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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는 삶의 무늬다 고규홍의 ‘우리나라의 특별한 나무 이야기’
    나무를 매우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비로 수목원을 세우고 증권사를 다니며 번 돈으로 나무를 세심하게 돌보고 관리했다. 수목원이 커지면서 관리에 많은 노력이 투입되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고수한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현재는 생육을 위한 최소한의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농약을 치지 않는다. 이는 모두 나무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유지하고 식물의 생육 환경을 좋게 해주기 위함이었고, 그만큼 나무를 사랑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그가 특별히 아낀 나무가 있었다. 벌컨magnolia vulcan 이란 이름의 목련이다. 수목원의 모든 나무를 사랑했지만, 벌컨은 꼭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던 그가 2000년 암 선고를 받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무슨 조화인지, 그 해 벌컨은 꽃을 피우지 않았다. 푸른 눈의 한국인 고 민병갈 원장과 벌컨의 이야기다. “나무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생명체다. 내가 없으면 그가 없고, 그가 없으면 내가 없다.” 지난 4월 24일 삼성에버랜드 디자인 그룹의 렉처 시리즈 강연자로 나선 고규홍 교수는 민병갈 원장과 천리포수목원 내 수목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고 민병갈 원장의 나무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벌컨이 꽃 피지 않았다는 일화는 아는 이가 드물다. 신비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때 고 교수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인문학이란 사람이 삶의 무늬를 찾아가는 것이다. 삶의 무늬를 가장 잘 간직한 것은 나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사라지지만,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나무의 결에 그대로 살아있다.” 나무가 사람의 흔적을 일러주는 화자임을 강조한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전해주는 할아버지를 대하는 듯하다. 고규홍 교수는 기자 생활을 그만둔 이후 16년 동안 사람의 이야기를 간직한 큰 나무를 찾아 다녔다. 나무와 살았던 사람살이의 무늬가 남아있는 나무를 찾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 사진으로 남겼다. 자주 찾아와서 바라보던 사람이 오지 않아 꽃을 피우지 않았다는 나무 이야기는 그중 하나다. “사람 사는 곳 어디라도 나무가 없는 곳은 없다”면서 그가 전한 또 다른 이야기는 나무를 보는 관점을 달리하게 했다. 가족에게도 버려진 한센병 환자의 외로운 마음을 받아준 소록도 솔송나무(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와 사람의 손길이 닿자 꽃을 피웠다는 전곡리 물푸레나무(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이야기가 그랬다. 특히 전곡리 물푸레나무는 고규홍 교수가 천연기념물 지정에 기여한 나무로 손꼽히는데, 일화가 하나 있다. 이곳은 6·25 전까지 마을을 형성하고 물푸레나무를 당산나무로 모셔 당산제를 지냈다. 이후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마을이 사라졌고, 물푸레나무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고 교수가 이 나무를 찾았고, 2003년 문화재청에 보호를 신청해 200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근처에 거주하던 할머니 증언에 따르면 수십 년 동안 이 나무는 2004년과 2006년 딱 두 번 꽃을 피웠다고 한다. 하나는 사람이 나무에게, 하나는 나무가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한 사례다. 서로 교감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관계를 통 한 상호작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상에서 나무를 교감의 존재로 대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 배경으로 인식하고 지나칠 것이다. 한 나무를 지키려 전력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주변의 나무가 조금은 달리 보일지 모르겠다. 용포리느티나무(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이야기다. 이 마을에는 15가구의 노인들이 살고 있는데, 팔려갈 처지의 당산나무를 지키기 위해 몇 년에 걸쳐 투쟁하고 결국 나무를 사 공동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중 돈을 꾸어 나무 구입에 보탠 사람도 있는데, 고규홍 교수가 마을 사람들에게 그렇게까지 나무를 지키려 한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우리 삶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 돈을 꾸러 다니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다. 당산나무를 지키는 건 우리 조상의 얼을 지키는 일이다.” 그 나무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무늬를 그리며 살고 있다. 고 교수는 사람처럼 나무도 말을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사람이 듣지 못할 뿐이다. 그는 나무가 전하는 말을 해석해 이야기로 풀어내고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나무는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그’ 안에 들어서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오던 이가 사라지자 꽃을 피우지 않은 목련, 누군가 찾아가니 꽃을 피웠던 물푸레나무, 그리고 나무에서 위안을 얻은 사람들과 모든 걸 바쳐서라도 나무를 지키려 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나무는, 그리고 이 나무들에게 사람은 교유交遊의 대상으로, 서로 다르지 않다. 어쩌면 누구나 나무와 교유의 순간이 있었는지 모른다. 가만히 돌이켜볼 일이다. 고규홍 교수의 ‘나무 이야기’는 나무주변에 그려지는 삶의 무늬를 담고 있다. 고규홍 교수는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를 거쳐 10년간 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이후 큰 나무를 찾아 전국을 돌며 사진과 글로 세상에 알려 왔으며, 솔숲닷컴(www.solsup.com)을 통해 ‘나무 편지’를 발행하고 있다. 다수의 방송으로 나무 이야기를 전해왔고, 저서로는 『이 땅의 큰 나무』를 시작으로 『나무가 말하였네』, 『한국의 나무 특강』 등이 있다. 그가 소개한 나무의 다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천리포수목원 감사로도 활동 중이며, 현재 인하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 참여의 마당 꿈꾸는 용산 국가공원 ‘국민이 만들어가는 용산공원’ 주제로 전문가 세미나 개최
    국토해양부(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는 지난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를 실시했다. ‘치유’라는 콘셉트로 공모에 당선된 West8과 이로재의 “Healing: The Future Park”를 바탕으로 후속 설계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국회의 예산 전액 삭감으로 기본설계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5월 21일 용산공원추진기획단과 한국조경학회가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국민이 만들어가는 용산 국가공원’이라는 주제로 ‘용산공원 전문가 세미나’를 개최했다.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를 통해 채택한 마스터플랜이 난항을 겪고 있는 시점에서 시민참여 방법과 전략, 현실적 대안 제시와 제도화 방안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집단 지성 발휘해 창의적인 공원으로 “대중의 지혜는 전문가의 지식보다 더 정확한 답을 이끌어낸다”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는 영국의 유전학자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의 말을 인용하며 대중의 지혜를 강조했다.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수퍼킬렌Superkilen을 예로 들었다. 덴마크에서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에 조성된 이 공원은 고향 국가에 대한 아이덴티티를 나타내고 싶어 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아이디어 개진으로 이국적이면서도 창의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김영민 교수는 “수퍼킬렌 공원 조성 과정에서 적용된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보면 너무 직설적이고 유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 모여 있을 때 다양성을 드러내기도 한다”며 “단순한 상징적인 시설물만으로도 주민들은 이 공간이 자신의 공간이라고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들이 제시한 ‘마당’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에서 시민참여를 이야기했다. 용산공원 부대 시설을 모두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부분적으로만 해체해 시민들이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마당’으로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다. 홍윤순 교수(한경대학교 조경학과)는 국제공모에서는 당선을 위해 도시 스케일을 넘는 힘이 들어간 계획안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거시적인 마스터플랜이 조금 와해되고 있는 처지에서 중간 단계의 임시 공원을 중심으로 어떻게 세부적으로 발전시킬까 하는 점이 세부적인 마당이나 주민참여와 연결되어 조금 더 정교하게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마당’은 전기나 수도와 같은 초기 인프라를 갖춘 공간이기 때문에 이용자에 따라 창의적으로 응용되어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융통성 있고 창의적인 공간의 조성에 관해서 한창섭단장(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은 6개 단위 공원에서 생태 중심의 공원으로 용산공원 조성의 기본 방향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융통성을 주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6개 단위공원으로 조성하게 되면 각각의 단위공원 개념에 맞춰 공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체적으로 공모 당선작의 개념은 받아들이되 생태 중심 공원으로 단일화시켜서 거기에 필요한 스포츠 시설이나 생태 습지 등 여러 가지를 만들어서 조금 더 융통성 있게 바꾸는 것이지 구체화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대형 공원 조성 시 시민참여 사례와 교훈’에 대해 발표한 민병욱 교수(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는 밀레니엄파크, 다운스뷰 파크, 서울숲, 센트럴 파크를 예로 들며 시민참여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했다. 그는 “용산공원의 규모와 성격, 한국의 실정을 고려할 때, 국가가 주도하되 민간 파트너십으로 민간의 영역을 키워서 대등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민간 참여 전략으로는 세제 혜택과 제도적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참여란 소통이다 세미나에 참여한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용산공원 조성과정에 시민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입을 모았지만, 구체적인 시민참여의 범위와 형태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기도 했다. 안상욱 단장(LH공사)은 “미군 기지의 이전 시기와 범위가 유동적인 상태이다 보니 문체부, 국방부 등 다른 중앙부처와 의견 조율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라며 용산 전체의 재생이란 틀에서 기초를 다지려면 행정 실무 협의회가 우선으로 구조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민 교수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는 과연 시민 전체를 대변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며 “어떻게 보면 시민단체들은 특정 목적을 가진 경우도 있어서 공원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의 의견은 어떻게 개진하나 이런 부분을 고민했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김연금 소장(조경작업소 울)은 “시민참여를 도구가 아닌 과정으로 봤으면 좋겠다”며 “전문가와 시민을 분리해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소통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둘은 구분되고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소통하는 대등한 관계”임을 강조했다. 전문가와 시민의 관계를 함께 공동선을 추구해야 하는 관계로 본 그의 의견은 현재 용산공원 조성계획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 비춰볼 때 시사점이 크다. 미군기지 이전 계획변경, 신분당선 조정 등 용산공원 조성에 있어서 가장 큰 장벽들은 사실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소통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한배 회장(한국조경학회)은 “설계자가 시민을 고려해서 하는 설계도 시민참여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참여의 개념을 넓게 확장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용산공원은 국제 설계공모를 통해 이미 큰 그림이 마련되었고 설계자도 정해져 있는 상황이지만, 여타의 공원과는 상황이 무척 다르다. 미군기지의 이전 시기와 범위, 신분당선의 조정에 따른 교통문제, 침수에 대비한 물관리체계 수립 등 여러 문제들이 쌓여있다. 또한 국민 참여는 완공 이후에도 어떤 식으로든 폭넓게 추진되어야 할 과제다. 서울의 심장부에 있으면서도 외국군 주둔의 역사로 인해 ‘미지의 땅’으로 인식돼오던 용산 미군 기지가 아픈 역사 위에서 새 시대를 여는 공원으로 탈바꿈하기위해서 공공기관과 민간의 지혜로운 소통이 필요한때다.
    • 조한결
  • 미디어로 말하는 도시 도시를 살리는 ‘소통’ 세미나
    통섭의 시대다. 대화와 소통이 더욱 중요해졌다. 미디어는 사람과 사람, 영역 간 소통의 매개체로 역할을 해왔는데, 전통 미디어의 신뢰 하락과 기기의 발달로 뉴미디어가 확산되고 공동체 미디어가 다변화하면서 그 지형이 변하고 있다. 미디어 홍수 속에서 각각의 미디어들은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고 있다. ‘도시’의 문제도 공간을 넘어 다른 이슈들과 함께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한 ‘소통’은 많이 이야기 되고 있지만, 정작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는 ‘도시의 소통’에 대한 고민은 얼마나 되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것인가? 지난 5월 9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열린 “도시를 살리는 ‘소통’ 세미나”에서 전상인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가 던진 물음이다. 도시와 소통, 두 키워드가 만났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와 서울연구원은 최근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문제들을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로서 총체적 관점에서 진단하는 세미나를 주최했다. 이창현 원장(서울연구원)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안전’을 상기시키며 포문을 열었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현대 도시는 아주 복잡하고 기계적으로 보이지만, 인간의 몸과 같이 도시도 막힌 곳이 없이 잘 소통해야 건강하고 시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살림으로써 도시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에 세미나에서는 전통 미디어와 뉴미디어, 공동체 미디어, 공공 환경, 그리고 시각적 측면에서 미디어의 모습 등 ‘소통’의 수단을 다각적으로 진단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5인의 주제 발표 이후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소통을 위한 자리인 만큼 토론에 보다 비중을 두고 플로어와 패널의 대화에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미디어 전문가 3인과 공간을 다루는 전문가 2인으로 발표자가 구성됐다. 실체가 없는 미디어와 공간이라는 주제를 함께 다루다 보니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거론되었다는 점은 동일하다. 차재영 교수(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는 “미디어가 자본과 국가에 의해 독점되는 상황에서 공동체 미디어를 그 대안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통 미디어가 특정 계층이 전담하는 일방향 체계였던 데 반해 공동체 미디어는 일반 시민의 참여를 원칙으로 하는 쌍방향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차 교수는 공동체 미디어가 “주민들의 관심과 요구에 부응하여 지역 사회에 관한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공론장 역할”을 함으로써 지지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혁 교수(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는 도시 속 불통의 결과를 해소하는 데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가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도시의 소통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지나치던 잠재된 문제를 발굴하고 그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자발적으로 문제의식을 고취시켜 주어야 한다”면서, “도시 인프라와 기술의 접점에 놓여있는 디지털 사이니지의 활용은 수용자의 능동적 참여를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는 시각적 커뮤니케이션 관점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도시의 시각 미디어 환경인 동영상 전광판을 사례로 이야기를 풀었다. 조교수는 “온갖 시각 정보로 채워진 도시 경관에서 사유와 소통을 위한 여백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면서, 시민들이 미디어 환경 속에 놓여 일방적으로 무의미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동영상 전광판이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수용하려는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원재 소장(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도 비슷한 시각에서 소통의 수단이 사유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도시는 일방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고 그 대표적인 것이 광고인데, 이는 정보 전달의 사유화로 흐른다. 공간과 미디어의 역학 관계 전상인 교수는 한국의 플래카드 문화를 비판했다. 플래카드의 난립으로 도시 미관이 오염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플래카드 설치가 불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시민들이 이를 당연시 여기고 지나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원재 소장은 이를 절박함의 표현으로 해석했다. 플래카드 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 하지만, 도시에 담긴 사회적 현상을 파악해 보면 시민들의 절박함이 드러나는 것이 플래카드이기에 이를 비판적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라도삼 실장(서울연구원 미래사회연구실)도 이에 동의했다. “압축된 공간에서 한정적인 소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노력의 결과가 플래카드 문화”라면서,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도시의 소통 문제로 귀결되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미디어의 문제로도 연결되는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미디어와의 관계에서 도시의 물리적 측면을 살펴보면 또 하나의 쟁점이 발생한다. “도시를 아무리 멋있게 조성해도 시민들이 보지 않는다”(이재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점이다. 토론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들을 접할 수 있다. 조경진 교수는 “지구 어디서나 정보 소통이 실시간으로 가능해졌고 시공간의 압축을 넘어 시공간의 소멸이 진행되고 있다”며, “디지털 미디어가 도시 생활의 중심을 차지하고, 디지털 미디어의 침투는 물리적 공공 공간에서도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와 공간 간의 역학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외부 활동이 축소되었다는 건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스마트폰의 발달로 미디어가 외부 활동과 공간에 미치는 영향이 가속화되었다는 게 발표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라도삼 교수는 SNS를 통해 미학적 공간을 찾고, 장소 읽기의 수단으로 미디어가 활용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찬호 교수는 사람들이 “꽃을 보고 감동하지 않고, SNS에 올리고 관계하면서 그때서야 감동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공간과 미디어 그리고 관계성에 대해 새롭게 짚어볼 것을 요구했다. 조경진 교수는 미디어를 통해 장소에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는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는 “장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울의 ‘동네 문화’가 활기를 띠도록 공간을 다루는 사람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상인 교수가 서두에 밝혔듯이 세미나의 배경에는 분야의 절박함도 있다. 참석자들이 도시와 미디어의 위기 의식을 가지고 공론화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도시를 살리는 ‘소통’, 그 후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미디어 지형과 도시의 모습, 그 변화에 귀추가 주목된다.
  • 노란 리본의 정원 시민들의 염원을 품은 노란 물결
    서울시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이와 함께 한국조경사회(회장 정주현)는 노란 리본을 달 수 있는 정원을 조성했다. 황용득 부회장(한국조경사회)이 설계한 노란 리본의 정원은 200m2 규모로 스테인리스 기둥을 눈물(혹은 ‘쉼’을 상징하는 쉼표) 모양으로 두른 단정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기둥은 세월호 사망자와 실종자의 수를 합한 302개(조성 당시 발표에 따름)이고, 여기에 초를 밝힐 수 있는 실린더가 설치되었다. 외곽에는 40mm 두께의 기둥을 설치하고 내부에는 60mm 두께의 기둥을 설치해 염원이 내부로 응집되는 무게감을 주었는 데, 이는 리본이 많아질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주조색에 맞춰 경계부에 황금조팝나무를 심고, 굵은 기둥 하부에 노란무늬비비추를 심었다. ‘노란 리본의 정원’에는 특별한 디자인적 의미가 담겨있지 않다. 설계자는 조경가로서 세월호 참사에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 결과로 시민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추모 공간 조성에 초점을 맞췄다. 일시적 정원인 이곳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성된다. 조성 초기 기둥만 세워져 앙상하던 정원에는 어느새 시민들이 하나둘 묶은 노란 리본이 빼곡하게 채워져 풍성해졌고, 해질 무렵 촛불을 밝히는 이들의 마음이 더해져 먹먹해진 우리의 마음을 밝힌다. 정원이 만들어진 4월 30일 이후, 한국조경사회 회원들과 서울시 푸른도시국 조경과 직원들이 매일 저녁 불을 밝히고 있고,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며 추모객을 맞이하고 있다. ‘노란 리본의 정원’은 합동분향소철거 전까지 유지·운영되며, 그동안 조경인들에 의해 가꾸어질 예정이다.
  • 조경 법제화의 전략 정주현 한국조경사회 회장 인터뷰
    정주현 한국조경사회 회장 인터뷰 지난 5월 19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한국조경학회(회장 김한배) 주관으로 진행된 이 공청회는, 지난 2013년 4월 24일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을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현재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를 비롯한 조경 단체들은 건설 분야의 반대로 제정이 지연되고 있는 이 법안을 6월 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조경계의 관심과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이 밖에도 최근 조경 관련 단체들은 산림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등 제도 변화에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다. 본지는 한국조경사회의 정주현 회장을 만나 조경산업진흥법을 비롯한 조경 관련 법 제도 정비의 배경과 그 추진 전략에 관해 의견을 들어보았다. 도시 공원에 대한 국고 지원의 의미와 영향: 생활권 공원과 국가 도시 공원 laK 현재 추진하고 있는 조경 관련 법 제·개정 배경에 관해 설명해 달라. CJH 2000년대 후반 조경 산업은 호황의 절정을 누렸으나, 그 이후 조경 분야의 성장 저하 속도는 너무나 빠르다. 경기가 침체되자 조경 관련 법과 제도가 없으니 일을 만들어내기 무척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동시에 조경이 미래 지향적인 분야라는 인식도 정책 결정자들 간에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 제도를 정비할 적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생활권 공원과 국가 도시 공원이 그것이다. 우선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통해 생활권 공원과 지방의 대형 공원을 지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실 국토교통부는 법만 담당하고 있지,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예산 지원을 하지 않았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1980.6.1. ‘도시공원법’ 제정)을 다루는 곳이 국토교통부의 녹색도시과인데 법의 사업 집행을 모두 지방자치단체 사업으로 위임해 놓았다. 반면 예산을 배분하는 기획재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에 국고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때문이다. 대통령 공약 사항에 ‘도시공원 조성에 대한 국비 지원’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이를 근거로 공원 사업에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고자 한 것이 ‘생활(권) 공원’이다. 우리도 이 공약에 큰 기대를 걸었다(지난해 국토교통부는 국비 2,000억 원을 투입해 향후 5년간 총 1,000개의 ‘생활 공원’을 조성하려는 사업계획을 밝혔으나, 올해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 첫 해에는 계획을 세우고, 올해부터 향후 4년간 1,000개의 도시 공원을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도시 공원 한 개소당 대략 5억 원 정도의 조성비가 든다. 그러면 총5,000억 원에 달하는데, 이를 모두 국고로 감당하긴 힘들 테니 국비와 지방비를 50대 50으로 매칭하여 2,500억 원을 지원받는 것으로 로드맵을 짜고 예산안을 올렸다. 첫해에는 100개의 도시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니 이에 필요한 국비는 250억 원이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이미 복지에 많은 예산이 배정되었다는 이유로 공원에는 예산을 전혀 할애하지 않았다. 이에 국토교통부와 논의해서 예산을 예결위에 다시 올리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등 애를 많이 썼으나 최종적으로 국비지원이 무산되었다. 사실 타 부처에 비해 많은 예산을 올리는 국토교통부의 사업 중 공원 관련 업무는 우선순위에서 쉽게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올해는 다른 항목의 예산을 일부활용해 도시 공원을 조성하고 다음 해에 기획재정부에 다시 신청하겠다는 복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도시 공원에 국비를 지원받으려면 선례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가 도시 공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서 국가 도시 공원 시스템을 만들자는 이야기다. 각 광역자치단체마다 도시 공원 한 개씩을 국가 도시 공원으로 지정하여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대형 공원 하나당 조성 비용을 3,000억 원 가량이라고 생각하면 17개 광역자치단체를 합하면 4~5조 원이 된다. 전국에는 2만여 개의 도시 공원이 지정되어있지만, 그 가운데 약 60%는 조성되지 못한 실정이다. 2020년이 되면 장기미집행시설 일몰제 때문에 도시공원 지정이 해제되는 상황이지 않은가(10년 이상 된 미집행 공원이 그 대상인데, 이미 2015년 10월 1일부터 자동 실효되는 미집행 공원이 생기게 된다). 그때가 되면 공원 녹지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니 큰 공원 하나라도 살리자는 이야기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열악하다보니 큰 공원에는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국토교통부 입장에서는 일단 지방자치단체에 일임한 사업을 다시 국가 사업으로 가져오기 힘들다. 그러니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시 예산을 달라고 국가에 요청하는 편이 수월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초자치단체 시장·군수 협의회에 국고를 요청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생활권 공원과 국가 도시 공원 두 가지에 국고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차츰 정비해 나가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그동안 4대강 건설 등 대형 토목·건축사업이 많았기 때문에 조경 분야에 큰 관심을 쏟기 힘들었다. 그런데 최근 회색 사회간접자본(SOC)보다 녹색 기반 시설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니 이제 공원이나 녹지에 지원해야겠다는 마인드가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국토교통부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문제는 기획재정부가 개정안 자체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그간의 관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의 인식도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하드웨어는 ‘도시공원법’ 개정, 소프트웨어는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으로, laK ‘조경산업진흥법’은 어떤 배경에서 준비되고 있는 것인가? CJH 법 제도 정비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하나는 기존법, 즉 ‘도시공원 및 녹지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서 실제 하드웨어인 공원·녹지 등을 국고로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조경산업진흥법’은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법이다. 이 진흥법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만드는 제정법이라 추진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 조경과 관련된 유일한 법이다. 산림이나 건축 분야에는 ‘산림’ 혹은 ‘건축’이란 이름이 붙은 법이 10~20여 개가 된다. 반면 ‘조경’이란 이름이 붙은 법은 아직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건축기본법’(2007.12.21. 제정)이 만들어지자, 조경계에서도 그 영향으로 처음에는 ‘조경기본법’을 만들고자 했다(2010년 1월 5일 ‘조경기본법안’이 의원 발의되었으나, 관련 부처가 반대하여 2012년 5월 29일 회기만료로 폐기되었다). 법이란 기본법, 일반법, 특별법으로 구분되는데, 당시 무리해서 기본법부터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건축기본법’은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김진애 의원이 치밀한 로드맵을 준비해 시작한 반면, 조경계는 당시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와 전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법안 제정을 밀어붙였다. ‘조경기본법’이 좌절되자 2012년에는 당시 한국조경학회 양홍모 회장이 ‘녹색기반법’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다양한 공원, 녹지, 하천, 그린벨트 등을 연결하는 시스템은 환경부의 소관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조경계는 계속 법을 제정하고자 국토해양부와 협의를 해 나갔고 특별법인 ‘조경산업진흥법’을 만들어보자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사례 조사를 해보니,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산업을 육성하는 진흥법이 있었다. 일례로 ‘소금산업진흥법’도 있고, 특히 IT산업 분야는 진흥법이 많다. 이렇게 다른 진흥법 내용들을 참고하여 국토교통부와 협의해가며 법안을 만들어갔고, 지난해 4월 24일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하게 된 것이다. laK ‘조경산업진흥법’이 만들어진다면 실질적으로 어떻게 조경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가? CJH 담당 부서인 국토교통부 내부에 이 법을 다루는 담당 조직이 생기게 될 테고, 이는 조경계에 대한 예산 지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조경 산업의 진흥을 위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본계획을 세우게 되고, 조경산업진흥센터와 같은 법정 단체를 만들 수 있으며, 산업진흥단지를 조성해 입주 업체에 세제 지원 등을 할 수도있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조경산업진흥법’을 제정하게 되면, 조경계에는 기본적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법이 하나씩 생기는 셈이다. 그 이후 계획은 ‘녹색기반법’을 다시 준비하는 것이다. 이제 국토교통부도 그린인프라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laK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에 대해 대한건설협회가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CJH 대한건설협회는 조경 관련법이 생기면 조경이 건설 분야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현재 법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지만, 차후에 법 개정을 통해 분리 발주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건설업은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으로 나뉘는데, 조경은 이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되어 업종이 3개가 된다. 일반건설업이란 토목, 건축, 토목건축, 산업·환경설비, 조경 이렇게 5가지를 말하고, 전문건설업 안에는 조경식재와 조경시설공사업이 있다. 일반건설업으로 본다면 조경은 토목이나 건축과 대등한 건설업의 한 종류다. 그런데 대한건설협회는 조경을 토목·건축의 하위 시스템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의 명분이 부족하다. laK 최근 정원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는데,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하는가? 지난 5월 14일 있었던 ‘산림청과 조경계와의 상생 발전을 위한 간담회’에서 이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갔는가? CJH 산림청과의 대화는, 작년 9월에 산림청장 면담을 하면서 산림청과 조경계 간 실무위원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현안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연말에 첫 회의를 했는데, 그때 산림청이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관련 내용을 가져왔다. 내용을 보니 우리가 해야 할 정원에 관한 내용들이 상당 부분 담겨 있었다. 산림 분야가 보기에는 정원에는 주인이 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러한 산림청의 행보에 위기감을 느껴 지난 해 한국정원문화협회를 발족하게 된 것이다. 이후 올 2월에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정원 조성을 지원하고 인력을 육성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현재 여·야 국회의원이 모두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 (2014.2.14. 이낙연 의원 대표 발의; 2014.2.28. 경대수 의원 대표 발의)했으므로 합의해서 통과시킬 가능성이 크다. laK 조경계 일부에서는 건설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산림청이 정부 예산으로 일을 만들어내면, 어차피 하도급을 받더라도 조경 인력이 참여할 수 있으니 조경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겠냐는 의견도 있다. CJH 그런 딜레마도 있다. 이번 산림청과의 간담회에서 이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산림청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원 관련 사업은 100% 조경공사업으로 발주하여 산림조합은 빠지고 조경업체만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문제는 상당수의 산림조합이 조경공사업 면허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거다. 다른 산림 사업처럼 산림조합과 수의계약을 맺지는 안겠다고 하는데, 특히 지방에서는 조경공사업으로 발주한다고 해도 산림조합이 조경공사업 면허를 내면, 나중에는 관행대로 우리 식구 감싸기를 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제도적 울타리, 정부와의 관계 정부에는 조경계와 관련지을 수 있는 여러 부처가 있다. 우리는 우리를 지원하고 예산을 만들어주는 조직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예산과 조직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셈이고, 산림청은 그간 조경에 관계되는 사업을 많이 추진해 왔으나 조경 쪽에 실질적으로 일을 많이 주지는 못했다. 문화적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문화체육관광부와도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일전에 문화체육관광부에 ‘정원문화육성법’과 같은 법안을 올리려고도 계획해 보았으나, 아직까지는 부처 내 조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앞으로 세미나와 같은 활동을 통해 정원이 문화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laK 문화체육관광부는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법률’의 주무부처인 산림청을 의식해서 정원에 관심을 가지기 힘들지 않겠는가? CJH 그래서 지금 교통정리를 잘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산업적으로도, 법 제도적으로도 정부와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실리적으로 보면 ‘조경’이란 단어에 너무 연연하지 않을 필요도 있다. 여러 부처와 대화를 해보니 ‘조경’이란 말은 결국 국토교통부의 소관이다. 환경부는 생태 복원, 산림청은 도시숲, 국토교통부는 공원 녹지,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원 문화, 이런 방식으로 유연하게 역할을 분담하면서 여러 부처와 관계를 맺고 시장을 키워야 한다. 도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변곡점에 와 있다. 좋은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조금만 더 서로 도와주며 노력하면 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김정은
  • 시민이 디자이너가 되다 시흥시 오이도, 생명의 나무 전망대
    디자인 구상 오션프런트 시민디자이너그룹+UDI도시디자인그룹+시흥시 설계 경호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시공 티엘건설+메탈아트 오이도 오션프런트 섬의 모양이 까마귀 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 ‘오이도’는 아주 먼 과거부터 근·현대 시기까지 오랫동안 사람들이 촌락을 이루며 거주하던 생활 터전이자, 역사·문화·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전형적인 어촌 마을의 원주민들은 대부분 어패류 채취와 염전일에 종사하였다. 이후 오이도 주민들의 생활은 1987년부터 진행된 시화호 방조제 사업을 전후로 크게 바뀌게 되었다. 국토 개발의 열풍이 오이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간척 사업을 통해 시화산업단지라는 도시적·공업적 산물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결과 군자염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시화호를 가로지르는 방조제의 출발점인 오이도는 소금 만들고 조개 캐던 섬이 었다는 추억만을 간직하게 되었다. 시화호 개발은 단순히 바다와 갯벌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산업화, 도시화, 이주민 단지화로 옛 바닷가 마을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마저 도시민의 그것으로 변모시켜 버렸다. 작은 어촌 마을이 도시로 변모된 지 25여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우리는 오이도를 어떠한 모습으로 재탄생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달라진 오이도의 환경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오이도의 미래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뼈대를 구축해야 했다. 그 해답은 몇몇 전문가 혹은 행정의 일방적인 주도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 커뮤니티와 전문가, 행정이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오이도가 잊고 살아왔던 것과 오늘의 오이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연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해안 지역에 ‘스며드는 공간 환경’ 구현을 통해, 지역 자원이 갖고 있는 정체성과 해안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오이도를 찾는 이에게아름다운 서해안의 낙조와 쾌적한 해안 경관을 제공함으로써 오이도 지역을 재생하기 위한 ‘오이도 오션프런트’ 프로젝트가 2011년 첫발을 내딛었다. 시민이 디자이너가 되다 오이도 오션프런트의 핵심은 ‘시민 디자이너 그룹’의 운영이었다. 형식적이었던 시민참여의 관행을 과감히 깨보고자 시민이 곧 디자이너라는 선언적 의미를 담아, 지역 주민을 프로젝트 추진의 단순한 보조자에서 주체로 격상시킨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이후 활동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시민 디자이너 그룹은 주민 자치 활동의 리더 및 구성원들이 지역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토의하고, 조경·디자인 전문가의 지속적인 멘토링과 현장 답사 등을 통해 디자인 구현의 실현 가능성과 적용방안을 직접 검토하고 결정하였다. 2014년 현재까지 시민 디자이너 그룹은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총 25회에 걸친 회의 진행과 현장 토론을 벌였고, 해안에 설치된 ‘생명의 나무전망대’의 기본적인 유지관리까지 맡아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 과정에서 시민 디자이너 그룹은 제방에 그늘이 없으니 나무를 심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인공적인 구조물인 제방 위에 수목의 생육 환경을 무시한 채 나무를 직접 심는 보다는 지역의 역사성을 간직한 마을 어귀의 당산목처럼 크고 당당한 수목 형태의 조형물을 도입하는 방안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도출된 초기 디자인은 현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시민 디자이너 그룹에서 1차 확정된 디자인은 실시설계와 구조 검토 과정에서 부재의 규격과 두께 등이 계속 커져 원래 구상한 형태가 유지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특히 태풍 또는 강풍이 상존하는 해안 지역의 특성상 안정적인 구조 내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초기의 디자인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디자인 수정 토의가 계속 이어졌다. 시공 과정에서도 시민 디자이너 그룹은 ‘주민참여감독관’이란 직책을 맡아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공공공간에서 시행되는 사업의 특성상 주변 상가에서 주차 및 영업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같은 시민의 입장에서 이해, 설득, 조율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지역에 상시 상주하는 주민의 관점에서 안전 관리 문제 등 다양한 위해 요소를 즉시 저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여, 피감독자인 시공자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제작 과정에서는 3D로 도출한 형태를 설계도로 변환하고 스테인리스 관을 20~30cm 내외로 조각조각 재단하고 정확한 각도와 위치에 용접으로 꼼꼼히 이어붙이는 과정이 차분히 진행되었다. 조형물의 현장 반입, 현장 조립, 거치 등이 마무리되어, 시민과 함께 애쓰고고민한 결과물이 드디어 오이도 제방 위에 설치된 순간, 이 조형물은 더 이상 설계자, 시공자, 발주자가 만들어낸 성과물이 아니었다. ‘생명의 나무’는 지역을 되살리고자 같이 고민하고 토의하고 그려온 시민 디자이너 모두의 것이었다. ‘생명의 나무 전망대’는 어찌보면 일반적인 조경 사업의 결과물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시민과 함께 호흡하고 고민하여 이루어낸 결과물이기에, 그 의미는 여타의 사례와 비교할 수 없다. 오이도 시민 디자이너 그룹의 활동이 이상적이고 지속가능한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 기반만큼은 착실히 다져졌다고 자부할 수 있다. 살맛나고 즐거운 오이도, 정이 넘치고 활기가 충만한 오이도를 꿈꾸며 달려온 지난 시간 동안, 시민과 전문가, 공무원들이 쏟아부은 열정이,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생명의 나무 전망대 이외에 ‘제방 경관 디자인, 교통 소통 활성화 제안, 문화 시설 확충, 주민생활여건 개선분과 운영, 스쿨가든 시행, 오이도 사랑모임 결성, 생활 안전 여건 개선’등 다양한 유무형의 결과물을 오이도에 남겼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오이도에서는 시민과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공간 환경 디자인, 경관 만들기, 지역의 스토리텔링 만들기 활동이 지속적으로 시도될 것이고,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할 것이다.
    • 김정철 / 시흥시청 도시정책과 도시디자인계
  • 라장 브리지 L’argens Bridge, Webb Yates Engineers
    프랑스 남부 툴롱Toulon 인근에 400에이커 넓이의 포도밭이 있다. 이 포도밭은 라장 강River L’rgens에 의해 둘로 나뉘어 있다. 농장에 속한 건물과 주택은 부지 관리인의 거처와 가까이 붙어있지만, 반대편으로 이동하려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강을 건너 이동한다고 해도 차로 약 2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에 농장주는 보행자와 사륜 오토바이가 다닐 수 있는 저비용의 가벼운 다리 건설을 의뢰했다. 수작업으로 진행된 다리 설치 대상지는 대형 차량의 접근이 불가능해 다리를 만드는 데 크레인을 이용할 수 없다. 이에 수작업으로 부품을 하나씩 조립해 다리를 건설할 수 있는 케이블 현수교cable-suspension bridge가 도입되었다. 수작업으로 다리를 세워야 한다는 점이 설계 과정 내내 주된 고려 사항이었다. 15개의 부품 및 지지 케이블은 제작된 상태로 현장으로 운송되었으며, 강물 위에 설치된 오버헤드 짚 와이어overhead zip wire로 개별 부품들을 북쪽 둑으로 옮기고 남쪽 둑을 향해 이동하면서 설치가 이루어졌다. 이곳은 강둑 자체가 그리 단단하지 않은 충적토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행히 남쪽 둑은 석회암 노두로 이루어져 있어 이를 활용해 다리를 설치할 수 있었다. 단단하지 않은 충적토에 가해지는 압력을 견뎌낼 수 있도록 스쿠프scoop 토대가 활용되었으며, 상대적으로 단단한 남쪽 둑의 암석 노두 위에 마스트mast를 설치하고 케이블을 연결했다. 마스트는 텔레핸들러telehandler를 이용해 설치했으며, 케이블은 수작업을 통해 강 양편으로 당겼다. 케이블의 장력을 견뎌낼 수 있도록 콘크리트 토대는 둑보다 훨씬 아래쪽에 배치했다. 다리가 위치한 지점은 보의 하류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간헐적으로 많은 양의 물이 방류되어 흘러가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지점의 강물은 예측이 쉽지 않으며, 범람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러므로 다리 가운데 부분을 위로 살짝 올라오게 함으로써 범람 시 물속의 파편으로 인한 교량의 훼손 가능성을 낮추고자 하였다. 다목적 구조 및 디자인 다리는 총 길이 28m로 무게나 느낌은 비교적 가벼운 편이다. 이용자 및 사륜 오토바이에 의해 발생하는 상당한 정도의 점하중 굴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교량의 데크 및 수직 난간이 하중을 균일하게 분산시켜야 했다. 때문에 수직 난간 사이에 철근을 격자로 배치했고, 이를 통해 난간 손잡이를 하나로 연결해 보행로가 일종의 트러스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다리에 활용된 대부분의 구성품들은 복수의 구조와 디자인적 목표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수직으로 배치한 난간의 경우 기둥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손잡이와 마룻장은 하중을 분산시키는 전체 구조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수직 난간들 사이의 빈 공간을 개방형그물 구조로 채움으로써 교량의 데크 및 손잡이를 트러스로 활용해 교량에 가해지는 하중이 분산되도록 했다. 2톤 이하의 강철이 사용되었고 마룻장에는 약 1톤의 목재가 사용되었다. 다리 설치의 전 과정은 1주일 안에 모두 끝났다. 프로젝트에는 아주 적은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총 비용은 약 7만 파운드로 추산된다. 의뢰인은 애초의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다리 설계에 매우 기뻐했다.
    • 최이규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사람과 식물
    #15 거트루드 지킬, 위대한 정원 예술가 영국 정원 역사상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로 지금도 그 영향력이 시들지 않고 있는 거트루드 지킬Gertrude Jekyll(1843~1932)은 엄격한 쪽머리에 빅토리아풍의 검은 원피스를 입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정원을 돌아보는 노년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지킬이 디자인한 아름다운 색채 정원과 얼핏 매치시키기 어려운 모습이다. 어쩌면 검은 옷과 지팡이는 위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면 지킬 선녀로 변하여 마술봉을 휘둘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트루드 지킬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지루한 정원에 마술처럼 빛과 색을 가져다줌으로써 새로운 장르를 완성시킨 장본인이었다. 건축과 정원의 화합을 이루어낸 것 외에도 식물, 그중에서도 다루기 힘든 야생화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였으며 그가 연출했던 장면들은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 비록 야생화를 자유롭게 풀어놓기는 했지만 완강하고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인해 작품으로 완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했던 윌리엄 로빈슨1과 비교해 볼 때, 첫 정원 작품으로 단번에 마에스트로의 평판을 얻은 지킬의 비결은 우선 자유로운 사고 체계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물론 타고난 감각과 오랜 세월 화가로 활동하며 얻었던 체험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시력이 급속히 나빠져서 화가의 길을 접고 정원 예술가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다.2 그러나 그보다는 그의 삶의 여정이 자연스럽게 정원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원공부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모든 영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원 유전자’ 덕으로 지킬에게 정원은 어린 시절부터 일상에 속했었다. 유난히 색에 민감했으므로 꽃의 다양한 색조에 매료되었던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영국 남부의 서리 지방이 고향이었던 지킬은 만 열여덟 살이 되던 1861년에 런던의 사우스켄싱턴 예술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가 1876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홀로 남은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십여 년 만에 귀향했다. 딸이 돌아오자 어머니는 먼스테드히스Munstead Heath에 집을 새로 지었는데 이곳에 ‘실험적’으로 만들어 본 정원이 지킬의 공식적인 첫 작품이 된다. 그것이 불과 3~4년 만에 소문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음으로써 정원 예술가로서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영국인들은 소문난 정원을 방문하는 전통이 있었으므로 지킬 모녀의 먼스테드히스 정원에도 방문객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당시에 『정원The Garden』이란 제호의 잡지를 발행하던 윌리엄 로빈슨과 영국장미협회 회장의 방문을 받게 된다. 이렇게 얻은 성취감으로 인해 지킬은 정원이 대안이나 차선책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왔던 예술적 체험을 집약시킬 수 있는 기회임을 이해했다. 이즈음 로빈슨의 권고로 『정원』 잡지에 기고를 시작했는데 1932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기까지 천여 편의 에세이를 쓰고 모두 열세 권의 책을 냈으며 크고 작은 정원 400여 개를 디자인했다. 이런 엄청난 작업량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지킬에게 정원이 전부였음을 시사한다. 지킬이 미술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미술공예운동Art & Craft Movement의 창시자 중 한 명이었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1834~1896)가 학교 인근에 디자인 회사를 설립했다. 본업이 화가였던 윌리엄 모리스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생활용품들을 몹시 역겨워했다. 손으로 직접 만든 것만이 가치 있다는 철학 하에 벽지부터 가구까지 직접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손재주가 많았던 지킬이 “마음과 손과 눈”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모리스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지킬은 회화 외에도 자수, 조각, 판화, 직조, 사진 등 다방면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분야를 넘나드는 포괄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했다. 이런 성향은 후에 정원 예술가로 완전히 방향을 굳힌 후에도 양식에 구애받지 않은 ‘편견 없는 정원’을 만들게 했다. 그러나 정작 지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1775~1851)3의 그림 세계였다. 미술관에서 터너의 그림을 연구하며 보낸 수많은 시간은 터너의 화폭을 환하게 밝히는 지중해의 빛과 색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1874년 지킬은 터너의 빛을 찾아 여러 달에 걸쳐 북아프리카, 그리스,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되며 여기서 만난 파스텔 색조의 식물에 매료되어 돌아왔다. 이런 영향들이 축적되어 후에 지킬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경계 화단’4이 탄생했다. 경계 화단은 본래 프랑스 정형식 정원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경계를 이루던 회양목 생단이 진화하여 꽃피는 식물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을 말한다. 지킬은 이 경계형 화단이 독립적 정원 요소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 같다. 화폭 속에서 더욱 빛나는 터너의 밝은 색조를 응시하던 수많은 나날 중 야생화들도 저렇게 ‘액자’에 담되 윤곽 없이 서로 스며드는 기법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것이다. 소로를 따라 화단을 길게 배치하는 것이 경계 화단의 기본 형태였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러 방법으로 응용했다. 특히 옹벽, 계단, 테라스 등 시설물을 오히려 화단처럼 이용하여 식물과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최대의 상승 효과를 내는 기법 역시 지킬의 아이디어였다. 경계 화단에서 보여준 지킬의 탁월한 감각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원 전체의 구성에 여실히 반영되고 있다. 지킬의 정원들은 손수건 크기의 화단으로부터 몇 헥타르에 이르는 숲 정원까지 때로는 정형으로, 때로는 자연형으로 장르를 넘나들었으며, 전원의 정다움, 도시적인 세련됨, 이국적인 매력 등 상황에 따라 적절한 식물들로 ‘팀’을 짜서 배치함으로써 수많은 변주곡을 연주한다. 각 식물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무대를 만들어 줌으로써 최상의 효과를 얻어 낸 지킬의 방법론은 건축과 정원의 화합뿐 아니라 사람과 식물 사이에도 균형 잡힌 관계가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20세기 초까지 일정한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쳇바퀴를 돌고 있던 정원계에 지킬이 보여준 자유로움과 균형감은 확실한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그림만 그리기 1
    설계의 정의 설계의 목적은 그림을 그리는 데 있지 않다. 설계design는 “특정한 대상의 형태와 기능을 결정하는 행위다.” 이때 특정한 대상은 반드시 건물이나 정원 같은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옷도, 가구도, 일상용품도 설계의 대상이며, 요즈음에는 심지어 감정이나 행위도 설계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설계를 할 때 우리는 대상의 형태와 기능을 결정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들을 생각해야 한다. 크기, 색, 질감, 위치와 같은 물리적 성질들뿐만 아니라 대상의 목적, 의미, 만드는 과정, 심지어 변화까지도 디자이너가 고려해야 할 설계의 요소들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는 글이나 소리로 기술된 계획을 설계라고 하지 않는다. 설계 과정상의 모든 생각과 결정들은 그림을 통해서 구현된다. 설계의 매체는 결국 그림이다. 설계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설계 행위는 기능과 형태의 구체적인 그림을 만듦으로서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붙어있다. 다시 온전한 정의를 내리자면 설계는 “특정한 대상을 만들기 전에 구체적인 그림을 통해 그 형태와 기능을 결정하는 행위다.”1 이렇게 본다면 설계의 목적은 특정한 대상의 형태와 기능을 구현하는 데 있지만, 모든 수식어와 관계사들을 제거하고 나면 설계는 본질적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된다. 두 가지 그림 그동안의 설계 경험을 떠올려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만 그리는 데 쏟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실제의 공간을 직접 대면할 때라고는 고작 대상지 답사를 간다든가, 현장 실습 시간에 먼발치에서 콘크리트가 부어지는 모습을 바라본다든가, 모종삽으로 꽃포기들을 몇 번 심어본 기억밖에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직하더라도 설계의 경험은 그림이라는 매체 바깥으로 나가기가 힘들다. 정원을 전문적으로 다루거나 시공을 겸하는 회사가 아니라면, 업무상으로도, 계약상으로도 설계의 모든 최종 결과물은 공간이 아닌 그림이 된다. 누군가는 공간을 만들면서 그림만 그려야 하는 설계의 현실에 괴리감을 느낄지 몰라도 이는 전혀 비정상적인 일이아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생기면서 공간을 창조하는 작업도 분업화된다.2 이제 설계가의 업무는 나무를 심고 석재 포장을 까는 일이 아니라, 어디에 나무를 심고 어떠한 모양으로 석재 포장을 깔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되었다. 오늘날의 설계가는 구상에서부터 제작까지의 전 과정을 수행했던 중세의 대석공Master Mason이나 조선시대의 대목장과는 다르다. 설계가가 다루는 매체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림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다. 예술가도 설계가도 모두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이 중 설계가만이 전문적인 기술자로 인정받는 이유는 설계가의 그림이 작가의 개인적인 표현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기술적 매체이기 때문이다(그림1, 2).3 우리는 이를 도면이라고 부른다. 도면은 정확하게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 전문적인 기술자로서 설계가는 이 규칙들을 숙지하고 지켜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건축학과와 조경학과 학생들은 저학년 때 도학과 제도라는 수업을 들어야 하고 평생 이때 배운 언어를 반복해서 구사한다. 그런데 공학도들 역시 제도 수업을 통해 동일한 도학의 원칙을 배우며 그들의 실습 과목 역시 설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설계가가 따라야 할 그림의 규칙이 예술가들이 익히는 표현기법보다는 공학자들이 요구하는 정보의 체계에 가깝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공학자의 도면과는 달리 디자이너는 기술적 정보의 전달을 넘어 대상의 미적인 아름다움과 작가가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까지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 바로 설계의 매체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설계의 그림은 기본적으로 정보로서의 가치를 지니면서 예술적인 표현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의 그림은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면의 형식을 취하지만 전달하는 정보는 오류 투성이고 그렇다고 대상의 아름다움도, 본인의 생각도 드러내지 못하는 그림. 다시 말하지만 설계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다. 때문에 설계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잘못된 설계를 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앞으로 두 번에 걸쳐 할 이야기는 설계 매체에 대한 이야기다. 앞에서 나누었던, 그리고 이후 계속해서 하게 될 개념, 직관, 이론, 분석, 맥락, 의미와 같은 설계의 방법과 대상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잊어두자. 설계의 매체에 대한 이야기는 곧 설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면의 논리 가장 기본적인, 그러나 의외로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도면을 구성하는 그림들은 무엇인가? 조경학과 2학년 정도가 되면 누구나 이 질문에 쉽게 답을 한다.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 이 셋이 가장 기본적인 도면의 형식이다(그림3, 4, 5). 그런데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현실의 공간도, 설계가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공간도 삼차원이다. 그런데 왜 도면의 기본은 삼차원적 형태를 보여주는 그림이 아니라 이차원적정보만을 보여주는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일까? 물론 이차원적인 그림들이 더 그리기 쉽겠지만, 고도로 복잡한 공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교량도, 마천루도, 심지어 우주선의 설계 역시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로 그려진 이유가 단순히 설계가들이 그리기 쉬워서였다면 수긍하기가 힘들다. 고대 그리스어로 인위적인 것은 노모스Nomos라고 부른다. 노모스는 인간의 정신 문화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노모스의 반대말인 피지스Physis는 인간 문명과 대립되는 자연을 뜻한다. 문명이 발생한 이래로 인간은 자연 상태의 피지스를 노모스의 세계로 편입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설계는 단순한 자연의 변형을 넘어서 건축물과 같이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노모스의 공간을 창조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를 위해 인간은 기하학이라는 사고 체계를 발명했다. 모든 문명을 막론하고 기하학은 건설, 치수, 천문, 경작 등 공간을 다루기 위한 모든 분야의 기반이 되는 지식이었다. 그래서 설계를 지배하는 사고의 체계, 그리고 설계 매체인 도면의 특수한 형식을 이해하려면 기하학의 사고를 이해해야 한다.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 [조경가의 서재] 책은 빨갛다 사랑도 빨갛다 아니 처연하다
    개양귀비 꽃잎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 본 적이 있다. 한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붉은 빛은 그 강렬한 덧없음으로 인해 비현실로 각인된다. 그에 비해 동백꽃은 붉은 눈물방울처럼 툭 떨어져버리는 처연함에 속수무책이다. “빨간색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한계가 없고 특징적인 따뜻한 색이다. 그것은 생기에 차 있고 활동적이며 동요하는 색으로서 내적으로 작용하지만, 사방으로 자기 힘을 소모하는 노란색이 지닌 경솔한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빨강은 모든 에너지와 강렬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목적을 의식한 무한한 힘을 강력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거의 외부로 향하지 않고 주로 자기 내부에서 분출하고 작열하는 빨강은 소위 남성적으로 성숙한 색이다.”1 칸딘스키가 ‘남성적’이라고 얘기했던 속성은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의 영화 ‘하이힐’2을 보면 단순히 남성적인 것보다는 ‘여성 안에 갖고 있는 남성적인’ 빛깔로 욕망과 슬픔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색이 어느 정도 이면을 가지고 있지만,특히 빨강은 그 강렬함으로 인해 그 안에 숨겨진 슬픔과 부서지기 쉬운 감성을 간과하게 된다. 강렬함과 다치기 쉬운 감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빛깔. 그런 면에서 개양귀비 꽃잎은 빨강이 가지고 있는 빛깔의 본성을 가장 적절한 물성으로 보여준다. “나는 여기에서 당신들의 눈에 말을 걸고 있다. 이것이 나의 신중함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동시에 나는 공중에서 당신의 시선을 통해 날아오른다. 이것이 나의 가벼움이다.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못한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섬세함은 나약함이나 무기력함이 아니라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 나는 다른 색깔이나 그림자, 붐빔 혹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는 여백을 나의 의기양양한 불꽃으로 채우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내가 칠해진 곳에서는 눈이 반짝이고, 열정이 타오르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나를 보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를 보라, 본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다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나는 사방에 있다. 삶은 내게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믿어라!”3 오만하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 나오는 ‘빨강’의 얘기다. 파묵의 빨강은 말 그대로 불꽃이다. 그래서 그것은 살아 있음 자체다. 그러고 보니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불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영원하고 싶은 그러나 영원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술탄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고,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바뀌고, 그들이 시대를 거슬러서도 지탱하고자 했던 양식이 바뀌는, 이전의 모든 것들이 소멸되어 가는 얘기. 그러니까 빨강은 소멸의 시간을 얘기하는 유일한 빛깔이다. 이수학은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이원조경에서 4년 동안일했다. 프랑스 라빌레뜨 건축학교와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이 공동 개설한 ‘정원·경관·지역’ 데으아(D.E.A.) 학위를 받았고, 현재 아뜰리에나무를 꾸리고 있다.
    • 이수학 / 아뜰리에나무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