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대구 칠성 주거환경개선지구 설계경기 당선작
    ⊙ 위치 :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2가 149-1번지 일원 ⊙ 지역지구 : 주거환경개선지구, 최저고도지구 ⊙ 대지면적 : 57,494㎡(17,392평)
  • 조경비평의 역할과 과제
    다시, 조경비평의 이름을 부르다 조경비평이라는 네 글자의 가능성에 무작정 기대어 쓴 어설프고 무리한 구조의 석사논문에, 관대하신 심사 교수님들은 도장을 찍어주시고 말았다. 꼭 10년 전의 일이다. "작가도 없고 작품도 없고 사회적 인정도 없는데 도대체 비평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라는 주변의 의혹을 듬뿍 받은 이 논문에서 나는 조경비평을 이렇게 정의했다: 조경비평이란 "조경가들이 창조한 비평의 소재, 즉 조경 작품이나 조경가의 경향, 조경계, 조경과 사회의 관계 등을 대상으로 하여 비평을 전문적으로 하는 조경비평가나 식견과 통찰력을 가진 조경사가, 조경미학자 등이 그 대상에 대해 비판과 찬사, 혹은 비교와 감상 등을 하기 위해 분석, 기술, 해석, 평가하는 행위"이며, "환경의 형성 혹은 개선에 영향을 주려는 행동으로서 그 시대의 삶과 조경을 반영하는 문화 행위의 궤적이다." 이 엉성한 정의를 포함하여 논문에서는 조경비평의 필요성, 대상, 주체, 방법(론) 등과 같은 조경비평의 전체적인 틀이 논의되었는데, 그 내용의 많은 부분은 아쉬운 대로 미학, 문학, 건축 등 관련 분야의 비평 이론에서 빌려 온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논문의 행간을 통해 말하고자 애썼던 점은 "조경비평을 하자!"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선언적인 주장이었다. 결국 나의 논문은 "있지도 않은" 조경비평이라는 것을 하자는 주장을 펴기 위한 도구였던 셈이다. 조경의 세계에서 비평은 대중과 전문가의 가교, 조경 작품의 내적 의미 해석, 상상력과 실험정신을 담은 디자인 교육, 조경사의 궤적을 잇는 매듭 등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전략적 행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10년이 흐른 지금, "그 있지도 않던" 조경비평은 어떤 지형을 그리며 조경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가? 조경비평의 실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은 미력하나마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행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필자와 김영대(영남대 교수), 조경진(서울시립대 교수, 당시 펜실바니아대학교 박사과정), 차태욱(Hargreaves Associates 근무, 당시 Oikos 근무), 민성훈(증권 컨설턴트, 당시 조경설계 서안 근무)이 "조경비평 동인 69"라는 그룹을 함께 꾸리며 조경비평이 생산되고 소통되는 공공영역(public sphere)을 마련하기 위한 대안적 매체의 발간을 기도했으나 불발에 그쳤다. 1998년, 조경의 대안적 담론 공간을 모색하며 조경진, 박승진(조경설계 서안), 그리고 필자가 공동편집장으로 참여하고 정영선(조경설계 서안)이 발행을 맡아 {Locus}를 창간했다. 작품의 빈곤, 이론과 비평의 부재 속에서 허덕여 온 조경의 상황을 비평의 장을 통해 해소하며 현실과 대화하는 조경비평의 실천 환경을 구축한다는 선언으로 시작된 {Locus}는 2000년에는 "조경과 비평"이라는 부제를 단 2호를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다층의 독자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유일의 조경 잡지 {환경과 조경}까지도 한국 조경과 비평 사이의 함수를 종래와는 다른 시각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2002년부터 거의 매달 실리고 있는 "조경비평"이라는 타이틀의 꼭지와 같은 해에 시도된 "조경비평 공모전"이 그 단적인 예이다. 또 이번 호에서 현 단계의 조경비평을 진단하는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조경비평이 그 필요성만큼은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만하다. 그렇다면, 있지도 않던 조경비평은 이제 있는 것인가? 긍정의 답으로 대응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난맥은 우선 그간 발표되었던 비평들이 심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감상문 내지 답사기, 찬사 일변도의 주례 비평, 서구의 유행 이론을 소개하고 전파하는 글, 특정 이론의 적용에 매몰된 원론 비평 등이 조경비평이라는 같은 문패를 쓰며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조경비평에 기대되는 역할의 스펙트럼이 지나치게 폭 넓거나 아니면 조경비평 자체의 실체가 없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그 비평들에 대한 피드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은 조경비평의 아이덴터티 자체에 의문을 갖게 하는 또 하나의 난점이다.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비평은 "창작→작품→향수→감상→비평→창작"이 반복되는 순환적 구조 속에서 기능할 때 그 의미를 보장받는다. 즉 비평은 이 순환적 구조의 각 부분에 영향을 미칠 때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나 작품과 상호 관련을 맺지 못하는 외마디 외침으로서의 조경비평은 공허한 일에 다름 아니다. 조경비평 자체에 대한 원론적 논의보다는 활발한 실제 비평(practical criticism)이 요청되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귀중한 지면을 소비해가며 조경비평의 현 단계를 다시 짚어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우리는 원론적인 질문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왜 조경비평인가?" 이것은 조경비평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질문이자 그 "역할"에 대한 물음이다. 비평의 역할은 비평이 작품과 맺고 있는 함수 관계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조경비평은 ○○이다"라는 정태적 정의를 뛰어넘는, "조경비평은 ○○을 한다/할 수 있다/해야 한다"는 역동적 정의, 곧 조경비평의 역할이다. 왜 조경비평인가? 역할 1 : 조경비평은 조경이론의 실천이다 우리를 주눅들게 만드는 거창한 이름, 이론(theory). 곁가지를 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계와 사물에 대한 생각―개념―들을 체계화한 것이 이론이다. 이론은 개념의 전체집합인 것이다. 우리는 삶의 조건, 즉 세계와 사물과 환경과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이라는 것을 하며 산다. 즉 개념의 생산은 무의식적인 행위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개념이 모여 만들어진 이론은 개인의 경계를 넘어서 소통의 매개체를 통과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소통을 위해 대게 말이나 글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데, 말이나 글의 형태로 번역된 이론은 사실을 기술(description)하는 형식, 의미를 해석(interpretation)하는 형식, 그리고 가치를 평가(evaluation)하는 형식, 이 세 가지 범주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조경이론은 조경이라는 문화 행위와 그 결과물에 대한 여러 가지 형태의 생각이며, 그것은 기술, 해석, 평가라는 형식을 통해 구체화된다. 조경의 문화적 궤적을 기술하는 것이 조경사의 역할이라면, 조경비평은 동시대의 조경 작품, 작가, 쟁점 등이 지니는 의미를 해석하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조경비평의 주제가 현재이고 조경사의 주제가 과거라면, 조경비평은 훗날 역사가의 사료가 된다. 현재를 조명할 수 있는 역사의식과 비평정신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이론의 구체적 형태로서의 역사와 비평은 동반자의 관계에 위치한다. 이처럼 조경비평은 조경이론의 가장 실천적인 양상으로 기능하면서 조경의 독자적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물리학 없이 자연을 알 수 없듯이, 미술을 알기 위해서는 미술비평을 지나칠 수 없듯이, 조경비평은 조경을 알기 위한 조경 고유의 사고 체계이자 지식 체계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최고의 비평가로 인정받고 있는 노드롭 프라이(Northrop Frye)는 "비평은 말을 할 수 있지만, 모든 예술은 벙어리"라는 이유로 비평의 존재 이유를 명료하게 제시한다. 조경설계나 계획의 산물로 구현된 작품과 그 과정 중의 일련의 행위는 조경이론의 가장 직접적인 실천 양상이다. 그러나 조경비평은 그러한 과정과 산물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알 수 없는 것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실천이다. 프라이의 말처럼, 하나의 작품은 새로운 비평가를 만나는 순간 새로운 입을 연다. 조경비평은 조경이론을 실천하는 행위이자, 이원론적 긴장 관계 속에서 대치해 온 조경이론과 조경실천을 매개하고 중개하는 조정의 전략인 것이다. 이러한 조경비평이 상실되거나 부재함으로써 발생하는 난맥은 한국 조경의 풍경 여러 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가령, 지난 2월 중순에 발표된 "서울시청 앞 광장 조성 설계 공모"의 결과와 이에 대한 반응은 이론과 실천과 비평이 서로 관계를 맺지 못할 때 일어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잘 드러내 준다. 당선작과 우수작, 그리고 세 편의 가작 작품은 겉으로 내세운 개념이나 그것을 구현한 형태 언어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광장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즉 이론―에서는 넓은 면적의 공통분모를 갖는다. 현대 도시의 문제와 성격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인지 아니면 렘 콜하스(Rem Koolhaas)나 West8 등이 주도하고 있는 최근의 패션에 무비판적으로 동승한 결과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이 작품들이 설계를 통해 실천하고자 한 것은 도시 공간의 일시성, 불확정성, 가변성을 설계를 통해 수용해야 한다는 이론이라는 점에서만큼은 서로 엇비슷한 것이다. 사건이 지배하는 리좀(rhizome)과도 같은 도시 공간에 가변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디자인 코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시도했다고 판단되는 "빛의 광장"이 당선작으로 발표되고, 유사한 전략에 기초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조경 설계의 형태적 요소들을 사족처럼 덧붙인 다른 네 팀의 작품들이 우수작과 가작에 머물렀다는 점은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조경비평이 조경이론을 비판적으로 실천하는 역할을 하며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 지점에 존재한다. 이 경우에 조경비평의 역할은 우선 이들 작품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기대고 있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류의 철학 이론이 서울시청 앞 광장이라는 도시 공간과 그 주변 맥락에 적합한 것인 지 엄밀히 따져보는 데 있다. 조경비평에 맡겨진 또 다른 역할은 당선작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이 염두에 둔 이론이 어떠한 설계 전략을 통해 실천되어 조경―또는 건축일 수도 있고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일 수도 있다―의 경계 밖에서, 즉 일상의 세계에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지 해석하고 평가하는데 있다. 이는 해당 작품의 질적 우열을 점검하는 평가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삶으로부터 고립된 작품과 그것에 대한 담론을 전문가들의 폐쇄적인 영토에서 일상의 장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조경 행위를 사회화하는, 조경비평의 실천적 역할이다. 이러한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언론과 대중―심지어 조경 전문가도―이 동시대 조경의 사회적 발언으로부터 유리된 채 LCD 모니터의 설치 비용이나 유지 관리 문제만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엉뚱한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역할 2: 조경비평은 조경실천을 이론화하는 작업이다 인간과 땅이 세계를 살아가며 맺는 관계의 문화 행위를 조경이라고 한다면, 조경의 목적은 그러한 관계의 지혜로운 실천(practice)이다. 계획, 설계, 시공은 그러한 실천의 단계나 과정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다. 조경실천은 이러한 과정을 일컫는 동시에 조경가의 머리와 손을 통해 생산되는 조경 작품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조경실천의 결과물, 즉 조경 작품은 일상 속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일상과 소통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조경가가 생산하는 조경 작품은 그것만으로는 물체에 불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물적 존재에서, 예를 들자면, 즐거움을 얻기도 하고 그것에 불평을 쏟아내기도 하면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우리는 조경실천에 대해 끊임없이 일종의 잠재적 비평을 하기 마련인 것이다. 이러한 형식의 산발적 반응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생각, 즉 이론을 요청한다. 이러한 지점이 바로 조경실천이 이론과 만나는 곳이며, 조경실천과 조경이론의 접점에서 매개와 중개의 역할을 하는 조경비평의 활동 공간이다. 조경비평은 물체로 던져진 조경 작품의 가치와 의미를 지역적 조건이나 역사적 맥락과 같은 구체적인 삶의 정황 속에 위치시킴으로써―즉 이론화함으로써― 현실로부터 고립된―즉 물적 존재에 불과한― 조경작품을 사회적 차원으로 이행시키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조경가나 조경 작품의 독백과도 같은 발언을 소통 가능한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일상의 삶과 연결시킨다는 말이다. 이처럼 조경실천은 조경비평이라는 터널을 통과하면서 이론화될 수 있는 것이다. 조경 동네의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다. "설계 잘 하고 시공 제대로 해서 좋은 작품 만들면 됐지, 어려운 말장난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는 식의 틀에 박힌 도식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도식은 조경에 이론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론무용론"과 이론은 실천에 유용한 수단으로서나 필요하다는 "도구주의적 이론론"으로 양분된다. 우리는 이러한 오해가 지난 30년 간의 한국 조경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분야 내적으로도 성숙시키지 못한 원인의 하나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흔히 한국 조경에 대해 퍼붓는, "작품도 없고, 작가도 없다"는 불만이나 "조경은 건축에 치이기 일쑤고, 보통 사람들은 아직도 조경을 그저 나무 심는 일이라고 여긴다"는 불평은 실천과 이론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소급되는 문제인 것이다. 한국 현대 조경이 법이나 제도의 개정과 같은 문제 외에 작품이나 그것의 철학을 쟁점화한 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작품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이른바 전통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태라는 것에 대해서도, 형태와 의미의 관계라는 원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는 제대로 된 토론조차 벌인 적이 없지 않은가. 이는 곧 이론을 통해 실천을 교정하고 정련하고 확장시키지 못했음을 말한다. 이러한 양상의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개입해야 할 역할이 비평에 있지만, 우리는 채 비평의 역할을 인식하지 못해 왔다. 소위 조경 선진국이라는 이방 국가들의 사정도 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론에 대한 실천의 오해는 거슬러 올라가면 서구 모더니티 정신의 이원론적 세계관으로까지 소급되는 골 깊은 문제임을 새삼 거론하기에는 지면의 넓이가 충분하지 않다. 다만 이론의 공백이 실천의 부재를 낳기까지 한 실례를 현대 조경의 역사 속에서 잠시 들춰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모더니즘 조경 이야기이다. 1980년대 말 이후 조경이론의 르네상스를 기도하는 흐름이 일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경의 담론 속에서 모더니즘이 거론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를 단순히 해석하면 조경에서 모더니즘 이론이 공백 상태였다는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모더니즘 조경 자체가 없었다는 것, 실천이 부재했음을 뜻한다. 현대적 의미의 조경이 탄생한 때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이지만 바로 그 때―미술과 건축이 모더니즘을 실험하고 주장하던 바로 그 때―부터 조경이 건축이나 미술의 주변부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모더니즘 조경은 존재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최근의 이론 연구들은 모더니즘 조경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20세기의 개막을 기점으로 고개를 감추었던 조경에 대한 이론을 발굴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의 성과로 크리스토퍼 터나드, 댄 카일리, 제임스 로즈, 가렛 엑보, 플레춰 스틸 등의 알려지지 않은 글과 작품들이 모더니즘의 틀로 재조명되었고, 거의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던 1920년대의 프랑스 모더니즘 조경이 재발견되기도 했다. 모더니즘 조경이 존재했음은 이처럼 최근의 이론적 작업을 통해 밝혀졌다. 고쳐 말하자면, 모더니즘 조경은 그 실천이 부재했던 것이 아니라 이론의 공백이 마치 실천이 없었던 것처럼 역사를 구성하게 한, 이론과 실천의 잘못된 함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이는 비단 과거의, 다른 나라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조경실천을 이론화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소통시켜야 할 조경비평의 역할이 존재하는 공간이 어디인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조경의 서른 살을 기념하던 2002년, 우리는 선유도공원이라는 소중한 실천을 만났다. 선유도공원을 놓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로는, 우선 그것이 폐허가 된 부지를 재활용하여 종래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공원이라는 점이 있을 것이다. 피터 라츠(Peter Latz)의 되스부르그 노드 파크(Duisburg Nord Park)를 거의 베끼다시피 한 모방작이라는 비난도 있을 수 있다. 한강이라는 환경과 선유도 자체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작품이지 조경가의 설계 자체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서울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고 드라마나 CF의 단골 배경이 되고 있는 걸 보면 성공한 공원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선유도공원이라는 조경실천은 더 많은 이론적 쟁점을 지닌 채 비평의 역할을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대착오적 녹색 신화를 극복하고 화장술적 미학을 초월하고 있는 선유도공원에서 우리는 동시대 한국 조경 실천을 이론화할 수 있는 다양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도시의 진화에 따라 발생한 포스트-인더스트리얼(post-industrial) 사이트의 문제, 대지의 역사적 층위를 살린 입체적 공간의 구축, 형태와 의미와 기능에 도전하는 물성의 미학 등과 같은 쟁점은 한국 조경에 새로운 이론의 손길을 요청한다. 조경실천이 생산한 선유도공원이라는 물적 존재를 조경 내부의 차원은 물론 사회적 차원으로도 소통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는 이론화의 과업이 조경비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한국 조경은 아직 선유도공원에 다각도의 비평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 실천과 이론의 경계에 마련된 비평의 공간을 직시해야 할 때이다. … 후략 …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배정한 Pae, Jeong Hann·단국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교수
  • 강남구 근린공원 이용실태와 만족 및 요구도 조사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절제의 아름다움, 의정부 일식당 삿뽀로 실내조경
    - 설계 및 시공 : 태백그린원(대표 방성원, 소장 김수천)- 시공기간 : 2002년 12월 10일 ∼ 27일 거대한 자연을 고스란히 축소하여 자기집 앞마당에 조성하기를 즐겼던 일본의 정원에서는 바위 하나가 섬이 되고, 모래위를 지나쳐간 갈퀴의 흔적이 계류가 되는 등 디테일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바다건너 이상향을 그리기도 하고, 우주의 이치를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정원을 이루는 사물 하나 하나에 대해 자연의 뜻과 의미를 담아서 감상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정원을 신성하고 정갈한 장소로 여기기도 했다. 수목과 돌을 이용하여 교묘한 비례와 배열을 통해 신비함과 독특함을 연출함으로써 일본의 정원은 세계적인 극찬을 받고 있다. 정원과 일본이라는 연관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조화로운 표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식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며 비교적 규모있는 실내 조경을 느낄 수 있는 삿뽀로는 의정부에 위치한 일식당으로, 실내 조경의 디테일한 설계·시공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절제된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독자들의 실내 조경에 대한 관심에 부응하는 매우 좋은 사례이다. 이곳은 건축물로 진입하면서부터 연못과 1층 높이의 대나무 몇그루가 밀식되어 있는 것을 보게된다. 입구뿐만이 아니다. 실내의 어디를 가더라도 조경 공간을 접할 수 있도록 풍부하게 조성되었다. 이것은 건축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조경에 대한 배려를 하였고, 객실이 적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넓은 공간을 조경 공간에 할애하였으며, 실내조경 설계·시공업자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하는 등 상당한 지원속에서 작업이 진행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절제의 아름다움>"일반인이 보기에는 많이 심으면 좋은 줄 알지만 그렇게 되면 정제된 미가 떨어진다. " 외부조경과 달리 실내조경은 디테일에 대한 감상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이곳에는 1층과 2층 모두에 친수공간을 마련하고 그 주변으로 실내조경수가 식재되어 있는데 크고 작은 나무들이 세심한 배치를 통해 조화로움을 보여주고 있다.또한 주변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나 주변 객실의 시선이 차단되지 않도록 연못 주변의 조경수목들의 높이를 계획하였으며, 분재와 측면배치를 하면서도 공간의 조화로움도 잃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자연미를 유지해 주는 소재 선택>연못의 호안은 애초에 호박돌로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자연미를 살리기 위해 호박돌을 대신 하여 제주도의 화산석을 직접 사들여와 사용했다. 호박돌의 매끈한 질감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 화산석의 비교적 거친 질감에 의해 극복되었다. 연못의 바닥은 혜미석으로 깔렸고, 연못 주변의 식재지 일부도 혜미석으로 채울 계획이었으나 흰색의 돌이 도드라져 인위적인 느낌을 줄 것을 우려하여 화산석으로 대체 하였다.건물 입구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실내 조경수는 조화를 배제하고 실제 살아있는 식물을 식재하였다. 또한 식재된 모든 식물의 천장에는 조명을 설치하여 식물의 생육을 돕는 기능을 하며, 아울러 외부보다 비교적 어두운 실내에서 식물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보조 기능도 하고 있다. <실내조경 재료>이곳에 식재된 식물종은 산호수, 스파티필름, 황금사철, 콤펙타, 파초일엽 등 총 38종이며, 내음성과 관상가치가 수종선택의 필수조건이 된다. 토심은 약 25㎝ 정도를 확보해 주었는데, 이것은 실내라는 특성상 깊은 토심의 확보가 힘들기 때문이다. 실내조경에 사용될 식물들은 옮겨심기 전에 화분 식재 과정을 거치게 된다. 실내의 식재 토양보다 더 힘든 생육조건을 가지는 좁은 화분에서 자라게 되면, 실내에 식재할 때 충분한 토심의 확보가 되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그러나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대나무는 이런 실내조경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았다. 한 외부조경 업체에서 시공한 것인데, 현재 잎이 마르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외부 공간과는 달리 실내에 대나무를 식재하기 위해서는 우선 화분 식재를 하고 옮겨심어 주어야 하며, 동해방지와 수분의 급격한 증발을 억제하기 위해 잎에 클라우드커버를 살포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늘어나는 실내조경 시장에 맞추어 전문적인 실내조경 인력이 중요한 실정임을 느끼게 한다.식물 외에 석물의 도입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식물재료의 자연성에 인공성이 가미되어 단순한 재료구성을 극복하는 역할을 하고있으며, 무엇보다 전통적인 요소로서의 기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도입된 석물에는 물메, 석등, 현미석, 대나무 화석 등이 있다. <디테일에 대한 관심을 키울 필요성>어떤 식물이냐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고, 이곳을 배경으로 가족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잘 모르다가 실제 조성된 사례를 보면 반응이 달라지더라는 것이 실내조경을 하고 계신 분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우리나라도 점점 실내조경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곧 이 분야의 시장확대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조경 디테일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고 실내조경에 관한 책이나 시공사례를 찾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외국의 좋은 사례들을 보면서 관심을 키워온 일반 사람들의 눈높이에 부응할 수 있는 한국의 실내조경업계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화분과 꽃꽂이 정도의 실내조경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실내조경업의 가능성을 위해 세심한 관심과 개발 및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 이스탄불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여수-고흥간 연륙·연도교 주변 관광 및 지역개발 기본계획
    바다위 다수 섬이 떠 있는 다도해 지역은 천혜의 아름다운 경관자원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자체로 훌륭한 관광상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본 지역 여수-고흥간 지역은 남다도해 관광 권역으로서 수려한 해안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도서지역이 하나의 교량군으로 연결되었을 시 개선된 교통환경과 해양자원/장대교 등을 활용하여 해양관광의 명소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이에 본 계획에서는 연육·연도교 주변 관광지 개발 기본구상을 도출하기까지 이 지역의 특징적 경관자원 활용을 위해 도입했던 설계기법 및 기본계획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설문 및 분석본 조사는 한국갤럽을 통해 조사된 것으로 지역 개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항을 세부적으로 분석하므로써 지역 관광개발의 방향설정을 위한 기초자료로 삼고자 했다.지역 개발에 관한 주민의 의견은 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지역개발을 우해 휴게소, 특산물 판매장 등의 시설, 마리나, 수족관 등의 해양 위락 시설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소규모 시설을 운영, 각종 시설에 종사원으로 근무하는 형태로서 지역개발에 참여하고 싶은 것으로 나타났다.따라서 관광지 개발시 주민을 위한 지역개발 차원에서 참여사업을 다양하게 도입하도록 계획에 반영토록 했다. 조사분석 내용· 선호하는 지역 개발의 유형 - 최대한 자연환경을 유지하면서 소규모 시설 위주의 개발 : 49.1% - 적극적인 대단위 시설 위주의 개발 : 47.39%· 지역개발과 관련, 운영하고 싶은 자영업의 유형 - 60%가 휴게소, 매점, 특산물, 판매점과 같은 판매업을 가장 선호 - 남자 : 판매업, 숙박업 - 여자 : 식음료업 높이 선호 SWOT 분석· 천혜의 양호한 다도해 경관· 역사관광자원 및 해양자원· 대도시와 접근성 미약· 자원간 연계 및 특성화 미비· 남해안 개발계획의 중요성 부각· 지역개발 및 접근체계의 개선· 개발로 인한 주변과의 부조화· 해양환경악화 및 오염 우려 여건의 분석- 경관자원 조사계획지역은 여러섬들이 떠있는 다도해 지역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창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관을 극대화시키는 지점이 어느 부분에 존재하는지 조사하였다. 조사결과 계획도로가 통과하는 섬은 경관자원이 충분한 장소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경관자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관광루트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였다.본 경관자원조사 방법론에 관해서는 일본 스기야마 교수가 총괄하였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그린핑거들의 꿈, 필라델피아 플라워 쇼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2100 Kalakaua Avenue
    · 공사명 : 2100 칼라카우아 에비뉴(2100 Kalakaua Avenue)· 공사 위치 : 2100 칼라카우아 에비뉴, 와이키키, 하와이· 총공사 면적 : 약3,000평· 총공사 기간 : 1999-2002년 11월· 조경 설계/감리 : 벨트 콜린스 하와이 (Belt Collins, Hawaii)· 조경 디자이너 : 마이클 테리 / 김 용기 (Mike Terry / Yonggi Kim)· 건축 : 에잇 인크 (eight inc.), 하와이 & 샌프란시스코· 발주처 : 호누 그룹, 하와이 (Honu Group, Hawaii) Photo by Romeo Collado <공사 개요>2100 Kalakaua Avenue 프로젝트는 해변 관광지로 유명한 미국 하와이주의 와이키키 지역의 초입에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공사는 세계 최고급 리테일 상점을 개발한다는 목표아래 1999년 Honu 개발회사의 발주로 디자인팀을 구성하여 공사가 시작 되었다 (사진 1, 2, 3참조). 약 1년 반의 설계기간과 약 2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2년 11월에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와이키키에 문을 열었다. 총 개발 면적은 대략 3,000여평 정도이며 현재 구찌, 샤넬, 티파니, 이브생 로랑 등등의 고급 의류/보석 업체들이 하와이 모티브를 컨셉으로 설계된 3층 건물에 입주하고 있으며, 이들 가게 앞에 펼쳐진 보행자 도로는 와이키키를 한 축 (약 2km) 으로 호텔과 상점 그리고 그외 많은 편의 시설을 연결하는 칼라카우아 에비뉴 (Kalakaua Avenue)의 초입지점에 보행자 도로와 소규모 도심 공원의 기능을 겸한 보행자 공원 형태로 설계되어졌다 (사진 4, 5 ,6, ,7, 8, 9참조).벨트 콜린스의 조경 건축가인 마이클 테리와 필자에 의해 디자인된 이 보행자 도심 공원은 와이키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에게 앉아서 대화를 하거나 모이는곳 또는 샤핑을 하면서 휴식을 취할수 있는 곳으로 설계되어졌으며 또한 딱딱하고 아키텍다닉 (architectonic) 한 건축 건물 형태와 배치 그리고 건물 외관의 이미지를 소프튼 (soften) 하게 하기위한 보행자 거리의 아크형의 동선을 적용하였으며, 그리고 역시 건물의 수직적인 외관 디자인을 시각적으로 부드럽게 서포트 할수 있는 버티칼 랜드스케입 요소 (vertical landscape element) 로써 하와이에서 널리 보급되어 있는 멍키팟나무와 레인보우 샤워 나무 그리고 야자수를 이용했다. 잔디가 입힌 약 4피트 정도의 불규칙한 랜드스케입 마운딩 (landscape mounding 사진 6 참조)들이 차량 도로와 보행자 도로를 나누는 비주얼 배리어로 (visual barrier)써 사용되어 졌다. 시공 공사가 완료된후에는 설계목적에 부합되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하고 있으며 쇼핑에 지친 관광객들에게 그늘과 함께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 9, 12, 16참조). <조경 디자인>2100 Kalakaua의 조경 디자인 주제는 주 건축 건물의 주제와 동일한 하와이의 모티브에서 컨셉을 얻은 하와이언 Urban Resort Street & Park 이며 이곳에 사용된 tension-edge water feature, granite benches, 티키 토치 (tiki torches), 라임스톤 패이빙 (limestone paving) 그리고 2미터가 넘는 스토리 텔러 조각과 같은 작은 요소 (element) 들은 이곳 거주자뿐만 아니라 관광객에게 하와이의 정취를 느끼도록 함과 동시에 Urban resort street & park에 부합되는 요소로써 사용 설계되어졌다.하와이가 아열대의 섬이라는 특성상 조경 디자인의 주제에 가장 많이 쓰이는 요소로는 물 (water) 을 들수 있으며 와이키키에서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서고 목포수나 연못, 분수등을 쉽게 마추치게 된다. 그리고 와이키키 거리의 밤을 밝혀주는 것은 Tiki Torch라고 불리우는 횃불로써 하와이 원주민이 고대부터 밤에 바닷가로 고기를 잡으러 갈때 쓰던 도구였으나 지금은 일몰후에 와이키키 거리나 해변 공원 또는 정원을 밝히는 휼륭한 도구로써 이용되어지고 있다 (사진 9 참조). 이는 또한 관광객이 와이키키를 거닐때 가장 이국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요소중에 하나이다.와이키키를 걸으면서 바닥 패이빙 (paving) 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와이키키를 가로지르는 대략 2킬로미터의 길이 거의 동일한 패이빙 머터리얼로 된것을 볼수 있을것이다 (사진 20 참조). 가장 많이 쓰인 재료는 타일조각이나 각 호텔이나 해변 공원 또는 몇몇 고급 상점앞에는 플래그 스톤 (flagstone pattern) 패턴의 라임스톤을 볼수 있다 (사진 11 참조). 가격면에서는 상당히 비싼 편이나 소프한 느낌을 주며 이국적인 이미지를 제공하는 측면에서는 가장 인기가 있다고 볼수 있다.또한 2100 칼라카우아 공사에는 약 2미터 10센티미터정도 높이의 하와이언 여성 형태의 스토리 텔러 (story teller)가 있으며 이것은 하와이만의 독특한 문화가 담겨져 있는 토속적인 요소라고 볼수 있다 (사진 10참조).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에 주저없이 선택하는 장소이며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중요한 요소라 할수 있다. 스토리 텔러에 대해 간략히 얘기하면, 고대 하와이와 근대의 하와이 역사를 잇는 중요한 매개체는 하와이 여성들의 입으로 내려오는 구전 역사 (Oral History)로써 전해졌으며 하와이의 역사에서 여성들은 항상 진실과 현명함을 지키는 요소로써 간주되어져 왔다. 이러한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에서 스토리텔러의 상징성은 하와이의 전통과 문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볼수 있다. 많은 대규모 고급 조경 설계에 자주 사용되며2100 칼라카우아 공사에 설계되어진 스토리 텔러의 상징성도 여기에 부합된다고 볼수 있다. <디자인 커뮤니케이션과 식재 재료에 대해>우선 2100 칼라카우아 조경설계는 개발업자이며 건축가인 동시에 건물주인 클라이언트의 항시 변하는 취향에 따라 1년반에 걸쳐 약 10여번의 크고 작은 조경 설계 변경을 거쳤다. 와이키키에는 소위 미화위원회라는 시소속의 단체가 있어서 (시의원과 예술가등이 다수 참여) 건물을 개발하거나 증축할때는 개발업자가 이들로 부터 디자인 리뷰를 받고 허가를 받은후에 시공에 들어갈수있다. 2100 칼라카우아 공사는 건물주의 약간은 독특한(?) 취향으로 인해 건물뿐아니라 조경공사에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으며 이로인한 공사의 허가 관계로 상당한 시간이 지연되어지기도 했다. 와이키키 미화위원회는 이건물이 와이키키 초입에 들어서는 관계로 다양한 이국적인 화초와 야자수 그리고 칼라풀한 나무들을 심을것을 요구했으나 건물주의 상반된 견해 그리고 심플한 것이 더 어울린다는 건물주 디자인 의견에 따라 조경 공사는 몇달의 시간지체을 가지기도 했다. 결국엔 건물주의 심플한 조경 디자인으로의 허가가 나왔으며 건물주는 하와이섬을 직접 돌며 잘생긴 나무들을 직접 골라 사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2100 칼라카우아 공사에 쓰인 식재 재료는 한국에서는 생소한 열대 식물인 멍키팟 (Monkeypod Tree - 사진 19), 레인보우 샤워 (Rainbow Shower Tree), 하와이의 상징이기도하며 목에 거는 레이 (Lei)로 사용되어지는 플러메리아 (Plumeria) 나무 그리고 야자수가 식재 되었으며 하와이에서 가장 널리 애용되어지는 로아이 (Lauae) 라는 그라운드커버가 액센트로써 보행자 도로를 따라 군데군데 군식되어졌다. 또한 열대 식물이며 아름다운 꽃 색깔을 자랑하는 보우겐빌리아 (Bougainvillea 사진 18)가 트롤리 정거장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무궁화로 알려진 하이비스커스가 건물의 프로퍼티 경계선 (property line)을 긋는 헤지(hedge)로 사용되어졌다. 김 용 기 Yonggi KimBelt Collins, Hawaii, ASLA
  • 화곡 대우 그랜드월드
    <사업개요 >. 대지면적 : 150,618.129M2(약 45,640평). 세대수 : 2,176 세대. 조경면적 : 45,394.31M2(약 13,750평). 준공일 : 2002. 10. 31.. 시공사 : (주)대우건설 조경담당 김순분 차장, 최병호 차장. 조경설계 : (주)그룹·한(박명권 소장, 최철호 실장, 유한건, 서미영). 조경공사 : 동남산업개발(주), (주)한일환경디자인, 청우개발 <건축의 틀 깨기: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처음 이 단지의 건축 배치도를 보았을 때, 우리는 한동안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기존의 배치안은 그야말로 성냥갑을 나란히 세워 놓은 것 같은 동 배치에다가, 그 동들 사이로는 온통 아스팔트로 뒤덮인 주차장만이 가득한 최악의 조건이었다.대부분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들은 층고가 보통 20층 이상이어서 인동간격이 비교적 넓은데 반하여, 이 단지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하여 층고를 15층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바람에 동과 동 사이에 양면 주차장을 설치하고 나면, 고작해야 동 앞면, 뒷면에 얇은 띠 모양의 녹지밖에 생기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이 답답한 건축의 직선들을 흐트러뜨리기로 하였다.맨 처음 단지 중앙을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주동선이 S자 곡선을 그리도록 구불구불하게 조정하였다.대부분의 건축가들은 단지 내 도로를 계획할 때 교통전문회사의 자문을 토대로 직선 형태의 도로를 설계하는데, 이는 자동차 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잘못된 계획이다. 단지 내에서는 어린이나 노약자 등 보행자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하는데, 이런 직선형 도로는 오히려 차량의 속도를 증가시켜서 보행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단지 내 도로가 비교적 길 때는 가급적 굴곡에 따른 시선의 초점 변화를 유도하여, 경관의 다양성을 꾀하고 차량이 저속 운행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두 번째로는 사각형으로 계획된 주차장을 원형으로 바꾸었다. 대부분의 단지 내 주차장은 효용을 높이기 위해 사각형으로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디자인은 정형적인 아파트 동으로 둘러싸여 있는 단지 내에서 녹지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제공할 수 없다.따라서 판에 박힌 듯 획일적인 녹지만 양산되는데, 이는 볼륨감 있는 녹지를 만들어서 층위 구조를 이루도록 하는 생태적인 식재를 할 수 없게 만든다.반면 사각의 틀 안에서 원형으로 계획된 주차장은 가장자리에 깊이가 있는 녹지를 만들게 되므로 식물 생육에도 유리할 뿐만 아니라, 조망 경관이 특히 중요시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녹시율(綠視率)을 높여 줌으로써 경관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원형으로 계획된 주차장이 주차하기가 어렵다는 일부의 우려도 있었지만, 실제 고수부지에 나가서 같은 지름의 원을 그려놓고 주차 실험까지 해가며 설득하여 우리는 이 계획안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결론은 성공이었다. 우선 단지 내 고층에서 바라본 주차장의 모양이 훨씬 자연스럽고, 주차장 가운데 요소요소에 녹지 섬이 생겨나서 썰렁하기만 했던 주차장이 풍성한 녹지공간으로 바뀌었다. 또한 보행 몰을 따라서 눈높이에서 보이는 주차장의 모습도 중첩된 녹지로 말미암아 실제보다 녹지가 많게 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길과 공간을 엮어내기: 보행자가 우선이다>이렇게 큰 틀을 짜고 나서 주민들을 위한 세부적인 공간들을 계획하였다.우선 단지 내 중앙도로를 따라 통행이 가장 빈번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행로를 가능한 한 넓히고, 그래도 부족한 곳은 건축과 협의하여 1층을 피로티로 개방한 후 최대한 넓은 길을 조성하였다.또 도로의 주요 결절부에는 포장을 다르게 처리하고 패턴을 넣어서, 광장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위 아래로 나누어진 단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도록 계획하였다.어린이 놀이터와 휴게소, 운동시설 등은 가급적 보행로쪽으로 재배치하여 이 길을 따라 편의 시설들이 포도송이처럼 엮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주민들이 가장 안전하고 편리하게 편의시설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기: 공간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우리는 이렇게 계획된 각각의 공간들에 활력을 실어주는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화곡동(禾谷洞)이라는 지명 유래에서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은 팔괘(乾,坤,坎,離)의 Concept을 끌어내고, 이 팔괘가 상징하는 여덟 개의 자연을 주제로 각각의 공간들을 디자인하였다. 이렇게 해서 입구부터 동서남북 사 방위에 따라 한빛마당(불), 흙내음원(땅), 하늬바람원(바람), 맑은못원(연못), 하얀빛원(번개), 푸른뫼원(산), 큰하늘원(하늘), 물그림자원(물) 순으로 주제공간들을 배치하였다.한빛마당은 단지의 입구로서 불을 상징하는 햇살문양의 포장과 조명 열주를 도입하고 환경조형물로 해시계를 설치하였다.흙내음원은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로서 땅을 상징하는 방형(方形)의 놀이시설을 설계하였다. 또 하늬바람원은 바람개비 열주가 설치된 소용돌이 모양의 어린이 놀이터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맑은못원과 물그림자원은 각각 벽천과 자연 연못을 도입한 놀이터와 휴게공간으로 조성하였다.또한 하얀빛원은 번개를, 큰하늘원은 하늘을 상징하는 형태나 시설이 디자인되었다. 끝으로 푸른뫼원은 건축 데크를 이용하여 산 모양의 갤러리를 만들고 환경조각이 어우러진 주민 공동 시설로 설계하였다. 또 단지중앙의 시각적 초점에는 벽천을 만들고 보행로를 따라 계류가 흐르도록 계획하였다. <단지 내 조경은 현재 진행 중: 조경은 살아 숨쉬며 변해가야 한다>이렇게 실시설계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발주처의 요구에 따라 추가적인 보완 설계를 하게 되었다.그 주된 이슈는 단지를 좀 더 생태적으로 가꾸는 것이었다. 즉 다시 말해서 완공과 동시에 끝나는 조경이 아니라 주민들이 계속적으로 가꾸고 돌보면서 스스로 변해가는 지속 가능한 조경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를 추가로 계획하였다. 우선 단지내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계류를 생태적으로 바꾸는 것이었고, 둘째는 상가나 유치원의 옥상을 녹화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한 가지는 동 측벽을 이용하여 벽면을 녹화하는 것이었다.이와 같은 계획들 중에서 옥상 녹화와 벽면 녹화는 실행에 옮겨졌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아파트 단지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하고자 했던 자연형 실개천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실행되지 못하고 누군가에 의해서 색깔이 불분명한( 자연형도 아니고, 모던 스타일도 아닌) 계류로 변해버렸다. 그것이 아쉽긴 하지만, 이 단지의 주민들은 아마도 아파트 벽면에서 해마다 자라나는 담쟁이와 옥상위에서 새록새록 커나가는 새덤(sedum)의 모습에서 여전히 살아숨쉬면서 변화해나가는 조경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끝으로 이 단지의 완성을 위해 고생하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박 명 권 Park, Myoung Kweon (주)그룹·한
  • 우리 풍경 찾기 IV : 원형(原型) 풍경의 시간적 특성
    풍경에서 시간의 존재 "시간으로 한정되어서, 여름철의 곤충은 얼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莊子 17장: 秋水編) 자연과 인문현상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는 풍경은 일시적인 풍경에 머물러 있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조감도나 스케치 등과 같이 특정한 시점에 머물러 있는 풍경표현만을 이해하는 정도의 환경디자이너라면, 莊子가 말한 위의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老子는 사물의 "實在란 있는 그대로가 아니며 우리들이 실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시각적으로 촉지할 수 있는(tangible) 것 만으로 존재의 본질을 알 수 없으므로, 촉지할 수 없는 현상(intangible phenomenon)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道德經, 14장 참고). 이러한 사유는, 필자가 본 연재의 앞 쪽1에서 언급한 서양의 해석학적 현상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생각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처럼 동 서양의 名哲들은 보이는 것에 대해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적 의미로써 중요하게 보고 있다. 이는 시간과 장소의 변화에 따라 사물도 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물(thing), 특히 모든 사물을 담는 풍경은 시간의 process에 따라 항상 변화한다. 우리의 눈은 이러한 풍경의 일부분 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눈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일시적으로 보여지는 풍경현상을 감지하기 어렵다. 대지예술가(earthwork artist) Walter De Maria 가 미국 남서부의 뉴멕시코주에서 번개치는 풍경을 포착하고자 한 것(그림 1)이나 Andy Goldsworthy의 작품(그림 2)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일시적인 풍경현상을 잘 포착하지 못한다. 또한 우리의 눈은 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구하게 변화하는 자연현상을 볼 수도 없다. 이러한 한계는, 겸재의 그림 속에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면, 조금은 해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일시적인 시점에 머물러 있지 않고, 긴 시간적 변화 속에서 변화하는 자연 그대로를 가공하지 않고 담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겸재 정선의 그림은 우리의 산천을 실경 이상으로 잘 표현했다고들 한다. 화성(畵聖)은 우리 범인이 볼 수 없는 한계를 뛰어넘어, 사물과 풍경을 보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2. 지난 호에 살펴본 공간지리적 특성에 이어, 이번 호에는 한양과 일본의 에도(동경의 옛 지명)를 묘사한 풍경화에 나타난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