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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상암 신사옥 New MBC Sang-am HQ
    세계로 열린 창, 자연의 감성을 담다 디지털미디어시티(이하 DMC) 내에 위치한 MBC 상암 신사옥은 여의도와 일산으로 이원화되어 있던 MBC를 통합하는 새로운 터전이다. 신사옥은 ‘세계로 열린 창’을 모티브로 하여 외부로 열린 형태로 설계되었다. 보행자전용도로Digital Media Street가 MBC 신사옥을 십자형으로 가로지르는데, 외부 공간을 이와 연계하여 계획함으로써 도심형의 복합 엔터테인먼트 센터Urban Entertainment Center로서 역할을 하도록 했다. DMC는 상암 새천년 신도시 개발을 목표로 방송, 영화·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디지털 교육 등 미디어 산업 및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술을 연구 개발하거나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첨단 디지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클러스터다. DMC가 위치한 상암동은 업무 중심 지구이기도 하지만, 한강의 강바람, 하늘공원의 억새, 평화공원의 숲, 매봉산, 봉산, 멀리 북한산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풍성한 자연 요소와 접할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최첨단과 풍부한 자연의 상충된 이미지를 공유하는 MBC 신사옥의 조경은 인간, 곧 사용자 중심으로 계획하고, 최첨단 디지털을 향유하는 인간이 섬세한 자연의 힘(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숲 등)을 발견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고자 했다. 한류 열풍과 문화의 중심인 DMC 방송센터의 랜드마크로서의 상징성을 살리고, 방문객(관광객)을 위한 판매 공간과 야외 공간, 쾌적한 근무 환경 제공을 위한 옥상공간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층위별로 각기 다른 테마를 적용하는 조경 계획을 수립했다. MBC 건물군은 방송 전반의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과 라디오 스튜디오, 데이터 센터를 배치한 ‘경영센터’, 제작 스튜디오, 보도국, 판매 시설, MBC라운지(아트리움)가 있는 ‘방송센터’, 방송 통신 시설 및 다목적 공개홀로 구성된 ‘미디어센터’가 있으며, 야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시카고의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를 연상시키는 독립 판매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건축설계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설계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시공 현대산업개발 발주 MBC 위치 서울시 마포구 성암로 267 대지면적 34,270m2 건축면적 18,448m2 완공 2013 그룹한(대표 박명권)은 1994년 창립 이래, 경제 발전의 피로에 찌든 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 그룹한의 디자인은 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해 왔으며, 여유와 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해왔다. 글쓴이 하태우는 1975년생으로 전남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 그룹한에 입사하여 신도림 대림 한타 아파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조경설계 및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 하태우 / 그룹한
  • 시샤네 파크 Sishane Park
    시샤네 파크는 이스탄불 중심의 공공 공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베이올루Beyoglu 구역의 가장자리와 교통량이 많은 탈라바시 로드Tarlabasi Road의 중간에 위치한 이 공원은 이스탄불의 과거와 미래적 도시 문화를 파노라마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형에 세워졌다. 시샤네파크는 사람들이 도시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대안적 공공 공간으로서 지역민과 방문객 모두를 끌어들이기 위한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공원은 이스탄불의 내항인 할릭Halic―일명 골든혼(Golden Horn)이라고도 함―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경치와 식생에 기반을 두고 설계되었다.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대규모 공공 공간과 나무 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며 지역민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친밀한 공간을 마련했다. 시샤네 파크는 오랫동안 도시의 가장자리이자 구역과 구역 사이에 위치한 공간이었기에 이스탄불의 미래 가치를 담으면서도 정체성이 분명한 공간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었다. 시샤네 파크의 특징으로 크게 세 가지 요소를 꼽을 수 있는데 조망대, 데크, 야외 공간이다. 사람을 즐겁고 편안하게 하는 이러한 요소들은 할릭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풍부한 경관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시샤네 파크의 조형미와 테라스는 어둡고 음습한 지하 주차 공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꾼다. 계절의 변화, 낮과 밤의 차이, 문화 행사, 공원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 덕분에 공원은 친근하면서도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도심의 겉모습에서 드러나는 경직성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도록 도심 외관 디자인에 내러티브를 불어넣을 수 있는 친숙한 소재를 선택했다. 시샤네 파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은 이스탄불의 다양한 대중 및 개인 교통 서비스다. 시샤네 지하철역과 직접 연결되고 버스·돌무스(미니버스) 승차장으로도 이어지는 보행로, 자동차 1,000대 규모의 주차장, 여행자를 위한 기타 교통 서비스 등을 갖추고 있는 시샤네파크는 도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공간이다. Principal Design Architects Murat Şanal, AlexisŞanal Project Architects Begum Öner, Cibeles SanchezLlupart, Orkun Beydagi Project Management KARAKÖY GAYRİMENKULYATIRIMLARI Project Team Merve Akdag Öner, Hazar Arasan,Leo Pollock, Cristina Aleman Serrano Structural Engineer YBT Yapisal Tasarim Hizmetleri Mechanical Engineer/Contractor AKIMMühendislik Electrical Engineer ESAN Mühendislik Traffic HARTEK Harita Teknoloji Infrastructure FEM Insaat Mühendislik Zemin ve Çevre Survey GEOSAN, TESPİT Mühendislik Landscape Designer ARZU NUHOĞLU PEYZAJ TASARIM Graphic Designer Philippa Tamsin Client Istanbul Greater Municipality and KaraköyReal Estate Development PPP. Use Multimodal Transportation Hub, Urban Parkand Underground Car-parking Location Istanbul, Turkey Site Area 5,100m2 Completion 2014 Photographer olivve.com SANALarc는 이스탄불에 위치한 지식 기반의 실무 중심 스튜디오로서 건축 및 도시설계와 관련된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기술, 예술, 사회 생활과 긴밀히 연관된 특정한 장소가 지닌 독특한 개성이 창의적이고 의미심장한 환경을 만들어냄으로써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삶의 질을 높이게 되는 과정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SANALarc는 이스탄불을 위한 가상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비판적이지만 동시에 낙관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도시를 위한 연구 및 건축에 매진하고 있다.
    • SANALarc / SANALarc
  • 브래드포드 시티 파크 Bradford’s City Park
    브래드포드 시티 파크Bradford’ City Park는 2003년 시의회에서 작성한 도심 마스터플랜에 따라 기획되었다. 이 계획은 보다 개방적인 도시 구조를 만들고 새로운 공공 공간을 창출하고자 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 2007년에 이르러 길레스피에스는 아럽Arup, 스터전 노스Sturgeon North, 어톨Atoll, 그리고 파운틴 워크숍The Fountain Workshop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시의회가 제시한 초기 구상을 발전시킨 설계안을 제출했다. 이 설계안을 바탕으로 2009년 후반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되었고, 2012년 3월 브래드포드 시의 랜드마크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공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공원의 중심부에는 19세기에 지어진 브래드포드 시청사 건물이 있으며, 도심지 및 도시 내의 여러 관광지로 연결되는 교통 시설이 갖춰져 있다. 브래드포드 시는 이 공원을 통해 타 도시들과 차별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시의 전반적인 이미지 상승 효과도 거두고 있다. 배후지, 물, 그리고 거울 길레스피에스가 제시한 계획은 배후지, 물, 거울이라는 세 가지 디자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먼저 배후지hinterland는 공원의 전체적인 틀을 잡아주는 개념이다. 공원에 도시와 시골의 모습을 적절히 조화시켜 반영하고자 했다. 브래드포드가 언덕과 시골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도시 외부의 마을 및 부락은 도시 안쪽을 들여다보고, 도시는 도시외곽을 향해 눈길을 돌리는 구조를 갖는다. 공원의 서쪽에 조성된 노포크 가든Norfolk Gardens과 공공 미술 작품의 형태와 배치 방식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물은 브래드포드 시티 파크 설계안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조경 요소다. 완성된 설계안을 보면 2.4헥타르 규모의 역동적이면서도 유연한 공공 공간이 공원의 중심을 차지하는데, 그 공간은 물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진다. 브래드포드 시티 파크는 물을 담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거울이라는 개념을 추가해 주변 경관을 반영한다.이 거울 연못은 도심, 하늘, 날씨를 반사해 보여주는 건축적 요소가 된다. Project Manager and QS EC Harris Lead Consultant & Landscape Architect Gillespies Engineering Design Arup Building Architect Sturgeon North Architects Water Features The Fountain Workshop Lighting Design and Acoustics Consultancy Arup Lighting Columns and Sculpture Wolfgang Butress Interactive Public Art Usman Haque andJonathan Laventhol of Haque Design + Research Main Contractor Birse Civils Pre-Construction Team(as above plus)Public Art Advisors Atoll and Beam QS Davis Langdon Client Bradford Council Location Bradford, Yorkshire, UK Area 24,000m2 Completion 2012. 3. 길레스피에스(Gillespies)는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경 및 도시설계사무소다. 영국 내 여러 주요 공공 공간 설계를 진행했고,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그리고 호주까지 그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마스터플랜부터 조경 및 도시계획, 교육 시설, 의료 시설 등 다양한 스케일과 유형의 설계를 한다. 모든 디자인은 미래의 새로운 유산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신념하에 지역 사회의 경제 및 문화적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 Gillespies / Gillespies
  •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사우스 파크 플레저 가든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South Park Pleasure Gardens
    2012 런던 올림픽 게임 부지에 조성된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사우스 파크는 21세기의 플레저 가든Pleasure Garden으로 계획되었다.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파크의 북쪽 절반이 방대한 녹지, 식재된 언덕과 언덕 위 평지, 자연형 산책로와 습지로 계획된 반면, 남쪽 절반(사우스 파크)은 다양한 이벤트, 창의적인 프로그래밍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명소들로 계획되었다. 그 결과 사우스 파크는 복스홀Vauxhall과 매릴번Marylebone에서부터 랜레이Ranleigh 그리고 크레몬Cremorne으로 이어지는 런던 고유의 플레저 가든이라는 훌륭한 전통을 바탕으로 지어지게 되었다.1 한때 산업적인 발명과 혁신의 중심지였던 공원 부지는 먼저 2012년 런던 올림픽 게임의 중심부로 거듭났고, 최근 공원이자 도시의 유산으로 탈바꿈하였다. 공원의 스포츠, 문화, 교육, 환경은 새롭게 들어선 주변의 커뮤니티와 연결점을 제시했다. 올림픽 게임 당시 중앙 광장으로 기능하던 넓은 포장 부지는, 오늘날 강과 운하그리고 멋진 건축물들―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수영 경기장,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전망 타워인 아르셀로미탈 오빗(ArcelorMittal Orbit) 등―로 둘러싸인 22헥타르(22만m2) 이상의 공원이 되었다. 경관의 네 가지 틀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의 중심지인 사우스 파크는 다음의 네 가지 경관 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부지를 체계적으로 조직할 뿐 아니라, 매우 친밀하고 사교적인 공간인 일련의 ‘플레저가든’을 형성하는 틀로 작용한다. 원호형 산책로Arc Promenade는 사우스 파크의 새로운 중추이자 주요한 사교적 장치이다. 이 산책로는 전체공원의 남북을 대담하게 가로지르며, 공원의 주요 공간들과 명소들을 연결한다. 한가로이 거닐 수 있는 널찍한 산책로인 원호는 공원의 방문객들을 강력하게 유도하며 시각적으로 활짝 열린 시야를 제공한다. 정형적인 형태의 커다란 나무들이 열식된 산책로는 다양한 범위의 사교를 위한 가구를 제공하는 한편, 여러 가지종류의 파빌리온, 키오스크, 그리고 선형 마켓, 축제, 장터 등 이벤트 공간의 장이 된다. 식재 리본Planting Ribbon은 5m 너비의 어린 나무, 관목, 그리고 키 큰 풀섶과 다년생 초화류 등으로 구성된 식재 띠이다. 이는 원호형 산책로의 서쪽 경계를 극적인 형태로 구불구불 따라 올라가며, 사교 모임과 이벤트 프로그램을 위한 ‘외실rooms’과 공간을 효과적으로 구획한다.2 이들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는 식재 리본 사이의 열린 틈은 넉넉한 통행 공간과 부지 지하에 매설된 인프라스트럭처의 위치 등을 고려하여 세심하게 배치되었다. 이벤트 외실Event Rooms은 공연, 공공 예술, 이벤트 또는 볼거리 등을 제공하기 위해 가변적이고 융통성 있게 구성된 공간이다. 이벤트 외실들은 발주처에서 요구한 다양한 규모의 이벤트―대규모 콘서트와 축제부터 작은 그룹 모임, 전시, 공연 또는 연주회 등―를 수용할 수 있도록 매우 다양한 크기로 구성되었다. Urban Design & Landscape Architecture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Prime Contractor Skanska Landscape Contractor Willerby Landscape Landscape Architect of Record LDA Design Engineering Services Arup Cost Estimating Deloitte Water Feature Design The Fountain Workshop Event Consultant Groundbreaking Architecture Make Architects Planting Design Piet Oudolf Playground Consultant Play Link Lighting Design Speirs+Major ART/Wayfinding Tomato Irrigation Design Waterwise Solutions Client London Legacy Development Company Location London, United Kingdom Area 22ha Completion 2014. 4. Photographs Courtesy of London Legacy DevelopmentCorporation, RobinForster(Courtesy of LDA Design), Courtesyof Make Architects, Piet Oudolf,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는 뉴욕에 기반을 둔 도시설계와 조경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오피스다. 대규모 도시설계 프로젝트나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사이트부터 작지만 섬세한 디테일을 요구하는 디자인까지 다양한 규모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 뉴욕 시의 하이라인과 프레시 킬스, 라스베이거스의 시티 센터, 중국 칭하이 지역의 도시설계 마스터플랜, 시애틀 워터프론트의 마스터플랜, 필라델피아의 레이스 스트리트 피어, 산타 모니카의 통바 파크, 홍콩의 침사추이 워터프론트 등이 있다. 모든 설계 실천에 있어서 사람과 자연의 생태를 연구하고,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공공 영역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 [칼럼] 포스트모던 경관론과 내외이원론
    포스트모던 경관론 프랑스가 경관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조경에 접근하며 개념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물론 조경에 대한 학문적 접근의 토대는 그 이전에 마련되어 있었던 상태였다. 17세기의 조경가 브와소(Jacqures Boyceau)의 『정원기법서(Traite de jardinage)』에서 알 수 있듯이, 전문적인 조경 서적이 출간되고 조경 작업의 텍스트로 활용되는 전통은 이미 수세기에 걸쳐 프랑스 조경계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여러 세기 동안 항상 기본적인 텍스트가 존재했고 조경에 대해 체계적이고 미학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은연중에 정원사나 조경가 사이에서 당연시되고 있었다. 조경은 원예와 달리 녹색 공간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작업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조경 이론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잘 보여주며, 무엇보다도 르네상스 양식이 프랑스에 전파되며 프랑스 고전주의 양식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이 시대의 조경이 단순한 원예 작업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역사적인 기록들에 비추어보더라도 정원이란 용어에 항상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조경 작업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고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장기간 축적되며 정원의 협소한 의미는 희박해지고 좀 더 광범위한 경관의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었던 것이고, 마침내 20세기에 들어 정원을 생각할 때 경관에서부터 생각하는 폭넓은 사고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20세기에 일어난 ‘정원에서 경관으로의’ 개념 전이를 보면 모더니즘에서 포스터모더니즘으로 진행한 시류를 읽을 수 있다. 정원에서 경관으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포레스티에(J. C. N. Forestier)는 1908년 『대도시와 공원의 시스템』이란 책을 발표했고, 몇 년 후인 1913년 앙드레아 베라(André Vera)는 『새로운 정원』을 출간했다. 여기서 말하는 도시의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개혁 정부가 들어선 후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같은 이상적 도시에 영감을 받은 것이었고 공원의 개념에도 아테네 학당과 같은 철학자들의 사유 공간 또는 학문과 문화의 전당으로서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18세기 말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영국 풍경화식 정원양식에 따라 고전주의 조경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낭만주의 조경이 파리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공원은 19세기에 일반화된 문화 현상이자 20세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대중문화의 장으로서 중요한 사회 변화의 한 획이되었다. 이 시기의 공원 문화는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를 모델로 신전이나 폐허, 그리스 신화등을 소재로 가져왔고 그런 점에서 유럽의 고대문명에서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 19세기 모더니즘과 맥락을 같이 하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 풍경화식 정원과 19세기 프랑스공원의 큰 차이점은 포레스티에의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공원을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과학적 태도, 즉 고대 정원과 고전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과는 조금 다른 태도였다. 이런 신학문적 태도는 20세기 이후 포스트모던 경관론을 전개하게 되는 프랑스 조경의 특징이 되기도 하는데, 동시에 또한 19세기의 전체적인 유럽 사회 분위기에 기인하기도 하는 것이다. 19세기는 무엇보다도 과학이 예술을 앞서나가며 예술을 선도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예술의 신경향들, 즉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오르피즘, 표현주의, 기하하적 추상주의 등의 전개가 과학에 의해 새롭게 눈을 뜬 예술의 경향들이다. 포레스티에는 그 동안 발전되어 온 공원과 도시를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시스템의 체계를 정리하며 조경학의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조경학은 따라서 정원을 기반으로 하는 모더니즘에서 시스템과 경관을 기반으로 하는 포스터모더니즘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여기서 경관은 새로 등장하는 공원문화를 과학적으로 정의하면서 발전한 추상적 관념이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공원과는 다른 것이었다. 대안적 경관론: 포스트모던 경관과 한국식 내외이원론內外二元論 이처럼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 조경학은 그 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조경에 대한 욕구로 발전될 수밖에 없었고, 앙드레아 베라의 ‘새로운 정원’을 비롯해 1925년 가브리엘 게브레키앙(Gabriel Guevrekian)의 유명한 ‘물과 빛의 정원’과 ‘빌라 노아이유 정원’ 등이 결과적으로 빛을 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문화적 맥락이었다. 새로운 시도는 계속 나타났다. 포레스티에는 설계 노트를 책으로 묶어 내며 새로운 정원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고, 아쉴 뒤센느(Achille Duchêne)는 『미래의 정원』을 출간하였다. 도시화와 함께 찾아온 사회 변화는 이 시대에 이미 환경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1930년 통과된 경관 지구 보존법이 그 예이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옛 유산이 훼손되고 특히 과거로부터 보존되어 오던 경관이 파괴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근저에는 당시 풍경화가들의 역할이 컸고 또한 문화가 사회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경관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경관에 대해 토론하고 경관을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개발을 저지하고 경관을 보존한다는 사고는 경관에 대한 이런 인문학적 의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포스트모던 경관론이란 이러한 모든 새로운 인식의 체계를 포함한다. 정원은 모던의 갑갑한, 어쩌면 구시대의 먼지가 가득한 개념이지만, 경관은 포스트모던의 시원하게 열린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닫힌 공간에 기반을 둔 중국의 원림이나 일본의 정원보다는 외원과 내원의 소통을 통해 계속 변화해가는 경관 개념, 즉 내외이원론內外二元論으로 접근했던 한국 정원이 훨씬 더 유럽의 포스트모던적 경관 인식 체계와 가깝다. 한국정원은 21세기 이후 등장하는 경관의 신개념들을 이미 포함했던 매우 추상적인 정원이다. 전통적인 시경이나 관축론에서부터 포스트모던 경관론의 추상성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안적 경관이 될 수 있다. 박정욱은 파리 소르본느 4대학에서 고고미술사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술평론으로 고암논문대상을 받은 후 이응노 미술관 소장으로 일하며 ‘세브르도자기’전, ‘이응노 롤랑 바르트’전 등을 기획했다. 프랑스 국립사회고등과학원(EHESS, Paris)의 자크 레나르 교수, 장 폴 아고스티, 지아니 부라토니, 장 샤를 피조 등과 함께 Ars & Locus 연구원을 창설하여 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세트 출판그룹, 쿠베르탱 재단, 파리한국문화원, 뉴욕 모마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파리 루브르 미술관, 파리 시 시테 데 쟈르 등과 함께 전시 기획과 도시설계, 아트 프로젝트 등을 유럽 및 미국, 한국 등지에서 수행해 왔다.
  • [에디토리얼] 아름다운 잡지
    2015년 편집 계획서의 표지에 ‘아름다운 잡지’라는 여섯 글자를 크게 써놓았다. ‘아름다운 잡지’는 『환경과조경』의 비전인 ‘조경 문화의 발전소’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할 지향점이다. 내용과 형식이 적절하게 호응하는, 텍스트의 메시지와 이미지의 효과가 하나로 움직이는, 디자인이 콘텐츠를 지배하지 않고 콘텐츠의 본질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잡지’에 한걸음씩 다가서기 위해 늘 연구하고 실험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아울러 올해에는 조경 담론과 사회적이슈의 생생한 교점을 찾고, 도시설계의 이론적·실천적 쟁점을 포괄하며, 신진 조경가와 필자를 발굴하는 일에 지면을 아끼지 않을 계획임을 알려드린다. 엄동설한은 게으른 발걸음을 모처럼 도서관으로 향하게 한다. 잡지 편집에 참여한 이후로는 도서관에 가면 무조건 한 잡지의 십 년 치 과월호를 훑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근사하게 말하자면 사례 연구다. 디자인, 라이프스타일, 패션, 여행, 시사, 교양에 이르기까지 한 시절을 풍미했던 전문지와 대중지의 옛 지면을 다시 읽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이번 겨울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 책장에서 구경했던 기억이 어렴풋한 『뿌리깊은나무』를 다시 만났다. 1976년 3월 고 한창기 선생이 창간했고 1980년 8월호를 마지막으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된 『뿌리깊은나무』는 한글 전용주의와 가로쓰기 편집의 시초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토박이 문화’를 발굴하고 ‘민중’을 동시대 문화의 전면에 올려놓음으로써 한국(인)의 정체성에 질문을 제기한 잡지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잡지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감동을 주는 것은 지향하는 바를 계몽이나 설교의 방식으로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뿌리깊은나무』는 도덕적 우월감을 앞세우는 대신 세련된 포장으로 지향하는 알맹이의 값어치를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편집’과 ‘디자인’이 지니는 힘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보여준, 아름다운 잡지의 한 모델이라 할 만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강준만은 “한국 잡지사는 뿌리깊은나무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고 평가하기까지 한다. “편집은 … 원고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눈으로 미리 읽어 저자나 필자나 역자의 눈에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안 보였던 원고의 흠을 그들과 의논하여 가려내서, 독자가 참된 뜻에서 ‘편집된’ 책을 읽도록 거드는 일이어야 합니다”(창간 1주년 발행인의 글)라는 구절에서 여실히 나타나듯, 『뿌리깊은나무』는 편집의 기능과 편집자의 역할에 대한 신념을 지닌 잡지였다. 당대의 석학이나 문인의 글이더라도 철저하게 손질했다고 한다. 말처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뿌리깊은나무』는 또한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에서도 전설로 남아 있다. 감각적인 스타일만을 추구하는 잡지에 익숙한 요즘 세대가 보면 이 잡지가 아무것도 디자인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너무나 단순하고 정연하여 건조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뿌리깊은나무』는 논리적인 시각적 원칙으로 책 전체의 체계를 세운, 즉 아트 디렉션을 처음 시도한 ‘아름다운 잡지’다. 수작업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활판과 사진 식자의 허술한 자간을 해결하기 위해 인화지 위의 글자를 칼로 한자씩 도려내고 조정해서 다시 붙이는 방법으로 가독성을 높인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마우스만으로 모든 디자인 작업이 쉽게 조정되는 오늘날에도 『뿌리깊은나무』처럼 유려한 시각적 질서를 갖춘 잡지를 찾기 쉽지 않다. ‘아름다운 잡지’라는 『환경과조경』의 화두는 보기예쁘거나 화려한 스타일에 대한 갈망이 아니다. 콘텐츠를 적절한 틀에 담아낼 수 있을 때 그 콘텐츠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으며 그러할 때 이 작은 잡지가 조경의 문화적 성장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이제는 도서관에 파묻힌 오래된 미래 『뿌리깊은나무』의 창간사 끝 부분을 옮겨 적는다. “잡지의 구실은 작으나마 창조이겠습니다. 창조는 역사의 물줄기에 휘말려들지 않고 도랑을 파기도하고 보를 막기도 해서 그 흐름에 조금이라도 새로움을 주는 일이겠습니다. … 새로움의 가지를 뻗는 잡지가 되고자 합니다.” 새해부터는 에디토리얼을 한 달씩 번갈아가며 쓰자고 남기준 편집장과 두 달째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지고 말았다. 민망하게도, 또 과분하게도, 1년은 더 잡지 첫 쪽에서 독자 여러분을 만나야 할 운명이다. 이 신년호가 과연 아름다운지, 마지막까지 망설여진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특별한 편집, 특집
    이 글을 쓰는 시점은 드디어 마감 날이다. 그러나 이미 두 시간 전에 자정이 지났건만 마지막 원고가 도착하지 않았다.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다. 마지막 원고는 바로 이번 호에서 특집으로 다루는 토포텍 1의 수장인 마르틴 라인-카노와의 인터뷰 원고다. 해외 출장이 잦은 라인-카노와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기 쉽지 않았지만, 생생한 지면을 위해 인터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평소에 비해 상당히 늦은 시점에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아마 지금쯤 멀리 베를린에서 인터뷰어인 고정희 대표가 원고의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늘 새로운 주제와 형식을 고민해야 하는 ‘특집’에 대한 부담은 만만치 않다. 독자들이 원하는 주제와 우리가 독자들에게 환기하고 싶은 내용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고민스러운 일이다(대다수의 독자들은 과묵(!)하기 때문에 그 숨겨진 요구를 파악하는 것은 늘 어렵다). 또한 시의성 있는 주제를 선정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러한 줄다리기 속에서 매달 특집이 탄생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호에 실린 ‘하이라인의 교훈’은 예정에 없었던 특집이다. 편집부는 하이라인 3구역의 공식 오픈 일정을 주시하며 기사화 시점을 가늠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특집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작품소개에서 특집으로 급선회했다. 다행히 하이라인의 설계에 참여했던 윤희연 교수와 프롬나드 플랑테를 읽어준 황주영 박사가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원고 청탁에 응해주어 깊이 있는 들여다보기가 가능했다. 특히 두 명의 핵심 인사인 제임스 코너와 조슈아 데이비드의 인터뷰는 최이규 뉴욕지사장의 발 빠른 섭외로 가능했던 지면이다. 물론 그 사이에서 수많은 일정을 조율한 JCFO의 조경가 안동혁 씨의 노고는, 전 세계에 동일한 보도자료가 배포되는 상황에서 『환경과조경』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이번 토포텍 1 특집의 경우는 그 준비 기간이 꽤 긴 편에 속한다. 지난 10월호 work & criticism에 ‘포티피케이션 에렌브라이트슈타인’을 소개한 뒤, 토포텍1은 우리에게 작품집 출간을 제의해왔다. 편집부는 『환경과조경』 해외판 론칭을 계획 중이었기 때문에 콘텐츠의 중복이 우려되기도 했고, 국내 조경가들에게 토포텍 작업의 규모와 성격이 단행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만큼 흥미로운지 확신하기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덴마크 파빌리온에서 수퍼킬렌이 소개된 뒤, 국내에서도 수퍼킬렌과 토포텍 1에 대한 관심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던 차였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편집부는 토포텍 1에게 작품집 대신 특집을 제안했다. 2015년을 준비하며 편집부는 한 조경가의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특집을 연간 계획 속에 넣어 두었다. 가급적 새롭게 부상하는 오피스를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국내외 조경가를 두루 조명할 요량이었다. 마침 그 대상자와 게재 시점을 고민하던 중이었으므로, 반쯤은 필연적으로 또 반쯤은 우연히 조경가 특집의 첫 번째 작가로 토포텍 1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토포텍 1과의 만남은 2013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함부르크 국제정원박람회장에서 아쿠아 사커를, 코펜하겐에서 수퍼킬렌을 답사했다. 고백하건데 아쿠아 사커는 박람회장에서 일별하는 수준이었다. 넓은 박람회장을 빠르게 둘러보아야 했던 촉박한 일정 탓도 있었지만 수많은 정원들 사이에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 정원 정도로 보고 지나쳤던 것 같다. 수퍼킬렌의 첫인상은, 여러가지 이질적인 오브제들이 흩어져 있는 강렬하지만 바랜 듯한 붉은색 공원(아마도 처음 도착한 곳이 레드 스퀘어였기 때문일 것이다)이었다. 그 전에 둘러보았던 그림같이 아름답게 가꿔놓은 유럽의 여러 공원과 달리 수목이 별로 보이지 않는, 어딘지 모르게 나른하고 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런 인상이 남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수퍼킬렌의 다문화적인 맥락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토포텍 1의 작품이 정원의 전통과 다원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들의 작품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 조경가 집단이 보여주는 작업의 진화와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펴보고, 또 그 개념에 몰입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니, 바로 이 지점에 종이 매체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공고해졌다.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종이 매체는 그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게 된다. 결국 어떤 정보를 선택하고, 어떻게 가공(편집)하는가에 따라 잡지의 역할이 달라질 것이다. 이번 특집이, 그간 지면의 한계 때문에 부족함을 느꼈을 독자들에게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특별한 편집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토포텍 1이 도발적인 작업을 하면서도 그 모티브를 설득력 있게, 혹은 논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드문 오피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거는 기대이기도 하다. 이번 특집은 양다빈 기자가 토포텍 1과의 연락을 담당했다. 토포텍 1의 출판 담당자인 이폴리타는 마감이 끝나갈 무렵, 이번 호가 출간되고 나면 다니엘(양다빈 기자의 영어 이름)이 그리울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일만 100통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폴리타의 그 메일의 의미가 양 기자의 집요한 확인과 질문, 끈질긴 추가 요청에 대한 귀여운 항의인지, 아니면 그간 진짜 정이 들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 [편집자의 서재]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유키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게 된다. 불황기에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격이다. 그런데 아뿔싸! 임업이란다. 가무사리,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산골짜기로 가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녹색 고용 제도에 가입되어 임업 연수생 신분이 된 탓이다. 이는 모두 선생님과 부모님의 합작품이다. 유키는 그 길로 쫓겨나듯 짐을 챙겨 기차에 올랐고, 도시 청년의 산골 적응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은 최근 개봉한 영화 ‘우드잡’(2015)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에서는 전단지 모델로 나온 여자(나오키)에게 반해 임업 연수생에 자원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어떠한 동기도 없이 강제로 떠밀려 시골로 가게 된다. 유키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문명화 된 첨단의 도시에서 자란 청년에게 휴대전화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시골의 숲은 감옥과 다름없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숲은 온갖 위험 요소로 가득 차있다. 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꽃가루 바람과 싸워야 하고, 눈에 보일 정도로 커다란 이吸蝨目와 거머리까지 그를 괴롭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억지로 끌려온 마당에 아무런 이유 없이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영화에서는 탈출 와중에 나오키를 만나면서 가무사리에 남을 결정적 동기가 생기지만, 원작에서는 숲 그리고 자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스스로 가무사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유키가 자연과 소통하는 과정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다루는 점은 동일하지만, 영화는 몇몇 장면을 통해 이를 단편적으로 나열된 컷으로 표현하는 데 그친다. 반면 원작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점층적으로 변화하는 유키의 감정을 세밀하게 담아낸다. 물론 영화는 소리와 시각이 중첩된 공감각적 효과로 관객에게 가무사리 숲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해주지만, 유키가 자연과 교감하는 지점에 대한 설득력은 부족한 감이 있다. “눈에 부러지는 나무도 살아 있는 존재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정확히, 신속하게 눈 털기를 하는 사람도 살아 있는 존재다. 나무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살아서 움직인다. 그런 나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바로 이 일이다. 나는 가무사리에 온 지 1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 사실을 깨달았다.” 유키가 자연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중도中道를 깨닫는 대목이다. 나무와 가까이 하며 ‘친자연적’임을 표방하는 임업이 사실 가장 직접적으로 나무를 해한다. 나무를 베고 가지를 치고 땅에서 뽑아낸다. 모순이 느껴졌다. 이에 대한 해답은 책을 읽어 나가며 가무사리 사람들의 태도와 생활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아직 가무사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유키는 요키(가무사리 마을의 토박이로 유키의 숲 생활을 돕고 산 일을 가르친다)가 넓은 잎딱총나무의 밑동을 도끼로 잘라내자 “불쌍하다”고 말했다. “불쌍하다고? 이 경사면에서 자라는 잡목을 전부 베어내지 않으면 땅 고르기를 못해. 땅 고르기를 못하면 묘목도 심을 수 없고. 그러면 우리는 일거리가 없어서 굶겠지.” 이어 사장과 또 다른 팀원인 이와오 아저씨가 차례로 답한다. “모두베기를 끝낸 곳에 잡목이 무성해지면 나무도 자라지 않아. 오히려 꾸준한 식목 작업이 산의 환경을 유지시켜주지.” “일본의 삼림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드물어. 나무를 베고, 나무를 사용하고, 나무를 심어서 산을 유지하는 거야. 중요한 일이지. 그게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기도 하고.” 가무사리의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만 나무를 벌채하고 그 자리에는 같은 종의 묘목을 심는다. 그리고 산을 세심하게 관리하며 경건함을 유지한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나무에게 가하는 1차적 행위보다 그 정도와 마음가짐, 숲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느긋한 자세에서 자연과 관계 맺는 사람의 위치가 어디쯤이어야 할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 묘사에 능숙한 작가는 이번에 그 재능을 풍경 묘사에 쏟았다. 가무사리의 풍경과 자연의 현상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묘사된 장면을 통해 독자는 유키가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과 자연의 매력을 느끼는 지점을 공유하고 장소에 대한 애착이 생겨나는 걸 공감하게 된다. 교감의 과정에서 유키는 숲의 초자연적 존재 들과의 영적 교류를 경험한다. 가무사리 사람들은 산을 신성하게 여기는데, 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산신에게 기대고 노하지 않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이다. 가무사리 사람들의 조언을 그저 시골 사람들의 실없는 소리로 여기던 유키는 여러 번 산의 영靈들과 조우한다. 이때 작가는 일상에서 착각으로 여기는 것들을 영적 존재로 상정하지만 이를 판타지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자연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인지되는 현상으로 그려 가무사리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살려내는 데 십분 활용한다. 도망칠 궁리만 하던 유키가 자연의 황홀경에 빠져 “아, 죽을 때까지 여기에 있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다. 이 마음은 단계적으로 “갈수록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슴이 벅찼다”, “자부심이 충만했다”로 진화해 결국 가무사리 마을의 주민으로 남게 된다. 나는 뉴에이지를 즐겨 듣는다. 대부분 자연을 주제로 하고 때로는 음악에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담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귀가 심심하면 곁들여서 들을만하다. 가무사리의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나아나아’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천천히 하자’, ‘마음을 가라앉혀’ 정도의 뉘앙스를 가진다. 자연의 소리와 함께 이 책을 펼치면 절로 “나아나아”를 읊조리게 된다.
  • 미래의 조경가 키우는 어린이 조경학교 초등학생 대상으로 조경의 미적·생태적·사회적 가치 교육
    “여기 앞에 있는 건 화단이고요, 정원에 있는 건 파라솔이랑 큰 벚나무고요, 또 이 옥상에 있는 건 작은 벚나무인데 여기는 하늘 공원이에요.” 작품 설명을 부탁하자 정우진 군(숭덕초 4학년)은 부끄러운 듯 망설이는 가 싶더니 이내 또박또박 설명을 이어갔다. 도로변을 따라 지점토와 인조 꽃술로 울타리를 만들고 정원에는 철사를 구부려 만든 키 큰 벚나무로 포인트를 주었다. 칵테일 장식용 파라솔로 휴식 공간도 만들었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건물 옥상에는 한지로 잔디를 만들어 깔고 작은 벚나무를 심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옥상녹화’다. 과장을 좀 보태서 전문가 뺨치는 모델링 실력이다. 지난해 12월 30일 문을 연 ‘어린이 조경학교’가 4주간의 과정을 마치고 1월 24일 수료식을 가졌다. 서울시와 환경조경나눔연구원(원장 임승빈)이 공동 주최한 어린이 조경학교는 아이들에게 조경의 미적·생태적·사회적 가치를 가르치고 미래의 조경가를 육성하기 위해 기획됐다. 어린이 조경학교의 교장을 맡은 주신하 교수(서울여자대학교)를 필두로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송영탁 상무이사(가이아글로벌)가 강의를 맡았으며, 서울시 소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4, 5, 6학년 학생 30명이 참가했다. 프로그램은 보라매공원, 꽃과 나무, 놀이터, 공원 조성 과정 등에 대한 강의와 실습으로 구성되었다. 서울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대학생 및 대학원생이 보조 교사로 자원해 아이들 가까이에서 지도했다. 지난 1월 6일, 꽃과 나무에 대해 배우는 두 번째 수업을 방문했다. 이날 강의를 맡은 정욱주 교수는 계절별로 피는 꽃의 종류와 나무의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알고 있는 꽃 이름을 물어보자 개나리, 장미, 산수유, 모란 등 대답이 끝없이 이어졌다. 정욱주 교수는 “단언하건데 우리 학교 학생들보다 낫다”며 혀를내둘렀다. 이어진 실습 시간에도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스스로 재료를 찾고 원하는 형태로 정원을 만들어 나갔다. 스티로폼으로 건물을 만들고 색종이, 수수깡으로 나무를 만들었다. 건물 꼭대기에서 정원까지 미끄럼틀로 연결된 아이다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부터 피뢰침이 탑처럼 우뚝 솟은 전위적인 작품까지 아이들의 손에서 다양한 정원이 탄생했다. 두 시간의 실습 시간이 짧다며 “더 잘 만들 수 있는데 아쉽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어린이 조경학교는 윤세형 과장(서울시 공원여가과)이 독일에서 공원녹지과 행정 인턴으로 일할 당시 경험했던 독일의 공원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획됐다. 당시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를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어른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놀이터를 만들어 깜짝 놀랐다고. 그에게 어린이 조경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을 묻자 “첫 번째 시간에는 아이들이 조금 쭈뼛쭈뼛 했는데 오늘은 아주 적극적이다. 마지막 수업 즈음에는 아이들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재미있게 임할지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조경을 배우고 실습하면서 재미있게 놀 수 있고 아이들의 창의력도 기를 수 있다는 걸 학부모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며 조경의 학습적 효과에 대해서 강조했다. 어린이 조경학교의 교장을 맡은 주신하 교수는 “작년에 시민조경아카데미에서도 강의를 했는데 주로 중장년층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엔 좀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경을 알리고 싶었다”며 “앞으로는 중고등학생을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조한결
  • 찬란한 유산, 그 두 개의 시간 로마제국의 도시 문화와 폼페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4월 5일까지
    어릴 적 로마군에 의해 가족을 잃은 마일로는 노예 검투사다. 대규모의 검투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폼페이에 방문한 마일로는 영주의 딸 카시아와 사랑에 빠진다. 마일로는 경기에 참여해 사투를 벌이는데 경기가 절정에 달한 그때, 베수비우스 화산이 터지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된다. 마일로와 카시아는 살아남기 위해 도시를 벗어나려 사력을 다하지만 역부족임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기로 결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를 나눈다. 그 순간 고온의 화산재가 도시를 덮어버린다. 79년 8월 24일 화산 폭발로 폼페이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2014)’은 폼페이에서 발굴된 실제 인간 화석을 모티브로 삼았다. 폼페이는 1592년 한 농부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서로를 끌어안은 연인의 화석을 비롯해 유독가스와 화산재를 피해 망토로 입을 가린 남자,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감싼 채 쓰러져 숨을 거둔 여자, 정원으로 피신한 상태에서 죽은 사람들이 화석으로 출토되었다.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 안에서 발굴된 희생자는 총 1,047명이다. 그중 103건이 캐스트로 제작되었고 일부는 시체의 체적과 형태, 자세가 잘 보존돼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에서 열리는 기획특별전 ‘로마제국의 도시 문화와 폼페이’에서 그 현장을 만나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폼페이에서 출토된 조각품, 장신구, 벽화, 캐스트 등 298건의 다양한 유물을 선보여 고대 로마제국의 화려한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폼페이 유적을 조명한다.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도시다. 사르누스 강 하구에 위치한 항구 도시 폼페이는 로마인들에게 각광받는 휴양지이자 상업지로 번성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발굴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로마 문명은 서양 문명의 본류로 예술과 철학, 종교, 과학,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현대 문명의 원형을 볼 수 있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 고대 사람들의 생활문화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데, 폼페이 유적은 화산 폭발로 당시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정지된 상태로묻혀 있어 고고학적 가치가 높다. 당시로서는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후대에는 귀중한 사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폼페이 회화에서 자연 풍경은 모든 그림의 배경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화와 도시 풍경, 신전, 항구와 바닷가 저택, 목가적인 장면 등을 그렸다. 전시품 중에는 집 내부의 벽을 장식하던 벽화들이 대거 전시되었는데,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정원 벽화는 단연 압권이다. 정원 벽화는 4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실제 건물 벽면을 장식하던 크기 그대로 옮겨와 전시장 높이를 넘어서는 웅장함을 자랑한다. 때문에 3면은 벽면에 그대로 재현되었고, 반원형의 상단부 1면은 다른 벽면에 전시되었다. 정원 속에 심긴 꽃과 나무가 수종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물 수반과 가면 등의 점경물, 새가 노니는 모습을 통해 당시의 정원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정원 벽화가 전시된 섹션은 직사각형으로 공간이 구획되어 있는 데, 둘레를 실제 기둥과 같은 건축적 양식으로 재현해 놓아 전시물을 로마인들이 감상하던 느낌대로 간접 체험하는 효과가 있다. 폼페이에서는 실제로 정원 그림에 건축 구조를 도입해 실내 공간에서 외부로 개방되는 구조를 통해 실제 자연을 보는 듯한 효과를 연출했다. 당시에는 정원을 가꾸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이는 지속적으로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건축물의 경계 없이 벽 전체를 마치 정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화려함을 장식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밖에 도시 곳곳에 세워졌던 신들의 조각상과 화석으로 남은 젊은 여인의 팔을 두르고 있던 금으로 만들어진 팔찌와 장신구 등이 호화로웠던 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상점에서 구워져 판매되었던 빵이 그대로 굳어진 화석, 와인을 담았던 항아리, 저울과 추등은 활발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던 당시의 역동적인 시대상을 전달해 준다. 아름다운 예술과 풍요로 가득 찼던 고대 로마제국의 도시 그리고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비극의 도시. 폼페이는 극과 극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폼페이 전시회는 1800년 전의 찬란했던 도시의 유산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처참했던 화산 폭발의 현장을 증언한다. 대비되는 두 개의 상황은 영광의 시간보다 자연 재해로 한 순간에 몰락의 길을 걸은 참사의 시간을 더욱 강렬하게 인상에 각인시킨다. 전시는 전반적으로 화려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지만, 마지막 섹션의 ‘최후의 날’을 맞이하면 숙연함이 더 짙게 남는다. 이곳을 찾은 날,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전시관을 점령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도슨트 설명을 듣기 위해 어머니 몇 분이 인솔해 오신 모양이다. 설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섹션을 옮겨 다니는 모습이 마치 자기들이 로마군이라도 된 냥 전투적이다. 어려운 질문도 호기롭게 받아낸다. 여유롭게 감상하기에는 짜증이 일기도 하지만, 일견 대견하다. 조심스레 대열에 합류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종일관 북적북적하더니 폼페이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섹션에서는 분위기가 잠잠해졌다. 두 개의 시간을 공유한 아이들은 전시관을 나서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