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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의선숲길 3단계 Gyeongui Line Forest Park, the 3rd Phase
    2011년 3월 경의선숲길 공원 조성 사업의 첫 삽을 뜨게 된 이후 5년 3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1단계 구간(대흥동 구간, 2012년 4월 준공)과 2단계 구간(새창고개·염리동·연남동 구간, 2015년 6월 준공)이 완료되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올해 7월 비로소 3단계 구간의 공사가 완료되어 전체 길이 6.3km의 선형 공원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경의선숲길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길의 일부 구간이 지하화됨에 따라 지상부의 철도 부지에 조성된 공원으로, 용산과 마포 지역의 낙후된 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도심 속 선형의 그린 인프라 구축을 통해 도시재생에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경의선의 역사적 의의를 전달하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의선숲길 프로젝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3단계 구간은 재료, 형태, 질감 등의 디자인 요소를 기존 2단계구간과 동일하게 적용하여, 도로와 복합 역사로 분절된 각각의 공간을 체험하더라도 연속적이고 통일감 있는 장소로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설계 대상지는1, 2단계 구간에 비해, 옛 철길이 운행될 당시의 지형과 주변 건물이 상당 부분 남아있어 경의선 특유의 정취가 배어있다. 주변이 이미 개발되었거나 주변의 개발속도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2단계 구간과 달리, 3단계 구간은 철도 부지의 분위기가 살아있고 앞으로도 그러한 공간감을 유지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설계에 있어서도 장소성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요소를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경의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도록 했다. 또한 각 구간의 동시대적 장소성을 반영하여, 경의선이라는 공통의 디자인 언어 외에 각 지역의 개성을 담아낼 수 있도록 했다. 와우교 구간 경의선숲길 와우교 구간은 홍대 인디 음악의 발원지인 ‘땡땡거리’가 위치하고 있는 구간이다. 땡땡거리는 경의선 철길이 와우교 아래로 지나던 시절, 기차가 지나갈때마다 ‘땡땡’ 소리가 나던 철도 건널목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예전의 지형과 철길 주변의 노후 주택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기찻길의 향수를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땡땡거리 주변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생활하면서 커뮤니티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참고하여 와우교 구간은 땡땡거리 주변으로 남아있는 옛 철길의 감성 위에 홍대의 문화·예술이 결합된 공원으로 설계했다. 철길의 패턴을 응용하여 대상지 전 구간에 통일성 있게 적용했고, 지역 커뮤니티의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여유 공간을 곳곳에 확보했다. 기본 및 실시설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대표 안계동) 시공 한일개발, 우보건설(현장소장 문준연) 감리 (주)유신(감리단장 윤상렬) 발주 서울특별시 길이 와우교 구간: 370m 신수동 구간: 420m 원효로 구간: 360m 면적 와우교 구간: 8,650m2 신수동 구간: 8,800m2 원효로 구간: 7,900m2 완공 2016. 7. 안계동은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서인환경, 두산개발을 거쳐 동심원조경을 설립했다. 평화의공원, 서울숲, 난지한강공원처럼 굵직한 작품부터 사도감어린이공원, 율수원처럼 소규모 작품까지 다양한 층위의 프로젝트를 맡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임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동심원조경에서 일하고 있다. 2012년 여름부터 경의선숲길 프로젝트를 담당했으며, 경의선숲길지기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 파빌리온의 도시적 역할
    지난해 12월 파빌리온을 주제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대안적인 건축 활동을 모색하는 학자, 건축가, 큐레이터가 모인 연구 모임인 파레르곤parergon 포럼이 기획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 (송하엽, 최춘웅, 김영민, 소현수, 정다영, 조수진, 함성호, 조현정, 이수연, 김희정, 최장원 지음)가 그것. 도시의 결핍을 채우고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작고 약한 장소, 파빌리온의 가능성을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하기 위해 건축, 미술, 조경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이 책이 탄생했다. 디자인 전문 출판사인 홍시커뮤니케이션의 조용범 편집자는, 파빌리온은 단순히 건물이나 구조물이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문화 콘텐츠라고 보았다며 이 책의 출간 배경을 전했다. 책의 출판은 그 안에 담긴 주제의 사회적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여전히 우리 도시 곳곳에서는 파빌리온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러한 현상과 관심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지난 7월 11일,홍시 사옥에 몇몇 저자들이 다시 모였다. 책 기획 단계의 고민부터 파빌리온에 대한 서로의 생각, 최근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여러 파빌리온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갔다. 그날의 흥미로운 대화를 지상誌上으로 중계한다. 왜 지금 파빌리온인가? 김영민: 오늘 좌담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이 책을 왜 썼을까’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오늘날 파빌리온이 사회에서 보편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저자들의 주관적인 관심일 뿐인가? 서펜타인 파빌리온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등 오늘날 건축계나 조경계, 문화계에서 보여주는 파빌리온에 대한 관심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을 기획했던 분들이 그 배경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송하엽: 국내에서도 광주폴리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DDP의 꿈주머니, 그리고 대학생건축과연합회UAUS의 전시 등 일련의 파빌리온 작업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최근 젊은 건축가들이 작은 규모의 작업을 도시에서 많이 진행한다. 대중 역시 예전처럼 큰 건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시점에 파빌리온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크게 보면 영역의 파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조각과 건축, 건축과 인프라스트럭처, 인프라스트럭처와 조경 등 파빌리온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그래서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된 것 같다. 정다영: 파빌리온이라는 현상이나 결과물은 있는데 이것을 작동하게 하는 역사적인 배경은 부각되지 않았다. 과거와의 연결점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파빌리온을 현대적인 문화 콘텐츠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것에 기원이 있고 역사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을 지금 시점에서 한 번쯤 되짚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파빌리온이 단순히 서양의 문화가 아니라 정자, 아파트 모델하우스처럼 우리 문화와도 연결될 수 있음을 이 책에서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김영민: 최근 파빌리온을 매체로 한 문화 행사나 관련 이슈를 자주 접하게 된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이나 MoMA PS1처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과연 파빌리온이 핫이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까? 사실 파빌리온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고, 엑스포도 어떻게 보면 파빌리온의 집합체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 건축, 문화 예술계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파빌리온은 어떠한 의미일까? 최춘웅: 사실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도 파빌리온이 핫한 이슈인지는 잘 모르겠더라. (웃음) 하지만 경기가 안 좋을수록 파빌리온이 주목받는 것 같기는 하다. 한동안 파빌리온에 대한 관심이 뜸했는데 다시 핫해질 것 같다. 정다영: 2012년 김찬중 건축가와 ‘아트폴리 큐브릭’ 전시를 진행했다. 그때만 해도 파빌리온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과연 일반인들이 잘 이해할까’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여름 파빌 리온은 언제쯤 설치하냐’는 문의도 들어온다. 파빌리온이 핫한 이슈인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분석해야 할 대상의 반열에는 올랐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파빌리온인가? 김영민: 책을 기획할 당시 대상을 무엇으로 부를 것인지 논의를 했었다. 폴리인지, 파빌리온인지, 아니면 가건물인지 등. 이 책의 여러저자들 역시 각자 생각하는 파빌리온의 정체가 다른 것 같다. 초기에는 파빌리온의 주요 키워드를 가변성이나 임시성으로 잡았다. 그런데 막상 책 속에 등장하는 파빌리온의 예시 중 상당수가 가변적이거나 일시적이지 않다. 18세기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의 파빌리온, 라빌레트 공원의 폴리, 한국의 정자는 임시 건축물이 아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도 결국 영구적 건축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떠한속성이 파빌리온을 규정하는 것일까? 최춘웅: 그 모든 것들이 동일하게 규정된다기보다, 조경 설치물, 공공 미술 작품 등이 어떠한 속성을 공유하기는 하는데 우선 파빌리온을 맨 앞에 내세우자고 했던 것 같다. 송하엽: 사실 폴리와 파빌리온의 차이가 모호하다. 최춘웅: 파빌리온이 의례나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설정되어 있는, 역사적으로는 천막에서 유래된 일시성이 강한 구조물이라면, 폴리는 말 그대로 아무런 실제적 목적이 없는 놀이를 위한 조경 시설물에 가까운 것 같다. 김영민: 폴리가 가변성이 조금 더 크다고 보지만, 가변적이지 않은 정자는 오히려 폴리의 개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파빌리온과 폴리의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쓰지는 않는다. 송하엽: 이 책에서는 가건물인 판자촌과 모델하우스까지 다루고 있으니 파빌리온의 범주를 상당히 넓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누정이 일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서양사나 동양사의 관점에서 파빌리온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보려고 했는데, 목차의 흐름을 잡기가 어려웠다. 용어terminology를 유형화하기가 쉽지 않더라. 김영민: 파빌리온을 구체적인 물리적 대상으로 정의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리적인 실체라기보다는 관계, 상대적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예를 들면, 역사서에 등장하는 파빌리온이 일시적이진 않지만 영구적인 건물에 비해서는 일시적이다. 파빌리온이란 애매한 개념인 것 같다. 최춘웅: 과연 파빌리온의 개념이 애매한지 모르겠다. 파빌리온은 건축물이 아니라 가설건축물이나 조경설치물의 영역에 있다. 법적으로도 지을 때 받는 허가가 건축과 다르다. 김영민: 조경 분야에서도 정자는 벤치와 같은 시설물로 분류된다. 최춘웅: 그러다보니 더 자유롭기도 하다. 김영민: 18세기 영국 정원의 파빌리온은 무대 장치라는 개념이다. 파고다나 그로토 같은 것을 풍경 안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종의 디바이스로 보는 것이다. 최춘웅: 그런 경우는 폴리가 아닐까. 한국 정원의 정자를 파빌리온이라고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영국 정원의 파빌리온과 혼동되기 시작한 것 같다. 김영민: 고려시대 이규보의 ‘사륜정기四輪亭記’라는 글에 보면 바퀴달린 정자가 나온다. 좋은 경치를 찾아다니는 이동하는 정자다. 최춘웅: 이 책의 출발선에서 생각했던 파빌리온과 가장 비슷한 개념 같다. 정다영: 파빌리온을 이야기하다보면 매개, 경계, 확장이라는 개념과 계속 맞물린다. 사실 이 책을 내기 위해 다양한 필자가 모여 논의를 했다기보다, 오히려 다양한 필자들을 통해서만 파빌리온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 MAXXI의 피포 초라 선임 큐레이터가 미술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건축이 미술관 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계기가 파빌리온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파빌리온이나 폴리는 정의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연결시켜주고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미디어 같다. 그 미디어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봐야 할 것 같다.최근 많은 제도권 내 미술관이 그런 식으로 건축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술계에서 파빌리온을 어떻게 진화시킬 것인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는 대공간을 만들어내는 미술관 건축 자체의 역사와도 관련되고, 자본의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거대한 스케일을 조율할 수 있는 환경 조건이 갖춰지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춘웅: 스펙터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논의는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시대가 끝났다고 보긴 어렵지 않은가. 버블이 십년 주기를 가지듯이 파빌리온 작업도 경기를 타는 것 같다. 정다영: 어쨌든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경우는 미술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내 생각에 건축가는 실내 공간에서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것 보다 야외에서 제대로 된 파빌리온을 짓는 것이 훨씬 더 직능의 장점을 표출한다. 그런 작업들이 제대로 된 조건에서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게 미술관의 역할인 것 같다. 송하엽: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은 마치 파빌리온을 위해서 지어진 마당처럼 보인다. 정다영: 서울관 마당에 박석이 깔려 있는데 이것이 재미있다. 미술관 자체가 역사적인 사이트에 자리 잡고 있고, 근처에는 경복궁과 청와대도 있다. 그리고 바닥에는 정교한, 소위 의례적인 그리드가 배경처럼 깔려 있다. 그런데 그것을 매년 여름마다 뒤집고 있는 것이다.심지어 내년쯤에는 그리드가 있는 지반을 일종의 랜드스케이프처럼 활용하는 작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동료들과 나눴다.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송하엽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최춘웅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김정은, 김모아
  • 모바일 큐브 서울혁신파크를 누비는 이동형 파빌리온
    도시계획 서울시는 하나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은평구 녹번동의 구 질병관리본부 부지에 새로운 사회적 가치 창출과 혁신의 허브 역할을 할 ‘서울혁신파크’를 조성하는 것이다. 조성 과정에서 다양한 혁신 기업과 단체를 집적·육성해 창업을 활성화하고자 했다. 다양한 분야의 융복합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부가 가치와 일자리 창출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동시에 서울 서북권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거점 시설을 도입하는 것이 계획의 주요 골자였다. 초기의 서울혁신파크 조성 계획1은 신도시 개발에 필적할 만했고, 이는 과거의 개발 계획2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서울시는 2013년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이것이 지금도 진행 중인 ‘서울혁신파크 조성 기본계획’이다. 당시의 여건을 고려해 무리한 개발은 피했지만, 여전히 사람보다는 부동산 개발이 중심이 된 도시계획이었다. 개발이 아닌 재생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서울혁신파크 야외공간 활성화사업’의 총괄 지휘자로 박찬국(아트디렉터)이 선정됐고, 사람과 사람의 삶을 연결해 생성되는 활동을 기반으로 지역을 바꾸어가도록 계획의 방향을 잡았다. 기존의 주변 환경을 유지하되 버려진 공간을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을 촉발할 수 있는 행위를 담을 수 있는 장소로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테니스장에는 누구나 쉽게 어울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전봇대 집이 기획되었고, 그 주변에는 간단하지만 획기적인 삶을 시도할 수 있는 1인 주거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 이동형 파빌리온, 즉 모바일 큐브들은 혁신파크의 곳곳을 누비며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이를 빠르게 조성할 수 있도록 린스 타트업lean startup—아이디어를 빠르게 시제품으로 제조한 뒤 시장 반응을 살펴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전략—을 기획하기도 했다. 사람의 연결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디자이너는 일을 마무리한 후 다른 이에게 사용권을 넘기고 나와 외부인이 되어버린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작가들은 자신이 맡은 파빌리온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혁신파크 야외공간 활성화사업에 참여했다. 파빌리온을 디자인하기에 앞서, 활성화사업 진행자와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같은 워크숍, 포럼 등 사람에게 열려있는 프로세스가 프로젝트의 기본 틀을 이뤘으며, 이는 창의적인 파빌리온디자인 발상에도 도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혁신파크에 입주해있던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청년일자리허브, 서울크리에이티브,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비롯한 여러 입주 기업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미래 운영 방향을 끊임없이 고려했다. 모바일 큐브 파빌리온은 임시적이라기보다는 부속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가볍고 즐거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구조물로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점에 주목하여 모바일 큐브의 목표를 자립으로 설정했다. 도시의 에너지 그리드로부터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안했다. 서울혁신파크에는 총 27개의 파빌리온이 조성되었다. 파빌리온의 디자인에는 건축, 조경,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가 참여했는데, 그 중 6개의 이동형 파빌리온을 소개한다.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영민 교수는 ‘차도농 라운지(차가운 도시 농부 라운지)’를 기획했다. 도시 농업을 사랑하는 이 시대의 차가운 도시 농부를 위한 트렌디한 공간이다. 필요에 따라 전면부를 개방할 수 있어 공간 안팎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라운지의 거울 천장과 장난감 디스펜서dispenser 사이에는 조명이 설치되었다. 이 공간은 희귀한 종자를 모아서 나눠주고,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잉여 종자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된다. 도시 농업의 기본이 되는 씨앗을 통해 주민이 소통하는 공간 조성을 시도한 파빌리온이다. 매니페스토Manifesto Architecture의 디자이너 박여진과 손진원은 냉장 시설 없이도 식품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한 사계절 글램핑 부엌 ‘모바일 키친 스테이션’을 기획했다. 먹는다는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필수 불가결한 행위이기도 하다. 어디든위치할 수 있는 모바일 키친의 특성을 살려 먹는 행위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꾀했다. 이 파빌리온은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식사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함께 먹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가구와 생활 시설물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기성 가구의 부품을 이용해 제작됐는데, 이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여건에 맞게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단순한 큐브 형태의 외관을 살리는 동시에, 지붕의 중앙을 V 형태로 내려 경사면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이는 미관상의 이유로 태양광 패널 설치를 기피하는 건축의 훌륭한 대안이 된다. 안지용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과 서울에서 매니페스토 건축사사무소(Manifesto Architecture)와 매니페스토 디자인 랩(Manifesto Design Lab)을 운영하고 있다. 숟가락에서 도시까지, 그 사이에 담긴 제품, 가구, 공간, 건축, 서비스 등의 다양한 융합 디자인으로 보다 좋은 세상을 디자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뉴욕과 덴버, 샬럿, 홍콩, 서울, 성남, 세종 등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 안지용[email protected] / 서울혁신파크 파빌리온 커미셔너, 매니페스토 대표
  • 서펜타인 파빌리온 & 서머 하우스 서펜타인 아키텍처 프로그램 2016
    매년 여름 서펜타인 갤러리는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청해 그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서펜타인 아키텍처 프로그램Serpentine Architecture Program을 진행한다. 지난 2000년,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파빌리온을 전시하면서 처음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올해로 16번째를 맞이했다. 건축가 초청부터 작품 완공까지 최대 6개월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신속한 작업 과정은 건축 커미셔닝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왔다. 특별히 올해 서펜타인 갤러리는 프로그램을 확대해 4명의 건축가들이 각각 설계한 ‘서머 하우스Summer House’를 선보인다. 건축가들은 켄싱턴 가든스Kensington Gardens의 퀸 캐롤라인즈 템플Queen Caroline's Temple를 주제로 25m2 크기의 서머 하우스를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했다. 퀸 캐롤라인즈 템플은 서펜타인 갤러리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지어진 고전적인 양식의 서머 하우스다. 1734년, 윌리엄 켄트가 디자인한 이 서머 하우스는 한 때 공원 관리인의 숙소로 이용되다가 1976년 복원되었다. 올해 서펜타인 아키텍처 프로그램에 초청된 36세부터 93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건축가 5인은 영국에서 파빌리온 형태의 임시 설치물을 작업한 경험은 있어도 영구적으로 남아 있는 건축물을 작업한 경험은 없다. 아키텍처 프로그램은 현대 미술과 건축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서펜타인의 핵심 철학을 반영한다. 따라서 영국에 완공된 작품이 없고 지속적으로 건축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건축가를 초청해 스케치나 모델이 아닌 완공된 건축물을 전시한다. 올해의 파빌리온과 서머 하우스는 켄싱턴 가든스의 경관과 서펜타인 갤러리, 다섯 개 작품 간의 조화와 균형을 고려해 설계되었다.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히 정해진 예산은 없으며 파빌리온의 판매와 후원에 의해 진행된다. Director of Summer Programmes Julia Peyton-Jones Artistic Director Hans Ulrich Obrist Technical Advisor David Glover Engineering and Technical Services AKTⅡ, AECOM Hesdline Sponsor Goldman Sachs Location Kenshington Gardens, London, U.K. Installation 2016. 6. 10. ~ 2016. 10. 9. 언 지프드 월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Bjarke Ingels Group(이하 BIG)이 설계한 서펜타인 파빌리온 ‘언지프드 월Unzipped Wall’은 정반대의 성격으로 인식되는 다양한 양상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BIG는 비정형 속에 엄격한 규칙이 있고, 모듈식 구조면서도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으며, 투명한 동시에 불투명하고, 각진 사각형이 모여 굴곡진 형태를 이루는 다면적인 성격의 작품을 만들었다. BIG는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인 벽돌담을 재해석했다. 일반적인 진흙 벽돌이나 석재 벽돌 대신 일정한 단면을 가진 섬유유리 프레임을 층층이 쌓아올려 벽을 만들었다. 그 다음 벽을 잡아당겨 내부에 여러 가지 행사 프로그램을 개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즉, ‘언 지프드 월’은 선을 면으로, 벽을 공간으로 변형시킨 작품이다. 파빌리온의 복잡한 3차원의 구조는 내부와 외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위에서 보면 파빌리온의 벽은 하나의 직선으로 보이지만, 밑에서 파빌리온의 입구를 보면 외부로부터 보호되는 계곡의 형태를 취하면서 공원 쪽을 향해 굽이친다. 역동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이 파빌리온은 낮에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나 카페로 이용되고 밤에는 예술가, 작가, 음악가가 작업을 수행하는 서펜타인의 ‘공원의 밤Park Nights’ 프로그램을 위한 장소로 활용된다. 서펜타인 갤러리의관장 줄리아 페이튼 존스와 예술 감독을 맡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BIG의 파빌리온에 대해 “곡선의 벽과 날아오르는 듯한 나선형태로 파빌리온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간결하고 우아하게 설계했다”며 “‘언 지프드 월’은 사람들을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가든스로 끌어들이는 일종의 등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Design Bjarke Ingels Group (Bjarke Ingels, Jenn Grossman, Daria Pahoto, Maria Sole Bravo) 비야르케 잉엘스(Bjarke Ingels)는 덴마크의 건축가로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BIG)의 수장이다. 그가 2005년 설립한 BIG는 코펜하겐과 뉴욕에 본사와 지사를 두고 있다. 현재 BIG에는 25개국이 넘는 다양한 출신의 직원 약 300명이 일하고 있다.
  • 위빙 더 코트야드 MoMA PS1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 2016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이하 MoMA)과 MoMA PS1(MoMA의 분관)에서 진행하는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Young Architects Program(이하 YAP)의 당선 팀인 에스코베도 솔리즈 스튜디오Escobedo Soliz Studio의 ‘위빙 더 코트야드Weaving the Courtyard’가 지난 6월 10일 공개됐다. 단순하지만 연속적이고 강력한 구성을 통해 새롭고 신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위빙 더 코트야드’는 8월 21일까지 MoMA PS1의 중정에서 전시된다.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 올해 17회를 맞이한 YAP는 뉴욕현대미술관이 젊은 건축가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프로젝트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공모프로그램이다. 1998년 호주의 아티스트 집단인 젤리틴Gelitin의 작품을 MoMA PS1의 중정에 설치한 것을 계기로 2000년부터 매년 여름, 젊은 건축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미술관 중정에 그늘과 쉼, 물을 제공하는 일시적인 야외 설치물의 설계안을 창의적이고 환경 친화적으로 제시하는 팀이 매해 우승팀으로 선정된다. YAP는 로마 국립21세기미술관Museo nazionale delle arti del XXI secolodi Roma(이하 MAXXI), 이스탄불 현대미술관Istanbul Modern, 산티아고 콘스트룩토Constructo 등의 미술관과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세계적인 프로그램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2014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작품 오픈일에 맞춰 3년째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MAXXI의 선임 큐레이터 피포 초라Pippo Ciorra는 “현대의 미술관은 도시를 변화시키는 미래 건축의 가능성과 예술성을 실험하고 건축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하기 위해 건축가들을 초대하고 임시 건축물을 선보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YAP의 의의를 설명했다. Design Escobedo Soliz Studio (Andrés Soliz Paz, Lazbent Pavel Escobedo Amaral, Stefanie Verhoeyen,Rodrigo Mazari Armida, Hiroshi Ando Ponce de Leon, Brian RosendoCascarrabias Zambrano) Location MoMA PS1, New York, U.S.A. Installation 2016. 5. ~ 2016. 8. 에스코베도 솔리즈 스튜디오(Escobedo Soliz Studio)는 멕시코 시티에 기반을 둔 건축설계사무소로 공동 소장인 라즈벤트 파벨 에스코베도아마랄(Lazbent Pavel Escobedo Amaral)과 안드레스 솔리즈 파즈(Andres Soliz Paz)가 2011년 설립했다. 다양한 재료와 시공 기술을 실험하고 통계학적인 연구 결과와커뮤니티의 의견을 반영하는 설계 과정을 통해 장소 특정적인 작품을 설계한다.
  • 템플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6 당선작
    건축을 향하여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거대한 선박과 파리의 기념비적 건물의 크기를 비교하며 시대가 생산하는 아름다움을 보았고, 미술가 뒤샹은 기능이 없어진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이미 생산된 오브제ready-made를 통해 작가의 발상과 시각을 전달했다. 위대한 발명품도 시간이 흐르면 기능을 잃고 같은 물건도 시대에 따라 바라보는 가치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산업적으로 생산된 일반적인 물건들도 오래 쓰인 골동품이 되면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aura를 얻어 유일한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한다. 어떠한 문물도 변하는 시대안에서 해체의 운명을 맞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앞으로의 시대에는 건축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 할지 묻고 있다.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는 ‘주거’를 뜻하는 단어이자 환경ecology과 경제economy의 접두사 ‘에코eco’의 어원이다. 이는 환경과 경제가 건축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오늘날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제품이나 건축은 존재할 수 없다. ‘템플’은 버려진 폐선박을 이용해 거대한 크기에서 느껴지는 스펙터클, 단면이 보여주는 절단의 힘, 비움과 열림의 해방감, 물건의 기능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보여 줌으로써 시대의 가치에 부응하는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일시적인 신전 미술관 마당에 놓여진 60톤의 쇳덩이는 그 거대함과 형태로 멀리서 작품을 보는 이에게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며 방문객을 유도한다. 입구에 위치한 배의 전면부의 곡선은 미술관 내부와 주 출입구로 향해 있기 때문에 미술관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외부에서 보이는 녹슬고 거친 표면과는 달리 하얗게 채색된 내부는 시원한 그늘아래 무성한 숲이 펼쳐진 듯한 아늑하고 평안한 공간을 형성한다. 주변의 건물과 같은 스케일을 가진 ‘템플’은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작품을 둘러싼 옛 기무사 건물과 종친부 한옥과 함께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건물로 느껴지게 한다. ‘일시적인temporary 신전temple’이라는 뜻의 ‘템플Temp’’은 재활용을 이용한 건축의 새로운 공법을 보여주는 동시에 오래된 물건이 가진 일종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공간이다. 설계 신스랩 건축 구조 터구조 조명 신스랩 건축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 면적 180m2(폭 13m, 길이 17m, 높이 8m) 설계 기간 2016. 2. ~ 2016. 7. 시공 기간 2016. 5. ~ 2016. 7. 준공 2016. 7. 4. 신스랩(shinslab)은 프랑스와 한국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건축설계사무소다. 설치 미술, 패션 디자인, 건축,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공간 속의 인체를 탐구하고 실험한다. 신형철(프랑스 건축사), 클레어 신(프랑스 건축사), 신혜리(패션 디자이너), 정이록(대표)이 공동 소장을 맡고 있다. 신형철은 1999년 프랑스 베르사유 국립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베르사유 건축대학(ENSAV) 미술과 부교수, 파리 라빌레트 건축대학(ENSAPLV) 도시계획과 강사, 그레노블 건축대학(ENSAG) 디자인과 정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파빌리온, 도시의 실험실
    파빌리온은 최근 다양한 공모와 이벤트의 단골 주제다. 1998년 시작되어 신진 건축가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은 뉴욕 MoMA PS1의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이나 2000년부터 런던의 여름을 축제의 장으로 변신시키는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이제 고전에 속한다. 맨해튼의 거버너스 아일랜드를 무대로 개최되는 시티 오브드림 파빌리온 공모전은 올해로 6회를 맞이했다. 국내에서도 파빌리온은 낯설지 않다. 2005년 안양파빌리온과 2011년부터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기획되고 있는 광주폴리, 2014년 시작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등은 매번 화제를모으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문을 연 서울혁신파크의 파빌리온은 예술 작품으로 주목받던 파빌리온이 미술관의 울타리를 벗어나 대안적 공공시설로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빌리온은 쉽게 만들고 또 쉽게 해체할 수 있으므로 현실의 여러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특히 도시 속파빌리온은 도시에 있지만 마치 도시에서 벗어난 듯한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이러한 유연함이 예술계가파빌리온에 주목하는 이유이자,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들이 파빌리온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까닭이아닐까. 본지는 최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며 진화하고 있는 파빌리온을 살펴보고, 도시에서 파빌리온의 가능성과 그 실험적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템플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6 신스랩 건축 위빙 더 코트야드 MoMA PS1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 2016 에스코베도 솔리즈 스튜디오 서펜타인 파빌리온 & 서머 하우스 서펜타인 아키텍처 프로그램 2016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 외 모바일 큐브 서울혁신파크를 누비는 이동형 파빌리온 안지용(매니페스토) 파빌리온의 도시적 역할 좌담 김영민, 송하엽, 정다영, 최춘웅
    • 김정은, 조한결, 김모아
  • [칼럼] 비장소, 헤테로토피아, 파빌리온 - 중中의 공간
    산업이 발전하고, 물류와 사람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도시가 성장하고 사람들의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우리 주변에는 이상한 공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공간들이 생겨났다는 것은 전에 없는 공간이라는 말이고, 당연히 그것은 변화하는 생활환경을 뒷받침하거나 이끌기 위해 우리가 만든 공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장소non-place라고 부른다. 비장소는 장소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장소가 근대 이전의 삶을 공간적으로 정의한다면, 비장소는 근대 이후의 삶을 공간적으로 규정한다. 물리학적으로 우리는 4차원 시공간에 살고 있다. 가로, 세로, 높이의 세 축을 가진 3차원 공간과 시간이라는 차원이 섞이면서 4차원 시공간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공간과 시간을 따로 떨어뜨릴 수 없다. 우리의 기억이나 추억, 생각, 앞으로의 예측, 과거에 대한 설명 등은 모두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상태의 이야기다. 더군다나 공간과 달리 장소는 공간에 섞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근대 이전의 공간은 이러한 장소와 거주의 문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장소는 곧 거주로 인식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정착민이든 유목민이든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집, 마당, 골목, 도시, 뒷산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나그네들이 쉬어 가는 주막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이야기가 생겨났다’는 것은 그것이 거주의 문제였다는 걸 증명한다. 그것이 이야기를 낳은 거주의 문제라는 것은 거기에 분명한 장소성이 있다는 말이다. 인류의 언어, 전설, 신화는 그들이 살았던 언덕, 고개, 초원 등과 무관하지 않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허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와의 하룻밤은 물레방앗간이라는 장소와 메밀꽃밭으로 연상되는 계절의 시간이 이어지면서 우연히 만난 동이와 허생원이 부자간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암시를 준다. 이 소설은 장돌뱅이들을 등장시킨 만큼 집이라는 거주의 장소보다는 계속 임시적인 공간, 즉 그 공간은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만 이용자들은 그저거쳐 가는 공간들이 나온다. 주막, 물레방앗간, 그리고 계절을 알려주는 메밀꽃밭 등이 그런 공간이다. 그러나 허생원은 물레방앗간에서의 하룻밤 정분을 잊지 못해 그 처녀를 만날까 하는 마음에 계속 봉평장을 찾는다. 물레방앗간이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공간에서 생긴 이야기로부터 이 소설의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이와 같이 근대 이전의 공간은 거기서 생긴 이야기를 공동체 모두가 공유하며 장소로 인식된다. 그러나 근대 이후 기계론적 합리주의와 시스템 속에 갇히면서 자아 상실과 의미 상실을 경험하며 우리는 장소를 상실한다. 우리는 거대한 쇼핑몰에서 우리가 뭘 사야 할지를 잊어버리고 자본의 스펙터클에 압도되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산다. 이미 밖에서는 자동차에게 길의 풍경을 내주었지만 쇼핑몰에서는 카트에게, 상품에게 우리의 길을 줘버린다. 그리고 계산대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내 뒤로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며 다시 물건을 취소할 엄두가 나지 않는 다. 거기서 부딪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허생원이나 동이와 같이 서로를 간섭하면서 친해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심지어 계산대 직원은 물건값도 모른다. 바코드 인식기가 모든 걸 해주고 거기에 맞춰 카드를 내면 된다. 공항 역시 마찬가지다. 검색대를 몇 차례 통과하면서 우리는 계속 신분증을 직원에게 건네지만 나는 계속 익명으로 존재한다. 그 익명 속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 익명성 덕택에 그곳은 늘 새롭다. 우리가 도시를 즐기는 이유는 거기에서는 우리가 어딜 가든, 영화관을 가든, 마트에 가든, 식당에 가든,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장소라고 부른다. 집이라고 비장소의 예외일 수는 없다. 거기서는 모두 잠만 잔다. 집에서 익명성을 거두어주는 사람은 주부지만 그렇게 모두들 집을 나가고 나면 그 공간에 의해서 주부마저 소외된다. 푸코는 이러한 현대 도시의 특징에 주목해서 개인적으로 한시적인 유토피아를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시적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비장소에 해당한다. 파빌리온pavilion 역시 이러한 비장소다. 파빌리온은 특별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건축이지만 건축의 역할이 없는 건축이다. 연극에서 역할이 없는 배우를 상상해 보라. 그러나 파빌리온은 건축에서, 혹은 조경에서 역할이 없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역할은 연극이 이루어지기 전의 무대와 같다. 무대에서 어떤 연극이 공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무대는 늘 어떤 연극을 기다린다. 파빌리온도 그렇다. 파빌리온은 어떤 성격도 가지지 않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는 헤테로토피아일 수도 있고, 비장소일 수도 있다. 또한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 이런 모호한 개념을 서양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차라리 동아시아 철학의 ‘중中’이라는 개념이 훨씬 유용하다. ‘중’은 유학에서는 ‘정확하다’는 의미다. 또한 불가에서는 ‘공空’의 의미를 ‘무자성無自性(non self-identity)’으로 해석한다. ‘무자성’이란 스스로 그렇다라고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말이다. 즉, 아무 성격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그래서 공은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어 있기 때문에 가능성으로 꽉 찬 상태고, 가능성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상태다. 유가와 불가는 각각 다른 철학이지만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같이 ‘중’으로 표현하는데, 파빌리온 같은 모호한 공간을 규정하기에는 더 없이 정확하다. 파빌리온은 아무런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무자성의 공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역할도 정확하게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의 공간’이기도 하다. 연금술에는 “모호는 모호한 것을 통해서, 미지는 미지의 것을 통해서”라는 격언이 있다. 모호한 것을 정확하게 규정하기 보다는 그 모호함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말로 모호를 설명하는 것이 때로는 가장 정확하다. 함성호는 1990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91년 『공간』에서 건축평론신인상을 받으며 건축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56억 7천만년의 고독』, 『성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키르티무카』가 있으며, 티베트 기행산문집 『허무의 기록』, 만화비평집 『만화당 인생』, 건축평론집 『건축의 스트레스』,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철학으로 읽는 옛집』, 『텃밭정원 도시미학』(공저), 『반하는 건축』,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공저)를 썼다.
  • [에디토리얼] 마감에디토리얼을 쓰다가
    “비행기 의자 하나 사드릴게요!” 얼마 전 남기준 편집장이 던진 진심어린 농담이다. 사연은 이렇다. 봄과 여름이 때 이른 줄다리기를 하던 어느 날, 마감전쟁을 치르는 동료들을 나 몰라라 뒤로 한 채 학회 참석을 구실로 이탈리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안한 마음에 에디토리얼이라도 빨리 넘겨야겠다고 작심했다. 굳은 결심의 효과였을까. 어깨를 펼틈도 없이 좁은 이코노미 좌석은 집중을 넘어 몰입의 경지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구상, 검색, 커피, 흡연, 산책 등 글쓰기의 필수 과정이라고 여겼던 일련의 습관을 강제로 생략당하니 글이 단숨에 풀렸다. 육필로 휘갈겨 쓴 원고를 옆 자리 승객에게 빌린 노트북으로 타이핑한 후 모니터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착륙 후 와이파이 터지는 곳에서 ‘원고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원시와 첨단이 뒤섞인 이 이상한 프로세스에 아마 독자들은 물음표를 던지실 것 같다. 몸은 바다 건너 멀리 있었지만 그 어느 달보다 빨리 끝낸 원고를 칭찬하며 편집장은 한 달에 한번 마감 때마다 국내선이라도 꼭 탈 것을 권했고, 마침내 비행기 의자 선물이라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까지 떠올린 것이다. 이제 2년 반이 넘었으니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매달 잡지의 첫 지면에 무언가를 쓴다는 게 영 어색하다. 한두 시간이면 충분한 A4 두 장의 짧은 글, 하지만 한 달 내내 어깨를 내리누른다. 사례는 나의 힘! 서점과 온라인을 두루 헤매며 국내외 저명 전문지는 물론 잘 나간다는 상업 잡지의 에디토리얼을 사례 연구하기도 수차례. 그러나 답은 없다. 근사한 스타일로 간명하게 독자들을 사로잡는 멋진 글들을 흉내 내보지만 결국 아류의 티를 보정할 수 없다. 그달에 실리는 내용을 두루 안내하면 모범생이 쓴 교과서 서문처럼 재미가 없어진다. 공들여 기획한 특집에 한 명의 독자라도 더 끌어들일 요량으로 특집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면 중언부언이 되기 십상이다. 약간의 메시지를 담거나 주장을 넣으면 진부한 계몽이나 어설픈 설교의 곁길로 샌다. 최근에 마음 꽂힌 책이나 작품에 초점을 두면 먹물 버릇이 발동해 당장 고루한 논문이라도 쓸 태세다. 이른바 조경계의 현안(?)이란 걸 다루자니 수영복 입고 지하철 타는 기분이고, 그 현안을 다른 프레임으로 진단하자니 매국노 취급당할 게 뻔하다. 재치를 발휘한답시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프로 편집장과 편집팀장, 그리고 아마추어 편집주간이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거나 아이디어를 메모하거나 수다를 떠는 용도로 쓰는 ‘단톡방’의 대화내용을 버무려 집단 창작이라는 미명 하에 이 지면에 적은 적도 있다. 잡지 리뉴얼 때부터 지금까지 어려울 때마다 고견을 들려주고 있는 몇몇 선배들로부터 얻어내는 아이디어나 정보를 가공해 싣기도 한다. 연구실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 세미나의 줄거리를 옮긴 적도 몇 차례. 심지어 어느 제자와 나눈 대화를 조금 살을 붙이고 가다듬어 기록하기도. 고백하자면 어느 학기의 종강 때 수강생들에게 나눠주었던 편지를 에디토리얼에 재탕으로 우려 싣기도 했다. 참으로 놀랍고 곤혹스러운 사실은 의외로 이 지면을 읽는 독자가 많다는 점이다. 정확한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편집부에 들려오는 여러 소문을 종합해 보면, 비교적 열독률이 높은 지면은 에디토리얼과 잡지 제일 뒤쪽의 코다CODA, 본문 중간중간의 텍스트 양이 많지 않은 짧은 연재 글들이라고 한다. 특히 잡지의 첫 쪽이다 보니 이 지면을 펼치고 잠시 시간을 투자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만, 에디토리얼보다는 열심히 만든 특집, 그달에 힘준 작품, 필자의 많은 공이 들어가는 연재 글들에 시선을 던져 주십사 이 자리를 빌려 독자들께 부탁드린다. 앞에서 구구절절 징징거리며 늘어놓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 에디토리얼 지면은 매달 잡지의 마감일을 지연시키는 주범이 된다. 디지털 출력본의 교정까지 끝내고 인쇄소로 넘어갈 준비가 완료된 상황, 모두가 목을 빼고 내 원고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 대략 난감이다. 또 한 달이 흐르고 어김없이 만난 막다른 길, 머릿속을 산만하게 떠다닌 글감 세 조각을 소개한다. 원래는 다음의 세 가지 주제가 강력한 후보로 경쟁했는데 마감에 몰려 쓰다 보니 어디론가 휘발된 모양이다. 첫 번째 후보는 조경에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 최정민 교수(순천대학교 조경학과)가 “조경, 다른 이름을 가지는 것은 어떤가”(라펜트, 2016년 7월 10일)라는 칼럼을 통해 6월호 에디토리얼 “조경이라는 이름”의 문제의식을 확장해 주었다. 공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는데, 이 지면보다는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깊이 있게 다루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가 명쾌하게 진단하고 있듯이 “조경이라는 이름이 조경이 하는 일이나 결과물을 대변하지 못하고 … 조경이 하는(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하고 있다”면, 40년 넘게 정든 이름이라 아쉬움 가득하지만 개명을 심각하게 고려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조경은 조경에 갇혀 있다. 경합을 벌인 두 번째 후보는 용산공원. 수면 아래에서 잠잠하던 용산공원이 지난 4월 이후 심심찮게 언론을 타고 있다. 공원에 들어갈 ‘콘텐츠’를 선정하는 공청회 이후의 일이다. 2012년의 국제 설계공모 이후 당선작을 바탕으로 기본설계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실종되었던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쟁점의생산 과정이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그 핵심 이슈가 시간을 역행하는 양상이라 우려된다. 특히 일부 정치인들의 비논리적인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의 책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긴 호흡으로 천천히 추진하는 것과 예산의 전액 삭감에 따른 계획 중단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슈다. 심도 있게 기획해 본문에서 다시 다룰 것을 약속드린다. 마지막 후보는 이번 특집인 파빌리온이었다. 짐작하시겠지만 8월의 특집 ‘파빌리온’은 무더위에 지친독자들을 의식한 계절형 기획이다. 폭염으로 가득한 한여름의 도시, 어딘가에 숨겨진 나만의 자유의파빌리온을 찾아보시길. 참고로, 비행기 의자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갔다. 중고로 나온 물건도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취향의 탄생과 유행
    요즘 홍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혹독한 감기에 시달린 후 나는 자극적인 커피 대신 평소 밍밍하게 느끼던 차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당시 누군가 건넨 홍차 한 잔에는 은은한 달콤함이 있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둔했던 나의 혀끝과 코는 차의 맛과 향을 분간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최근 다양해진 커피의 세계만큼, 홍차 역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그 종류가 다양해서 무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처음에는 조금 막막하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인터넷에서 최근 홍차의 유행 바람을 타고 각종 티살롱이나 브런치 카페를 섭렵한 파워 블로거들이 펼쳐내는 수많은 정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는 지인들과의 정보 교류가 활발해졌다. 모여 앉으면 각 차 맛에 대한 품평(까지는 아니고 추천)이 이어졌고, 블랜딩 방법, 차 도구, 티푸드, 패키지 디자인 등등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했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때 각자의 성향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차를 만드는 시간에 가벼운 차 이야기를 통해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버리며 본격적인 대화를 이끄는 사람도 있고, 차를 우리는 시간을 조급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차를 마시기 좋은 소위 ‘핫’한 카페를 소개하는 사람도 있고, 찻잎의 색깔을 논하는 사람도 있다. 차에 관한 해외의 최신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도 있고, 차라면 모르는 일이라고 마뜩찮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다. 아무튼 차를 마시는 시간은 바쁜 일과 중 모두들 짬을 내어 여유를 부리는 시간이다. 또 차를 둘러싼 다양한 화제를 보면 차는 맛뿐만 아니라 멋이 중요한 문화인 듯하다. 이런 차 문화는 비단 지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홍차를 마시는 문화가 처음 시작된 18세기 영국에서도 비슷했다. 최근 한국18세기학회의 회원들이 엮어낸 『18세기의 맛: 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은 ‘미각’이란 키워드를 통해 18세기의 여러 문화적 현상을 살펴본 책이다. 18세기는 동서양 모두 고급스런 음식이 대중화되고, 이국적 음식이 세계화되는 변화가 크게 일어난 시대이다. 또한 18세기는 저급한 감각으로 치부되어온 맛에 관한 담론이 본격적으로 문화의 전면에 등장한 시대이기도 하다. 민은경 교수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는 영국에 상륙한 홍차에 담긴 문화적 의미와 정치경제학적 배경을 설명한다. 영국의 국민 음료라고 할 수 있는 홍차가 영국에 보급된 시기 역시 18세기이다. 당시 중국에서 수입했던 차나 자기는 고가의 사치품이었는데, 귀족들은 차를 마시기 위해 찻상과 장식장을 별도로 제작하고 화가를 고용해 찻상을 둘러싼 가족의 화목한 모습을 담은 풍속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풍속화에는 ‘담화도Conversation Piece’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서 ’컨버세이션conversation’은 대화를 나눈다는 좁은 의미보다, 여러 사람과 관계하며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렇듯 가정에서 차를 마시는 공간은 손님을 접대하고 만나는 사교의 공간이었고, 차는 새로운 사교 문화를 형성했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집에서 마시던 차를 점점 정원과 공원과 같은 야외에서 즐겨 마시게 되었고, 귀족들에 한정되었던 차 문화는 누구나 향유하는 보편적 문화가 되었다. 즉 ‘그들만의 호사’가 ‘모두의 취향’이 된 것이다. 19세기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이 사실 차 전쟁이었고, 미국 독립전쟁 역시 식민지 미국에서의 차 수입과 유통을 통제하려 했던 영국의 정책에 반발했던 사건인 보스턴차사건이 도화선이 되었음을 떠올린다면, 미각과 음식은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주경철 교수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는 유럽에서 버터가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밝히며, “사람이 향유하는 맛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생물학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특정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기까지는 분명 사회적으로 배워서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현재 서양 요리는 대부분 베이스로 버터를 사용해 부드럽고 섬세한(느끼한) 맛을 내는데 반해 중세의 음식은 고급 요리일수록 후추를 많이 첨가해 매웠다. 중세 유럽에서 매운맛이 고귀한 지위를 누린 것은 아시아에서 수입해야 했던 후추가 워낙 고가의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맛을 평가하고 새로운 요리법을 퍼뜨리는 주역은 대개 상층사회 인사들이다. 귀족이나 부르주아가 어떤 음식을 즐기는 것은 그들만이 그 음식을 독점한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맛의 유행에서 희소성은 지극히 중요한 요소다.” 17세기에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직항로가 개척되면서 후추가 대량으로 수입되어 모든 사람이 후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상류층은 후추 대신 다른 향료를 찾았고, 최대한 섬세한 맛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러한 맛의 이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18세기 프랑스 요리였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프랑스 요리는 지배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니까 맛의 역사라는 것이 쉽게 말해 ‘허세’가 좀 섞인 ‘멋’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생각해보면 내가 커피 대신 홍차에 관심을 돌리게 된 계기가 지인이 건넨 차 한 잔에서 비롯된 것이니, 차를 마시겠다는 선택은 내가 한 것이지만 지인들의 차 문화 혹은 지금의 홍차 유행에 자연스럽게 동화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현대 사회에서 기호품의 선택은 개인의 취향이라고 하지만, 그 역시 사회·경제적 흐름 속에 놓여 있다. 기호 음료를 둘러싼 산업 구조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한 때 ‘세련된 취향’으로 자리매김했던 커피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웰빙과 힐링 바람을 타고 온 녹차 문화가 시들해지면서 그 대체품으로 홍차가 떠올랐을 수도 있다. 바우만 Zygmunt Bauman은 그의 저서 『유행의 시대Culture in a Liquid Modern World』에서 오늘날 “문화의 역할은 기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욕구를 창조하는 동시에, 이미 확립되었거나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욕구들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유행이 ‘되어감’이란 서로 모순되는 욕망과 갈망, 즉 “어떤 집단이나 집합체에 속하고자 하는 열망과, 군중과 구별되어 개성과 독창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충돌하며 멈추지 않는 진자운동을 한다. 그렇다면 내가 편승한 곳은 취향의 공동체이리라. 그리고 나의 홍차 사랑은 언제 또 다른 기호의 소비로 옮겨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