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시네마 스케이프] 토니 에드만 무한 경쟁 시대를 사는 딸에게
    놀랍고 신선한 이 영화는 무한 경쟁 시대를 사는 딸에게 아버지가 보내는 위로를 농담의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었다. “자기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애틋하니 좋아할 거야”라는 동네 친구의 추천에 내심 기대했다. 바쁜 딸을 졸졸 따라 다니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일삼는 아버지의 행동,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세 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도 참을성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영화 속 상황들이 떠올랐다.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하며 옷매무새를 고칠 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갈 때, 만약 아버지가 내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하실까. 우리 딸 잘 살고 있구나, 그러실까? ‘토니 에드만Toni Erdmann’은 독일 영화지만 주요 배경은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Bucharest다. 루마니아라면 코마네치라는 전설의 체조 선수밖에 모르는 터라 영화를 두 번째 볼 때는 생소한 거리나 공원 풍경에 시선이 꽂혔다. 영화 속 대화나 상황은 서유럽이 시장 경제에 뒤쳐진 동유럽 국가들을 어떻게 보는지도 짐작하게 한다. 루마니아는 공산 정권 붕괴와 혁명 이후 2000년대 들어서야 EU에 가입했으며 자금 지원과 외자 유입에 따른 투자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다. 주인공 이네스는 석유 관련 회사의 컨설팅 일로 부카레스트에 와 있다. 개발 도상국의 기업 개혁을 추진하는 선진국에서 온 외부자인 셈이다. 올림머리에 타이트한 검은색 정장과 하이힐을 갖추고 운전기사와 비서의 수행을 받는 모습, 언뜻 보면 성공한 직업인이다. 실상은 고객의 눈치를 보며 기분을 맞춰야 하고 상사에게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불편한 업무도 해내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고단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자신의 욕망보다는 사회적 책무를, 자신의 윤리적 판단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헛기침으로 진심을 감춰보지만 스트레스로 자주 미간을 찡그린다. 늘 잠이 부족해 차만 타면 졸기 일쑤다. 이네스는 그런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는.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보고 나서 기억되는 영화, 볼 때마다 다른 것이 보이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겉으로 드러난 서사보다 그 사이에 숨겨진 맥락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영화를 보는 독자가 있다면, 마치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기분이 들면 좋겠다. 디테일과 스포일러일지 모르는 클라이맥스 부분을 묘사한 이유다. *환경과조경352호(2017년 8월호)수록본 일부
  •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경험의 다성학
    2016년 학술정보 통합서비스 디비피아DBpia의 사회·과학 분야 최다 검색 키워드로 ‘여성혐오misogyny’가 선정되었다. ‘혐오’라는 번역이 적합한가 그렇지 않은가, 어떤 사례에 여성혐오라는 틀을 씌우는 일에 동의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우선 차치한다 하더라도, 이는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이 얼마나 뜨거운 이슈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성혐오’는 ‘혐오’ 또는 ‘반감’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miso-’와 여성을 뜻하는 ‘-gyny’가 합쳐진 말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우리말 ‘혐오’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그런 의미뿐 아니라, 여성의 성적 대상화,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 폭력, 차별, 남성우월주의 등 매우 다양한 양태의 여성에 대한 편견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고대 신화나 설화 등이 여성혐오적 시각을 종종 담는다는 것, 그리고 수많은 탈식민주의 학자, 페미니스트 학자가 기존 서양 철학과 사상, 역사가 주로 서양-백인-남성의 시각에서 기술·구성되었음을 지적한 것은 누차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생산 관계가 문화, 예술, 종교 등의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 말하며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외친 마르크스조차 그의 저작에서 젠더적 권력 구조에 무감각한 시각을 드러낸다는 비판을 받는데, ‘보편’, ‘이성’, ‘객관’을 표방하는 학문이 얼마나 많은 차이와 권력 구조를 간과하는지에 대해 무시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주의에서 입장론Standpoint theory은 이러한 남성 중심의 기존 사회와 학문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주변화된 계층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세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여성 학생이나 학자 자체가 흔하지 않던 시절 사회학자 도로시 스미스Dorothy E. Smith는 남성 위주의 아카데미아에서 혼란을 겪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회학에 입장론을 제기하며, 이를 인식론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동물학, 철학, 영문학,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두루 섭렵해 1980년대에 ‘사이보그 선언문’을 쓰기도 한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는 영장류학, 생물학 등 자연 과학, 즉 하드 사이언스hard science 역시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왔음을 밝힌 바 있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2호(2017년 8월호)수록본 일부
    • 진나래[email protected] / ‘일시합의기업 ETC’, ‘잠복자들’ 공동대표
  • ‘보이드: 공간의 유희, 경험의 확장’ 전 현대카드 스토리지, 3월 24일부터 7월 16일까지
    버튼을 누르면 공기가 주입되어 부풀어 오르는 비닐 큐브, 하얀 구름을 떠오르게 하는 패브릭 미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때로는 작품 속을 거닐며 ‘공간 인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품게 하는 작품들이 현대카드 스토리지Storage(이하 스토리지)에 전시됐다. 바로 ‘뉴멘/포 유즈Nemen/For Use’의 ‘보이드Void: 공간의 유희, 경험의 확장’ 전(이하 보이드 전)이다. ‘보이드’는 빈 공간을 의미하는 건축 용어로, 전시 관계자는 보이드 전을 통해 “우리의 인지 능력과 지각이 확장되고 나아가 현대 예술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개관한 스토리지는 동시대 미술의 의미 있는 활동을 담는 임시 ‘보관소’이자, 예술적 가능성을 지닌 열린 ‘창고’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 디자인, 필름 등 폭넓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디자인 진화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추적: 현대카드 디자인의 기원Traces: The Origins of Hyundai Card Design’ 전, 개성 넘치는 드로잉과 파격적 설치 작업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슈리글리David Shrigley’ 개인전에 이어 세 번째로 마련된 보이드 전은 ‘뉴멘/포 유즈’의 첫 국내전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스벤 욘케Sven Jonke, 크리스토프 카즐러Christoph Katzler, 니콜라 라델코빅Nikola Radeljkovic 등 세 명의 아티스트로 구성된 ‘뉴멘/포 유즈’는 테이프, 실, 끈, 그물 등 일상적 소재를 활용한 장소특정적 작업으로 유명하다. 형식과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아 덴마크 디자인 센터(2015), 파리 팔레 드 도쿄(2014),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특별전(2014) 등의 유명 전시에 초대되어 활동해 왔다. 공간의 유희, 경험의 확장 주요 작품 세 점과 관련 모형, 영상물이 스토리지 지하 2층과 3층에 설치되었다. ‘스트링 모델 2×2String Model 2×2’는 평소에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지만, 버튼을 눌러 PVC 포일foil 구조물 내부에 공기를 주입하면 정육면체 형태로 부풀어 오른다. 이때 벽체에서 뻗어 나온 푸른 실이 작품을 감싸 구조물을 지탱하며 형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를 공기의 드나듦에 따라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작품의 물성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움직이는 조각’이라 표현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52호(2017년 8월호)수록본 일부
  • 양재고개 녹지연결로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으로 ‘슬로프 워크’ 선정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설되며 단절된 우면산 양재고개가 녹지축으로 다시 연결될 예정이다. 지난 4월 14일 서울시는 ‘양재고개 녹지연결로 국제현상설계공모’를 개최했다. 6월 16일 김인철 심사위원장(아르키움 대표)과 김상효 교수(연세대학교), 송인주 연구위원(서울연구원), 김혜란 대표(종합건축사사무소 예일), 디에트마르 페이흐틴허르 대표Dietmar Feichtinger(Dietmar Feichtinger Architectes), 이경환 대표(에이오와이)가 심사를 진행했다. 국내 27팀, 국외 27팀 등 총 54팀의 작품 중 당선작으로 이바네 크스넬라슈빌리Ivane Ksnelashvili(I.KSNELASHVILI)의 ‘슬로프 워크SLOPE-WALK’가 선정됐다. 2등작에는 임우진(AEV Architectures Seoul)의 ‘나무의 방주Ark of trees’, 3등작에는 위진복(UIA 건축사사무소)의 ‘우마랑牛馬廊’, 4등작에는 박윤진(오피스박김)의 ‘토포-리바이벌Topo-Revival’, 5등작에는 알렉산데르 얀코비치Aleksander Jankovic(AJAA)의 ‘양재고개 에코 브리지Yangjaegogae Eco Bridge’가 선정됐다. 김인철 심사위원장은 “수상작들은 단순히 단절된 녹지를 연결하는 것을 넘어 자연과 인공의 관계를 복원하는 상징적 풍경을 제시하고 있다”며 “공학적 접근과 개념적 의도를 접합해 완성한 작품이 다수 제출되었으며,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와 형식으로 표현을 절제한 작품이 많았다”고 심사 총평을 밝혔다. ...(중략)... *환경과조경352호(2017년 8월호)수록본 일부
  • 랜드스케이프 디자인과 공공 미술: 새로운 가능성 제24회 조경디자인캠프 특강
    지난 7월 12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제24회 조경디자인캠프’의 세 번째 특강이 진행됐다. 이날 ‘랜드스케이프 디자인과 공공 미술: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홍보라 디렉터(갤러리팩토리)는 시카고 시 문화부 예술 지원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현재 이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 미술이 지닌 ‘공유’의 특성을 이용해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해외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홍 디렉터는 우리나라 대중이 예술을 타지화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에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예술을 만들고자 20년 전부터 정기용 건축가, 배영한 작가 등 여러 전문가와 함께 학술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연구 세미나를 열고 있다. 홍 디렉터의 말에 따르면 최근 공공 미술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05년을 시작으로 3년마다 열리고 있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과거 공원에 예술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공공 미술을 오브젝트로 풀어내는 작품이 주를 이뤘다면, 현재는 안양을 대상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등 공원에 현존하는 자원을 활용하고 이를 기억하는 방식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며 물리적 실체의 구축에서 보이지 않는 공간의 맥락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공공 예술의 접근법이 전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52호(2017년 8월호)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실내인간
    “자유로움도 연습을 해야 나오는 거거든요.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자신도 모르게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여졌으면 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기 마련이거든요.” 아직 불 같은 더위가 찾아오지 않은 여름, 인터뷰를 위해 만난 안무가 K가 들려준 이야기다. 각종 질문에 대한 답을 한참 쏟아낸 그가 마른 목을 축이는 동안, 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나는 과연 어떤 순간에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할까. SNS가 발달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어쩌면 표현이라는 단어보다 보여준다는 말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방문한 핫한 카페나 음식점, 때로는 나만 아는 공간의 사진을 올려 일상생활을 노출하고, 취향과 관심사는 티켓이나 테이블에 놓인 책 사진 등으로 대체된다. 구구절절 의견을 늘어놓는 대신 노래 가사나 소설의 문구 하나를 적어 놓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왜곡하는 법을 익힌다.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 버튼을 수차례 두드리고, 불필요하다 느껴지는 요소는 자르기 도구로 깔끔하게 도려낸다. 이런저런 의도로 정제된 후에야 사진은 우리를 꾸며주는 일종의 포장지가 되어 SNS에 업로드된다. 그리고 여기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온 인생을 자신을 포장하는 데 사용한 남자가 있다. 수년간 제 이름 대신 베스트셀러 작가 방세옥으로 살아온 『실내인간』의 김용휘. 『실내인간』의 작가 이석원을 처음 만나게 해준 건 친구의 MP3 플레이어 속 노래 ‘나를 잊었나요’(언니네 이발관, 2002)였다. 그 당시 이석원은 내게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 화려한 기교 대신 공들여 만든 소박한 기타 선율에 서정적인 노랫말을 얹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산문집 『보통의 존재』(2009)를 발표했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서점에 들러야 했다. 만약 그가 산문집의 탈을 뒤집어쓰고 ‘꿈을 포기하지 마라’, ‘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를 외치는 자기계발서를 썼다면, 더 이상 그의 노래를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걱정과 달리 『보통의 존재』는 자신의 내면과 일상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 이석원 또한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아주 보통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글이었다. “누구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오르기 힘겨운 산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다 … 그때가 되면 마지막으로 몸부림도 쳐보고 온몸으로 거부도 해보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 그 잔인한 일 말이다.”(각주1)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담담한 어조로 조금 부끄러울 수 있는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풀어 놓는다. 누구나 해봤을 그 고백은 ‘언니네 이발관’의 노랫말과 닮았을 뿐 아니라 이석원 그 자체다. 글 구석구석 녹아있는 이석원의 모습은 4년 뒤 내놓은 장편 소설 『실내인간』에서도 발견된다. 주인공 용우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 제롬,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닌 용휘와 그 곁을 지키는 소영 모두에게서. 그중 용휘는 이석원이 말하는 솔직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인물로, 사랑하는 여자를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쌓아올린 책 탑 안에 갇힌 ‘실내인간’이다. 책을 내는 족족 히트를 치는 소설가 방세옥이 되었지만, 글을 쓰는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며 매일 서점을 찾아가 판매 순위를 확인하며 불안에 떤다. “용휘는 집에만 머무르는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며, 저녁마다 서울 전역의 서점을 순찰하는 넓은 행동반경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정해놓은 틀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인물이기에 결국엔 그는 갇혀 있는 사람”(각주2)일 수밖에 없다. 이석원은 이를 통해 무언가에 갇히고 옥죄어 사는 용휘의 모습이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평범하면 사랑하는 여자에게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강박감에 괴로워하며 살았지만, 결국 여자가 팔리지 않는 책을 쓰는 무명작가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접하는 용휘의 모습이 『보통의 존재』에서 ‘보통’을 외치던 이석원과 겹쳐진다. 사실 『실내인간』은 『보통의 존재』를 좋아한 이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글일 수 있다.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필치는 여전히 섬세하지만, 구성이 조금 헐겁고 소설의 핵심인 용휘의 비밀은 엄청난 반전이라기엔 아쉬운 감이 있다. 그래도 『실내인간』을 읽는 내내 즐거웠던 이유는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석원의 흔적 때문이었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과는 영원히 못 헤어져.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각주3)라고 말하는 소영에게선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던 이석원이, 피고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존재가 되는 것만이 가치 있는 삶인 양 스스로를 몰아붙여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늘 부끄러워했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타인의 삶 또한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경멸하였다 … 따라서 본 법정은 피고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여러 정상을 참작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피고 김용휘, 사형”(각주3)이라는 판결문에서는 음악인으로서 고뇌하는 이석원이 있다. 책을 읽는 과정은 마치 이석원의 흔적을 찾아 텍스트 속을 거니는 여행과도 같았다. 지난 7월 이석원은 9년만에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 ‘홀로 있는 사람들’(2017)을 발표했다. 그는 이번에도 평온하게 자신의 마지막을 노래한다. 작곡가로서 한계에 부딪쳤음을 풀어낸 ‘홀로 있는 사람들’의 가사로 ‘편집자의 서재’의 문을 닫는다. ‘ 노래 / 언젠간 끝내야 하지만 / 아직 나는 여기 서 있네 / 그래 / 언젠간 끝나고 말겠지 / 그래도 난 아직 여기에 ’ 1. 이석원, 『보통의 존재』, 달, 2009, p.148. 2. “『실내인간』 이석원, ‘장편소설은 100분짜리 노래 한 곡을 만드는 일’”, 교보문고 인터뷰 http://news.kyobobook.co.kr/people/writerView.ink?sntn_id=7601 3. 이석원, 『실내인간』, 달, 2013, p.257. 4. 위의 책, p.271.
  • [CODA] 팔리는 기획?
    잘 팔리는 기획의 비법을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다. 우연히 예약 판매 중이던 디지털 콘텐츠 “팔리는 기획을 배운다–잡지 BRUTUS & POPEYE”를 봤을 때, 구매 버튼을 누른 건 ‘팔리는’이란 수식어보다는 브루투스BRUTUS란 이름이 주는 오래된 설렘 때문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한번 다녀 보고 싶은 잡지사가 일본의 『카사 브루투스Casa BRUTUS』였다. 2000년대 초, 처음 건축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당시 편집부는 좁은 전문지 시장에서 어떻게 독립적이고 의미 있는 잡지를 지속가능하게 펴낼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였다. 그때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카사 브루투스』는 대안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물론 일본에는 『신건축新建築』이나 『a+u(Architecture and Urbanism)』 같은 (정통) 건축ㆍ도시 전문지도 있었고, 그 잡지들을 구독하는 한국의 건축가, 조경가도 많았다. 그렇지만 2002년 8월 발행된 『카사 브루투스』 안도 다다오 특집호가 10만 부 팔렸다는 풍문이 전설처럼 들려왔다(최근 발행 부수는 7만5천 부를 웃돈다고 한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라이프스타일 잡지 H의 판매 부수는 그의 몇 분의 일에도 못 미쳤다. 일본의 인구수가 우리보다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잡지가 10만 부 정도 팔리려면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손에도 그 잡지가 들려야 한다. 건축가와 건축에 대한 이야기에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 즉 『카사 브루투스』가 전문가에게는 전문지로, 대중에게는 대중지로 다가갔던 것이다. 물론 일본의 책 읽는 인구수가 많다는 점, 일본인이 만화나 잡지를 유난히 좋아한다는 점, 그리고 미술이나 건축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이 높고, 또 무엇보다 일본 내에 스타 디자이너가 있다는 점 등이 주요 배경일 것이다. 그때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키워드가 바로 ‘대중성’이었다. 어떻게 전문적인 콘텐츠를 잘 기획해 전문가뿐만 아니라 대중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대중적 감각을 장착해 잠재적 독자에게 어필하는 것이 좁디좁은 분야의 저변을 넓혀 가며 전문지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2000년 창간된 『카사 브루투스』는 “아름다운 생활을 디자인하는 Life Design Magazine”을 표방하며, ‘디자인’이란 주제를 대중에게 쉽고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 잡지는 매호 하나의 테마를 독특한 제목으로 다루는데, ‘디자인이 좋은 가전’이나 ‘아름다운 조명 기술’과 같은 제품 디자인, ‘즐거운 주방’이나 ‘수납 방식’같은 인테리어, ‘현대 건축의 기초 지식(SANAA의 모든 것)’과 같은 건축(가), ‘진화하는 고도! 교토’ 혹은 ‘일본 재생의 참고서’ 같은 도시(재생)까지 다방면의 디자인을 다루고 있다. 모 회사인 매거진하우스는 『브루투스BRUTUS』(1980년 창간), 『뽀빠이POPEYE』(1976년 창간) 등 10여개의 라이프스타일지를 발행하고 있다. 이 잡지들은 호별로 가격도 다르게 매겨지고, 인기 있는 호는 웃돈이 붙어서 인터넷 중고 서점에서 유통되기도 한다. 새내기 기자의 눈에는 요리나 여행부터 건축이나 도시까지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디자인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루는 잡지가 무척 근사해 보였다. 한 컷 한 컷 세련된 방식으로 연출된 사진, 일러스트를 활용한 편집 디자인, 오랜 취재를 통해 만들어진 정보 등. 물론 피사체인 작품 자체가 훌륭해야 하겠지만, 그 내용만큼이나 사진이나 편집 디자인이 멋져야 눈길을 잡아끌어 독자에게 내용을 읽힐 수 있다는 잡지의 숙명을 강렬하게 느끼게 했다. 잡지에 쓸 여러 사진을 구하거나 작품 촬영을 사진작가에게 의뢰하기 위해 빠듯한 예산 안에서 전전긍긍하는 우리의 상황과는 딴판처럼 보였다. 그 시절 잡지를 이끌어가야 했던 편집장은 그 괴리를 더 크게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풍 공간을 만들어 소니 TV를 디스플레이했던 지면을 인상적인 기사로 꼽는다. 참신한 기획이 광고까지 연결된 사례다. 광고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지면을 만들려면 자본이 바탕이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20~30대 남성을 타깃으로 하는 『브루투스』의 니시다 젠타 편집장은 “광고를 선전의 소재가 아닌 콘텐츠의 하나로 이해”하자고 말한다. 광고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브루투스의 버릇, 습관을 이해해주지 않으면 타이 업tie-up은 불발됩니다. 하지만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기리쿠치(관점, 수법)로 문화를 보여주는 우리들의 방식을 인정해주고 있습니다.”(각주1) 물론 40년간 대중과 함께 호흡했던 미디어 기업의 역량을 상황이 다른 나라의 전문지에서 따라하는 게 쉽지도 않고 적절한지도 따져봐야겠지만, 광고 없이 잡지를 꾸리기 힘든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기획을 끌어올리고 거기에 잡지의 취향과 지향이 녹아 들도록 하는 것은 부럽기도 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방식이다. 이번 달 『카사 브루투스』의 주제는 ‘동물원과 수족관’이다. 푸른 잔디 위에서 대나무를 나란히 입에 물고 있는 판다 모자의 사진이 실린 표지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본문에서는 동물원과 수족관의 스타일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기도 하고, 역사가 오래된 우에노 동물원을 짚어보는 기사도 있으며, 디자인으로 동물원을 보기 위해 건축가나 동물원 디자이너의 글을 싣기도 했다. 전문적인 내용의 호흡은 짧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시원스런 사진과 함께 쉽게 풀어 놓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평소 긴 호흡의 글을 읽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은 전문가나 비전문가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카사 브루투스』의 리듬 또한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는 상업지의 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정보가 차고 넘치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이 잡지들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까? 『브루투스』는 2013년 9월부터 웹 콘텐츠를 발행했다. 『브루투스』가 택한 전략은 아날로그의 디지털화가 아니라 잡지는 잡지대로 지키되, 웹은 서브 콘텐츠의 장으로 활용한다. 고양이 특집을 꾸리면서 펫 푸드 회사와의 협업을 궁리하고, 라이프스타일 특집을 하면서 가구 혹은 가전제품 브랜드 안에서의 콘텐츠를 발굴하는 능력이 디지털 시대 종이 잡지가 살아가는 방식이다.(각주2) “잡지에 새로운 정보는 필요 없습니다. 잡지에 필요한 건 생각해보지 못한 정보나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입니다”(각주3)라는 니시다 편집장의 말을 읽으면서, 잡지의 힘은 역시 기획이며,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고 믿고 싶다. 1. 정재혁ㆍ손혁, “잡지를 가장 잡지답게 하는 법: 성공 비결, 그리고 철학(2)”, ‘팔리는 기획을 배운다–잡지 BRUTUS & POPEYE’, Publy, 2017년 7월. 2. 같은 글. 3. 정재혁ㆍ손혁, “편집장이 말하는 잡지”, ‘팔리는 기획을 배운다–잡지 BRUTUS & POPEYE’, Publy, 2017년 7월.
  • [PRODUCT] (주)디자인파크개발의 발로 구르는 스윙벤치 혼자서도 탈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
    (주)디자인파크개발의 캠핑 시설물 제작 브랜드인 캠포레스트CAMP4REST가 새로운 원리로 작동하는 스윙벤치를 출시했다. 누군가 밀어주어야 탈 수 있는 기존의 스윙벤치와 달리, 혼자서도 발판을 밀어 벤치를 움직일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땅을 차지 않아도 벤치를 움직일 수 있어 바닥 파임, 잔디 훼손을 방지하는 별도의 포장 마감도 필요하지 않다. 차양(지붕 천)을 벨크로 타입으로 제작해 손쉽게 씌웠다 벗길 수 있게 했다. 추후 다양한 색상의 차양을 출시해 별도 구매가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소비자가 쉽게 조립할 수 있는 DIY 방식이 강점이며, 구동에 많은 힘이 들어가지 않아 관절이 약한 노인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현재 해외 특허 PCT No. PCT / KR2017 / 1679와 국내 특허에 출원한 상태이며, B2G, B2B, B2C 등 여러 시장에 선보일 수 있도록 디자인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TEL. 02-2665-6006 WEB. www.designpark.or.kr
    • (주)디자인파크개발 / (주)디자인파크개발
  • [에디토리얼] 서울역 고가, 다시 토론할 때다
    빛의 속도로 완공된 ‘서울로 7017’, 서울시 보도 자료에 따르면 개장 한 달 만에 203만 명이 방문했고 연말까지 1,00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박원순 시장이 뉴욕의 하이라인에 올라 서울역 고가를 서울판 하이라인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2014년 9월 이후, 『환경과조경』은 여러 호에 걸쳐 이 사업의 중간 지점을 포착해 왔다. 특히 2015년 7월호에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당선작은 물론 출품작 전체에 대한 리뷰와 비평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토론의 장을 열기도 했다. 이번 호에서는 당선작 선정 2년 만에 개장한 ‘서울로 7017’을 다시 특집으로 올린다. 지난 겨울부터 기획을 시작한 편집부는 서울시 담당자, 설계사의 핵심 관계자, 시민 단체 리더, 자문위원, 관련 전문가들을 여러 차례 취재했지만, 아직 물음표를 거두기 쉽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특집에 담은 MVRDV의 글과 인터뷰, 이경훈 교수와 서예례 교수의 비평, 김정은 편집팀장의 취재기와 인터뷰는 어딘가 서로 어긋나 있다. 당위성, 지향점, 과정, 효과 등 여러 지점에서 갈팡질팡해 온 이 프로젝트의 민낯일 수도 있겠다. 편집부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서울역 고가가 그야말로 ‘열린 결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서울역 고가의 미래를 긴 호흡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다. 몇 달간 편집부에서 오고간 많은 대화 뭉치 중 한 토막을 옮긴다. E. 중간에 자문회의에 참여했던 사람들 만나보면 MVRDV가 지나치게 고집을 피웠다, 불합리한 부분까지 너무 지켰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H. 주로 당선작의 가나다 식재와 콘크리트 화분 길이 실제로 구현됐다는 점에 대한 비판인거죠? 그런데 ‘고집을 피웠다’고 보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아요. 설계대로 시공하는 건 원칙 중의 원칙입니다. 자문이 그 역할을 넘어서 설계안을 좌지우지하는 건 오히려 고쳐야 할 고질병 중 하나죠. 이번 프로젝트에서 유일하게 돋보이는 건 공모 당선작이 거의 원래대로 실현됐다는 점이에요. E. 문제는 ‘설계대로’에서 그 ‘설계’가 과연 무엇인가에요. 설계공모 당선작이 바로 그 ‘설계’로 확정돼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H. 맞아요. 설계공모란 건 적합한 설계자와 설계안의 밑그림을 공정하게 선정하는 절차죠. 따라서 당선작을 그 ‘설계’로 발전시키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합리적 과정이 뒤따라야 해요. E. 하지만 서울역 고가는 누구나 알듯이 대선용 프로젝트였어요. 과 정에 충실할 시간? 꿈같은 얘기죠. H. 소통과 과정과 참여의 대명사인 박원순 시장답지 않은, 전형적인 ‘시장표’ 전시 사업이죠. 초기 구상 때부터 이미 불변의 목표 완공 시점이 정해져 있으니 무리한 속도전을 벌일 수밖에 없고 당선작을 그 ‘설계’로 확정하는 과정이 실종되거나 소홀할 수밖에 없었어요. E. 서울로 7017 덕분에 모처럼 일간지와 방송에서도 조경·도시설계 프로젝트를 다루는 기사와 칼럼이 넘쳐나고 있어요. 내로라하는 논객과 SNS 스타들도 한마디씩은 거들고 있고요. H. 공론의 장에서 조경과 도시설계가 이렇게 토론된다는 것, 당연히 환영이죠. 그런데 메뉴로 올라오는 걸 보면 못생긴 콘크리트 화분 길, 난데없는 가나다 식재, 삭막한 콘크리트 포장, 옹색한 육교, 그늘이 없다, 걷기에 좁고 복잡하다 등 디자인에 관한 것들인데, 이제야 디자인으로 토론한다는 게 참 아쉬워요. 2년 전 당선작이 발표됐을 때 더 활발하게 갑론을박했어야 할 주제. E. 2년 전에 충분히 공론화됐어야 할 문제가 뒤늦게 다뤄지고 있다는 말인 거죠? H. 사실 그때도 조경, 건축, 도시설계 전문가 사회에서는 핫 이슈였죠. 우리 잡지도 기여를 했고. 그러나 시민들은 몰랐던 겁니다. 당선작의 조감도와 이미지 컷들을 아무리 지하철역마다 걸어놓았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한 거예요. 그때 그림 그대로인데도 막상 완공된 공간이 생경한 거죠. 공공 프로젝트는 내 집 앞마당을 내 맘대로 꾸미는 거랑 전혀 달라요. 시민 모두가 클라이언트인 셈이죠. 시민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다수의 시민이 MVRDV의 당선작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심만큼은 가지고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어야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인 거죠. ‘세상에서 가장 긴 화분’이 우리 앞에 등장한다는 걸 시민의 다수가 알고 관심을 가지고 상의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해요. 몰랐고 또 기회가 없었으니 시민들은 이제야 뒷북을 두드릴 수밖에. E. 클라이언트이자 사용자인 시민에게도 설계안에 대한 의견을 낼 권리가 있죠. 마음에 드는지 들지 않는지 보고 알고 이야기할 과정이 있어야 했다, 동감입니다. H. 개장 후 한 달간 가장 놀라웠던 건 한 일간지에 실린, 전 서울시 총괄건축가의 칼럼이었어요. 런던의 “‘가든 브리지’가 수년 동안 논란만 무성한 채 착공조차 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며 불과 2년 만에 완성한 서울의 실천을 부러워하며 조명한다”고 영국 「가디언」의 보도를 인용한 부분 있잖아요. 사회적 합의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가든 브리지’가 정상 아닐까요? 토건 시대도 아니고, 속전속결이 자랑거리는 아니죠. E. 며칠 전 시의회에서 시장은 다른 나라에서 10년이 걸린다고 우리도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비록 2년이지만 강력한 추진력으로 런던이 해내지 못한 걸 이뤘고 충분한 소통의 과정을 거쳤다고 자평하던데, 솔직히 ‘내로남불’처럼 들렸어요. H. 서울역 고가에 대한 비평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요. 사업의 구상과 목표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에 정치적 콘텍스트를 괄호 안에 묶어둔 채 순수하게 디자인 자체만을 비평하는 건 핵심을 벗어나거나 의미 없는 푸념에 그칠 가능성이 커요. 무슨 공원 바닥이 콘크리트냐, 화분 속 식물이 불쌍하다, 가나다가 웬 말이냐 같은 이슈는 다른 공원이나 가로에서는 중요하겠지만 서울역 고가의 핵심은 아니죠. E. 결국 다수의 공간이므로 어떤 설계안이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충분히 토론하면서 다수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중요한 거죠. H. 실은 초기의 공론화 과정이 더 중요하죠. 왜 하는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공론화, 지금 다시 그 이야기를 들춰서 특집에 담는 건 정말 뒷북이겠죠? E. 이번 기획에선 다루지 않더라도 여전히 생명력 있는 쟁점인 건 분명해요. 광화문광장 개선과 같은 또 다른 도시 정치 프로젝트가 대기 중이니까요. 무엇을 만드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어떻게 만드는가라는 점, 서울역 고가의 교훈. 오늘은 이 정도로 맺을게요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칼럼] 낡은 다리 위에서, 전복의 풍경
    ‘파레르곤parergon’은 작품, 주제, 기능, 일, 행위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 ‘에르곤ergon’에 주변, 보조, 부차적이라는 의미의 접두사 ‘파라para’를 붙여서 만든 단어다. 아들을 위한 품행 지침서 제목으로 처음 사용한 18세기 초에는 텍스트에 덧붙인 보조적, 교육적 문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칸트, 쇼펜하우어, 자크 데리다 등 여러 철학자를 거치면서 복잡 미묘한 의미를 갖추게 되었다. 좁게 보면 주 텍스트에 달아놓은 주석으로 볼 수도 있고, 넓게 보면 작가의 전체 저서 중 중요치 않은 저작이나 작가의 주요 저서를 만들기 전에 제작한 소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함부로 분리할 수 없는 주석으로서 파레르곤이 주 텍스트를 보충해서 설명을 하면 할수록 다른 한편으로 텍스트가 지닌 근원적 복잡성이 드러난다. 역설적이게도 주요한 내러티브를 다중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논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텍스트의 역사에서 고정 불변성이 사라진다. 공사 당시 상황판 사진의 문구처럼 “서울역전의 평면교차로 인한 교통 혼잡”을 “완전 해결”하고자 근대적 교통 체계에 입체로 덧붙인 이전의 ‘서울역 고가도로’ 또는 오늘날의 ‘서울로 7017’은 태생적으로 파레르곤이다. 차량이 우선이었던 속도의 시대에 도도한 차량 흐름을 끊는 보행 동선과의 교차점을 없애거나 줄이는 방식의 보완 역할로 교통 체계의 효율을 높였으며(실상은 효율적이라고 믿었을 뿐이지만), 때로는 거대 도시 서울의 중심에서 1970년대 조국의 근대화를 웅변하는 상징물 노릇도 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고가도로들은 이미 1980년대에 정체를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교통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의심을 받았으며, 1990년대에는 흉물이자 골칫거리가 되었다. 건설 의도와는 정반대로 고가도로라는 파레르곤이 일견 완벽해 보였던 근대 교통 체계의 계산법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게다가 2017년 이 고가도로를 녹지가 있는 선형의 보행로로 재조성하면서, 급기야 우리는 오래된 콘크리트 덩어리의 ‘파레르곤’이 주변 도심 공간을 엮는 중심이자 주제인 ‘에르곤’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목도한다. 눈여겨 볼 것은 다중적 해석 속에서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자리가 뒤바뀌는 ‘파레르곤’과 ‘에르곤’의 전복적 양상이다. 숱하게 부수고 새로 지어서 한눈팔다 돌아보면 으레 강산이 바뀌어 있는 토건 국가에서 살아왔으니 구조물의 변신 자체는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다. 강을 건너는 노후한 다리를 폐쇄한 후 보행교로 용도를 바꾸거나 고가의 육교를 철거하는 작업은 이미 흔하게 봤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재미가 없다. 세상이 반드시 흥미로워야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의 경관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 대중에게 정보를 열어놓고 치열하게 논란을 거치면서 다시 구축했다는 점에서 ‘서울로 7017’은 분명히 진일보했다. 전복적 사고는 전면적 파괴나 철거나 멸실이 아니라 계보학적 접근을 통한 해체와 재구축 작업을 통해서 제대로 실현된다. 뉴욕의 하이라인을 거울삼았지만 애초에 한계는 명확했다. 다리 높이가 17m로 지상과는 너무 동떨어졌다는 점, 그에 비해 10m 폭은 비교적 좁다는 점, 주변 건축물 입면과 자연스레 접하는 지점이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다리 전체가 분주한 대로와 철로 위에 올라앉은 긴 섬이라는 형국. 이런 상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도 가장 압도적인 것은 다양한 크기와 높이로 만든 원형의 콘크리트 화분들이다. 하늘 위를 걷는 사람들이 냇물에 잠긴 작은 바위와 돌을 스쳐가는 물고기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대개는 가운데를 통해서 가지만, 화분과 유리 난간 사이로 난 좁다란 골목도 택한다. 화분이 원형이라서 이 독특한 골목은 구불구불한 형상으로 주변 경관을 부감하면서 아주 길게 이어진다. 흔치 않아서 재미있다. 다만 해체해서 재구축한 다리 위에 놓인 식물도감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건물 파사드와 연결하기 힘드니 행태 유발의 임무를 이름순으로 나열한 나무들에게 떠맡긴 것일까. 그러나 기표와 기의를 일치시키고 호명하는 근대를 탈근대 위에 올려놓은 이 질감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다. 설계공모에서도 제시한 수목원식 나무 배열은 그 목적이 관람이건 학습이건 누구나 익숙해서 무난할 테지만 그저 그뿐이다. 게다가 230여 종에 달하는 다종다양한 나무 모두에게 콘크리트 다리 위는 과연 살만한 환경인가. 식재의 내용보다는 고가도로라는 형식, 나무보다는 화분이라는 틀에 집중하면, 지상과 분리된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명력을 생생하게 드러냈을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늦지 않았다. 탈근대적 작품의 끝은 열려 있고 누구나 의견 개진이 가능하니 앞으로의 모습 또한 끊임없이 변모해갈 것이다. 모든 경관은 이미 정치적이다. 경관이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어쩐지 의도가 불순하다. 다수를 차지하는 유권자 층이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만 언제 어디서고 경관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 실상은 가장 정치적이다. 그렇다면 예술을 통해서 전망을 제시하는 진보적, 도전적인 작품들이 놓일 자리는 어디인가. 불행하게도 서둘러 정리되는 결말을 맞이했지만, ‘슈즈 트리’처럼 때로는 논란만으로도 충분하다. 논란거리를 아예 없애겠다는 태도가 오히려 심각한 문제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주석이 달리고 전복적인 논의가 따라 붙는 풍경이 필요하다. 낡았지만 새로 태어난 다리, ‘서울로 7017’이 그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1999년부터 19년째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조경설계 힘(studio HYMH)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그곳에 머무는 사람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경관에 대한 해석과 발언이 자유롭고 ‘시급 1만 원 시대’에 경제적으로 튼튼한 설계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인내심 많은 친구들인 안형주, 박준영과 함께 열심히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