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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U REBUILD BY DESIGN
    BIG U는 웨스트 57번가West 57th Street로부터 남쪽으로는 배터리 파크Battery Park, 북쪽으로는 이스트 42번가East 42nd Street에 이르는 대문자 U 모양의 지역을 아우른다. 대상지는 건물의 밀도가 높은 역동적인 지역이면서도 자연 재해에 취약한 저지대 도시 지역이다. BIG 팀은 ‘사회적 기반 시설social infrastructure’과 ‘유희적 지속가능성hedonistic sustainability’에 콘셉트의 뿌리를 두고 접근했다. 공공 기반 시설과 사회적 프로그램의 이종교배를 통해 새로운 도시 생활을 도입한다. BIG U는 홍수로부터 도시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공공 영역을 넓히기 위해, 인접해 있지만 독립적인 세 지역에 대한 상호 협력적 계획을 세웠다. 세 구역compartment은 기능에 따라 구획된 수변 공간이다. 각 구획은 물리적으로 분리된 홍수 방지 구역인 동시에, 사회적 통합과 커뮤니티 계획을 위한 장을 표방한다. 이 세 구역을 위한 전략은 관련 커뮤니티와 지역, 지방, 주, 연방 차원의 많은 이해당사자들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디자인되었다. 또한 각 계획안은 유연하고단계적이며 도시의 부둣가를 따라 현재 진행 중인 개발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1구역: L.E.S. 노스 - 이스트 리버 파크 1구역을 위한 전략은 동쪽으로 FDR 드라이브FDR Drive와 접하는 대규모 주거 지역을 포함한 범람원 일대를 보호하기 위해 기획됐다. FDR 드라이브 너머 물과 접하는 경계에 이스트 리버 파크East River Park가 자리하고 있다. 이 넓은 공원에 보호 둔덕을 조성하여 홍수로 부터 주거 지역을 보호하고, 새 보도교를 조성하여 고립된 공원을 인근 커뮤니티와 연결할 것이다. 피터 쿠퍼 빌리지Peter Cooper Village의 FDR 드라이브밑으로는 파빌리온이 일렬로 놓인다. 육지 쪽에는 현재 부족한 상업 시설이나 다른 편의 시설을 마련할 수 있다. 강 쪽은 인접한 공원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여가공간으로 계획될 수 있다. 콘에드Con-Ed 공장 주위는 신설 고가 횡단 보도와 통합 제방이 수변 공간의 구역들을 연결할 것이다. 이스트 리버 파크에는 기존 지선도로의 자리에 둔덕을 조성할 계획인데, 이 둔덕은 현존하는 운동 경기장들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고, 공원 뒤편 지형을 안정감 있게 만들면서 새로운 경관을 제공한다. 공원에는 바다의 염분에 내성이 있는 다양한 나무와 식물들이 식재되어 공원의 회복탄력성을 향상시킬 것이다. 2구역: 투 브리지스 - 차이나타운 투 브리지스Two Bridges에는 주거 지역과 수변 공간 사이의 공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므로 복합 홍수 방지전략을 세웠다. 높이를 제한한 차수 시설은 수변을 향한 경관을 제공하면서 반복되는 홍수에 맞서 이 지역을 보호한다. 차수 시설은 발전기 등을 이용한 시스템적 방법으로 보완된다. 몽고메리 스트리트Montgomery Street 남쪽, 피어 36Pier36 위생국 시설 앞으로 폴더 형태로 접혀 올라갈 수 있는 차수 시설이 FDR 드라이브 밑에 부착될 것이다. 공공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획된 이 차수 시설은 어두침침한 이 구역을 환하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접어 올릴 수 있는 차수 시설 덕분에 스미스 하우스Smith Houses 반대편으로 벤치, 스케이트공원, 태극권 훈련장, 수영장 등의 시설이 마련되며, 이 공간은 이후 지면으로부터 4피트 높이의 유리로 둘러싸인다. BIG Bjarke Ingels Group| One Architecture| Starr Whitehouse| Buro Happold| Level Infrastructure| James Lima Planning + Development| Green Shield Ecology| AEA Consulting| Project Projects| School of Constructed Environments at Parsonsthe New School for Design BIG 팀(BIG Team)의 리더인 BIG은 뉴욕, 코펜하겐, 베이징에 사무실을 두고 건축, 도시계획, 리서치, 개발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설계사무소다. BIG은 비용과 자원을 절약하면서도 프로그램과 기술적으로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공공 공간과 형태를 창조하며 도시 개발로 야기되는 문제에 대응해왔다. BIG 팀에는 One Architecture(물& 도시계획)와 Starr Whitehouse(조경), Buro Happold(엔지니어링 & 지속가능성), Level Infrastructure(인프라스트럭처 엔지니어링), James Lima Planning + Development(재정 & 경제), GreenShield Ecology(생태), AEA Consulting(예술 & 문화 계획), ProjectProjects(그래픽 디자인), School of Constructed Environments atParsons the New School이 참여했다.
    • BIG Team
  • REBUILD BY DESIGN Hurricane Sandy Regional Planning and Design Competition
    물과 공존하는도시를 향한‘신중한’ 도전 2012년 10월 대서양에서 발생한 샌디Sandy는 카리브해 지역에서부터 미국을 거쳐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북미 대륙 동부의 광범위한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킨 초대형 허리케인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했으며,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650억 달러의 복구 비용이 들어간 샌디는 세계 제1의 도시라는 뉴욕을 비롯한 미 북동부 대도시권의 재해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그 심각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직접적인 침수 피해는 물론 대중교통, 전기, 가스 공급의 중단, 주식 시장 폐쇄 등 기본적인 도시 기능이 장시간 완전히 마비되는 상황을 맞은 이 지역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만큼 기간 시설의 정비 수준이 지역의 세계적 위상에 미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즉각적인 피해 복구와 재건의 시급함 속에서도 장기적이지만 근본적인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로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의 성숙함과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수변 공간은 인류가 처음 도시를 세운 원초적 지리 조건이기도 하지만, 현대 도시에서도 여전히 그 매력과 중요성을 잃지 않고 있다. 특히 샌디의 피해 지역인 미 북동부 해안 지역은 해수면 상승과 기상 이변에 의한 재해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도시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 설계공모는 단순한 허리케인 재건사업이 아니라, 물과 도시의 삶이 공존하기 위한 혁신적인 해법을 도출하고자 하는 미국 사회의, 그리고 현대 도시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혁신적 해법은 무엇보다 혁신적인 공모로부터 출발한다. ‘리빌드 바이 디자인’은 이미 정해진 사이트와 프로그램을 주고 참가자들 각자가 만든 제안 중에 가장 나은 안을 뽑는, 그런 일반적인 설계공모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공모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은 스스로 사이트와 이슈를 찾아 그 중요성을 증명해야 한다. 달리 말해 ‘리빌드 바이 디자인’은 프로젝트 자체를 만드는 설계공모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모의 주최 측은 구경꾼이 아니라 공모 참가자와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넓은 의미의 공모 참여자로서, 각 단계별로 최고 수준의 전문가와 관련된 권한을 가진 정부 기관이 함께 한다. ‘리빌드 바이 디자인’이 그 결과를 내기도 전에 CNN이 선정한 2013년 최고의 아이디어에 이름을 올린 것도 바로 그러한 ‘과정’ 자체의 혁신을 인정받고 있음을 말해 준다. 또한 ‘리빌드 바이 디자인’이 재건 프로젝트를 통해 기상 재해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수해 위협을 완벽하게 차단하겠다고 공언했다면, 그것은 오만한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빌드 바이 디자인’은 현실적이고도 겸손한 지혜를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기상 이변이 현대 도시 문명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을 전제하고, 그로 인한 재난 상황으로부터 도시의 회복 능력, 즉 ‘회복탄력성resiliency’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미국의 ‘국가 재난 복구 프레임The National Disaster Recovery Framework’에서 정의하는 ‘회복탄력성’이란위험 요소 경감 및 토지이용 계획 전략, 중요 기간 시설 및 환경·문화 자원의 보호, 건조 환경을 재구축하고 경제·사회·자연환경을 되살리기 위한 지속 가능한 실행을 말한다. 이러한 포괄적 개념의 회복탄력성은 설계공모의 전 과정을 관통하며 모든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기본 가치를 이루고 있다. 새로운 형식의 다단계 설계공모 ‘리빌드 바이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은 총 4단계로 이루어진 ‘복잡한’ 공모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1단계에서 참여 전문가의 구성 및 역량과 간략한 제안서를 바탕으로 5~10개 팀을 선정하며, 리서치와 프로젝트 발굴에 집중하는 2단계를 통해 각 팀별로 하나의 프로젝트를 결정한다. 3단계를 통해각 팀의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복수의 최종 프로젝트를 확정하며 4단계는 계획의 실행 단계이다. 이 글에서 소개할 6개의 최종안은 3단계의 결과물에 해당한다. 물론 단순히 여러 단계를 거쳐 최종안을 결정한 것이 ‘리빌드 바이 디자인’이 이룬 혁신은 아니다. 참가팀들이 각기 독립적인 안을 발전시켜 경쟁하는 일반적인 설계공모가 최종 결과물만을 우리에게 던진다면, ‘리빌드 바이 디자인’은 결과물뿐만 아니라 공모의 전 과정에서 이루어진 모든 논의와 경험을 공공의 지식, 공공의 성취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같은 공모 과정의 가장 큰 가치는 무엇보다 각 팀들이 단순한 경쟁 구도1에서 벗어나 각자가 수행한 지역에 대한 분석과 그로부터 도출한 중요한 아이디어를 다른 모든 이들과 공유함으로써 지역 전체를 위한 더 나은 해법을 찾아내려는 공통의 목적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즉 공모 과정에서 생산된 모든 지적 결과물은 어느 팀에 제한적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된다는 의미다. 특히 2단계인 리서치 과정은 지역 전문가 및 지역 사회와 더불어 지역의 조건을 충실히 이해하고 디자인 대상지와 이슈를 발굴하는 것이 핵심 목표이지만, 동시에 기후 변화와 기상 재해라는 세계 공통의 문제에 대한 연구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공공의 지식’을 축적한다는 ‘미국적’ 스케일에 쓴웃음이 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지함이 있다. 리서치 결과물이 어느 시점에서 완결된 책자 형태의 보고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를 더해갈 수 있도록 웹사이트(www.rebuildbydesign.org)라는 열린 형식을 취한다는 설명에 수긍이 가는 이유다. 또한 최종적인 제안의 현실적 토대가 되는 리서치 과정에서 뉴욕대학교 공공지식연구소 등 관계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설계공모 팀의 지역에 대한 이해를 돕는 등, 리서치의 내실을 채우고 있으며, 그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객관적 검증의 기회도 거치게 된다. 이렇게 해서 2단계 리서치는 어떤 것이 중요하게 고려할 취약점인지,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한 기본 방향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참가팀 모두가 공유하는 출발점을 제공한다. 동시에 지역 사회의 지역에 대한 객관적 이해도를 높여 설계공모를 통해 도출된 해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부차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2단계와 3단계에 참여하는 공모 팀들은 각 단계별로 연구와 작업에 대한 대가로 각각 10만 달러를 받게 된다. 물론 이 금액이 참여 인력과 미국의 통상적 용역비를 고려할 때 충분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공모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전문가로서의 활동과 도출된 지적 결과물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리빌드 바이 디자인’ 과정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이 상당 부분 록펠러 재단의 기부로 충당된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BIG U BIG Team Living with the Bay Interboro Partners New Meadowlands MIT CAU + ZUS + URBANISTEN Resist, Delay, Store, Discharge OMA Hunts Point Lifelines PennDesign + OLIN Living Breakwaters SCAPE / LANDSCAPE ARCHITECTURE
    • 김정은, 조한결, 양다빈
  • [칼럼] 재해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방법
    저녁이 되면서 내리던 비는 더욱 거세졌다. 폭우 속에서 처량하게 순서를 기다리던 비행기들은 모두 결항됐다. 우리는 곧 허물어질 듯 한 여관에 도착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어섰고, 날씨는 더거칠어져 있었다.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덜컹거리는 창문, 펄럭이는 맥주 회사 달력, 무엇보다 지린내가 절어 있었다. 여기에 묵었던 사람들의 오줌은 훨씬 더 독한 모양이었다. 머리만 대면 바로 잠을 자는 내 동행은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창문 밖 어둠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온 몸이 긴장되어 자리를 펴고 눕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었다. 그와 나는 갑자기 어느 깊은 외딴 구석에 격리되고 절연되고 갇힌 것이다. 풍요롭고 안락하게만 느끼던 휴가지의 공간이 갑자기 사라지고, 잠들면 어두운 수렁에 빠질 것 같은 두려운 휴전 상태로 던져졌다. 장엄한 아포칼립스apocalypse의 스펙터클에 갇혀 날이 밝기를, 비바람이 잦아지기를 조용히 기다릴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 태풍으로 수천억 원의 재산 피해와 수백 명의 인명 피해, 그리고 수천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우리 사회는 매년 이와 비슷한 재해를 겪었고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다보니 매년 겪는 일쯤으로 생각하기도 했고, 어떻게 매번 똑같은 일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지 의아해하기도 했다. 건축 저널리스트로 일을 막 시작할 때 이 일을 겪다보니 건축가들이 제안한 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업을 찾아보기도 했다.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등 자원의 과소비로 인한 자연의 위협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 건축계는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확인했을 뿐이다. 2011년 3월 11일,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대재앙의 실체에 직면했다.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쓰나미는 후쿠시마 원전의 붕괴로 이어졌고, 아직도 진행 중인 이 재난은 가장 선진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내적 문제와 한계를 가장 묵시록적으로 드러냈다. 이 재앙은 일본 사회는 물론 국제 사회에 원자력에 대한 반성을 일으켰다. 일례로, 이와사부로 코소는 “지금껏 ‘인류의 진보’로 여겨지던 ‘장치’의 한 가지 도달점–에너지 공급의 효율화와 생산의 고도화, 정보·과학기술, 그것들과 복합적으로 얽힌 관료 기구와 시민사회–이 재해를 계기로 자기 붕괴”한 표시라고 이 재난을 진단했다. 건축가인 토요 이토도 “쓰나미 피해와 원전 사고라는 두가지 재해 모두가 인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사람과 공동체가 건축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그리고 집을 잃은 센다이 시 미야기노로 가서 참사를 함께 이겨낼 공동체를 위한 건축 ‘모두의 집Home for All’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게루 반은 이재민을 위한 임시 거주 공간 프로그램을 꽤 오랫동안 지속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정확한 상황을 공개하고 대처하기보다는 은폐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만, 일본 건축계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새롭게 변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환경과조경』 이번 호에 소개되는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도 매우 흥미로운 설계공모다. 주 정부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2012년 10월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한 뉴욕의 해변 지역을 미래의 재해에서 보호하고 거주민들에게 안전하고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기위해 시작되었다. 이를 구현하는 제안들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지역민이 참여해 만들어가고 있는데, 현재 OMA와 BIG 팀 등 건축가, 조경가, 엔지니어, 도시학자, 사회학자, 정치가 등이 한 팀으로 구성된 여섯 개의 협력적 팀을 최종 선정해 그들이 함께 이 지역의 새로운 청사진을 그려가고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 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라는 공감대가 정부와 시민사회에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재해 대처 능력이다. 참으로 답답하게 이번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의 붕괴, 민주주의의 타락, 그리고 사회적 재앙을 처절하게 목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망가뜨린 생태계를 복원하는데도 우리 건축, 도시, 조경 전문가들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4대강의 환경 문제가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그 심각성이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뒷짐을 지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그 환경 속에서 우리의 건축을 고민해야 하지만, ‘안일한 유토피아’ 담론의 종결자인 4대강 사업이나 원자력발전에 대해 새롭게 검토하자는 건축계의 적극적인 목소리와 구체적인 제안은 아직 요원하다. 뉴욕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Andrew Cuomo의 말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지구상의 많은 지역은 분명 대자연의 소유다. 어느 순간, 대자연으로부터, 당신이 이곳에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느낄 때가 올 것이다.” 박성태는 중앙일보 출판국에서 잡지 에디터로 일했다. 그 후 『인서울매거진』과 『공간』의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건축신문』, ‘건축학교’, ‘프로젝트 1’, ‘통의동집’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 [에디토리얼] 회복탄력성
    우리는 누구나 온갖 역경과 시련을 겪으며 살아간다. 자잘한 일상사에서도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다. 인간관계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갈등이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신체의 기능에 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가족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맞이하기도 한다. 갑작스런 지진이나 태풍이 한 개인의 일생과 사회의 역사 전체를 앗아가기도 한다. 그 극심한 고통과 좌절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삶의 역경과 시련을 이겨낼 잠재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최근의 심리학은 그러한 힘을 ‘리질리언스resilience’라 부른다. ‘회복탄력성’으로 번역되고 있는 리질리언스는 “원래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힘”을 뜻한다.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꿋꿋하게 다시 튀어 오르는 능력, 불행과 역경을 이기고 다시 일어서서 더 성장하게 하는 인간 내면의 신비한 힘을 설명하는 개념이 회복탄력성이다. 그런데 회복탄력성을 누구나 똑같이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무공처럼 강하게 되튀어 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유리공처럼 바닥에 떨어지는 즉시 산산조각나는 사람도 있다. 『회복탄력성』(위즈덤하우스, 2011)의 저자인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는 회복탄력성을 “마음의 근력”에 비유한다. “몸이 힘을 발휘하려면 강한 근육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이 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마음의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마음의 근육이 견뎌낼 수 있는 무게를 훈련을 통해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구부러질지언정 결코 부러지지 않는 회복탄력성을 길러나가는 사람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회복탄력성은 심리학과 교육학을 넘어 최근에는 경제학이나 안보 분야에서도 주목받을 만큼 널리 유행하고 있지만, 실은 생태학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전통적인 생태학은 생태계를 안정적이고 결정적이며 위계가 분명한 닫힌 시스템이라고 인식했지만, 현대 생태학은 생태계의 복잡성, 동적 변화, 지속적인 교란disturbance에 초점을 둔다. 즉 생태계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낭만의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는 교란에 의해 계속 망가지고 회복되며 적응해가는 열린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잠시의 집중 호우에 맥없이 초토화되곤 하는 우리 도시의 산과 강, 순간의 강풍에 형체도 없이 해체되는 우리의 자연 환경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태학자 홀링Crawford Stanley Holling은 회복탄력성을 “시스템의 지속성을 유지하고 변화와 교란을 흡수하고 상태 변수 사이에 동일한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의 정도”라고 정의한 바있다. 바꿔 말하자면, 회복탄력성이 높은 자연이나 환경의 시스템은 지진, 가뭄, 홍수, 태풍, 화재 등과 같은 예상치 못한 교란을 겪더라도 지속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심리학적 회복탄력성이 마음의 근력이라면, 생태학적 회복탄력성은 자연과 도시 환경의 근육인 셈이다. 이번 호에 싣는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은 계획과 설계를 통해 재난 지역의 회복탄력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지향한, 큰 의미를 지닌 프로젝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012년의 허리케인 샌디는 현대 도시 경제와 문화의 심장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을 강타함으로써 현대 문명이 자연의 재해에 얼마나 취약한지 적나라하게 알려주었다. 본문에서 유영수 소장이 예리하게 진단하고 있듯이, “‘리빌드 바이 디자인’이 재건 프로젝트를 통해 기상 재해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수해 위협을 완벽하게 차단하겠다고 공언했다면, 그것은 오만한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빌드 바이 디자인’은 현실적이고도 겸손한 지혜를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기상 이변이 현대 도시 문명의 통강한 근육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이 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마음의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마음의 근육이 견뎌낼 수 있는 무게를 훈련을 통해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구부러질지언정 결코 부러지지 않는 회복탄력성을 길러나가는 사람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회복탄력성은 심리학과 교육학을 넘어 최근에는 경제학이나 안보 분야에서도 주목받을 만큼 널리 유행하고 있지만, 실은 생태학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전통적인 생태학은 생태계를 안정적이고 결정적이며 위계가 분명한 닫힌 시스템이라고 인식했지만, 현대 생태학은 생태계의 복잡성, 동적 변화, 지속적인 교란disturbance에 초점을 둔다. 즉 생태계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낭만의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는 교란에 의해 계속 망가지고 회복되며 적응해가는 열린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잠시의 집중 호우에 맥없이 초토화되곤 하는 우리 도시의 산과 강, 순간의 강풍에 형체도 없이 해체되는 우리의 자연 환경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태학자 홀링Crawford Stanley Holling은 회복탄력성을 “시스템의 지속성을 유지하고 변화와 교란을 흡수하고 상태 변수 사이에 동일한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의 정도”라고 정의한 바있다. 바꿔 말하자면, 회복탄력성이 높은 자연이나환경의 시스템은 지진, 가뭄, 홍수, 태풍, 화재 등과 같은 예상치 못한 교란을 겪더라도 지속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심리학적 회복탄력성이 마음의 근력이라면, 생태학적 회복탄력성은 자연과 도시 환경의 근육인 셈이다. 이번 호에 싣는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은 계획과 설계를 통해 재난 지역의 회복탄력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지향한, 큰 의미를 지닌 프로젝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012년의 허리케인 샌디는 현대 도시 경제와 문화의 심장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을 강타함으로써 현대 문명이 자연의 재해에 얼마나 취약한지 적나라하게 알려주었다. 본문에서 유영수 소장이 예리하게 진단하고 있듯이, “‘리빌드 바이 디자인’이 재건 프로젝트를 통해 기상 재해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수해 위협을 완벽하게 차단하겠다고 공언했다면, 그것은 오만한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빌드 바이 디자인’은 현실적이고도 겸손한 지혜를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기상 이변이 현대 도시 문명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을 전제하고, 그로 인한 재난상황으로부터 도시의 회복 능력, 즉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점은 이 프로젝트가 동시대 조경, 도시설계, 도시계획 분야에 던지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보다 회복탄력적인 지역을 만들기 위해 함께 작업하자Working together to build a more resilient region”라는 모토를 공유하며 설계적 지혜를 모은 여섯 팀의 당선작을 꼼꼼히 살펴보는 일도 흥미롭지만, ‘리빌드 바이 디자인’ 설계공모의 프로세스 자체가 회복탄력적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4단계에 걸친 다단계 공모 과정, 학제간 전문가 집단의 협력, 공공 기관의 리서치 지원, 지역 사회의 참여, 기업 재단의 후원 등이 정교하게 결합된 공모 프로세스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욕망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교란되기 마련인 대형 프로젝트의 운명을 회복탄력적으로 지탱시켜 준다. 비평가 줄리아 처니악Julia Czerniak은 『라지 파크』(도서출판 조경, 2010)에서 성공적인 대형 공원의 조건으로 ‘가독성’과 ‘회복탄력성’을 꼽은 바 있다. 다운스뷰 파크나 프레시 킬스와 같은 2000년대 초반의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 조경의 쟁점 중 하나로 부각되기 시작한 회복탄력성은 이제 ‘리빌드 바이 디자인’을 통해 본격적인 설계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압축적인 근대화와 경제 성장이 낳은 일상적위험이 상존하는 우리 사회―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대표적인 ‘위험사회’―의 현실은, 조경가의 전문성이 존중되지 않고 비정상적일 만큼 많은 정치적·사회적 간섭과 교란을 겪는 우리의 설계 환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고 진화할 수 있는 회복탄력적 설계를 요청한다. 자연과 도시 환경의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는 설계적 지식을, 회복탄력적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실천적 지혜를 탐구할 시점이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헤치며 ‘리빌드 바이 디자인’을 리뷰해주신 유영수 소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빼놓을 수 없다. 봄날이 갈 무렵 합류한 조한결 기자에 이어, 조경학을 전공한 양다빈 기자가 한여름을 열며 편집부의 새 식구가 되었다. 젊은 그들의 열정과 능력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환경과조경』은 물론 한국 조경의 근력 또한 튼튼해지리라 믿는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내 인생의 책
    이번 호 특집 ‘활자 산책’을 준비하며, 주변 지인들에게 ‘내 인생의 책’ 다섯 권씩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10분 만에 답변을 준 이도 있었고, 시간을 좀 달라며 마감 시한을 확인한 이도 있었다. 몇몇은 실명이 밝혀지는 걸 꺼려했다. 은근히 부담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떤 이는 ‘내 인생의 책’의 기준을 되묻기도 했다. 인생의 어떤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책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뻔한 답변을 주기도 했고, 질문을 듣자마자 곧바로 떠오른 책이 바로 ‘내 인생의 책’이 아니겠냐는 답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보내온 도서 목록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짧은 선정(?) 이유를 보내온 이들도 있었는데, 그 몇 줄에 인생의 굵직한 순간이 담겨 있기도 했고, 책 한 권으로 비롯된 독특한 경험을 엿볼 수도 있었다. 같은 책을 비슷한 이유로 좋아한다는 대목을 읽고 나서는 한 뼘쯤 그 사람과 가까워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시큰둥했던 책을 색다른 이유로 좋아한다는 이도 있었다. 연배가 비슷한 경우는 교점이 상당했다. 잡지와 단행본 필자로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부탁했던 탓인지, 글쓰기와 관련된 코멘트도 꽤 있었다. 다른 이에게 ‘내 인생의 책’을 부탁하며, 나만의 리스트도 한번 추려봤다. 스스로에게 약간의 시간을 주고, 생각나는 책 제목과 이유를 한 줄씩 적어내려 갔다. 어렵지 않게 읽은 책 3권과 만든 책 2권을 꼽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만든 책 2권이 영 찜찜했다. 곧바로 이 책도, 그 책도, 저 책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책 50권이라면 몰라도 5권은 도저히 못 고르겠다. 성서 이외에 4권은 도저히 선정할 수 없어서 고심끝에 포기했다”는 어느 연재 필자의 답변이 십분 이해되었다. 직접 편집한 책을 제외하고, 다시 후보를 추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좀 더 여유를 갖고 독서의 추억을 되짚어 나갔다. 책장을 들여다보며, 제법 꼼꼼히. “초등학교 5학년 때 밤새 읽은 최초의 어른 소설책”이라는 이유와 함께 『수호지』를 꼽은 이도 있고, “고교 시절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에 실려 있는 ‘들소’를 읽고 세상에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이 있는지 처음 알았고, 고3 때에는 이 소설의 모티브를 베껴서 습작이랍시고 써본 기억이 난다”는 답변도 있었건만, 나는 아무리 기억을 짜내도 대학 시절 이전에 읽은 책 가운데에는 영 떠오르는 책이 없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고학년 때 집에 있던 『동아학생대백과사전』을 1권부터 12권까지 그냥 쭉 읽었더니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책장에 집중했다. ‘언제부터 나만의 책장이 있었더라’ 그러고 보니 대학입학과 함께 부모님의 집을 떠나 살기 시작한 스무 살 이전에는 나만의 책장이래야, 참고서 따위만 빽빽이 꽂혀 있던 아주 빈약한 것밖에 없었다. 거실에는 아버지의 책과 전집류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번듯한 책장이 있었지만, 나의 것은 아니었다. 군대 시절을 제외하고, 결혼 전의 6년 동안 내 자취방 한 구석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던 책꽂이는, 값싼 칼라박스(?)였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던 내용물만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마치 보물창고를 알려주듯, 자신의 단골 헌책방을 소개해준 선배를 따라나서 수집한 책은 물론이고, 창간호부터 폐간 때까지 정기구독했던 영화 잡지 『키노』를 비롯해서, 한 권 한 권에 사연이 깃들어 있던 책들이었다. 결혼 후에도 한동안 그 책들은 책장을 옮겨가며 살아남았다. 점점 책이 늘어나면서, 책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붉은색 포장 끈으로 묶인 상태 그대로 집안 한 구석에 처박혀 있었을지언정. 상황이 갑자기 달라진 시점은 아이가 태어난 후였다. 집안에 있던 책장의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나와 아내의 책은 붉은색 포장 끈의 포박을 피하지 못했고, 상당수의 책은 아예 퇴출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게다가 아이가 커갈수록 구조조정의 횟 수도 늘어났다. 꺼내기 쉽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한 책장은 모두 아이의 책이 차지했고, 어렵게 목숨을 부지한 나와 아내의 책은 구석진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자주 보는 책(다시 말하면 인용을 많이 하는 책)은 사무실의 내 자리와 가까운 곳에서 볕을 잘 쬐고 있지만 말이다. 때문에 지금 나의 책장에서 살아남은 책은 나의 독서 경험을 시대순으로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 인생의 책’ 후보로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녀석들이다. 그래서 책장을 몇 번이나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실 굉장히 낯선 책도 있었다. ‘어떻게 이런 녀석이 아직까지 살아남았지’ 반면 몇 번이고 곱씹어 읽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 책도 있었다. 맨 처음 고른 3권은, 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알려준 김현의 『한국 현대 문학의 위상』, 가장 사랑하는 소설집인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 공간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핀 조병준의 『나눔 나눔 나눔』이었다. 책장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여기에다가 고종석의 『코드 훔치기』와 김규항의 『B급 좌파』를 추가해서 5권의 리스트를 완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생뚱맞지만, 역삼동 『환경과조경』 사무실의 책장 귀퉁이에서 발견한 인연으로 지금까지 내 책장에서 장수하고 있는 『로커스1: 조경과 문화』와, 그 잔잔한 울림이 지금도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조은의 『벼랑에서 살다』, 독특한 스타일과 글의 호흡이 아름다운 이수학의 『태도: 조경·행위·반성·시작』을 비롯해서 갑자기 툭툭 튀어나온 책들이 너무 많은 까닭이다. 역시 질문을 받자마자 떠올린 책들이 ‘내 인생의 책’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책장의 변천사를 돌아본 것부터 독서 경험을 되돌아본 것까지 모두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여행’, ‘내 인생의 공원’ 따위를 꼽아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혹 이 글을 읽는 자리의 가까이에 자신만의 책장이 있다면, 한번쯤 찬찬이 들여다보시길 권한다! 분명 시간 낭비는 아닐 것이다.
  • 조경학도의 여름나기 2014 제21회 조경디자인캠프
    지난 7월 14일부터 25일까지 한국조경학회가 주최한 2014 조경디자인캠프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캠프는 이유미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가 위원장을 맡고, 조동범 교수(전남대학교),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 최정민 교수(순천대학교)가 운영위원을 맡았다. 주제는 ‘서울성곽,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24개 대학 45명의 학생이 3명씩 팀을 이루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성곽, 즉 한양 도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철거되거나 훼손되었다. 그간 훼손된 문화재를 중건하는 과정에서 끊어진 구간의 연결에 치중하다 보니 현재의 삶과 유적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각 스튜디오는 성곽이 소실된 구간을 포함하는 광희문, 혜화문, 돈의문을 대상지로 정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번 조경디자인캠프는 세 개의 스튜디오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손용훈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와 윤희연 박사(하버드대학교)가 튜터를 맡은 스튜디오 A는 장충체육관과 광희문을 대상지로 하여 한양 도성-장충체육관-광희문 구간을 잇는 도시 오픈스페이스 계획·설계 과제를 진행했다. 한양 도성의 흔적이 소실된 일상생활 공간인 대상지의 해석, 그리고 방문객과 생활자의 시점을 함께 고려한 풍경 창조에 주력했다. 민병욱 교수(계명대학교)와 김형진 교수(캔자스 주립대학교)가 담당한 스튜디오 B는 숙정문과 혜화문 사이를 대상지로 택하고 모뉴먼트monument와 일상성everydayness을 주제로 정했다. 유적으로서 성곽의 모습(과거)과 도시민의 일상적 삶과 경험(현재) 사이의 상호 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 성곽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스튜디오 C는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와 최혜영 팀장(West 8)이 튜터를 맡았는데, 숭례문과 돈의문 터사이를 대상지로 과제를 진행했다. 주제는 ‘강령술’로, 두 개의 ‘영매’를 통해 죽은 그(성곽)를 나(서울)의 현재에 되살려낸다는 의미다. 대상 구간은 성곽 소실이 심하며 성곽이 있던 자리에는 도로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대상지 내에 성곽을 재해석하여 재현하는데 영감을 주는 영매는 예술 작품이다.
    • 이현아
  • 칼 푀르스터 재단 주최 설계 워크숍 정은하, 주소희, 이형관의 ‘Flower Flow’ 장려상 수상
    독일의 칼 푀르스터 재단은 지난 8월 3일부터 8일까지 6일간 2017 베를린 국제정원박람회 주최측과 바바리언 가든 클럽, 베를린 공과대학교의 협조를 받아 조경학과 학생들을 위한 설계 워크숍을 개최했다. 30명의 학생들이 2~3명씩 그룹을 지어 2017년 정원박람회의 일부 구간을 대상으로 기본구상부터 식재설계도 작성까지의 설계 작업을 진행했다. 칼 푀르스터 재단이사들의 지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심도 있는 작업을 위해 독일 학생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고정희 대표(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가 지도를 맡기로 하고 한국학생 3인으로 구성된 1팀을 참가할 수 있게 했다. 지원자 중 정은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주소희(서울시립대학교졸업), 이형관(서울시립대학교 졸업)이 선정되어 워크숍에 참가했다. 지도를 맡았던 고정희 대표는 “실제 시공이 될 것을 전제로 하여 과제가 주어지며, 공간 디자인과 식물 디자인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식재 디자인의 최신 경향이 점점 더 표현주의 성격을 강하게 보이고 있는 추세여서 앞으로도 학생들의 예술적 소양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번 워크숍의 특징을 밝혔다. 고 대표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은 공간 설계 면에선 거의 최고점수를 받았지만 식재디자인이 다소 미흡해 장려상에 머물렀다. 본지는 정은하 씨로부터 작품에 대한 소개 글을 전달받아 수록한다. - 편집자 주 칼 푀르스터 재단에서 개최한 워크숍은 포츠담의 칼푀르스터 정원과 베를린의 마르찬 공원Marzahn, 그리고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 설계실에서 진행되었다. 우리 3명은 한국에서 식물과 식재 패턴에 대한 경향을 미리 함께 공부하고 워크숍에 참가했다. 6일 동안 다양한 식재 설계 경향에 대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한 팀당 하나의 패널을 만들어 제출했다. 우리 팀의 설계 콘셉트는 ‘Flower Flow’다. 2017베를린 국제정원박람회 부지는 기존 마르찬 공원의 주출입구와 외부 초원이 연결되는 공간이다. 도시와 자연, 서로 다른 두 공간의 특징이 함께 읽히도록 도로와 건물로 단절된 공간을 식재 설계로 연결했다. 공간적 전이와 시간적 전이라는 흐름을 통해 공원 밖의 초원과 정원 내부의 평면적 공간을 스펙트럼처럼 연결해 사람들이 식재 패턴을 따라 자연스럽게 전시회장으로 들어올 수 있게 유도했다. 정원에서 자연으로 넘어가는 식재의 흐름이 유럽 정원 양식의 시간적 변화와비슷하게 느껴졌다. 식재 계획을 통해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두 공간과 시간의 흐름은 평면적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보인다. 정원에 존재하는 수 공간의 물 흐름을 자연으로 이끌어내어 상징적인 조형물을 초원에 위치시키고, 정원의 연장을 보여주고자 했다. 물이 식재와 함께 공간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정원의 수 공간은 인위적이지만, 초원의 수 공간은 경사면을 따라 자연스럽게 곡류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는 동양에서 바라보는 물의 자연스러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전체 공간의 식재는 야생과 전이 공간 그리고 정원으로 나뉘지만, 같은 식물 종을 선정해 각각 다른 공간에서 연결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전이 공간에서 야생과 정원의 교차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 설계의 핵심이다.
    • 정은하
  • 환경 복지, 교육에서 실천으로 시민조경아카데미 지난 1년 들여다보기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을 통해 시민이 주도하는 도시 녹화사업을 시작했다. 3월 20일부터 4월 30일까지를 식목월로 선포해 다양한 나무심기 행사를 개최했고, 주민참여 골목길 가꾸기 사업, 주요 도심부 꽃길 조성 사업 등을 통해 시민의 손으로 생활권 주변의 미관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기존에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와 서울그린트러스트가 시행해온 자투리땅을 녹색으로 바꾸는 공원화 운동과 함께 ‘환경 복지’ 실천에 힘을 보태고 있다. 캠페인의 성공 여부는 시민참여에 달려 있는데, 서울시는 그 답을 교육에서 찾았다.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을 추진하는 동시에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고자 했다. 그 시작점에 ‘시민조경아카데미(이하 조경아카데미)’가 있다. 지난 7월 29일 세 번째 조경아카데미가 막을 내렸다. 작년 7월 첫 선을 보였으니 만 1년이 지났다. 2013년 상반기와 하반기, 그리고 2014년 상반기 매 강연마다 200여 명의 시민이 수강했고, 약 500여 명이 수료했다. 조경아카데미는 서울시와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이하 나눔연구원)이 정원 문화 이해 증진과 시민 녹화 의식 함양을 위해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나눔연구원이 강연을 기획해 커리큘럼과 강사진을 꾸려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조경 강좌 프로그램을 서울시에 제안했고,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여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면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당초 나눔연구원은 3개월에 걸쳐 진행하는 1회성 프로그램으로 기획했으나 제안을 받은 서울시에서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강연을 진행하는 정기 프로그램으로 이를 확대했다. 지난 4월 30일에는 서울시와 나눔연구원이 조경아카데미 운영 MOU를 체결해 내실있는 프로그램 운영 기반 마련을 약속했다. 실천으로 이어지는 조경 교육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조경 프로그램을 지자체가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는 건 고무적인 일인데, 그 배경에는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이야기가 있다. 사실 조경아카데미가 시작되기 직전, 서울시 푸른도시국은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조경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2014년부터 상, 하반기로 나누어 4개월씩 실내·외 정원 조성, 실내식물과 조경수의 유지 관리 및 기타전문 분야의 이론과 실습 교육을 병행해 연간 300명의 ‘서울 가드너’를 양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던 차에 2012년에 나눔연구원이 발족하고 지난해 초 재단법인 인가를 받아 본격 활동을 시작하면서 조경아카데미를 제안한 것이다. 서울시는 2014년을 목표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나눔연구원이 프로그램을 마련해 계획보다 시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첫 아카데미가 성료하고 강연이 지속적인 호응을 얻으며 3회째를 마감했다. 조경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시민들은 보다 심도 있는 교육을 받길 원했고, 서울시는 당초 기획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해 시민정원사 양성 과정을 만들어 지난 8월 8일에 첫 수료식을 치렀다. 서울시는 조경아카데미가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민들이 강연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 녹색 문화 확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수료생들은 자체적으로 원우회를 조직해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있는데, ‘서울광장 꽃 심기’, ‘중랑천 녹색브랜드화’ 등에 참여하고 골목길 가꾸기 사업의 대상지를 할당받아 실제로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서울시가 공원 관리의 한정된 인력과 예산을 극복하기위해 추진해온 공원녹지 돌보미 사업에도 원우회가 투입되어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생활권 주변 녹지를 전담하고 있다. 시민참여 녹화 사업의 모니터링도 담당한다. 조경아카데미를 수료한 한 시민은 “강연으로만 끝났다면 별 의미가 없었을 것 같다. 조경아카데미 이후 사람들이 모여 조경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도시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높은 프로그램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조경아카데미는 녹색 문화 확대를 위한 시민 교육부터 시작해 참여를 끌어내고, 사업의 실행 및 모니터링, 관리까지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행정의 우수 사례라 할 만하다. 대중이 공감하는 조경에 대한 고민 나눔연구원은 조경인의 재능을 공유함으로써 지속가능한 환경 조경 복지의 실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재능공유의 대상을 크게 실무에서 활동하는 조경인, 조경학도, 일반인 이렇게 세 그룹으로 보고, 이들이 조경을 통한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조경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경의 영역 중 대중에 잘 알려진 분야를 꼽자면 아무래도 정원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때문인지 조경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이 정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해 정윤희 사무국장(환경조경나눔연구원)은 “아직까지 시민들이 조경을 통해 기대하는 내용은 정원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커리큘럼을 짤 때 이를 간과할 수 없다”
  • 완화해야 할 규제의 대상인가, 최소한의 안전장치인가 ‘주택건설기준 규정·규칙’ 일부개정안 입법예고
    정부가 주택건설 부문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나섰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시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주택 건설 규제를 정비하고 다양한 수요에 맞는 아파트 건설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규칙’ 일부개정안(이하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 7월 24일부터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아파트 내 의무 주민공동시설 설치 기준을 완화하고, 공동주택 조경 의무 면적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토부에서 추진 중인 ‘규제총점관리제’와 1차관이 주재하는 ‘규제개혁지원단 회의’를 거쳐 이번 개정안이 결정되었는데, 김경식 1차관은 “기업 투자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나 경제적 부담 요소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과거에 도입된 획일적인 규제를 달라진 시대 상황에 맞게 손보겠다는 취지와 함께, 기업 투자를 활성화 하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조경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중복 규정 정비를 이유로 ‘조경 면적’ 폐지 개정안은 “조경 면적은 ‘건축법’에 규정된 바와 같이 조례에 따라 지역 특성에 맞게 확보·설치되도록, 관련 규정(단지 면적의 30/100 설치)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법령과 중복·추가 규정된 사항을 정비”한다는 취지다. 이에 대한 조경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공동주택은 건물과 외부 공간으로 이루어지는데, 규정이 사라진다고 녹지가 전부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생활권 주변의 녹지율이 지금보다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주거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도 있다. 현재 LH가 주관하는 임대주택 사업은 제도적으로 정해진 기준보다 조경 면적이 높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의 경우는, 공동주택 단지 내 조경 면적 비율이 기준을 훨씬 웃도는 경우가 많다. 입주자를 모집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을 갖추어야하기 때문이다. 의무 규정이 없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그러나 ‘대형 건설사와 중소 건설사’,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녹지를 비롯한 주거 환경의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있다. 조경 면적을 지자체에 일임할 경우, 오히려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지자체 입장에서는 유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예산을 사용하지 않고도 공공주택이나 건축물 주변에 조성되는 녹지 비율을 늘림으로써 도심 녹지율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경 관련 공무원들은 “법적으로 규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지자체에 일임할 경우, “기준을 담은 조례 자체를 전부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혼란이 예상되고, 상당수의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기준을 만들기 위한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기존의 관련법과 규정이 사실상 가이드역할을 해온 상태이기 때문에 행정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조경가는 “지금 당장은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공동주택 단지 내에 일정 조경 면적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단지 면적의 30/100’ 조항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피력했다. “대형 건설사의 경우도 지금은 기준 이상의 조경 공간을 도입하고 있지만, 입주자들이 원하는 트렌드가 달라지기 시작하면 급속히 조경 공간 축소가 이뤄질 수 있고, 주거 환경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의무 주민공동시설 설치에 예외 허용 이번 개정안에서 또 하나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변화하고 있는 주택건설 환경과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주택 건설”을 유도하기 위해, ‘경로당, 어린이 놀이터, 주민운동시설, 작은도서관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규정을 포함시킨 점이다. 이용률과 선호도가 낮아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는 시설을 최소화하고, ‘소비자의 선호도에 따라 자율적이고 특화된 단지 설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한 것인데, 입주 후에도 입주민의 2/3 이상이 동의하면 행위신고를 통해 용도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입주 후 추가 비용이 소요되는 용도 변경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다수의 선택을 근거로, 경로당 없는 아파트 단지, 어린이 놀이터 하나없는 아파트 단지도, 얼마든지 생겨나게 되었다. 사업성에 따라 오히려 늘어나는 시설이 생길 수도 있지만,정반대의 상황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때론 기업에 이익이 되는 시설 위주로 설치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다중의 선택으로 소외받는 개인이 생길 수 있다. “구매자가 필요에 의해 선택권을 갖는 건 당연하지만, 불이익을 받는 계층이 생기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할 이유다. 취재 도중, 어린이 놀이터와 관련해서는 낭만적이지만, 순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의견도 접했다. “아파트는 전월세 입주자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구성원 변경 비율이 상당하다. 입주 당시 중년층 이상의 구성이 압도적이어서 어린이 놀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 새로 이사를 오게 된 아이가 놀이터하나 없는 단지를 보고 얼마나 속상해할까?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유아숲체험장이나 생태놀이터 등, 아이들의 놀이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집과 가장 가까운 단지 내의 놀이터를 의무 설치에서 제외한 것을 문제로 지적한 이도 있다. 감상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아이들을 스마트 폰에서 구해내기 위해서라도 실외 놀이 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의무 시설 예외 조항과 관련해서는, LH 관계자의 생각도 들어보았다. “아파트마다 구성원의 특성이 달라, 필요한 시설이 다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똑같은 잣대를 일괄 적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규제가 될 수 있다. 의무 주민공동시설 설치에 예외 조항을 두는 것은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데 대체되는 자리에 녹지가 확대되면 더 좋은 환경이 조성될 수 있지만,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 예로 나무를 한 그루도 심지 않고 외부 공간을 전면 주차장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면적 대비 저비용의 시설로 대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외부 공간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맞바꿀 수 없는 주거 환경의 가치 이번 개정안의 취지 중 하나가 ‘기업 투자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규제의 완화’임을 앞부분에서 소개한 바 있다. 조경 산업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 역시 기업이다. 이번에 완화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된 규제(?)가 지탱하고 있는 시장도 분명 존재한다. 정부의 관심이 대기업 투자에만 집중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주거 환경의 질과 직결되는 조경 면적이나 놀이터가 규제의 대상인지도 의문이다. 당장은 큰 변화가 없고, 오히려 새로운 개정안 덕분에 입주자가 더 반기는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맞바꿀 수 없는 가치도 있기 마련이다. 또한 법과 제도는, 때로 아주 중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을 한다. 규제 완화의 파도가 ‘건축법’ 제42조에서 정하고 있는 ‘대지의 조경’ 항목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무리 거대한 둑이라도 아주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 무너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다. 국토부는 이번 입고예고 기간 동안 폭넓은 의견 수렴과정을 거칠 계획임을 밝혔다. 모쪼록 이번 개정안이 ‘주민공동시설의 자율적인 이용’과 ‘불합리한 규제 완화’뿐만 아니라, ‘공동주택단지의 주거 환경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공감대 형성의 기회도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자연과 기술의 공존, 내일의 서울을 엿보다 2014 Bio-Digital City
    지난 8월 5일부터 17일까지 2014 바이오 디지털 시티Bio-Digital City 한국·프랑스 국제 행사가 개최되었다. 2012년 파리의 팔레 드 도쿄(주제: What does the future hold for living and digital technologies in the city?)에서 최초로 개최된 바이오 디지털 국제행사는 2013년 파리 라빌레트 국립과학관(주제: Invention of an international center of experiments on high-tech urban agriculture)에 이어 2014년 서울시 시민청(주제: Tomorrow’ Seoul Project, urban agriculture architecture)에서 열리게 되었다. 서울 특별시와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공동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 및 서울시 시민청과 주한 프랑스문화원이 공동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건축, 도시, 조경 등의 디자인 전공자와 첨단 미디어 전공자가 함께 서울의 미래도시 환경을 고민하는 10일간의 MediArchi(Media +Architecture) 워크숍이 열렸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 공개되는 자연과 기술의 공존에 관한 전문가 심포지엄 및 Bio-Digital Art & Architecture, 5 Artists + 5 Architects 전시회가 함께 개최되었다. MediArchi Workshop ‘내일의 서울 프로젝트, 도시농업건축’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워크숍에는 프랑스 라빌레트 국립건축대학장 마제랑Jean Magerand 교수, 프랑스 몽펠리에 국립건축대학 클레르 베이Claire Bailly 교수, 프랑스 건축사회 백승만 회장(영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및 전문 튜터 등 10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그리고 40여 명의 디자인 및 미디어 전공의 국내외 학생이 참가했다. 당산, 여의도, 이촌, 압구정을 대상지로 한 4개 조는 각각 2~3개 팀으로 구성되어 10일간의 워크숍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워크숍의 마지막 날인 14일, 11팀이 최종 결과물을 3~5분의 동영상과 3D 프린터 모형으로 제출했고 심사위원들은 3팀을 선정해 시상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상은 도시 인프라에 의해 단조로워진 도시 경관에 다양성을 부여하고 자동화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Striped Farming City 팀(Emilien Gohaud, 오하나, 이서영)이 수상했다. 주한 프랑스문화원장상은 큐브 형태의 요소를 도입하여 농업을 도시로 끌어들인 Weave 팀(김지은, 백정기, 정유진, 현진선)이 수상했으며, 주한 프랑스대 사상은 주거, 상업, 문화 및 농업을 결합한 대규모 단지를 설계한 Turf City 팀(김도희, 배진솔, 신용환, 이희승, 정태권)이 수상하였다. 수상한 작품은 2015년 파리 라빌레트 국립 과학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최종 결과물을 동영상과 3D 프린터 모형으로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인 방식이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행사를 주최한 백승만 회장은 “이번 워크숍은 건축과 첨단 미디어 전공자의 융합을 시도하고 3D 프린터와 동영상 작업을 활용한 보다 진보적인 기술을 통해 건축 작업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결과물은 신선했고, 패널보다 받아들이기 수월한 부분도 있었다. 다만 10일이라는 짧은 기간과 결과물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시각적 자료를 생성할 시간을 오히려 아이디어를 다듬는 데 할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행사는 ‘도시농업건축’을 통해 서울의 도시 환경을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이 ‘도시농업건축’이라는 용어가 다소 생소하다. 도시농업은 그 환경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지만 크게는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작물 생산 활동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동체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한다. 도시농업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텃밭이 될 수도, 건물옥상이나 내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도시 생활 공간에 적합한 주거 기능과 농업 기능이 결합된 새로운 건축 유형”이라는 주최 측의 설명은, 건축에 도시농업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옥상녹화나 수직 농장Vertical Farm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학생들도 도시농업을 건축과 결합함에 있어서 도시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적극 활용하기보다는 주로 생산적 측면이나 환경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는 한계를 보였다. 하지만 도시농업을 활용하여 한강변의 재생을 고민하는 등의 시도는 인상적이었다. Bio-Digital Art & Architecture Exhibition 국제워크숍과 함께 개최된 ‘Bio-Digital Art & Architecture’ 전시회에서는 국내 예술가 김진아, 김형기, 오화진, 이병찬, 최우람과 건축설계사무소 dmp, KyOsks, SCALe, System LAB, Unsangdong이 ‘바이오 디지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자리에 모였다. 작품은 8월 5일부터 17일까지 13일간 서울시 시민청지하 1~2층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는 자연과 기술의 융합을 고민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예술과 건축에 바이오 디지털 요소를 결합하여 또 다른 새로운 기술과 생물학적 형태를 표현하는 방식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다만 전시장 내 작품의 배치가 산만하고 설명이 부족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연과 기술의 공존 바이오 디지털 국제 행사는 프랑스와 한국 정부의 지원을 통한 국가 간 협력기반 조성사업STAR program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국제 행사에 이어 2015년 파리 라빌레트 과학관 국제 행사가 기획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미래 도시환경에 대한 양국 간의 교류를 증진시켜 나갈 계획이다. 최근 ‘자연과 기술의 공존’이라는 이슈는 지속가능성 및 회복탄력성 등의 키워드와 결합되어 국제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앞으로 계속될 바이오 디지털 시티 국제 행사에서 자연친화적 미래도시 환경의 새로운 실마리를 발견하길 기대해 본다.
    • 우성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