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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 화산체육공원
    · 위치 :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송상리 91번지 일원 환경사업소 내· 조경면적 : 126,792㎡· 설계 : (주)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대표 이강록)· 조경시공 : (주)태영(대표 박종영), 다빈조경(주)(대표 최성규)· 공사기간 : 2000. 1. 18~2005. 3. 2.· 조경공사비 : 85억원· 감리 : (주)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한국종합엔지니어링, 경기엔지니어링· 사진 : 김태우 실장수원시는 화성시 태안읍에 위치한 하수처리시설을 지하화하고 상부를 복개한 자리에 골프연습장, 축구장, 농구장, 테니스장, 인라인스케이트장, 생태공원 등을 갖춘 체육공원을 조성하였으며, 이름을 “수원 화산체육공원” 이라 붙였다. 심한 악취로 인한 혐오시설을 지하화 하고, 복개구간에는 수목 및 지피류의 식재를 통해 악취를 없앴으며, 운동공간과 휴게시설물 등의 도입으로 주민들의 사랑받는 장소로 탈바꿈시킨 시도가 돋보여 전국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으로서 의미있는 장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용객의 대부분은 화성시민들이며, 골프장 등의 이용수익금 10%가 화성시에 제공되고, 공원관리 등에 사용되고 있다.공간은 크게 복개구간의 체육공원과 인접 확대된 부지에 조성된 생태공원으로 나눌 수 있다. 체육공원지상의 높은 구조물을 차폐하기 위해 주로 상록수를 심었고, 소나무와 대왕참나무가 주요 수종으로서 숲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체육공원에는 국제규격에 맞는 인조잔디 축구장과 테니스장, 농구장, 게이트볼장, 인라인스케이트장, 총 62타석의 타석연습장, Par3-9홀의 피칭 연습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각 운동공간의 경계를 따라 동선이 나있으며, 산책 및 조깅, 인라인 공간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식재가 위주인 공간이지만, 굴곡을 지닌 동선의 형태, 골프장 내의 수경시설과 곳곳에 보이는 가벽(돌담)들이 조경 디자인적 흔적을 보여준다. 돌담들은 높고 낮거나 가리고 보이는 수법으로 조경적 기교를 표현하고 있으나, 기타 재미있는 설치물들이 적어 아쉬움이 없지 않다. 생태공원체육공간만의 단조로움을 벗기 위한 공간할애의 성격이 강하며, 또한 혐오시설이라는 본래의 장소성보다 공원의 친환경성을 강조하기 위한 공간적 의미가 크다. 생태공원 내에 조성되어 있는 생태연못은 생태적 기능은 실종되었으나, 경관적인 면에서 가장 중심이 되며, 팔각정자, 퍼골라 등의 놀이 시설이나 휴게시설물들을 설치하여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이용을 요구하고 있다.
  • 인천 삼산지구 시냇물공원
    · 위치 : 인천시 부평구 삼산동 294-10 일원· 면적 : 20,326㎡· 발주 및 설계 : 대한주택공사(부장 홍기문, 과장 이찬수, 감독 김영종)· 시공 : 한수종합조경(대표 한경구, 현장소장 김종원), 녹원건설(주)(대표 한창현)· 식재: 신세기조경개발(대표 정구양)·시설물: 이우산업건설(주)(대표 이창렬, 현장소장 송영대)삼산지구 근린공원1로 계획되었던 이곳은 시냇물, 즉 계류가 중심인 공원이다. 진입광장을 지나서 만나게 되는 바닥분수에서부터 시작된 계류는 공원 중심부를 지나 중앙광장의 한 면에 조성된 생태연못으로 흘러든다. 이곳에서 정화시스템에 의해 걸러진 물은 다시 바닥분수로 보내져 순환된다. 계류가에는 두 곳에 데크가 마련되어 있어 가까이에서 물을 접할 수 있고, 계류를 가로지르는 목교도 놓여있다. 한편, 대상지의 한 면을 따라 굴포천이 흐르고 있어, 물은 이래저래 이곳의 중심 요소이다.전체 대상지는 삼각형 형태로, 삼각형의 정점인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전통정자가 세워져 있고, 그 정자를 중심으로 삼각형의 좌우 측면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전술한 대로, 한 면으로 굴포천이 흐르고 있고, 그 굴포천 너머에 박물관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전통정자는 굴포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도, 인도교 너머의 박물관 공원에서도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앞에 소개한 분수공원이 각종 수경시설이 조성되어 있는 감상 위주의 공원이라면, 이곳은 중심 요소인 계류 이외에 맨손체조장, 피크닉장, 전통정자, 중앙광장, 체력단련장, 모험놀이시설,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어, 다양한 이용행태가 일어날 수 있는 이용 중심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순천조례호수공원 조성 기본계획 건설기술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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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문화적 경관 보호에 관하여
    지난해 일본에서는 경관법 제정을 비롯해 문화재 보호법이 개정되어, 경관에 관한 법률의 정비가 시행되었다. 특히 문화재보호법의 경우는 현재 세계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UNESCO 세계유산의 ‘문화적 경관’이라는 개념을 농림수산업과 연관 지어 반영하여 개정하였다. 반면, 국토의 약 90%가 농산어촌에 해당하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개발위주의 정책으로 인해 농산어촌의 경관이 상당히 훼손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농산어촌의 경관에 대한 법률적 정비를 시도하였고, 농산어촌의 경관을 보전하고 이를 지역활성화와 연계시켜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따라서, 본 글은 세계적 흐름으로 떠오른 ‘문화적 경관(cultural landscape)’과 일본에서의 문화적 경관의 도입에 대해 알아보고, 그 시사점을 언급해보고자 한다.문화적 경관의 개념‘경관’에는 ‘아름다움’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의 landscape도 풍경 및 풍치라 불리는 토지의 외관을 의미한다. 경관은 도시경관, 농촌경관 등 대상으로도 구분되지만, 여기에 인간의 행위와 자연과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소산이라는 독특한 특성이 반영된 문화적 경관(cultural landscape)으로 정리될 수 있다 Carl Sauer는 ‘문화경관’이라는 것을 ‘인간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겨난 물적 형태와 문화적 형태의 명백한 조합을 보유한 지역’이라고 정의하고 있다(황기원, 1995, p. 122). 한편, UNESCO의 세계문화유산협약 시행을 위한 운영지침 47조의 문화적 경관을 정의한 내용에서도 인간과 자연과의 결합에 의해 나타난 산물이라고 하고 있다. 즉, 문화적 경관은 양쪽 모두 외적이고 내적인 자연환경에 의한 물리적 제약과(혹은) 기회, 그리고 연속적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힘에 의한 영향 하에서 인간사회와 정주(定住)가 여러 시간에 걸쳐 진화한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오 민 근 · 서울대학교 경관보전 및 개발연구실)(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보길도 곡수당 지역의 발굴유적에 대한 복원 계획
    전남문화재연구원이 2003년부터 2005년 3월 까지 보길도 곡수당 지역을 발굴조사 하였다.이지역의 발굴조사는 완도군이 보길도 윤선도 유적(사적 제368호)의 보존 정비와 활용을 위한 학술적 자료를 얻고자 함에 있었다.보길도의 곡수당지역과 낙서재 지역에 대한 문헌 기록은 윤선도의 5대손이 되는 윤위(尹偉)가 1748년 보길도를 답사하고 그의 선조 윤선도에 대한 유적을 자세히 기록한 보길도지(甫吉島識)가 있다.보길도지는 윤선도가 1637년 부용동에 들어와서 일곱차례나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13년간 머물다가 1671년 낙서재에서 85세로 세상을 떠난 해부터 77년이 지난 이후의 기록이 된다. 그러나 윤위는 선조의 유적에 대한 문헌자료와 윤선도 당대의 유적을 고찰하고 그 후에 변화된 사항에 대한 것까지 세세히 살펴서 정확한 기록을 남겼다. 윤선도가 떠난지 334년이 지난 지금 발굴조사를 통하여 들어난 유적을 문적을 참고하여 고찰해 본다.곡수당과 서재지역곡수당 지역과 서재 지역은 발굴조사된 평면도면을 중심으로 고찰해 본다. 상지(上池)의 북 서쪽에 연한 건물지가 곡수당(曲水堂)터로 볼 수 있다.보길도지에 보면 ‘한 칸 방에 사방에 퇴를 달았으며 남쪽 난간에는 취적(取適) 서쪽은 익청(益淸)이란 편액을 달았다. 이는 모두 학관의 글씨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 ‘정사는 세연정 보다는 약간 작지만 섬돌과 주초돌을 놓은 것은 정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곡수당(曲水堂)도 세연정 처럼 한칸방 4칸퇴(一間四退)라 한 것은 가운데 방 한칸에 사방으로 마루를 설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집이었던 것으로 보길도지에 곡수당의 정사(亭?)가 세연정보다 약간 적다고 표현한 것은 세연정과 비슷한 건물 구조로 약간 적다는 표현이다. 곡수당은 세연정(1637년)보다 뒤에 건립하였다. ‘초당 뒤에는 평대(平臺)를 만들고 대의 삼면에 담장을 둘러 좌우에 작은 문을 두었으며 그 중간에는 꽃과 과일나무를 심었다.’ 곡수당 뒤에 평평한 지역이 있고 동,북,서로 담장이 노출되어 있고 담 좌우에 협문터가 지금도 있다. 다만 평대에 심었던 꽃나무와 과일나무는 없어졌다. 곡수당의 남쪽 취적헌에 연하여 조성된 장방형(길이4.5m×너비2.4m)의 못이 발굴되어 있다. 이 못의 깊이는 1.8m가 넘는데 바닥은 판석의 자연 암반임으로 연(蓮)을 심을 수 없어 연지(蓮池)는 아니다. 보길도지(甫吉島識)에서도 연지라고 기록하지 않고 못(池)이라고 만 기록하고 있다. 이 못의 서쪽 지안(池岸)축대는 높이 약 2m쯤 수직으로 잡석으로 면이 고르게 쌓았는데 석축의 심은 강회를 채워서 콘크리트보다 단단하게 조성되어 있다. 이렇게 강회의 심을 넣은 못 축대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발달된 조영이다.이 못에 대한 보길도지의 기록은 ‘취적헌의 아래 유의교(有意橋)의 위에 못을 파놓았는데 넓이는 대와 비슷하고 깊이는 두어 칸이며 석축 한 것이 꽤 높았다. 후면에는 두어층의 작은 화계를 만들어 화초와 괴석을 열 지어 심었으며 동남쪽에 방대를 높이 축조하고 대(臺) 위에는 암석을 쌓아 가산(假山)을 만들었는데 높이가 한길 남짓하다.’‘허리부분에는 구멍 하나를 뚫어 그 가운데에 석통(石筒)을 끼워 넣고 뒤에는 은통(隱筒)으로 물을 끌어들여 구멍을 통하여 못 속으로 물이 쏟아지게 하고 이를 비래폭(飛來瀑)이라 불렀다.’‘이 연못에 물이 차면 수통을 가산 뒤로 옮겨 작은 언덕(短阜)에 대는데 그 언덕에는 단풍나무 산다(山茶:동백)나무 소나무들이 서있다. 초당의 서남쪽 모퉁이 계단 위에는 백산다 한그루가 있는데 높이는 처마를 웃돌고 눈빛의 꽃이 연못에 비치고 있다. 산다는 곧 속명으로 동백이다.’이상의 기록을 통하여 발굴조사된 ‘상연지’ 유적을 살펴보면 이 못의 동쪽 지안(池岸) 위에는 지금도 괴석 두덩이가 발굴조사로 노출되어 있다. 이 괴석이 있는 지역이 화계이며 화계에는 괴석과 화훼(花卉)가 열식(列植)되어 있었던 곳이다.못의 동남쪽에는 방대를 조성하여 한길 남짓한 높이의 석가산이 조성되어 있었던 곳으로 지금 방대의 유적이 노출되어 있고 석가산은 허물어져 암석들이 흩어져 있다. 괴석은 석회암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형태이다.대가 있는 지안의 허리부분에 석통(石筒)을 끼어 은통(땅에 묻은 홈통)으로 물을 끌여 들여서 못속으로 물이 쏟아지게 한 비래폭(飛來瀑)이란 폭포가 있었다. 지금 유적에서는 비래폭의 폭포시설은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은통(隱筒)으로 땅밑에 나무 홈대를 묻어 곡수당 동남쪽 산속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을 높은 곳에서 못까지 끌어왔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지금도 나무 홈대를 가설하여 곡수당 동남쪽 개울물을 끌어 올 수 있게 되어 있다.(정 재 훈 ·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성남 희망대공원
    · 위치 :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 2182번지 희망대공원 유희시설 철거부지· 면적 : 10,000㎡(3,030평)· 발주 : 성남시청 녹지공원과· 조경설계 : (주)경화엔지니어링(대표 김흥식)· 시공사 : (주)건남토건(대표 배종환, 조경담당 박재건)· 조경시공 : 송정조경(대표 김정욱)· 수경시공 : 한강워터테크(대표 임중식)· 공사기간 : 2004. 7. 28. ~ 2005. 7. 27.· 공사비 : 26억· 사진 : 김태우 실장성남시의 “희망대”, 지금부터 약 30년 전 청계천으로부터 이주한 주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자는 의미로 부쳐진 이름이란다.성남시는 희망대 근린공원 내 회전목마 등 기존의 노후화된 유희시설을 철거한 일부 부지에 광장, 체육시설 및 계류, 물놀이 시설 등을 도입하여 시민들이 휴식 및 운동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을 조성하였다. 레벨차가 심한 지형적 조건을 적극 이용하여 정상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계류와 벽천 등을 조성하고, 아래부터 위로 입구, 광장, 놀이터, 운동장 등을 조성해 놓은 것이 공간 구성의 특징이다. 입구 광장, 다목적 광장공원의 입구는 전통성을 느낄 수 있는 수종을 이용한 경관식재지와 팔각정자가 서로 어우러져 자연적인 미가 느껴지며, 시민들의 휴식과 사색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형의 차를 이용한 벽천을 통해 공간에 역동성을 부여하였으며, 벽천으로 흘러내린 물위에 놓여진 직사각의 정형적인 형태의 돌다리는 인공적인 조형 요소가 되고, 또한 걷기 놀이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입구에서부터 정상으로 나있는 산책로를 타고 오르면 각 공간들을 만나게 된다. 벽천 바로 위쪽에 자리를 잡은 다목적 광장에는 측면에 무대를 설치하여 시민들의 대규모 공연이 가능하며, 일상적인 인라인스케이트장으로서 운동공간의 기능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근에 시민들의 규모있는 집회 및 공연 등을 할 수 있는 문화행사장이 부족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청계천 복원 ; 나는 청계고가가 서울이라는 도시가 만들어낸 하나의 시詩가 되었으면 하고 바랬다
    짙은 어둠의 그늘이 사라지고 시원하게 열린 서울의 하늘과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 그리고 어느 정도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이루어진 사업의 추진력, 청계천 사업을 통해 주변 재개발계획의 당위성 확보와 이를 통한 부의 확대 재생산과 수직적 거대도시를 향한 욕망의 실현 따위가 우선 거칠게 보이는 청계천 개발의 가시적인 성과일 것이다. 거기다 정치적인 입지의 확보까지 얘기하지 하지 않더라도 관계된 모든 사람들과 서울시민들에게 행복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개인적으로 2002년 5월부터 2003년 7월까지 일년 조금 넘게 웹에서 청계천을 주제로 열린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우리에게 청계천은 과연 무엇인지, 청계천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접근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궁극으로 청계천을 통해서 과연 우리는 무슨 꿈을 꿀 수 있는지를 놓고 온라인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였다. 그때 작업 중에 썼던 몇 편의 글 속에 청계천 개발에 대한 준거의 단초를 놓아 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에 대한 확신은 유보적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 준거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하려 한다.지금 청계천사업 전반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동안 끊임없이 제기 되었던 상충된 의견들이 있었지만 의견은 수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철저하게 일방적인 절차로 진행되었다. 시민참여를 위한 행사나 공청회가 요식행위였음은 결과가 말해주지 않나. 여기서 과정의 문제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청계천 개발이 내포하고 있는 다양성과 잠재된 가능성, 그리고 삶의 터전으로 청계천변이 가진 삶에 대한 존중을 위해서 충분한 시간과 합의는 이 프로젝트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한 새로운 전범이 될 수 있었지만 그러한 기회를 스스로 박탈한 꼴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소외받은 계층에 대한 배려와 땅에 대한 신중함,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요구되는 사업이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원형에 대한 합의, 개발에 따른 명확한 준거들이 먼저 정립되어야 했다. 여기서 문제는 대략 세 가지로 드러나고 이것이 청계천개발사업을 바라보는 하나의 준거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적어도 스스로의 관점에서는 그러하다. 세 개의 준거準據시간 - 역사적 층위가 공존하다서울의 사대문 안이 그러하지만 특히 청계천은 다층의 시간이 공존하는 독특한 장소다. 그 시간은 단지 고고학적 시간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이 현재 시간의 한 유형으로 공존하며, 새로운 시간을 꿈꾸는 서로 다른 시간의 주기가 얽혀 있는 곳이다. 무형의 사람이 만들어 내는 시간이 그렇고, 존재하는 도시 기반시설의 물리적 구성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청계천 개발에서 무엇보다 고려되어야 할 것은 획일적인 어느 시간의 적용이 아니라 다층의 시간 구조를 존중하면서 그리고 또 그 각각의 시간이 가진 서로 다른 시간 주기의 섞임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되어야 했다. 삶 - 그들이 아니라 이들이 문제다청계천 복개와 함께 오늘날의 상권으로 자리를 잡는데 꼬박 삼십 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이전에 무허가 난민촌과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지만 청계천을 따라 일정한 수요와 공급 그리고 판매가 순차로 일어나는 유기적인 체계를 갖추기까지 청계천의 사람들은 개발론자들이 공란으로 남겨두었던 내용을 채워나가면서 스스로 삶의 모형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삶이 각각의 공간에서 톱니처럼 이루어져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무슨 근거에선지 여전히 낡고 불합리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있다. 삶의 모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 계획가와 설계가, 개발론자들에게 있었다. 청계천의 삶을 흐트러트릴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상 - 꿈 또는 전망을 놓다지상에서 가장 긴 공중가로정원을 생각했었다. 느릿느릿 흐르다보면 사대문 안 동쪽 끝과 서쪽 끝을 나지막한 건물과 산이 둘러싸고 그 길 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내려보는 꿈을 꿨다. 거대 도시 안에 지구 상에서 가장 활동적인 공간을 관조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계단을 내려가면 나도 거기 한 사람임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억지로 역류해서 다시 흐르는 물이 아니라 끊어졌던 주변의 천을 하나, 둘, 다시 살려내서 그 이름을 돌려주고 싶었다. 백운동천, 삼청동천, 계생동천, 북영천 ... 하면서. 어항 속의 수초가 아니라 살아있는 개천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다시 물길을 만들어 순환하는 자연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청계천은 기존의 서울을 증폭시키는 거대한 꿈의 용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특정인의 팍팍한 꿈이 아니라 만인의 넉넉한 미래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더디고 더디지만 그것이 가능하리라 봤다. 이 시대에서 조경을 하는게 부끄럽다. 이 수 학 Yi, Soo Hag 아뜰리에나무 소장
  • 청계천 복원 ; 청계천 속으로_1공구
    태평로 입구 청계천 복원 시점부 청계마당에서 모전교, 광통교, 광교, 장통교, 삼일교, 수표교, 관수교, 세운교, 배오개다리가 있는 예지동까지의 2.0km 구간으로 도시형 하천, 역사와 문화가 있는 하천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체 1.5km의 복개구조물과 2.2km의 고가구조물을 철거하였다.총 9개의 교량(차도교 6, 보도교 3)과 7개의 진입계단과 2개의 진입경사로가 설치되었고, 1개의 세월교와 9개소의 징검다리가 놓여있다. 주요시설청계광장 : 청계천 시점부인 태평로 입구에서 첫 교량인 모전교 부근까지 길이 160m, 너비 50m, 2,100여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700여평 규모의 청계마당은 검은색, 붉은색의 화강석을 이용해 한국 전통보자기 형태로 조성하고 한 켠에는 실제 물이 흐르는 청계미니어처를 제작했다. 시작점에는 2단 프로그램분수를 설치하였고, 분수의 수반에서 4m 아래의 청계천으로 떨어지게 된다. 폭포 앞부분부터 모전교까지 이어지는 물가에는 만남과 화합,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은 전국 8도의 돌이 깔렸다. 경기도를 상징하는 일돌선, 충청도의 천안석, 전라도의 고흥석, 제주의 제주석과 독도석 등이 반입 설치되었으며, 각 석재들은 호안 좌우측에 국토의 서측과 동측을 형상화하며 장식되었다.(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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