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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웃거리는 편집자]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향하여
    인터뷰란 장르를 좋아한다. 상대를 칼 없이 칼자루만으로 손쉽게 제압하는 무사처럼 내공을 갖춘 인터뷰어의 질문과 눈을 감은 채로 상대를 감지하고 급소를 찌르듯 깊은 철학과 사유가 돋보이는 인터뷰이의 대답이 오가는 인터뷰는 그 어떤 영화보다 재밌다. 사무라이 영화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눌 때 미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느린 화면처럼 마음이 동해 잠시 읽는 것을 멈추게 만드는 문장은 일종의 화룡점정에 가깝다. 독자로서의 즐거움도 있지만 때때로 활자(?) 노동자로서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을 찜해두는데, 최근 발견한 인물은(가상 인물이라서 불가능하겠지만) 바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이름이 같은 우영우 변호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로서 서울대학교와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으며, 현재는 대형 로펌 한바다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중이다. 읽었던 모든 것을 기억할 정도로 영민하고, 하루 종일 고래에 관해서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고래를 좋아한다. 쌩쌩 돌아가는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혼자서 생수병의 병뚜껑 따는 것을 어려워한다. 다소 엉뚱하고 조금 부족한 면도 있지만 변호사로서의 태도는 누구보다 진지하다. 돈보다는 법 앞에서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하고 의뢰인의 심정과 상황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변호사다. 이런 인물이 실존한다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서사보다 그가 직업인으로서 가진 귀한 마음가짐에 주목하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채널 ‘미션잇(Missionit)’을 알게 됐다. 이 채널의 미션잇 인사이트 인터뷰 시리즈는 휠체어 댄서, 역사 교사, 발레리나, 유튜버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장애인을 인터뷰한다. 영상을 통해 그들의 직업에 대한 관점과 철학을 비롯해 장애에 관한 통찰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짧은 인터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인터뷰이들은 공통적으로 장애라는 특성에 주목하는 대신 자신에 가진 강점에 집중하고, 업에 대해서 누구보다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인 유튜브 채널 ‘함박TV’ 운영자 함정균은 휠체어 이용자로서 직접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환승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보여줌으로써, 장애인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알려주는 동시에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환승역 엘리베이터 위치 등 유용한 정보를 전달한다. 시각 장애인 역사 교사 류창동의 장애에 대한 명쾌한 해석도 인상적이었다. “장애인을 낯선 사람, 나와 다른 세계, 다른 생각, 다른 이상을 사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장애로 인해 방법이 다를 뿐 결국 방향은 똑같은 사람이다.” 이번 호에 소개한 모두의 놀이터 원고를 읽으며 저 문장을 떠올렸다. 결국 통합놀이터의 본질은 다른 방법을 가진 이들을 같은 방향으로 모으는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한계도 있다. 현실적으로 아직 모든 장애 유형의 어린이가 놀기에 부족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김연금 소장이 주장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 환경을 도시적으로 구축하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놀이터가 조성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놀이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놀이터의 본질을 바라보는 다양한 언어가 생겨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런 세상이 온다면 굳이 통합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도 놀이터에서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노는 게 낯선 게 아니라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비 온 후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한 가지 색깔만이 빛날 때가 아니라 일곱 가지 색깔 모두가 함께 빛날 때다. 무지개 끝에 도달하면 보물이 있다는 전설처럼 부디 미래에는 어린이들이 차별 없이 뛰어놀 수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 같은 놀이터에서 재미라는 보물을 찾을 수 있기를 꿈꿔본다. [email protected]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L과 함께한 3일 중 반나절을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데 썼다. 사실 거짓말이다. 실제로 문답을 나눈 건 세 시간이 채 못 된다. 적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글이 아닌 경우, 이런 식으로 약간의 부풀림과 허영을 섞어 쓰곤 한다. 더 극적이고 흥미롭게 읽히니 말이다. 늘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라고, 풍미를 더하는 조미료 같은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날의 대화도 비슷했다. 우리 회사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실패를 이겨낸 경험이 있나요. L의 답변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히 오갔다. 면접 준비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일련의 물음에 답할 때는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을 예시로 들면, 장점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단점은 신중히 골라야 하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설명하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어떻게 극복하려고 애쓰는지가 핵심이다. 일을 마감까지 미루다 한꺼번에 해치우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계획표를 짜고 그 과정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같은 식으로. 실패를 이겨낸 경험담은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넓지 않은 세월의 밭에서 적당한 소재를 골라 도마 위에 올려놓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미없어 보이는 부분을 자르고 양념해 조리하다 보면, 조별 과제 분투기가 건국 신화처럼 거창해지기 일쑤다. 공장처럼 자기소개서를 찍어내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열 편 정도는 회사 특성에 맞춰 공을 들여 썼지만, 낙방이 거듭되니 계속 이 작업을 반복하다간 정신이 고장나겠구나 싶었다. 취업 시장에서 높게 평가하는 틀에 맞추어 내 이야기를 다듬고 깎아내다 보면 어느새 나와 닮았지만 똑같진 않은 제2의 인물이 글 속에서 활보하고 있었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처럼 직업의식이 투철하고 매력적이었지만, 들여다보고 있자면 발가벗겨진 채 길 위에 서 있는 기분에 빠지게 했다. 그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만능 ‘자소설’(자기소개서와 소설의 합성어)을 하나 만들고, 때에 따라 조금씩 바꿔 썼다.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음은 덜고됐고, 90퍼센트의 진실에 10퍼센트의 거짓을 더한 글은 나를 지금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자소설은 이제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뜻을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익숙한 단어가 된 지 오래다. A4 한 장 반도 채 안 되는 이 지면을 채우려고 추악한 옛 자기소개서를 꺼내 봤다. 얼굴이 홧홧해지겠지 싶어 열을 식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와 심호흡을 두어 번 한 후 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거기에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더 나은 나, 언젠가 꼭 닿고 싶은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거짓의 농도를 조절하려 애쓴 흔적을 발견하면 좀 창피하기는 했지만 웃음이 났다. 영화 ‘만추’의 대사 “왜 남의 포크를 써요?”를 인용하며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온 외침을 터트리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구절에서는 이때가 좀 그립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에 다다르자 조금 씁쓸했다. 자소설 속 나의 모습은 아무 의미 없는 가짜일 뿐인가. 며칠 뒤 TV에서 흘러나온 대사 때문에 휴대폰 액정에 머무르던 시선을 브라운관에 빼앗겼다.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드라마 ‘안나’) 마음속에 적어둔 질문에 대한 마땅한 답은 아니지만, 이 문장이 위로처럼 다가왔다. 자전적 소설을 써온 필립 로스의 책을 다수 번역한 정영목은 “그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소설을 쓴다. 뒤집어 말하면, 소설로 쓰지 못한 일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1이라고 말한다. 자소설 쓰는 일 역시 자기 성찰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다. 늘 부족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나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고 서사를 부여하는 일은 내가 추구하고 싶었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고 잊고 있던 바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휘청거리는 나를 바로 세워준다. 또 가끔 허상에 기대는 일은 지친 몸을 일으키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골똘히 들여다본 내 안의 이야기와 이를 정리한 글이 서류 탈락의 고배에도 나를 성장시키는 작은 발판이 되었다고 믿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이 글에도 90퍼센트의 진실과 10퍼센트의 거짓이 섞여 있다[email protected] 각주 1. 정영목,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문학동네, 2018, p.25.
  • [COMPANY] 다원녹화건설 조경의 경계를 넘어 끝없는 진화를 꿈꾸는 기업
    다원녹화건설은 1992년 설립되어 비탈면 녹화 공사, 보강토 옹벽 공사 등 생태 환경 복원을 통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국토를 만드는 데 힘써왔다. 특히 2007년 개발한 ‘코매트(Co-mat)’는 성토와 절토로 인해 생긴 비탈면을 친환경적 방식으로 녹화하는 법을 제시했다. 자연 분해성 섬유를 이용해 기반재의 응집력과 근계 발달을 유도하는 이 공법은 건설신기술 제461호, 환경신기술 제158호에 등록되어 다원녹화건설의 기술력과 가치를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수익성이 높아 회사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녹화 사업은 조경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 않은 편이다. 김용각 회장(다원녹화건설)은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했고,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대중 대표를 불러들였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략기획실을 꾸려 현재를 점검하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일이었다. 다원녹화건설의 역량과 강점, 시장 환경 등을 분석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조경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객관적인 눈으로 회사를 바라보게 했다. 6개월에 걸친 수차례의 검토 끝에 내놓은 답은 신사업으로의 확장이었다. 김대중 대표는 “기존의 환경 복원 사업이 조경과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 확장을 결심했다. 더불어 기존 시공 중심의 사업 영역에서 밸류체인(value chain)을 어떻게 넓힐지 고민했다. 방법은 크게 조경 시공의 전 단계로의 확장과 후 단계로의 확장으로 나뉜다. 특히 전 단계로의 확장은 원자재 생산에 해당된다. 그런데 조경은 살아 있는 식물을 다루는 분야다. 식물이 정해진 규격에 맞춰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보니 농작물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변동이 심하다. 넓은 수목 농장과 수목을 관리하는 시스템, 노하우를 보유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목을 직접 생산하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갖추는 편이 효율적이라 판단했다. 매출 규모 자체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꾀하고, 구매 협상권을 갖추는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사업 확장 이후 다원녹화건설은 매출과 규모 면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이에 주변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수목 하자에 대한 염려가 많았다. 김대중 대표는 “보통 완공 뒤 2~3년 지난 시점까지 하자에 대한 의무가 주어진다. 2018년에 본격적으로 주택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는데, 2020년부터 하자가 발생한 현장이 누적되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장 수가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유지·관리에 미리 신경을 써둔 덕분에 그 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다원녹화건설에는 나무의사와 경력이 많은 소장급의 직원 8명으로 구성된 CS팀이 있다. 이들은 건설사, 관리사무소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뿐 아니라 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힘쓴다. 현장을 직접 오가며 하자율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직원들을 훈련시키고, 이를 매뉴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지만, 하자가 발생한 후 수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사업을 확장하고 급격하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던 이유는 낮은 하자율 덕분이다.” 김대중 대표는 다원녹화건설의 가장 큰 강점으로 ‘사람’을 뽑는다. 그는 “최근 조경학과를 졸업한 학생도 조경 일을 하지 않으려하고, 조경으로 진로를 결정한 사람들도 시공 회사를 제일 후순위에 두곤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원녹화건설을 택한 직원들을 귀하게 여기고, 열심히 훈련시켜 우리만의 색을 입히고자 노력한다.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어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직원 개개인의 특성을 깊이 파악하고, 어떤 면이 장점이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정확히 지시해주려고 노력한다. 더불어 고정된 팀을 운영하는 대신 서로 부족한 면을 보완할 수 있는 직원들로 구성된 팀을 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한다. “책이나 매뉴얼로는 공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프레젠테이션 능력, 현장에서의 지휘력, 건설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체득할 수 있도록 팀구성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다원녹화건설은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열어 다원녹화건설을 함께 만들어 온 임직원과 그 걸음에 함께해준 협력 업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성공을 거둔 만큼 쉬어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김대중 대표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에 나를 맞추기 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데 더 쾌감을 느낀다. 그만큼 어려운 일들을 겪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얻는 성취감이 더 크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개발 사업을 차츰 진행하고 있다. 늘 건설업에서 맨 마지막 단계에 진행되는 조경 시공을 하며 겪은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이 사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발주처가 무시할 수 없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 현재 신사업을 기획 중인데, 조경뿐 아니라 더 넓은 범위에서 그 대상을 찾고 있다. 업의 영역과 틀을 깨는 회사가 되고자 한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글 김모아 사진 다원녹화건설 TEL. 02-539-8344 WEB. dawonland.co.kr
  • [PRODUCT]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쓰는 야외 운동 기구
    비장애인에 초점을 맞춘 야외 운동 기구는 장애인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디자인파크의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공원 BF인증 기준에 부합해 야외 운동 기구에 소외됐던 장애인에게 운동의 기회를 제공한다. 비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으며 장애인용 운동 기구와 함께 일반형 운동 기구를 조합해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는 휠체어 규격에 맞춘 설계로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재활자 등 휠체어 이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주요 색인 파란색은 물체를 가볍게 인식하게 만들어 운동의 부담을 덜어주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운동 기구와 연결된 포스트 양쪽에는 안내판이 부착되며, 포스트 측면의 PC패널에 다양한 문양, 로고 등의 이미지를 삽입할 수 있다. 안내판의 경우 휠체어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위치와 문구를 설정했다. 또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주변이 어두워지면 포스트 상부의 LED가 점등되도록 했다. TEL. 1577-0343 WEB. www.designpark.or.kr
  • [에디토리얼] 82년생 환경과조경, 마흔 살이 되다
    『환경과조경』이 만 나이 마흔 살을 맞았다. 1982년 7월, 국내 최초의 조경 전문지 계간 『조경』이 창간되었다. 1985년 6월(통권 9호), 『환경 그리고 조경』으로 제호를 잠시 바꿨고, 10호부터는 『환경&조경』이라는 이름을 달았으며, 1992년 1월(통권 45호)부터 월간지 『환경과조경』으로 전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 번의 결호도 없이 40년간 간행된 『환경과조경』은 한국 현대 조경사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한국 조경의 성장 신화를 기록해왔을 뿐 아니라 조경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며 그 경계를 확장해왔다. 2013년 10월호(통권 306호)부터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옷을 갈아입은 『환경과조경』은, 조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의 조경 문화는 풍요로워졌는데도 정작 제도권 조경은 위기에 빠진 역설적 환경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조경 저널리즘의 지향과 좌표를 재설정했다.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는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글로벌 정신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 기지, 이 세 가지 좌표를 매달 지면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원칙으로 삼았다. 2021년 8월, 400호를 펴내며 쓴 에디토리얼에 500호 시대를 향하는 『환경과조경』이 묻고 답해야 할 과제를 이렇게 적었다. 첫째, 한국 조경의 전문성과 수월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둘째, 조경 저널리즘의 역할을 기록과 비평을 넘어 이슈 생산과 소통으로 확장한다. 셋째, 다음 세대 조경가와 미래 세대 비평가를 발굴하고 그들과 함께 한국 조경의 2030년대를 기획한다. 『환경과조경』의 지난 40년 여정에 변함없이 동승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이 세 가지 과제를 풀어갈 도전적 노정에도 늘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린다. 한층 더 풍성한 지면으로 꾸릴 40주년 기념호는 오는 12월로 잠시 미루지만, 우선 이번 호에는 한국 조경의 기반을 질문하는 기획 특집 “조경, 그 이름을 묻다”를 올린다. 1970년대 초, 한국 조경의 태동과 함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선택된 조경(造景)이라는 이름이 조경(학)의 목적과 대상, 그 영역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며 조경의 사회적‧문화적 역할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조경이라는 이름이 조경의 범주를 제한하는 장애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것은 번역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트)에 적확한 번역어로 조경(가)이 아닌 다른 말을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와 미래 조경(학)의 실천 영역과 학문 범주를 포괄할 수 있는 개명이 필요한가? 올해 2월 22일 한국조경학회가 주최한 웨비나 “조경, 왓츠 유어 네임?”의 발표 원고들을 다듬어 수록하는 이번 특집이 조경 전문 직능과 학문 분과의 명칭을 둘러싼 신중한 토론의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다음 달에는 40주년 특집의 두 번째 순서로 가칭 ‘조경사’ 자격제 신설의 배경과 필요성을 논의하는 특집이 예정되어 있다. 창간 40년 기념 ‘2022 조경비평상’에는 예년보다 글쓰기의 수준과 글의 완성도가 높은 네 편의 평문이 제출되었으며, 정평진의 응모작 “거리에 대한 권리: 철거된 ‘르네상스 호텔’과 공개공지, 그리고 이우환의 ‘관계항’”을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글은 도시 공공성의 매개 수단인 공개공지의 한국적 현실과 과제를 선명한 문제의식과 단단한 구성력을 바탕으로 추적하고 발견한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수상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한국 조경의 최전선을 이끄는 비평가로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이번 달에 특히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파리공원 리노베이션’이다. 1987년에 문을 연 파리공원은 한국 조경 설계를 변화시킨 기점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교목과 넓은 잔디밭, 판에 박힌 정자와 퍼걸러, 몇 가지 운동 시설과 놀이 시설을 적절히 섞으면 곧 공원이라고 생각했던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파리공원은 공원도 ‘디자인’해야 하는 대상임을 일깨워 주었다. 틀에 박힌 공원 패러다임을 ‘설계’라는 도구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 파리공원의 실험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최근 들어 20세기 후반에 만든 도시공원을 고쳐 쓰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파리공원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복원과 변경, 보존과 재생, 기념과 이용의 충돌이라는 난제를 풀어낸 방식에 대해 다양한 토론과 비평이 이어지길 기다린다. [email protected]
  • [풍경 감각] 너의 목소리가 들려
    길을 걷다 보면 낯선 목소리가 말을 건넨다. 내달리는 차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건만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세요”라고. 그저 지나는 길인데도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며 기계들이, 나를 나무란다. 평소엔 신경조차 쓰이지 않던 기계의 목소리를 피곤하고 지친 날에 들으면 괜히 짜증이 나곤 한다. 한 독립서점이 일상에서 쓰일 만한 따뜻한 문장 몇 개를 스티커로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다. 고마워, 사랑해, 응원해, 괜찮아, 힘내 같은 너무 뻔한 말들이라 제작하면서도 재고로 쌓이겠다고 생각했다는데, 예상과 달리 금방 동났다고 한다. 때론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마디가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 아닐까. 우리가 서로에게 들려줘야 할 목소리는 어떤 것일까? 뻔하고 보잘것없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할지도 모르는 말 아닐까? 물론 길가에 고마워, 사랑해, 힘내 같은 말을 읊조리는 기계가 있다고 상상하면 굉장히 이상한 그림이 그려지긴 하지만……. 대신 이 글을 보는 이들에게 얕은 말을 전해볼까 한다. 괜찮아요. 모두 다 잘될 거예요.
  • 파리공원 리노베이션 Renovation of Paris Park, Seoul
    과거라는 구원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속편을 쓰는 것과 같다. 전작이 시원치 않다면 어떻게 쓰더라도 큰 부담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전작이 명작일 경우 고민은 많아진다. 전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가자니 속편을 쓰는 의미가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자니 속편이 아니게 된다. 1987년의 파리공원을 새롭게 만드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그러했다. 파리공원은 한국 현대 조경의 담론에서 처음으로 조경 설계가 작품으로 인정받은 프로젝트로 회자되곤 한다. 명작 앞에서 작가는 존경과 비판의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줄타기는 양자택일의 문제도 아니고, 존경 두 스푼에 비판 한 스푼 같이 비율을 결정하는 문제도 아니다. 태도의 결정, 이것이 줄타기의 본질이다. 우리는 현재의 과오를 다가올 미래가 해결해주리라 믿으며 모든 책임을 과거에 전가한다. 왜냐하면 과거는 죽은 시간이며, 미래는 희망의 시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달리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늘 과거를 비판하며 새로운 시간에 희망을 품는 사실이 미래는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말한다. 미래를 구원할 유일한 길은 실패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던 과거로 돌아가 버려진 가능성을 다시 찾아내 복원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벤야민에게 과거는 미래의 유일한 구원자다. 1987년의 파리공원은 완벽할 수 없었다. 근린공원이 갑자기 기념공원이 되어야 했고, 시간과 재원 모두 넉넉하지 못했으며, 설계를 구현할 기술과 재료도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과거에서 구원해야 할 대상은 원 설계자들이 품었던, 그러나 이루지 못했던 조경가로서의 꿈만은 아니었다. 옛 도면, 보고서, 인터뷰 기사, 비평, 사진을 수없이 헤아리다 보니 구원해야 할 과거의 꿈을 외진 귀퉁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근린공원의 꿈이었다. 파리공원이 명작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사실 근린공원이 아니라 기념공원이기 때문이다. 한국성을 현대적 조경의 언어로 해석하고 이를 프랑스적인 그 무엇인가와 어울리도록 만드는 것이 1987년 파리공원 설계의 과제였다. 지금의 파리공원은 최선을 뛰어넘는 새로운 해답이었다. 그래서 파리공원의 기념성은 지워진 곳을 다시 그려주고 놓친 부분을 채워주면 됐다. 제안서를 준비하기 위한 답사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는 그동안 이 공원이 한불수교 100주년을 상징하는 기념공원인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산책로가 만들어져서 좋은데 계단이 불편하다고, 농구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청년들이 그늘이 없어 땡볕에 앉아 있는 것이 안쓰럽다고 했다.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난 후 나는 비로소 태도를 정할 수 있었다. 상징 1987년 파리공원 설계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남쪽에는 손님인 프랑스의 공간, 북쪽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인 한국의 공간으로 공원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파리공원에서 서울광장과 영지는 한국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서울광장은 삼태극 포장 패턴,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가 조각 타일로 마감된 장식 벽, 전통 식재와 같은 한국적 언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제 서울광장의 한국성은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알아보기 어려운 흔적 정도만 남아 있게 됐다. 주인의 자리인 만큼 누가 보더라도 한국적이어야 했고, 동시에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현재라는 시간에 어울려야 했다. 지금의 낮은 담을 전통담 쌓기 방식으로 높여 벽을 통해 공간이 확실히 인지되게 했다. 흑색 전벽돌을 사용하고 절제된 마감 처리를 통해 과거의 차용이 아닌 현대적 감각의 전통으로 느껴지게 했다. 삼태극 역시 현대적으로 다시 표현하고자 흑과 백의 화강석을 사용했다. 사라진 일월오봉도는 화강석에 레이저로 정교하게 다시 그려내고, 그 앞에는 정갈한 한국식 정원을 만들었다. 서울광장은 광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아담하고 작다. 큰 벽천 뒤에 가려져 숨겨진 느낌의 공간이다. 계단을 올라와야 하고 공원의 주 동선과는 상관없이 북측에 홀로 떨어져 있어 사람들이 찾을 이유가 그다지 없는 곳이다. 공원이 늘 북적이는 주말에도 여기를 찾는 이들은 드물다. 처음에는 소심한 주인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대범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바꿀까도 했지만, 공원 한 군데 정도는 아는 사람들만 찾는 조용 한 곳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가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은 시끌벅적하게 주최자를 치켜세우며 손님을 맞는 서양의 방식과는 다르다. 있는 듯 없는 듯 약간은 말수가 없고 수줍은 주인이 오히려 한국적 공간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울광장은 주말 아침 자전거를 타고 와 텀블러에 담은 냉녹차를 마시며 새소리와 함께 수필집을 읽다가 햇살이 뜨거워지고 아이들의 소리가 높아질 무렵 다시 돌아가는 그런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설계했다. 물 설명서를 보면 원 설계자들은 영지에 큰 의미를 두었던 것 같진 않다. 용상(龍床)과 돈대(墩臺)를 추상화한 벽천이 주인공이고, 영지는 ‘그림자 연못’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벽천을 받쳐주기 위한 배경이었다. 애초에 바라 보는 수경 시설로 계획됐기 때문에 사람의 이용을 전제로 하지는 않은 영지였다. 하지만 1987년 개장하자마자 영지는 물놀이를 하려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용상을 상징하는 근엄한 벽천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그러다 보니 벽천 주변에는 볼썽사나운 안전 펜스가 쳐졌고, 영지에는 결국 화강석 스탠드가 덧대어졌다. 어떻게 해도 결국 아이들이 차지할 공간이 된다면 아예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과감하게 벽천을 없애자고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벽천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고 낡아버린 화강석 옷을 바꿔 입혔다. 그리고 펜스가 없어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위압적인 벽천의 경계를 낮추고 계단식으로 완만하게 바꾸기로 했다. 부담스럽게 갑자기 떨어지는 영지의 경계도 손볼 필요가 있었다. 경계의 단을 늘려 물의 면적을 줄이기보다 영지의 바닥 높이를 들어 올려 공원에서 영지의 바닥까지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아예 물놀이가 가능한 바닥분수도 가운데에 만들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려면 보호자가 편해야 한다. 동측의 스탠드도 정비해 부모들이 영지에 풀어놓은 아이들을 보면서 편히 쉴 수 있도록 그늘과 앉을 곳을 최대한 많이 조성했다. 양천구청이 보수 수준이 아닌 전면적 재조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가 영지 바닥에 생긴 균열 때문이다. 매년 구청은 파리공원 관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영지를 재설계하면서 최대한 유지 관리가 편하도록 바꿀 필요가 있었다. 수조 역할을 하는 구체와 바닥면이 분리될 수 있는 페데스탈 건식 공법을 제안했다. 이러면 포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구체와 상관없이 쉽게 교체가 가능하며, 반대로 구체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포장을 전면적으로 손봐야 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물이 없으면 자전거나 킥보드를 탈 수 있는 광장이 되고, 물이 있더라도 얕은 수면 위에 주변 풍경이 비치는 이름 그대로의 영지(影池)를 만들었다. 잔디와 나무 사람들은 대개 공원 하면 잔디와 나무가 있는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공원의 본질은 잔디밭과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일 수도 있다. 원 설계 계획안을 보면 동측에 잔디광장과 총림이 계획됐다. 계획안대로 시공이 안 된 것인지 이후 잔디에 나무를 심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파리공원에는 계획된 넓은 잔디밭이 없다. 요새 외국에서는 잔디밭이 욕을 먹는 추세다. 생태적으로 건강하지도 않으면서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다. 그런데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외국에서 잔디밭의 대안을 찾은 이유는 너무나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좋으니까 많이 만든 것이다. 한때 공원의 잔디밭을 보호하기 위해 펜스를 쳤던 우리에게 잔디밭은 아직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이며 문화다. 이 공원에 제대로 된 잔디밭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다. 잔디밭은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도시의 광장처럼 오픈스페이스로서 역할하려면 주변이 잘 구성되어야 한다. 주변에 할 것이 없으면 빈 공간은 버려진 공간이 된다. 그래서 북동측 입구 쪽에 새로운 작은 건물을 배치하고 그 앞에 잔디가 펼쳐지게 했다. 잔디밭 뒤로 운동 공간을 조성했다. 잔디밭 전면은 넓은 물의 공간인 영지로 시원하게 열리게 했다. 잔디밭을 다시 만들기 위해 무성해진 나무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무를 정리한다는 계획에 어떤 주민들은 심하게 반대했다. 많은 나무가 반드시 건강한 숲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득해야 했다. 너무 밀식되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나무들을 제대로 솎아주어야 더 건강한 숲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 했을 때, 어떤 이는 수긍했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한편 나무가 적은 곳에 새롭게 나무를 심어 줄 필요도 있었다. 한불마당은 아이들이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기에 최적의 장소인데, 부모들이 앉아 있을 곳이 없었다. 한 가족이 벤치와 그늘이 없어 경계석에 모여 김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한불마당 경계에 큰 나무들을 새로 심고 그늘과 함께 많은 벤치와 의자를 놓기로 했다. 이 설계가 과하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나무 그늘 아래 연두색 의자가 가득 놓여 있는 파리 튈르리 정원 사진을 보여줬다. 이게 파리의 공원이라고. 파리에서는 나무 그늘과 의자가 있는 곳이 공원이 된다고. 그러자 그가 파리공원에 만드는 이 공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프롬나드(promenade)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라고 덧붙였다. 포장 요즘 조경가들은 포장에 별로 신경 쓸 일이 없는 경우가 많다. 기술이 좋아지다 보니 재료 생산과 디자인이 일체화되어 패키지로 제공된다. 오히려 손수 설계하는 것보다 패키지의 결과가 좋을 때가 많다. 1987년에는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재료의 품질도 형편없었고 디자인적으로 활용할 대안도 별로 없었다. 파리공원의 설계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재료로 개념을 구현할 포장의 패턴을 생각해야 했다. 그 고민이 담긴 공간이 중앙가로와 한불마당이다. 원 설계의 모든 공간이 중심축을 기준으로 확장되고 변주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앙 가로는 파리공원 설계의 개념적 뼈대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원에 가보면 계획도에서는 그렇게 강력해 보이던 축이 보이지 않는다. 원 설계에서는 축이 세 개로 분절되고 각각 다른 포장 패턴으로 나뉘었다. 그러면서 존재감이 약화됐다. 그리고 중간에 건물이 들어가고 조형물이 놓이면서 시각적으로도 하나의 축이 사라졌다. 원 설계의 개념을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서 중심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닳아서 보이지도 않게 된 바닥의 전통 문양을 새롭게 해석하여 상징성을 복원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한국적이라고 느낄 태극기의 건곤감리(乾坤坎離) 64쇄를 응용했다. 흑백 패턴으로 이루어진 바닥은 의심할 여지없이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란 강점이 있었다. 시공성을 위해 흑백의 조합을 수없이 테스트하고 64괘 중 여덟 개 괘를 골라 화강석 포장 패턴을 구성했다. 새로운 패턴을 공원의 가장 넓은 공간인 한불마당에도 적용하고 싶었다. 한불마당은 한국과 프랑스를 동시에 상징하는 광장이다. 원 설계자들은 프랑스와 한국의 두 국기에 있는 적, 청, 백의 세 가지 색으로 두 나라의 화합을 상징하고자 했다. 문제는 실제로 적용된 패턴은 프랑스의 삼색기를 떠올리기에도, 태극기를 생각하기에도 애매해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런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값싼 시멘트 블록에 염료를 섞어 새로 블록을 만들었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고급스럽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중심축에 사용된 괘 패턴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화강석으로 한불마당 전체를 재포장하기에 단가가 꽤 비쌌다. 둘째, 보수한 지 얼마 안 돼 폐기하기에는 상태가 양호했다. 셋째, 원형광장에 직선의 괘 패턴을 적용하기 위해 알고리즘 디자인까지 동원해 여러 대안을 마련했으나 현실적 시공 과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원 설계자에게 도움을 구했다. 담당 소장님은 지금의 시점에서는 적, 청, 백의 색으로 상징을 구현하는 방식이 직설적일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시대의 반영이니 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었다. 그래서 원래 포장 재료를 일부 활용하고 그에 맞추어 지금의 블록에 그때의 안료를 배합해 비슷한 느낌의 새 재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원래 포장 시공의 방식 그대로 적과 청의 괘를 곡선 형태로 담아냈다. 사람 원 설계안을 보면 현재 파리공원의 모습과 원 설계자들이 생각했던 이미지는 달랐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기념공원의 의미가 더 강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원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불마당을 제외하면 원 설계의 공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피크닉, 휴식, 명상, 산책, 전시 정도로 고상하고 세련된 프로그램뿐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사람들은 조경가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고 저마다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공간을 고쳐 쓴다. 기념 조형 공간 으로 설정한 야외 전시장은 농구장으로 바뀌었고, 명상과 감상을 할 수 있는 영지와 벽천은 아이들의 물놀이터가 됐다. 공원을 도시와 어느 정도 분리하기 위해 만든 경계부의 지형과 녹지대에는 순환 산책로를 만들었다. 조용한 숲속은 생활 체육 시설로 가득 찼고 어르신들을 위한 지압로가 생겼다. 이번 재설계에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담는 일에 제일 고민이 적었다. 이미 사람들이 정답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인기가 좋아 여러 팀이 대기하는 농구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두 개로 만들었다. 조금씩 늘어나 공원 한편을 차지한 운동 시설을 정리하고 두 개의 운동 공간을 조성했다. 그리고 생활 체육 시설뿐 아니라 제대로 된 근력 운동도 할 수 있고, 유튜브에서 인기인 타바타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도 만들었다. 문화공원에는 어린이 놀이 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 는 이상한 법 때문에 휴게 시설인 그물 네트로 된 아이들의 공간을 만들어주었는데, 예상대로 아이들은 이 공간을 놀이터로 변화시켰다. 시공이 들어가기 직전 어르신들이 단체로 민원을 넣었다고 해서 추운 겨울날 공원에 갔다. 어르신들의 불만은 민원이라기보다 하소연에 가까웠다. 공원 건물이 재단장해 북카페가 된 이후 어르신들이 건물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공원에서 친구들과 만나 바둑과 장기를 두는 것이 낙인데 그럴 공간이 없어졌다고. 총림에 밀식된 나무를 정리하고 그 아래에 둘이 마주 앉아 바둑과 장기를 둘 수 있는 벤치와 테이블을 놓았다. 원래는 체스판이 부착된 시설물이었는데 바둑판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나는 겨울에는 어르신들이 새로 지은 커뮤니티 센터에서 바둑과 장기를 둘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경가는 공간을 결정하는 자가 아니다. 이렇게 사용되기 바라는 상상을 하며 설계를 하지만, 어떻게 쓸지는 사람들의 몫이다. 사람들의 바람과 의지에 따라 공원은 언젠가 다시 바뀔 것이다. 도시공원을 고쳐 쓰는 일 김영민·이남진 인터뷰 공모 프로젝트에서 이남진과 김영민의 조합을 자주 보고 있다. 어떻게 팀을 꾸리게 됐는지 궁금하다. 이남진(이하 남)2020년 3월 바이런을 개소했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파리공원 리모델링 프로젝트 소식을 접했는데, 워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팀원도 적어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김영민 교수가 먼저 함께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김영민(이하 영)이남진 소장과는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다. 이남진 소장이 동심원조경에 근무할 당시 ‘서남권 활성화를 위한 국회대로 상부공원 설계공모’에 함께 참여한 적이 있다. 2019년 말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를 마무리하고 긴밀한 파트너십을 찾고 있었는데, 여러 회사와 협업해보았지만 나와 잘 맞는 곳을 찾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시 이남진 소장과 함께 ‘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를 진행하게 됐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바이런과 김영민의 컨소시엄이라기보다 내가 바이런의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파리공원은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공원이자, 조경 설계가 최초로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은 사례다.공원에서 보존할 것, 고쳐 써야 할 것,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의 목록을 어떻게 도출했나. 영 보통 해외의 공원은 쓰이지 않고 방치되는 경우 리모델링을 진행한다. 하지만 파리공원은 전혀 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너무 잘 이용되고 있었고, 오히려 지나치게 잘 쓰여서 시설물이 노후된 점이 문제였다. 주민들의 이용률이 높은 데다 파리공원이 한국 현대 조경사의 분기점을 마련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어서, 이를 잘 고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청났다. 우선 파리공원에 관한 보고서와 논문, 사진, 자료를 보며 공원을 스터디했다. 연구 끝에 원 설계의 큰 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남 양천구청이 파리공원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위한 밑작업을 많이 해놓은 상태였다. 별도의 운영위원회가 꾸려져 있었고, 파리공원의 기본 및 실시설계를 담당한 조경설계 서안에 공모 기본구상 용역을 맡겨 재정비 가이드라인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가이드라인에 공원에서 보존해야 하는 부분, 기본 틀은 유지하되 소극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 적극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를 준수하되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면서 설계를 했다. 영 구청이 요구한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영지 콘크리트 바닥은 균열이 생겨 더 이상 물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고, 균열을 메우는 정도의 보수가 아닌 전면적 재조성이 필요한 상태였다. 계획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발걸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산책로도 정비가 필요했다. 지역 주민을 관찰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것 또한 중요했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공원에 가서 주민들의 행동 패턴을 관찰하기도 하고, 공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어떤 점이 바뀌었으면 하는지 묻기도 했다. 현장에서 발견한 주민들의 요구, 도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세심한 부분을 관찰하며 보존할 것, 고쳐 써야 할 것,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었다.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공원의 특성상 작은 공간에 프랑스성과 한국성이 어우러져 있다. 여기에 현대적 감각까지 더해야 했는데, 프랑스성, 한국성, 현대적 감각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도록 했는가. 영 원작자의 개념과 의도를 따르되 약간의 변주를 주었다. 일단 파리공원의 공간 구조가 굉장히 독특하다. 공간이 삼각형, 사각형, 원형 등 기하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설계안을 들여다보면 한국성과 프랑스성을 어떻게 표현할지, 두 나라의 관계를 어떻게 공간으로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공간 구조를 바꾸고 한국성과 프랑스성을 새롭게 해석할 경우, 리모델링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공원이 될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원작의 개념을 따르되, 현 시점에서 봤을 때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이나 본래의 의도가 충분히 구현되지 못한 부분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고쳤다. 예를 들어 한불마당은 프랑스와 한국의 국기에서 영감을 받아 적, 청, 백의 포장 재료를 쓴 공간이다. 너무 직설적인 데다가 완성도에 아쉬운 면이 있어 기존 재료와 새 재료를 새롭게 구성하는 방식으로 재조성했다. 이전의 공원과 가장 달라진 점을 체험형 수경 시설, 살롱 드 파리, 미세먼지 안심 쉼터, 체육 시설 확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민들의 요구가 반영된 공간인가. 남 리모델링의 시작은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데서 출발한다. 공모 단계에서 학생들과 함께 설문조사를 하고, 양천구청에 제기된 민원을 살펴보고, 주민설명회를 개최해 의견을 들었다. 공원에 찾아가 주민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했다. 이들의 말은 어떻게 보면 비전문적 의견일 수 있다. 당장 눈앞의 불편함만을 이야기하는 민원성 의견일 수 있지만, 이를 어떤 식으로 개선해야 할지 판단하는 게 전문가의 몫이기도 하다. 기존 주민 이용 시설을 어디로 옮기는지, 그 대로 유지하되 어떤 부분을 새로 교체할지 등을 최대한 자세히 주민들에게 설명해주려 했다. 다행히 큰 반박이 없었고 대부분 좋아했다. 소수의 편익을 위한 공간에 대한 요청은 가능한 배제했다. 영 본래 설계할 때 개념을 잡고 시작하는 편인데, 이번 프로젝트에는 개념보다는 직관적, 경험적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하루는 공원에 방문했다가 한 가족을 봤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있고 부모가 김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비어 있는 벤치가 없어 결국 경계석에 앉아 김밥을 먹더라. 그걸 보며 광장을 둘러싼 앉을 공간을 충분히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또 공원에는 생각보다 청소년이 많다. 왜 공원에 오냐고 물어보니 학원에 가기 전 남는 시간에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카페에 가자니 돈이 들고, 앉을 벤치가 부족해 공원을 서성이거나 자판기 주변에서 수다를 떨다가 떠나는 것이다. 이들을 위해 기존 운동 시설과는 달리 재미있게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어르신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경로당처럼 쓰던 건물이 북카페로 바뀌면서 머물 공간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이들을 위해 밀식된 나무를 정리하고, 바둑과 장기를 둘 수 있는 벤치와 테이블을 만들었다. 이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을 위한 공간인 걸 아는지 벤치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바둑과 장기를 즐기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6월호 ‘공원, 고쳐 쓰기’ 특집에서 파리공원를 보여주는 이미지 중 하나로 모네의 화풍으로 그린 서울광장을 보내주었다. 어떤 용도로 만든 이미지인가. 영 직접 그린 건 아니고 실시설계를 담당한 바이런 김영찬 소장이 필터 효과를 이용해 만든 이미지인데, 파리공원의 이미지를 일반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보여줄 때 사용했다. 사실 파리공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공원에 에펠탑, 개선문 같은 직설적 오브제들이 놓여 있는데도 말이다. 주민설명회 프레젠테이션 마지막 장에 이 이미지를 넣었는데 호응이 아주 좋았다. 말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시키기 어려운 공원의 프랑스성을 한 장의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었다. 공원 조성 후 살롱 드 파리에서 열린 전시에서 샹송을 틀어놓았다. 1차원적 표현이지만 주민 입장을 생각했을 때는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양천구청의 지원을 받은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남 양천구청은 행정적,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전부 지원해줬다. 이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구청이 조경가를 전적으로 믿고 의견을 존중해주었기 때문이다. 경험상 조경가들을 끝까지 믿고 그들이 현장에 관여할 수 있게 해준 프로젝트가 잘된다. 현장에서 임의로 수정되어 시공되는 부분 없이 모두 우리의 검토를 받아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남은 후반 작업에 필요한 인건비, 경비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공모 진행 당시보다 공사비가 두 배 이상 증가했는데, 설계비는 증액되지 않았다. 박윤진·김정윤 소장(오피스박김)이 “서울에서 공공 공간을 설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서울공예박물관’, 『환경과조경』 2021년 10월호)라고 말한 적 있는데, 공감한다. 대부분 설계가 끝나면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설계 이후에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제대로 된 금액을 받지 않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나쁜 선례를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영 공무원의 역할이 컸다. 파리공원은 구청장의 공약인 프로젝트였고, 그만큼 여러 이해관계와 요구 사항이 얽혀 있을 수밖에 없다. 무리한 요구에 대응하지 않을 수 있게 양천구청이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막바지에 추가된 음악분수는 사실 이러한 요구로 인해 만든 공간이다. 공사 기간이 짧아 고생했지만 주민들은 좋아하고 있다. 최근의 공원 리모델링 프로젝트들이 도시공원의 보존·재생 등에 대한 충분한 학술적·이론적 연구 또는 사회적 동의·공감대 없이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목동 중심축 5대 공원 리모델링 사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남 리모델링의 정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벽체 하나만 남기고 모두 고치는 것, 원형을 거의 그대로 남기고 마감만 새로 하는 것 모두 리모델링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공원 리모델링을 공모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의 계약 범위에서 설계가 가능한 회사에게 리모델링을 맡기면, 공무원과 주민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수동적 설계가 이루어질 확률이 크다. 파리공원의 경우, 공모 기본구상 용역과 별도의 운영위원회가 있어 큰 도움이 됐다. 공모가 열리고 오래된 도시공원을 어떻게 리모델링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 영 도시공원의 리모델링은 아카이브 이슈와도 관련된 문제다. 리모델링에 앞서 당연히 충분한 학술적 이론과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현재는 아카이브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연구를 하려면 자료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공원 리모델링은 아카이브 작업이 끝날 때까지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지금 당장 진행해야 하는데 아직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으니 마냥 미뤄두어야 하는 것인가. 10년 뒤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아카이브가 완성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리모델링에 바람직한 답을 주는 건 아니다. 참고가 될 뿐이다. 외국의 경우, 설계자가 리서치를 함께 진행한다. 이처럼 아카이브와 설계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파리공원 리모델링을 주제로 웨비나가 열리기도 했는데, 이처럼 학계와 업계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언젠가는 선유도공원, 서울숲 같은 대형 공원을 고쳐 써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공원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 남 비슷한 측면에서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아카이브가 부족하다보니 설계하는 사람들이 리서치를 하면서 리모델링에 접근해야 한다.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새로운 공원을 만드는 일과 비교하면 인력, 시간 등 소모되는 부분이 3배 정도 많다. 하지만 설계비와 기간은 일반 프로젝트와 똑같이 잡는다. 그래서 결국 계속 과업을 연장해 가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만약 다른 지자체가 공원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면, 기간을 넉넉히 잡아 급하지 않게 설계와 시공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시기적 이유로 일부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공원을 재개장했다. 앞으로 이 공간은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모습으로 언제쯤 완성될 예정인가. 남 아마 7월호가 발간될 쯤에는 그 공간이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추가된 음악분수도 완공되어 시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지금 재개장한 공원은 1차 완성 단계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고 한다. 예상보다 더 많은 주민이 찾아와 발생한 문제도 차츰차츰 해결해 나갈 계획이다. 목마·신트리공원도 파리공원과 비슷한 단계를 밟고 있다. 지방선거로 인해 구청장이 바뀌었으므로 새로운 의사결정권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파리공원의 경험을 토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목마·신트리공원은 완전히 공사가 끝난 뒤 개장하고 싶고, 파리공원처럼 현장에서 완공 때까지 계속 관여하면서 마무리하고 싶다. 영 설계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공간을 완성하지 못한 채 공원이 개방되니까 오히려 더 많은 주민의 요구가 가시화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것이 도시가 살아있는 증거다. 많은 사람이 센트럴파크가 옴스테드의 설계안 그대로 완성된 줄 아는데, 사실 옴스테드는 사람들이 공원에서 운동하는 걸 반기지 않았다. 고상하게 자연을 감상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지금 센트럴파크에는 많은 야구장과 소프트볼 구장이 있다. 공원은 이처럼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바뀌고 진화해나간다. 언젠가는 지금 고친 파리공원을 다시 고쳐 써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지금의 설계안을 비판하는 이도 있을 것인데, 당연한 일이다. 2022년의 공원을 2040년에도 잘 쓰고 있다면 이상한 일이다. 세대가 바뀌고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파리공원의 좋은 점과 우리가 놓친 다른 가능성을 후배들이 잘 포착해 더 좋은 공원으로 고쳐 쓰길 바란다. 글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사진 유청오 설계 총괄 김영민, 바이런 조경 설계 바이런(이남진, 김영찬, 강아람, 조희연, 우희준, 송지희), 서울시립대학교(이학송, 임지원, 김도훈, 이영현, 정혜율, 한지우) 건축 설계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경관 조명 설계 이온에스엘디 발주 양천구청 위치 서울시 양천구 목동 906 면적 29,619.3m2 완공 2022. 5. 원 설계 기본설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부설 환경계획연구소(유병림, 황기원, 양윤재) 기본 및 실시설계 조경설계 서안 시공 대능종합조경 발주 서울시 완공 1987. 7.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은 강아람, 이남진, 김영찬, 그리고 김영민이 함께 이끄는 디자인 회사다. 무엇보다도 사람과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디자인하는 일상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도록 좋은 설계 환경을 만들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며, 세종상징광장, 광화문광장, 파리공원 재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주요 설계자로 참여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다. 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김영민
  • 조경, 그 이름을 묻다
    이름은 대상의 본질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본질을 따르지 못하는 이름은 대상의 성질을 왜곡하거나 한계를 만들기도 한다. 한국에 제도권 조경의 개념이 들어선 건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한국 제도권 조경의 창립자들은 미국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라는 새로운 전문 분야를 들여왔고, 이 개념의 번역어로 조경造景(지을 조, 경치 경)을 택했다. 하지만 이미 ‘조경’은 1960년대부터 한국에서 정원을 가꾸거나 다듬는 일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어온 상황이었다. 대중의 인식 속 조경과 전문 직능과 학문 분과로서의 조경의 간극이 점차 커졌고, 그 이름이 조경(학)의 목적, 대상, 영역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9년 12월 『환경과조경』은 ‘이달의 질문’이라는 꼭지를 통해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조경이 조경가의 사고와 신념의 범위를 담기에 충분하지 못했던 듯하다’, ‘조경의 의미를 담는 이름이 부족하기보다 그 의미를 전달하는 우리가 부족한 게 아닐까’ 등 다양한 의견이 도착했다. 답변 중 일부를 인용해 이 특집의 의도를 설명한다. “인식은 변화의 시작이다. 한국 조경이 곧 50돌을 맞는다.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한국 조경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조경이란 명칭의 적절성에 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특집 원고는 2022년 2월 22일 한국조경학회가 주최한 웨비나 ‘조경, 왓츠 유어 네임?’을 통해 먼저 발표된 바 있다. 진행 배정한,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조경, 그 이름을 묻다] 다시, 조경의 이름을 묻는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광교호수공원, 용산공원 등 대규모 국제 조경설계 공모 운영과 진행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하며 공모전 결과와 당선작에 대한 보도자료를 작성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보도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사를 내보내면서도 유독 ‘조경’이나 ‘조경가’는 다른 용어로 고쳐 표기하곤 했다. 이를테면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조경가 아드리안 회저(Adriaan Geuze)의 작품이 용산공원의 미래를 그릴 설계안으로 당선되었다”는 문장에서 ‘조경가’는 예외 없이 다른 단어로 수정됐다. 조경전문가, 조경디자이너, 조경건축가는 그나마 조경을 남겨준 몇 안 되는 경우다. 거의 모든 언론이 안드리안 회저의 직명을 공원전문가, 공원설계가, 공원디자이너, 도시공원계획가 등으로 바꿔 적었다. 기자들과 편집자들이 조경에 무지한 탓이라고 분노할, 조경의 사회적 인식이 아직 이 정도라고 낙담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조경가로는 의미 전달이 안 된다고 판단해 머리를 쥐어짜 새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이미 익숙해서 둔감해졌지만, 여러 지자체의 조경 담당 부서명들은 조경이라는 이름의 난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조경 정책과 사업을 총괄하는 조직은 푸른도시국이다. 이 낭만적인 이름을 단 부서 밑에 공원조성과, 공원녹지정책과, 자연생태과, 산지방재과, 그리고 ‘조경과’가 있다. 조경과의 담당 업무를 찾아보면 수목 식재 사후 관리, 시설물 관리, 가로수와 녹지대, 가로변 꽃 가꾸기 정도다. ‘한국조경헌장’(2013)이 정의하듯 조경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라면, 푸른도시국은 ‘조경국’이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조경계 안에서만 유통된다. 대학에서 조경 교육이 시작된 1973년도에도, 내가 조경학과에 입학한 1987년도에도, 다시 35년이 지난 2022년에도 조경은 조경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애증의 이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공이 조경이라고 말하면 대개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반응한다. “아, 나무랑 꽃 심고 정원 만드는 거죠? 나무 많이 아시겠어요. 부러워요.” 당대의 지성을 이끄는 어느 철학과 교수가 내 방에 불쑥 방문해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다. “처가에 땅이 좀 있는데, 무슨 나무를 심으면 유망할까요?” 한국조경학회 이름으로 용산공원 일을 맡아 진행할 때마다 의구심 가득한 눈초리를 동반한 질문을 받곤 한다. “조경학회가 이런 복합적인 도시 프로젝트를 해낼 수 있어요?” 어느 경우든 막상 대답이 궁하다. 한국조경헌장의 정의를 암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뇨, 조경은 나무 심고 돌 놓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공원도 설계하고 단지도 계획하고 도시 경관의 큰 골격도 짜고 그래요.” 영어 단어를 조금 섞어 써도 재수 없이 하지 않거나 불편해 하지 않는 상대라면, “조경, 영어로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에요”라고 덧붙인다. 그러면 내 기분은 좋지 않지만 상대의 반응은 좀 낫다. 뭔가 알아듣는 표정을 지을 때가 많다. 그런데 조경에 해당하는 영어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일까? 그렇지 않다. 조경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가 아니라,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한국어로 번역한 게 조경이다. 이 번역어 ‘조경’이 문제의 핵심일 수 있다. 1970년대 초반 한국 제도권 조경(학)의 창설자들은 미국식 개념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수입해 고심 끝에 조경이라는 말로 옮겼다. 하지만 이 전문 분야의 역할과 가치는 새로웠던 데 반해, 분야 명칭으로 선택된 조경은 이미 다른 뜻으로 통용되던 말이었다. 1920년 이후 일간지 전문을 제공해주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해 보면 1962년부터 조경이라는 단어가 기사에 등장한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와 관계없이 1960년대에 쓰인 조경이라는 말의 뜻, 말할 필요도 없다. 나무와 꽃 심고 돌 놓는 것, 관상수 재배, 가드닝 정도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상 언어에서 조경은 바로 그 조경이다. 조경을 하나의 학제(discipline)이자 전문 직능(profession)인 출발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의 도착어로 삼기에는 조경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미 사회적으로 굳어져 있었다. 1970년대 이후 제도권 조경은 늘 목놓아 소리치며 조경은 그게 아니라고 다른 거라고 강변하고 주장해왔지만, 조경은 결국 조경이다. 조경은 조경이라는 말에 갇힌 셈이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선택된 조경(造景). 나는 이 단어의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가 어긋나는 현상이 한국 조경의 50년 역사를 뒤엉키게 한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한국 조경(학) 50주년을 맞은 2022년,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설계하는 첫걸음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이름 ‘조경’에 대한 긴 호흡의 연구와 토론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공감과 우려가 공존할 것이다. 반세기 지켜온 이름을 이제 와 버릴 수 없으며 오히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조경의 사회·문화적 역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가야 한다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공감은 하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기 쉽지 않다는 우려도 있을 것이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다시 번역한다면 결국 대만처럼 경관건축(景觀建築)인가. 중국처럼 원림건축(園林建築)으로 옮길 이유는 없다. 일본의 조원(造園)은 조경보다 협소한 느낌이다. 일부 건축가나 조경가처럼 ‘조경 건축’이라고 쓰는 방법도 있다.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과 박윤진 소장(오피스박김)은 고심 끝에 명함에 ‘조경건축가’를 넣자 적어도 ‘인식’면에서는 모든 게 해결되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나 건축에 치이는 다수 조경인들은 건축이라는 두 글자에 바로 공분하며 경관‘건축’이나 조경‘건축’에 강하게 반발할 게 분명하다. 이미 몇몇 대학의 학과명에서 볼 수 있듯 조경 앞에 환경이나 생태나 도시를 덧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건 조경보다 더 옹색하다. 스마트 도시, 그린 인프라 같은 유행어를 섞어보자는 의견도 있을 텐데, 그건 10년도 못 갈 궁여지책,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라는 출발어를 도착어로 어떻게 번역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참에 조경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도 넘어 업역을 넓혀야 한다고, 그런 확장을 만방에 선언할 새 이름을 달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룹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땅을 넓히고 싶다 고백한다고 그런 땅이 우리에게 다가올까. 여러 쟁점이 뒤얽힌 어려운 문제지만, 우선은 적확한 진단과 다각적 토론을 향해 문을 열어야 한다.1 보론: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 『환경과조경』은 2019년에 ‘이달의 질문’ 지면을 꾸린 적이 있다. 그해 12월의 질문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에 보내온 독자들의 답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몇 가지 답을 조금 줄여서 아래에 붙인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독서 모임에서 ‘번역’의 문제를 다룬 책에 대해 토론을 했다. 이 질문 역시 어쩌면 번역의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경(造景)’이라는 한자어는 언제부터 이렇게 번역되어 쓰였을까. 요즘 정원, 가드닝이 뜨면서 조경이라는 말과 뒤섞여 사용되다 보니 그 뜻이 더욱 모호해진 것은 사실이다. 덩달아 조경가, 조경 설계 같은 말들로도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 제법 긴 설명이 필요하다. 명함이나 프로필에 ‘조경건축가’라고 쓴 적이 있다. 딱히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라도 무슨 일을 하시냐는 질문은 좀 뜸해졌다. 번역의 문제인지 용례의 문제인지, 아무튼 이 질문은 현재진행형이다.”(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영국 사례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조경협회에 상응하는 영국 단체명은 ‘Landscape Institute’다. 학과 단위로 독립된 조경학과는 셰필드 대학(University of Sheffield)이 유일한데, 학과명은 ‘Department of Landscape’다. 모두 우리의 조경협회, 조경학과는 동일한 의미와 범위를 갖는다. 물론 이들이 ‘우리 업역을 명확하게’, ‘학과를 지원하는 수험생들이 쉽게 인지하도록’ 등의 이유로 ‘Architecture’를 더한 ‘Landscape Architecture Institute’, ‘Department of Landscape Architecture’로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결과는 압도적 반대로 무산. 왜일까? 결국 우리 업역을 제한하게 될 것이다, 학제간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조경만 가르치라는 말인가 등이 다수 의견이었다. ‘조경’이 ‘조경가’의 사고와 신념의 범위를 담기에 적어도 그들 생각에는 충분하지 못했던 듯하다.”(정해준, 계명대 교수) “조경의 이름이 부끄럽다면 그것은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일들이 비루했기 때문일 것이며, 조경의 이름이 자랑스럽다면 그것 역시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일들이 찬란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경의 이름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고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조경이 스스로의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돌이켜보면 그 이름은 내가 조경의 이름으로 행한 부끄러운 일들과 자랑스러운 일들이 담기에는 충분했다.”(김영민, 서울시립대 교수) “조경의 의미를 담는 이름이 부족하기보다 그 의미를 전달하는 우리가 부족한 게 아닐까?”(조용준, CA조경 소장)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조경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니 누군가 그런 것도 박사가 있냐고 되묻길래 당황한 기억이 있다. 1970년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조경’이라는 말을 가져다 썼고, 이 용어가 더 넓은 범위의 토지, 도시, 경관 디자인을 포함하지는 않으니 완벽한 번역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름이 잘못 지어졌다고 푸념하기엔 한국 조경이 태동한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간 우리 분야의 전문성을 제대로 대중에게 인식시키지 못한 건 아닐까. 조경이란 말이 현재 근사하게 통용되고 있다면, 과연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까?”(이명준, 한경대 교수) “조경이란 단어가 쓰인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그 의미는 건설의 조경, 훼손된 경관을 꾸미는 분야로 특정 지어졌다. 조경이란 이름으로 생태 복원에 참여하려 하면 생물, 생태, 환경공학 분야로부터 배척당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조경은 생태계 기본 원리에 따르기보다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기에, 환경 복원 분야에 조경이란 이름으로 참여하면 전문성을 내세우기 곤란하다.”(홍태식, 당시 한국생태복원협회장) “명명이란 행위는 단순하지 않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저 있기만 할 뿐 인지되지 않았던 대상을 수많은 대상으로부터 선택하고 분리하여 특정한 존재로 불러내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대상에 이름을 붙일 때는 그의 정체성을 온전히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며, 파악한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적확한 개념어를 찾는 일이 이어져야만 한다. 조경이라는 명칭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는 것은 아마도 이 용어가 지칭하는 행위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 인식은 본래부터 조경이란 용어가 실재하는 행위를 온전히 포괄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난 40여 년간 조경이란 분야가 다루는 영역이 확장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건 조경이란 이름이 적확한 명칭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이름은 무엇일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적절한 이름이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경이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기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인식은 변화의 시작이다. 한국 조경이 곧 50돌을 맞는다.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한국 조경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조경이란 명칭의 적절성에 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김진환, 당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과장) “유튜브를 실행한다. ‘조경’을 검색하고, 조회순 정렬을 클릭한다. 가장 위에 위치한 영상의 제목은 ‘최상의 조경! 강원도 횡성군 별장 전원주택 연수원 매매.’ 조회수는 무려 33만이다. 영상은 6분 정도 진행되며, 말없이 5천평 고급 별장의 외부 공간을 살핀다. 뒤로 돌아가 스크롤을 내린다. ‘래미안의 클래스를 경험하라’라는 제목으로 아파트 조경을 홍보하는 여섯 번째 영상과 미국 건축평론가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의 책 『공간 혁명』을 소개하는 여덟 번째 영상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상 제목에 ‘주택’과 ‘조경’이 함께 놓인다. 전공자가 기대하는 영상은 스크롤을 한참 내려도 찾기 어려운 걸 보니, 유튜브 세계와 전공자의 머릿속 간극은 꽤 넓어 보인다. 이제 질문에 답해보자. ‘조경’은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하지 않은 이름이다. 유튜브 안에서도.”(이형관, 당시 앤더스엔지니어링 차장) 각주1. 이 글의 많은 부분은 2021년 6월,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의 칼럼 시리즈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를 통해 발표된 바 있다. 더 읽을거리 ·오휘영, “우리나라 근대 조경 태동기의 숨은 이야기(1)~(2)”, 『환경과조경』 2000년 1월호, pp.48~51, 2월호, pp.30~33. ·우성백, 『전문 분야로서 조경의 명칭과 정체성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7. ·우성백·배정한, “조경은 Landscape Architecture인가”, 『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논문집』, 2016, pp.11~12. ·Brian Davis & Thomas Oles, “From Architecture to Landscape: The Case for a New Landscape Science”, Places October 2014, placesjournal.org/article/from-architecture-to-landscape/?cn-reloaded=1 ·Charles Waldheim, 배정한·심지수 역, “건축으로서 경관 Landscape as Architecture”, 『경관이 만 드는 도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이론과 실천』, 9장, 2018, pp.196~217. ·Joseph Disponzio, “Landscape architect(ure): A Brief Acccount of Orgins”, 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and Designed Landscapes 34(3), 2014, pp.192~200. 배정한은 2014년 1월호부터 『환경과조경』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현대 조경설계의 이론과 쟁점』과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를 지었고, 『라지 파크』와 『경관이 만드는 도시』를 번역했다.
    • 배정한
  • [조경, 그 이름을 묻다] 우리의 조경과 그들의 조경은 다르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와 조경 50년 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라는 신문물이 이 땅에 들어왔다. 신문물은 현대성(modernity)의 상징이다. ‘조국 근대화’라는 구호는 시대가 지향한 가치를 보여준다. 근대화의 길을 가기 위해 이 땅의 오랜 역사와 문화는 지워지고, 국토와 자연은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새로운 분야가 필요했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가 그것이었다. 이 신문물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조경(造景)’이었다. ‘경관을 조성한다’는 의미이니,1 뜻으로 보면 이보다 더 나은 말이 있을까 싶다. 50년을 써 왔으니 아주 익숙하고 친근하다. 그래서 애정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조경이 뭐 하는 거냐? 흔히 조경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조경이 뭐 하는 거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질문자는 스스로 답을 찾았다. 자신은 없었는지 되물었다. 고래 잡는 건가? 포경과 조경의 어감이 비슷해서였는지, 지금은 금지된 포경업이 당시엔 인기였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은 조경이 뭐 하는 거냐고 묻고, 우리는 설명해야 했다. 쉽지도 않고 유쾌하지도 않지만, 상황은 반복되곤 했다. 시대는 변하고, 조경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다. 조경이 뭐 하는 거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농담이거나 자신이 무지에 대한 자백인 시대가 되었다. 이젠 묻지 않는다 2021년 가을, 광주 '아시아 예술정원' 설계 공모안 심사가 있었다. 한 심사위원이 비장한 표정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왜 조경기술사가 이 프로젝트의 책임이죠? 그는 그 예술정원이 조성될 자리 한가운데 위치한 시립미술관의 장이었다. 조경이 이런 걸 해요? 도시재생이나 단지 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 조경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질문이다. 그들은 조경이 뭐 하는 거냐고 묻지 않는다. 그들은 조경이 뭐 하는 건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아는 조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조경과 다르다. 우리의 조경을 열심히 설명해도 설득당할 것 같지도 않다. 우리의 조경과 그들의 조경이 다르다 한국에서 조경 공간의 정책을 다루는 기초자치단체는 226개다. 이 가운데 조경을 국局 단위로 편제하여 조경 정책을 집행하는 지방정부는 한 곳도 없다. 푸른도시국에 조경과가 조직된 특별한 서울시를 제외하고는과 단위 조직을 갖춘 지자체도 없다. 대부분 조경은 공원녹지과 또는 공원과, 녹지과, 산림환경과 등에 팀 단위로 명맥을 유지한다. 정원운영과에 조경팀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조경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조경을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한국조경헌장)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글자 그대로 조경이 경관을 조성하는 일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어도 공원과, 녹지과, 정원과 등에 조경팀이 있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지? 언어학자에게 기대어 이해를 구해본다.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_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의미 작용(signification)은 자의적이라고 한다. 조경이라는 기표(signifiant)와 조경의 기의(signifié) 사이에는 필연성이 없는 것이다. 조경의 정의와 사람들이 갖는 조경에 대한 이미지나 의미는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미지와 의미는 사회 속에서 필연화된다. 그렇게 필연화된 조경이라는 이름이 조경의 의미와 역할을 한정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1. 조경(造景)이라는 한자는 동사와 명사로 구성된 단어 구조 자체가 예스럽고, 조(造)라는 범용적인 동사가 개성이 없어서 오히려 예술적인 창작보다는 기술적 제작이나 시공에 가깝다고 한다. 김영민, “조경(造景)이라는 말,” 「라펜트」 2021년 8월 12일. 최정민은 한때 LH에서 정붙일 만한 아파트 단지, 좋은 공원, 살 만한 신도시에 대해 고민했었다.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 다니던 시절에는 설계 공모전에 열심히 도전했다. 현실 조경 비평을 통해 조경 담론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싶은 과잉 의식도 있었다. 지금은 순천대학교 산림자원조경학부 조경전공 교수로 학생들에게 설계하는 방법을 안내하면서 조경의 미래에 대해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