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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도시 만들기 워크숍
    서울시 공원녹지 미래상에 시민의견 수렴 지난 3월 11일, 오후 2시가 되자 서울시청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바로 서울시 공원녹지의 미래상을 수립하기 위한 “푸른도시 만들기 워크숍”이 이날 개최되었기 때문. 이번 워크숍은 서울시에서 작성한 ‘푸른도시 선언 초안’에 대하여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보고자 진행되었다. 이강오 사무처장서울그린트러스트이 사회를 맡았으며, 무대에는 벤치와 테이블, 화분 등을 놓아 푸른도시, 공원, 녹지 등의 주제성을 보다 부각하였다. 행사에 참석한 박원순 시장서울특별시은 “오래 전부터 공원녹지의 면적 확대를 위해 노력을 다각도로 펼쳐왔다. 시민주도로 조성·관리 되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좋은 도시를 손수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였다.이어 문승국 부시장서울시 행정2부은 “4월 5일 식목일이 다가오고 있다. 식목일 하루뿐이 아닌 4월을 통째로 ‘식목월’로 만들어, 서울 곳곳에 공무원뿐 아니라 시민, 기업, 학생 등이 함께 참여하여 꽃과 나무로 뒤덮인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인사말을 전했다.실무위원장인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가 푸른도시 선언에 대하여 그동안의 추진경위와 작성원칙, 전략, 비전, 방향, 슬로건 등을 소개하였다. 그에 따르면 푸른도시 선언의 초안은 ‘더불어 사는 숲의 도시 서울’을 비전으로, 사람·소프트웨어·시민참여를 중심으로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작성되었다. 또한 몇 가지 작성원칙이 있었는데 첫째, 쉽고 소통 가능한 언어로 작성한다. 둘째, 현상에 대한 진단과 제안을 제시한다. 셋째, 미래지향적이면서 실현 가능한 수준을 설정한다. 마지막으로는 시민들과 함께 푸른도시 선언을 만들어간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사)한국인공지반녹화협회 10주년 기념 정기총회 및 기술세미나
    인공지반녹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지난 2월 28일 서울여자대학교 바롬인성교육관 1층 국제회의실에서 (사)한국인공지반녹화협회(회장 이은희, 이하 인공지반녹화협회) 10주년 기념 ‘정기총회 및 기술세미나’가 개최되었다.‘인공지반녹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김현수 부회장(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위원)이 인공지반녹화 시공사례를 중심으로 국내 인공지반녹화의 과거와 현재의 실태를 짚어보았다. 이후 이동근 부회장(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은 ‘재해와 복지’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인공지반녹화의 미래를 내다보았다. 이후 안동만 고문(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을 좌장으로 황상연 사무관(환경부 자연정책과), 한정훈 팀장(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 조경과), 최연철 부장((재)경기농림진흥재단 녹화사업부), 한승호 대표((주)한설그린), 변동원 대표((주)한국 CCR), 송병화 교수(벽성대학 조경과)가 토론회를 이어갔다. 이날 행사는 환경부, 서울특별시, (사)한국조경학회,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사)한국경관학회, (사)한국환경생태학회, (사)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에서 후원했다. 정기총회에서 한승호 대표가 수석부회장에, 최연철 부장이 상임이사에 각각 선출되었으며, 2년을 임기로 매년 한명씩 교차로 선출되는 감사에는 변동원 대표이사가 올해도 활동을 잇게 되었다. 시상식에서는 양병이 명예회장(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과 안동만 고문(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임승빈 고문(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이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특별공로상은 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과 (재)경기농림진흥재단이 수상했다. 한편 인공지반녹화협회는 “2013년에도 제5회 인공지반녹화대상을 개최하고, 인공지반녹화 시공사례 D/B를 꾸준히 업데이트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6월 초에는 인공지반녹화협회 10주년을 기념하여 해외 인공지반녹화 사례지 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 나는 도시농부다, ‘도시농업 콘서트’ 개최
    텃밭에서 나누는 ‘TALK, TALK, TALK' 도시농업이 대세다. 너도 나도 빈 땅이나 베란다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텃밭을 가꾸고 심지어 돈을 내고 땅을 빌려 내가 먹을 작물을 재배한다. 가까운 상점에 가서 채소를 사먹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오히려 시간과 비용 투자대비 저렴하기까지 하다. 왜 사람들은 도시농업에 열광할까? ‘나는 도시농부다’를 주제로 한 ‘도시농업 콘서트’가 지난 2월 19일 안양 평촌아트홀에서 올해로 2회를 맞이했다. 김문수 경기지사, 최대호 안양시장, 경기농림진흥재단 김정한 대표이사 외 600여명의 도시농부와 도시농부를 꿈꾸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행사를 주최한 경기농림진흥재단은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도시농업을 통해 자연친화적 도시환경 조성과 더불어 농업에 대한 도시민의 이해증진을 도모하고자 했으며, 무엇보다 시민과 함께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기조 아래 콘서트 형식의 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참여한 시민들은 도시농업을 통해 얻은 경험담을 풀어놓으며 그들만의 도시농업 비전과 노하우를 소개했다. 광주 매곡초등학교에는 학교농장을 일군 사례를 소개했으며, 대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텃밭 동아리 ‘씨앗들’은 농사짓는 노하우를 공개했다. 주민자치센터의 쓸모없던 옥상을 주민들의 힘으로 텃밭으로 조성한 안산시 본오2동 주민자치센터의 ‘보니텃밭’과 도시농사를 지으며 암을 이겨낸 이세영와 문은순 씨의 이야기도 토크콘서트에서 공개됐다.
  • 感慨無量
    Be Deeply Moved 오늘 아침 이곳저곳에 뿌릴 씨앗들을 정리하며, 이 꽃은 어느 정원에, 이 풀은 어느 둔덕에 심겨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려나 하는 기대감으로 잔잔한 흥분을 느꼈습니다.<환경과조경>이 이번 호로 300회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알 한알의 씨앗이 싹트고 꽃피어 우리로 하여금 행복과 찬탄의 순간순간을 만들어 주듯 조경에 관련된 전공서는 물론 잡지 한 권 없던 불모지에 첫 호를 내기 시작한 <환경과조경>은 그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조경인들에게 정보 제공의 차원을 넘어, 조경인들에게 프라이드를 심어 준 힘이었고 조경인들을 결속하는 사랑의 끈이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돌이켜 보면, 첫 호의 태동은 ‘감격’ 그 자체였답니다. 잡지사에 근무했다는 일천한 경력 때문에 저를 기획과 편집부터 온갖 궂은일까지 고루 참여시킨 지금의 발행인이신 ‘은사’님의 특명으로 사무실도, 비품도, 하다못해 사진기조차 개인적인 조달로 시작한 작업이었고, 그때 참여하신 거의 모든 분들은 자원봉사에 가까웠습니다. 오직 조경계를 위해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는, 그러면서 그 일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는 일인지 편집기간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같이 즐거운 고통을 나누던 편집장 김용택 화백님, 김현선 선생, 나현영 여사, 그리고 유병림 교수님 등등 그리운 분들입니다.지금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정확한 날에 어김없이 책상 앞에 전달되는 <환경과조경>을 보지만, 그동안 이 잡지 출판의 지속성 때문에 발행인이신 오휘영 교수님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의 가슴이 조마조마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추억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도 아름답게 기억하게 해줍니다. 또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 봅니다. 저는 민들레, 할미꽃, 그리고 박주가리 씨앗을 어릴 때부터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하얀 털이 달린 씨앗, 그 한 대를 꺾어 들고 ‘후’ 불면 얼마나 멀리 날아가는지, 날아가서 잘 뿌리내리고 싹트고 꽃피고 다시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고… 얼마나 멀리까지 날아갈까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구를 한바퀴 돈, 먼 이국땅에서 여전히 노랗게 핀 민들레를 보면서 씨앗의 여정이랄까, 식물의 퍼져가는 힘에 새삼 놀라워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경이로운 여정에 찬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환경과조경>은 앞으로도 한국 조경계의 유일한 잡지로서의 긍지와 정진의 자세로 여전히 확장되어 나갈 것이고, 고난의 순간이 닥쳐와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울러 이제 우리 조경계도 좀 더 성숙한 단계로 도약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디자인만이 아닙니다. 공사의 질도 당연히 더 높아지지 않는 한 건축이나 기타 경쟁 분야들과의 전쟁과 같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조경가가 아니면 안 되는 ‘그 무엇’ 조경가만이 할 수 있는,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산수화의 발묵처럼, 조경인들의 손을 거쳐 나온 모든 일들이 발묵처럼 감동의 여울이 번지고 스미고, 퍼져 나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살아 있는 땅이고 흙입니다. 우리가 가슴에 담고 있는 태도는 유한한 지구 자원의 지속성에 있고, 환경을 더 이상 파괴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경가들이 남기는 생태발자국들이 우리 국토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존하고 가꾸는 것이라야 합니다.조경계가 변하고, 더 한층 질이 높아지고 조경인들이 이 땅에 사는 한 이 땅에 대한 책임을 잊지 않고 걸어가기 위해 300회 간행 기쁨을 넘어 다시 무거운 짐을 지셔야겠습니다. 조경인들로 하여금 더 높은 안목을 기르고, 가야 할, 걸어야 할, 해야 할 일들을 저 만치 앞서서 제시해 주셔야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거듭 축하드립니다. This morning I felt a little excited, assorting the flower seeds that I would sow and imagining how they would give pleasure to us upon coming out splendidly. When I heard the news that ELA was going to publish its 300th issue, I couldn’t help looking back on the days I spent reading the magazines and entertaining myself with them. Like colorful flowers blossoming on hills in the spring, ELA has been a great joy to every professional in the industry, helping enhancing the pride of the landscape architects in the country. I can still remember vividly how deeply I was moved by the first publication of ELA, when I had to take care of every matter of detail such as maintaining the office and purchasing equipment including even a camera. My insignificant work experience with a magazine publisher made Dr. Whee Young Oh the founder and publisher of ELA as well as my teacher, recruit me. Then Professor Oh let me take part in each and every step in planning and editing process. At that time, all the members of the organization were not employees but volunteers. We worked pleasantly and happily together, knowing that what we were doing could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landscape architecture. I am missing my old colleagues like Yong Taek Kim, Hyun Sun Kim, Hyun Young Nah, and Byung Rim You. We shared each other’s burden and worked co-operatively. Upon the arrival of the magazine every month, I sometimes think of the times when Professor Oh and the other members of ELA were faced with difficulties continuing the publication. After all these years, those moments have become priceless and treasured memories of good old days. Let’s get back to the story of seeds. Since my childhood, I have been particularly fond of the seeds of dandelions, pasque flowers, and milkweeds. I played with them, blowing them into the air and imagining how far they would fly, where they would land, and whether they would grow to be beautiful flowers. Living far away from my home country, I still see pretty dandelions in yellow and stand in great awe of the miraculous circle of life in nature. Like these beautiful wild flowers, I believe, ELA, the most prestigious publication of the industry, will spread around the world and continue its growth, in spite of any difficulties. In addition, it is time that landscape architecture paid more attention to its future development. It is not merely about the enhanced quality of design, but also about that of practice. Otherwise, I might be impossible to compete with other industries including architecture. A work of a landscape architect should be what others can never try to imitate, and it should be something extraordinary that can strike a chord in the hearts of the audience. It has to be touching and inspiring. What we are dealing with are soil and earth full of life, and what we are focused on are the sustainability of the limited amount of resources and the preservation of the environment. Therefore, the ecological footprints of landscape architects should contribute to conserving and protecting the natural environment of Korea. As the atmosphere of the industry changes over time, the quality of practice is improved, and landscape architects continue to serve as invaluable professional in our society, ELA will have take its responsibility as the leading publication in the country. ELA should actively plays its role in broadening the horizon of landscape architects, and providing directions for the industry with guidance and insight.
  • 30300
    30300 <환경과조경>의 300호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일이 얼마나 힘들고 의미 있는 일인지 알고 있기에 축하의 마음은 더욱 더 큽니다. 또한 오휘영 창간인께서 30년 동안 300호를 발행할 때까지 발행, 편집인을 하셨다는 것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그 예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환경과조경>이란 이름으로 조경 잡지가 대한민국에 처음 선보였을 때에는 한국은 조경이란 학문이나 업역이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건축 설계를 하는 사람들조차도 서로의 업무 구분이 확실치 않았던 때입니다. 조경은 설계만 하지 않고 시공을 겸하고 있든지 엔지니어링에 속한 한 부분일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학교에만 계시던 오휘영 교수께서 잡지를 창간하셨을 때 사실 속으로 얼마나 이 책이 계속될까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건축가와 문화·예술 관련자들이 잡지를 발간하고 또 연속되기를 바랐으나 많은 출판물들이 기억을 뒤로하고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예술 사조와 건축 관련 이데올로기를 펼치기 위해 많은 선구자들이 희생으로 잡지를 발행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알렸으나 그 뜻을 지속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992년부터 월간으로 전환하기 전 까지는 격월간 내지는 계간으로 발간되었으며, 1996년 8월 통권 100호 기념호에서는 조경에서의 철학을 주제로 특집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잡지에서의 특집 발행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합니다. 특히 기획하는 아이디어와 진행하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조경이라는 특정한 분야를 중심으로 도시문제와 전통 또는 신도시문제까지 넘나들며 전공자들과 일반인들의 시선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은 향상을 가져왔으며 보이지 않는 행간 속에 녹아 있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할 것입니다. 1996년 우수잡지 수상에 이어 2013년에 우수콘텐츠잡지로 선정되어 그 진가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찰스 젱스가 디자인 한 정원을 <환경과조경>을 통해 보았고, 현지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찰스 젱스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기사들이 많이 있지만 나에게는 직접 활용한 경우여서 특별히 마음에 남습니다. 조경물과 건축물과의 구분, 조경가와 건축가의 구별 등의 예민한 마찰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작업하면서 별 문제 없이 활동하고 있으나, 일부 서로의 이해의 폭이 작은 사람들로부터 간격이 생깁니다. 하지만 원래가 한 몸이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이런 갈등은 특히나 융·복합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서로가 맞고 틀림을 논하기보다 서로 다름과 더 잘 하는 부분을 찾아 배우며 공존·상생을 해야 합니다. 건축에 입문한 지 이제 40년이 되어가나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도 요즘 느끼는 것은 한국건축이야 말로 조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류 문화가 바야흐로 전 세계를 무대로 뻗어나가는 이 시점에 한국 조경과 건축의 단아함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할 때입니다. 다른 분야들이 전 세계도 좁다며 활약하는 이 시점에 우리나라 조경, 건축계도 함께 손을 잡고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그 전면에 <환경과조경>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발전과 영광이 <환경과조경>에 함께 하기를 빌며 오휘영 발행인과 관계자 여러분 모두 한국의 조경 발전에 더 큰 역할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오랫동안 지켜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며 앞으로 또 다른 30년 다음 300호를 기대합니다. I send my warmest congratulations to each and every member of Environment and Landscape Architecture of Korea on the occasion of its 300th issue. I am fully aware of how difficult it has been to keep providing such an invaluable publication, and I hope that you can enjoy every right to celebrate. In addition, Dr. Whee Young Oh, the founder of ELA has served as the editor and publisher of the magazine for the last 30 years, which is a real rarity both inside and outside of the country. By the time ELA was first published in Korea, there were few people who understood what landscape architecture is mainly about, and there was virtually no clear distinction between the field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that of conventional architecture. The industry was dealing with not only designs but also practices, considered as a small part of engineering in general. Frankly speaking, when I heard the news that Professor Oh had started publication, I wondered how long he would and could keep it going, for a number of architects and artists had already launched magazines and tried to continue publication only to find themselves in great discouragement, and among them were some renowned visionaries who strived to introduce art history and new ideas of architecture little known to the nation at the time. Before ELA became a monthly in 1992, it had been published either bimonthly or quarterly, and in July 1996, it celebrated its 100th issue with a special coverage on the role of philosophy in landscape architecture. It usually takes a lot of time and effort to create special editions of a magazine, especially when it comes to coming up with innovative editorial ideas and taking care of the details of publication process. With its main focus on landscape architecture, ELA has dealt with a variety of subjects including the problems of urbanism, heritage, and issues of new town development, to name a few, meeting the needs of professionals and general public alike. The magazine has made a constant progress both in quality and quantity, and there must be much more contribution and dedication of the members of the organization than what meet the eye. It has been widely regarded 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sources of information for the industry, awarded several prizes for its top quality and resourcefulness. A few years ago, I read about the garden designed by Charles Jencks on the pages of ELA, and then visited the site myself. I was lucky enough to meet him in person and listen to his own explanation about the work. Of the numerous reports that I found interesting and informative, this is the most memorable in that it really helped me a lot in reality. Most people find it not so much difficult to create mutual understanding when dealing with different perspectives on the distinction between landscape architecture and architecture, and landscape architects and architects. There are, however, some individuals not willing to accept the different ideas and opinions of others, sticking to their own narrow point-of-views. Such an attitude is not welcome in this age of convergence. Co-existence is made possible when we try to learn from others and enjoy what diversity has to offer. Even though I have been working in the architectural industry for almost 40 years, I’ve still got plenty to learn. One thing I can be sure of is that architecture in Korea is so closely intertwined with landscape architecture. Korean pop culture has been taking the world by storm these days. It’s time that the Korean architecture and landscape architecture took actions to introduce their elegant beauty to the world. I hope ELA can contribute to facilitating the cooperation between the industries in promoting themselves on the global stage. I wish you your continuing success, and strongly believe that Dr. Whee Young Oh and all the members of ELA will keep helping the Korean landscape architecture grow and develop in the future. Congratulations again and best wishes for another 30 years and 300 issues.
  • 초고층과 생태의 공존 초대작가 展
    원제무 이정순 양윤재 교수 지난 2월 4일부터 16일까지 삼전동에 위치한 예송미술관에서 ‘초고층과 생태의 공존’이라는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초고층과 생태라는 이질적 존재의 공존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회에는 과연 어떤 작품이 전시되어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가운데, 전시된 작품들의 작가에는 도시설계 및 건축, 조경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원제무, 양윤재 교수의 이름도 있어 더욱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같은 주제를 대하는 작가 3인의 표현방식은 어떻게 다른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노래와 따뜻한 커피 한잔에 여유와 행복을 느끼며 찬찬히 작품들을 둘러보니 전시된 70점의 작품은 작가 3인의 작품성향에 따라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을 덧붙이면 이정순 작가의 작품에서는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느낌, 양윤재 작가의 작품은 세심한 묘사로 마치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원제무 작가의 작품은 밝고 경쾌함이 느껴진다. 참고로 이 전시회는 롯데물산이 잠실에 공사 중인 123층짜리 초고층 빌딩 ‘롯데월드 타워’를 배경으로 추진되었으며, 그림을 판매하여 수익이 발생하면 일부는 자선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원제무-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미 MIT 도시공학 박사-미 UCLA 도시공학 석사-대한국토·도시계획 학회장-도시마케팅 포럼(사) 이사장-한국 MIT 동문회장-강남 미술협회 회원 이정순-한양대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이화여대 미술대학 및 대학원 출강-오스트리아 레오폴드 프란첸스대학 미술사 박사-이화여대 미술대학 회화과-김자경 오페라단 이사장-이화여대 교육대학원 동창회 회장-사단법인 베세토 오페라단 이사 양윤재-KAIST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미국 IIT 건축대학원 석사-미국 하버드 GSD 졸업-한국도시설계 학회장-서울시 부시장-서울시 청계천 복원산업 본부장
  • 초가는 바로 제주의 아이콘입니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과거와의 만남 지난해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건축학개론’과 드라마 ‘응답하라 1997t(vN 방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30~40대에게는 향수를, 10~20대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자연스러운 유대감을 형성했다. 복고열풍을 불러온 이 두 매체는 다시 볼 수 없는 과거를 재조명함으로써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해 2월 16일까지 제주시의 대동호텔 아트센터 비아아트에서도 만날 수 없는 과거의 것들과 만남을 주선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제주 초가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전시회가 열렸다. ‘초가는 바로 제주의 아이콘입니다’라는 주제를 통해 네 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전시회는 제주 출신으로 고집스럽게 제주 초가를 그린 화가 김택화와 사진가 임석제, 임인식, 임정의 삼대三代가 바라본 제주의 모습을 소개했다. 매체가 다른 회화와 사진이라는 작품들이 하나의 전시로 만나게 된 것은 김택화 작가의 초가 그림에서 시작됐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박은희 관장은 제주의 풍경을 보면서 자랐다. 때문에 어릴 때부터 김택화 작가의 그림을 접할 수 있었고, 제주의 초가를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했다. 하지만 그림만으로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담아내기엔 부족함을 느꼈고, 이 두 가지를 담기 위해 고민하던 차에 제주 초가에 대해 연구하는 건축가 김석윤에게 사진가 임정의 가족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때마침 임정의 작가가 제주 해안가를 찍은 사진이 실린 달력을 보게 되었고, 거기서 박 관장이 찾던 이미지를 발견하면서 전시가 이루어졌다. (중략)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많은 관람객이 다녀갔는데, 박은희 관장은 어느 일요일 오후에 다녀간 중년 부부를 가장 잊지 못할 관람객으로 꼽았다. 그 부부는 일요일인데도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고 전시회를 방문했다. 그런데 작품을 다 보기까지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박 관장은 그 이유가 궁금해 부부에게 말을 건넸는데, 전시에 온 이유가 본인들이 살던 집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예전에 초가에서 살 당시 화가들이 많이 와 집을 그려가곤 해서 초가 전시 작품 중에 혹시 본인들의 집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중략) 박은희 관장은 자신이 사는 곳 주변의 공간과 사회를 어떻게 건강하게 변화시킬까를 고민했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통해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제주시 구도심에 갤러리를 열었다. 이번 전시회는 그런 그녀의 생각이 가장 잘 반영되었는데, 초가라는 의미를 되새겨봄으로써 난개발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사람들이 한 번쯤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박 관장은 제주의 환경 변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데 초가만큼 좋은 매개체가 없다고 말한다. 가옥의 배치나 문화 같은 것이 제주의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이 하나로 응축돼 있고, 가장 제주다움이 묻어나기 때문이라는 것. 건축을 전공하고 스위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여학생은 제주도 초가만큼 친환경적인 것이 없다고도 말했는데, 돌, 흙, 새끼로 만들어진 초가는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제주의 환경을 생각해보고 주거문화에 반영되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참여작가화가 김택화사진가 임석제사진가 임인식사진가 임정의
  • 조경학도, 유럽서 ‘자발적’ 순천만 홍보
    유럽 6개국 방문해 정원박람회 알려 국립 순천대학교에서는 매년 세계교육문화탐방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탐방을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원해준다.마침 2013년 4월 개최될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세계교육문화탐방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나라의 자연과 조경, 정원들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먼저 같은 마음을 가진 조경학과 친구들을 모았다. 국제정원박람회가 순천에서 열려서 그런지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중 가장 뜻이 맞았던 신정우, 서보람, 이재운 3명의 친구들과 함께 고민 끝에 서양조경사에서 자주 배우며 익숙한 곳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과 평소 가고 싶었던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등 총 6개국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또 도시는 그 나라 속에서 가장 자연스러움이 묻어나 있는 곳을 위주로 선택하였다. 한마음 한뜻이 되다보니 구체적인 계획은 일사천리로 세울 수 있었다. 결국 세계교육문화탐방에 합격하게 되었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박석곤 교수(순천대학교 조경학과)님의 조언에 따라 나라별 유명한 조경작품과 정원을 조사, 스크랩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홍보팀에 찾아가기 위해서 순천시청을 찾아갔다. 홍보팀은 우리의 계획을 듣더니 영어로 된 팸플릿과 부채, CD자료, 마우스패드 등의 홍보물품을 지원해주며 “이번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열심히 홍보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아낌없는 격려를 해주었다. 더욱 실감이 나면서 보다 효율적이고 외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하였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온 가운데, 우리의 모습을 캐릭터로 만들어 단체 티와 현수막을 제작하였으며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소개할 때 사용할 영어 멘트들을 적어보는 등 구체적인 홍보방법을 준비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2012년 7월 5일, 희망찬 마음을 가지고 38일간의 긴 여정을 시작하였다. 우리가 제일 먼저 발을 내딛은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파리는 앙드레 르노트르(André Le Nôtre, 1613.3.12~1700.9.15)가 설계한 보르비꽁트(Vaux Le Vicomte)와 베르사이유(Versailles) 궁전이 있어서 우리 조경학과 학생들에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렇게 꿈꾸던 곳에 직접 가서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홍보를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마치 우리가 한국을 대표해서 온 홍보대사 같은 사명감도 들었다. 보르비꽁트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모태가 된 성으로, 베르사이유 궁전에 비해 소박하지만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매력을 가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중략) 우리의 팀명은 온새미로다.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김새 그대로, 자연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라는 뜻으로, 해외에서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우리가 처음 함께 하고자 했던 마음 변치 않고 잘 다녀오자는 마음과 더 나아가 자연그대로의 우리나라의 자연을 알리고 해외의 자연을 배우고자 했던 마음에서 선택한 순 우리말이다.이 말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도 적용되면 하고 소망해본다. 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그리고 우리나라의 조경을 세계에 더욱 알리기 위해서는 보다 자연적인 것, 변함없이 꾸밈없는 그대로가 진정으로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지 싶다.나비효과. 우리의 이 작은 날개 짓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관심을 가지는 작은 미풍이 되고, 그렇게 열의와 관심이 하나의 큰 바람이 되어 순천만에서 국제적으로 개최되는 정원박람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 <환경과조경>·라펜트 제28기 통신원 동계엠티
    함께 만들어가는 조경 이야기 <환경과조경>·라펜트 제28기 통신원 동계엠티가 지난 2월 16일부터 17일까지 대전 장태산 옥류정팬션형 가든에서 열렸다. 28기 통신원을 주축으로 한 이번 행사는 29기로 활동할 예비 통신원과 OB 통신원을 포함하여 약 70여 명의 인원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선후배 통신원 간 질의응답 방식으로 토론회가 진행되어 예비 통신원들에게는 통신원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진로와 분야에 대한 고민까지 더욱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통신원들은 게임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고, 함께 식사 준비를 하면서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는 시간을 가졌다. 28기 통신원들은 지난 1년간의 활동을 돌아보는 자성의 시간을 가졌으며, 동시에 예비 통신원들의 활동방향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이날 참석하기로 했던 통신원이 대부분 도착한 저녁 무렵에는 과거, 현재, 그리고 예비 통신원이 함께하는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조경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조경을 하면서 가장 후회했던 일, 졸업 후 진로, 졸업 전에 체험해 볼 수 있는 조경분야의 프로그램과 관련한 주제로, 사회는 28기 황희정 통신원(고려대)이 맡았다.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이날 행사에는 전조련의 김찬욱(동국대) 회장도 참석했는데, 통신원 모임 참석 이유에 대해 전조련의 활성화를 위해 <환경과조경>·라펜트 통신원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조언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조련과 <환경과조경>·라펜트 통신원이 교류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판단했고, 학생들의 지원을 끌어내는데 통신원들이 도움이 될 것으로 바라봤다.김 회장은 “전조련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과제가 있지만, 주변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전했다. 각 학교 학생회장들과 온라인을 통한 지속적인 만남이 진행 중이고, 3월 중에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전조련을 구성하고 있는 각 학교의 문제들을 수렴할 계획이다. 28기 채승우 통신원(순천대)은 “아직 학생들은 전조련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국의 조경학를 위해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잘 모르고 있다. 또한 8년이라는 기간이 증명해주듯 예전만큼 선배들이 끌어주는 것도 부족한 것 같아서 전조련의 부활이 잘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통신원들과 소통을 통해 잘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취재 _ 권서란(경북대), 유선화(한경대) 통신원 | 사진 _ 채승우(순천대) 통신원
  • 옛 그림, 물을 철학하다
    Water is expressed philosophically as old paintings 신화시대의 물2-물을 흐르게 하는 자, 천하를 얻으리라 귀신과 사람이 뒤섞여 살던 신화시대에 홍수는 가장 큰 재난이었다. 적당한 물은 대지에 생명을 제공하지만 넘치는 물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음에 빠뜨린다. 홍수가 발생할 때면 물에 빠져 대책 없이 허우적거리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물을 다스리는 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태평성대의 모델로 추앙받는 요순(堯舜) 임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장 드라마틱한 치수 이야기가 등장하게 된 시기가 바로 요순 임금 때다. 요순이 실존한 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삼황오제(三皇五帝)부터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본격적인 역사서의 저자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은 삼황(三皇)은 빼고 다섯 명의 제왕(五帝)에서 『사기(史記)』를 시작한다. 삼황은 그 존재를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 순 등 오제가 다스리는 시대 또한 역사 이전의 신화시대인 만큼 그 실체가 불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오제 역시 전설 따라 삼천리에나 나옴직한 가상의 인물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마천이 선정한 오제 대신 시대에 따라 다른 왕이 첨가되기도 한다.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 요, 순이 들어가거나, 태호(太昊), 염제(炎帝), 황제, 소호씨(小昊氏), 전욱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들은 때로 신(神)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인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사마천이 중국 역사를 황제에서 시작한 것은 황제가 염제, 치우와 싸워 이긴 후 천자로 추대되어 실제적인 중국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길을 막아 치수에 실패한 곤한나라 화상석에는 고대 전설상의 신과 왕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화상석 맨 위의 중앙에는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가 앉아 있고, 아랫단에는 창조신부터 하夏의 마지막 왕까지 새겨져 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쪽에는 세상을 창조한 인면사신(人面蛇身) 여와와 복희가 서 있다. 그들은 손에 자와 컴퍼스를 들고 서 있는데 아랫부분은 서로 꼬리가 얽혀 있다. 다음에는 불의 신 축융(祝融)과 농업의 신 신농이 배치되어 있는데 두 신은 면류관을 쓰지 않은 매우 서민적인 모습이다. 아직 천자로서의 왕권이 확립된 시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황제는 이름이 헌원(軒轅)인데 전욱, 제곡, 요, 순은 모두 그의 자손들이다. 황제는 중국 최초의 시조신이면서 모든 부족의 공통 시조로 인정받고 있다. 황제 때부터 순 임금까지는 천하를 능력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선양(禪讓)을 선택했다. 우(禹) 임금 때부터는 자신의 아들에게 권력을 넘기는 부자상속이 시작된다. 우는 부자상속을 통해 왕권을 강화한 하夏나라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하나라는 마지막 왕 걸桀에 의해 끝나고 탕(湯)왕에 의해 은(殷)이 세워진다. 화상석의 맨 끝에 걸을 새겨 넣은 이유는 하 왕조의 끝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우 임금은 부자상속을 통해 왕권을 넘겨준 왕이기 이전에 치수에 성공한 왕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치수에 성공하기까지는 아버지 곤鯀의 실패가 큰 교훈이 되었다. 요 임금 때의 일이다. 태평성대로 알려진 요 임금 때는 농경사회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황제가 싸워 진 염제는 남방을 담당하는 농업의 신인데 그가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는 신화는 이미 황제 때 농업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염제 신농은 농사 뿐 아니라 약초로 병을 다스리는 방법까지 알려준 의약의 신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가지 풀을 씹어 풀의 효능을 확인했는데 때로 독초에 중독될 때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단장초라는 풀을 씹어서 약효를 실험하다 창자가 끊어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의약의 신으로서 염제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이미 이 시기에 풀로 약초를 쓸 만큼 농업기술이 발달했음을 말해준다.농사지을 때 물은 매우 중요하다. 적당한 때 비가 내려야 작물이 싹이 트고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많이 내린 것이 문제였다. 세상은 홍수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백성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백성을 제 몸처럼 아낀 요 임금은 홍수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때 여러 제후들이 곤을 추천했다. 곤은 성격이 강하고 제멋대로였기 때문에 요 임금은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제후들의 거듭되는 추천에 못 이겨 그에게 치수를 맡겼다. 그러나 7년 동안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가 택한 치수방법은 무작정 흙으로 물을 막고 둑을 쌓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치수 실패를 물어 우산(羽山)에서 죽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