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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티피케이션 에렌브라이트슈타인 Fortification Ehrenbreitstein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요새Ehrenbreitstein Fortress는 라인Rhine 강과 모셀Mosel 강의 합류부에 위치해 있다. 이 기념비적인 구조물은 두 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고원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이곳이 19세기 초에 독일이 프랑스의 침공으로부터 라인 강 유역을 지켜내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라 한다. 포티피케이션에렌브라이트슈타인Fortification Ehrenbreitstein은 2005년에 열린 설계공모 당선작으로 기존 공원을 개선하고, 더 많은 주차 공간을 만드는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한다. 디자인 콘셉트는 역사적인 고원 요새fortress plateau를 극적인 공간으로 재구성하여 공원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고 역사적 경험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북쪽 진입부의 구조를 변화시키면서 방문자 센터가 만들어졌고, 변화된 공원과 주변 지역 간의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새로운 공간적 가치를 창출했다. 고원의 가장 자리에 위치한 차량 출입구와 주차장이 수벽wall of trees에 의해 차폐되어 쾌적한 보행 환경을 유도하며, 요새의 주출입구와 인접한 자갈로 덮여있는 공간은 다목적 야외 활동을 위해 활용된다. 이렇게 재조성된 공간은 기존에 식재되어 있던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고 요새로의 시야 또한 방해하지 않는다. 요새가 건축되었을 당시, 요새의 방벽에서의 시야를 차단했던 지형은 모두 평평하게 다져져 지금과 같은 형태의 고원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과거의 인공적 지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전략을 통해 구조물의 북쪽으로 펼쳐진 넓은 평원이 역사적 기념비성과 요새의 실루엣을 담아낼 수 있도록 했다. 곳곳에 배치된 폭이 넓은 원형 벤치는 넓게 뻗은 평원의 광대함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일부 남아있는 바로크 양식의 구조물은 잔디로 덮어 그 앞에 펼쳐진 오픈스페이스는 요새와의 조화로운 모습을 만들어낸다. 길게 뻗은 보행로들은 열십자형으로 고원을 교차하여 비어 보일 수 있는 경관에 마치 슈팅라인shooting line처럼 강렬하고 리드미컬한 기하학적 형태를 구축하고 기존의 보행 동선 시스템과 연결되어 새로운 보행 네트워크를 만든다. 길게 늘어선 요새의 첫 번째 방어선을 따라 걷다보면, 3면으로 구성된 포도원을 만나볼 수 있다.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포도나무들 사이에 위치한 잔디밭은 새롭게 깔린 포장도로와 함께 친밀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와인바, 피크닉 등을 위한 공간이다. Landscape Architect TOPOTEK 1 Architect HG Merz Architekten Client State of Rhineland-Palatinate, Germany Location Koblenz, Germany Area 104,000m2 Planning 2005~2009 Completion 2011 / 2013 Photographs Hanns Joosten, Thomas Frey 토포텍 1(TOPOTEK 1)은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하는 조경설계사무소로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가 1996년에 설립했다. 조경 전반에 걸친 다양한 유형 및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건축과 도시설계에서부터 예술 부문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여러 지식 분야와 사회적 이슈의 하이브리드적인 접근법, 디자인 요소 및 오브젝트의 철거·확대 및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 그리고 시노그래픽한(scenographic) 과정의 단계별 계획 등 다양한 설계 전략을 통해 최근 경향에 민첩하게 적응한다. 공공 공간을 비전의 표현이자 사회 전반의 축소판으로 재해석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설계 개념을 대상지의 상황과 역사적 지식의 범위 내에서 발전시키는 것 또한 중요하게 생각한다.
    • TOPOTEK 1 / TOPOTEK 1
  • 파르코 도라 Parco Dora
    1980년대 피아트사의 철제 부품 공장과 미쉐린Michelin 타이어 공장이 폐쇄되었다. 해당 산업 전반의 쇠락과 더불어 이들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도심 근처에 상당한 넓이의 지역이 버려지게 되었다. 파르코 도라Parco Dora는 토리노의 이러한 탈산업 유휴지를 구조적으로 재생하기 위해 1990년대 시행된 ‘스피나 센트랄spina centrale’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구상되었다. 45헥타르 넓이에 달하는 본 프로젝트는 도시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개발 축 전역에서 가장 큰 규모라 할 수 있다. 과거 산업용 부지로 활용되었던 역사가 대상지의 성격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공간적으로는 대상지를 둘러싼 도라 강River Dora, 주요 간선 도로망, 그리고 신규 주거 지역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공원은 각기 다른 다섯 개 구역―인제스트(Ingest), 비탈리(Vitali), 모타라(Mortara), 미쉐린(Michelin), 발도코(Valdocco)―으로 구성되었다. 각 구역의 개별적 특성이나 해당 구역에 남겨진 과거의 흔적을 하나로 통합하고, 새로운 시설물을 통해 기존의 특징을 강화·발전시키며, 각 구역을 서로 연계시키는 한편 주변 지역과도 연결하는 것이 주 목표였다. 공원 한가운데 위치한 제철 공장 카포노네 디 스트리파지오Caponnone di Strippaggio, 눈에 잘 띄는 미쉐린타이어의 냉각탑, 인제스트 라미네이팅 공장, 그리고 도라 강은 대상지에서 손을 대지 않고 존치시킨 가장 중요한 요소다. 도라 강의 서쪽은 강변 지역을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반면 동쪽의 경우 대규모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강이 완전히 덮여있다. 냉각탑, 운하, 그리고 슬러리 탱크 등은 공업 생산 과정에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지속가능한 물 관리 시스템의 한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 시설들을 이용해 저장된 빗물은 관개 및 임시 물 관련 시설에 활용될 계획이다.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의 어마어마한 크기로 인해 공원은 여전히 위축된 모습이다.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고, 공원 내부의 여가 공간을 보호하는 한편 그늘 제공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많은 나무를 식재했다. 잡목림, 가로수, 수풀은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건물들을 단순한 배경 정도로 만들 것이다. Lead Design and Artistic Supervision Latz + Partner(Tilman Latz, Peter Latz, Dörte Dannemann,Daniela Strasinsky, Felix Metzler, Susanne Genilke) Project Management STS Servizi Tecnologie SistemiS.p.A. Restoration of Historic Buildings, Tendering andCosts Studio Pession Associato Structural Analysis and Surveys CMC StudioIngegneri Associato Agronomy, Tendering and Costs Dario Grua Lighting Pfarré Lighting Design Art Ugo Marano Client Città di Torino Location Turin, Italy Total Surface 456,000m2 Project Surface 376,000m2 Completion 2012 Photographs Andrea Serra, Fabrizio Zanelli,Heidemarie Niemann, Mattia Boero, OrnellaOrlandini, Latz + Partner Latz + Partner는 아넬리스 라츠(Anneliese Latz)와 피터 라츠(Peter Latz)가 아헨(Aachen) 및 자르브뤼켄(Saarbrucken)을 기반으로 설립했으며 현재는 뮌헨으로이전해 활동하고 있다. 2011년 3월 이래로 조경가이자 건축가인 틸먼 라츠(Tilman Latz)가 대표 이사이자 책임 디자이너로서 회사를 이끌고 있다. 각각의 장소가 지닌 독특한 특성과 기술적 해결책을 결합해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략을 세우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도시 변화, 탈산업·전통적 경관, 공공·사적 공간, 정원 등의 프로젝트가 주요 활동 분야다.
    • Latz + Partner / Latz + Partner
  • [칼럼] 도시재생, 편의적이거나 인기영합적인 해석을 넘어
    ‘도시재생’이 공간 문제를 다루는 모든 학계와 업계의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라 전국 13개 도시에 도시재생 선도 지역이 선정되어 도시재생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그동안 부동산 경기 침체로 고생하던 학계와 업계도 도시재생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그러나 도시재생은 여전히 생경한 개념이다. ‘재생’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의 법제에서 그대로 따온 것으로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재활성화’가 더 이해하기 쉬운 용어다. 그 뜻을 새겨보면 예전에는 번성했던 곳을 ‘다시’ 활성화시킨다는 의미로, 그 전제 조건은 도시 쇠퇴다. 이러한 점에서 엄밀히 말해 한때 활력이 있었던 곳이 쇠퇴decline한 경우와 한 번도 발전한 적이 없었던 낙후backwardness의 경우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그러므로 도시재생을 ‘낙후 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수단’쯤으로 여기는 지자체들의 태도는 매우 안이하다. 번영했던 도시가 쇠퇴하면 공장과 상가가 문을 닫고 빈 집이 생기고 도로가 한산해지면서 그동안 도시 개발을 위해 투자되었던 각종 시설이 100% 활용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재활성화’에는 이렇게 미이용unused되거나 저이용under-used되고 있는 기존의 도시 시설을 다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재활용’의 의미가 그 기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영국에서 탈산업사회의 도래로 인해 가동이 중단된 수변 공간의 제조업 공장, 창고, 도크dock 등의 산업 유산을 문화 자산으로 재활용하거나, 일본에서 ‘읽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도심에 방치되었던 대단위 토지를 재활용하여 도시재생을 꾀하려고 했던 시도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시재생을 ‘부수지 않고 다시 이용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일정 부분 유효하다. 실상 많은 사람들에게 도시재생은 단적으로 재개발redevelopment 또는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철거 재개발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철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용한다는 개념은 일찍이 수복 재개발, 보전 재개발 등의 개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곧 도시재생은 수복 재개발, 보존 재개발을 의미하는 것일까? 유의할 점은 ‘부수냐 마느냐’는 방법 또는 수단일뿐,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정 지역의 ‘재활성화’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존의 것을 없애버리는 것보다 다시 활용하는 것이 지역의 재활성화에 보다 효과적이라면 보존하여 이용하고, 반대의 경우라면 철거해도 된다는 것이다. 재활용하기에는 너무 노후화되고 불량화되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거나 재활용할 만큼 희소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까지 모두 무조건 재활용하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재활용’은 건축물·시설물 등의 재활용뿐만 아니라 기성 시가지내에 이미 개발이 되었던 토지의 재활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건축물·시설물을 재활용하는 것이 지역의 재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예전의 것이 지니는 희소성의 가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예전에 수많은 달동네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신작로와 아파트는 매우 신기하고 희소한 존재였다. 그렇지만 그동안 거의 모든 달동네가 철거 재개발을 통해 아파트 숲으로 변모하게 됨에 따라 오히려 이제는 그나마 남아 있는 달동네와 골목길이 신기한 희소한 자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겨우 남겨진 철로, 공장, 창고, 점포, 한옥, 골목길, 계단길 등이 그 지역 고유의 유일하고unique 진정성 있는authentic 장소성을 나타내며 도시재생의 귀중한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도시재생은 종종 ‘마을만들기’와 혼용되기도 하면서 하향식top-down 방식에 대비되는 주민참여형의 상향식bottom-up 도시 정비·개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시 주민참여는 방법 또는 수단에 관한 사항이다.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의 ‘재활성화’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오늘날 계획 이론에 의하면 주민참여에 기초한 협력적 계획collaborative planning은 그 대상이 도시재생이든 새로운 지역의 개발이든 또는 비물리적 프로그램이든 절차적 합리성과 정당성이 재활성화와 같은 계획의 성공적 산출을 위해 매우 중요함을 보편적으로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실로 도시재생의 가장 큰 특성은 그 목적인 도시재활성화가 물리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측면을 통합적이고 균형 있게 고려한 개념이라는 데 있다. 즉, 종전의 재개발이 물리적 측면에서 도시 및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춘 데 비해, 도시재생은 물리적 환경이 개선되더라도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사회적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쇠퇴 도시의 재활성화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도시재생의 원조격인 영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카리브 해와 서남아시아의 이민자들이 공간적으로 집중됨으로써 나타난 빈곤, 치안, 인종적 갈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 제조업 쇠퇴에 따른 실업 등 경제적 문제를 도시 및 주거 환경 악화와 같은 물리적 문제와 함께 통합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일본의 경우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 도쿄 등 대도시 지역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경제적 요인이 도시재생을 외치게 된 주요 배경이었다. 이렇듯 도시재생이 물리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측면의 도시 재활성화를 통합적이고균형 있게 고려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기존의 낡은 건축물·시설물의 철거를 통해 물리적 환경만을 개선하려는 재개발의 개념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또한 사회적·경제적 여건 개선의 핵심은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민참여가 재활성화를 위한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재생이 갖는 시대적 화두의 의미는 통합적 또는 융·복합적 접근 방식에 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뿐만 아니라 여러 부처에서 벌이고 있는 도시, 주택, 교통, 환경, 경제·산업, 교육, 의료, 사회복지 관련 사업들이 지역 활성화라는 하나의 최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합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연계 사업’이야말로 도시재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최막중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로서 원장에 재임 중이다.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을 맡고있으며,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국무총리 소속 국토정책위원회 위원, 국토해양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등으로활동해 왔다.
    • 최막중[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원장,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 [에디토리얼] 도그마
    용도 폐기되어 방치된 지 16년 만에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꿈꾸며 진행된 ‘마포석유비축기지의 재생 및 공원화 사업을 위한 국제설계경기’가 막을 내렸다. 그 진행 과정과 수상작들을 보면서 일종의 도그마dogma라고도 할 수 있을 두 가지 쟁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참가 자격 문제가 그 하나다. 경쟁 끝에 선정된 당선작과 여러 수상작의 설계 개념과 해법보다 오히려 작품 외적인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환경’과 ‘재생’을 주제로 한 이 공모전은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제공할 수 있는 공원 조성을 목표”로 삼았음에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참가 자격 조건을 내걸었다. 대표자를 “건축사 면허를 소지하고 … 건축사사무소의 등록을 필한 자”로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공동 응모 시 응모자 모두 상기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제한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제한은 “푸른 도시, 건강한 도시, 매력적인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서울시의 정책 방향에 역행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전문분야의 협력과 융합이라는 시대정신에도 어긋난다. 이러한 극단적 폐쇄성의 원인이 서울시를 대리하여 공모를 전담 운영한 기관의 건축 교조주의dogmatism나 근본주의fundamentalism에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진행 과정상의 단순한 실수이거나 서울시의 행정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일이기를 바랄 뿐이다. 결과적으로 조경가는 설계 크레디트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환경과조경』은 그들의 역할을 기록하기 위해 수상작에 참여한 조경가의 이름을 본문에 포함시켰다(지면 관계상 수록하지 못한 가작 수상작에도 유승종, 정욱주, 최혜영 등의 조경가가 참여했음을, 이곳에서나마 밝혀둔다). 마포석유비축기지 공모전을 두고 함께 생각해 볼 또 다른 도그마는 산업 유산을 재활용하는 최근의 설계에서 드러나는 단선적 경향에 관한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기능을 다한 공장, 항만, 창고, 철로 등의 산업시설을 재활용하여 공원, 미술관, 복합문화시설로 전환하는 프로젝트가 20세기 후반 이후 줄을 이었고, 이러한 재활용이 주변 지역과 도시를 재생시키는 촉매가 된 성공 사례도 속속 탄생했다. 뒤스부르크-노르트 공원을 벤치마킹한 선유도공원이 국내 포스트-인더스트리얼 공원의 서막을 열었고, 콘크리트와 녹슨 철과 새로운 식물이 동거하는 선유도공원의 생경하면서도 숭고한 sublime 미감이 서울숲공원의 정수장 구역과 서서울호수공원 등 여러 공간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이제 공장이나 산업시설에 문화나 유산이라는 말을 대입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공업시설의 구조물, 흔적과 잔해, 재료와 물성을 그대로 남기고 적극적으로 재활용하는 것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일종의 설계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한 규범이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도그마로 치닫거나, 아니면 단순히 표피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면서 하나의 유행으로 복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마포석유비축기지는 1970년대의 두 차례에 걸친오일 쇼크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한 석유 비축사업의 결과물이다. 매봉산 자락에 콘크리트와 철제 구조물로 만든 5층 건물 높이의 탱크 다섯 개가 매설되었고 여기에 20여 년간 130만 배럴의 석유가 저장되었던, 한국 현대사의 독특한 산물이다. 새로운 변신을 기획하고 있는 이 땅의 설계에서 ‘재생’과 ‘남기기’가 중심 주제로 검토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방식은 보다 자유롭고 창조적일 필요도 있다. 석유를 저장했던 탱크는 형태와 물성만으로도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계의 다양한 해법을 제한하는 조건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당선작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은 탱크가 건설되던 당시의 작업 역순으로 그 과정의 기억을 복원하고자 한다. 암반을 뚫고 석유 탱크를 만들던 작업로를 다시 재현하고자 한다. 이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회는 “공간의 기억에 주목해 ‘건축의 고고학’을 전개한 작품”이라고 정의하고, “과도한 설계를 자제하면서 이 땅이 지닌 지형의 고유한 잠재력을 최대로 이끌어냄으로써 탱크와 풍경이 하나가 되게 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심사평처럼 이 작품은 건설 당시의 상황과 조건에 주목하여 설계를 전개했으며 새로운 물리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지혜를 발휘한 수작이다. 그러나 그러한 해법이 과연 이 땅과 주변 지역에 어떠한 재생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지 상상하기란 쉽지않다. 당선작뿐만 아니라 다른 수상작들도 과연 무엇을 재생하고자 한 것인지 의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탱크를 최대한 원래의 형태대로 남겨서 다시 쓰는 것과 이미지의 소비나 유행 사이의 경계는 아슬아슬하다. 지난 9월 초, 서울시는 철거가 예정되었던 서울역 고가도로를 “뉴욕의 하이라인처럼 공중 공원으로 바꿔 서울의 명물로 키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산업시대의 대표적 산물인 이 고가도로를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원형 구조물을 최대한 보존하여 휴식 공간으로 재생할 계획”이며, “도로 상하부에 ‘환경과 재생’을 주제로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한다. 10월에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연말까지 계획안을 선정하고 내년에는 구체적인 설계안을 발전시켜 2016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는 ‘토건시대적’ 스피드의 일정도 내걸었다. 이 프로젝트는 기억과 역사에서 지워질 예정이었던 1970년대의 구조물을 재활용해 서울에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낸다는 의의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을 순식간에 지우고 버린 후 다시 빠른 속도로 그리고 만들기를 반복해 왔던 우리 현대사에 대한 반성과 극복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서울의 도시 구조와 형태에, 또 주변 지역의 재생과 재활성화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가져 올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서울시가 발표한 급박한 일정대로 진행된다면, 연장 1km에 가까운 고가도로를 그대로 ‘남겨’ 다시 사용하는 것에만 초점을 둔다면, 이 프로젝트 역시 이미지의 소비이거나 도그마의 추종에 불과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번 호의 도시재생 특집에서 여러 필자들이 강조하고 있듯, 과거의 것을 남긴다고 해서 재생과 재활성화의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뉴욕의 하이라인을 모델로 삼았다는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가 여느 시장들의 전시적 대형 사업과 다름없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아니기를.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권리와 의무
    ‘이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보통 이런 표현은 외부 필진의 원고에만 달리기 마련이다. 생뚱맞게 이런 대목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견해를 담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교과서적이고 원론적인 (한 마디로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너그럽게 보아달라는 엄살이기도 하다(이럴 땐 잡지지면에 이모티콘을 사용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이런 대목에서는 어울리는 이모티콘 하나쯤 달아주어야 하는데) 처음 한국조경사회 밴드에서 건설기술진흥법(이하 건진법) 문제를 접했을 때는,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공공부문 조경설계 용역은 기존처럼 엔지니어링활동주체와 기술사사무소도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기존의 입찰 참가 자격에 건설기술용역업이 하나 추가되는 것 정도로 인식한 것이다. 지금까지 멀쩡하게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이하 엔지니어링법)과 기술사법에 의해 조경 설계를 수행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제도가 확 바뀔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추측도 했다. 20년이 넘도록 큰 변화가 없던 시스템이어서 더욱 그랬다. 과거에는 ‘기술용역육성법’에 따라 건설용역업의 일환으로 조경설계를 수행했는데, 1992년 11월 25일 이후에는 기술용역육성법이 엔지니어링법과 기술사법으로 분리 제정됨에 따라 조경설계 용역 업체가 엔지니어링활동주체와 기술사사무로 이원화되었다(『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 - 한국조경백서1972~2008』 참고). 그리고 그 시스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달라질 기미도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안일한 생각 때문에, 시행령 별표1과 별표5는 물론이고 건진법 조항을 들여다보았지만, 의아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몇 군데 전화를 돌리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건진법이 건설기술용역업의 통합을 꾀하려는 취지가 있다고 해서, 엔지니어링법과 기술사법이 당장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일원화될 수 있는 것인가 싶었다. 또 그보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토목·건축 또는 기계분야 특급기술자가 조경설계를 비롯해서 다양한 건설 분야의 설계, 감리 등의 기술 용역을 모두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각 분야만의 고유한 전문성이 있고, 또 그 때문에 지금까지 세분화된 전문 분야별로 수많은 기술자를 양성해왔는데, 그 전문성을 지금에 와서 단번에 무시할 수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건진법 시행령 제4조 별표1에서 규정하고 있는 “건설기술자의 범위”를 보면 조경을 비롯해서 10가지의 세부 직무 분야를 두고 있다. 건축, 토목, 기계도 있지만, 도시·교통, 환경, 광업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같은 시행령 별표5에서는 건설기술용역업 중 ‘설계 등 용역’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토목·건축 또는 기계 분야 특급기술자 1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명시해 놓았다. 혼란스러웠다. 법을 조금 더 살펴보았다. 그런데 꼼꼼히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기존 법과의 관계도 찾아보았다.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 제4조는 ‘다른 법률과의 관계’에 대해 규정해 놓았는데,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 따른다”고 명시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으면, 그 법률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기술사법 역시 제3조 기술사의 직무 항목에서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 따른다”고 명기해 놓았다. 이후 이어진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담당자, 한국조경사회에서 법제를 담당하고 있는 진승범 부회장(이우환경디자인 대표), 처음으로 이 문제를 조경계에 알린 차욱진 대표(두인디앤씨)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그 여파가 실감되기 시작했다. 사실 문제의 심각성은 그보다 먼저 깨닫게 되었는데, 전국 여러 대학교의 조경학과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학생통신원들의 전화가 한 통 두 통 걸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조경설계사무소 대표, 조경학과 교수들과의 통화도 늘어났다. 최종적으로 정리된 내용은 이번 호에 실린 “건설기술진흥법, 조경설계업에 미칠 여파는”이란 기사(148쪽) 내용과 같으니, 더 이상의 중복은 피한다. 관련 내용을 파악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 중의 하나만 이야기해볼까 한다. 건진법 문제와 관련하여, 조경 단체의 관련 법 모니터링 시스템의 허점에 대한 지적이 꽤 나오고 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배어있는 경우도 있지만, 질책성 반응도 많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링협회에서는 이미 시행령에 대한 공람이 진행되었을 때, 관련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국토부에 전달했는데, 조경 단체는 시행령이 개정된 지 5개월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관련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조경기본법, 조경산업진흥법,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수목원 및 정원 법으로 개정 시도) 등 최근 들어 관련 법에 대한 첨예한 논의(제정을 위한 노력도 있었고, 개정 반대를 위한 논의도 많았다)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는데도, 정작 조경설계업에 지대한 여파가 미치는 법 개정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먼저 아주 간단한 사실 관계 하나만 살펴보면, 조경 분야에는 법인 단체는 있어도 법정 단체는 없다.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 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 등은 모두 국토부와 환경부 등에 사단법인 등록이 되어 있지만, 엔지니어링협회와 같은 법정 단체가 아니다. 엔지니어링협회는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 제5장 협회 및 공제조합’ 법령에 근거하여 설립되었다. 기술사회 역시 ‘기술사법 제14조 기술사회의 설립’ 조항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체다. 건축사협회 역시 ‘건축사법 제6장’에 근거하고 있고,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은 건축진흥원의 설립을 제5장에서 다루고 있다. 1980년 설립된 조경사회는 2000년에야 국토부(당시 건설교통부)에 사단법인 등록을 할 수 있었고(환경계획·조성협회는 1999년도에 환경부에 사단법인 등록), 2008년 11월 10일에야 독립된 사무국을 개소할 수 있었다.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 회장직을 맡은 대표의 사무실에서 조경사회업무를 함께 보았고, 사무국장 역시 조경사회 임원 중 한 명이 겸직했었다. 법정 단체가 아니다보니, 회원들의 회비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사무국을 꾸려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재정 상황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뜻있는 몇몇 회원들의 후원으로 지금처럼 별도의 사무국을 꾸려가는 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지나간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까지, 구구절절 이곳에 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교과서적인 결론도 사실 썩 내키지 않는다. 조경 단체의 상황이 이러하니, 관련 법 모니터링을 제대로 하지 못했더라도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조경사회의 정관 제4조에 명시되어 있는 조경사회의 주요 사업을 보면 “조경 및 관련 분야에 관한 자문 및 대정부 건의 / 조경 관련 정책, 법령 연구 및 제도개선 / 회원의 권익 및 복지 증진을 위해 필요한 사업”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업을 위해 설립된 조경 단체에게 관련 법제도를 살피고 개선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못한다면, 어디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정관 제7조에 명시된 ‘회원의 권리’ 못지않게, 제8조에 나와 있는 ‘회원의 의무’도 한번쯤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례 없이 조경을 둘러싼 법제도와 사회·경제적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시기에,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살펴보아야겠다. 그나저나 한창 조경가를 꿈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려운 숙제가 머릿속을 맴돈다.
  • 세상 속에 거주하기 2014 부산비엔날레, 11월 22일까지
    9월 20일부터 11월 22일까지(64일간) 부산문화회관 일원에서 2014 부산비엔날레가 열린다. 이번 비엔날레는 ‘세상 속에 거주하기Inhabiting the World’라는 주제로 부산시립박물관의 본 전시와 부산문화회관, 고려제강수영공장에서 각각 개최되는 2개의 특별전으로 꾸며진다. 본 전시에서는 30개국 161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484점의 작품을 통해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 예술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한다. 전시 감독인 올리비에 케플렝Olivier Kaeppelin은 이를 추상·운동, 우주, 건축적 공간, 정체성, 동물성, 역사/사회, 자연, 경관이라는 요소로 풀어낸다. 김수자(한국), 치하루 시오타Chiharu Shiota(일본), 파브리스 위베르Fabrice Hybert(프랑스), 애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인도) 등의 유명 작가들이 여럿 참여한다. 예술가들의 시각은 추상적인 회화에서부터 몽환적인 비디오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비엔날레 아카이브展 ‘한국현대미술 비엔날레 진출사50년’은 48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109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작가의 해외 비엔날레 출품작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아시안 큐레토리얼展 ‘간다, 파도를 만날 때까지 간다’는 9개국 36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한국과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해양 도시에서 활동하는 신진큐레이터들이 기획한 바다에 얽힌 네 가지 시선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대 행사도 함께 마련되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의 전문가 토론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 등이 마련되었으며, 매주 일요일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 수영공장에서는 일반 시민을 위한 공연이 열린다. 지난 2012 부산비엔날레에서는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해 민주적인 참여와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전시 내용과 연관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전시 공간 자체가 예술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했다. 대화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 주제나 작품 개념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 기회를 마련하고, 관람객이 주도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신경을 기울였다. 페미니스트적 작업을 해온 스페인 작가 필라 알바라신Pilar Albaracin은 이번 전시에 ‘당나귀Anseria’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박제된 당나귀가 무덤을 상징화한 책 더미 위에 서서 책을 읽는 모습을 의인화했는데, 기다란 얼굴에 짜리몽땅한 앞발을 쳐들고 책을 든 모습이 익살맞다. 한편으로 박제된 당나귀가 기이한 느낌을 자아낸다. 인류의 역사를 상징하는 책 더미와 그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 당나귀의 비유를 통해 문화 인류학적인 인간의 역사를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치하루 시오타의 작품 ‘집적-방향을 찾아서Accumulation-Searching for Destination’는 부유하는 신체를 비유하는 200여 개의 여행 가방을 공중에 매달아 디아스포라, 노마딕 주체의 무장소성, 유랑에 의한 불안정성, 미래의 불확실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이주의 경험이 있는 작가가 서구에서의 체험과 모국에서의 기억이 중첩되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한 주체의 형성 과정을 비유한다. 이 작품들은 ‘세상 속에 거주하기’라는 대 주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예술작품이 ‘세상 속에 거주’하면서 마주하는 경제적, 생태적, 지정학적, 실존적 문제들에 대한 처방책을 내지는 못하지만 ‘세상에 대한 통찰’을 사유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부산비엔날레에서 그 기회를 공유할 수 있다.
    • 이향지
  • 인사동 아이디어 텃밭전 북인사마당에서 10월 14일부터 6일간 개최
    지난 10월 14일부터 6일간 종로구(구청장 김영종) 공원녹지과의 후원 아래, ‘도시 농업’을 주제로 ‘인사동 아이디어 텃밭전’이 인사동 북인사마당에서 개최됐다. 2011년부터 진행되어 온 이 행사는 ‘초록빛 상상, 도심을 채우다! 대학생들의 감각있는 텃밭 전시’라는 부제로 진행되었고, 올해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계원예술대학교 화훼디자인·전시디자인과 학생 122명과 경기도 고양시에서 친환경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우보농장이 참여해 텃밭 전시, 기획 전시, 그리고 체험행사를 진행했다. 텃밭 전시에는 참신한 표현 방법을 사용하여 환경, 사회, 예술 등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낸 22개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는 ‘당신의 도시농부 타입은 :-)?(조현진 외 4인)’과 같은 참여형 작품, ‘시가렛 가든(최진호 외 1인)’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낸 작품 등 11개 작품을 선보였고, 계원예술대학교에서는 ‘신들의 당구(권정숙 외 6인)’와 같이 조형성이 두드러지는 작품과 ‘산세베리아(이고원 외 6인)’와 같이 환경오염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 등 총 10개 작품을 출품해 각자의 개성을 드러냈다. 작품 전시와 더불어 계원예술대 전시디자인학과의 주도하에 ‘씨드볼seed ball 만들기’, ‘친환경 퇴비 만들기(워크숍 명: 가든가든하다)’, ‘재활용 화분 만들기(워크숍 명: 꽃수아비)’ 등의 워크숍도 진행되어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노력도 엿보였고, 18일 진행된 기획 전시에서는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공동대표)의 벼, 밀, 콩 등의 토종 씨앗에 대한 관련 해설도 들을 수 있었다. 종로구에서는 “도시 텃밭이 서울 곳곳에서 좋은 경관적 효과를 내고 있고, 옥상녹화는 열섬 현상 등의 도시적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며 도시 농업과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개최된 ‘인사동 아이디어 텃밭전’이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행사장에서 만나본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학생들은 직접 ‘텃밭’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 것 자체에 만족스러움을 표시했다. 사실 현재의 조경학과 설계 교육에서 도면과 컴퓨터 모니터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실체가 없거나 상상 속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재현 학생(‘Organic Toilet’팀)은, “도면과 모델링에서 구상했던 것들이 실제 시공 단계에서 얼마나 잘못 기획되었고, 수정될 사항이 많을 수 있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며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같은 조의 김병호 학생은, “시공 자재의 유통 과정이나 재정 관리에도 직접 관여했는데, 배추하나 주문하는 일도 인터넷에서 신발 주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며 살아있는 식물을 다루고 텃밭을 조성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에 덧붙여 시공 과정뿐만 아니라 책과 강의로 만 전해 들어오던 ‘주민참여’ 활동을 진행해보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모습에서 전해오는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으로는 지금보다 시간 및 금전적 여유가 조금 더 주어졌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언급하기도 했다. 행사 후에 지급하기로 되어있는 시공 비용이 작업 과정에 있어 부담스럽게 다가온 것이 사실이었다며, 제작 비용이 먼저 확보된다면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리고 “행사 당일이 되어서야 작품별 설치 위치가 정해졌다는 점도 행사를 진행하는 데 애를 먹게 한 것이 사실”이라며 내년 사에서는 이러한 사항들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도심 속에서 점차 잊혀져가는 텃밭을 발굴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쾌적하고 건강한 종로를 만들”겠다는 주최 측의 시도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인사동 북인사마당은 잠시나마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었고 그에 대한 시민과 관광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사동 아이디어 텃밭전’이 더욱 뚜렷한 색깔과 의미를 갖는 지역 행사로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 양다빈
  • 문화 콘텐츠로서 정원의 가능성 한국정원디자인학회 창립총회
    조경 분야에서 정원이라는 주제는 그동안 대형 사업에 밀려 외면당해 왔다. 그런데 최근의 정원 열풍으로 조경 분야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조성주체에 따라 정원의 개념이 다양하게 쓰이면서 유관단체와 기관들 사이에는 용어 논쟁이 일기도 했다. 이에 정원과 관련한 여러 가지 담론이 형성되고 있으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전략을 세우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은 다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정원 관련 단체가 여럿 설립되었다. 지난 해 한국정원문화협회(회장 정주현)가 발족한 데 이어정원 문화 활성화와 정원 산업 진흥을 목표로 지난 9월 25일에는 정원문화포럼(회장 송정섭)이 창립총회를 가졌다. 한국조경학회는 올해 정원학연구센터(센터장 조경진)를 설립해 고양국제꽃박람회에서 정원문화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오는 12월에는 ‘정원학의 새로운 지평’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한국정원학회로 설립해 활동을 이어오다 외연 확대를 위해 개칭한 한국전통조경학회(회장 안계복)는 다시 원래 이름으로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0월 18일 푸르지오 밸리에서 한국정원디자인학회가 창립총회를 가져 그 설립 배경이 관심을 끈다. 학회 설립 배경 한국정원디자인학회 초대 회장에는 홍광표 교수(동국대학교)가 추대되었다. 이날 홍 교수는 학회의 설립 의의를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했다. 첫째는 융·복합적인 시스템의 구축이다. 정원이 조경 분야의 관심에서 멀어진 동안에도 정원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왔고 이제 보다 다양한 형태로 정원이 소비되고 있는데, 이를 조경의 틀로만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홍광표 교수는 “학제 간 연구를 통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학회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사회적 요구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다. 홍 교수는 “사회가 요구하는 정원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공공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공공디자인의 한 부분으로 기능하고 도시 경관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에 대한 연구가 공공성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정원 문화 정착을 위해 제도적 장치가 필수라는 점을 역설하며, 그 기반으로 정원학회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정원디자인학회의 비전 한국정원디자인학회가 역점을 기울이는 사업은 한국정원의 국제화 모델 개발과 해외 보급이다. 홍광표 교수는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 재임 시기부터 해외에 한국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해에는 미국 어바인Irvine 시와 협력 체계를 구축해 한국정원 조성을 위한 논의를 진척시킨 바 있으며, 윤후덕국회의원과 함께 ‘한국전통정원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해 발전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윤후덕 국회의원은 토론회 이후 “한국 전통 정원이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고유의 아름다움과 표현 방법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역사·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전한 바 있다. 이에 이번 한국정원디자인학회 설립을 지지하고 해외 한국 정원 조성 사업에도 힘을 보탤 예정이다. 윤 의원은 “우리 전통 정원이 문화 콘텐츠의 한 분야로 세계에 널리 소개된다면 해외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한류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제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강은 ‘도시의 녹지 공간과 정원(부제: 도시 정원의 본연의 모습과 미래상)’을 주제로 코시미즈 하지메 교수(메이지대학교)가 발표하고, 황지해 정원작가와 신현돈 대표(서안알앤디 디자인)가 해외에서 진행한 정원 작업의 과정과 성과를 소개했다. 황지해 작가는 첼시플라워쇼를 비롯해 국외 유수의 정원 박람회 참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소개했으며, 신현돈 대표는 ‘한국 전통 정원’을 주제로 해외에 조성한 공원 사례를 통해 제한 사항과 노하우를 공유했다. 특히 발표 내용 중 ‘황지해 작가의 첼시플라워쇼 금메달 수상’의 해외 온라인 노출량을 비교한 결과는 흥미로웠다. 황 작가의 관련 뉴스는 박찬욱 감독의 칸 영화제 수상 소식과 비슷한 수준이며, 임권택 감독의 칸 영화제 수상 소식의 3배, 이창동 감독의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 소식의 4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원의 파급력과 경제적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양질의 한국 정원을 해외에 조성해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이 한국정원디자인학회가 꿈꾸는 미래상이다.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한 전략, 한국 정원의 세계화 한편에서는 한국정원디자인학회 설립을 의아해 하는 시선도 있다. 지금도 조경 분야에는 많은 단체가 활동 중이고 중복 가입한 회원이 많기 때문에 역량이 분산되어 사실상 저변 확대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시선에 대해 조세환 교수(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는 “점점 더 복잡화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원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반론하며 한국정원디자인학회 설립을 반겼다. 하나의 구심점을 바탕으로 조경 분야가 더 다원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경계해야할 점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섬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류 바람은 대중문화를 넘어 제품과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특징을 보여주는 정원을 해외에 조성하는 일은 새로운 수요의 창출 가능성을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정원이 조성되는 국가와 문화 교류의 촉매제로서 정원의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 이는 조경의 외연 확대를 위한 전략이 되기도 한다. 한국정원디자인학회가 그 가능성을 어떻게 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경관의 새로운 지평 4대 학회 연합 국토경관정책심포지엄 ‘국토경관자원의 가치평가와 활용’
    2007년, ‘경관법’이 제정되었다. 과거에는 지자체별로 조례를 만들어 경관 사업을 시행해 왔으나 관련법이 없어 국가적 지원을 받지 못했고 일부 지자체 위주로 경관 계획을 수립해왔다. ‘경관법’ 제정으로 지역 환경과 도시 미관 정비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며, 실제로 이전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늘고 다양한 부문에서 경관 계획이 수립되며 활성화되는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가 부족하고 관계 당국조차 경관이라는 용어가 생소해 업무가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난 해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경관법’전부개정안을 발표했고, 국가 차원에서 경관을 관리하기 위해 현재 ‘경관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각 분야별, 지자체별로 산발적으로 관리되던 경관을 국가 차원의 ‘국토경관’으로 통합 관리해야 한다는 관련 전문가들의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지난 9월 26일에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국토경관자원의 가치평가와 활용’을 주제로 ‘4대 학회 연합 국토경관정책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대한지리학회(회장 손일),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회장 최막중), 한국조경학회(회장 김한배), 한국경관학회(회장 류중석)가 공동으로 주최했으며, 국토교통부, 환경부, 산림청, 한겨레신문사가 후원했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경관을 연구하는 학회와 관계 부처가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국가 차원의 경관 계획 수립 심포지엄에서 이희정 교수(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는 지금까지의 ‘경관법’이 “도시 및 인공 환경 조성 위주의 계획에 치중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는 ‘경관법’ 제정이전 경관 계획 및 사업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으나 이로 인해 경관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에 경관을 “자연환경과 인문 환경을 담는 그릇”으로 인식할 것과 법체계를 국가 단위로 수립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관정책기본계획’과 관련해 ‘한국 도시의 경관경쟁력 평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차주영 연구위원(건축도시공간연구소)은 이 교수의 말처럼 기존 ‘경관법’이 농촌과 자연 경관을 배제한 제도라는 사실에 동의했다. ‘경관법’은 여러 경관 요소를 함께 고려한 제도지만 도시에 보다 무게를 두었던 게 사실이다. “도시는 많은 사람이 살고 그에 따른 문제가 더 많이 산재하기 때문”이다. 개정된 ‘경관법’과 현재 수립 중인 ‘경관정책기본계획’은 도시와 농촌의 경관을 통합적인 시각에서 아우른다. 차주영 연구위원은 “경관정책기본계획은 기존 경관법의 문제를 인식하고 국토경관의 미래상을 설정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동안 국토경관에 대한 논의가 없었고 공통된 미래상이 없기 때문에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경관이라는 용어자체가 일반인에게 낯설다는 점이 난제로 꼽힌다. 경관 자원의 데이터베이스화 주신하 교수(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는 국가 차원에서 경관 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 교수에 따르면 지금까지 경관 계획을 세울 때마다 자원 조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연구·조사 결과가 자료로 축적되지 않아 계획을세울 때마다 재조사를 진행하는 데 시간을 투입하는 등 연구가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국가경관자원 DB를 구축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경관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게 주 교수의 설명이다. 더불어 국가에서 관리하는 경관 지도를 만들어 이를 공유하고, 경관 자원을 국가 경관, 도 경관, 시·군 경관 자원으로 구분해 관리할 것과 경관 자원 승급제 등을 도입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갖출 것을 제안했다. 류제헌 교수(한국교원대학교 지리교육과)는 경관의 관리와 계획에 있어 가장 존중해야 하는 원리와 목표로 경관의 지속가능성과 다기능성을 제시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여러 갈래로 추진하는 경관 정책과 사업을 하나로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럽의 사례를 들며 경관 특성 지역을 지도화 하는 작업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토경관자원 활용을 위한 과제 경관은 일반적으로 ‘경치’를 뜻하거나 ‘특색 있는 풍경형태를 가진 일정한 지역’을 뜻한다. 사전적으로는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풍경’을 뜻한다. 이 정도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경관의 의미일 것이다. 경관, 자연, 풍경, 환경, 장소가 각기 다른의미를 지니고 범위도 다른데, 일반인은 이 용어를 혼용해서 쓰고 있다. 학계에서도 경관의 의미는 광범위 하게 쓰이고 있는데, 심지어 분야와 연구하는 주체별로 그 의미와 범위가 다르다. 류제헌 교수는 “경관의 의미는 토지나 환경의 의미와 구별되어야 한다”면서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에 자연이나 환경보다 그 범위가 넓다고 주장했다. 경관보다 환경의 범위가 넓은 것으로 보는 이희정 교수와 다른 시각이다. “환경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경관은 인간 앞에 전개되어 인간에게 지각되는 경치”1라고 구분되기도 하는데, 이희정 교수에 따르면 “경관의 의미, 범위, 대상이 복잡하고 다양해 이해가 어려우며 효율적인 관리가 어렵다.” 학제 간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에 대해 조홍섭 논설위원(한겨레신문사)은 “언론에서 경관이라는 용어가 필요한 경우 ‘경치’로 고쳐 사용한다”면서 경관의 개념이 아직까지 대중과 거리가 멀어 경관 계획 방향의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간 다양한 방면에서 경관 관리가 이루어져 왔다. 지자체 중심으로 각 지역별 경관 계획이 세워지고 ‘경관법’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기존 지자체 주도의 경관 계획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관광 자원으로서 경관의 가치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에 ‘경관법’은 그간 외면해온 도시 경관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며 경관 관리의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국토경관’으로서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고, ‘경관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제도적 장치가 정비되고 있다. 자원으로서 경관의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는 데, 이를 뒷받침할 학제적 연구가 미진하다. 관계 부처와 관련 학회 간의 긴밀한 협력이 시급하다.
  • 미지의 세계로의 초대 ‘초자연’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15년 1월 18일까지
    우리는 다섯 가지 감각으로 존재를 인식한다. 그중 시각에 가장 많이 의존한다. 보이지 않으면 다른 감각으로 인식되는 것은 ‘착각’으로 여기거나 종종 무시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으면서도 실재實在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바람이 대표적이다. 바람이 부는 소리와 살결을 에는 촉감 그리고 나뭇가지의 흔들림과 꽃잎이 날리는 현상을 통해 바람이 있음을 인지한다. 불은 눈에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데, 온도를 느끼고 다른 물체를 태움으로써 실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공감각적 체험을 통해 하나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존재를 지각할 수도 있다. 초자연주의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존재를 다른 논리와 방법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초자연’ 전에서는 공감각적 체험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9월 2일부터 2015년 1월 1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 서울관에서 ‘초자연’ 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예술과 과학 기술의 융·복합을 실험하는 국내 작가들을 발굴해 전시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전시에는 리경, 조이수, 박재영, 김윤철, 백정기 작가가 참여했다. 5인의 작가는 비가시적 세계의 이면에서 자연성을 해체하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역이 겹치는 중간 지대인 새로운 초자연적 환경을 다양한 감각을 통해 실재로 느낄 수 있도록 재구축한다. 현장에서 제작·설치한 기계 장치를 5개의 전시 공간에 서로 유기적으로 배치해 초현실적 세계의 실재를 상정하고 그 공간 속에 초자연적 기계 장치들을 삽입했다. 이렇게 장소 특정적으로 제작·설치된 작품들은 통상적인 시지각과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다. 전시는 관람객이 이동하는 동선을 따라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배치되었다. 천막을 들추고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가느다란 붉은 빛줄기와 공간 전체를 아스라이 감싸는 연기가 시선을 몽롱하게 만들어 초자연의 세계로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빛은 서로 교차하며 수평과 수직의 격자로 분할해 빈 공간을 수놓는다. 붉은 선으로 가른 섬세하고 얇은 벽은 마치 실재하는 듯 감각을 교란한다. ‘더 많은 빛을’, 이 작품은 빛과 연기가 반응하며 일정 시간마다 기다란 통로와 벽을 만들어 내는 데, 연기의 촉감을 통해 빛의 벽을 만지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장 전체를 감싸는 섬세한 사운드가 감각을 극대화시킨다. 붉은 빛의 산책로를 지나면 ‘바람의 정령’을 만날 수 있다. 지하 1층에서 3층까지 아래로 길게 연결된 계단의양옆 벽면에는 사슴머리를 한 16개의 봇bot(대리자)이 방문자를 기다린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적외선센서로 인지해 작동하고 핸드벨 소리를 무작위로 연주한다. 이 사슴과 닮은 동물들은 초자연의 정령으로 비유된다. ‘원령공주’를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사슴머리의 봇이 초자연의 정령이라는 설명에 한층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시시가미(사슴신)가 바로 자연의 대리자를 상징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사슴은 고대부터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낼 때 희생 동물이 되기도 했다. 희생 동물은 하늘과 교통하는 힘이 있다고 사람들은 믿었고 때로 사슴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이러한 사슴의 개념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나타났고 한반도 설화에도 종종 나타난다.1 ‘원령공주’와 ‘바람의 정령’은 이러한 개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람의 정령’에서는 초자연적 존재가 기계 장치를 매개로 인간의 감각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사람이 좁고 긴 통로를 지나가는 동안 이에 반응해 빛이 반짝이고 소리가 들린다. 작가는 비유적 수법을 통해 이 공간을 지나는 동안 사람에게 바람이 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아일랜드 프로젝트: 불안한 숨결’. 이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공간은 오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로다. 이곳에 들어서면 기분 나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소곤거리는 소리와 스산한 촉감이 음침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기술적인 조작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의 불특정한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들려주고자 하는데, 텅 빈 공간 속에서 시각적인 장치는 배제한 채 후각과 촉각, 청각만을 자극해 마치 유령이 지나쳐가는 듯한 오싹한 느낌을 안겨준다. 상쾌한 바람이 되어 지나온 후라 대비적 감각이 더욱 극대화된다. 이후 전시는 창고 전시장으로 이어지고 미립자들이 만드는 폭포(‘캐스케이드’)를 지나 마지막 작품인 ‘웨이브 클라우드’에서 의지와 염원이 물리적 현상으로 치환되는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초자연’ 전은 각각의 작품이 주체성을 갖고 있지만 공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순차적으로 경험하는 또 다른 공감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모든 작품이 초자연적 경험의 총체라 할 수 있다. 다섯 개의 작품이 상호작용하며 전시관을 초자연적 세계로 만든다. 전시장 입구의 천막을 걷는 순간 미지의 존재와 만나는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