스, 공원, 리조트, 골프장 등 다양한 스케일의 설계와 디자인 감리를 한다. 마이크로경관이 살아 있는 풍성하고 균형 잡힌 경관 체험을 전하고자 노력한다.
    • 김아연
  • 옴스테드 200 The 200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Frederick Law Olmsted
    현대 조경의 선구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 _ 임한솔 옴스테드의 공원관 _ 조경진 공원으로 만든 도시, 옴스테드의 선형 공원 _ 신명진 옴스테드 아카이브, 기억의 집 또는 아스날 _ 김정화 옴스테드가 남긴 것들 _ 김민주 옴스테드 200, 더 읽을거리 _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지금 이곳에 공 원을 만 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 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1850년대 센트럴파크의 필요성을 역설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 1822~1903)의 말을 21세기에 되돌아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일상에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도시공원을 재발견했다. 잔디밭에, 물가에, 작은 벤치에 거리를 두고 앉은 사람들을 보며 도시공원은 “도심에서 자연으로의 최단 시간 탈출”을 가능하게 한다는 옴스테드의 말을 실감했다. 아직 팬데믹의 여파가 가시지 않는 2022년,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1822년 4월 26일 생)을 맞이했다. 옴스테드는 조경 전문 직능과 학문 분과의 장을 연 선구자다. 현대 도시 공간 구조를 재편했을 뿐 아니라 현대적 개념의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의 기틀을 세웠다. 미국 조경계는 이 역사적인 해를 기념하고자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본지도 이에 발맞추어 옴스테드의 생애, 주요 저작과 프로젝트, 공원관과 조경론, 옴스테드 아카이브 등을 살펴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기후위기와 팬데믹 등 격변을 겪고 있는 동시대 도시에 대한 시사점을 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진행 배정한, 남기준,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옴스테드 200] 현대 조경의 선구자,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
    조경의 아버지 조경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 첫손에 꼽힐 인물이 있다. 조경의 원어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를 전문업의 명칭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주인공이자 도시공원의 전범으로 널리 알려진 센트럴파크의 설계자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Olmsted, 1822~1903, 이하 옴스테드)다. 옴스테드는 설계가로서 정규 교육이나 도제식 수련을 받은 적이 없다. 또한 조경가 외에 작가, 저널리스트, 사회 비평가, 행정 관료로도 불리는 등 다양한 일을 수행했다. 심지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라는 조어를 최초로 발명하지도 않았으며, 그 명칭을 오랫동안 공유한 파트너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옴스테드를 ‘조경의 아버지’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진정한 아버지는 유전자의 원천 그 이상이다. 아버지는 불완전한 개체의 성장과 자립을 지지하는 존재이며 때로는 존경의 대상으로, 때로는 반면교사로 떠오르는 규율 그 자체다. 옴스테드는 여러 직업을 두루 경험하고 설계와 글쓰기, 조직 운영을 종횡무진하며 조경업의 안팎을 살펴보고 그 정체성을 구축해냈다. 옴스테드의 남다른 삶의 궤적은 유동적인 경계를 지닌 직능의 미래를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옴스테드가 강조한 픽처레스크(picturesque) 자연미는 조경 직능의 전통이자 한계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옴스테드를 조경의 아버지로 기리고 추고하게 되는 것은 그의 업적 못지않은 흔적 때문이기도 하다. 옴스테드는 미국 전역에 걸쳐 500여 건의 작업을 수행했고 조경가로 일하는 동안 6,000여 건의 보고서와 서신을 남겼다. 옴스테드의 두 아들이 미국조경가협회(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와 하버드 대학교 조경 프로그램을 설립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말하자면 옴스테드는 후대의 조경 종사자들에게 전범과 원리, 인력 체계까지 물려주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옴스테드의 후예로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서른이 되기까지: 현장의 배움들 옴스테드는 코네티컷(Connecticut) 주의 하트포드(Hartford)에서 태어났다. 옴스테드 가문은 하트포드에서 여덟 세대에 걸쳐 살았다. 성공한 포목상인 그의 아버지는 풍경 애호가였다. 유년 시절의 옴스테드는 가족을 따라 뉴잉글랜드와 뉴욕 북부 등지의 경치 좋은 곳으로 자주 여행을 다녔다. 전원 풍경의 아름다움과 영향을 강조하는 옴스테드의 미감은 이때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풍경을 체험하며 남다른 시간을 보낸 반면, 옴스테드의 성장 과정은 정규 교육과는 거리가 있었다. 옴스테드는 주로 목사들로부터 교육 받았는데, 예일 대학교 진학에 거의 근접하기도 했지만 옻독이 오르는 바람에 시력 문제가 생겨 학업에 몰두할 수 없었다. 대학에 다니는 대신 옴스테드는 다양한 현실 경험을 쌓았다. 뉴욕의 포목점에서 일하고 중국으로 무역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측량과 화학, 과학적 농법과 농장 운영 등을 익혔다. 옴스테드의 아버지는 다양한 경험을 쌓은 20대 후반의 아들에게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 농장을 마련해주었다. 옴스테드는 이곳에서 농업과 관리 운영의 이론을 실천으로 구현해보았다. 유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옴스테드의 삶은 조경과 직접 연관되지는 않았지만 미학적, 실무적 측면에서 차근차근 조경 자산을 쌓아가고 있었다. 두 번의 여행과 작가 옴스테드 농장을 경영하던 1850년대 초,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와 만나기에 앞서 그의 인생을 바꾼 여행을 두 차례 다녀온다. 첫 번째는 1850년에 6개월간 떠난 유럽 여행이다. 이때 옴스테드는 영국 리버풀의 버컨헤드 공원(Birkenhead Park)을 방문하고 큰 자극을 받는다. 옴스테드는 “민주주의 미국에는 이와 같은 민중의 정원(People's Garden)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공원의 접근성이 모든 미국인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여행에 함께한 친구의 추천으로 옴스테드는 1852년 「뉴욕 타임스」의 전신 「뉴욕 데일리 타임스(New York Daily Times)」로부터 취재 여행을 의뢰받는다.타임스는 옴스테드에게 남부 지방을 여행하며 노예제를 포함한 농업 방식과 경제에 대해 써줄 것을 요청한다. 옴스테드는 1854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남부 여행을 다녀왔고 타임스에 일련의 글을 출판하며 이름을 알린다. 옴스테드는 글을 통해 노예제의 서부 확장에 반대하고 남부 지방의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다. 이 무렵 옴스테드는 작가의 꿈을 꾸고 있었다. 옴스테드는 두 번째 여행을 다녀온 뒤 신생 출판사의 파트너와 유명 월간지의 에디터를 맡기 시작한다. 단행본 출간에도 힘을 기울여 첫 번째 여행을 바탕으로 『어느 미국 농부의 영국 여행기(Walks and Talks of an American Farmer in England)』(1852)를 출간하고, 두 번째 여행을 바탕으로 세 권의 연작을 출판한다(1856, 1857, 1860). 그러나 작가의 운명 대신 조경가의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옴스테드는 1856년 출판사 일로 영국 런던을 방문하며 여러 공원을 경험했고, 이듬해인 1857년 센트럴파크의 감독관(superintendent)으로 취업한다. 센트럴파크, 감독관에서 설계자로 옴스테드가 센트럴파크 감독관 자리를 얻은 지 몇 달 뒤, 영국 출신 신진 건축가인 캘버트 복스(Calvert Vaux, 1824~1895)가 감독관인 옴스테드에게 센트럴파크 설계공모에 함께 참가하자고 제안한다. 복스는 원래 앤드류 잭슨 다우닝(Andrew Jackson Downing, 1815~1852)의 부름을 받고 미국으로 왔지만, 다우닝이 1852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 상황이었다. 다우닝은 건축, 경관, 원예 등에서 선구적 이론을 제시한 바 있는 전문가였다. 옴스테드는 복스와 뜻을 함께하며 다우닝이 남긴 생각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 이전까지 설계 경험이 전무했지만 복스의 제안을 수락한 이후 낮에는 감독관, 저녁에는 설계가로서 공모전 준비 작업에 참여한다. 옴스테드와 복스는 설계공모에 ‘그린스워드(Greensward)’ 계획을 제출해 다른 32팀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당선된다. 이 제안은 탁 트인 잔디밭을 중심으로 풍부한 식재와 목가적 풍경을 갖춘 동시에 도시와 이용자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풀어낸 수작이었다. 옴스테드와 복스는 지면 아래로 꺼진 횡단 도로를 제안함으로써 도시 교통을 고려하면서도 공원의 감상을 저해하지 않도록 했다. 또한 공원 내에 분리된 동선 체계를 적용해 이용 행태에 따른 간섭을 줄이고 이용자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조정하도록 했다. 센트럴파크는 옴스테드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이며 그의 후기 작업에서 구체화되는 설계 원칙들의 시험장이었다 센트럴파크 조성은 19세기 뉴욕의 공공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의 사업으로 꼽힌다. 미국인 엔지니어, 아일랜드인 인부, 독일인 정원사, 아메리카 원주민 석공 등 2만여 명의 노동자가 공사에 참여했으며, 암반을 부수기 위해 게티즈버그(Gettysburg) 전투보다 더 많은 화약을 터뜨렸다. 3천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약 3,800만㎥에 해당하는 돌과 흙을 옮겼고 36개의 다리와 아치를 지었으며 11개의 고가도로를 건설했다. 또한 50만 그루의 교목, 관목, 덩굴이 식재됐다. 설계공모 당선 이후 옴스테드는 총괄건축가(architect-in-chief)직함을 갖고 전방위로 활동했다.그러던 중 남북전쟁이 일어난다. 미국 위생위원회와 마리포사 이스테이트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옴스테드는 뉴욕을 떠나 워싱턴 D.C.로 간다. 그곳에서 옴스테드는 미국 적십자의 전신이자 북부 연합군의 의료 지원을 담당하는 미국 위생위원회(US Sanitary Commission)의 첫 번째 사무국장이 된다.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 현장에서 갈고닦은 조직 운영 기술을 발휘하여 병영의 위생을 감독하고 의료 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실무를 총괄한다. 위생위원회에서 2년가량 일한 옴스테드는 1863년, 집안의 경제 사정으로 인해 캘리포니아의 대규모 금광 사업지인 마리포사 이스테이트(Mariposa Estate)에 관리자로 취직한다. 옴스테드는 요세미티(Yosemite)계곡에서 가까운 이곳에서 코네티컷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풍경에 익숙해진 한편, 민간의 상업적 이해관계로 인해 자연이 위협받는 것을 목격한다. 위생위원회와 마리포사 이스테이트 경력은 옴스테드가 조직 운영 기술로 상당히 인정받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위생위원회 경력은 옴스테드가 자신의 조경 설계 필수 원칙 중 하나로 위생 공학을 강조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마리포사 이스테이트에서 일하던 당시, 옴스테드는 요세미티 보호구역을 감독하는 위원회의 책임자로 임명됨으로써 환경 보존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다. 1865년 제출한 요세미티 보고서에서 옴스테드는 사익으로부터 공익을 보호하는 것을 정부의 의무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옴스테드는 미국 국립공원 체계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업 조경가로서의 활동과 이어지는 실천 1865년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옴스테드는 이후 30년 동안 전업 조경가로 활동한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캘버트 복스와 센트럴파크 작업을 마무리 짓고 프로스펙트 공원(Prospect Park)을 설계한 것이다. 두 사람은 옴스테드, 복스 앤드 컴퍼니(Olmsted, Vaux & Co.)라는 사명으로 1872년까지 함께 활동한다. 그 뒤 옴스테드는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조경가(Frederick Law Olmsted, Landscape Architect)라는 직함으로 1884년까지 활동하다가 이후 회사의 이름을 몇 차례 바꾸게 된다. 옴스테드는 1895년 현업에서 물러나고, 그를 도와 일하던 두 아들인 존 찰스 옴스테드(John Charles Olmsted, 1852~1920)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주니어(Frederick Law Olmsted Jr., 1870~1957)는 1898년부터 옴스테드 브라더스(Olmsted Brothers)라는 사명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이 회사 이름은 1961년까지 존속했다. 옴스테드가 세운 회사는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 전역에서 공원 설계, 공원 시스템 설계, 주거 단지 설계, 대학 캠퍼스 설계, 국립공원 계획, 도시계획 등 6천여 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옴스테드의 회사는 조경업의 전문성을 발전시키고 다음 세대 전문가를 교육하는 일을 거의 홀로 감당했다. 찰스 엘리엇(Charles Eliot)과 워런 매닝(Warren Manning), 윌리엄 라이먼 필립스(William Lyman Phillips) 등 그와 관련된 전문가 다수는 훗날 자신의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무엇보다도 두 아들은 미국조경가협회의 창립 멤버이며, 특히 옴스테드 주니어는 하버드의 조경 프로그램을 설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조경재단(Landscape Architecture Foundation)은 옴스테드의 이름으로 매년 장학생을 선정함으로써 그 역사와 유산을 기리고 있다. 옴스테드의 유산 픽처레스크 자연미와 민주주의의 이상을 담아내고 대지의 구체적 맥락과 공간의 실용적 기능을 고려하는 옴스테드식 설계는 그가 떠난 지 거의 12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조경 설계의 기본으로 유효하다. 세간에는 센트럴파크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옴스테드의 작업은 대형 공원 외에도 도시 규모의 녹지 계획과 자연환경 보존, 주거 단지와 캠퍼스 설계를 아우른다. 옴스테드는 미국 국회의사당과 시카고만국박람회를 위한 조경가로 지명되는 등 국가적 프로젝트를 통해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우리가 옴스테드를 조경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동인은 옴스테드의 시작보다는 이후의 과정에 있을 것이다. 현대 조경이 직면하고 있는 기후변화, 사회적 불평등, 질병과 오염의 문제를 도시화와 산업화의 광풍이 몰아치던 19세기의 옴스테드도 고민했다고 한다면 과언일까. 이상과 현실을 이어붙이고 미학과 공학을 접목시키려던 옴스테드의 염원은 지금 여기의 소망과 다르지 않다. 예나지금이나 설계는 보이는 것만을 바꾸지 않는다. 참고 자료 ·National Association for Olmsted Parks,“About the Olmsted Legacy”(www.olmsted.org/the-olmsted-legacy/about-the-olmsted-legacy) ·National Association for Olmsted Parks,“Olmsted 200, Meet Mr. Olmsted-LIFE”(olmsted200.org/frederick-law-olmsted/life/) ·Library of Congress,Collection: Frederick Law Olmsted Papers”(www.loc.gov/collections/frederick-law-olmsted-papers/) ·Library of Congress,“Today in History-April 26”(www.loc.gov/item/today-in-history/april-26/) ·Greensward Group,“Central Park History” (www.centralpark.com/visitor-info/park-history) 임한솔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감영 원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경, 건축, 역사에 관심을 두고 설계와 이론, 도시와 자연,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다르게 보고자 한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온오프라인 매거진 유엘씨(ULC)를 만들고 있다.
  • [옴스테드 200] 옴스테드의 공원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미국 지성사의 주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조경가이자 작가, 사회 비평가, 공공 행정가로서 다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영국 답사기, 남부 노예 제도 취재기, 공원과 도시에 관한 에세이, 서간문 등 그가 남긴 글은 실로 분량이 엄청나다. 전기만 해도 10종이 넘고, 그를 다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도 여러 편이다. 옴스테드가 남긴 물적 유산만큼 그가 지성사에 남긴 유산은 찬란하다. 옴스테드의 글과 그에게 영향을 미친 당대 사상가들을 살펴보면서 옴스테드 공원관의 형성 배경과 특징을 살펴본다. 옴스테드가 처음 접한 공원은 조지프 팩스턴(Joseph Paxton)이 설계한 버컨헤드 공원(Birkenhead Park)이었다. 옴스테드가 1850년 뉴욕에서 출발해 리버풀에 도착한 후 처음 찾은 버컨헤드는 당시 리버풀 인근의 신도시였다. 배낭을 메고 동네 빵집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버컨헤드 공원을 꼭 가보라는 권유로 찾게 되었다. 이 우연한 만남으로 옴스테드와 공원의 인연이 시작됐다. 옴스테드에게 공원은 미국 사회가 꿈꾸는 평등과 민주주의의 공간이었다. 그는 책상에 앉아 사유하는 암체어(armchair) 지식인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센트럴파크 감독관 직책을 맡고, 공모전 당선 후에는 설계자로 활동하면서 그는 답사를 통해 쌓은 경험과 독학으로 축적한 지식을 결합해 자신의 공원관을 형성했다. 이후 미국 여러 도시의 공원을 계획하면서 공원에 대한 옴스테드의 생각이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공원에 관한 옴스테드의 글 옴스테드의 대표적인 글에서 공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1852년 출간한 『어느 미국 농부의 영국 여행기(Walks and Talks of an American Farmer in England)』에서 그는 버컨헤드 공원을 ‘민중의 정원(People’s Garden)’이라 지칭한다. 옴스테드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에 감동한다. 그러한 풍경은 미국 도시에서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영국에서는 가난한 농부도 여왕처럼 공원을 즐긴다고 표현한다. 무엇보다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이 공원이 시민이 소유하는 공간이었던 점을 높이 평가했다. 빵집 주인도 자기 동네 공원에 자긍심을 가진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공원: 백과사전적 관점(Parks: An Encyclopedic View)”(1861)이라는 글은 유럽 도시공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다룬다. 당시는 센트럴파크 설계 공모 당선 후 실시설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사례 연구 기록물을 살펴보면 옴스테드가 유럽 공원의 역사와 여건을 잘 숙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설계가가 궁금해할 주제인 공원의 상대적 크기와 면적당 수용 인원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옴스테드가 공원에 대한 연구를 심도있게 수행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870년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사회과학협회 총회에서 발표한 글 “공공 공원과 도시의 확장(Public Parks and the Enlargement of Towns)”에서 옴스테드는 공원에 관한 생각을 보다 선명하게 밝힌다. 도시가 급속하게 확장할 때 맑은 공기, 밝은 햇빛, 푸르름을 제공하는 자연 공간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광활함은 공원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한다. 밀집된 도시와 차단된 곳에서 시민들이 산책하면서 고요함과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먼 미래를 보고 도시의 확장을 고려해 장기적 관점에서 공원 계획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원의 역할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문화인이 되기 위한 시민 교육의 장이고, 둘째 심신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활력 공간이며, 셋째 시민에게 자긍심을 주며 도시를 매력적으로 하는 공유 자산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공원론이다. 옴스테드는 1886년 글 “마음 상태의 건강한 변화(A Healthy Change in the Tone of the Human Heart)”에서 존 러스킨(John Ruskin)을 인용하면서 문명화된 사람은 질서, 정교함, 깔끔함 같은 특성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품격 있는 도시는 섬세한 톤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교회, 도서관, 갤러리, 온실, 정원, 기념물, 공원 등 공공 공간의 수준이 도시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도시의 이러한 아름다움은 보편적 시민의 예술 감각에 따른다고 주장한다. 왜 옴스테드가 좋은 공원을 만들고자 했는지, 왜 공원을 통해 시민 교육을 하고자 했는지 이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옴스테드 공원관의 형성 배경 몇 편의 글을 통해 살펴본 공원에 대한 옴스테드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공원은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들고, 시민들에게 도시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곳이다. 둘째, 계층 갈등을 비롯한 사회 문제 해결의 장이다. 셋째, 시민 교육의 공간이다. 넷째,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장소다. 이러한 공원관 형성에는 동시대 사상가들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영국의 낭만주의 사상가인 존 러스킨과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러스킨은 『건축의 일곱 등불(The Seven Lamps of Architecture)』(1849)에서 “건축은 사용 목적이 무엇이든 그 모습이 인간 정신의 건강, 힘, 그리고 즐거움에 기여하도록 하는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칼라일은 『의상철학(Sartor Resartus)』(1836)에서 “육체, 자연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영혼, 신 등 보이지 않은 것으로 상징하는 의상”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옴스테드는 공원과 같은 공공 건축이 도시의 정신을 상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옴스테드가 캘버트 복스(Calvert Vaux), 제이컵 레이 몰드(Jacob Wrey Mould)와 함께 작업한 센트럴파크의 베데스다(Bethesda) 테라스에는 러스킨의 영향이 선명히 드러나 있다. 장인들의 섬세한 솜씨로 제작된 테라스 장식물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낮과 밤의 서사가 세련되게 표현됐다. 옴스테드는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와 같은 당시 초월주의자들의 자연관에도 영향을 받았다. 초월주의자들에게 도시는 악이고 자연은 지고의 존재로 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도시에 공원을 만드는 것은 인간 회복의 한 방편이었다. 에머슨은 『자연(Nature)』(1836)에서 “자연은 몸과 마음에 치료 효과를 주어 심신을 정상으로 회복시킨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에머슨의 영향을 받은 소로는 야생 자연인 월든에서 한동안 생활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월든(Walden, Life in the Woods)』(1854)을 저술했다. 그는 월든 호수에서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옴스테드에게 공원은 자연과 교감하면서 신의 내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이 된다.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저작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1835)에 주목해야 한다.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가가진 선진성을 높이 평가했지만 문화적 소양의 부재를 지적했다.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드 토크빌의 생각은 옴스테드에게 영향을 미쳤고, 공원이라는 유럽의 민주적 공간과 제도를 미국 사회가 빨리 수용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에게 공원을 조성하는 일은 계층 갈등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문화적 소양을 습득하고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장으로서 공원은 유용한 도구였다. 옴스테드는 이를 잘 수용했다. 스위스 철학자 요한 게오르크 치머만(Johann Georg Zimmermann)의 『고독(Solitude)』(1791)은 당대에 잘 알려진 저작이었다. 그는 『고독』에서 풍경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으며, 건강한 고독은 자기 회복을 위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경향이라고도 말했다. 옴스테드도 어릴적부터 자연 풍경이 주는 치유 효과를 체감하고 있었다. 옴스테드 연구자들은 치머만의 사상이 옴스테드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본다. 공원에서 우리는 자연 경치의 명상을 통해 서로 경쟁하지 않고 위협받지 않는 상태를 경험한다. 치머만은 건강한 상태의 고독을 자기 시간에 대한 몰입과 지나친 은둔으로 사회생활에서 격리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라 했다. 당시 새로 등장한 공원은 치머만이 말하는 건강한 고독을 경험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옴스테드 공원관의 의미와 한계 옴스테드 공원관이 갖는 의미와 시사점은 무엇인가. 옴스테드식 공원은 이후 수없이 복제되고 확대 및 재생산됐다. 어쩌면 아직도 전 세계의 공원은 옴스테드의 우산 아래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옴스테드의 공원관과 실천 행위는 이후 전문가들의 공원 계획, 설계와 큰 차이를 보인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옴스테드는 당대의 사상을 자신의 공원 만들기라는 실천 행위를 통해 구현했다. 도시의 자연인 공원은 쓰임새 있는 물리적 공간일 뿐 아니라 그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과 바람 직한 미래상이 담긴 공간이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도 옴스테드의 공원은 그 가치와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탄탄한 철학이 있는 공원, 확고한 비전이 담긴 공원이기에 생명력이 길다. 이러한 점은 옴스테드의 개인적 역량에서 기인한 것이기 하다. 그는 인문적 소양을 갖추었고 사회적 발언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공원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높여 주었다. 물론 그와 함께 일한 캘버트 복스와 제이컵 레이 몰드의 디자인 역량이 옴스테드의 추상적 차원의 이상을 뛰어난 디테일 디자인으로 구체화시키는 데 힘이 되기도 했다. 옴스테드 공원관의 한계는 무엇인가. J. B. 잭슨(J. B. Jackson)은 “과거의 공원과 미래의 공원(The Past and Future Park)”(1994)이라는 글에서 옴스테드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조경가이자 도시설계가로서 그의 작품은 통상적으로 숭배되지만, 그의 사회 철학에 나타나는 엘리트주의, 반도시적 논조, 자연환경에 대한 강조 등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의 공원 개념은 사회 계층의 단편화, 고독한 경험과 가족적 경험의 지향, 개인과 환경의 수동적 관계를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적절한 비판이다.센트럴파크는 초기에 산책 등 수동적 레크리에이션을 강조하면서 노동자 계층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실제로 여러 계층의 화학적 결합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원을 계속 리모델링하면서 여러 계층이 공원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가기도 했다. 이후 많은 비평가는 옴스테드의 공원이 도시에 담을 쌓았다고 비판하면서 도시와 소통하는 공원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견 타당한 의견이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변화하는 도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영원불변하는 만병통치의 해법을 주문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옴스테드의 공원은 지금도 여전히 잘 이용된다. 잭슨이 지적하는 계층별 이용 분리, 공원 경험 방식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사회학적인 문제다. 오늘날에도 공원을 이용하는 방식은 ‘따로 또 같이’다. 즉 개인적 방식과 때로는 집합적 방식이 혼용된다. 군중 속에서 개인의 자유가 방해받지 않는 상태를 더 원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뉴노멀의 공원 이용법’일 것이다. 공원은 시간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하나의 가능태다. 옴스테드는 공원의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를 제시한 것이며, 이후 다른 형식과 내용의 공원을 창출하는 것은 후대 공원 설계가의 역할일 것이다. *환경과조경408호(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조경진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 한국조경학회장, IFLA 2022 조직위원장, 정원도시포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