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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공간에서 만나는 점토벽돌(2) - 점토벽돌의 다양한 활용사례
    이번호에서는 점토벽돌을 녹지경계석, 배수로, 플랜터, 앉음벽, 계단 등에 활용한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고, 점토바닥재의 응용방안으로 켜쌓기 방법을 살펴본다. 더불어, 점토바닥재의 기본적인 포장방법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녹지경계석 경계석은 다양한 재료와 만나 녹지경계석, 포장분리경계석(재료분리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에는 녹지와 만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녹지경계석이 사용되었으나 최근들어서는 특별한 경계석을 사용하지 않고 바닥재 그대로 마감하는 현장도 눈에 띄고 있다. 그만큼 다채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와 방법으로 바닥재가 시공되고 있는 만큼 녹지의 경계와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났을 때의 경계부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녹지경계석의 경우 녹지와 만나는 포장재를 고려하여 꼭 기성제품의 콘크리트나 화강석 경계석을 사용해야 하는지, 미처 세밀하게 살펴볼 여유가 없어 녹지와 만나는 라인에는 무조건 경계석을 사용하여 과잉설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건축과 토목에 비하여 늘 부족한 공사비를 사용해야 하는 조경공사의 현실을 고려할 때, 경계석에 사용되는 만만치 않은 공사비를 다른 공정에 사용하여 전체적인 공간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현장에서 시공되는 경계석의 길이와 포장면을 생각한다면, 세심한 배려가 결과물에 있어 얼마나 다른 품질로 나타날지 생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점토바닥재가 최상의 방식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 여건에 따라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기에, 몇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하지만, 점토바닥재를 경계석으로 사용할 때에는 특히 콘크리트베이스 위에 점토바닥재를 붙여야 하므로 백화현상에 유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레미탈(시멘트, 모래가 혼합되어 현장에서 물만 부어 사용할 수 있고 해사 사용으로 인한 하자를 막을 수 있다)로 시공하는 것이 좋다. 현장에서 어떤 포장재를 어떤 느낌으로 표현할 것인지에 따라 적당한 경계석 시공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포장마감이 점토바닥재로 사용되었다면 점토바닥재를 이용한 경계석은 통일감을 줄 수 있으며 작은 단위로의 절단과 시공이 용이한 만큼 현장상황에 따른 다양한 응용이 가능할 것이다. ▲ 그레이팅 테두리 배수로 배수로에 이용 될 수 있는 점토바닥재는 크게 세가지 정도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표면배수가 되도록 하여 시공시 경사를 주어 배수의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배수용 점토제품인 찬넬(channel)을 이용해 배수로를 만들어 주는 방법이 가능하다. 세 번째는 점토바닥재로 포장면 보다 단을 낮춰 배수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배수로를 만들때는 전체 포장면적과 강수량을 고려하여 폭과 깊이를 정해야 한다. 플랜터(Planter) 플랜터를 만들때는 조적하여 만드는 방법과 콘크리트 구체를 치고 외벽에 점토바닥재, 점토타일, 점토벽돌을 붙여주는 방법이 있다. 포장의 재질이 점토바닥재였을 경우는 공간의 통일감을 주기 위하여 플랜터에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앉음벽(Sitting Wall) 앉음벽은 시설물중에서 시각적으로 중요한 구조물인 동시에 기능성도 있는 구조물이다. 1B나 1.5B 쌓기 정도의 폭을 갖게되며 다양한 길이와 형태, 다른 재료(나무, 석재)와 혼용하여 여러 가지 표정을 연출하는 시설물로 만들 수 있다. 콘크리트 구체로 만들 경우에는 점토타일이나 점토바닥재로 붙여 시공한다. 마지막 끝부분 마무리에 있어서는 무공제품으로 구멍이 보이지 않도록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담장 설치시에도 마무리는 무공제품을 사용하고 설계시 디테일에 나타내 주어야 할 부분이다. 계단 같은 점토제품을 사용해 계단을 만들더라도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 수 있는데 바닥포장을 마무리한 같은 점토바닥재로 계단을 마무리 할 수 있고, 밟는 면은 점토바닥재로 측면은 점토벽돌을 세워 시공할 수 있으며 계단마감재로 마감을 할 수도 있다. 이 방법들 모두 느낌이 다른 형태의 계단으로 시공되므로 현장의 분위기, 계단사용의 빈도, 계단 날개벽 마감 등을 고려하여 선택해야 한다. 계단의 높이가 현장상황에 따라 조금씩 차이날 수 있지만 점토바닥재나 점토벽돌은 절단이 쉬우므로 변수가 많은 현장에서 탄력적으로 이용 가능하다. 점토바닥재의 응용 - 켜쌓기 점토바닥재를 반으로 컷팅하거나 포장공사시 절단하고 남은 점토바닥재의 절단면을 정으로 쪼아 적당히 다듬어진 요철을 주어 화강석의 켜쌓기와 같은 방법으로 줄눈 없이 몰탈로 붙여 시공할 수 있다. 시공시에는 벽돌을 쌓듯이 정형적인 방법으로 쌓는 것이 아니라 길이가 서로 다른 것들을 조합하여 자연스러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점토바닥재 색상중 투톤의 색상으로 되어있는 것은 절단된 면의 색상이 한층더 돋보이게 된다. 이러한 방법은 플랜터, 장식가벽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이 희 경 Lee, Hee Kyung·미드랜드코리아(주) 디자인팀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제1회 친환경적 실내공간 디자인 공모전
    (사)실내조경협회에서는 2001년 12월 5일 제1회 친환경적 실내공간 디자인 공모전에 대한 시상식을 진행했다. 대상은 김진주, 장승완(상명대학교), 최우수상은 이지선, 이정애, 정진주, 이지선(삼육대학교), 우수상은 이문희, 구지은 (상명대학교), 장려상은 구본욱 , 문경훈, 나일정, 박진수, 정범준(세명대학교), 정선영, 강혜숙, 문정수, 김동원(숭실대학교), 김태현(백제예술대학교)이 수상하였다. ▲ 대상 Cristal Line ▲ 최우수상 陰陽合一調和 ▲ 우수상 Dialogue with space
  • 턴키 프로젝트 -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선수촌
    ▲ 당선작 현대건설+D.S.T건축+동인조경마당(조감도) ▲ 출품작 포스코개발+건원건축+가원조경(마스터플랜) ▲ 출품작 두산건설+무영건축+신화컨설팅(조경계획도)
  • 장승과 이정표 및 가로수에 대한 고찰
    장승과 가로수 도로에 거리 표시로 처음에는 흙이나 돌을 무더기로 쌓아서 일정한 거리마다 설치 하다가 점차 시대의 필요성에 따라 그 돈대( )위에 나무를 깎아세워 안내기록을 새겨넣는 표목(標木)이 세워 지다가 장승과 함께 병행하는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수목을 심어서 거리의 위치표시로 삼다보니, 마침내는 그 이용효과는 거리표시는 물론 행인들의 쉬어가는 그늘로하여 쉼터로서의 다목적 효과를 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언제부터 로변의 장승이 가로수로 변하게 되었는지 그 시대적 과정을 보면, 도로변에 후( )라는 명칭으로 장승을 세우면서부터 나무를 심게 되었던 최초는 앞서 언급된 바 있는 고대 중국의 남북조 시대 위효관 이라는 지방 수령이 도로변에 거리 표시로 흙장승( )을 설치했던 것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 그 돈대( )를 대신케하니 길가는 나그네들로 하여금 서늘한 그늘을 주는 덕을 베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본 임금(周文帝) 은 전국 각 주(州)에 명하여 이와같이 후( :장승)를 없애고 대신 나무를 심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때 심은 나무의 수종은 어떤 나무를 심었던가 하니, 북사(北史) 위효관전(韋孝寬傳)에 있기를 후( )대신 홰(槐)나무를 심었다.(當里處植槐以代理 也) 하였으니, 이 나무는 일명 회화나무로서 중국이 원산인 활엽교목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회화나무는 예부터 삼공지괴(三公之塊)라 하여, 공명심록(空名臣錄)에 자손이 삼공(三公)에 오르면 뜰 안에 이 나무를 심었다는 상서로운 나무로 귀애함을 받았던 나무였다. 그래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옛 한양의 도성 궁궐내 요소마다 홰나무가 지금도 거목으로 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와 관련한 연유가 있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조선 초기에 와서의 실상을 보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서는 건설사업에 주력하는 바 도성 및 한성부의 행정구역을 동서남북 중앙의 5부로 나누어 도로건설을 시행하였는데, 도성내의 도로망은 물론 전국의 역원(驛院)제와 봉수제를 한성부 중심으로 개편하므로 하여 이 사업은 태종, 세종, 세조, 성종조를 거쳐 경국대전의 완성으로 전국적인 도로망의 정비를 보게되었다. 이 기간동안에 도로변에 심은 나무의 기록이 있는바 「도로변에 거주하는 자는 전부 도로변에 나무를 심고 하천변에 거주하는 자는 축방 양측 제방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路傍各戶皆命栽植川邊各戶各於兩岸築坊栽木)하였는데 이는 중국의 남북조시대 위효관이 시행한 길가에 나무를 심어 행인들에게 덕한 길가에 나무를 심어 행인들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것과 무관치 않은 일이며, 우리나라 가로수 역사의 효시가 아닌가 싶다. 또한 조선왕조의 통치 법전인 경국대전에 장승에는 리(里)수와 지명을 새긴다라는 규정이 있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새로운 제도의 창립시행도 있고, 시류에 따른 변화도 있어서인지 거리표시 방법도 기존 장승에만 의존하지 않고 융퉁성 있게 시행하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태종때 까지는 후( )라 하여 토석의 단위에 거리표시를 해오다가 세종 20년(1438)때 와서는 장승의 위치에 이정표로 표목(標木)을 세우고는 나무를 심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세종 23년(1441) 8월에는 중국 사신이 들어오는 평안도 대로변에는 30리마다 로표(路標)를 하나씩 세우되 구간 내에는 단을 쌓아서 거리 표시를 하기도 하였다. 또 단종때에 와서는 본격적으로 나무만 심게 하였으니, 단종원년(1452) 5월에 는 한성과 지방의 대로변 좌우에 나무를 심도록 하고 철저히 관리하게 하는 반면 그 심는 수종은 각 지방에 알맞은 나무로 하되 소나무, 잦나무, 밤나무, 홰나무, 버드나무 등을 심고 가꾸게 하였는데, 이는 앞서의 나무로 거리표시를 하던 방법과는 크게 변화된 시행이며, 특히 도로변 좌우에 심으라는 것으로 보아 가로수 개념에 가까운 시행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와같은 일이 단종 이후로는 기록에 보이지 않다가 현종때에 와서의 일로 반계수록에 보이는데. 「회화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잦나무, 버드나무는 성(城) 내·외에서 관도의 양쪽에 느려심고 근처에 사는 사람에게 관리하도록 했다.(槐木, 銀杏, 松柏, 楊柳則又於城內外官道兩傍列植分付傍道居人看手如有伐者治罪郞令準植)」 는 기록이 있다. 이는 그동안 장승과 함께 구간마다 나무를 심어본 대체 효과가 아예 나무를 많이 심어 얻는 다목적 효과를 가져온 결과의 시도가 아니었나도 생각된다. 장승의 처음은 거리표시로 장승만이 주체이던 것이 나무를 시어 대치되기에 이르렀는데, 이때의 처음 시작은 세종때부터 변화기라 하겠지만 후애로 오면서 일관성 있게 통일된 시행이 아니라 장승과 함께 나무를 식재로 병행설치 방법으로 후기에까지 이어온 것 같다. 정약용 선생도 이정표를 세우되 쉬어 갈 수 있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이 목민심서(1801∼1818)에, 나루터에 배 없는 일이 없드시 역정(驛)에 장승 없는 곳이 없음은 행인과 나그네들의 즐거워 하는 바 라고 하면서, 5리가서 표목 하나 세우고, 10리에 가서 장승을 세우되 거기에 중국의 위효관의 예를 들면서, 우리도 흙돈대를 없애고 홰나무(槐)를 심게하면 길가는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주어 덕을 베풀는 일이라 하고, 또 10리마다 작은 장승(小 )을 세우고, 30리마다 큰장승(大 )을 세운다면 거기에는 느릅나무(楡)와 버드나무를 심어야 한다.(--每十里立小 三十里立大 樹之以楡柳) 고 하였다. 이는 관의 지침이나 직접적인 지시가 아닌 선비가 관을 향한 학자적인 설문이므로 그대로의 시행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러나 앞의 왕조간의 시행사례 몇 가지의 예로보아 도로변에 이정표로 장승을 세우기도 하고, 거기에 나무만 심어 장승을 대신 하기도 하고 장승과 함께 나무를 심어 길가는 행인들에게 그늘을 주고 신선함을 제공하게 되었던 것은 우리나라 도로 문화에 변화의 과정이었으며, 이는 외부의 견문이 없이도, 우리만의 사고에 의해서 발전하는 고유의 우리모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조의 재위기간(1776∼1800) 동안에 도로변에 심은 노송의 숲이 있으니, 수원시 북부 옛 지지대 고개 소나무 숲이 그것이다. 이는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시호를 장헌세자로 추존하고 능(陵)을 수원으로 천봉하면서 이 능을 지키는 용주사를 짓고는 부모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부모은중경을 새겨 기복케 하는 지극한 효심으로, 한달이 멀다하고 능을 찾아 행차 하셨다 하는데, 지지대 고개는 국도의 대로이며 정조가 현륭원을 봉행할 때마다 지나는 능행어로(陵行御路)이기 때문에 장승도 격이 있는 큰 장승(大 )을 세웠던 위치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나무를 심은 것은 이미 세종때부터 큰 장승 주위에 나무를 심었던 것이 관행이 아니었나 함이며, 궂이 소나무를 심었던 것은, 단종때도 그 지방에 알맞은 수종을 심도록 했던 선례도 있을 뿐만 아니라, 소나무는 옛부터 충절을 기리는 의미도 있었거니와 수장지목(樹長之木)이라 하여 나무중에 으뜸이요 조한 묘역이나 관문 입구에 심는다는(以松樹考門) 뜻을 높이 감안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다. 그러면 능원으로 가는 입구의 대로에는 장승이 어떻게 세워 있었는지 기록의 한 예를보면, 영조 46년(1770)에 관련한 도로고(道路考)의 능원묘어로 조(陵園墓御路條)에, 「厚陵在豊德長 隅自薺陵五里豊德府十里陵下五十里共二百二十里」라고 표기된 장승의 이정표다. 여기서 후능이란 정종의 능을 말함인데, 이 릉은 개성의 풍덕에 있는 능이다. 장승이 서있는데서 거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왕능 앞을 지나는 도로에는, 장승도 이정표도 격이 있고 품위가 있게 했으리라 여겨진다. 또 하나 임금이 다니는 온천길의 장승에는 어떤지 예를 보면, 같은 도로고(道路考)의 온천행궁로 조(溫泉行宮路條)에, 「---鳥山大川菁好驛前竝長 山見十里」 여기에서 보면 임금이 통행하는 어로나 관 대로에는 장승도 쌍장승으로 규모있게 세웠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보듯이 지지대 고개 또한 왕능이 있는 관대로 이므로 큰 장승이 품위있게 세워져 조선 말기까지 있었던가, 신채효 선생의 판소리중 변강쇠가의 가사 내용에도 지지대 유사님(有司) 지지대 공원(公員) 운운하는 대목이 있다. 장승을 가리켜 유사님 공원임 하는 말은 보부상의 직책으로 장승의 기능도 이에 유사함을 빗대어 음풍한 것일 것이다. 이렇듯 큰 장승이 서있는 지지대 고개에 소나무를 심어서, 관의 임무를 수행하는 관원은 물론 일반 행인들까지 쉬어가는 곳이었을 것이니 생각해 보면 그늘이 있고 쉬어가는 곳이라면, 우마차와 행인들의 봇짊등을 길가에 길게 늘받쳐 놓고 쉬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그러자면 나무도 길을 따라 가로수 열식으로 길게 심게 되었을 것으로 상상이 되는바, 초기에는 장승주위에 어찌 심었던지 간에, 정조임금의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질서있게 가로수처럼 길게 열식하여 심게된 것이 아닌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날까지 지지대 고개 노변을 울창하게 지켜 서있는 소나무 길은 사실이 아닌가. 우리나라에 가로수가 의도적으로 심어지기는 개항기 이후인 고종 32년(1895) 3월 10일 내무아문(內務衙門)에서 각도와 각 읍에 시달하되, 「道路 左右에 樹木을 植養함을 勸하고 栽植할 事」하고, 가로수를 심도록 지시하므로 하여, 이로부터 전국에 설치되어 있는 역(驛)과 발참을 폐지하고 우체사를 신설하고 현대식 교통통신의 도입으로 하여 장승의 이정표 제도는 사라지게 되었고 관 주도로 획일적인 가로수를 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시책의 지침으로서 그 첫 시행의 시기와 장소는
  • 창인건설(주) - 인간중심경영으로 신뢰감 쌓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본내 중견기업 MK택시 그룹의 성공비결은 익히 알고 있듯이 직원들에게서 우러나오는 차별화 된 서비스였으며, 그 배경에는 단기간의 이익보다는 고객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기업이 신뢰를 얻는다는 경영철학으로 주력한 직원들의 복지제도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 중요성을 실감한 탓인지 국내의 여러 중소기업들도 그를 표방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긍정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는데, 조경계에도 드러나지 않은 그러한 회사들이 제법 있을법 한데 지난 1997년 7월 설립된 창인건설(주)(대표 오영록)의 경우도 작은 중소기업에 불과하지만 인간중심의 경영마인드로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킴은 물론, 공사 품질에 대한 신뢰를 받아 한창 분주하게 공사실적을 쌓아가고 있다. 직원의 주인의식 고취, 고품질로 연결 창인건설(주)는 동종업계 내에서 가족같은 분위기와 직원들 개개인에게 힘을 실어주는 복지제도로 조경인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는 직원들이 회사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함으로써 자신의 삶은 물론, 가족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종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오영록 대표의 경영방침의 결과로, 직원들의 정기적인 단합대회, 우수사원 선발 등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워 줄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고, 수시로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지시보다는 현장의 현황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문제점과 애로사항 등을 듣고 독려하는 등,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미래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 회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사내 분위기는 직원들의 주인의식으로, 또한 시공품질의 향상으로 연결되었고, 동종 업계에서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그 결실의 하나가 바로 최근 준공되어 전세계인들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선사했던 월드컵분수이다. 세계 최대 고사분수 국내 기술로 완성, 그 기술력으로 C.I-FOUNTAIN 설립 지난 11월 10일, 상암 월드컵주경기장 개장식에서 탄생을 알린 경기장만큼 돋보이며 행사내내 축제분위기를 연출했던 세계 최고의 높이인 월드컵 고사분수를 TV이나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었을텐데, 202m(2002년 월드컵을 상징)의 물줄기를 뿜어내며 주변으로는 21기의 보조분수(30m높이)가 104개의 조명에 의해 화려한 야경을 연출, 우리의 기술을 자랑했던 그 경관의 조성에 창인건설(주)이 한 몫 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 고사분수는 현대산업개발(주), (주)동명기술공단 종합건축사사무소, 창인건설(주), (주)한국선박기술이 컨소시엄으로 완성한 작품인데, "현대산업개발(주) 조경부가 저희를 믿어주고 함께 한 덕택에 무척 어렵고 전무후무한 대형 프로젝트임에도 수행할 수 있었다"고 2000년 입찰에 참여했을 당시를 회상하는 오 대표의 말처럼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게 된 월드컵 고사분수의 조성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프로젝트의 규모도 너무나 방대했고 기존에 대부분 130∼140여m 정도의 고사분수가 설치되어 국내는 고사하고, 스위스 레만호, 미국 아리조나 파운틴 힐, 일본 사기에 댐 고사분수 등 해외에서도 월드컵 분수의 조성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서해와 멀지 않은 관계로 조수간만의 차가 커 하루에도 2∼10(홍수시에는)m까지도 차이가 날 뿐 아니라 흐르는 강물에 설치하다보니 온갖 부유물들이 쓸려내려 오는 등 연구과정부터 시공완료시까지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순수 국내기술로 지금의 월드컵 고사분수가 조성되었고,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 또한 창인건설(주) 직원들만의 주인의식과 끈기가 큰 역할을 해냈음은 물론이다. 최근에는 창인건설(주)를 모체로 고사분수 전문업체인 C.I-FOUNTAIN(주)를 설립, 월드컵 고사분수를 시공한 기술력과 노하우에다 작은 것에도 소홀하지 않는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더해 수경관 연출의 새로운 지표가 되기 위해 발돋움하고 있다.♧ (사진 : 김태우 부장, C.I-FOUNTAIN(주)) 미니인터뷰 "월드컵 고사분수가 중간 조율사로서의 조경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으면" - 오영록·창인건설(주), C.I-FOUNTAIN(주) 대표이사 - "근 2년간 정말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런 기회를 갖게 해준 현대산업개발(주)는 물론, 열심히 해 준 우리 직원들 덕분입니다" 그간 수행한 프로젝트 가운데 올림픽 고사분수가 가장 힘들었으며,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오영록 대표는 수훈을 가장 먼저 직원에게 돌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번 과업을 수행하는 동안 중간 조율사로서의 조경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그는, 자료의 유무나 기술적인 한계보다도 힘들었던 점은 수경시설과 관련된 사업을 기계나 전기에서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심리적인 압박이었으며, 결국 월드컵 고사분수도 당초 컨소시엄때와는 달리 고압을 다루는 업무와 대용량 펌프로 인해 기계, 전기 분야로 넘겨져 더욱 힘들게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수경시설이 기계나 설비와 관련된 시설물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주위경관과 어울리는 디자인의 수경공간이 조성됩니다. 경관조성 관련공사는 조경분야의 몫 아닙니까? 그런 과업들을 우리 스스로 찾지 못하고 있다면 조경인들의 생각이 문제입니다. 반드시 개선해야할 문제겠죠" 이번 월드컵 고사분수가 조경인들에게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경관적 디자인 요소로서의 수경시설로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는 무궁무진한 해외시장으로의 개척도 빠르게 수행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하며,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계기로 수경시설의 표준화 된 유지관리지침 매뉴얼이 작성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란다. 앞으로도 창인건설(주)나 C.I-FOUNTAIN이나 일관된 경영방침으로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바램이라는 오영록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고생을 기초공사라고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조건 대기업을 선호하기보다 중소기업에서 산전수전 겪으면서 세상에 대해, 조경에 대해 배운다면 성과가 보이지도 않고 힘들겠지만 프로가 되기 위한 훌륭한 베이스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Changin Landscape Architecture CO,.LTD 백 정 희 Baek, Jeong Hee · 본지 기자
  • 공원이용프로그램 ; 공원이용프로그램의 필요성과 시민참여 방안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은 도시의 인구집중과 자연환경의 파괴와 환경의 질이 악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반면 생활의 여유와 여가시간의 증대를 가져와 새로운 활력소로 여가활동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공원이 도시 생활에서 확대되고 생활과 얼마나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공원을 어떤 형태로 이용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원의 이용욕구가 어떻게 표출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이용되는지 정확한 통계를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다. 특히 도시지역에서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생활권공원의 면적은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이렇게 적은 면적의 공원마저도 적절한 이용에 대한 프로그램의 부재로 인해 긍정적 이용보다는 부정적 이용실태가 빈번하게 표출되고 있다.환경오염의 위험을 세계에 처음으로 경고한 「침묵의 봄」작가로 유명한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 여사의 명문장인 SENSE OF WONDER(경이로움에 대한 감각)에 하고 있는 말은 강렬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책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나는 아이들에게도,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하는가를 고심하는 부모들에게도 "안다"고 하는 것은 "느낀다"라고 하는 것의 절반도 중요하지 않다고 확실히 믿고 있으며, 아이들이 접하는 하나 하나가 지식이나 지혜를 만들어 내는 종자라면 다양한 정서와 풍부한 감수성은 그 종자를 기르는 비옥한 토양이다. 아동기는 그 토양을 경작하는 시기인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각,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에 접했을 때의 감격, 관심, 경탄과 애정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감정이 일단 생기면 그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더욱 잘 알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며, 그와 같이 형성된 지식은 확실하게 몸에 체득되는 것이다. 소화하는 능력이 아직 잘 갖추어지지 않은 아이에게 사실을 억지로 주입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아이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에 길을 열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머리로는 환경문제를 알고 있어도 마음과 몸으로 알고 있지 않으면 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먼저 자연을 사랑하고 그것을 중요시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아이들의 세계는 신선하고 감동으로 넘쳐흐르고 있다. 감동이 꺼져버리지 않는 동안에 어른들도 아이들도 함께 그 감동을 서로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생활주변에서의 공원이용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제공되어야 하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에게 소중한 경험을 전달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여진구생태보전 시민모임 사무국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제3회 아트휀스 디자인 공모전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972+30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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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도시광장Ⅲ - 상하이(上海市)의 인민광장(人民廣場)과 외탄광장(外灘廣場)
    지난 여름 중국을 다녀오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발전하고 있는 그들의 도시 모습에 무엇인가 초조함을 저버릴 수 없었다. 몇년전부터 중국의 변모상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인식들은 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게으르지 않게 관심을 갖고있던 필자 입장에서는 좀더 생산적인 기회 마련에 시간을 놓치고 있는 듯한 안타까움이었다. 그래서 궁리해낸 것이 지난해 11월초에 있었던 한·중 조경설계 작품전시회였다. 그들의 생각과 표현을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필자가 받은 충격을 우리측 인사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한편으론 우리와의 접촉에 자신감을 찾았고, 절치부심하던 올림픽 유치도 성취한 그들이지만 그래도 이제부터는 도시환경문제 개선에 아쉬워할 입장임에 착안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해서 4개월만에 다시 북경을 찾았더니 주로 문혁세대 이후 젊은 작가들로, 작품내용도 놀라울 정도였지만 종합토론에서의 숨길 수 없는 그들의 욕구 표시는 역시 올림픽 개최에 따른 한국에서의 경험적 정보들이었다. 그러면서도 "1998년 이후 중국 전체의 도시에서 6,000여개의 도시광장이 출현하였다"라는 은연중의 과시와 행사 마지막날 북경의 가로조경 사례지 답사에서는 충격적인 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왕부정(王府井)거리 서북쪽 명·청(明·淸) 초기의 황궁 성벽자리를 발굴하여 가로 공원화 하였는데 2.8km 거리에 폭이 약 40여m 되는 구간이었다. 현 지반고에서 2m 정도 낮은 곳에 옛 성벽의 원형을 찾아 선큰광장화 하였고 높낮이의 변화에 따른 각종 수경시설과 시대상을 보여주는 환경 조형물, 섬세한 바닥 포장 등의 다양한 설계내용들이었다. 60세가 넘은 듯한 여사장의 정력적인 안내 설명에 따르면 계획수립에서 설계 기간까지 한달 보름이었고, 시공 6개월만에 마치었다하니 진위 여부에 대한 재확인을 하여야할 정도였다. 오래된 주택가의 철거 과정과 보상비는 그들 체제상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동안 인식되었던 중국, 중국인들이었던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여야할 시간이었다. 마치 비온 후의 숲 속에 버섯이 솟아나듯 새로운 장소의 양적인 출현도 상상을 초월하지만 질적인 내용에서도 그들의 잠재력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10여년 전 필름 속의 중국 모습과 비교하면서, 편의상 신해혁명(申亥革命)을 근대, 문화혁명 이후를 현대사의 시작점이라 가정한다면 과연 오늘의 목표는 무엇이고, 내일의 지향점은 어디까지인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숨가쁘게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이렇게 변모하는 배경 요인 중 변화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곳은 흔히들 광동성(廣東省) 심수라 하지만 이는 경제개발의 전략지점이었고, 정신적 중심도시는 역시 상해시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는 상하이의 도시광장을 더듬어 보기로 하였다. ▲ 상해시 인민광장 - 배경의 건축물들이 화려하게 반사되고 있다 정부청사 앞의 인민광장 상해는 4·5년 전 까지만 하여도 인구 1400만으로 북경, 천진과 함께 중국 3대 도시 중 인구 최대의 도시였다. 그러나 최근 중경(重慶)시가 3090만의 직할시로 분리되면서 최고의 자리를 넘겨주었지만 그래도 1674만의 중앙 직할시로 중국 근대화의 간판이자 현대화의 선두이기도 하다. 근대화의 상징인 손중산(孫中山)과 사상적 지도자인 노신(魯迅)의 옛집(故居)을 기리고 있고 1921년 7월 중국 공산당 제 1차 개최지로서 선진국의 근대 문명과 부닥친 역사성과 함께 개방과 변화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1824년 남경조약(南京條約)에 의해 개항하고 나서야 도시조성이 이루어진 곳으로 그동안 협소한 가로망에 교통체증으로 인상 지워졌던 곳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들에게는 마당로(馬堂路)에 위치한 망명 정부터와 노신공원 안의 윤봉길 의사 현장 등으로 망명자들이 찾아들 듯한 푸근하고 어스름한 분위기의 도시였었다. 뒷골목 그늘 밑에는 웃통벗는 노인들의 장기 두는 모습이 한가로웠고 아파트마다 내 걸린 장대 끝의 빨래들과 주택가 입구마다 내놓은 마통(馬桶)들이 신기롭기만 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들도 90년대 초 였고, 그 이후에는 예원(豫園) 입구의 붉은색 상가 앞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과 강변 외탄(外灘)으로 밀려드는 인파에 상해의 변화는 예측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90년대 말이 되자 허허벌판이던 포동(浦東) 지구에 등소평(鄧小平)의 명에 의해 중국 희망의 지표로 삼았던 동방명주(東方明珠) 탑이 들어서자 이를 신호로한 고층 빌딩들이 우후죽순처럼 솟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은 도시의 면모를 바꾸어 놓은 곳이 바로 상해시의 행정중심인 인민정부인데 동쪽으로는 서장중로(西藏中路)와 북쪽의 남경동로(南京東路)와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다. 정부청사 주변에는 인대(人民代表會議), 정협(政治協商) 건물들과 함께 근대의 우수한 역사적 건축물들이 집중된 지역으로서 공공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중 인민광장은 정부청사 전면에 자리잡고 있는데 면적은 1,626,000m2에 이르고 시중심에서 가장 큰 open space 이기도 하다. 장 태 현 Jang, Tae Hyun·청주대학교 환경학부 조경학전공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공원이용프로그램 ; 공원이용 프로그램의 활성화 방안 - 공원조성 및 관리방안을 중심으로
    들어가며도시공원은 도시에 있어서 대표적 공공시설에 속하는 도시기반시설일 뿐만 아니라 조경대상지 가운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오픈스페이스에 해당한다. 도시공간을 계획, 설계하고 관리하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도시를 보다 쾌적하고 효율적인 생활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계획이나 설계 및 관리가 소수의 전문가 그룹 및 행정기관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보다는 다양한 기법의 연구와 주민들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대도시지역일수록 경제성과 편리성을 추구하는 개발위주의 도시정책을 추진해온 결과 많은 공원녹지공간이 잠식되었으며, 도시화의 역기능적인 요소가 부각되고 환경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된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개발로부터의 보호 또는 보전과 더불어 공원녹지공간을 확충하는 정책을 펴게 된다. 특히, 대도시지역의 경우 공원녹지공간이 부족한 현실을 감안 도시공간에 있어서 양(量)적인 확충과 물리적인 시설계획에 치중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흔히 21세기는 환경(생태)보전과 문화 및 정보의 시대라고 한다. 공원이라는 것이 조경에 의해 자연과 문화가 결합한 공간이라는 태생적 의미(정의)를 돌이켜 볼 때 공원이용프로그램의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의미가 있으리라고 본다. 공원조성 과정 및 이용프로그램 운영 실태도시공원법에 나타난 도시공원의 기능을 살펴보면 도시에 있어서 쾌적한 도시환경을 형성하기 위하여 자연경관을 보호하고, 건전하고 문화적인 도시생활의 확보 즉 시민의 건강·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하기 위한 장소로서 "이용자"를 고려하고 있다.또한 건설교통부에서 제정하여 고시한 조경기준(2000. 6. 20)을 보면 조경을 "생태적, 기능적, 미적으로 조경시설을 배치하고 수목을 식재하는 것"으로 가장 짧으면서도 함축적인 내용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도시공원과 조경의 정의중 "기능"적인 측면은 이용을 전제로 하게 되고 그곳을 이용하는 이용자(시민 또는 주민)가 있게 된다.그러나 그동안의 현실은 공원의 계획 및 설계, 시공(조성), 운영(이용 및 관리)과정에 있어서 이용자의 참여가 배제되었거나 계획 및 설계전 설문조사와 같은 형식적(간접적) 참여에 그쳤으며 대부분 전문가 그룹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공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이에 따라 우선 이글에서는 공원의 계획 및 설계단계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의 주민(이용자)참여 실태와 지방자치화 등 시대적 상황 그리고 서울시의 공원이용프로그램 사례를 통해 그 가능성을 살펴 보고자 한다. 1. 공원계획 및 설계과정일반적으로 공원은 자연환경, 인문·사회환경 등 당해 공원이 입지한 제반여건을 종합분석한 후 기본구상을 하고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때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로부터 설문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많은 고민없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이용자에게 잠재되어 있는 다양한 욕구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규상에 열거되어 있는 공원시설을 물리적 공간위에 배치하는 시설위주의 계획을 함으로써 대부분 천편 일률적인 공원설계에 그치게 된다.그리고 분석에서부터 기본구상(기본계획)까지는 그래도 비교적 진행이 잘되고 있으나 기본 및 실시설계기간의 부족과 이용 및 관리부문의 취약으로 실제 공원이 조성되었을 경우 당초의 기대에는 훨씬 못미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이용자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예를 들면, 야외무대를 계획하였는데 실제 공연 등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조명 및 음향시설의 미흡, 야외무대 주재료와 어울리지 않는 스탠드와 관람석 벤치 등이 시공되고, 수질·수생식물·수서곤충 및 어류 등 생물서식공간으로서의 기본요건이 결여된 외형상의 디자인만을 중시한 생태연못, 뚜렷한 주제나 특성없이 교목과 관목 및 초화류를 집단적으로 식재한 자연학습원 등에서 실제 공원이용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를 발견하게 된다.이와 같은 결과는 계획 및 설계에 있어서 feed back과정과 대부분의 경우 이용후 평가과정이 결여 되거나 미흡한데서 기인하게 된다.2. 공원조성(사업시행) 과정공원은 대표적 공공시설로서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와 정부투자기관 등 공공기관이 사업시행 주체가 되므로 공원조성(사업시행) 과정에 있어서는 명예감독관제도와 같은 형식적인 참여 이외에는 실질적인 주민참여는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최근 서울시에서는 시설한지 오래되어 노후된 어린이공원을 주민참여형 방법으로 재정비하면서 계획 및 설계 과정은 물론 공원조성과정에 주민참여방법을 도입하고 있으며 조성이후에는 자율관리모임을 구성하여 관리운영과정에도 주민참여가 이루어지도록 계획하고 있다. 3. 공원운영(이용 및 관리) 과정바야흐로 지방자치시대에 있어서 공원·이용 및 관리분야는 주민참여를 가장 많이 이끌어 낼 수 있는 분야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자연감상 및 산책 등 주로 정적인 위락기능 위주였으나 점차 동적이고 능동적인 위락 활동이 증가하면서 공원관리부서에서도 잔디밭 개방, 전시회 및 공연장으로서의 공원기능 확대, 무료야외예식장소로의 활용 등 시민에게 공원이용을 확대하게 되지만 주로 한시적이며 이벤트적인 이용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그러다가 90년대 후반인 `98년에 이르러서야 남산야외식물원의 자연학습프로그램, 길동자연생태공원의 생태관찰프로그램과 같은 자연환경 해설 및 체험프로그램 등이 도입되어 현재까지 정기적인 프로그램으로 지속 운영되고 있다.그리고 2000년도에는 인천호프집 사고이후 청소년 문화공간 확충의 일환으로 천호동공원내 관리사무실 공간의 일부를 활용하여 청소년문화기획자의 자문을 받아 만화·영상·댄스·청소년신문 등 청소년 전용 문화공간(청소년미디어센터)을 조성하면서 이벤트성이 아닌 정기적인 청소년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또한 자연자원인 근교산(남산·아차산·관악산도시자연공원)에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등산을 하면서 전문가가 역사·문화와 자연생태를 해설하는 숲속여행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여 근교산의 가치 재발견 및 자연사랑의 계기를 만들었으며, 여의도공원에서는 일반대중과 함께 하려는 유명 예술가와 함께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인 문화예술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이와 같이 도시공원내에서 일회성 내지는 이벤트성이 아닌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공원이용프로그램의 운영사례를 통하여 공원문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오 순 환 Oh, Soon Hwan 서울시청 공원녹지과 자연공원팀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