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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설록 티뮤지엄 및 이니스프리 제주 하우스 Osulloc Tea Museum & Innisfree Jeju House
    오설록 티뮤지엄은 제주도 중산간 지역 중에서 비교적 낮은 곳에 위치한 차나무 재배지 서광다원 영역에 만들어진 녹차 박물관이다.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하는 이 녹차 전시장은 1970년대부터 녹차 밭을 개간한 역사를 소개하고 녹차와 관련된 내용을 전시한 곳이다. 이와 함께 관광객에게 제품을 판매하고, 카페의 기능을 겸하는 상업 공간으로 활성화된 곳이다. 서광다원의 면적은 약 24만평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원래 이 장소는 박물관과 카페 기능, 그리고 전망대를 포함한 건축물과 그 외부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약간 떨어진 위치의 현재 이니스프리 하우스 주변에는 직원이 사용하는 박물관의 부속동이 있었다. 늘어나는 방문객의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면적이어서 시설의 증축이 불가피했고, 서광다원 전체 영역에 대한 마스터플랜 수립 차원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수차례의 기본계획 조정 과정을 거쳐 2011년에 티뮤지엄과 이니스프리 하우스에 대한 조경 설계를 진행했다. 티뮤지엄의 카페 영역 일부를 증축하고 기능 없이 방치된 파빌리온 영역에 차 문화 교육과 발효차 관련 전시를 담당하는 티스톤 하우스를 신축했다. 부속동이있던 곳에는 이니스프리 제품 홍보와 카페 기능을 담당하는 이니스프리 제주 하우스와 부속동을 신축했다.건축물 한 동의 증축과 세 동의 신축은 매스스터디스의 조민석 소장이 맡았다. 이 계획은 주변을 아우르는 조경 공간의 재정비를 포함하고 있다. 조경 설계에는 몇 가지 난제가 포진하고 있었다. 먼저 전면 도로의 확장이다. 티뮤지엄에 접근하는 도로가 주변 여건의 변화로 기존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되었고, 자전거 도로까지 포함하면 그 폭이 무려 세 배정도 넓어진 것이다. 이는 티뮤지엄과 녹차 밭을 완전하게 갈라놓을뿐 아니라, 소음을 유발하는 문제도 심각했다. 두 번째는 밀려드는 관광객을 수용할 주차장을 확장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녹차 밭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데, 녹차 밭은 이곳의 가장 중요한 경관 자원이기도 하며, 넓은 주차장은 그만큼 경관적으로 부정적인 요소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외부 정원에는 수많은 조경적 장치가 빼곡히 들어차있었기 때문에 이 장치를 어느 선에서 정리할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조경 설계 정영선(조경설계 서안),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 조경 설계 담당 디자인 스튜디오 loci(강영걸, 윤일빈, 김수민, 장수연) 조경 감리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조경 시공 이은귀(대산조경) 건축 설계 조민석(매스스터디스)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면적 10,000m2 완공 2012
    • 박승진 / 조경설계 서안 + 디자인 스튜디오 loci
  • 콘텍스트와 패턴 사이, 그의 미니멀리즘
    1 경관의 힘, 남해에선 누구나 마음을 놓을 수밖에 없다. 쪽빛 바다에 반사되는 따뜻한 햇살이, 다도해의 훈풍이 실어 나르는 대양의 숨결이 우리를 무장 해제시킨다. 바다와 하늘을 향해 끝없이 열린 자유의 시선이, 부드럽고 온화한 자연과의 밀착감이 일상의 번잡함을 마취시킨다.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은 이런 축복받은 대지에 들어선 최고급 골프 리조트다. 사이트의 조건이 이처럼 완벽에 가깝다는 것은 조경가의 로망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무게의 제약일 수도 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고급과 품격, 사우스케이프를 방문하면 누구나 이 두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반발심이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호화나 사치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수려한 경관 자체가 그럴 뿐 아니라, 골프장 역사상 최고의 예산으로 소위 ‘작품’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 조민석(클럽하우스)과 조병수(호텔)에게 무한의 지원을 한 클라이언트의 의지도 그렇다. 물론 두 건축가가 빚어낸 결과물도 상상 이상이다. 원경에서 보면 땅으로 포복하며 지형에 그 존재를 숨기지만, 근경에서는 질료의 물성과 양감이 구조미와 결합하여 또 하나의 자연이 오롯이 구축된다. 삼차원 곡선의 백색 콘크리트 지붕과 중후한 트래버틴 대리석 벽으로 구현된 조민석의 클럽하우스는 바닷바람과 조망을 만끽하게 한다. 노출 콘크리트 덩어리를 치즈처럼 썰어 놓은 조병수의 호텔동은 해안선의 흐름과 호흡을 맞춘다. 동과 동 사이의 캔틸레버 아래로 리아스식 해안과 쪽빛 바다가 고개를 든다. 태생부터 명품인 이런 조건 속에 던져진 조경가는 그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취재 첫 날, 남해의 경관에 취하고 사우스케이프의 품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조경가 박승진이 겪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난망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조건의 존중, 자연과의 조화, 건축의 해석과 수용, 이런 지고의 가치에 기대 애써 선한 척하는 것 외엔 별다른 묘수가 없었을 것 같다. 2 정영선의 조경설계 서안에서 성장한 후 2007년에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loci로 독립한 박승진은 실무 조경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다량의 글을 발표하며 자신의 조경론을 펼쳐왔다. 그의 글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것은 조경이라는 행위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사고이며, 그 중심에는 ‘자연’이 놓여 있다. 그는 조경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행위”이므로 조경 행위의 출발은 “결국은 조경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1에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자답한다. “조경의 본질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듬고 삶을 보살피는 것이며, 이것은 … 자연의 본성과 닿아 있다. 자연은 모성적이어서 생명을 보살피고 인간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시킨다. 모든것이 스스로 조화를 이루며 힘의 균형을 유지한다. … 자연의 본성을 닮은 ‘보살핌’의 조경을 통해 세상과 조경이 소통하는 희망의 통로를 발견할 수 있다.”2 여기서 그는 자연을 보살피는 것이 조경의 역할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경이라는 행위 자체가 자연의 고유한 성질처럼 무언가를 돌보고 보살피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 자연과 조경의 관계에 대한 그의 시각은 매우 명료하다. 몇 부분만 더 인용해 보자. “조경이 다루는 소재는 대부분 자연에서 얻어 온 것들이며 그것들은 스스로 생육하고 번식해 나간다. 조경가는 이 위대한 존재들이 생육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주고 보살피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조경은 자연과 더불어 시간을 엮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디자인과 다른 본질적인 차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3 “오늘날 도시 문명의 표상은 발기된 남성의 성기로 상징화되는 수직적 건축 구조물들이다. 이 구조물들은 도시의 풍경을 장악한다. 자연(여성)과의 정서적 결합을 외면하고 허공을 향해 욕정을 뿜어낼 태세다. 항상 어디에서나 오브제처럼 빛나는 존재여야 하며, 오만하게 땅을 굽어본다.”4 반면, “조경의 공간은 땅과의 밀착을 통해 자연과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한다. 돌출된 형태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남성 성기와는 다르다. … 이렇듯 우리가 다루는 자연은 여성성 혹은 여성 그 자체이다.”5 이러한 박승진의 조경론을 읽으면 자칫 그의 작업이 목가적인 픽처레스크picturesque풍이거나 잡풀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연출하지만 전혀 손댄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정영선식 조경invisible landscape 또는 젠스 젠슨Jens Jensen의 ‘프레리 스타일prairie style’에 경도되어 있을 것이라고 오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작업은 “흙, 풀, 물, 돌, 철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자연의 물질과 그 물성을 잘 이해하고 그 결합 관계를 해석하여 구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박승진식으로 표현하면 “물성과 감성 사이”의 설계다.6 그가 말하는 조경의 역할, 즉 “보살핌”은 바로 그 사이에서 작동한다. 그의 작업 속에서 보살핌은 주어진 조건에 대한 조경가의 적극적 개입이다. 그의 용어를 빌리자면 조건은 “콘텍스트”이고, 개입은 “패턴”이다. 그는 콘텍스트를 “공간을 설계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모든 상황,” 즉 “내 책임이 아닌 모든 것들”이라고 말한다.7 콘텍스트에 대한 무한 존중을 넘어 그것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그것을 교정하는 패턴을 디자인하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조경 작업인 셈이다. 물론 자신의 패턴이 콘텍스트에 도전해야 함을 말한다기보다는 “콘텍스트와 패턴 사이”의 접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설계는 더하는 작업이 아니라 빼는 작업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욕심을 부리기마련이다. 그런데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면 설계안은 복잡해진다. 복잡한 설계안이 좋은 공간으로 진화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때로는 ‘패턴’이 ‘콘텍스트’를 존중하고 스스로 몸 낮추기를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다. 형태뿐만이 아니다. 재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모든 조형적 요소들은 최적의 순간까지만 적극적으로 작동해야 한다.”8 박승진의 작품에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대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워커힐 아카디아호텔 옥상(2007), 물의 정원(풀무원 제일생면 공장 폐수처리장, 2009), 아모레퍼시픽뷰티 캠퍼스(2012) 등과 같은 그의 작업에서는 자연의 바탕을 마련하고 자연의 시간성과 물성을 살리는 “보살핌”의 조경이 미니멀한 형태와 재료를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9 3 남해 프로젝트는 박승진에게 쉽지 않은 도전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형용사가 필요 없는 최선의 자연 경관이, 호화롭거나 사치스럽지 않으면서도 멋과 품격을 담은 최고급 건축이 그에게 조건으로 주어졌다. 환상적이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운 최상의 콘텍스트 앞에서 그는 철저한 조연이 되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클럽하우스와 호텔동 사이의 급격한 단차를 절제된 지형설계를 통해 해결했다. 클럽하우스의 하이라이트 공간인 파티오에서 바다와 하늘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시선을 사로잡는 데에는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그의 지형 설계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정지 작업 중 드러난 거대한 암반을 호텔동에 의해 위요된 정원의 일부로 살리고 거기에 덧대어 만든 철제 수반은 복잡한 시선에 수평적 질서를 부여해 주었다. 공간감을 주기 위해 선택한 팽나무 위주의 교목 몇 그루 외에는 식물 재료로 몇 종류의 풀과 초화만 넣었다. 바다와 바람과 계절의 공감각적synaesthetic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절제된 식재 설계다. 사우스케이프에서 화려함보다 편안함을, 사치함보다 여유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의 충실한 조연이 되고자 한, 건축의 지혜로운 조정자가 되고자 한 조경가의 ‘자제’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승진은 이 숨 막힐 정도로 완벽한 콘텍스트가 참 답답했을 것 같다. 강우와 폭풍이 오전 촬영을 가로막았던 취재 둘째 날, 믿기지 않는 속도로 구름이 물러가고 다시 남해의 하늘과 바다가 펼쳐졌다. 다시 둘러본 사우스케이프에서 나는 띠 형태의 긴 돌무더기를 발견했다. 그제서야 마음이 확 트였다. 난데없는 현장 채집석의 띠가 주차장 쪽 마운드의 풀숲을 뚫고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클럽하우스 옆 정원을 지나 리차드 에드먼Richard Erdman의 조각 볼랑트Volate를 스치며 퍼팅 그린 쪽 아래 레벨로 연결된다. ‘카메라타’의 남해 분점인 음악감상실(클럽하우스 1층) 앞에서 돌무더기 띠가 멈춘다. 강하고 풍요로운 이 사이트의 콘텍스트에서 해방된 박승진의 패턴일거라 단정하고 나니 서울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이 오히려 즐거워졌다. 며칠 후 그에게 확인하니 과거에 그 자리에 있던 말 훈련장의 담장 유적을 살리라는 문화재 심의에 대한 설계적 대응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 돌무더기 띠는 대지미술가 리차드 롱Richard Long의 초기작들보다 울림이 있는, 날카로운 선으로 캔버스를 찢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개념 작업들보다 강한, 그의 미니멀리즘이었다. 남해로부터, 건축으로부터 자유로운.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 클럽하우스와 호텔 Southcape Owners Club, Clubhouse & Hotel
    남해南海라는 말은 늘 어떤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서울이나 그 언저리에 둥지를 튼 사람이라면 한참을 달려가야 하는 멀리 있는 바다를 떠올리고, 그만큼 맑고 청정한 바다와 작열하는 태양, 짙푸른 상록활엽수의 반질반질한 이파리들을 쉽게 연상한다. 도시의 짜증 나고 살벌한 풍경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으므로, 남해는 마땅히 무작정 달려가서 투명한 바닷물에 온몸을 내던져야 하는 그런 곳이다.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은 적어도 위치적으로 그 남해 바다의 정점에 있다. 그냥 막연한 남해 바다가 아니라, 행정구역상으로도 남해군에 속한다. 우리 팀이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결정하고 현장을 방문한 것은 2012년 한여름이다. 차로 무려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현장은, 우리가 꿈꿔왔던 남해가 아니라 그냥 거대한 공사장이었다. 18홀의 골프 코스는 이미 가운영 상태였으므로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정작 우리가 설계를 진행할 클럽하우스와 호텔동 주변은 흙먼지가 날리는 공사 현장일 뿐이었다. 아직 준공을 일 년여 남기고 있었으니 현장 상태가 어떠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조경 설계라고 하는 것이 보통은 공사 개시 이전에 현장도 보면서 거기에서 설계의 실마리를 찾는 것인데, 이번의 경우는 공사가 한참 진행된 상태이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참 난감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럽하우스나 호텔동에서 바라다보는 바다 조망은 최상이었다. 지형적으로 섬의 돌출된 부분에 있었기 때문에, 대체로 사방으로 개방된 바다 조망을 확보하고 있었다. 건축계획 역시 이러한 조망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당연한 논리겠지만 조경에서 만드는 공간이나 경관적인 장치역시 이 조망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지가 설계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조경 설계 정영선(조경설계 서안) +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 조경 설계 담당 디자인 스튜디오 loci(강영걸, 윤일빈, 김수민, 장수연) 조경 감리 김미연 조경 시공 이은귀(대산조경) 클럽하우스 건축 설계 조민석(매스스터디스) 호텔동 건축 설계 조병수(조병수건축연구소) 위치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조경 면적 약 33,000m2 완공 2013. 11.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 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1965년 서울 생으로, 성균관대학교와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의 설계 실무를 거쳐, 2007년에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 박승진 / 조경설계 서안 + 디자인 스튜디오 loci
  • [칼럼] 작은 디테일부터
    호황을 구가하던 한국 조경이 항로를 잃은 배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건설 경기의 침체로 건축과 조경 분야가 위축되었고, 자구책을 마련하며 이겨나가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역부족이다. 대부분의 조경가가 내뱉는 말은 “그저 버텨야죠” 일색이다. 설상가상으로 업역 다툼도 한층 치열해졌고, 우후죽순처럼 발전을 거듭하는 중국 조경은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이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조경이 외적으로 풍성함을 누렸던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아파트 분양 자율화에 있었다. 거주보다는 부동산 투자의 방편이었던 아파트 건설열풍에 편승해서 한국 조경은 디자인의 질적 향상 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조야한 화려함에만 치중해 왔다. 조경의 가치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한눈에 보이는 큰 그림보다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작은 디자인 디테일부터 고민하고 노력했어야 한다. 아주 작은 눈짓이나 입가의 미소가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듯, 공간의 섬세한 디테일이 공간의 이미지를 높여준다. 갑자기 폭증한 일감, 적은 설계비, 까다로운 발주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디테일 개발을 소홀히 하고 기성품으로 조경 설계의 내용을 채웠다. 새로운 공간에 적합한 새로운 디테일을 고민하지 않고 가장 일반적인 디테일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편하게 넘어가곤 했다. 건축, 도시, 토목 분야와 차별화된다고 우리 스스로 자부하는 식재 설계 디테일 도면도 누구나 쉽게 베껴서 할 수 있는 수준의 디자인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조경가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무기를 녹이 슬 때까지 방치한 것이다. 새로운 재료, 공법, 가공 기술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 개발을 진행하기는커녕 설계 물량의 양적 풍성함에 취해서 전문적인 디자인과 기술 개발을 등한시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조경의 회복을 위한 전기를 마련할 시점이다. 조경만이 해낼 수 있는 디자인 디테일을 발굴하고, 결과물을 모니터링하고, 부족한 점을 냉철히 직시해야 한다. 후속 프로젝트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디자인 디테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토론과 논의 또한 활성화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과 노력이 장기적으로 조경 디자인의 새로운 영역과 정체성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할 때 조경가는 도시의 일부분만을 디자인하는 전문가를 넘어서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정체성을 바꾸는 전문가로, 도시를 재생시키는 전문가로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새로운 시장을 바라보되 우리가 간과하며 지나쳤던 작은 디테일부터새롭게 주목한다면 조경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1983년부터 조경 디자인을 시작했으니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었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기반에서 시작했지만 그 덕분에 작은 디테일 디자인부터 세부 시공까지 하나하나 경험하며 일할 수 있었다. 기성품이 없어서 의자, 퍼골라, 휴지통, 안내판, 지주목, 미끄럼틀, 그네, 조합놀이대, 수경시설 등 모든 것을 직접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까지 다양한 재료를 바탕으로 섬세한 디테일을 고려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경험을 내세우고자 함이 아니다. 한국 조경의 다음 세대에게 다양한 디자인과 새로운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젊은 조경가들이 한국 조경의 희망이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교육과 실천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과 디테일을 경험하며 고민해 온 신진 조경가 그룹이 이제 한국 조경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고 조경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리라 믿는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익숙한 그들이 한국 조경의 다음 패러다임을 열어줄 것을 기대한다. 작은 디테일 디자인부터 도시의 비전을 계획하는 일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그들이 감당할 것이다. 건축과 대화하며 도시를 다시 살리고 바꾸어 나갈 것이다. 단순히 보기만 좋은 도시가 아니라 활력 있고 생기 있는 도시를 만드는 그런 조경가가 되어야 한다. 환경의 질뿐만 아니라 도시의 경제와 문화를 살리고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그런 디자인을 선도해야 한다. 새로운 장을 열어갈 젊은 조경가들에게 한 가지 당부할 것이 있다. 조경가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웬 뜬금없는 사랑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의 다른 이름은 관심과 애착이기도 하다. 조경가는 땅을 사랑하고, 식물을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해야 한다. 주어진 일을 사랑하고 일을 통해 만나는 사람과 그 지역을 사랑하며 디자인한다면, 그 디자인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도시는 아름답게 될 것이다.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듯, “사랑은 모든 허물과 죄를 덮는다.” 사랑 가득한 도시를 만들어갈 그들의 미래를 기대한다. 최신현은 우대기술단 조경사업부를 거쳐 2003년 씨토포스를 설립했다. 북서울꿈의숲, 대구 두류공원, 고령 대가야 역사테마파크, 진주 만경지구 남가람 문화거리, 아양교 조형물, 대구 동구청앞 광장, 무안 회산 백련지 등 다양한 층위의 작품을 설계하였으며, 서서울호수공원으로 미국조경가협회상(ASLA ProfessionalAwards)을 수상했다. 동탄2신도시 워터프론트, 신월정수장 부지공원화, 의정부 역전근린공원(캠프 홀링워터), 충북 음성 혁신도시 등 다수의 설계공모에서 당선되었고, 영남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조경사회 수석부회장, 서울시 공공조경가그룹 위원, 서울시 건축심의위원을 맡고 있다.
  • [에디토리얼] 가출하자, 조경 3세대
    30대 조경가 30인의 성장사와 비전을 다룬 이번 호의 특집 ‘조경가로 자라기’를 준비하며, 그리고 그들이 보내온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20년 전 영화를 떠올렸다. 그들이 대학 생활을 시작하거나 10대였던 1994년의 영화다. 스테판킹 원작,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탈출’자가 들어가는 제목, 자유를 강조하는 진부한 모토,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비를 맞는 포스터는 ‘빠삐용’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감옥 영화의 아류일 거라는 첫인상을 준다. ‘감옥 안의 혹독한 환경과 비인간적 실태를 과장해서 스케치할 테고, 결국엔 아주 극적으로 탈출하겠지, 뭔가의 정치적 냄새가 약간은 배어 있을 거고….’ 하지만 쇼생크 탈출은 빠삐용의 재탕이 결코 아니다. 감옥 쇼생크는 장기수로 가득하다. 화면의 쇼생크는 몇 가지 위협을 제외하면 대체로 평안하다. 그 극한의 위협이라는 것도 반사적으로 몸 사리고 조심만 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정도다. 이 감옥에서 삶의 목적은 감옥 외부로부터의 격리다. 감옥외부를 향한 자유를 저당 잡힌 채 감옥 안에서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쇼생크의 생활에는 내일에 대한 긴장이나 경쟁이 가져오는 불안이 없다. 그곳의 생활은 규칙적이고 단조롭기때문에 불확실성이 불러오는 공포도 없고 책임 때문에 갖게 되는 삶의 무거움 역시 없다. 이런 감옥에 인간은 길들여진다. 쇼생크는 그러한 길들여짐이 초래하는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길들여진 인간에게 탈출은 무의미하고 자유는 무용지물이다. 운이 좋아 형기를 덜 채우고 석방된 노인 죄수들이 감옥 밖에서 겪는 부적응은 불안에서 공포로, 공포에서 자살로 이어진다. 이런 길들여짐은 이데올로기이거나 심리적 변화이기에 앞서 습성의 일상적 조작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셸 푸코는 근대의 미시적 권력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감옥을 실례로 든다.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늪과 같은 감옥을 뛰쳐나가기 어렵게 된다. 게으르고 안일하며 권태로운 감옥의 습성에 의해 그 외부의 세계는 지워진다.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은 그 안의 존재로 제한되고 그 밖을 향해서는 모든 것이 차단된다. 그래야 감옥에 머물 수 있다. 감옥의 의미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 군대로, 학교로, 전문 분야나 집단으로. 우리의 ‘조경’과 ‘조경학’도 쇼생크와 다름없는 감옥이다. 조경 1세대는 제 발로 쇼생크로 걸어들어 왔다(물론 다른 감옥의 1세대도 다 그러하겠지만). 그들은 좋은 안전울타리 속에 좋은 감옥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틀 속에서 길들여져 갔다. 벗어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편안한 감옥이 있었던 것이다. 조경 2세대는 아마 1세대의 감옥에 불만을 느꼈을 것이다. 저 철망만 통과하면 좀 더 나은 세계가 펼쳐져 있을 거라는 낭만적인 낙관에 들떴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유란 애당초 불가능했다. 불확실한 자유보다는, 새로운 내일의 책임보다는 길들여짐을 선택하는 게 백배 낫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군의 2세대는 앞 세대가 가꾸어 온 감옥을 벗어나고자 여러 길을 모색했다. 그러나 그 다양한 갈래의 길들을 여기서 나열하는 건 그들이 맞이한 또 다른 길들여짐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그들 역시 길들여짐의 평화를 체득하게 되는 길 위를 걸었다. 감옥을 뛰쳐나오기보다는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감옥 밖에 있다고 혼동한 것이다.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는 위험을 감수하고 ‘피가로의 결혼’을 감옥 안에 바람처럼 울려 퍼지게 한다. 마치 키에르케고르의 ‘영원한 순간’처럼, 그 순간에 도취된 모든 수인囚人들은 자신이 감옥 밖에 서 있다고 느낀다. 이 조경 2세대가 할 수 있었던 건,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이미지와 리얼리티의 혼동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자유라면, 그것은 자유의 길들여짐에 대한 궁색하고 초라한 인정에 불과하다. 쇼생크에서 앤디의 존재는 메시아와 다를 바 없다. 그는 감옥의 습성에 적응하기를 거부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죄수의 신분으로 감옥 내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브룩스 도서관’은 감옥 안에 존재하는 감옥의 외부였다. 쇼생크에 단순히 매몰되어가던 수인들은 이 도서관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본다. 이 세계는 격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유일한 세계였다. 그렇지만 그 세계에 누구보다도 만족한 인간은 앤디 자신이었을 것이다. 20년을 버텼다. 탈옥을 결단한다. 하지만 탈옥 ‘이후’의 준비를 결코 간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유를 향한 ‘영화적’ 실험이 앤디를 반긴다. 조경 3세대, 어디서부터 누구부터 시작될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조경 3세대, 그들은 앞선 두 세대의 감옥을 극복해야 한다. 감옥과 탈출의 상징성이 너무 과격하다면 이렇게 말해 보자. 지키느라 불안하고 넓히느라 피로한 집안―조경―을 ‘가출’해 제대로 된 가문을 한번 일으켜 보자고. 우선은 앤디가 되어야 한다. 찬찬히 치밀하게 준비하고 감옥 안부터 다듬어야 한다. 그러나 앤디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앤디의 탈출이 다다른 곳은 막막하고 막연한 공간이었다. 온통 비어있는 바다와 모래사장에는 허무한 호흡만 가득했다. 영화는 애써 기적적인 자유를 서사적으로, 낭만적으로 극화했지만, 앤디의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세상과의 완전한 절연이었다. 비존재의 확인이었다. ‘부자유의 부재’와 ‘자유의 존재’를 명증하게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어떤 가출이 참다운 가출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선 어떻게 가출해야 할지, 우리는 안다. “생각의 감옥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조경 3세대가 길들여짐을 뛰어넘어 자유를 품는 ‘가출’의 첫 걸음이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다르게 생산하고 공유하기
    잡지사의 편집부에는 매달 새 책이 쌓인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전문지이니 대개 조경, 원예, 건축, 도시 관련 신간이 보도자료와 함께 도착한다. 그 가운데 새 책 담당기자의 안목 그리고 선배 기자들의 간섭(!)과 추천으로 서너 권의 책이 선정되어 이 달의 ‘새 책’ 꼭지가 꾸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하루는 색다르게도 인터넷 관련 신간이 눈에 띄었다. 제목은 『텔레코뮤니스트 선언The Telekommunist Manifesto』.1 사실 『공산당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의 오마주인 듯한 제목보다는 그 밑의 부제목에 눈이 갔다. “정보시대 공유지 구축을 위한 제안, 카피파레프트와 벤처 코뮤니즘”이 그것이다. ‘공유지’ 그리고 ‘카피파레프트’란 단어에 눈길이 닿은 것이다. 사실 요즘 ‘공유’란 용어가 흔하게 쓰이는 만큼(비슷하게는 ‘공동성’, ‘공유 도시’, ‘공유 경제’ 그리고 ‘공공 공간’에서 ‘셰어하우스’까지) 그 의미가 명확하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카피파레프트’는 낯선 단어이기는 해도 카피라이트 혹은 카피레프트와 같이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이야기이리라 짐작되었다. 이 문제 역시 설계 분야와 무관하지 않다. 일례로 설계공모에서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상금을 걸고 안을 공모한 발주처에 저작권이 돌아가야 하는 가, 아니면 창작자인 설계자에게 있는가 등은 가늠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이렇게 둘다 ‘올바르게’ 보이기는 하지만 함께 놓기 어려운 두 개념이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는 지 궁금했다. 그런 연유로 새 책 담당 기자에게 압력을 넣어 책을 먼저 손에 들었다. 『텔레코뮤니스트 선언』은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공유’에 관한 통상적 이해를 뒤집는다. 흔히 웹2.0으로 통칭되는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유튜브 같은 커뮤니티 공유 사이트의 등장은 과거 콘텐츠의 일방적 수용자를 직접적인 생산자이자 유통자로 참여하게 하면서 수평적 소통과 자유로운 협력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클라이너Dmytri Kleiner는 과연 웹2.0이 새로운 소통과 협력의 모델을 제시하는 혁명적인 모델인가 질문한다. “웹2.0은 공동체가 창출한 가치를 사적으로 포획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일례로 “유튜브의 진정한 가치는 사이트 개발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 비디오를 올리는 사람들이 만든다. 그러나 유튜브가 10억 달러가 넘는 주식으로 구글에 매각될 때 이 비디오를 만든 사람들이 받은 주식은 얼마나 되는가? 아무것도. 전혀. 없다.” 웹2.0 기업들은 자신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발행하기 위한 수단이 없는 사용자들의 ‘집단 지성’을 중앙 집중화시켜 공동체가 창출한 가치를 사유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현상은 실제 물리적 세계인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지리학자인 하비David Harvey는 『반란의 도시Rebel Cities』2에서 도시를 “온갖 유형, 온갖 계급의 사람들이 서로 싫어하고 적대하면서도, 하나로 뒤섞여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동하는 삶을 살아가는 공유재common를 생산하는 장”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부동산 개발업자가 활기찬 거리, 다채로운 다문화 생활양식 등 그 지역의 ‘개성’을 부유층에 매각”하는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를 거론한다. “지역 원주민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공유재를 약탈당할 뿐만 아니라 종종 지대와 부동산세가 치솟는 바람에 쫓겨나기까지 한다.” 때로는 재활성화 정책으로 지역에 근근이 남아 있던 활력이 사라져 공유재 자체가 훼손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만들어낸 뉴욕 소호 지구의 활력은 이 지역의 경제적 가치가 올라가면서 망가져갔다. 그리고 이 활력을 만들어냈던 예술가들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빠져나가게 된다. 우리 도시에서도 가회동이나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이러한 변화를 목도하게 된다. 그렇다면 공유지·공유재를 생산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 가? 클라이너는 ‘또래생산peer production’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용어는 하버드 대학교 법대 교수인 요카이 벤클러가 자유소프트웨어와 위키피디아 그리고 유사 작업들이 생산되는 방식을 기술하기 위해 만들었다. 또래생산은 다른 사람들의 소비를 방해하지 않는 ‘비경쟁적인 자산’으로서 공유지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재생산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산한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바꿀 수 있을 까? 바꾸어 말하면 또래생산자들이 자신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물질적 필요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클라이너는 독립적인 또래peer들 간에 필요한 물질 자산을 배분하는 시스템인 ‘벤처 코뮤니즘’을 제시한다. 벤처 코뮤니즘이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를 위한 새로운 모델이라면, 카피파레프트 copyfarleft는 비물질 재화를 공유지로 가져오기 위한 수단이다. 아이디어에 대한 배타적 권리인 카피라이트는 ‘창작하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는데, 클라이너는 사실 이것이 보호하는 것은 창작자가 아니라 창작물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기업의 수익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카피라이트를 비판하며 나온 것이 안티카피라이트anti-copyright나 카피레프트copyleft다. 둘 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비-소유의 공유 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시도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들은 해당 라이선스를 어기지 않으면서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클라이너는 카피라이트의 대안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크리에 이티브 커먼즈(CC)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CC에서 저자는 다른 이용자들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할 수 있지만, 그 역시 저자 자신이 상업적 이용의 권리를 보유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저작물은 전혀 공유지에 속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카피파레프트를 주장하며 상업적 이용에 대한 계급적 제한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한다. 노동자 소유 기업은 카피파레프트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사적 소유 기업의 사용은 제한된다. 카피파레프트는 이러한 기준을 통해 상업적 이용이 아니라, 공유지에 기반하지 않은 사용을 제한하고자 한다. 클라이너가 주장하는 공유의 방식을 실제 물리적 공간에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과 가치를 공유하려는 창작자들에게 의미있는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그리고 이번 호에 실린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에서 그런 실마리를 찾게 된다. 필자인 유영수 소장의 말을 다시 옮겨본다. “이 같은 공모과정의 가장 큰 가치는 무엇보다 각 팀들이 단순한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각자가 수행한 지역에 대한 분석과 그로부터 도출한 중요한 아이디어를 다른 모든 이들과 공유함으로써 지역 전체를 위한 더 나은 해법을 찾아내려는 공통의 목적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즉 공모 과정에서 생산된 모든 지적 결과물은 어느 팀에 제한적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된다는 의미다.”
  • 보행자를 위한 도시 정책 2014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보행도시포럼
    지난 7월 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보행자를 위한 도시, 정책 현안과 과제’라는 주제의 포럼이 열렸다. 2013년 서울시에서 발표한 ‘보행친화도시 서울 비전’의 10대 사업의 일환으로 ‘생활권 보행자 우선도로 시범사업’과 ‘아마존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가 보행자 관련 법제 개선 방안, 각 사업의 기획 취지와 의의, 실질적인 개선 효과 등을 공유하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점검해 보고자 자리를 만든 것이다. ‘아마존’ 프로젝트 첫 번째 주제 발표에서 다뤄진 ‘아마존amazone’은 그 아마존amazon이 아니다. 현재 시범 사업이 시행 중인‘아이들이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존zone’의 약자로, 그 성격은 어린이보호구역과 유사하다. ‘아동 교통사고 및 범죄 예방 그리고 쾌적한 보행 환경의 조성’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어린이보호구역이 학교 근처의 도로에 국한된다면, 이 프로젝트는 주변 공원은 물론이고 학원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행동반경 전체를 포괄한다. 발표자 심한별 연구원(서울대학교 공학연구소)은 “보행자 우선 환경을 조성하려는 적극적 시도였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린이 보행 환경이라는 쉽지 않은 대상을 다루었다는 점과, 그동안의 접근법과는 다른 시도였기에 학부모의 반발로 인해 사업 진행이 어려웠다는 점도 토로했다. 덧붙여서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한 지역 사회의 인식이 널리 확산된다면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업 취지의 적극적인 홍보와 제도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국판 ‘보차공존도로’ 도입 두 번째 주제 발표는 ‘보행자우선도로 시범사업 추진현황과 과제’였다. ‘보차공존도로shared street’란 현재 시행 중인 ‘보행자우선도로’의 도입 배경이 된 시스템으로서 물리적인 공간 분리나 특정 시설물, 교통 규제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도로 이용 주체간의 자율적인 배려와 상호 작용에 의해 작동하는 도로 운영 체제를 말한다. 남궁지희 연구원(AURI 공간문화정책연구본부)은 보차분리 방식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보행자우선도로의 설계 목표와 전략을 설명했다. 남궁 연구원은 “물리적 시설과 투입 비용을 최소화하고, 접근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안전한 보행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국내 도로 상황에 적합한 설계 기법 개발과 보행자의 우선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근거 마련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당부했다. 현실성 없는 ‘도로교통법’ 김지엽 교수(아주대학교 건축학과)는 ‘보행자 관련 법제 현황과 개선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는 ‘도로교통법’ 제8조와 제10조를 예로 들며 “현행 도로교통법과 관련 판례는 보행자의 안전이나 권리보다는 차량의 통행 및 운전자 보호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렇게 자동차 위주로 구성된 법 체계는 국민 대다수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며 현실성 없는 법률의 개정을 촉구했다. 아울러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보행자와 자동차가 공존할 수 있는 법 제도를 갖춰야 하며,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은 박소현 교수(서울대학교 건축학과)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이병민 사무관(국토교통부 도시정책과), 이원목 과장(서울시 보행자전거과), 김종식 팀장(성북구 교통행정과), 김중효 선임연구원(도로교통공단 교통공학연구실), 오성훈 본부장(AURI 공간문화정책연구본부)이 참여하여, 보행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현재까지의 성과에 대한 진단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시행 상의 어려움도 주목을 끌었지만, 그보다는 김종식 팀장의 한 마디가 더 진한 여운을 남겼다. 김 팀장은 “이 자리에 와야 할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선생님, 학부모님 그리고 경찰 관계자가 같이 얘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정작 제일 중요한 분들이 오지 않았다”며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는 발주처와 전문가만의 토론회는 반쪽이 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좌장을 맡았던박소현 교수의 말처럼 1년 후에 이런 자리가 다시 만들어 진다면, 양쪽 모두의 토론다운 토론을 듣게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이번 토론에서는 어린이, 임산부, 노인 등 누구보다 ‘보행권’을 보장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직접 들을 수 없었다.
    • 양다빈
  • 남산 공원 연구로 본 근대 공원의 민낯 서울학연구소 심포지엄, ‘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재편’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이 세워진 지 올해로 117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공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본 근대 공원의 일면을 조명한 연구가 발표됐다. 지난 6월 26일, 서울시립대학교 경농관 빨간벽돌갤러리에서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심포지엄 ‘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재편’이 열렸다. 세션1에서는 ‘남산의 근대화로 본 서울의 수도성’을 주제로 우동선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의 “이토 츄타와 조선신궁”,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근대기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본 한국 도시공원의 일면”, 염복규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의 “일제하 조선의 전원도시론 수용과 남산 남록 개발 논의의 의미” 등 3개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세션2에서는 ‘동아시아 수도의 근대화’를 주제로 박삼헌 교수(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의 “도쿄 투어리즘과 ‘제도帝都’, 도쿄의 탄생”, 신규환 교수(연세대학교 의사학과)의 “20세기 전반 북경의 도시공간과 위생”, 이길훈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철도로 본 도쿄의 근대화” 등 3개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이 심포지엄에서 박희성 교수의 발표는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을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파악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였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일본인’을 위한 공원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남산공원은 오늘날 서울시민에게 여가와 휴식을 제공하는 안식처인 동시에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서울타워, 연인들이 남기고간 수천 개의 자물쇠가 달린 조망대, ‘남산’ 하면 떠오르는 음식인 ‘남산 왕돈까스’까지 남산공원과 남산을 둘러싼 일대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하지만 남산에 생긴 첫 공원인 왜성대공원의 개원 당시(1898년 11월, 대신궁 봉안식 기준) 남산 일대는 일본인을 위한 행락지로 개발됐다. 왜성대공원이 자리했던 남산의 북사면 일대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이 주둔했던 곳으로 일본인 거류지인 본정통과 인접하며 이후 조선신궁이 세워져 종교적 기능까지 담당하게 된다. 박희성 교수는 이 점에 주목해 근대 공원의 일면을 포착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와 같이 시민 사회의 성숙과 함께 자생적으로 ‘공원park’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을 위한, 일본식 공원’이 세워졌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초기 근대공원의 한계를 조명했다. 공원park과 정원garden, 공공정원public garden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되었던 당시 일본의 조원학은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되었고 엄밀한 의미의 공원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공공 정원에 머물게 되었다는 요지다. 또한 박희성 교수는 신사와 사찰을 중심으로 공원과 행락 문화가 결합한 일본 특유의 양식이 남산에 조선신궁이 세워지는 데 일조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발표에 관해 토론의 패널로 참석한 성종상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는 “남산 공원은 우리와 친숙한 곳이지만 그 족보나 역사에 대해 정확히 알 기회가 없었는 데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평가하며 “공공 정원과 공원의 개념 정의에 대한 부분은 논의가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남산에 조성된 공원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고, 시민에게 건강과 휴식, 레크리에이션 기능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공공 정원에 적합하다고 보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공 정원의 개념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식물’이라며 초창기의 근대 공원이 식물원과 과수원을 포함한 식물과 관련된 시설을 어떻게 갖추고 있었는가가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근대 공원의 민낯을 보는 일 지난해 한 인터넷 신문에 “남산 케이블카 ‘오 마이 갓’, 볼거리 부족 ‘오, 노’”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고 남산을 찾은 외국인들이 생각보다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며 실망감을 안고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남산을 찾은 외국인들은 케이블카, 서 울타워, 야경 등의 파편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만 기억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남산이 축적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지층이 깊고 두터움에도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이기에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친숙한 공간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했다는 점에서 서울학연구소 심포지엄은 의의가 있다. 남산에 조성된 공원의 변천 과정을 통해 어원과 개념,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뿌리를 더듬으며 근대 공원의 민낯을 보는 일은 당시의 근대성을 이해하고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근대 도시 공원의 일면을 추적한 박희성 교수뿐만 아니라 조선신궁의 건립 이유와 양식과 유형을 연구한 우동선 교수, 남산주회도로 부설과 고급 주택지 개발 등에서 나타나는 일제강점기 전원도시론을 연구한 염복규 교수는 남산 일대의 근대화 과정을 재구성하며 남산을 다각도로 바라보았다. ‘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재편’ 심포지엄은 ‘근대이행기남산’을 조경적, 건축적, 도시학적 시각을 통해 봄으로써 서울에 근대적 요소가 유입됨에 따라 도시가 어떻게 변화·재편되었는지 심층적으로 접근했다. 우리의도시가 한 가지 얼굴로만 보인다면 얼마나 따분할까?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로만 인식되던 서울의 민낯을 본 듯한 느낌이다.
    • 조한결
  • 도시, 캔버스가 되다 앱솔루트의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
    “아름답게 세상을 입히는 삶, 관심 있게 잘 감상했습니다. 정말 감동이네요.” “숨 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었군요.” “이면지 도시에 젊음이 색을 입혔네요. 그들의 열린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앱솔루트Absolut의 2분 40초짜리 광고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www.citycanvas.kr). 지난 6월 13일에 업로드 된 앱솔루트의 시티 캔버스City Canvas 광고는 현재 35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앱솔루트 페이스북 페이지의 시티 캔버스 게시물에는 2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고 천 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로 새롭게 변신한 골목길은 블로거 사이에서 새로운 출사出寫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는 브랜드 정신인 ‘트랜스폼투데이Transform Today’를 모토로 한 문화, 예술 프로젝트를 전 세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시티 캔버스는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서울 도심을 캔버스삼아 젊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거리를 예술적으로 변화시키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40명의 젊은 아티스트들은 가회동, 문래동, 성수동, 이태원, 홍대 등 서울 시내 주요 장소 5곳을 선정해 5월 2일부터 18일에 걸쳐 완성했으며 완성작은 6월 16일에 공식적으로 공개되었다. 공사장 가벽, 철공단지의 골목길, 주택가의 외벽, 지하철 교각 등 도시의 미관을 해치거나 무심코 지나칠만한 평범한 공간이 예술가의 손에서 생동감 넘치는 장소로 재탄생했다. 특히 공공을 위한 예술 사업을 정부나 사회단체가 아니라 민간 기업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앱솔루트의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호응을 샀다. 골목은 마케팅 시험장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에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부정적인 의견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한 누리꾼은 “마케팅의 이름으로 도시에 마구잡이 그림을 그리는 이런 마케팅 행위는 매우 폭력적이라 생각한다. 골목은 마케팅 시험장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남겼고, 다른 누리꾼은 “공공 영역에서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아름답지만 적어도 지역 마을의 담장은 그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존과 관리가 중요하다. 상업적이라 아쉽다” 등의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를 비롯한 이른바 ‘벽화 마을’ 사업은 2006년 경남 통영시 동피랑 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철거가 계획되었던 낡은 마을 골목길과 담벼락이 벽화로 꾸며지면서 동피랑 마을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광 코스로 떠올랐고 철거 계획도 철회되었다. 동피랑 마을이 ‘도시재생’과 ‘공공 미술’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자 서울 삼청동 벽화골목, 부산 감천동 벽화마을 등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넘는 마을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골목환경 개선’을 기치로 조성됐다. 하지만 지역 주민과의 소통 부재, 지역성에 대한 고려 부족, 관리 소홀 등으로 인해 예술이 아닌 ‘흉물’로 전락한 곳도 적지 않다. 진정한 ‘트랜스폼 투데이’ 될까?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에 의해 새롭게 바뀐 모습을 기대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하면서 직접 프로젝트 대상지를 방문했다. 과도하게 알록달록한 페인팅이 오히려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지는 않을까 우려했던 나의 걱정과는 달리 세련된 색채와 디자인이 눈을 사로잡았다. 주변의 상가나 주택과의 분위기를 고려한 설치 작품과 벽화는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시티캔버스는 대상지에 대한 이해와 고려를 바탕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수제화 타운이 형성되어 있는 성수동에는 위트 있는 신발 그림이, 문래동의 노쇠한 철공단지에는 기계 부품을 소재로 한 컬러풀한 벽화가 그려졌으며, 주점과 바가 많이 들어선 홍대의 한 빌딩은 보드카 모양의 설치 작품으로 장식했다. “언제 이런 것이 생겼어”하면서 신기해하는 젊은 커플들, “큐트cute!”를 외치며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 등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았다. 앱솔루트의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는 ‘트랜스폼 투데이’라는 브랜드 정신처럼 일단 ‘오늘’을 변화시키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오늘’이라는 단어는 어렵다. ‘오늘’이 과거형으로 지나가버리지 않고 지속적인 현재 진행형이 되기 위해서는 이 프로젝트가 일회성의 환경 미화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 관계자에게 작품의 관리는 어떻게 할 예정인지, 작품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 있는지 등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칠이 벗겨진 벽화 작품을 보수하는 계획이 잡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인 답변은 이어지지 않았다. 진정한 ‘트랜스폼 투데이’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작품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거리의 흉물로 전락하거나 변화하는 거리의 모습에 뒤쳐져 이질적인 공간이 되지 않도록 공공 미술의 새로운 ‘내일’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 조한결
  • 삼성전자 TV ROAD 캠페인 폐 브라운관 활용한 승리 기원의 길
    친환경 캠페인을 담은 조경 공간 삼성전자는 지난 5월부터 약 한 달 반 동안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승리 기원의 길-TV ROAD’ 캠페인을 진행했다. TV ROAD는 삼성전자의 폐 브라운관 TV로 친환경 길을 조성하는 ‘TV 굿 스위칭good switching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태극 전사들의 선전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시민들이 기증한 폐 브라운관 TV 1만여 대를 에코 블록으로 재생산해 길을 조성했는데, 캠페인은 폐 브라운관으로 인한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의 발로다. 버려진 폐 가전제품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기존 시설의 노후화를 개선해 지속가능한 길을 제안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디자인 전략 TV ROAD가 설치된 수원월드컵경기장 조각 공원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많은 방문객을 수용할 수 있는 진입 광장으로 이용되었고, 이후 월드컵 개최를 기념하는 조각 작품을 설치해 문화 휴식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TV ROAD 조성 시 고려한 사항은 외부 도로와 광장의 전이적 공간이라는 점과 매표소가 잘 인지되게 하여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조각 작품과 잔디식재 구간은 보전하기로 했으나, 인조 잔디 포장은 노후화로 훼손된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잔디와 조각으로 구성된 공간에 상징성을 부여해 월드컵경기장과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조성하고 폐 브라운관을 이용해 만든 시설을 통해 시각 효과, 휴식, 재미, 편리성이 더해진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계획했다. 그리고 월드컵 이후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CRT 재활용 블록의 홍보 효과를 높이고, 일시적인 포장이 아닌 지속성을 갖춘 상징적인 길이 되도록 했다. 승리 기원의 길 노력, 열정, 역동성을 테마로 1,315m2 공간에 슈퍼그래픽을 패턴화 하여 걷고 싶은 길을 조성했다. 승리 기원의 길에 사용된 재료는 다성기업에서 연구 개발한 199×99×T60 규격의 CRT 재활용 콘크리트 블록을 사용했고, 주위 구조물 및 천연 잔디 등과 어우러지도록패턴의 주조색을 녹색 계열로 선정했다. 그래픽의 인위적인 느낌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캠페인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비슷한 색이 어우러져 표현되는 임의 포장패턴을 반영했다. 또한 슈퍼그래픽 패턴에서 자연스럽게 그러데이션gradation 되는 느낌을 주도록 계획하여슈퍼그래픽과 공간의 조화로운 연결과 확장을 도모했다. 산책로의 진출입 부분에는 TV ROAD 글씨를 패턴으로 반복하여 공간의 의미와 장소성을 나타내었다.
    • 안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