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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어.설.자.’는 의심한다
    조경작업소 울, 조경사업소 울, 조경작업 소울, 조경작업소 을 가끔 우리 회사 이름 ‘조경작업소 울’(이하 울)을 다르게표기하는 경우를 발견한다. ‘조경사무소 울, 조경공작소 울, 조경설계 울, 조경회사 울’ 등등 아주 다양하다. 가장 기분 좋은 오기는 ‘조경작업 소울’이었고, 가장 신선한(?) 오기는 ‘조경작업소 을’이었다. 표기 오류의 가장 큰 원인은 ‘작업소’라는 단어일 것 같다. 회사 이름에 ‘작업소’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는 설계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연구 프로젝트나 컨설팅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단일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설계에만 강조점이 있지 않아서였다. 이전까지 시민단체와 함께 발전시켜 온 주민들과의 의사소통 과정과 방식을 설계 과정에 포함시키고 싶었고 조성 이후의 운영까지를 전체 프로젝트의 범위에 넣고 싶었다. 누군가는 그 전체 과정이 설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는 회사 이름에 대한 설명을 몇 줄 더 달 수 있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살면서 하는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하였다. ‘노동’은 생존과 욕망 충족을 위한 육체의 동작이고, ‘작업’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일의 재미와 일정한 명예를 바라며 수행하는 제작활동이며, ‘행위’는 개인의 욕망과 필요를 넘어 공동체 속에서 어떤 대의를 위해 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 모든 활동은 생물학적 필요에 종속된 노동이 되었다. 시를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예술 작품을 만드는 행위도 작업이 아니라 노동이 되었다. 행위도 자유와 개성이 거세되면서 노동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우리 회사 이름의 ‘작업’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활동이 노동 이상의 것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오글거리려나 가끔은 농담으로 회사 이름을 ‘작업소’라고 해서인지 온갖 작업을 다 한다고 칭얼거릴 때도 있다. 워크숍 준비를 위해 가내 수공업 같은 작업도 하고,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벽에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기도 한다. 요즘 지방 도시의 한 마을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면서는 ‘찾아가는 파라솔’이라는 이름으로 동네 공원이나 길에파라솔을 펴놓고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묻고 있다. 가끔은 공사 현장에서 호미를 들고 초화를 심기도 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회사 이름을 설명한 이유는, 울에서의 설계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다. 울에서의 설계는 도면에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클라이언트와 설계의 범위와 방향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설계를 한다. 설계가 끝난 이후에도 공사를 관리 감독하거나 주민들의 이용 실태 관찰과 프로그램 운영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재를 읽어주기 바란다. ‘어.설.자.’의 의심 이번호에 소개하는 작업은 이제 막 끝낸, 어린이공원 프로젝트다. 지나고 보니 이 프로젝트 진행의 콘셉트는 ‘의심하기’였다.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클라이언트는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국제구호개발 NGO로, 이들에게 물리적 환경 개선은 생소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울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당연히 여기던 것들도 질문을 받으니 생소하게 느껴졌고, 관성적으로 해오던 일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놀이운동가들의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견해도 우리를 더욱더 의심에 빠져들도록 했다. 보다 근본적인 의심의 이유는 내가 ‘어쩌다 설계를 하게 된 자’, 즉 ‘어.설.자.’여서다. 어.설.자.가 되다보니, 설계 프로젝트를 할 때는 유난히 의심을 많이 한다. 한번도 좋은 설계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해본 적이 없다. 좋은 설계는커녕 설계는 내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노란 트레이싱 페이퍼를 펴놓고 설계안을 잡고 있거나, 울의 구성원들과 구조물에 대해 논하고 있는 내가 문득 문득 낯설다. 조경이 품은 키워드들과 설계와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조경 설계 언저리를 떠나지 않다보니 이리되었다. 첫 번째 의심, ‘아이들 입장에서의 설계?’ 클라이언트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요구한 사항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설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설계했던 어린이공원에는 아이들의 입장이 어떻게 반영되었던가?’ 의심이 시작되었고 의심은 질문을 낳았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설계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쉬운 방식은 아이들에게 직접 묻는 것이다. ‘네 입장은 뭐니?’ 물론 아이들을 상대로 이렇게 질문할 수는 없으니 질문의 방식을 응용해야 한다. 울에서 해오던 질문의 방식은 설계안이나 시설물을 제안하고 아이들에게 선호를 묻거나, 원하는 놀이터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보통 그네나 회전무대 같이 자극적 놀이시설물을 선택했고, 놀이동산에서나 볼 수 있는 시설물로 그림을 채웠다. 또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해서 그 결과를 설계에 담아 달라고 했다. 이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몇 번 관찰하고는 ‘아이들은 이렇게 노니 우리는 이렇게 디자인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의미한 내용을, 일반화 할 수 있는 내용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울은 어린이 참여와 관련된 문헌을 찾아보고 토론을 하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문, 그림 그리기, 놀이 관찰에 대해 나름의 답을 도출했다. 먼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문에 대한 것. 많은 문헌이 어린이들은 자신이 노는 것과 말하는 것이 다르므로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문헌에서 드는 예는 우리의 경험과 비슷했는데, 어떤 장소에 데리고 가서 실컷 놀게 한 후 무엇이 제일 재미있었냐고 물어보면, 흙을 가지고 신나게 놀았음에도 불구 하고 시각적으로 눈에 들어왔던 시설물을 말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아이들의 그림에 대한 것. 아이들의 그림에 대한 우리의 의심은 정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신 아이들의 그림을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도구로, 아이들이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발견 하는 도구로 삼기로 했다. 세 번째, 아이들 놀이 관찰에 대한 것. 자료를 찾으니 의외로 놀이 관찰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국에 도 왔던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Günter Beltzig)도, 어린이와 어린이 놀이에 대해 연구하는 영국의 팀 길(Tim Gill)도 놀이터를 설계하는 사람은 놀이 관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관찰에서 얻은 통찰은 주관적이고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일 수 있어 이 또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관찰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특정한 ‘사실’의 발견에 있기보다는, 아이들의 생활에 젖어드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울은 스스로 내린 답을 실천으로 옮겼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림에 그치지 않고 왜 그렸는지 물어보았다. 또 50여 명의 어린이들을 서울숲의 여러 놀이터에서 놀게 하고는 어떻게 노는지도 관찰했다. 여러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대상지 옆 어린이집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었다. “마음대로 놀아요!”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은 작은 원을 그리며 뛰기 시작했다. 둥그런 원을 그리며 빙글 빙글. 무작정 10분을 뛰고 나서 주변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저 구석에 있는 운동기구에, 나무에, 바닥에. 그러다 또 뛰고. 그렇게 20여 분을 뛰고 나서 주변 사물을 이용한 놀이를 시작하거나, “같이 놀자!”하면서 친구를 불렀다. 이 프로그램 이후 내 눈에는 온통 아이들의 뛰는 모습만 보였다. 우리 동네 어린이집에 있는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은 뛰었고, 지하철과 음식점에서 만난 아이들도 뛰었다. 아이들은 뛰는 존재였다. ‘저들의 뛰고자 하는 욕망을 받아주자’가 어린이놀이터 설계의 원칙이 되었다.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면서 다음의 내용을 발견했고 가능한 한 공간에 담으려고 했다. -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잘 놀지 않는다. 가능한 한 시각적으로 소외된 공간이 없도록 해야 한다. - 지장물이 있는 주변에서 논다. 모래 놀이를 하더라도 모래밭 중심보다는 경계 혹은 기둥 옆에서 논다. - 아이들은 우리의 도시 공간을 ‘놀이’로 재구성한다. 특히 성격이 모호한 공간, 모퉁이 공간, 모서리 공간을 선호한다. 넓은 길을 놔두고 가로의 경계석 위를 위태롭게 걷고, 건물 아래의 자투리 공간은 그들의 훌륭한 아지트가 된다. - 아이들은 스스로 미션과 규칙을 만들며 논다. 대상지에서 만난 한 꼬마는 공원 내 느티나무의 수피를 모두 떼어 내는 걸 그 날의 미션으로 정하고는 돌 조각을 집어 들고 열심히 나무의 수피를 긁어냈다. 또 서울숲에서 만난 꼬마들은 쉬지 않고 바닥의 모래를 퍼서 조합놀이대 위로 올렸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두 번째 의심, 그네는 있어야 하는가?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고무 포장을 깔 것인가? 그네를 둘 것인가? 조합놀이대를 놓을 것인가?’처럼 놀이터에서 흔히 보는 요소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되었다. 놀이운동가들은 놀이 공간 포장재로 다양한 놀이를 유발하는 흙바닥과 모래를 추천하고, 고무 포장은 환경 상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관찰한 결과 모래는 뛰놀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이에 포장으로서의 모래와 모래 놀이 공간을 구분하자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다음 그네. 가장 요구도가 높은 시설이지만,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주변의 모든 어린이공원에는 그네가 있으니까 과감히 뺐다. 그네를 여러 개 놓아달라는 어린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조합놀이대에 대한 답은 쉽지 않았다. 서울시의 창의놀이터를 자문하면서 만난 놀이운동가들의 조합놀이대에 대한 반감이 자기 검열 기제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오르고 싶은 욕망, 하강하고 싶은 욕망을 좁은 공간에서 받아주기 위해서는 조합놀이대가 필요했다. 대신 아이들이 요구한 시시하지 않은 높은 미끄럼, 어른들이 놀이터 만들기 워크숍에서 제시한 숨을 수 있는 공간, 아이들의 뛰기를 방해하지 않기 등등을 고려해서 조합놀이대를 구상했다. 국내외에서 개발된 조합놀이대를 분석한 후, 우리 대상지에 맞는 조합놀이대를 구성해보는 작업을 거듭했다. 안전 규칙이나 기업마다 소유하고 있는 모듈의 문제로 최종 디자인은 시설물 회사에서 했지만 그 과정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 의심, 삼각뿔은 정말 불편한가? 한 계절 몰두한 작업. 한다고 했지만 모든 사람이 100% 만족하지 못한다. 어린이들은 나와 허브 향을 맡고 식물에 물을 주면서 신나게 놀아놓고는, “오늘은 안녕!”하며 돌아서는 내 등에 “그런데 이 놀이터에는 왜 그네가 없어요?”라고 불만을 표한다.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공원 내 퍼걸러에서 보내시는 할머니들은 모든 바닥에 고무 포장을 깔지 않았다고, 허리 돌리기를 놓지 않았다고 얼굴을 볼 때마다 한 말씀하신다. 그리고 어린이공원 옆 어린이집 원장님은 3살 미만 아이들을 위한 흔들말이 없는 게 불만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삼각뿔. 바닥에 변화를 주기 위해 놀이 공간 가장자리에 놓았던 삼각뿔. 이 삼각뿔을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좋은 놀잇감이지만, 높이가 그리 높지 않고 포장색이 주변 바닥 포장과 유사하다 보니 걸려 넘어지는 분들이 개장 초기에 많았다. 이후 삼각뿔 주변으로 색을 칠하고 뾰족한 가장자리를 둥글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만이 있으시다. 울 구성원들은 주민들의 불만을 표하는 방식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 오기도 생겼다. “아이들은 좋아하잖아.” 진실을 알기 위해 현장에서 한 나절 동안 잠복 근무를 했다. 주민들이 어린이공원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삼각뿔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 듣고 관찰했다. 결론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없앨 수는 없어,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현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사죄했다. “저희 생각이 짧았어요. 구분이 잘 되도록 좀 더 색을 진하게 칠하겠습니다. 앞으로 익숙해지시지 않을까요?” 문제의 근본이 해결된 것은 아니고, 우리의 부족함을 아프게 깨달았지만 의심은 해소되었다. 어.설.자의 일, 그냥 하기 사소하게 시작된 질문이 아주 근본적인 것으로 내려앉을 때가 있다. 직장 생활이 재미없어서 시작한 질문이, ‘나란 인간이란?’이라는 질문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작업을 하면서 생기는 의심도 그렇다. 깊어지고 깊어지면 결국은 시스템에 대한 의심, 굳어진 인식 구조와 실천 방식에 대한 의심으로 귀납된다. 그리고 그래야만한다. 이 의심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기도하다. 데카르트 같은 근대주의자들이 인간을 의심하는 주체로 세웠다면, 후기 근대주의자들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을 의심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초기에는 어린이공원을 짓는 게 목적이었다. 1968년 10월 2일 조선일보 기사에는, “오는 1969년부터 3개년 동안 시내 3백2개 동마다 1개소씩 3백 평 내지 1천 평 규모의 어린이공원을 만들겠다”는 김현옥 시장의 포부가 실려 있다. 그런데 기자는 시장의 포부 아래에 그게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그 기자의 의구심과는 달리 현재 양적으로는 많은 놀이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 모든 놀이터가 너무 뻔하지 않냐고 이야기 한다. 개성 없이 비슷비슷한 놀이터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시스템적 이유가 있다. 제도 및 정책의 문제, 조경 산업의 문제, 전문가들의 문제 등등. 그래서 ‘우리의 놀이터는 아이들의 입장을 반영한 것인가?’에 대한 의심은 제도 및 정책, 조경 산업, 전문가들의 설계 방식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을 위한 시스템인가?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인가? 그러고 보면 전복적인 설계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시스템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요가를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되어간다. 모든 관절이 다른 이들보다 29° 덜 펴지고, 19° 덜 구부려진다고 농담할 정도로, 요가를 시작하면서 얼마나 근육이 굳어져 있는지 발견했다. 얼마나 해야 ‘아등바등 몸짓’을 넘어 ‘요가 동작’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우리 선생님은 몸이 굳어져 온 세월만큼 걸린다고 아주 냉정하게 답하셨다. 요가라는 다른 맥락에 나를 놓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 실감나게 굳어진 나의 몸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고 체계도, 실천의 방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맥락 자체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이, 놀이운동가들이 던진 질문은 요가 동작과도 같았다. 의심을 풀기 위해 책을 보기도 하고 자문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궁극의 해답은 현장에 있다고 믿는다. 추상적으로 촘촘하게 얽혀진 시스템에서 나와, 그리고 선 지식은 가능한 한 괄호 속에 집어넣고 현장에서 날 것의 대답을 찾기. 그러면서 굳어진 근육이 유연해질 것이라 믿는다. 시민운동가가 아닌 설계자로서의 ‘주민참여’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려 한다. 모든 의심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몰두하다 보면 의심, 질문 자체가 익숙해지고 시시해진다. 우리가 어릴 적 품었던 많은 질문들이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별거 아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이란 책에서 “지금 뭔가를 쓰고 있다면 그는 소설가”라고 한다. 어쩌다 설계를 하고 있지만, 의심하며 매일 매일 한다. 별다른 결심 없이 시작한 것처럼, 별다른 결심 없이. 김연금은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으며, 커뮤니티 디자인 센터의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커뮤니티 디자인, 마을만들기를 일과 활동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을 발전시킨 『소통으로 장소 만들기』(한국학술정보, 2009), 일상의 경관에서 이루어지는 거시적 구조와 미시적 요소와의 상호 관계를 관찰하고 기록한 『우연한 풍경은 없다』(나무도시, 2011) 등의 저서가 있다.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자클린 오스티 아틀리에 자클린 오스티 앤 어소시즈 대표
    자클린 오스티는 프랑스 국립 건축 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rchitecture at the Beaux Arts in Paris와 베르사유의 국립 조경 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부터 사무소를 개소해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블루아Blois의 국립 조경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클린 오스티의 초기 작업들은 매우 프랑스적이며 건축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3차원적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는 오히려 거대한 부지에서부터 작은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대상지와 씨줄과 날줄처럼 긴밀하게 엮어진 듯 한 맥락을 고려한 설계와 섬세한 접근을 강조한다. 그녀는 장소와 디자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주된 관심사라고 밝혔다.프랑스의 대표적 조경가로서 입지를 구축하게 해 준 아미앵의 생 피에르 공원Parc St. Pierre 등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이번 인터뷰는 주로 최근 작 파리 동물원 작업을 되돌아보았다(본지 4월호에 소개). 파리 근교 뱅센 숲에 위치해 뱅센 동물원이라 불리던 이곳은 원래 1934년도에 지어진 오래된 시설이었다. 1931년에 열린 국제 식민지 박람회Exposition coloniale internationale는 당시 프랑스가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국민에게 식민지 문물의 경이로움을 알림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고자 열었던 대규모의 전시 행사였다. 뱅센 숲에 수십 개 나라의 건축과 기묘한 문물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모아놓았으며 전시가 열린 6개월간 약 9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을 것이라고 추산된다. 동물원은 그때 전시된 식민지의 이국적인 동물들을 영구적으로 수용하고 전시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덕분에 동물원에서는 아직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각각의 생물권biozone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식민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아프리카의 수단, 남미 프렌치 기아나,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 파타고니아 등이다. 또한 마치 엑스포 행사장과 같이 동물들의 공간은 무대plateaux와 분장실loges로 불렸다. 연극 무대의 개념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콘크리트를 이용한 인조 바위들 또한 이러한 연출적인 면을 더욱 강화해주는 요소다. 자클린 오스티의 리노베이션은 동물원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현재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즉, 오늘날의 동물원이란 신기하고 진기한 생물들을 보여주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80년 전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이국적 동물들은 이제 인터넷을 통해 생생히 목격할 수 있는 현지 생태계의 잔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동물원은 아이들의 놀이동산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 낯선 문화에 대한 지적 자극이자 군사·경제적 우월감의 원천이 되었던 식민지 시대의 동물원은 소풍 가고, 놀이 기구 타러 가는 단순 위락 시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시대에 동물원은 여전히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파리 동물원이 찾는 새로운 의미는 생물다양성과 서식지에 관한 것이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 기반을 두고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해 왔다.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고, 주요 작품이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 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이며, 저서로 『시티오브뉴욕』(공저)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서 조경 설계를 연구하며 학생들이만드는 것의 기쁨을 알아가도록 돕고 있다.
  • 공원 탐닉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언젠가 혼자서 책을 한 권 쓴다면 ‘공원 탐닉’이란 제목으로 쓰리라 마음먹었다. 나름 구성도 짜보았고, 챕터 제목도 끼적여 놓았다. 오래된 폴더를 열어 작성한 날짜를 확인하니 2006년 7월 18일이다. 파일명은 ‘개인 단행본 집필 아이템’.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신명조 서체만큼이나 생소한 차례 구성안이 모니터에 펼쳐진다. ‘①물: 흐르고 비추는, ②빛: 낯보다 찬란한, ③풀: 흔들리며 유혹하는, ④돌: 단단하거나 무르거나, ⑤흙: 그 자체로 아름다운, ⑥점: 작지만 소중한, ⑦선: 나누고 연결하는, ⑧면: 여백을 넘어, ⑨생: 성장하며 진화하는’ 등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이버 아이디로 ‘녹색 여백’을 쓰던 때인데, 그 아이디만큼이나 상당히 작위적이다. 아마 9장으로 구성한 건, 물, 빛, 풀, 돌처럼 한 글자로 된 근사한 단어를 더는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12장으로 구성된 256쪽 안팎의 책이 가장 부담 없고 읽기 편하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니까(이런 구성이면 한 챕터가 20쪽 내외여서 적절히 사진이 가미되면 한 호흡으로 읽기 좋다). 실제로 책을 펴낼 때까지 3개를 더 찾아내야 할 텐데…. ‘물’은 일산호수공원을, ‘빛’은 노래하는 분수대를, ‘풀’은 하늘공원을, ‘돌’은 선유도공원을, ‘흙’은 올림픽공원을, ‘점’은 옥상공원을, ‘선’은 양재천을, ‘면’은 공원 전반을, ‘생’은 조경의 이모저모를 소재로 쓰려고 했다. 아마, 지금 쓴다면 경의선숲길과 광교호수공원, 양화한강공원, 서울숲, 서서울호수공원, 여의도한강공원을 어딘가에 포함시킬 테고, ‘흙’은 지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나무와 풀을 품어내는 기반으로서의 소중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까 싶다. 키워드 하나당 공원 하나씩을 매치시켰지만, 특정 공원을 중심으로 쓸 생각은 없었다. 몇 곳이 되었든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내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느낀 공원의 매력에 집중할 요량이 었다. 그러니까 ‘물’은 우리가 공원에서 만나는 흐르고, 떨어지고, 솟구치고, 반사하는 각양한 물을 주인공으로 쓰고, ‘돌’은 석재를 비롯해서 다양한 재료의 물성과 맛을 탐닉하는 방식이다. ‘풀’은 나무와 꽃도 포함한 공원의 식물을 이야기하는 챕터로 할애할 생각이었다. 잎 넓은 나무 다음으로 풀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라스 류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많지 않으니까. 부제는 ‘도시의 녹색 여백, 공원을 만나다’ 정도가 무난해 보였다. 이 ‘공원 탐닉’ 집필 프로젝트는 에피소드 몇 가지만 스케치 해놓고는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았다. 충분히 뜸을 들이면서 진행하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좋은 (?) 사례를 기다리자는, 좀 대책 없는 설계를 처음부터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감 독촉하는 에디터도 없는 책이 아닌가. 이번호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란 질문에 충실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의 구상을 얼기설기 풀어 놓는다. ‘나의 공원’ 이야기는 지난 달 코다에서 충분히 했으니까(궁금하신 분은 『환경과조경』 2015년 9월호, p.143 참조). 미리 쓴 ‘책을 펴내며’ 중에서 여백餘白의 여는 남을 ‘여餘’다. 그러니까 쓰고 남은 흰부분이 여백인 셈이다. 뭐, 빈자리라고 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잉여의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핵심은 ‘쓰고 남은’ 면이란 점이다. 그런데, 쓰다가 우연히 남은 것과 쓰면서 일부러 남긴 것과의 차이는 크다. 남은 여백에는 의도 따위가 담겨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여백은 더 채우지 못해 아쉬운 빈 곳이거나,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어 방기된 공간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남겨진 여백은 이야기가 다르다. ‘여백의 미를 잘 살린 작품…’ 운운할 때 등장하는 여백은 보는 이에게 진한 여운을 남겨주기도 하고, 그곳이 여백이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졌을 때보다 더 큰 완성도를 갖게 해준다. 이우환은 『여백의 예술』(이우환 저, 김춘미 역, 현대문학, 2002)에서 “예술 작품에 있어서의 여백이란,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열리는 앙양된 공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 기억이 머무는 공간, 나의 공원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기억을 찾아서 어렸을 적부터 이십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한 동네에 살고 있는 탓에 동네 공원은 내게 무척 익숙한 공간이다. 이름도 ‘고척근린공원’, 지명이 그대로 이름이 된 참 평범한 공원이다. 익숙하다는 말과 평범하다는 말은 의미도 쓰임도 제법 다르지만 두 단어가 주는 인상만큼은 비슷하다. 평범하니 익숙하고,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평범하다고 느낀다. 고척근린공원은 그렇게 내게 무척 평범하고도 익숙한 공간이다. 이리 익숙한 공간이라도 막상 공원에서 보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반추하고 정리해 보려니 꽤나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이 너무 많아서인가보다.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만큼이라면 도리어 쉬울 텐데. 그래서 이 산발적인 기억을 정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 보았다. 공원 내의 다섯 개의 장소를 뽑아 순간적으로 튀어 오르는 기억들을 적어나가는 거다. 물론 이 방법이 산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공간을 통해 추억을 더듬는 것이 시간을 되짚는 것보다 기억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까 싶다. 참,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다섯 개의 장소가 고척근린공원에 있는 공간의 전부가 아니란 점은 밝혀두어야겠다. 이 장소들을 선정한 기준은 ‘나의 기억이 많이 깃든 곳’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 만남이 꽃피는 정문 공원 진입부인 정문은 초중고생 때 친구들을 만나던 약속의 장소였다. 크고 기다란 모양의 탑이 기준처럼 서있고 그 옆으로 의자 대용으로 쓸 만한 조형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친구들을 기다릴 때면 그 조형물 위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처음 이 조형물이 생겼을 때, ‘이건 뭔가 이상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공원의 도입부를 알리기 위한 기념물로 세워 놓았나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실 정문의 명물은 이기이한 조형물보다 조그만 트럭에서 늘 뻥튀기를 튀기고 있는 아저씨다. 매번 보는 광경이어서 그런지 뻥튀기 아저씨가 없으면 공원에 온 거 같지가 않을 정도다. 공원 가까이에 다가갈수록 탁탁 거리는 기계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내게 고척근린공원의 최고 이정표는 동떨어진 섬처럼 자리한 조형물이 아니라 그 앞을 지키고 선 뻥튀기 아저씨다. 둘, 두 얼굴의 놀이터 놀이터에는 꽤 재밌는 추억이 남아 있다. 네 살 즈음이었나. 미끄럼틀을 무서워해서 매번 동네 친구들이 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던 나는 친언니의 엄청난 놀림을 받고나서야 미끄럼틀을 타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미끄럼틀이 왜 그렇게 무서웠던 건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히 겁이 많아서였던 건지, 어린 아이의 눈에 미끄럼틀이 너무 높고 커 보였기 때문인 건지. 무튼 나는 아주 큰맘을 먹고서야 미끄럼틀을 타는 데 성공했고, 그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아직도 내 앨범에 꽂혀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놀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밤 9시 즈음부터 11시 정도까지, 학원을 땡땡이치고 놀이터에 가면 반 친구들을 참 많이도 만날 수 있었다. 낮 동안 땀이 나게 뛰노는 아이들의 주무대였던 놀이터는 저녁이 되면 일탈을 꿈꾸는 청소년들의 비행장소가 되었다. 친한 친구들이 아니라도 곧잘 어울려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보면 종종 눈이 맞아 연애를 하는 애들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놀이터에 마지막으로 가 본 게 언제였더라.
  • 사랑의 떨림이 시작된 공원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동아리를 만든 게 불순한 의도는 아니었으나 대학교에 입학해서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했다. 과대표부터 시작해서 학생회 활동도 일부 돕고, 사진 동아리, 무술 동아리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잡지사의 학생통신원까지 하면서 여러 모임을 두루 경험했다. 다 배워보려 시작한 활동들이지만 대학 생활이란 것이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기승전‘술’로 연결되다보니 참으로 쓸데없이 허송세월 한 것 같은 느낌도 가끔 든다. 그래도 잘한 일 중 한 가지는 군 입대 전 학과 동아리를 만든 것이다. 우리 과에는 과거 학술 동아리가 있었는데 체제가 학부에서 학과로 개편되면서 명맥이 끊긴 상태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교수님들께서 동아리를 만들면 지원을 많이 해주신다 약속하셨고, 어찌어찌 내가 총대를 메고 동아리원을 모집해 조직 구성, 운영, 행사 진행 등을 도맡았다. 그렇게 몇 개월을 유지하다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어릴 때 학과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다보니 나름 선배들에게 예쁨 받는 후배가 돼 있었다. 한참 윗 기수학번의 선배들도 알게 되고 교수님들께도 신임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얻은 듯싶었다. 하지만 학과동아리를 만든 게 내 대학 생활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된 이유는 이게 아니다. 복학과 동시에 재학생들과 자연스레 융화되는 장치가 됐고, 그럼으로써 연애를 하는 발판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어찌 잘 만들었다 안 할 수 있을까. 동방탈출: 애정의 시작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나는 연애를 늦게 시작한 편이다. 동갑내기 친구들보다 군대를 조금 늦게 간 편이라 전역했을 때 나이가 스물넷이었는데, 그해 처음 연애를 했다. 복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과 동아리에 가입한 같은 과 후배를 꼬셨다. 그녀는 지금의 내 여자 친구다. 사실 처음엔 연인 사이로 발전할 줄 꿈에도 몰랐다. 내가 그녀를 갈구는 못된 선배였기 때문이다. 복학하기 전에 학과 동아리 방에 잠깐 들른 적이 있는 데 그때 여자애 둘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보다 학번이 3년 아래인 꼬맹이들이었다. 한 명은 회장, 한명은 부회장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군대에 가 있는 사이 동아리 회원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는데, 동아리를 만든 입장에서 애정이 있던 터라 그 후배들을 도와 신입생들을 뽑고 가르쳐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 회장과 부회장을 정말 많이 괴롭혔다. 그러다 심하게 감정적으로 서로 격해진 일이 있었는데 이후 화해를 하고 다시 친목을 다지기 위해 공원으로 스터디를 위한 답사 겸 출사를 나가게 됐다. 사랑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내 대학 시절 생활권이었던 전주의 중심부에는 덕진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덕진공원의 면적은 약 15만m2로 전주에서 가장 큰 도시 공원이다. 공원 면적의 3분의 2를 연못이 차지하고 있는데, 초여름 연꽃이 만발하면 절경을 이뤄 출사지로 각광을 받는다. 또한 이곳은 후백제 때 견훤이 도성 방위를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설과 고려 때 건지산과 가련산을 잇는 비보풍수를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함께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왕조의 발원지로서의 전주와도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오제면 물맞이를 하기도 하고, 축제의 장소로, 그리고 평상시 소풍과 나들이 장소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전주의 명소 중 하나다. 도시 마케팅의 수단으로 하고많은 관광지 중 구색맞추기식으로 공원을 넣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하지만 전주에서 덕진공원은 지역민들이 타지 사람들에게 꼭 소개하는 핫플레이스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전주내에서 놀러 갈 외부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전주에서 주거지와 멀지 않은 근교의 손꼽히는 나들이 장소는 크게 전주동물원, 한옥마을, 덕진공원 정도다. 물론 지금은 패턴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으나 불과 4~5년 전쯤에는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이유로 덕진공원은 그 주변에 위치한 대학교들의 조경학과 졸업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대상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조경학과 동아리이니 답사를 목적으로 가닥을 잡고 토요일 낮 점심 때 쯤 덕진공원에 모였다. 지금은 조경시공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 같은 1년 후배와 나보다 키가 작아 신뢰하는 ‘평생 막내’,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신입부원들을 데리고 답사를 빙자한 나들이에 나섰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도 있어 조촐한 인원이었는데 이날 부회장이 조카를 데리고 와서 더 나들이 분위기로 기울었다.어쨌든 격식을 갖춰보고자 각자 카메라로 세 가지 주제를 찍어보라고 후배들에게 미션을 줬다. 이 공원에서 안 좋은 요소, 좋은 요소, 그리고 풍경 사진을 포함해 각자만의 ‘주제 사진’을 하나씩 찍도록 했다. 첫 두가지는 수업 때 들었던 “문제를 해결하는” 설계의 재료를 찾아나서는 과정의 일환이었고 세 번째는 후배들에게 사진 찍는 데 재미를 붙이게 하려는 목적 혹은 그냥 공원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 미래 지구인들로부터 공원을 빼앗는 몇 가지 방법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공원이 있는/없는 미래 2105Our Future With/Without Parks 2105’2를 다루고자 했을 때―공원이 없는 미래라니, 매력적이지 않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공원이 없는, 즉 공원이죽은 미래를 그린 수상작들을 만나볼 수 있길 바랐다(그림1). 발칙한 생각이지만 그 편이 훨씬 흥미로울 것 같았다. 누군가의 밥벌이meal-ticket가 될 수도 있는 공원이 죽었으면 좋겠다니. 어쨌든 한껏 기대하고 있던 중에 도쿄에서 문자 하나가 도착한다. “공모전 관련 단행본 작업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자료를 공개할 수 없음.” 공원 이용 실적이 저조한, 공원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은 에디터에겐 좋지 않은 소식이다. 이것 말고는 쓸 것도 없었으니까. 결국 손에 쥐어진 자료라고는 작품 전시 당시 일본 리포터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저화질의 패널 사진―제목과 메인 조감 이미지, 개념 다이어그램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이 전부. 확실한 것은 ‘만화적 상상’이 엿보이는 11개 공원 시나리오가 도시 인구 밀도,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 지진과 쓰나미 등의 재해, 에너지 부족과 같은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한 대응의성격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뭔가 부족하다. 미처 읽어내지 못한 ‘만화적 상상’이 더 필요하다. ‘누가(수상자) 어떤 이유로 공원을 미래 지구인들로부터 빼앗으려 한 걸까’ 물론 이러한 만화적 상상에도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상을 좋아한 건축가 히메네스 라이Jimenez Lai는 “만화는 창작을 토대로 해야 성공적이지만 이야기 순서를 유지해야 하는 갈등, 또는 만화 전체에서 모든 것이 이치에 맞아야만 하는 ―즉 등장인물이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순없다―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결말을 맺을지 알 수 없는 이야기에도 복수의 타임라인이 존재할 수 없다.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도 똑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피해자, 사건 장소, 용의자, 모티브, 살해 도구, 추정 사망 시각 등의 희미한 단서를 단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 속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범죄자의 심리에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라면 어떻게 미래의 지구인들로부터 공원을 빼앗으려 할까’ 이 공원 이야기는 미래 도시와 공원에 대한 복수의 세계관multiverse이 단일 연속선상의 어느 한 순간을 구성하며 하나의 타임라인을 구성하게 될 것universe이라는 “주관적이고 특수한” 만화적 상상을 바탕으로 한다. 즉, ‘공원이 없는 미래’를 그린 공모 작품과 현대 도시를 대체할 새로운 땅에 대한 현재진행형 세계관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상상은 가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다. 참고를 했든 인용을 했든 아류작이건 반복이든 간에 전에 본 적 있는 것들의 재배치를 이해할 수 있을 까?3 그리고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의 끝에서 ‘당신의공원’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프롤로그 이름 없는 어느 은하의 언저리에 자리한 한 술집에 손님(구매자)이 들어온다. 우주 쓰레기 더미 속에 감춰진이 술집에서는 우주 문명에 대한 거래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문명 거래는 대부분 고고학자들이 진행하며, 품목은 대개 소유권이 소멸한 공간이다. 그런데 이 소유권을 소멸시키기까지가 참 고되다. 문명권 모두에게 버림받았다고 판단되어야 소유권이 소멸한다. 고고학자가 술집에 들어선다. 드디어 한 문명이 소유권을 포기한 듯하다. 품목명은 ‘인류의 도시 공원.’ Do-or-Die “인간의 창의성이나 동기 부여는 그 상황이 ‘죽음과 같은 극한 상황do-or-die’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발휘된다.” Clip#1 오늘은 또 뭘 들고 왔지(구매자)? 인류의 마지막 도시 공원(고고학자). 도시 공원? 인류의 주거지 속 낙원이랄까. 인류의 기술 개발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도시에 인간이 밀려들면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공간적 처방이었다는군. 아무튼 한동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상품이었지. 크기와 형태가 다양했고 보통 녹색 생명이 가득한 공간이었는데, 인류의 시간으로 약 100년 간 아주 잘 팔렸어. 아주 잘 팔렸다면 여기 있을 수 없는 거 아닌가? 소유권이 남아 있는 공간을 거래했다간…. 그건 이야기를 다 듣고 판단하도록 해. 내 얘기가 맘에 들면사고, 아님 말라고.
  • 공원, 상상하는 대로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상상하는 대로’ 미래가 변한다면, 공원도 ‘상상하는 대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이미 공원은 우리들의 상상과 욕망을 반영하며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많은 공원은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 새로 꾸미고 치장한다고 과연 좋기만 한 걸까 ‘나의 공원 이야기’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을 때, 두 개의 상반된 생각이 교차됐다. 변화를 이야기할 것이냐, 추억을 이야기할 것이냐. ‘아, 나의 공원 이야기라니 이게 웬 날벼락이람.’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인간이 예측 가능한 미래는 2045년까지라는 주장이 있다. 2045년이 되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기 때문이라는데, 곧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가 온다는 말 같아서 섬뜩하다. 엘빈 토플러는 “미래는 우리에게 항상 빨리 닥쳐와서 예측이 불가능하다”며 인간이 미래 예측에 어려움을 겪어 왔음을 이야기했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미래 예측의 정확성을 확보하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적으로 가장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니, 모든 사물의 이치를 드러낼 것처럼 자만했던 인간의 능력이 또 한 번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 셈이다. 그렇더라도 신에게 인간의 미래를 맡기는 시대가 다시 도래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과거 수많은 상상이 현실이 됐듯 앞으로도 수많은 상상들이 눈앞 현실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속 미래에 대한 상상은 이미지 그대로 현실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보면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그리는지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그려가야 한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현실이 된 상상 2015년을 상상한 영화가 있다. 1989년 개봉한 영화 ‘백 투 더 퓨쳐 2Back To The Future Part 2(1989)’는 주인공 마티가 자신의 아들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브라운 박사와 애인 제니퍼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뒤인 2015년의 미래로 간다. 미래의 아들을 구하고 영화 속 현재로 왔다가 다시 1955년의 과거로 가는 것이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다. 영화 속 2015년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묘사됐다. 주인공이 갈아 신은 나이키 슈즈는 저절로 사이즈가 조절되고 자동으로 끈이 매지는 신발이다. 실제 나이키에서는 2011년에 이와 똑같이 생긴 LED등을 단 ‘NIKE MAG’이라는 제품을 한정 수량 출시했다. 또한 올해에는 자동으로 신발 끈이 매지는 신발을 개발 중이라고 하니 ‘영화 따라잡기’로 미래가 변하는 경우다. 이 영화에는 3D 영화관도 등장한다. 현재는 3D 텔레비전이 보편화 돼 안방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술이다. 공중을 나는 호버보드와 플라잉 카는 기술적으로는 가능해졌지만 상용화되진 못했다. 그 외 스마트 텔레비전이나 지문 인식도어,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 등은 이미 상용화가 됐으며, 젖으면 자동으로 건조되는 재킷은 아직 상상 속에 남겨져 있다. 영화 속 상상이 현실이 된 사례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손끝 센서로 홀로그램 모니터를 다루는 기술이나 신원 확인을 위한 동공 확인 시스템은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미래 공원, 공룡 정도는 키워야지 공원은 그 잠재성에 비해 상상의 폭이 넓지 않은 듯하다. 조경가들의 상상력 빈곤이 가장 큰 문제겠지만, 공원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그다지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영화 ‘쥬라기 시리즈’는 그나마 가장 직설적으로 공원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다. 공룡이라는 흥미 있는 테마를 통해 지구사적 시공간을 뛰어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영화 속 ‘쥬라기 공원’이다.지난 6월에 개봉한 영화 ‘쥬라기 월드’는 9월 현재 역대 4위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공룡들을 앞세운 테마파크를 배경으로 지능과 공격성이 진화된 공룡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면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위기를 다룬다.
  • 일요일 저녁, 내가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리는 이유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한강공원은 자연과 인공이, 휴식과 질주가 절묘하게 조합된 이중적인 공간이다. 일요일 저녁 8시,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월요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벌써부터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전투를 앞에 두고 진격하는 적군의 북소리를 듣는 심정이랄까? 게다가 이 적군은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으며 나 역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몇 시간 뒤면 주말 동안 밀려있던 일거리가 전원 돌격 명령을 내리고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월요병이 전염병처럼 도시에 유행할 것이다. 월요일을 앞에 두고 배수의 진을 친 일요일 저녁엔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느슨해진 마음에 빵빵하게 자신감을 채우고 식은 엔진처럼 삐걱거리는 몸에 기름칠하고 불을 댕길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오후 8시. 이대로 밤을 보내기엔 너무 아쉽고 하얗게 불태우기엔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그런 저녁엔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린다. 전열을 가다듬고 숨을 고르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화풀이하러 한강에 갑니다 벚꽃놀이나 불꽃 축제를 구경하러 1년에 한두 번 정도 갈까 말까 했던 여의도한강공원을 요즘처럼 자주 찾게 된 것은 2013년부터다. 종로에 있는 한 통신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불규칙한 취재 일정과 예고 없는 잦은 회식으로 인해 몸무게가 왕창 늘어나던 때다. 회사 면접을 위해 산 정장 스커트에 더 이상 엉덩이를 우겨 넣을 수 없게 되자 뭐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 근처 여의도한강공원을 가게 되었다. 나는 늘 사람들이 새까맣게 북새통을 이루는 축제 기간에만 여의도한강공원을 갔던 전형적인 시골 사람이었던 터라 평범한 일요일 저녁, 여의도한강공원에 운동하러 가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도시의 삶을 묘사하는 미드(‘섹스 앤 더 시티’나 ‘프렌즈’ 같은)나 외국 영화를 보면 꼭 한 번은 타이트한 운동복을 입고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비일상적인 듯 일상적인 모습을 내가 재현하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굳이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린다. 종로 빌딩숲 한복판, 그 살얼음판 같은 회사에서 구르고 깨지는 게 일이었던 쭈구리 막내인턴에게 이곳의 자연과 한강 풍경은 말없는 위로를 건네고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한강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만만한 곳’이자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곳’이었던 것 같다. 조선 시대, 나라의 허가를 받아서 물품을 판매하는 종로 육의전六矣廛의 위세 높은 상인에게는 뺨을 맞아도 아무 소리 못하던 서민들이 한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비공식적인 시장인 난전亂廛에서는 큰소리치는 상황에서 속담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나도 종로에서 뺨맞고 만만한 한강에서 화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도시 문화를 맛볼 수 있는 공원 단순히 자연에서 위로를 얻기 위해서라면 선유도나 양화, 망원, 이촌 쪽으로도 갈 수 있지만 총 12개 지구의 한강시민공원에서 굳이 여의도한강공원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보통 여의도로 넘어가는 서강대교와 이어지는 고가도로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 야외의 맛, 게으른 피크닉을 꿈꾸며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오롯이 백수였던 시절이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자유로워진 평일 오후, 한 대학 캠퍼스의 넓은 잔디밭에 나와 앉았다. 그 당시 하늘은 넓고 푸르렀고 눈앞에서 낮게 넘실대는 녹색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게다가 함께 있던 친구가 바로 그 잔디밭으로 짜장면을 시켰다. 야외인데도 음식이 배달된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고 심지어 그 상황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 ‘풀밭 위의 식사’는 나에게 여유의 상징처럼 각인되었다. 그런데 누군가 ‘화창한 평일 오후에 자연 속에서 맛있는 식사도 했으니 행복한 기억이겠구나’라고 묻는다면 글쎄, 선뜻 답하기 어렵다. 그 감정은 불안과 낯섦 사이를 오간다. 백수 신분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탓일까. 노동이 신성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강박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작년 가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졌던 ‘멍 때리기대회’가 언론의 화제가 되었던 것은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냥 ‘쉼’을 견디지 못하는(혹은 인정하지 않는)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일을 떠올리게 된 것은 K 때문이다. 이번 특집 주제를 찾느라 고민 중인 나에게 그녀는 공원의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광교호수공원을 방문한 그녀는 예전에는 놀이 공원에서나 먹을 수 있던 솜사탕과 추로스를 발견한 덕택에 이 공원에 대한좋은 기억을 남겼다는 것이다. 추로스라니! 막대 모양의 페이스트리 반죽을 기름에 튀겨낸 이 스페인 전통요리의 쫄깃한 식감, 그걸 들고 다니던 놀이 공원의 한 장면, 설탕이 솔솔 뿌려져 있어 달착지근하고 끈적끈적해진 손의 느낌까지 여러 가지 기억이 호박넝쿨처럼 끌려나온다. 솜사탕은 어떤가. 고운 설탕실로 만들어진 솜뭉치의 인공적 맛이야말로 야외의 맛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과연 광교호수공원에서 갖가지 모양의 솜사탕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아, 요즘 아이들은 좋겠다. 우리 때는 하얀색과 분홍색의 단순한 솜사탕 밖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오리, 꽃, 눈사람 등 믿을 수 없는 모양과 세련된 색상의 솜사탕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전부터 솜사탕이 불량식품이라는 민원에 광교호수공원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K의 주장은 장소와 연결되는 음식, 어떤 공간의 경험을 완성시키는 맛이 있다는 것이다. 미각, 공감각적 경험의 시작 최근 소위 ‘먹방’이나 요리 프로그램의 열풍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일상적 경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야외 활동과 음식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만약 어떤 장소에 간다면 우선 ‘맛집’부터 검색한다. 혹은 등산을 하는 수많은 중년 남성(?)들은 배낭에 막걸리를 챙겨 넣는다. 산 정상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셔야, 아니면 하산 길에 도토리묵에 살얼음 동동주를 먹어줘야 비로소 등산을 마무리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계곡에서는 백숙, 고속도로에서는 호두과자, 소풍에는 김밥… 예는 수없이 많다. 우리는 음식을 보고 공간을 떠올리고, 어떤 장소에 갈 때 특정한 음식을 맛보길 기대한다. 미각은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의 감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술을 예로 들어보자. “알코올은 분위기 설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알코올이 우리의 기분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그것은 자주 그렇게 한다. 이완과 흥겨움을 나타내는 표시로서의 알코올은 심지어는 술을 마시기도 전에 몸에 해방을 준비한다.”1 우리가 야외에서 추구하는 미각은 필연적으로 다른 감각과 기억, 정서적 활동과 연관된다. 전통적으로는 화전놀이가 그런 예가 아닐까 싶다. 당시 젊은 남녀나 부녀자들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벌이는 꽃놀이를 기대하며 한동안 설레었을 것이다. 얇고 하얀 찹쌀가루 반죽 위에 진달래꽃이나 장미, 국화의 선명한 꽃잎이 올라간 화전의 맛은 어땠을까. 사실 화전의 맛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눈으로 먹고, 분위기로 먹고, 간만에 쐬는 콧바람에 이미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공원 계획과 음식 도시 공공 공간의 양적 팽창이 한계에 접어들면서 최근 좀 더 활기 있는 공공 공간을 위한 질적 변화에 대한 고민도 늘고 있다. 혹자는 공원에 필요한 것은 미술품이 아니라 음식을 제공하는 시설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제 공원을 계획할 때는 음식과관련된 활동에 대한 고려는 크지 않은 편이다. 피크닉장이나 캠핑장이 기본적인 시설로 계획되는 정도다. 미국의 도시학자인 윌리엄 화이트William H. Whyte는 그의 저서 『The Social Life of Small Urban Spaces』(1980)에서 공공 공간에서 사람들의 활동을 끌어들이고 싶다면 음식을 내놓으라고 권고했다. 특히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을 예민하게 알아채는 코를 가진 노점상은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음식은 사람들을 모으고, 음식이 있는 곳은 사회적 장소가 된다. 몇 개의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만으로 커다란 시각적 효과를 노릴 수 있다.
  •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공원은 자본주의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토지를 함께 소유하고 사용하는 모순의 장소이기도 하다. … 개인적 욕망보다는 늘 사회적 가치가 우선이다. 우리는 가득하지만 나는 없는 곳, 공원의 리얼리티다.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그동안 쓴 글과 지은 책의 소재 대부분이 공원이고 이런저런 공원의 계획과 설계에도 참여해 왔지만 막상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맞닥뜨리니 숨이 턱 막힌다. 시간의 물성이 켜켜이 쌓인 선유도공원, 하늘을 향해 열린 자유와 해방의 하늘공원, 시적 공감각이 신체를 감싸는 빅스비 파크, 황폐한 숭고미가 새로운 희망과 동거하는 뒤스부르크-노르트 파크 정도가 언뜻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 장소들의 매력이 나의 삶과 한데 뒤섞이는 것은 아니다. 답사의 대상이거나 연구의 주제이거나 강의의 소재이기는 하지만, 내가 도시를 살아가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숱하게 찍은 내로라하는 유명 공원들의 사진을 다시 보면 전형적인 구경꾼의 시선만 느껴진다. 사진에 담겨 있는 건 그저 조경 잡지에서 본 프레임을 복습하는 모범생의 무표정한 시각, 아니면 스타 조경가의 작품을 앞에 두고 연예인 보듯 들뜬 마음이다. ‘나의’ 공원은 어디인가. 연중행사로 큰맘 먹고 가는 정도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원은 집에서 멀지 않은 분당중앙공원과 율동공원이다. 이 두 공원에는 적지 않은 추억도 녹아 있다. 아이들의 성장사가 영상처럼 재생된다.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큰 아이의 흥분된 모습이, 갈고 닦은 인라인 스케이트 실력을 뽐내는 작은 아이의 상기된 얼굴이 생생하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과 기억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건 획일적인 녹색의 풍경, 다른 어떤 곳으로 탈출하지 못한 무력감, 공원에서도 내일 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피로와불안, 명절 세일 중인 백화점보다 더 많은 운동 인파, 이런 것들이다. 나의 공원은 과연 어디인가. ‘어디인가’를 ‘무엇인가’로 바꿔 보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라는 답은 나만의 공원을 발견하고 또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공원이다 ‘조경비평 봄’의 세 번째 책 『공원을 읽다』(나무도시, 2010)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공원이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공원의 여러 숨겨진 단면을 노출시켜 독해함으로써 그 기능과 역할을, 그 이념과 가치를 되묻고자 한 기획이었다. 책의 서문격인 글 ‘그래서 공원이다’의 일부를옮긴다. “… 공원의 어깨는 무겁다. 우리는 공원이라는 단순한 장치가 아주 복잡하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되기를 기대한다. 공원은 아침형 인간이 하루를 여는 조깅코스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등교시킨 주부가 모처럼 여유를 느끼며 걷는 산책의 장소다. 모니터 앞에서 오전을 시달린 직장인이 햇볕을 쬐며 커피와 독서를 즐기는 카페테리아다. 물론 평범한 가족의 주말 휴식을 공원에서 빼놓을 수 없다. 공원은 또한 유치원 꼬마들의 소풍으로 가득하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