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칼럼] 한국 조경과 리얼리티의 회복
    “레알이야” 리얼이 리얼로 보이지 않는 세태에 대해 청춘들은 ‘리얼’ 대신 ‘레알’로 말한다.“레알리!” 나도 믿기 어려운 꿈과 같은 현실이다. 조경 40년의 숙원이던 ‘조경진흥법’을 우리는 작년 말에 제정해냈다. 조경 공동체는 재작년 말에 조경 가문의 가훈이라 할 ‘한국조경헌장’을 제정한데 이어 드디어 법이라는 제도적 집을 갖게 되었고, 대한민국에서 조경은 더 이상 임의적 분야가 아닌 정규적 분야로서의 지위를 공인받았다. 이제 조경은 조경진흥법 이전과 구분되는 진흥법 이후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 이제 이 ‘집’의 구성원인 조경 가족과 함께 리얼한 실천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주변 세상의 행복에 기여해야 할 차례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국조경의 대내외적 현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반성하고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대외적으로 보자. 조경의 인접 분야들은 21세기의 전환기에 시대 정신을 꿰뚫는 담론과 개념들을 창출하여 해당 분야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고 이들 담론을 국가적 어젠다로 추동하여 중장기적인 공공 수요를 창출한 선례들을 내보였다. 도시 쪽은 일찍이 1990년대 후반에 ‘걷고 싶은 도시’나 ‘살고 싶은 도시’ 담론을 시민 운동으로 추진하여 근 10년 이상 국가적, 지역적인 연구와 사업 수요를 창출해 왔다. 이에 따라 도시 곳곳에 보행 전용 가로와 공원, 광장 등 보행 공간들이 증설되었으며, 조경 분야 또한 이의 시행 단계에서 수혜를입었다. 산업디자인 분야도 2000년대에 들어 ‘공공디자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해 도시 환경의 새로운 분야로서 입지를 확보한 바 있었고, 건축 분야는 더욱 저돌적으로 ‘건축기본법’ 속에 ‘공간 환경’이라는 전대미문의 개념을 만들어 도시와 조경까지 건축의 영역에 포섭하려는 전략을 제도화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그동안 지속적인 애증관계를 가져왔던 산림 분야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업역 경쟁은 가히 담론 전쟁과 개념 전쟁의 형태로까지 가열되고 있다. 이에 비해 조경 쪽에서는 그간 이들에 필적할 만한 정책적 담론 제시가 미약했다. 뼈아픈 고백이지만 조경의 기원에서 최근의 급성장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외부의 정치·경제적 계기와 여건에 편승하여 발전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스스로 창출한 가치와 담론, 그에 의한 사회적 수요의 견인은 상대적으로 희박했던 것이다. 그 이면에는 조경 지성의 현실 인식의 부재, 이론 연구의 부재가 있었다. 이것이 과거 한국 조경의 대외 정책의 리얼리티였다. 다음으로 대내적 현실을 보자. 교육·연구 분야와 계획·설계 분야의 현실에 대한 많은 지적이 있어왔으나, 주요 쟁점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문제가 계속 잠복되어 온 상태다. 특히 현재 50여 개 대학에서 행해지는 교육·연구의 틀은 조경 4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고식적·획일적이며 실무와 연동되지 못하여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표적인 지적이었다. 계획·설계에 있어서는 생태적 접근이든 예술적 접근이든 아직도 ‘그림 같은’ 녹색 낭만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반복되어 왔다. 내가 보기에 조경 교육과 연구의 기본적인 한계는 조경의 본질적 가치인 지역성과 현장성을 등한시한 데 있었다. 특히 이론 연구에 있어서는 1980년대 이래 미국발 실증주의의 프레임에 의한 추상적논리가 아직도 연구 방법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또한 지적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생생한 현장의 구체성을 수리적 예측 모형으로 추상화시키는 반면 조경의 전통적인 인문적·예술적·미학적 가치를 위축시킴으로써 조경 교육과 연구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론 연구와 계획 설계의 연동성을 약화시켜 왔다. 계획·설계의 경우, 새로운 프로세스와 표현 방법에도 불구하고 많은 결과물이 반복해서 낭만적 자연주의에 그치고 있다. 이는 수요층의 완고한 보수적 관점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결국 냉정하게 말하자면 조경가들의 시대 정신의 인식 부족과 실험 정신의 부족 때문이라고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조경 문화의 정체성 결핍을 타개할 수 있는 한 방안으로 새삼스럽게 사실주의의 회복, 리얼리티의 복권을 거론하고 싶다. 사실주의란 문예사에 있어서 낭만주의와 근대주의 사이에 위치하여 후자를 태동시킨 계기적 사조로서 근대 이전의 이상주의를 타개하고 동시대의 사회문화적 현실 그 자체에서 미적 가치를 발견하고 표현하려 한 태도를 말한다. 미술의 여러 인접 장르 중에서 유독 조경 디자인은 사실주의를 건너뛰었다. 조경사조에서는 이 부분이 공백이었는데, 최근에 이르러 설치 미술이나 팝아트 등을 적용한 조경의 등장과 함께 일상의 세속 환경을 모티브로 채택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신사실주의적 조경이 대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피터 라츠가 설계한 철강 공장 공원의 장중한 회고적 리얼리즘을 지나서, 최근 세상을 크게 한방 때린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의 수퍼킬렌Superkilen 공원이 대표적인 예다. 바닥에 그린 전위적 페인팅, 다문화적 낙서 그림과 같은 이 공원은 마치 미국 지하철의 낙서 화가 바스키야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실험적 경관을 통해서 주변 문화 집단의 다양한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한다. 나는 다른 글에서 한국 최초의 사실주의적 공원으로 쌈지공원을 든 바 있는데, 최근의 도시재생 운동과 함께 도시 가로와 골목길의 생활 환경을 주민과 함께 재탄생시키는 현장 지향적 리얼리즘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는 시대 정신의 반영으로 보인다. 조경 운동도, 교육과 연구도, 설계도 이러한 최근의 리얼리스틱한 흐름을 주의 깊게 보고 현장 연구를 통해 조경 독자적인 창의적 방법론을 세울 필요가 있다. 당장 큰 사업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이 속에서 그동안의 조경의 거품과 리얼리티의 빈곤을 반성하고 보다 윤리적인, 그래서 조경인과 시민이 함께 행복한 차세대 조경의 싹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이를 도시 전역으로 확장시키면서 새로운 도시의 경관 양식의 창조를 조경이 주도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이 글이 아직 레알에 이르지 못한 가설이라 하더라도. 김한배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한국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우리 도시의 얼굴 찾기』 외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고, ‘도시 환경 설계의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사조에 관한 고찰’,‘혼성적 환경 설계의 기원과 전개’, ‘동양 그림의 경관관이 작정원리에 미친 영향’ 외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미술과 조경, 도시경관 양식의 상호 관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 [에디토리얼] 편집된 공간
    방배동에 짐을 푼 지 한 달 반이다. 『환경과조경』 식구들의 행동 반경이 슬슬 넓어지기 시작했다. 마감에 쫓기더라도 매끼를 배달 음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주일 전에는 요즘 뜨고 있다는 ‘사이길’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간식이라고는 맥주밖에 모르는 남기준 편집장도 이곳에서는 수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방배동 사이길은 함지박사거리 근처에서 서래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작은 골목길이다. 입에 쉽게 붙는 길 이름은 도로명 주소 ‘42길’을 그대로 사용한 것인데, 20세기 초의 옛 지도에서도 이 길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강남에서는 보기 드물게 시간의 흔적이 쌓인 장소다. 300미터 남짓한 거리지만 느긋하게 산책하며 커피 한 잔 하거나 아이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골목이다. 당근 케이크로 유명한 동네 빵집, 개성 강한 가죽 수제품 가게, 발길을 유혹하는 아트갤러리, 제작과 판매를 같이 하는 향수 공방, 빈티지 소품 가게와 디자인 편집 숍이 적당한 여유와 밀도 속에 늘어서 있다. 건축가나 조경가가 폼 잡고 설계한 공간이 아니다. 과하지 않게 디자인된 잡지처럼 자연스럽게 잘 “편집된 공간”이다. 허나, 아쉽지만, 뻔하다. 매체를 조금 더 타고 셀카족 언니들이 더 많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이 사이길도 예의 ‘길 시리즈’처럼 대기업 프랜차이즈 숍에 점령당할 것이다. 가로수길처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더 세련되고 쾌적하게 개선하자는 심산으로 조경가를 불러 가게 앞에 녹지를 끼워 넣으면, 건축가가 폼잡고 손을 대면, ‘걷고 싶은 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보차를 분리하거나 없던 인도를 억지로 만들면,이런 길이 오히려 망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전문가의 디자인이 자연발생적인 공간 편집을 망쳐놓은 사례를 무수히 목격해 왔다. 진한 농도의 수제 밀크 아이스크림콘이 녹아내릴 때쯤, 토포텍 1Topotek 1의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에게 사이길을 설계 사이트로 맡기면 어떤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놓을지 궁금해졌다. 이번 호 특집을 위해 몇 달째 토포텍 1을 붙잡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례적으로 100쪽의 지면을 할애한 토포텍 1의 작품들에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기다려진다. 토포텍 1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동시대의 조경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생태, 과정, 작동 등과 같은 최근의 설계 이슈가 이제 지겨우시다면, 라인-카노라는 쟁점적 인물과 그의 문제작들을 놓고 모처럼 신선한 토론을 즐겨보시길 권한다. 강렬한 패턴과 고채도의 색과 굵은 선으로 가득한 토포텍 1의 작품은 과격하고 도발적이다. 꼭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느낌이다. 재작년 여름에 만났던 코펜하겐의 수퍼킬렌Superkilen은 숨이 막힐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데뷔작인 스카이 가든Sky Garden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라인-카노의 많은 작품들은 ‘시각적’ 어필만을 위해 원색과 강한 선으로 ‘바닥’에 마음껏 그림을 그렸군, 하는 첫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렇게 한방에 단언해 버리며 책장을 덮을 일은 아니다. 토포텍 1의 작업을 가로지르는 핵심은 ‘표면 전략surface strategy’이다. 3차원의 공간에 대한 관심보다는 지구의 표면, 즉 바닥에 주목한다. 설계의 대상이 정원이건 공원이건 광장이건 넓은 대지이건 간에, 라인-카노는 그것을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늘과 만나는 이차원의 표면, 즉 바닥으로 환원한다. 표면으로 환원된 공간을 그는 시각적으로 ‘편집’한다.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때로는 통제된 규칙을 허물고 자유를 얻기 위해. 이러한 편집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 그의 일관된 ‘그래픽 비전graphic vision’이다. 토포텍 1의 작품들은 물리적 스케일이나 표면 질료의 성격과 상관없이 늘 그래픽적이다. 의도적인 선형 패턴의 그래픽을 통해 시각적 편집을 넘어서는 역사적·문화적 편집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리스의 신전, 모로코의 분수, 팔레스타인의 토양, 프랑스 정원의 자수화단, 영국 풍경화식 정원의 낭만, 일본 정원의 사색, 중국 정원의 정자 등 이질적 역사와 문화의 성분이 편집된다. 라인-카노의 작업은 표면이라는 같은 텍스트에 그래픽이라는 같은 매개체를 투입하여 이종의 가치와 복수의 문화가 교배된 새로운 콘텍스트를 편집해낸다. 그의 디자인에 단 하나의 개념을 달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편집’일 것이다. 편집 앞에 조금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자면 ‘미학적’보다는 ‘사회학적’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 잘 편집된 공간 사이길에 토포텍 1의 편집된 공간들을 엎고 섞다 보니, 불현듯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편집”이라는 김정운의 구라가 그럴듯하게 와 닿는다. 이번 마감이 끝나면 요즘 잘 팔린다는 그의 신간 『에디톨로지』를 날라리 책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한번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이번 호가 잘 편집된 잡지일지, 근심이다.
  • [CODA] 오답
    “『환경과조경』이 토포텍 1TOPOTEK 1(이하 토포텍)을 밀어주는 이유가 뭐죠” 토포텍 특집이 장장 100여 쪽에 걸쳐 수록되었기 때문에 나온 물음은 아니다. 2월호 잡지가 막 서점에 깔리기 시작한 1월 29일 열린 ‘서울역 7017 프로젝트’ 기자회견장에서 공식 발표된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탓이다. 지명 초청된 일곱 명의 작가 중 토포텍의 수장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가 포함되었는데, 누가 봐도 시기가 참 공교로웠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첫 번째, ‘저의가 뭐냐’는 의심의 눈초리파. 잡지 리뉴얼 이후는 물론이고 그 전에도 이 정도 분량으로 특정 오피스를 다룬 적이 없는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서울역 고가의 초청 작가가 발표된 시기에 맞춰서 이렇게 상세하게 토포텍을 다룬 의도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두 번째, ‘안 그래도 궁금했다’는 호기심 해소파. 국내 작가 3인(조민석, 조성룡, 진양교)과 MVRDV의 비니 마스Winy Maas는 알겠는데, 장영호Chang Yung Ho(Atelier FCJZ)나 후안 헤레로스Juan Herreros(estudio Herreros), 마르틴 라인-카노의 작품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서 어떤 성향의 작가인지 궁금했는데, 그중 한 명이 특집으로 다루어져서 궁금증이 일부 풀렸다고 했다. 이외에 ‘서울역 고가와 토포텍이 무슨 관계가 있죠’라고 되묻는 이들도 적지않았다. 2월호의 코다CODA 지면을 통해 김정은 팀장이 밝혀놓았듯, 토포텍 특집은 다섯 달 전부터 이른바 겨울 춘궁기용으로 저장해 놓은 아이템일 뿐이다. “사진은 가을 풍경인데, 왜 대담에서는 겨울철에 방문했다는 대목이 나오는 거죠” 디자인 엘의 작품과 박준서·오형석 소장의 대담이 편집된 교정지를 본 어떤 이가 물었다. 조경 잡지는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국내 작품 춘궁기에 해당한다. 한겨울 풍경을 선호하는 이들도 일부 있겠지만, 아무래도 겨울철 외부 공간 촬영은 여러 이유로 꺼려진다. 국내 작품 촬영은 이 시기에는 올스톱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9월부터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한 궁리와 섭외가 시작된다. 토포텍 특집은 단행본 출간 제의가 특집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겨울로 미뤄둔 경우이고, 이번호에 실린 디자인 엘의 한국동서발전 신사옥과 엔씨소프트R&D 센터는 미리 섭외와 촬영을 해놓은 케이스다. 판교에 있는 엔씨소프트는 작년 10월 15일에, 울산에 위치한 한국동서발전은 10월 28일에 촬영해 놓았다가 이제야 소개한다. 하지만 대담은 본격적으로 3월호 작업에 돌입하기 시작한 1월 30일에 이루어졌기에, 가을 사진임에도 겨울 이야기가 등장했다. “뭐, 재미있겠네요. 그런데 이런 형식이 전에도 있었나요” 대담자로 모신 오형석 소장(디자인로직)이 섭외에 응하며 던진 질문이다. 최소한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라고 답했다. 작품을 소개하며, 그 작품을 주제로 설계자와 또 다른 조경가가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눈 경우는…. 가장 비슷했던 경우는, 작년 2월에 실린 김이식 소장(이화원)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힐 가든’과 그에 대한 허대영 소장(스튜디오 테라)의 비평인 ‘가장 보통의 미술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우리는 허소장을 섭외하며, 이른바 ‘동료 비평’ 콘셉트라고 소개했다. 같이 설계를 하는 입장에서만 할 수 있는 코멘트가 분명히 있지 않겠느냐고 꼬드기면서…. 박준서·오형석 소장의 대담과 마찬가지로 김이식·허대영 소장도 한 테이블에 앉아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허소장이 이야기를 듣고 별도로 에세이를 써 내려간 것과 달리, 이번 대담은 그 자체가 고스란히 지면에 옮겨졌다. “이번호는 왜 유난히 마감 일정이 빠른 건가요” 어느 필자의 하소연이다. 하소연은 정말이지 우리가 하고 싶다. 하필, 설 명절이 마감이 절정으로 치닫는 2월 중순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다. 빼도 박도 못할 일정이다. 더구나 5일 연휴다. 엎친 데 덮친 까닭은 2월 달이 28일까지밖에 없다는 슬픈 사실이다. 게다가 올해는 28일이 토요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27일에는 잡지가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달보다 5일 빨리 마감을 시작했지만, 일정을 맞추기가 녹록치 않다. 결국 편집주간부터 막내인 양다빈 기자까지 모두가 연휴 마지막 날인 일요일 출근부에 도장을 찍었다. 10년 넘게 잡지를 만드는 동안 2월이 되면 늘 누구에게랄 것 없이 하소연을 쏟아냈다. “도대체 누가 2월 달은 28일로 달력을 만든 거야” “편집주간이 일요일에도 나오세요” 지면에 담기에 적절한 소재는 아니지만, 은근히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작년 1월호부터 에디토리얼을 쓰며 등장한 ‘편집주간’이란 직함을 갖고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잡지 제작에 실제 참여하고 있는지를…. 구구절절 써놓으면 교정 단계에서 이 대목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으니, 특집 기획, 필자 섭외, (간헐적으로) 국내 작품취재, 수록되는 모든 원고의 교정 정도를 하고 계시다고, 짧게 답해 둔다. 제목인 ‘오답’은 5문 5답에서 ‘5문’을 생략한 의미이기도 하지만 오답誤答, 즉 잘 못된 대답이란 뜻도 있다. 독자들이 정작 궁금해 하는 것은 이런 시시콜콜하고 시답잖은 뒷이야기가 분명 아닐 터이니 말이다. 언젠가 정색하고, 한 번 답해볼까 한다.
  • [편집자의 서재]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의 사람들
    텍스트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하지만, 사실이 세상엔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때로는 텍스트가 가장 적절한 매개medium가 아니기도 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의 사람들Citizens of No Place』은 그러한 “감수성 강한 생각들”을 만화라는 매력적인 방법을 통해 표현한다. 그렇다. 이 책은 ‘만화책’이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대사로 시작된다. “잠깐, 자네말은 잔디가 나쁘다는 건가” 당신이 들고 있는 ‘이 잡지’에 가장 많이 나오는, 그래서 이젠 텍스트에 언급조차 되지 않는 그 잔디를 ‘까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갑자기 지구가 멸망한다(물론 잔디 탓은 아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1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아 떠난다. 시나리오만 보면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지구를 찾는 일에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중력이 없다는 것, 그런 조건에 맞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필요하다는 것과 같은 플롯plot의 기본 바탕이 되는 설정일 뿐이다. 제2의 둥근 땅을 향하고 있는 ‘노아의 방주 우주선’에서 어린 건축가는 그의 인스트럭터instructor에게 자신이 포인트 클라우드point cloud1 기법을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시한다. 그는 34컷에 걸쳐 복잡한 수식과 ‘있어 보이는’ 다이어그램을 설명하지만, 인스트럭터는 단 두 개의 문장을 덧붙일 뿐이다. “직관적인 것에 대해 그렇게 객관적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네. 그냥 마음 편하게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다고 인정하면 어떨까” 젊은 건축가의 동공이 확대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여기서 만화라는 매개의 장점을 찾아낼 수 있다. 히메네즈 라이Jimenez Lai는 만화의 형식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 텍스트가 아닌 ‘그림과 대사’를 통해 서술과 묘사, 그리고 비판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이 어떤 관계이고 무엇에 관심이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양한 질문을 하도록 유도한다. 많은 설계가가 단편적인 조사 결과를 일반화하고 모듈module화시켜 적용하려는 성급한 태도를 지적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설계를 하는데 있어, 논리가 직관적인 결과물의 ‘설명을 위한 설명’으로 ‘생산(혹은 편집)’되는 현실을 비꼬고 있는 것일까(젊은 건축가는 직관적 결과물을 소개하기 위해 ‘논리’를 끼워 맞췄을 수도 있다)1,187일 하고도 17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 젊은 건축가는 다시 한 번 인스트럭터를 마주하게 된다. 인스트럭터는 젊은 건축가가 들고 온 ‘단면 위주의 계획’을 비판하며, “(평면은) 전일주의Holism적으로 생각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현명하게 콘텍스트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젊은 건축가의 답변이 이어진다. “하지만 평면은 인간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신의 시각으로 보게 되잖아요.” 옳고 그름을 떠나 나는 이 순간 ‘통쾌함’을 느꼈다. 물론 평면은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데 있어보다 편리하고, 조건 별로 구분하여 공간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객관성이 진정으로 객관적인가? 평가를 위한 매개가 경험의 질을 보장해 주지 않는 다면 그 매개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분명 흥미로운 평면은 정리된 모습이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1인칭 관점에선) 재미없는 모습이 되기 쉬운 것은 아닐까? 그에 반해 흥미로운 단면은 정보가 부족할 수는 있지만, ‘공간에서의 경험’으로서는 보다 많은 가능성을 가진 것이 아닐까? ‘내 이야기’로 돌아오면, 설계를 공부하면서 많은 의구심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런 의구심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받아본 적이 없다. 35세의 젊은 건축가 라이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일까? 그는 그의 의구심을 서로 다른 (그러나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10개의 이야기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며 말 그대로 ‘별 말 없이’ 풀어놓는다. 이 ‘만화책’은 건축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공간을 다루거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으며 당신이 들어왔던 것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 글을 읽고 페이퍼 프로젝트paper project만을 진행해 온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려 할 수도 있겠지만. “이봐. 그건 네[니] 생각일 뿐이야.
  • 정원도 지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제2회 푸르너스 가든아카데미’ 특강
    한국정원디자인학회(회장 홍광표)가 주관하고 예건(대표 노영일)이 후원하는 ‘푸르너스 가든아카데미’가 1월 29일 부터 3월 12일까지 개최된다. ‘푸르너스 가든아카데미’는 증가하는 정원 설계와 시공 수요에 대한 전문성 확보를 위해 지난해부터 시작된 공개 강좌다. 올해 강의는 총 8강으로 구성되었다. ‘제2회 푸르너스 가든아카데미’의 일환으로 지난 1월 31일에는 서교 자이 갤러리 그랜드 홀에서 일본 조경가 특강이 열렸다. 두 개의 강연이 이어졌는데, 첫 강연자인 츠지모토 토모코(츠지모토 토모코 환경디자인연구소 소장)는 ‘가든 르네상스’를 주제로 강연했다. 츠지모토 토모코는 1995년부터 현재까지 츠지모토 토모코 환경디자인연구소를 운영하며 기적의 별 식물관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토모코는 “가든 르네상스는 지역 전통으로서의 원예, 라이프 스타일이 각 지역과의 관계로부터 생겨나는 것을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며 “시민들이 협력하면서 친환경 문화를 계승하며 고향을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가든 르네상스는 4가지로구성된다. ‘녹지 공간 만들기’, ‘지역성·전통성을 계승하는 공간 만들기’, ‘주민 참여의 친환경 공간 만들기’, ‘순환형 사회구축을 위한 시스템 만들기와 교류 거점만들기’가 바로 그것이다. 토모코는 가든 르네상스를 일본의 섬 아와지에 적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아와지 섬 특히 섬의 북쪽 지역은 인구가 점차 줄어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이었다. 주민들의 참여도가 낮았고 네트워크가 잘 구성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 곳이었는데, 토모코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든 르네상스가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가든 르네상스를 통해 아와지 섬의 지역성을 활성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기적의 별 식물관은 토모코의 강연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소개된 사례였다. 토모코는 식물관의 식재 설계를 했다. 이후 이곳에서 아와지 섬에서 유래한 전통 인형극을 공연하고 오페라와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활동이 이루어졌다. 각종 식물들로 오감을 자극하고 아와지 섬의 지역성과 전통성을 계승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등 여러 분야의참여형·순환형 사회 구축을 위한 시스템과 교류 거점을 만들려는 토모코의 노력들이 기적의 별 식물관에서 드러나 보였다. 아와지 섬의 남쪽 지역에도 가든 르네상스를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남쪽 지역에는 신사神社가 여럿 있는데, 토모코는 신사와 신사 사이의 길을 꽃의 거점으로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강연에서 특히나 인상 깊었던 점은 식물원에서 무대공연과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물원을 ‘식물을 관찰하고 학습하는 공간’으로만 생각하는데, 토모코는 ‘기적의 별 식물관’을 통해서 ‘식물원’이라는 공간을 재해석했다.두 번째 주제는 ‘지역 특성을 고려한 조경 디자인’이다. 쇼타 타카히사가 강연자로 나섰다. 쇼타 타카히사는 1992년부터 집합 주택, 상업 시설, 의료, 교육 시설, 이벤트 기획 등 다방면의 옥외 공간 토털 디자인부터 공사 감리까지 담당했다. 현재 공간창연空間創硏에서 조경디자인 및 공사 감리를 수행하고 있으며, 랜드스케이프 컨설턴트협회 칸사이지부 간사위원이자 홍보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타카히사는 지역 특성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 지역의 풍토나 문화를 디자인에 도입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풍토는 “그 지역의 기후, 지형, 기상, 지질이나 환경, 경관”이며, 문화는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전통”이라고 부연했다. 강연은 4가지 조경 디자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프로젝트 1은 ‘제30회 전국 도시 녹화 돗토리페어’다. 전국 도시 녹화 돗토리 페어는 돗토리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주제로 삼아 사계절의 변화를 사람들이 즐기는 행사다. 타카히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가까운 야산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도록 하고, 자생식물을 생활 공간에 도입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프로젝트 2는 아리마 온천거리에 건축된 호텔 ‘아리마6채’다. 아리마 온천거리는 일본에서 유명한 천연 온천 마을인데, 아리마 온천거리는 거의 평탄지다. 때문에 로코산의 경사면을 이용해서 조성되었다. 프로젝트 3은 병원의 신설 공사에 수반되는 경관 재정비 사업이다. 아직 계획 중인 곳으로, ‘오사카후립 모자보건 종합 의료센터’다. 이 의료센터의 광장을 살펴본 결과 ‘환자와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동선이 불명확’하고, ‘공간의 세분화와 현황 수목의 재활용이 고려되어 있지 않으며’, ‘모두가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정리되어있지 않다’는 문제가 도출되어, 불필요한 계단을 철거하는 등 병원 내의 동선을 재정비하였다. 또한 보존해야 하는 수림은 병원에 그대로 두며, 테라스와 같이 사람들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했다. 프로젝트 4는 ‘야구장 철거지 상업 시설’이다. 일본 오사카시 남쪽의 야구장을 철거하고 상업 시설로 새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타카히사는 이 부지에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상업 시설이라는 테마를 부여하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포츠 관련 시설이 주로 입주할 계획인 이곳은, 현재 공사 중으로 오는 4월에 개장 예정이다. 타카히사는 “부지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고 분석하여 그 부지의 조건에 맞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강연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고 사고하는 행동이 조경 설계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했다.
    • 전예원
  • ASLA Best Books 2014 ‘2014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10권의 조경 서적
    미국조경가협회Ame r i c a n S o c i e t y o f L a n d s c a p e Architects(ASLA)는 2010년부터 매년 12월 10권의 ‘올해의 책ASLA Best Book’을 선정하고 있다. 주요 이슈를 다룬 책이나 학술적으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 또는 이전에는 접하지 못한 주제를 신선한 시각에서 다룬 책 등이 주로 선정되었다. 본지는 ‘2014 올해의 책’10권을 소개한다. 1. 『어반 아큐펑처』 건축가 자이메 레르네르Jaime Lerner는 『어반 아큐펑처Urban Acupunture』에서 도시를 하나의 몸으로 비유한다. 동양의 침술 요법이 신체의 특정 부위를 찔러 특정한 치료 효과를 거두고자 하는 것처럼, 도시 속의 아주 작은 지점pinprick에서의 변화가 도시 전체로 번져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쿠리치바Curitiba의 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새로운 도로 교통 시스템Bus Rapid Transit을 도입하여 도시 전체를 생태 도시화했던 것처럼, 바르셀로나의 라 보케리아 시장La Boqueria Market에서 서울의 청계천 복원 사업까지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2. 『베를린: 도시의 자화상』 베를린은 현대의 그 어떤 도시보다 파괴와 건설이 반복된 곳이다. 『베를린: 도시의 자화상Berlin: Portrait of a City Through the Centuries』은 이렇게 베를린이라는 도시만이 갖고 있는 불안정한volatile 모습을 24개의 삶을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중세의 창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독 가스를 발명했던 어떤 유대인 화학자, 베를린 장벽을 세우는 과정에 참여했던 한 무명의 공산주의자 등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이 5세기에 걸쳐 그려진다. 이 책은 이들의 삶의 방식,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던 당시의 문학과 음악을 통해 도시의 본질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 『경관의 재구성: 포토몽타주와 조경』 『경관의 재구성: 포토몽타주와 조경C o m p o s i t e Landscapes: Photomontage and Landscape Architecture』은 조경 설계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표현 기법의 하나인 몽타주 뷰montage view를 다룬다. 이 책은 제임스 코너, 아드리안 구즈Adriaan Geuze, 켄 스미스Ken Smith 등을 포함한 영향력 있는 현대 조경가와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포토몽타주 기법이 어떻게 공간의 개념을 재현하고 간접적인 경험을 제시하는지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초창기의 핸드 드로잉부터 현대의 디지털 방식까지, 포토몽타주를 활용한 경관 표현 기법의 차이와 발전 과정도 담아냈다. 이 책을 통해 재구성된 경관 속에 구축된 이미지constructed image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 『변화하는 경관: 재생을 위한 혁신적 디자인』 기후 변화, 천연 자원 개발, 인구 이동과 같은 전 지구적인 이슈는 현대 조경 설계를 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변화하는 경관:재생을 위한 혁신적 디자인Landscapes of Change: Innovative Designs for Reinvented Sites』은 이러한 사실이 디자인 프로세스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어떤 디자인 전략을 필요하게 했는지, 또 어떤 측면에서 조경의 혁신을 일으켰는지 진단한다. ‘인프라스트럭처’, ‘후기 산업시대의 경관’, ‘식재된 건축’, ‘생태주의적 어바니즘’, 그리고 ‘식용 가능한 경관’이라는 주제에 묶인 25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와 현대 조경의 차이점을 확인하고, 나아가 미래의 조경을 예측해볼 수 있다. 5. 『상상하는 경관』 제임스 코너James Corner는 『경관의 회복Recovering Landscape』을 포함한 여러 편의 글과 그 실천이라 할 수 있는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에 직면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산업 유산을 받아들이고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상상하는 경관The Landscape Imagination: Collected Essays of James Corner 1990~2010』은 지난 20년간 학계에 발표된 코너의 글을 모은 것으로 그동안 조경계에 대두되었던 주요 이슈를 다루고 있다. 코너는 JCFO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의 작업을 기반으로 이러한 글 속에 담긴 생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실제 경관으로 구현되어 왔는지 설명한다. 6. 『멜론 스퀘어』 『멜론 스퀘어Mellon Square: Discovering a Modern Masterpiece』는 ‘현대의 경관: 전이와 변형Modern Landscapes: Transition & Transformation’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1955년 완공된 피츠버그Pittsburgh의 첫 번째 현대 정원 플라자garden plaza인 멜론 스퀘어의 발전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광장의 최종 결과물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디자인 발전 단계에 쓰였던 스케치와 식재 디테일, 구현된 모습에서는 느끼기 힘든 섬세한 생각이 적힌 디자인 노트, 나아가 핵심 디자이너들의 개인사까지 담아내며 설계 과정에 있어 어떤 요소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는지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7. 『차세대 인프라스트럭처』 날이 갈수록 고밀화되고 복잡해지는 현대 도시를 산발적인 도시계획과 임시방편의 기반 시설 정비만으로 지탱할 수 있을까? 또는 그러한 방식으로 탄소 제약 조건과 기후 변화와 같은 전 지구적인 이슈에 대응할 수 있을까? 『차세대 인프라스트럭처Next Infrastructure: Principlesof Post-Industrial Public Works』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 한다. 캘리포니아의 마운트 포소Mount Poso 열병합 발전소에서 서울의 빗물 관리 시스템이나 싱가포르의 다목적 마리나 베리지Marina Barrage 프로젝트까지 희망적인 예를 제시한다. 나아가 이러한 개별 프로젝트가 도시스케일을 넘어 전 지구적 범위에서 얼마만큼의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 분석한다. 8. 『피플 해비타트: 건강한 녹색 도시를 위한 25가지생각』 미국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도시와 부도심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커뮤니티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현실에 맞게 재정립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으며, 인간이 만들어내는 환경 오염 물질에 대한 대처법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피플 해비타트: 건강한 녹색 도시를 위한 25가지 생각People Habitat: 25 Ways to Think About Greener, Healthier Cities』은 ‘사람들이 걷지 않는 이유’와 ‘녹색’ 하우징과 관련된 가벼운 담론에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 cation과 같은 복잡한 문제까지 아우르며, 인류와 지구 모두를 위한 거주 생태계ecology of human settlement를 구현하는 방법을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제시한다. 9. 『프로젝티브 이콜로지』 지난 20년 동안 생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 이슈이며, 이제는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생태주의적 설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프로젝티브 이콜로지Projective Ecologies』는 이러한 시점에 생태를 단순히 자연과학적 사고의 결과물로볼 수만은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 이론가, 사회 평론가,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생태를 보다 넒은 의미와 조건을 함축하는 메타포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생태를 기존의 적용 범위를 넘어 정치와경제, 그리고 사회적 함의까지 포함하는 단계에서 다시 정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와 관련된 연구와 이론을 제시함과 동시에, 설계적인 가능성까지 모색하고자 한다. Gross.Max, JCFO, 숀 렐리Sean Lally, OMA, Stoss, West 8 등의 세계적 조경설계사무소에서 제공받은 이미지들은 책 전반에 걸쳐 현재 생태학적 설계와 관련 이론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했는지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0. 『어반 바이크 웨이 디자인 가이드』 NACTONational Association of City Transportation Offi cials에서 출간한 『어반 바이크 웨이 디자인 가이드Urban Bikeway Design Guide』는 미국 내 주요 자전거 도로의 규격, 법 체계, 운영 시스템 등을 조사·연구하여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 정리한 책이다. 자전거 친화 도시별 특징과 관련 가이드라인이 담겨 있어 도시계획 과정에서 새롭게 교통망을 정리하거나 추가적인 자전거도로를 조성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다만 수록된 가이드라인이 미국 외의 국가에서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 책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 양다빈
  • 서울역 고가 설계공모 방식과 절차에 관한 논란 서울시 질의 및 김영준 전문위원 인터뷰
    지난 1월 29일 서울시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 기자 설명회장에서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를 1월 29일부터 4월 24일까지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장영호Chang Yung Ho(Atelier FCJZ), 후안 헤레로스Juan Herreros(estudio Herreros),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TOPOTEK 1), 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 비니 마스Winy Maas(MVRDV), 조민석(매스스터디스), 진양교(CA조경기술사사무소) 등 7명의 지명초청자도 공개되었다. 지명자들은 작품 제출 시 건축, 조경, 교량구조세 분야 컨소시움 형태로 참가해야 하며, 당선자에게는 실시설계권(설계비 13억7천2백만 원)이 주어진다. 심사에는 승효상(서울시 총괄건축가, 이로재 대표),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Dominique Perrault Architecture), 비센테 구알라트Vicente Guallart(Chief Architect of Barcelona City Council), 조경진(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온영태(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송인호(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예비심사위원)가 참여한다. 지난 1월 12일 개최 예정이었던 ‘서울역 고가 전문가 토론회’가 지역 상인들의 반대로 무산되는 등 그간 서울역 고가의 보존과 재활용 자체에 대한 전문가 및 시민들의 논란이 컸던 만큼, 구체적 일정이 발표된 공모전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나치게 빠른 일정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설계공모 공고와 동시에 지명초청 작가를 발표하는 등 폐쇄적인 공모 절차와 방식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공모전을 주최한 서울시에 공모의 방식과 초청작가 지명 절차 및 기준 등에 관해 질의했다. 다음은 그에 대한 서울시(담당 도시안전본부 도로관리과)의 답변이다. 공모 방식과 절차 및 기준에 관한 서울시의 회신 “서울역 고가는 수명이 다한 구조물을 보행길로 재생(재활용)하는 사업으로 구조 안전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사업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역사 문화유산과 연계하고 사람길로 전환에 따른 조경 식재 등 다양한 시설물 설치를 고려해야 하는 사업입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조경, 건축 및 구조 분야의 협업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도출 및 세계 저명한 디자이너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공모 방식을 지명초청 방식으로 결정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명초청자는 MP(전문위원)가 본 사업과 유사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당선자로 선정된 국내·외 저명한 디자이너를 복수 후보로 추천하고 ‘설계공모 추진위원회’에서 최종 지명초청자 7명을 결정했습니다. 선정 기준은 최근 당선 및 수상 경력, 업종 배분, 국가별 배분, 컨소시엄(구조·조경·건축) 가능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공모 착수와 함께 지명초청자 전원 참가의향서를 받았습니다. 설계공모 공고는 「문화일보」와 「헤럴드경제」 신문 지면을 통해 지난 2015년 1월 29일에 공고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본지는 이번 공모전의 전문위원(MP)인 김영준 대표(김영준도시건축)를 만나 설계공모의 형식과 절차 등에 대해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김영준 전문위원과의 인터뷰 Q. ‘시민 소통 계획’의 일환에서 추진된 이번 공모전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는 ‘공개공모’ 방식 대신‘지명초청’ 방식을 택한 이유와 배경은 무엇인가? A. 첫째,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안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다. (서울역 고가가 안전등급 D를 받은 상황이므로) 프로젝트의 일정상 시급함이 있고 구조적인 문제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정확하고 전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둘째, 이 프로젝트는 과정이 중요하므로, 진행하면서 변화하는 상황과 흐름을 정확하게 전달하며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공개공모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변화내용을 전달하기 어렵다. 또한 공모에 참가한 개개인이 이 프로젝트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우리는 지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전달하고자 한다. 만약 공개공모라면 다수에게 이러한 강력한 동기부여를 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또한 공개공모의 경우, 응모작의 수는 많을 수 있으나 정작 좋은 안은 소수에 그치는 사례를 여럿 경험했다. 따라서 서울역 고가라는 프로젝트의 상황과 중요성에 적합한 공모 방식을 택한 것이다. Q. 어떠한 절차를 통해 7명의 건축가 및 조경가를 선정하였는가? 지명초청의 경우 대개 참가의향서(RFQ)나 개략 구상안(RFP)을 받는 과정을 거쳐 지명초청자를 선정한다.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경우, 참가의향서 공모 공고 및 적격 심사 등의 절차를 진행했는지, 만약 이러한 절차를 생략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또한 지명초청된 7명의 건축가 및 조경가는 각각 어떠한 기준과 이유로 선정된 것인가? A. 지명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어떤 방식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이번 프로젝트의 성격상 통상적 업역의 테두리 안에서 작업을 하기보다는, 건축이나 조경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디자이너가 적합하다. 예를 들어, 건축가라 하더라도 조경 쪽으로 한 발 다가설 수 있는 지향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이번 공모에서는 그런 작업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초청한 것이다. Q. 건축가와 조경가의 안배가 있었나? A. 그간 이런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조경계 뿐만 아니라 도시 분야에서도 유사한 문제 제기가 있다. 그러나 이제 건축, 토목, 조경 이런 식으로 나누어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기보다, 더 큰 건조 환경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일례로 최근 당인리발전소의 경우 각 영역별로 분리되어 서로 소통이 없는 것이 큰 문제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도시와 접목된, 새로운 지향점을 가진 좋은 사례가 만들어진다면, 여러 건축가나 조경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있지 않겠느냐. 또한 참여자들에게 건축·조경·구조의 협업을 전제로 작업의 결과를 요청했으므로 다른 분야의 참여자들이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이제는 조경가들도 도시와의 접목을 지향하는 다양한 선례들을 만들어 보여줘야 한다. Q. 이 프로젝트를 두고 “너무 빠른 진행 과정 자체가 문제”, “과정도 작업의 일부”인데 그것이 간과된 것 같다는 지적들이 있다. 최근 해외 설계공모의 경향을 보면, 공모전 자체가 지역 주민 및 전문가들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더 나은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기획된다. 즉, 공모의 전 과정에서 이루어진 모든 논의와 경험을 공공의 지식, 공공의 성취로 확대하고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 공모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A. 당선안이 바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많은 단계를 거칠 것이다. 민간에서 시작된 일과 공공이 하는 일은 좀 다르다. 민간에서 진행하는 일들은 조직을 만들고 틀을 짜는 데 거의 5~6년이 걸린다. 그러나 공공이 하는 일에는 기본적인 틀이 있고, 그 틀에 맞추어 진행된다. 공모는 공모대로 진행하고, 시민들과의 소통도 함께 진행할 것이다. 요즘도 상인회나 관련자들과 지속적으로 회의를 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 결과 중 중요한 내용을 공모에 반영하고, 당선안이 나온 후에도 논의를 반영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외부 의견을 듣기위해 자문회의를 하면, 할 때마다 매번 논의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는 점이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회의 때마다 절차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자문회의는 계속 겉돌게 된다. 이미 어느 정도 틀이 잡혔다면 그 상황에 걸맞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나. 물론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다면, 설계공모의 당선안을 뽑아 놓고 실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러한 이야기를 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는 단독 프로젝트가 아니라 네트워크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지난 기자 설명회에서 17개의 길이 부각되면서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긴 프로젝트가 아니라 부분(퇴계로 주변, 한강대로 주변, 서울역 광장, 북부역세권, 만리동, 청파동 램프 등)으로 이루어진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이번 설계공모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라는 광범위한 재생 프로젝트에서 하나의 수단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례로 디자이너들이 설계공모 당선 이후 설계안이 변경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당선안을 결정하고 계약을 하는 것이 공모의 역할이라기보다 그 사이에서 조율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합의의 부재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란은 대략 세 가지 방향으로 압축된다. 첫째, 교통 문제나 상권, 노숙자 문제의 대안에 대한 우려. 둘째, ‘서울역 고가가 과연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 근대 산업 유산인가’ 혹은 ‘그 유산을 기억하는 방식이 꼭 고가 보존이어야 하냐’는 문제. 마지막으로 빠른 추진 속도와 절차에 관한 문제다. 이 모든 논란에서 가장 선행되는 것이 바로 속도와 과정에 대한 우려다. 주최 측이 강조하고 있는 서울역 고가의 안전 문제가 사회적 합의나 공론화의 부재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는지, 다른 임시 조치로 소통의 시간을 확보할 수는 없는지 의구심이 들지만, 이제 서울역 고가의 재활용 혹은 공원화는 이번 설계공모공고를 통해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보인다. 주최 측이 밝히고 있듯 ‘과정’이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공모의 과정 역시 투명하고 좀더 소통적인 공모의 방식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해외 여러 설계공모는 그것이 지명초청의 형식이든 공개경쟁의 방식을 취하든 설계지침서 작성 단계부터 지역 주민 혹은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협업하며 지역의 문제를 이해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공모의 중요한 일부로 삼고 있다. 그러나 2014년 9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역 고가 공원화 발언 이후, 10월 고가 개방 행사, 11월 서울역 고가 활용 방안 아이디어 공모, 2015년 1월 국제 설계공모 공고 그리고 5월초 당선작 발표까지 그 빠른 속도는 물론, 단계별로 베일을 벗듯이 진행되는 공모 진행은 기존의 공공 프로젝트 추진 방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여겨진다. 추진 상황에 걸맞는 좀더 성숙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점은 첫 단추가 서둘러 끼워지면서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지명초청자들이 적절한가, 혹여라도 주최 측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사람을 찾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는,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불신일 것이다. ‘보행 중심의 도시’와 ‘재생’의 가치만으로 여러 결정과 절차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태도는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시민과 전문가들이 소통의 당사자가 아니라 설득과 계몽의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이해당사자와 관련 전문가들과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며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은 행정의 틀 안에서 일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지난하고 비효율적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러한 과정이 지금 이 시대의 공공 프로젝트에 필요한 도전이 아닐까.
    • 김정은
  • 서울역 고가 공원화로 도보관광 네트워크 구축 추진 ‘서울역 7017 프로젝트’ 기자 설명회
    서울시는 지난 1월 29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역7017 프로젝트’ 기자 설명회를 열고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시가 발표한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의 큰 방향은 “17개의 보행로를 신설해 서울역 주변을 역사·문화·쇼핑으로 연결되는 도보관광 명소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두 가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17개의 보행로를 신설해 서울역 주변을 연결하는 도보관광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과 이를 통해주변 개발 계획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부차적으로 서울역 주변의 녹지축을 연결하는 거점으로서 역할도 기대하고 있다. 서울역은 서소문공원, 숭례문, 서울성곽길 등으로 이어지는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으나, 차량 중심 구조로 인해 주변과 연계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지적되어왔다. 이에 고가를 활용해 서울역 주변을 ‘차량 중심’에서 ‘보행 중심’으로 바꾸어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시의 입장이다.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먼저, 서울역 광장에서 고가로 연결되는 상하부를 수직으로 연결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등을 설치하고, 인근 빌딩 3~4층에서 고가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접근로를 연결한다. 또한 퇴계로 접속 부분 고가는 직선거리에 있는 남대문시장, 남산공원으로 향하는 한양도성이 있는 곳까지 길이를 200~300m 연장하며, 중림동 램프는 북부역세권 개발을 위해 철거될 예정이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서소문역사공원 조성 사업과의 연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서울역 고가 주변의 아파트 주민과 생업을 잇는 상인들 사이에는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한 입장에 온도 차가 있다. 거주민들은 주거 환경 개선 및 집값 상승 등에 대한 기대감을 비치는 반면, 봉제 업체와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고가를 공원으로 만들 경우 인구 유입이 줄어들고 배달이나 물품을 들여오는 데 시간이 더 들어 생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이러한 이유로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대체 교량 신설과 교통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시는 이날 발표에서 남대문상인회가 제기해온 상권침체와 교통 체증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다. 교통과 관련해서는 남대문시장을 경유하는 버스 노선을 놓고 광역버스와 공항버스 노선을 퇴계로로 분산시켜 대중교통 접근성을 강화하며, 퇴계로를 서울시티투어버스와 남산순환버스의 코스에 추가할 계획이다. 남대문 인근 도로는 왕복 6차로에서 4차로로 변경해관광버스, 조업차량, 오토바이 주차장 등을 신설하고 보도도 확장한다. 상권 침체에 대한 대책으로는 중림동 봉제 등 토착산업 활성화를 지원하고, 서계동 지구단위 계획구역 보완, 중림동 청소차고지 이전 등의 지원을 강화한다. 또한 서울시와 코레일, 민간 사업자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해 서울역북부역세권 개발 사업과 ‘서울역7017 프로젝트’를 연동하며, 오는 12월까지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해 도시 계획적 차원에서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사업 절차에 대한 논란과 반대 여론이 이는 것을 소통 체계가 미흡했던 것으로 판단, ‘시민위원회’와 ‘고가산책단’ 운영을 통해 시민참여형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고, 이해당사자 그룹(남대문상인회, 주변 건물주)과 전문가, 행정이 함께 고민하며 주기적으로 여론을 수렴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서울시는 오는 4월 24일까지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를 추진하고, 당선작을 바탕으로 하여 2017년 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 Shared Cities ‘2014 유럽 도시 공공 공간 대상’ 수상작 전시
    바르셀로나 현대문화센터Centre de Cultura Contemporàia de Barcelona(CCCB)는 2000년부터 2년마다 ‘유럽 도시 공공 공간 대상European Prize for Urban Public Space’을 개최해 왔다. 유럽 전역에서 재생되었거나 새로 조성된 공공 공간 중에서 잘된 곳을 선별하고, 그 결과를 유럽 곳곳의 주요 미술관 및 박물관에서 공개한다. 건축가와 도시설계가 등의 전문가와 시민이 같은 주제에 대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더 나은 도시 경관을 만들어가려는 취지로 기획된 전시다. 여덟 번째로 열린 ‘2014 유럽 도시 공공 공간 대상’에는 194개 도시에서 총 274개 작품이 제출되었고, 그 중 두 개의 공동 당선작과 6개의 특별상, 그리고 19개의 최종 결선 진출작이 선정되었다. 핀란드건축박물관Museum of Finnish Architecture(MFA)에서는 3월 15일까지 ‘공유 도시Shared Cities’라는 제목으로 수상작들의 완공된 모습은 물론, 이러한 공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새롭게 재구성될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본지에서는 공동 당선작 두 작품과 더불어 특별상 일부를 소개한다. 마르세유 ‘뷰포트’ 재생 사업, 공동 당선작 뷰포트Vieux-Port는 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로서 과거 프로방스Provence 지역의 경제적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뷰포트는 그 입지적 중요성과 아름다운 항구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었고, 보행자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2009년부터 진행된 뷰포트 재생 사업을 통해 차량의 접근이 제한되고, 보행자의 편의를 위한 여러 가지 시설이 도입되었다. 새로 건설된 부양식 부두floating dock는 다양한 수상 활동의 기반이 되고, ‘그랑드 옴브리에레Grande Ombrièe’라 불리는 1,000m2 면적의 직사각형 캐노피는 뷰포트를 찾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유럽의 많은 항구 도시가 경제적 불황 속에 공공 공간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는 가운데, 이 ‘오래된 항구’는 새로운 모습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엘체 ‘브레이디드 벨리’, 공동 당선작 비날로포 강Vinalopo River은 스페인의 엘체Elche 지역을 지나면서 그 폭이 매우 좁아진다. 상류로부터 물이 과도하게 유입되거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홍수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1970년대 축조된 제방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도시를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09년에 이르러, 시는 둑을 허물지 않으면서도 단절된 공간을 연결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공모전을 개최했다. 당선작 ‘브레이디드 벨리Braided Valley’는 문자 그대로 벌어진 계곡을 다시 (교각으로) ‘땋아보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다. 3km의 선형 공원에 건설된 Y자 형태의 다리는 단절되었던 엘체 지역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알타흐 ‘이슬람 장례식장’, 특별상 알타흐Altach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교도가 살고 있는 지역이다. 커뮤니티가 확장됨에 따라 종교 행사는 물론 장례식을 치를 공간마저 부족하게 되었고, 알타흐 시는 새로운 이슬람교식 장례 공간을 조성하게 되었다. 무살라Musallah(이슬람교 예배당)를 비롯한 모든 장례 공간은 메카Mecca를 향하고 있으며, 5개의 묘지와 죽은 자의 몸을 씻기는 세정소도 마련되어 있다. 9년에 걸친 충분한 자료 조사와 의견 수렴을 통해 완성된 이 새로운 종교 시설은 이민자와 같은 소수 집단의 필요를 충족하는 현대적 공공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리폴 ‘라 리라’ 극장 재생 사업, 특별상 스페인 리폴Ripoll 지역 의회는 수년간 버려져 있던 ‘라리라La Lira’ 극장의 새로운 이용 방법을 찾기 위해 지난 2003년 설계공모를 개최했다. 당선된 아란다 피젬 비랄타 아키텍츠RCR Aranda Pigem Vilalta Arquitectes SLP는 ‘라 리라’ 극장의 부식된 벽면을 헐어버리지 않고, 구조체 내부를 보강하는 보존 중심의 설계안을 제시했다. 이 설계안에는 특별한 장식이나 추가되는 공간도 없지만, 오히려 극장이 기존 경관과 쉽게 어우러지도록 계획되었다. 현재 새로운 옷을 입은 극장은 마을의 입구 광장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조성된 마을 시장과 기차역 주변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런던 ‘라인햄 습지’, 특별상 라인햄 습지Rainham Marshes는 런던의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범람원으로서 북쪽의 템스 강Thames River까지 이어진다. 이 지역은 런던이라는 대도시에 인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세 시대의 경관적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며, 철새 도래지와 희귀 식물의 서식지라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보호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시당국은 시민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자연스러운 환경 보호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했고, 지난 2006년부터 왕립조류보호협회Royal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Birds의 협조 하에 벤치와 같은 간단한 시설물부터 조류 관찰대와 같이 적극적인 체험을 유도하는 시설물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하게 되었다. 런던 시민들은 런던 내에서 이와 같은 특별한 자연 환경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라인햄 습지의 가장 큰 장점이라 말하고 있다. 헬싱키 ‘바아나’ 차 없는 거리, 특별상 핀란드어로 철로를 뜻하는 바아나Baana는 도심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길이 1.5km, 깊이 7m의 철로였다. 2008년에 이 철로의 종착점인 랜시사타마Läsisatama항구가 폐쇄되었고, 바아나에도 더 이상 기차가 오가지 않게 되었다. 시당국은 버려진 철로가 도시 경관을 저해한다고 판단하여 이 곳을 덮어버릴 계획을 진행하지만, 그 비용과 공사 완료까지의 시간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시민 공청회에서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자전거 전용 도로와 도심에서 연결되는 보행 슬로프가조성되었다. 일시적인 방책으로 진행되었던 이 계획은 특한 경관의 ‘차 없는 거리’로 전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 양다빈
  • [시네마 스케이프] 와일드 황야에서 길을 묻다
    영화가 시작되고 5분 만에 나는 후회했다. 그녀가 첫 발을 내디디며 내뱉은 첫 대사처럼.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와일드Wild’(2014, 한국에서는 2015년 1월 개봉)는 스물여섯살 먹은 여자 혼자서 자기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옥의 트래킹 코스라불리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하 PCT)을 완주한 실화를 그린 영화다. PCT는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의 긴 등산로로 남쪽의 멕시코와 접한 캘리포니아 주에서 북쪽의 캐나다와 접한 워싱턴 주까지 이어지는 장장 4,285km의 코스다. 사막, 눈덮인 고산 지대, 광활한 평원과 활화산 지대까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자연 환경을 거쳐야 완주할 수 있다. 실재 인물인 셰릴 스트레이드Cheryl Strayed는 평균 150일 정도 걸리는 코스를 94일 만에 완주했다. 해피엔딩을 알고도 영화를 보는 이유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역경을 딛고 결국 목표를 성취해내는 주인공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맛보거나,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대자연의 멋진 경관을 관찰자 시점에서 감상하게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예상을 빗나간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후회가 밀려오더니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동행이 있었다면 소주라도 한잔하면서 가슴속 돌덩이를 부숴야 할 것 같았다. 응어리를 품은 채 며칠이 지났다. 카타르시스는 대체로 관객이 주인공의 결핍에 동의하거나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할 때 충족된다. 장 마크 발레Jean Marc Vallee 감독은 주인공이 겪은 과거를 시간 순서로 설명하지 않고 현재의 여정 중간에 행복했던 기억, 지우고 싶은 순간을 파편적으로 교차시킨다. 다 자란 성인 여자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그토록 스스로를 바닥까지 내몰았으며 무엇이 그녀를 지옥의 트래킹 코스로 오게 했을까. 평균 150일 넘게 걸리는 코스를 94일에 완주할 때 겪을 법한 육체적 한계에 대한 묘사는 그리생생하지 않다. 발톱이 빠져 피투성이가 된 발을 샌들에 의지한 채 다시 걸을 뿐이다. 그녀의 어깨와 등에 난 상처만으로는 배낭의 무게감을 느끼기 어렵다. 오히려 온전히 홀로인 그녀의 외로움과 그녀 내면의 상처가 그녀가 짊어진 짐보다 훨씬 무거워 보인다. 물리적인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여주기보다는 내면의 상처를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관객은 그녀의 쉽지 않은 여정에 꼼짝없이 동참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