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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마 스케이프] 쓰리 빌보드 강렬하고 품위 있는 추모 공간
    전투복을 입은 주인공과 “죽은 딸을 위해 세상에 맞서는 엄마”라는 카피를 보고, 폭력과 차별에 맞서 장쾌하게 복수하는 영화를 상상했다. ‘쓰리 빌보드’는 우리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영화다.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도 없고, 절대적인 영웅도 없다. 주인공인 엄마는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지 않다. 누구보다 싸움도, 욕도 더 잘한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행동할 뿐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매번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고, 관객의 예상도 번번이 빗나간다. 폭력과 분노가 충돌해서 빚어낸 결과로 남는 것은 고요와 숭고함이다. 누구하나 우아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는데 희한하게도 품격이 느껴진다. 한편의 블랙 코미디가 끝날 때쯤 기어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뜨거움의 정체가 궁금하다. 인종 차별, 젠더, 가족주의, 그 어떤 장르로도 묶이기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영화다. 주인공의 추모 공간과 그 추모 방식이 낳은 영향에 주목해 보자. 영화의 첫 장면, 안개 낀 한적한 도로변 들판에 서 있는 세 개의 낡은 대형 광고판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것이 앞으로 초래할 사건과는 달리 아름답고 시적인 풍경이다. 여기저기 찢겨진 채 방치된 광고판은 1980년대 이후로 그 기능이 멎었다.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 분)는 광고 회사를 찾아가 계약금을 걸고 광고를 의뢰한다. “내 딸이 죽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웰러비 서장”, 몇 개의 단어로 광고판을 차례로 채운다. 경찰서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공권력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이 대담한 광고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방송에도 보도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모처럼 좋은 영화가 많은 계절이다. 어제 본 영화를 오늘 본 영화가 덮어쓰고, 오늘 본 영화는 내일 또 어떤 영화로 묻힐지 모르겠다. ‘쓰리 빌보드’는 이달에 오늘까지 본 영화 중 최고다. 잠시 멈춰서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 패트릭 블랑, 부산현대미술관에 수직정원을 만들다
    부산현대미술관(관장 김성연)이 6월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천연기념물 제179호)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은 자연과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며, 생태와 뉴미디어를 아우르는 미술관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그러나 건립 초기부터 미술관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라는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미술관 측은 건물 외형을 보완하기 위해 식물학자 겸 아티스트인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을 초청해 미술관 외벽에 수직정원(Vertical Garden) 설치를 계획한다. 패트릭 블랑은 지난 4월 14일 미술관을 방문해 수직정원의 시공 상황을 확인하고,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동아대학교 학생들과의 식재 행사를 마치고 학생들의 기념 촬영과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하느라 인터뷰 시작이 예정보다 지체되었지만, 시종일관 열정적인 제스처와 함께 답변을 이어갔던 패트릭 블랑과의 대화를 옮긴다. Q 2013년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 바 있다(최이규ㆍ박명권,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주목할 만한 조경가 12인’, 『환경과조경』 2013년 9월호, pp.100~111).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한국에 몇 번째 방문한 것인가?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이하 B) 예전에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과 함께 서울에서 개인주택(2003년) 작업을 했다. 그때 북한산에서 많은 식물을 볼 수 있었고, 10여 년쯤 전에는 제주도를 탐사했다. 제주는 섬 지역이라 서울과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부산은 작년 10월 처음 방문했는데, 서울이나 제주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Q 부산의 첫인상은 어땠나? B 부산은 규모가 아주 큰 도시는 아니지만 그 다양성에 놀랐다. 많은 해산물을 보았고, 특히 시장에서 해산물을 사서 위의 식당에 올라가서 먹는 굉장한 경험을 했다. 해변의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 도시 전체적으로 현대식 건물이 많기는 하지만 경사지가 많고 곳곳에 전통적인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다양하다는 느낌을 준다. 지금 머물고 있는 코모도호텔도 전통적인 분위기의 호텔이다. 그렇게 다른 건축 양식이 공존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쇼코의 미소
    핸드폰 액정이 반짝인다. “도무지 엄마를 좋아할 수가 없어.” A다. 엄마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는 그녀는,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먼저 닦냐, 밥을 먼저 먹냐는 문제로도 다투곤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A가 정 없는 사람이라 이야기하는데, 정작 그녀는 엄마처럼 대놓고 무안을 주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순전히 어머니의 기준에서) 단정치 않은 그녀의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어코 미용실에 가라는 잔소리로 A의 신경을 긁어 놓는다(A의 머리는 컬을 살짝 넣은 단발머리다). 둘은 서로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 매번 상처를 주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A는 여느 가족들처럼 그래도 어머니를 사랑한다. “서로 다투면서도 관계를 단절하고 싶은 건 아니란 말이지. 이렇게까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꼴 보기 싫다고까지 생각하지 않는 건, 역시 좋아하지는 못해도 사랑은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 어쨌거나 엄마가 상처받아서 속상해하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속상하긴 하니까. 뭐, 그러니까 좋아하진 않아도 사랑은 하는 거 같아.” 좋아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 서로 맞지 않으면 관계를 포기해버리면 좋을텐데, 세상에는 혈연이나 어떤 인연으로 만남을 이어가야 하는 사이가 많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해보려 ‘이유’를 찾는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렇게 말한 까닭이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 끊임없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상대의 모든 행동과 말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대를 좋아하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A의 말처럼 “아주 근본적인 부분부터 달라 서로 절충안을 찾을 수 없는” 관계도 있다. 그래서 A는 엄마를 이해하기보다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의 입장에 서보는 대신, 그냥 엄마는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여 버리는 것. 그렇게 하니 도리어 엄마를 좋아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해와 인정. 『쇼코의 미소』를 읽는 내내 두 단어가 계속 머리를 떠돌았다. 일곱 편의 단편을 엮은 『쇼코의 미소』의 공통 화두는 ‘이해’다. ‘쇼코의 미소’와 ‘한지와 영주’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직하게 마주한 최은영의 질문이라면,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은 이해라는 키워드를 공감과 유대로까지 확장한다. ‘미카엘라’에서 광화문광장에 선 익명의 여성들은 4월 16일 자신들의 딸이 배에 있었음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딸 중 하나인 미카엘라는 어느 교회에나 있을 법한 흔한 세례명이다. 주인공의 세례명도 미카엘라다. 어쩌면 나 또는 나의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 친척의 세례명이었을 수도 있던 미카엘라라는 이름이 “그저 운이 좋아서, 내가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음을"(각주 1)상기시킨다. 이를 깨닫는 순간 나 역시 광장을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미카엘라 중 하나가 된 듯 했다. 광장에 선 여성들의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처절하지도 않다. 최은영의 문체처럼 단정하기만 하다. 관조적이기까지 한 문체는 『쇼코의 미소』 전반에 깔려 있다. ‘먼 곳에서 온 노래’, ‘비밀’에서도 세월호를 간접적으로 다루는데, 작가는 결코 그들에게 위로를 건넨다거나 앞으로 우리는 이래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그저 빈 자리를 보며 긴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기만 한다. 이상하게도 이런 담담함이 등장인물의 마음에 공감하게 하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몰랐기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서로를 이해하거나 인정하는 일이 쉽게만 그려지는 건 아니다. ‘쇼코의 미소’의 소유는 “평생 좋은 소리 한 번 하는 법 없이 무뚝뚝하기만” 한 할아버지가 죽음을 앞뒀을 때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건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각주 2)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래도 할아버지는 소유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소유는 “비어져 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을 발견한다(각주 3). 소유가 할아버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두 시간 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하고 싶던 마음은 사랑의 일종이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소유의 모습에 A가 겹쳐진다. A와 그녀의 어머니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도무지 맞는 점이 없는 둘도 긴 세월 부대끼다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각주 정리 1.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2. 최은영,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 p.47. 3. 위의 책, p.47.
  • [CODA] 대안과 연대
    『환경과조경』 2018년 5월호 특집,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는 우연한 기획의 산물이지만, 이 기획의 등장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기존 조경설계사무소나 단체와는 다른 형식의 그룹이 차츰 눈에 들어왔다. 최근 들어서는 부쩍 작품을 소개하거나 원고를 받을 때 그들이 속해 있는 또 다른 모임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그룹의 이름을 들으면 포스트잇에 적어 모니터 앞에 붙여 두곤 했다. 우연히 어느 편집회의 테이블에서 막연한 미래 아이템으로 적혀 있던 이 기획이 5월호의 특집으로 급부상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막상 손꼽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그룹이 있었고, 그렇게 놓고 보니 하나의 흐름으로 읽혔다. ‘대안과 연대’라는 다소 거창하고 딱딱한 키워드로 이루어진 가제로 섭외를 시작했다. 이들에게서는 조경을 기반으로 하지만 고전적인(기성의) 산업과 분야의 경계를 강조해서는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는 공통의 인식이 보인다. 공통의 지향 아래 모였으나 개개인의 차이를 존중하는 유연함이 특징이다. 물론 우리의 섭외를 고사한 그룹도 있다. 최대한 많은 모임을 통해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이 이번 특집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으나 미처 우리 편집부에 포착되지 않은 모임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서울에 편재되었다는 아쉬움이나 세대를 가르는 것이 아니냐는 불편함도 있을 수 있다는 고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기획이 새로운 흐름을 발굴하고 자극하는 첫 단추라 생각하며 섭외를 마무리했다. 특집의 최종 제목은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로 정했다. 잠시 ‘지향하다’를 고민했지만 곧 ‘실천하다’로 바꿨다. 이들이 보내온 원고에는 유난히 ‘실천’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자연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과 실천 … 새로운 영역의 일을 하나씩 실천하며 … 우리가 실천해나가는 일이 모여 우리가 속한 사회와 환경에 의미 있는 흔적과 영향을 만들어나가길 희망한다.”(자연감각) “이론과 실천, 앎과 삶의 합치를 꾀한다.”(하루.순) “단일 성격의 조경 단위가 하기 힘든 일을 풀어내는 동시에 조경 문화에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은 실천적 모임.”(팀 동산바치) “조경이상은 실천을 위한 모임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할 아이디어는 무의미하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기획하고 함께 해나가려는 의지가 구성원의 자격이자 조건이다.”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치자 대신, 서로 다름을 인정한 채로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우선 실천해보자는 것이 오래 회자된 ‘조경의 위기’에 대한 이들의 결론이다. 이번 5월호는 편집 디자인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옥상다반사’ 특집(2017년 2월호) 때 처음 시도했던 명조체의 큰 활자를 다시 한 번 적용했다. 잡지 지면의 메시지는 텍스트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어쩌면 훨씬 더 자주)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의도를 전달한다. 연대란 사람이 하는 것이니 사람이 중심에 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원고 청탁서를 보내며, 각 팀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단체 사진을 보내달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각 팀의 아이디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팽선민 디자이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막 데뷔를 앞둔 인디밴드의 첫 번째 앨범” 같은 풋풋한 연출의 사진부터, 현장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날것 같은 사진도 있다. 그러나 공통점이라면 이 단체 사진은 주연과 조연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 혹은 개인의 자의식을 과도하게 드러내기보다 모두가 주연인 수평적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이번 특집의 의도에 부합해 보였다. 표지 역시 팽 디자이너의 회심작이다. “다양한 그룹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표지에 이미지는 적절치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텍스트를 대안으로 선택한 거죠. 컬러는, 텍스트를 강조하기 위해 산뜻한 노란색과 검정색을 배치했어요.” 표지 역시 대안에 도전한 셈. 반면, 이 무크지 같기도 한 표지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편집부의 반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시안을 만드는 관례를 깨고, 우리는 더 이상의 대안을 만들지 않기로 모의했다. 우리의 연대와 대안(!)이 독자들에게도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코다의 코다 이번 361호를 마지막으로 제가 환경과조경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안녕이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라는 어느 노랫말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지만 당장은 아쉬움에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얼마 전 10여 년 만에 연락한 지인이 잡지를 보았노라며, “너는 여전히 이상주의자로 살고 있구나”라고 말하기에, “나도 시류에 영합하고 싶다”며 웃어 넘겼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매체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이 시점, 종이 잡지를 만드는 일은 시종일관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는 일일 터입니다. 한 호의 문을 닫는 이 지면을 되돌아보니, 종이 잡지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어떤 대안이 있을지 고민했던 글이 많습니다. 그간 함께 한 독자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박명권 발행인을 비롯해 배정한 편집주간, 남기준 편집장 그리고 동고동락한 기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변화에 적응하려는 시도 못지않게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도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없이 도전하는 환경과조경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저 역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습니다.
  • [PRODUCT] 우수한 빗물 투수력을 갖춘 ‘투수코아블록’ 하부 모래 유실을 방지하는 빗물 유입량 조절 기능 겸비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기 위해 우수한 품질, 혁신적인 디자인의 블록을 개발해온 (주)데코페이브가 우수한 빗물 투수력을 갖춘 ‘투수코아블록’을 출시했다. 투수코아블록은 기존의 투수블록 모서리에 투수코아를 결합해 빗물 투과 기능을 대폭 향상한 제품이다. 투수코아에는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해 내구성을 높였으며, 내부에는 황토볼을 넣어 빗물 유입량을 조절해 블록 하부의 모래가 유실되지 않도록 했다. 흙이나 먼지 등에 의해 투수코아 일부가 막히더라도 고압 살수를 통해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어 유지·관리가 용이하다. 뿐만 아니라 투수코아블록의 표면을 자연석 판석 느낌이 나도록 가공한 데코사암블록, 차도에 적합하게 개량한 차도코아블록을 개발해 필요에 따라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투수코아블록은 정부조달우수제품 지정, NET 방재신기술 인증을 받은 제품이며, 서울시의 규정에 따라 투수성 시험을 받아야 하는 투수블록에서 제외되어 여러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쉽게 시공할 수 있다. TEL. 051-831-9682 WEB. www.decopave.co.kr
    • / (주)데코페이브
  • [에디토리얼] 행복한 조경가
    주말의 소중한 늦잠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한 손에 감기는 크기와 가벼운 무게, 정교하면서도 감각적인 누드 제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표지, 자유분방함과 치밀함의 경계를 달리는 편집 디자인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엮여 독자의 숨 쉴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첫 장을 열면 단숨에 읽어 내릴 수밖에 없는 따끈따끈한 신간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 이 책은 오랜 수련과 실무를 거친 후 자신의 설계사무소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design studio loci)로 독립해 10년을 채우고 1년을 더 보낸 박승진 소장의 작업 기록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아모레퍼시픽 사옥에 이르는 그간의 역작을 모은 작품집이 아니다. 그동안 발표해 온 주옥같은 에세이와 논평을 모은 책도 아니다. “일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교차”한 10년의 기록을 펴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업은 늘 조심스럽고 흥미진진하다. 모든 작업은 결국 땅 위에 구축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좌뇌와 우뇌, 양팔과 양손 그리고 두 다리의 끊임없는 구동을 요구한다. 긴장과 이완의 지속적인 반복, 불안과 안도의 이상한 동거, 진척과 되새김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역행은 설계 작업자의 숙명이다. … 찢어진 메모지에, 혹은 값비싼 몰스킨에, 옐로페이퍼의 구겨진 한 모서리에도 그 흔적은 남는다. 이제는 휴대장치가 만들어내는 고해상도 이미지까지 가세하므로 기록들은 차고 넘친다.” 그는 기록의 “정리라는 행위는 가끔 무의미한 과장과 무책임한 소거를 동반하기 때문”에 특별한 구분과 정리 없이 10년의 일과 일상을 뒤섞어 묶었다고 변명하지만, 이 멋스러운 책에서 독자는 오히려 일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을, 일과 일상을 가로지르는 섬세한 삶을 마주하게 된다. 책을 덮으며 마지막 장에 침대 맡 연필을 “압인기”(449, 453쪽) 삼아 꾹꾹 눌러 이렇게 적었다. 행복한 조경가. 일과 일상의 즐거운 동거는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할 때 가능하다. 이 둘이 일치하는 삶만큼 부러운 게 또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행복 연구로 이름난 최인철 교수(서울대학교 심리학과)는 한 칼럼에서 최근의 연구를 소개하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 실존의 비극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회의, 대화, 운동과 같은 일상적 경험을 하고 있는 그 순간순간의 즐거움과 의미는 그 일을 잘한다고 느끼는 정도보다 그 일을 좋아한다고 느끼는 정도에 의해서 훨씬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일상에서 좀 더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잘하는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도큐멘테이션』에서 볼 수 있는 일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 그 열쇠는 ‘좋아하는 일 하기’가 아닐까. 주변의 여러 조경가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다보면 비단 박승진 소장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서 행복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일 테다. 누군가 지금 조경이라는 두 글자를 앞에 두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면, 조경 일의 전망과 연봉, 조경의 가치와 조경가의 지위 같은 잣대를 잠시 뒤로 물리고 우선 조경이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스스로 묻고 답해 보기를 권한다. 최인철 교수의 조언을 옮긴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수 없다는 ‘어른스러운’ 조언이 들려올 때마다, 늘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는 자기만의 주문을 외워야 한다. 그것이 자기다움의 삶과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이 달에는 호주를 대표하는 조경설계사무소 TCL(Taylor Cullity Lethlean)의 작업, 에세이, 인터뷰에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 독일의 토포텍 1(Topotek 1)(2015년 2월호), 프랑스의 아장스 테르(Agence Ter)(2016년 11월호) 이후 세 번째 조경가/설계사무소 특집인 셈이다. 대규모 정원과 수목원부터, 습지, 도시 광장, 부두와 항만, 탈산업 경관, 워터프런트, 공항에 이르는 TCL의 다양한 설계 작업에서 조경, 건축, 도시설계를 가로지르는 다층의 지혜와 다각의 디자인 문법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TCL 작품의 더 큰 특징은 ‘호주 경관의 재해석’이라는 설계 태도일 것이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과 다른 호주 고유의 지질, 지형, 기후, 식생, 도시 문화를 재해석하는 시도가 프로젝트의 성격과 스케일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된다. 그들의 ‘호주성’ 재현 해법은 ‘한국성’의 그것과 무엇이 같고 또 다를까. 김정은 편집팀장과 김모아 기자는 TCL의 작품 사진, 텍스트, 이미지 패키지를 지난 두 달간 검토하고 편집하면서 그들의 작품뿐 아니라 설계 방식과 작업 환경에서 어떤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박승진 소장의 『도큐멘테이션』에 담긴 일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과 비슷한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역동적 이중주. 본문의 인터뷰에서 TCL은 프로젝트 선택 기준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전문가로서 관심 있는 분야인지, 우리를 흥분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지”가 잣대다. 개인적으로는 오클랜드 워터프런트를 다룬 지면에서 묘한 행복감을 느꼈다. 몇 해 전 IFLA 학술대회에 참가했을 때 잠시 틈을 내 산책했던 곳이다. 낯선 도시의 청명한 오후 풍경이 지면에서 다시 살아난다. 이번 TCL 특집 기획과 구성에는 이홍인 호주 리포터의 공이 아주 크다. 국내에서 조경 교육을 받고 호주에서 활동해 온 이채로운 경력의 조경가인 그는, 지난 몇 달간 TCL과 본지를 매개하며 열정적으로 기획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네 편의 인터뷰 원고까지 맡았다. 깊이 감사드린다. 2017년 1월호부터 연재된 재미 조경가 안동혁(JCFO)의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가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16회에 걸친 긴 연재의 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면이 넘쳐 ‘그들이 설계하는 법’과 최이규 교수의 연재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을 다음 달로 넘긴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TCL TAYLOR CULLITY LETHLEAN
    TCL(Taylor Cullity Lethlean)은 조경과 도시설계를 넘나드는 호주의 대표적 설계사무소다. 지난 30여 년간 도시의 워터프런트부터 사막의 산책로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공공 공간에서 작은 정원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특히 장소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에 대한 세심한 탐색을 통해 경관과 지역의 문화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면모를 보인다. 광활한 대륙의 자연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TCL의 작업은 전문 분야로서 조경의 역사가 길지 않은 호주에서 조경이라는 직능의 토대를 견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멜버른(Melbourne)과 애들레이드(Adelaide) 두 곳에서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는 TCL은 디렉터를 중심으로 조경가, 도시설계가, 건축가가 협업하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스튜디오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TCL을 이끌고 있는 디렉터들은 조경을 공통분모로 삼지만, 케이트 컬리티(Kate Cullity)는 원예학과 시각 예술, 페리 레슬린(Perry Lethlean)은 도시설계, 스캇 아담스(Scott Adams)는 대규모 프로젝트 설계, 데미안 슐츠(Damian Schultz)는 물순환 관리형 도시설계(WSUD)와 습지 디자인 등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시각화에 특출한 리사 호워드(Lisa Howard)(Studio Principal)는 디렉터들을 지원한다. 이번 호에서는 호주 조경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던 오스트레일리아 가든(Australian Garden)부터 캠퍼스와 공항 같은 도시 프로젝트, 산업 유산의 재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오클랜드 워터프런트(Auckland Waterfront), 도전적 형태의 엘리자베스 키(Elizabeth Quay) 등 TCL의 최근 6~7년간 주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덧붙여 2017년 베를린의 국제 정원박람회IGA에 전시된 컬티베이티드 바이 파이어(Cultivated by Fire)를 수록해, 호주의 생태에 지속적으로 천착하며 그들만의 미학을 일궈나가는 TCL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낯선 대륙의 작업이지만 본지의 호주 리포터인 이홍인이 각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디렉터를 인터뷰해 독자들이 작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풍요롭지만 때론 무미건조한, 도시적이지만 한편으로 느긋한 경관에 감각을 입히는 TCL의 작품 세계를 탐험하는 매혹적인 여정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진행 김정은, 김모아, 이홍인 번역 안호균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TCL
    • 편집부
  • [TCL] 디자인 철학과 전략 DESIGN PHILOSOPHY AND STRATEGY
    경관을 감지하다Sensing Landscape 애들레이드(Adelaide)이든 멜버른(Melbourne)이든 테일러 컬리티 레슬린(Taylor Cullity Lethlean)(TCL)의 작업 공간에 들어선다는 것은 일종의 상호 작용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셈이다. 이러한 상호 작용은 디자인 스튜디오의 협업 공간과 호주의 도시, 교외, 황무지(outback), 기반 시설 경관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TCL의 작업은 설계된 경관에 긍정적 기여를 하고 있으며, 지적인 동시에 관대한 성격을 띠고 있다. TCL의 공간을 방문하면 원 재료의 섬세함과 진지한 의도가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분주한 사무실에 널려 있기 마련인 쓰레기 더미 사이에 자연에서 가져온 일련의 재료가 조심스럽고 정확하게 배열되어 있다. 벽면은 스케치, 사진, 회화 등을 통해 포착된 경관 이미지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다양한 일상의 모습도 병치되어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대개 이렇다. 그렇지만 TCL의 작업 공간은 독특한 감수성을 보여준다. 조경 프로젝트에 대한, 나아가 호주 경관의 본질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TCL의 구성원들은 다층의 경관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호주의 황무지가 지닌 공간적 특질과 구조적 특성 등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TCL 스튜디오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경관을 제대로 감지하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호주에서 하나의 전문 직능으로서 조경에 TCL이 기여한 바는 상당히 클 뿐만 아니라 매우 광범위하다. 호주에서는 경관을 설계하는 이른바 조경이 최근에 들어서야 전문 직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66년 호주조경학회(Australi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는 호주 내에서 조경의 직능 토대를 공고히 한 바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사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평가할 수 있는 TCL의 프로젝트들은 전 세계적으로 출판되고 있으며, 디자인의 탁월함을 인정받아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주요 설계 프로젝트에서 주관 조경사로 선정되고 있지만, TCL은 성취와 인정만을 지향하지 않는다. TCL의 디렉터와 직원들에게 프로젝트를 이끈다는 것은 곧 경관을 좀 더 깊이 이해해 경관에 감각을 입히는 일이다. 호주에서 전문적 조경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TCL이 지금껏 진행한 1,0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통해 여실히 보여준 호주 경관에 대한 독창적 접근법이 다소 덜 알려졌다고도 볼 수 있다. TCL의 성과에 대한 심도 있는 비평과 다양한 관점의 고찰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0호(2018년 4월호) 수록본 일부
    • 지니 리, 수앤 웨어
  • [TCL] 오스트레일리아 가든 Australian Garden
    과거 모래 채굴장이었던 장소에 새로운 식물원이 들어섰다. 방문객은 물이 보여주는 은유적 여정을 따라 사막에서 해안가에 이르는 호주의 경관을 경험하게 된다. 조경이 보여주는 근사한 솜씨를 바탕으로 원예, 건축, 생태, 그리고 예술을 하나의 경관으로 통합한 호주 최대 규모의 식물원이 탄생했다. 이 정원은 경험을 주제로 한 설계를 통해 식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 넣는다. 오스트레일리아 가든(Australian Garden)이 완공된 시점은 전 세계 식물원들이 기존의 연구와 여가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경관 보존의 메시지와 의미 있는 방문자 참여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모으던 때다. 오스트레일리아 가든은 호주인이 경관에 품고 있는 애증을 표현함으로써 관심을 사로잡는다. 호주 경관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호주인이 있는 반면, 고난의 원천이라는 이유로 혐오하는 호주인도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와 작가들은 종종 우리 경관이 보여주는 미묘한 리듬, 흐르는 듯한 형상, 그리고 강인한 식물을 반영한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을 느껴왔다. 반면 또 다른 예술가와 작가들은 이러한 경관에 질서를 부여하고, 인간에 의해 설계된 형상으로 구성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오스트레일리아 가든에서는 이처럼 서로 다른 방향성이 긴장감을 형성하며 디자인의 바탕이 되고 있으며, 경외감과 동경, 자연 경관, 그리고 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내재적 열망, 다시 말해 경관을 인공적 형태의 아름다움이자 우리들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여실히 드러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0호(2018년 4월호) 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TCL(Perry Lethlean, Kate Cullity) Architecture Kerstin Thompson Architects,Gregory Burgess Architects, BKK Architects Art and Sculpture Mark Stoner & Edwina Kearney, Greg Clark Cost Planner Donald Cant Watts Corke, Rider Levett Bucknall Engineering Meinhardt, Irwinconsult, Felicetti Horticulture Paul Thompson Irrigation Irrigation Design Consultants Lighting Barry Webb and Associates Soil Consultant Robert van de Graaff, Peter May Superintendency LIS Water Waterforms International, Doug Basich Location Royal Botanic Gardens, Cranbourne,Melbourne, Victoria, Australia Budget $11,000,000 Area 25ha Completion 2005(stage 1), 2012(stage 2) Photographs John Gollings
    • TCL / TCL
  • [TCL] 오스트레일리아 가든, 호주 경관의 재해석 페리 레슬린과의 대화
    이홍인(이하 L):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페리 레슬린Perry Lethlean(이하 PL): 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은 크랜버른(Cranbourne) 지역에 363헥타르에 달하는 숲 지대를 조성하고자 했는데, 그 안에 위치한 25헥타르의 모래 채굴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공개 입찰을 했는데 당시 막 이 회사에 들어온 나와 케빈(Kevin Taylor), 케이트(Kate Cullity), 폴 톰슨(Paul Thompson)이 함께 팀을 이뤄 제안서를 냈고 당선되었다. L: 왜 정원의 이름을 ‘오스트레일리아 가든(Australian Garden)’이라고 지었는가? PL: 당시 대상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멜버른 도심에서 꽤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지금처럼 주변에 주거지가 형성되기도 전이었다. 그저 시골의 황량한 수풀 지역에 가까웠다. 방문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강력한 이름이 필요했고, 정원의 목적이 호주의 식생을 연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L: 호주 조경사에서 이 공원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PL: 당시 호주에서 조경은 역사가 길지 않은 새롭고 젊은 전문 직종이었다. 대부분의 조경은 호주의 지질, 지형 문화, 기후, 식생을 반영하기보다는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 차용한 것이었다. 이후 호주의 경관과 식생을 사랑하고 호주에서 교육받은 열정적인 젊은 조경가들이 나타났지만 그들은 호주의 식생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우리의 접근 방식은 생태계를 복제하기보다는 그것을 재해석하여 추상적으로 묘사하거나 조형적, 예술적으로 승화하여 방문자에게 호주의 경관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색다른 시도였다. 우리는 방문자들이 이 정원을 통해 우리 대륙으로 은유적 여행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하도록 스토리를 구상했다. 그 스토리텔링의 핵심 요소가 바로 물이었는데, 알다시피 우리 대륙은 물로 둘러싸여 있지만 중심에는 물이 없고, 대체로 건조하며, 때로는 풍요롭고,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들고 변화한다. 우리는 물을 강력한 매개체로 삼아 방문자가 메마른 사막, 비옥한 해안, 대륙의 이동, 유칼립투스 자생림의 정착 등을 추상적으로 경험하게 했다. L: 이 프로젝트는 1995년에 시작되어 2012년 완공되기까지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그동안 클라이언트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가? PL: 운이 좋게도 클라이언트는 한결같았고 우리는 동일한 팀을 유지했다. 클라이언트 대표였던 필립 무어스(Philip Moors)는 열정이 넘쳤고 프로젝트 예산을 따고 우리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모든 난제를 끌어안는 해결사였다. 사실 긴 기간 동안 클라이언트 팀과의 협업 방식은 조금 바뀌었다. 클라이언트 팀은 조경, 정원, 식생에 관한 진정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었고, 초반에는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그들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확립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첫 번째 단계가 우리가 어떻게 함께 일을 할지 이해하고 탐구하는 과정이었다면, 두 번째 단계에서는 훨씬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10명 정도의 클라이언트 팀원들과 격주로 우리 사무실에서 회의를 했다. 우리는 디자인 안을 보여주고 납득시키려고 하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던져놓고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그들과 함께 장단점을 의논해가며 안을 도출하려 했다. 때때로 수십 가지의 가능성과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클라이언트에게 열정과 오너십을 가지게 하는 동시에, 전문가인 이들로부터 다채로운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성공적인 협업 방식이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0호(2018년 4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