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바이로지컬 셀프–오거나이징 가든 Biological Self-Organizing Garden
    바이로지컬 셀프-오거나이징 가든(Biological Self-Organizing Garden)은 단순히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정원’이라는 의미를 넘어, 특정 알고리즘을 이용해 동선이 효율적이고 조직적으로 배열되도록 설계한 정원이다.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와 레이놀즈의 에이전트 모델(Agent Model) 이론을 결합해 생물학적 자기 조직화의 개념을 가진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자생적 질서는 중앙집권적 계획이나 통제가 없는 상태에서 개인의 상호 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질서를 의미한다. 개체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거나(근접 유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거나(정렬), 무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서로 모이려는 경향(응집) 등을 보이는데, 이러한 경향을 따르다보면 자연스럽게 복잡하고 조직화된 집단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를 에이전트(개체) 기반 모델이라 한다. 점균류 알고리즘을 사용해 정원 형태를 디자인했으며, 중국 저장성에서 가져온 대나무로 정원에 중국의 특색을 더했다. 곰팡이의 가치 곰팡이는 식물 뿌리와 공생한다. 최근 한 연구는 곰팡이 네트워크가 지구 탄소의 상당 부분을 저장해 지구 탄소 순환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곰팡이와 식물의 독특한 관계와 특징을 활용한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식물 서울에서 자생하는 식물 위주로 식재했으며 식물의 키와 관상적 가치에 따라 식물을 선정했다. 특징에 따라 기저층, 구조층, 부유층 식물로 분류했다. 특히 곤충을 많이 유인할 수 있는 식물을 심었다. *환경과조경434호(2024년 6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Shen Shixian, Yang Yiming 기술 자문 Xia Yiping, Wu Xiaocheng 시공 마이조경 대나무 구조물 시공 Anji Zhujing 선스셴(Shen Shixian)은 중국예술아카데미 조경 및 건축 디자인 연구소 부원장이자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 석사 지도교수다. 중국 전통 정원, 송나라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양이밍(Yang Yiming)은 중국예술아카데미 건축예술학부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중국예술아카데미 조경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조경 계획 및 이론을 중점으로 연구하고 있다.
    • Shen Shixian, Yang Yiming
  •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겸재선생님 한강공원에서 뵈어요 Teacher Gyeomjae, See You at Hangang Park
    정원은 자연과의 접점을 찾는 활동과 인식에 공감하는 장소이며 예술이다. 한국의 자연을 산수라 할 때, 조선의 독자적인 진경산수화법을 개척한 겸재 정선의 그림들은 정원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과 같다. ‘겸재선생님, 한강공원에서 뵈어요’는 겸재와 함께 한강을 스케치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정원이다. ‘천금을 준다고 해도 남에게 주지 말라(千金勿傳)’던 한강의 모습은 이제 남아 있지 않지만, 겸재 정선은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산수와 이야기하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정원을 설계했다. 전략 대상지는 동서 방향의 주 보행 동선, 북측 보조 동선 사이에 놓여 있다. 즉 사람들은 이 정원에서 어느 방향으로 향해 나아갈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혼잡도를 가중하지 않도록 밀도를 낮추고 스스로 영역을 만드는 정원을 계획했다. 침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기존 지형 내측에 정원을 넣었다. 정원 가장자리를 경사면으로 감싸 한강물이 홍수에 넘치더라도 강물을 1차적으로 막아주는 일종의 댐으로 기능하도록 했다. 경교명승첩 화첩의 전개에서 모티브를 얻어, 풍경을 바라보는 틀을 만들었다. 덕분에 산만한 주변 경관 속에서 정원의 장소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시설물은 모래톱과 맑은 물, 강변의 지형, 강 주변의 숲과 집들, 멀리 보이는 산,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돛배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환경과조경434호(2024년 6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조동범, 임승재 시공 스토리아툼, 바움랜드, 나창혁(창아트) 조동범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조경학과에서 강의와 연구를 했었다. 현재는 조경설계사무소 아이엘오퍼레이션 PD(Principle Designer, Program Director)로서 디자인을 하고 있다. 임승재는 전남대학교에서 조경학을 공부했다. 정원과 시민과의 능동적 상호 작용을 통해 경관이 조작되는 과정에 집중해 도시 경관을 변화를 연구하는 조경가다. 현재는 아이엘오퍼레이션을 설립해 대표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 조동범, 임승재
  •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호미 정원 Homi Garden - Grab the Homi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일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꽃과 나무 몇 주를 심는 일 조차도 막상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다. 마음으로는 정원과의 동행을 꿈꾸지만, 바쁜 일상과 녹록치 않은 경제적 여건, 식물 관련 지식의 부족에서 오는 막연한 걱정 등 시작을 망설이게 하는 핑계가 많다. 흙을 일구고 식물을 심는 도구인 호미를 정원 조성을 주저하는 이들에게 쥐여줌으로써 정원 만들기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계기를 만들어주고자 했다. 호미 표준국어대사전은 호미를 “김을 매거나 감자나 고구마를 캘 때 쓰는 쇠로 만든 농기구. 끝은 뾰족하고 위는 대개 넓적한 삼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목을 가늘게 휘어 구부린 뒤 둥근 나무 자루에 박는다”고 정의한다. 한국에서 호미는 전통 농기구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몇 해 전,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호미가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농기구를 넘어 정원 도구로서 가치를 높게 평가 받았다. 호미라는 이름 그대로를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등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이런 호미를 정원의 주요 이미지로 설정했다. 이를 통해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닌,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일상 활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전달하고자 했다. 공간 구성 정원 가운데 호미 조형물을 설치함으로써 멀리서 보면 마치 호미로 꽃을 심기 위해 땅을 일구는 듯한 풍경을 연출했다. 자갈밭, 연식 의자, 루버형 담장 등을 설치했다. 보행로에 회색 계열의 석재를 사용하고 자연석을 두는 등 색채와 소재를 통해 일관된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환경과조경434호(2024년 6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차용준 시공 스페이스콤마, 다림토탈시스템 차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나인브릿지 C.C 생츄어리가든, 한천마을 주민 참여 사업, 판교주택정원, 순천만정원 한평정원 ‘레드 웨이브즈(Red Waves)’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7년 서울정원박람회에서 ‘한강에 돌을 던지다’로 동상을, 2016년 코리아가든쇼에서 ‘첩첩산중’으로 동상을, 2017년 코리아가든쇼에서 ‘B612’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 차용준
  •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정원의 삶: 토룡은 큰 물에도 스러지지 않는다 Earthworms Don't Disappear Even in Floods
    디자인 모티브 뚝섬한강공원의 자전거 도로를 힘겹게 건너는 지렁이를 보고 설계 모티브를 얻었다. 큰 물이 흘러넘치고 나면 도로엔 수많은 지렁이가 나타나는데, 죽지 않고 버티는 지렁이를 보며 위기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지렁이를 토룡土龍이라 부르며, 큰 범람과 콘크리트를 견뎌내며 결코 쓰러지지 않는 지렁이가 가진 힘을 정원으로 표현했다. 공간 구성 정원의 동반과 생애주기라는 테마를 적용했다. 유년 시절부터 어린이, 청년, 중년, 노년에 이르는 생애주기를 정원으로 구성했다. 각각의 정원에는 테마에 맞는 다양한 식물과 색을 활용했다. 어린기정원에는 다양한 색상과 잎을 가졌으며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을 심었다. 힘이 넘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노란색을 주로 사용했다. 청년기정원은 상록수와 푸른빛이 짙은 초록 잎이 돋보이는 정원이다. 중년기정원에서는 완숙함과 우아함을 느낄 수 있는 자주색을 활용했다. 결실, 열매, 수확, 축하 등의 키워드를 담았다. 노년기정원은 세월의 흔적을 느끼는 공간이다. 은색 빛이 나는 초화류와 노년의 거친 피부와 손가락을 상징하는 감나무를 심었다. *환경과조경434호(2024년 6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김현, 김은영 시공 공간시공 에이원 김현은 영남대학교에서 조경학을 공부했다. 나무 그늘의 시원함과 계절이 시작할 때 꽃이 피는 도시가 미래 도시의 청사진이라 믿는다. 현재 공간설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김은영은 한경대학교에서 조경학을 공부했다. 정원과 조경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속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조경가다. 현재 조경설계사무소 온 실장이다.
    • 김현, 김은영
  •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뚝둑, 걸어보길 Step by Step, Echoing the Past
    레트로스케이프 레트로스케이프(retroscape)는 회상, 추억, 복고의 의미하는 ‘레트로(retro)’와 경관을 뜻하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를 결합한 단어다. 미래를 지향하는 정원보다 과거의 기록을 통해 옛 경관을 피워내는 레트로스케이프에 집중하고자 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대도시 속이 정원은 과거의 경관을 남기는 장치로 시민에게 과거의 경관을 생각하며 쉴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메모리얼 가든 개발로 인해 사라진 자연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 현재의 대상지는 과거 한강의 모래톱을 그대로 재현하기엔 힘든 땅이 되어버렸다. 사라진 모래를 대변하는 장치를 활용해 과거 한강의 모래톱과 현재의 모습이 연결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자연의 경계에 위치한 뚝섬의 모습은 곡선을 통해 표현했다. 뚝둑, 걸어보길 ‘뚝둑’은 뚝섬과 둑섬의 앞 글자를 합친 의태어다. 뚝둑이 가진 두 가지 의미를 정원에 담았다. 첫째, 말이 뛰어다니던 경관과 소리, 이곳을 이용하던 방문객의 발소리를 나타냈다. 둘째, 현재와 과거의 장소를 직선과 곡선으로 표현해 경관적 시간을 나열하고, 이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걸어볼 수 있게 했다. *환경과조경434호(2024년 6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이호우, 김태원 시공 권아림, 이호연 후원 에이가든 컴퍼니, 무안가드너 이호우는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생태복원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상명대학교 일반대학원 그린스마트시티학과에서 박사 수료 후 현재 논문을 쓰고 있다. 도시에서 쉼의 공간과 자연의 숨을 생각하는 담 대표로 정원 활동을 하고 있다. 김태원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 조경을 전공하고 미래유산대학원에서 한국정원컨텐츠학을 공부 중이다. 한국 고유의 정서와 경관이 갖는 자연관과 철학을 믿는다. 현대적인 공간에서 전통을 탐색하고 지키는 조경가다.
    • 이호우, 김태원
  •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심심해지다 I 명상하다 I 고마워하다 Be Bored I Meditate I Appreciate
    기술의 발전으로 항상 디지털 기기에 사로잡힌 채 지내는 현대인은 심심할 틈이 없다. 하지만 적당한 심심함은 창의성, 독창적 사고를 유발하는 데 긍정적 자극을 주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어 건강한 정신 유지에 필수적이다. 이러한 심심함을 느끼고 장시간 앉아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식재 계획 정원에 앉으면 보통 높게 자란 수목이 시야를 가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 혹은 지면에서 자라난 식물만이 시야에 가득 찬다. 다채로운 식물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아름다우나 그만큼 각 식물의 특성을 섬세하게 살피기는 어렵다. 이 정원에는 단일 수종을 심어 사람들이 하나의 식물에 집중하게 했다. 선정한 식물은 수크령 ‘하멜른’이다. 하멜른은 늦여름부터 피는 은백색 이삭의 질감이 매력적이다. 군락으로 식재하면 푸른 초원에 온 듯한 느낌을 낼 수 있다. 단일 수종과 시설물로만 구성된 정원에 들어서면 자칫 단조롭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머릿속에 묵혀두었던 고민이나 생각을 떨쳐버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명상을 즐길 수 있다. 명상 스크린 외부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타원형의 거대한 스크린 벽을 설치했다. 덕분에 정원에 들어서면 고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유지·관리가 쉬운 래커 코팅이 된 산화 금속 시트를 스크린 재료로 활용했다. 이 재료는 나무껍질과 질감이 닮아 있어 주변 자연과 매끄럽게 연결되어 시각적으로도 만족스러운 효과를 낸다. 정원 모퉁이의 정보 패널에는 정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새겨 넣었다. *환경과조경434호(2024년 6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Md Ashraful Azad 시공 제이제이가든스튜디오 아슈라풀 아자드(Md Ashraful Azad)는 방글라데시 공과대학교(BUET)에서 건축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면서 사회적 상호 작용을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야외 공공 공간과 정원이 일상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토대로 건축사무소 아코르 건축 워크숍을 설립했다. 창의적 디자인을 통해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 작용을 장려하는 설계를 하고 있다.
    • Md Ashraful Azad
  • [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 북서부 풍경] 경계에서 벡터로
    ‘도시-지역을 위한 지도책(Atlas For a City-Region)’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EU의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의 북아일랜드 사이 국경 지대의 미래를 상상해보는 프로젝트다. 이 국경 지대는 EU와 영국 사이의 유일한 육상 국경이다.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GSD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가 진행한 이 연구는 영국 북아일랜드의 데리(Derry) 시와 스트라반(Strabane) 지방 자치구 의회, 그리고 아일랜드 공화국의 도니골(Donegal) 자치 의회가 공동 후원했다. 이 지도책은 아일랜드 섬의 북서 지방 풍경이 브렉시트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현실로 인해 어떻게 변화할지 상상해본 결과물이다. 하버드 GSD의 조경학과 수업과 국경 양쪽의 현지 조사에 기반을 둔 이 연구는 어떻게 풍경이 초국경지역을 형성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국경은 선이 아닌 풍경이다. 미래는 마을 사이의 연결망이나 조각보 같은 땅의 무늬처럼 풍경을 만들어내는 관계를 이해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브렉시트의 파급 효과, 기후 변화의 장기적 영향, 그리고 인구 변화는 이 국경 풍경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적절한 계획과 디자인이 절실하다. 미래에 대한 상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도책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일랜드 북서부에 초超국경지역이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 지역을 어떻게 지도로 그릴 것인가? 그리고 향후 200년 동안 그 지역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을 세 편의 글로 다루고자 한다. 휴대 가능한 전시로 디자인된 이 지도책은 초국경지역의 증거를 제시하고, 지도로 보여주며, 어떻게 경관이 북서부 지역의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는 데 유용한지 보여준다. 배경 2016년 6월 23일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국민 투표를 했을 때부터,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 초국경지역은 브렉시트의 위기와 기회에 직면했다.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국경 통제의 자유였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은 영국과 EU 사이의 유일한 육상 국경으로 브렉시트 협상 지연의 원인이었다. 이 국경은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 수립 이후 언제나 아일랜드와 영국 정치에서 논란의 대상이었다. 많은 이가 브렉시트로 인한 영국과 EU 사이의 국경 폐쇄가 과거 트러블 시기(각주 1)로 돌아갈 것을 우려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던 이 시기는 1998년 양 지역 사이의 국경을 개방하기로 한 ‘굿 프라이 데이 협정’으로 끝났다. 분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에 브렉시트 국민 투표에서 북아일랜드 주민의 다수, 특히 북아일랜드 서부 지역 주민은 EU에 잔류하기를 선택했다. 오늘날 국경은 눈에 잘 보이지 않으며 오직 작은 방지턱이나 도로 표면의 질감 변화만이 국경의 존재를 드러낸다. 초국경지역의 주민은 공공 서비스, 식품, 사회 기반 시설, 일상생활, 공간 패턴을 국경을 넘어 공유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 풍경은 종종 ‘영국-아일랜드’로, 때로는 ‘천주교-개신교’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 풍경 속에는 영국인, 아일랜드인, 얼스터-스코틀랜드인뿐만 아니라, 바이킹, 노르만, 비잔틴, 그리고 최근 중국,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폴란드, 수단, 시리아에서 온 노동자, 학생, 난민의 정체성도 표현되고 있다. 땅의 무늬를 통해서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 토지 이용, 그리고 사람들의 포부와 소망의 기록을 읽고 그 위에 새로운 형태를 가늠해볼 수 있다. 초원의 경계에 자라는 생울타리는 무시하기 쉽다. 그 오래된 덤불과 배수로가 사회적, 경제적 복지와 개발과 딱히 관련 있어 보이진 않을 테니까. 사실 그 생울타리는 아일랜드 시골 풍경에서 가장 중요한 생태적 통로일 뿐만 아니라 토지 재산의 경계를 구분하고 정의하는 중요한 장치다. 얼스터-스코틀랜드 시 정체성의 상징이며 최근 200~300년 사이에 도입된 상대적으로 새로운 풍경 요소다. 초원의 크기와 생울타리 관리 정도는 그 주인의 종교가 무엇인지 시사한다. 필자는 현지에서 정돈된 생울타리는 대체로 기독교인의 것이며 천주교 신자들의 것은 대체로 덜 정돈되어 있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그 지역의 향후 개발이 무엇이든 그 형태는 바로 생울타리로 정의된 땅 속에 있을 것이다. 한편 아일랜드 공화국의 인구는 증가하고 있으며 더블린이나 코르크, 리머릭, 골웨이 같은 도시들은 이미 포화 상태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 국경 지대에 150만 명이 사는 도시를 제안하는 것은 공상이라 할 수 없다. 현재 700명의 인구가 전부인 킬리아 마을은 북아일랜드의 데리-런던데리 시, 아일랜드 공화국의 레터케니 시 사이의 고지대에 있다. 50년 이내로 킬리아 마을은 지역의 새로운 수도가 될지도 모른다.(각주 2) 브렉시트와 인구 변화로 인한 풍경의 변화도 분명하지만 기후 변화는 더 큰 위협이다. 이 지역은 50년 이내에 강수량이 줄고 지중해성 기후가 될 것이다. 북서부 지방에서 감자 재배는 어려워질 것이고, 대신 오렌지와 감귤류가 새로운 작물이 될 것이다. 기후 변화를 고려했을 때, 새로운 방식의 일과 삶의 형태를 상상해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국경을 선이 아닌 풍경으로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이러한 장기적 과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각주 3) *환경과조경434호(2024년 6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역주. 1960년대 후반부터 1998년까지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의 북아일랜드 간의 분쟁. 북아일랜드가 영국에 남아있기를 바랐던 영국 통합론주의자와 합병을 지지하는 북아일랜드인, 그리고 영국을 떠나 통일 아일랜드 공화국을 바랐던 아일랜드 독립주의자와 공화당원 간의 갈등으로 약 3,500명이 죽었다. 이 중 민간인이 52%였다. Malcolm Sutton, “Sutton Index of Deaths– Status Summary”, Conflict Archive on the Internet,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4 August 2015, Retrieved 31 August 2012. 2. 더 많은 아일랜드 인구 통계는 다음을 참고. www.cso.ie/en/releasesandpublications/ep/p-plfp/populationandlabour forceprojections2017-2051/populationprojectionsresults/ (2020년 4월 1일 접속) 3. Gareth Doherty and Pol Fité Matamoros, “From Line to Landscape: The Irish Northwest Border Region”, Architectural Design 263, pp.100~105.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는 하버드 GSD 조경학과 교수이며, 아직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조경의 내러티브와 그 실체를 탐구하고 풀어낸다. 그는 경관 현지 조사(landscape fieldwork)라고 부르는 현장 중심 연구 방법을 통해 복합 경관에서 사람과 환경을 핵심 요소로 다룬다. 본 연재의 번역을 맡은 강준호는 하버드GSD를 졸업한 뒤 도허티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현재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 게럿 도허티
  •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이지회 예술이 될 수 있는 것들
    전시 개막 행사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처음 봤다. 아는 얼굴도 많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이 보여서 들떴다. 특히 조경의 경계 혹은 바깥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목격했을 때는 더욱. 대부분 정장이나 단정한 느낌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눈길을 끄는 차림새가 있었다. 어둑한 회색빛의 점프 수트, 개성을 담은 패션이라기엔 그 재질과 형태가 기능에 충실해 보였다. 허리춤의 D자형 고리에 장갑이 매달려 있는 걸 포착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 춤에서 짤랑짤랑 흔들리는 무언가의 정체가 궁금해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했다. ‘그래, 원래 끝에 끝까지 작업하기 마련이지. 이번 전시를 위해 조성했다던 정원 작업에 참여한 사람인가?’ 그런데 웬걸 행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연단에 섰다. 이지회 학예연구사였다. 입고 있는 건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을 기념해 만든 ‘정영선 가드닝수트’, 허리춤에 찬 장갑도 굿즈의 일부였다. 내 궁금증을 자극한 허리춤에서 짤랑거리던 것의 정체도 굿즈인 키링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머릿속에 짙게 남은 단어는 ‘피칭(pitching)’이었다. 조경을 전공한 내게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기도 했고, 이지회의 삶이 그의 표현처럼 피칭의 연속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가치 있는 것을 발굴하고 이를 조명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칭에 매력을 느끼도록 이목을 끄는 것 역시 중요하다. 개막 행사 때의 차림새 역시 그 자리를 찾은 관람객을 설득하는 피칭의 일종이었으리라. 예술은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발견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어제는 뭐했나요? 도록의 영문 교정을 봤어요.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이하 정영선 전) 전시 도록 출고를 위한 막판 작업을 진행 중이거든요. 도록이 출간되는군요. 어떤 형식의 도록인지 살짝 스포일러 해주세요. 단순한 자료집 형태는 아니에요. 전시 기간이 끝나면 그 안의 콘텐츠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이후에도 많은 연구자와 관련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계속 찾아볼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어 꽤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정영선 선생님이 그간 쓴 글도 모았고, 도록을 위한 대담회를 새로 열었어요. 민현식 건축가(건축사사무소 기오헌), 김종규 건축가(M.A.R.U.), 이진형 조경가(조경설계 서안)가 함께 나눈 대화가 실립니다. 정영선 선생님의 다양한 색과 측면을 볼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보통은 전시 개최만으로 학예연구사(이하 학예사 또는 큐레이터)의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후작업도 전시 준비만큼이나 중요한 것 같아요. 전시 기획부터 개최까지 어떠한 흐름으로 진행되는지 학예사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독립큐레이터로 일하던 때에는 비교적 자유로웠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입사 후에는 기관의 루틴을 따르게 됐어요. 전시 기획은 큐레이터의 발의로부터 시작돼요. 국현의 경우에는 일 년에 네 번 정기 회의를 열어 큐레이터의 전시 프로젝트 발의를 듣고 개최 여부를 검토해요. 정영선 전도 그렇게 시작됐죠. 피크닉에서 열린 ‘정원 만들기’(2021) 전시를 통해 정영선 선생님을 알게 됐는데, 나라면 그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었거든요. 상상을 구체화한 내용을 발의했죠. 어떤 성격의 전시냐에 따라 준비 방식이 다른데 아무래도 자료를 모으는 게 제일 먼저에요. 자료가 있어야 내용을 어떻게 묶을지 구조를 짤 수 있거든요. 어느 정도 틀이 잡히면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서사를 짜죠. 규모와 예산을 조정하고 일정을 계획하고 각종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 역시 학예사의 역할이에요. 정영선 선생님이 조경가는 ‘연결사’라고 말했는데, 큐레이터도 비슷한 면이 있어요. 미술관에는 전시 디자인, 작품 보존, 전시 운영, 장비 설치, 교육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있어요. 이 전문가들이 하나의 서사, 완결된 전시 형태를 만들 수 있게 긴밀하게 조율하고 이끄는 게 큐레이터의 역할이에요. ‘정원 만들기’ 전시가 이번 전시의 기획 계기라고 볼 수 있겠어요. 그때 정영선 선생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미 접하고 있었고, 제가 모르고 있던 것뿐이더라고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2014)에서 뷰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삼성미술관 플라토의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를 맡아 진행하며 조민석 건축가(매스스터디스) 작품을 다뤘거든요. 그때 매스스터디스 작품 크레딧에서 STL(조경설계 서안 영문 이름의 약자)과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이름을 자주 봤었어요. 건축을 전공했지만 조경은 잘 몰랐기에 ‘이 회사가 조경을 진행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죠. 알고 보니 조경설계 서안이 정영선 선생님이 이끄는 사무소였고, 디자인 스튜디오 loci는 정영선 선생님과 자주 협업하는 박승진 소장님의 조경설계사무소 이름이더라고요. ‘정원 만들기’ 전시를 본 시점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막 통과하고 있던 2021년이었어요. 정원과 가드닝을 주제로 한 전시가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만약 내가 국현에서 전시를 진행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 가볍게 상상해봤고, 정영선이라는 인물의 일생 자체를 조명할 만하다고 생각했죠. 2013년 이후 국현 서울관은 매년 원로 작가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어요. 대체로 남성 작가를 다뤄왔기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새로운 서사를 발굴할 만한 여성 작가를 적극적으로 찾게 되었어요. 그때 떠오른 게 정영선 선생님이었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많은 프로젝트를 설계했기에 많은 사람에게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죠. 코로나19 이후 플랜테리어가 유행하고 있었고 정원을 가까이하는 문화가 일반 대중은 물론 미술 애호가의 일상 깊숙이 들어왔다는 점도 중요 피칭 포인트로 작동했습니다. 이력을 보며 건축 관련 전시를 꽤 많이 진행했기에 배경이 궁금했어요. 건축을 전공했군요. 네. 좀 복잡합니다. 영국 런던의 골드스미스대학교에서 예술 비평을 공부했고,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건축 석사를 받았어요. 건축도 조경도 건조 환경(built environment)이라 부르잖아요. 정영선 전을 기획하면서 얄팍하게 알고 있었고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던 조경의 언어들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전공 모두를 살린 일을 하고 있는 셈이네요. 갑자기 전공을 바꾸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워낙 다양한 데 관심이 많아요. 어렸을 적부터 예술가를 꿈꿨어요. 예술가가 될 거라는 데 어떤 의심도 없었고, 서울예고를 다니며 서양화를 공부했어요. 2003년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시대적으로 작은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는 시기였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큰 혁신이 느껴지지 않아 갈급함을 느끼고 있었죠. 그러던 중 『로베르네 집』(장은아, 시공사, 2003)을 읽게 됐어요. 프랑스의 불법 점거 아틀리에에서 살고 있는 예술가의 삶을 그린 책이었는데, 보수적인 집에서 자란 저에게 ‘자유’ 그 자체로 다가왔죠. 어쩌면 그때부터 피칭하는 삶이 시작된 것 같네요. 부모님에게 프랑스로 제가 떠나야 하는 이유를 피칭했거든요. 국제화 시대고 영어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유로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프랑스에 도착한 뒤에는 각종 전시를 보고 갤러리를 찾아다니는 데 빠져 지냈어요. 유럽 사람들이 예술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목격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산업 체계에 감탄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 한국에 절대 돌아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화여대를 자퇴하고 그렇게 골드스미스에 입학하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입학해 공부하다 보니 또 다른 문제점이 보이더라고요. 예술품을 부유층이 향유하는 문화로 지탱되는 예술의 산업 구조가 어린 마음에 위선적으로 느껴졌어요. 반면 디자인은 예술 그 자체보다는 솔직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용자라는 명확한 클라이언트가 있는 산업이고, 실질적으로 사람의 삶에 변화를 빠르게 줄 수 있는 분야잖아요. 그렇게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의CCCP(Critical, Curatorial, and Conceptual Practices in Architecture) 프로그램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건축 비평, 출판, 큐레이팅, 전시, 글쓰기 및 리서치를 공부하는 곳인데, 1년에 열 명 남짓한 졸업생을 배출하는 소수 정예의 학과에요. 제가 세 번째 졸업생이죠.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바꾸게 된 이유가 있나요. 2015년 즈음 한국에서 예술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모습을 확인했어요. 해외에는 공공 펀드가 드물어요. 그래서 큐레이터의 업무 중 하나가 전시 자금을 확보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당시 한국에서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공공 사업이 많이 열렸고, 오히려 외국 작가들이 이를 쫓아 한국으로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걸 보고 “이제 아시아에 미래가 있다!” 하면서 돌아온 거죠(웃음). 정영선 전을 빼곡하게 채운 수많은 자료에 놀랐어요. 잡지를 편집하다 보면 생각보다 도면, 사진 등 자료를 모으는 데 애를 먹을 때가 많거든요. 자료 수집 과정이 궁금해졌습니다. 쉽진 않았어요. 모든 전시는 자료에서 시작돼요. 결과적으로는 전시는 관람객에게 볼 것을 제공해야 하고, 말뿐인 전시는 증거가 없는 허황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어요. 정영선 선생님이 활동해온 역사가 워낙 길다보니 2000년 이전의 자료는 아날로그 형태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본격적인 자료 수집을 위해 서안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지하실에서 살았어요. 자료 정리가 안 된 상태는 아니었는데, 프로젝트 별로 하나의 박스에 모든 자료가 담겨 있는 상황이었어요. 물난리가 몇 번 난 터라 자료에 곰팡이가 핀 경우도 많았고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싸우며 모든 자료를 한 장 한 장 다 펼쳐보고, 그 자료를 목록화해 엑셀 마스터 시트로 만들었죠. 업데이트를 끊임없이 계속했는데, 탭의 수만 해도 어마 어마했어요. 시트를 완성한 후에야 가치가 있다고 확신이 드는 자료를 추리는 단계에 들어갔죠. 다양한 지역의 프로젝트를 다룰 수 있도록 안배하고 공공적 성격과 상업적 성격의 프로젝트의 균형을 맞추는 데도 집중했어요. 특히 우리가 방문할 수 없는 사적인 공간을 다룰 경우, 충분히 예술성이 있는 장소인지를 끊임없이 검토했어요. 자료의 질 역시 중요한 고려사항이었습니다. 이 작업을 반복하며 프로젝트 목록을 계속 업데이트했고, 80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추릴 수 있었습니다. 골라낸 프로젝트에 서사를 부여해 묶기 시작하니 또 구멍들이 생기더라고요. 빈 곳을 메우는 작업에 돌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약 80개 기관에 공문을 보냈어요. 정영선 선생님과 협업한 모든 건축사무소에도 협조를 구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할 수 없는 자료가 있어 아쉽기도 했어요. 어떤 프로젝트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진가에게 다른 프로젝트의 사진을 갖고 있는지 묻는 등 알음알음 모은 자료가 많습니다.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연대기적 서사를 지양하고 작업의 주제와 성격에 따라 일곱 가지 묶음을 구성했어요. 이러한 방식이 “정영선이 강조하는 ‘지사地史적 맥락’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습니다. 2023년 12월 초에 모은 자료와 대략적으로 그린 전시 기획을 바탕으로 조경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라운드테이블 형식의 자문 회의를 열었었어요. 조경을 전공하지도 않았거니와 조경이라는 분야를 국현에서 처음 다루다 보니 염려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건축을 전공하고 시각예술을 다루는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바라본 조경이 실제 조경가가 생각하는 조경과 괴리가 있으면 안 되니 일찍 매를 맞자라는 마음가짐이었죠. 사실 전시 기획 초기 단계에서는 이런 전시 구성이 좋은 호응을 얻진 못했어요. 저는 비슷한 주제와 성격의 프로젝트가 응집되어 그 특징과 서사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시간 순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정영선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인생과 맞물려 흘러가는 작품의 서사가 있었던 거죠. 큐레이터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전시가 조명하려는 인물 그 자체잖아요. 그래서 어떤 구성이 더 맞는지 거듭 검토했죠. 효과적인 피칭 방식을 고민하기도 했어요. “정영선 선생님은 아날로그 형태의 자료에 더 익숙하니 전시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물리적 자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한 분의 조언이 도움이 됐죠. 그동안은 미술관도 ESG 운영을 강조하다 보니 디지털 자료로 전시 기획 설명을 해드리곤 했거든요. 정영선 선생님을 위해 전시 소주제를 담은 글을 크게 인쇄해서 뽑아갔어요. 가장 큰 효과를 낸 건 모형이었어요. 전시 공간의 10분의 1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보여드렸죠. 모형을 만들어 보니 조각들의 모음으로 느껴졌던 전시가 한눈에 읽히더라고요. 정영선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날 피칭이 끝난 후 전화를 주셨어요. 고마운 사람이라며 그간 오해해서 미안하고 내 인생을 이렇게 잘 이야기해주는 전시가 없다는 말씀을 전하셨죠.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이런 말씀을 하는 일이 쉽지 않는데 마음이 일렁이더라고요. 보통 개인전을 진행하다 보면 작가분과 일종의 애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정영선 선생님에게는 존경심만 남았습니다. 정영선 선생님은 “조경은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생동하는 모든 것을 재료 삼는 종합과학예술”이라고 정의했어요. 과학과 예술의 접목만으로도 복잡한데 이를 통해 생명을 이야기해야 하다니 늘 설명하기 어려운 학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칫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본래의 뜻이 흐려질 수 있고요. 그만큼 전시의 방향을 잡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국현 내부에서도 왜 조경을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요. 현대미술이 다양한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건 ‘개념’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잘 그린 기술적인 그림을 찬양하던 시대에서 마르셀 뒤샹의 등장을 기점으로 작품에 담긴 생각을 중요시하게 됐잖아요.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게 현대미술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조경도 다른 시각예술 장르처럼 자신의 의도를 실제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현대미술로 다룰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과학, 예술, 생명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보다 조경 작품에 담긴 의도를 잘 보여주는 방향을 택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요. 예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생각의 외연을 확장하게 만드는 겁니다. 조경은 클라이언트가 있는 디자인 서비스지만, 저자성을 갖고 사람들과 충분한 소통을 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삶과 굉장히 밀접해 사람들의 삶을 굉장히 많이 바꾸고 있어요. 정영선 선생님의 광화문광장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이 그곳에 모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광화문광장은 보행로와 도로의 높이를 거의 비슷하게 만들면서 ‘비움의 미’를 담았어요. 어찌 보면 간결한 디자인 언어인데 그 여파가 대단하고요. 전시 기획 역시 일종의 공간 설계가 아닌가 싶어요. 조경의 정의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결국 그 결과물은 장소로 드러나죠. ‘공간’이 아닌 ‘장소’이기에 도면이나 사진, 작게 축소한 모형만으로는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어요.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나요. 건축 전시를 진행하며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이네요. 건축 전시라는 게 실제 건축은 다른 장소에 있지만 그것을 전시장에 재현하는 일이죠. 그래서 재현이라는 행위 자체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실제 건축을 경험하는 것과는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 늘 고민합니다. 전시 행위 자체도 건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다른 예술 분야처럼 건축의 핵심도 결국 아이디어에 있으니, 이 아이디어를 전시라는 매체로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골몰합니다. 조경 전시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여러 프로젝트의 이미지, 텍스트, 기술적인 드로잉을 모은 묶음들이 실제 공간을 경험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조경가의 의도와 생각을 보여줄 수도 있는 거죠. 방지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바닥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안 사무소에서 가져온 자료를 추리기 위해 미술관 수장고 바닥에 쫙 깔아놓은 적이 있어요. 그 양이 워낙 방대하니 정말 넓게 펼쳐져 있었거든요. 그 장면을 본 전시 공간 디자인을 맡은 김용주 기획관이 “이 자체가 전시다”라 말한 게 바닥장 아이디어의 출발이었어요. 정영선 선생님이 조경을 시작할 때 땅을 읽는 행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떠올랐죠. 전시물을 바닥에 놓는다면, 풀 한 포기를 직접 심고 몸을 수그리며 땅을 겸손하게 대하는 태도를 관람객에게서도 이끌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닥장을 사용하고자 한 전시 디자이너의 안은 협소한 전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묘책이었어요. 자료를 충분히 담을 수 있고 육안으로 자료를 확인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바닥장의 크기와 깊이를 조정한 것으로 압니다. 보행로와 휠체어 사용자의 동선, 바닥에 앉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테이블장의 위치 등을 고려해 바닥장을 설치한 거죠. 정영선 선생님이 아모레퍼시픽 사옥에서 활용한 방지를 보면서 전통 정원에서 가져온 요소를 이토록 현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구나 생각했는데, 화이트 큐브인 이 전시장에도 방지를 닮은 바닥장이 참 잘 어울리더라고요. 긍정적인 반응만 있던 건 아니었어요. 자료를 발로 밟는다는 사실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정영선 선생님의 작업 특징은 자연주의 정원인데 그리드 형태의 바닥장이 딱딱하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의견을 일부 수용해 본래 같은 크기로 계획했던 식물 사진들을 이용해 변주를 주었어요. 벽면에 크기가 각기 다른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그리드의 경직성이 누그러지는 효과가 나더라고요. ‘워치 앤 칠’ 시리즈를 흥미롭게 봤어요. 세계 최초 구독형 아트 스트리밍 플랫폼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미디어 매체의 변화가 전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미래의 미술관과 전시는 어떤 형태로 바뀌어나갈 거라고 생각하나요. 어쩌면 공간을 체험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VR일 텐데 이번 전시에서 쓰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어떤 매체를 사용하느냐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뤄야 하는 작업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식이 VR이라면 쓰지 않을 필요가 없겠죠. 아직까지는 VR에 대한 확신도, 어떤 판단도 없는 상태에요. VR 자체가 워낙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워치 앤 칠’은 국현의 소장품 위주로 구성한 전시였고, 목적이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교류가 소원해진 상황을 타파할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기존에 VR 작품이 있어 전시를 해두었고, 모든 사람이 VR 기기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 휴대폰처럼 좀 더 접근성이 좋은 매체를 이용해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게 했죠. 사실 저는 온라인 플랫폼 자체도 건축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디지털 공간을 인포메이션 아키텍처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온라인 플랫폼은 여러 정보가 오가고, 사람들이 교류를 하는 장소이며, 상호 작용이 오가는 경험이 이루어진다는 점도 건축과 닮았어요. 누군가는 제 발자취를 보면 여러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전시, 건축, 조경이 하나의 맥락에 놓여 있다고 느낍니다. 전시의 일환으로 전시마당과 종친부마당에 정원을 조성했죠. 정원과 조경을 동의어로 읽을 수 없기에 했던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국현 서울관에서 하는 원로 작가 개인전에서는 항상 커미션 작업을 선보여요. 동시대적 이슈를 담은 새로운 작업을 부탁하곤 하죠. 작년 말에 진행한 자문 라운드 테이블에서 한 조경가가 의미 있는 의견을 던졌어요. 정영선 전이 할머니 전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였죠. 정영선 선생님은 미래지향적인 사람이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동시대적 이슈를 조경으로 말해왔거든요. 그래서 이를테면 MZ세대 관람객들이 와서 작품을 보다가 알고 보니 할머니의 작업이었네 하고 놀라기를 바랐습니다. 전시 첫 번째 파트 제목이 ‘지속가능한 역사 쓰기’인데 일부러 고집한 이름이에요. 지속가능하다는 말이 우리 세대에게는 익숙한 언어지만, 생각보다 20세기를 살아온 세대에겐 낯선 표현일 수 있죠. 그렇지만 이 파트가 반드시 첫 번째 순서가 되기를 바랐어요. 정영선 선생님 세대와 미래 세대를 잇는 교각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정원도 일종의 연결 다리에요. 실제 다른 장소에 있는 정영선 선생님의 조경 작품과 전시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전시장에서 본 정영선 선생님의 아이디어, 구상, 청사진을 비롯한 여러 기록과 실제 정원 사이에서 유기적 작용이 일어날 거라 기대했어요. 전시장을 둘러보기 전 만났던 정원과 전시를 둘러보고 만난 정원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게 분명하거든요. 그래서 다른 장소는 몰라도 전시마당에는 꼭 정영선 선생님의 새 정원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또 ‘정원의 재발견’이라는 파트를 꽤 고심해서 구성했습니다. 정영선 선생님의 많은 작품 중 희원이 큰 분기점이에요. 이전에는 대부분 국가주도 사업을 통해 도시 경관을 만들며 땅의 맥락을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면, 희원은 전통 정원의 요소를 마음껏 실험해본 정영선 선생님의 숙원 사업이었죠. 희원을 필두로 정원이 조경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을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전시마당이 워낙 음지라 잔디를 심어도 자꾸 죽었는데, 이제 늘 푸릇푸릇할 것 같아 기대가 돼요. 전시마당의 정원이 전시와 상호 작용을 하는 곳이라면, 종친부마당 정원은 그 장소 자체가 가진 의미가 많은 공간이에요. 넓은 잔디밭 너머로는 인왕산의 풍경이, 종친부, 옛 기무사, 현대건축물까지 여러 시간성이 교차하죠. 인근 도서관에서 이곳이 내려다보이기도 하고요. 어떤 요구도 없이 정영선 선생님에게 완벽하게 맡겼는데, 차경, 땅의 맥락의 연결, 자생종 등 전시에서 정영선 선생님이 한 이야기가 그대로 담긴 채 눈앞에 구현되어 있었죠. 아카이브 형태의 전시뿐 아니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굉장히 뿌듯합니다. 건축을 화이트 큐브 안으로 옮겨오는 것과 조경을 화이트 큐브 안으로 옮겨오는 작업에 차이가 있던가요. 차이점을 이야기하려면 좀 더 조경 전시를 많이 진행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건축 도면을 보는 데 굉장히 익숙한 사람인데, 이번 전시를 통해 도면 바깥을 살피는 시각을 열게 됐어요. 제주 오설록 이니스프리의 경우, 이전에는 건물 하나하나의 요소를 봤었는데 정영선 전을 진행하면서는 전체 부지, 건물과 녹차밭의 관계, 길과의 연결성을 보게 되더라고요. 조경 도면이나 드로잉이 지닌 미술 콘텐츠로서의 가치는 어떤지 알고 싶어요. 식생의 기호가 굉장히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조경가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도면들인데, 저는 참 예쁘게 느껴서 전시장에서 이 도면들을 꼭 넘겨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기술적인 도면에서도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청사진들은 풍경화처럼 보였어요. 휘닉스파크 도면이 기억나는데, 트레이싱지에 색색의 파스텔로 그린 도면들이 겹겹이 쌓이며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미술 작품으로서도 충분한 가치를 가진 걸로 보였습니다. 설계 개념을 보여주기 위해 크레파스로 거칠게 그린 두내원 스케치는 그저 예술 작품 같았어요. 스스로 정의하는 학예연구사라는 직업이 궁금합니다. 자신만의 큐레이팅 방식, 추구하는 정체성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큰 방향성이나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 같진 않아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어떤 기회를 만날 때 최상의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고민을 깊게 하는 편입니다. 국현에서 일한 지 8년째에 접어들었는데, 기관이 해야 하는 일이 분명히 있고 가져야 하는 무게감이 있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이 시점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는 편이에요. 또 협업에 대해 열린 마음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워낙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여러 전문가가 서로 연결되어 각 전문 분야가 오롯이 잘 드러날 때 전시가 가장 빛을 낸다고 생각해요. 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 혼자의 생각에 고립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거듭 테스트하려고 노력해요. 관객이라는 새로운 타자에게 울림을 주려면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니 그 객관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추구한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워치 앤 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9개 도시의 큐레이터와 협업을 했었어요. 그때 논의했던 게 탈중앙화 전시 기획 방식이었습니다. 저자권(authorship)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유연하게 연결하면 그 시너지 효과가 어마어마해요. 더 나이가 들더라도 고집부리지 않고 여러 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획자가 되고 싶어요. 전시를 기획하면서 참고한 책이나 자료 등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영선이 궁금한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자료로 소개해주세요. 우선 정영선 전 전시 도록을 소개해드리고 싶네요(웃음). 도록에 ‘더 읽을 거리’라는 파트를 만들어 전시를 준비하며 참고했던 모든 텍스트 목록을 다 정리해놓았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수면 아래에 있던 서사를 끌어내 오늘날의 시점으로 다시 썼다고 볼 수 있거든요. 또 무작위로 흩어져 있던 자료를 하나로 모으기도 했고요. 전시가 끝났다고 이것들이 다시 물 아래로 가라앉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전시는 시작일 뿐이고 이후에 더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해요. 이 도록이 다양한 후발 연구의 플랫폼이 되기를 바랍니다. 코넬리아 오벌랜더Cornelia Oberlander라는 캐나다 조경가가 있는데, 놀이터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캐나다의 모던 아키텍처와 함께 성장했고, 많은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정영선 선생님보다 연세는 많지만 여성이라는 점도 그렇고 비슷한 점이 좀 보였어요. 그의 작품 중 놀이터에 주목한 책인 『Cornelia Hahn Oberlander on Pedagogical Playgrounds』(Concordia University Press, 2023)를 도록 제작 과정에서 참고하기도 했어요. 이지회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연구사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2024),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워치 앤 칠’과 연계 국제 순회전(2021~2023) 등을 기획했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새로운 유라시아 프로젝트’(2015~2017) 큐레이터, 2014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한국관의 부큐레이터로 활동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HLD 디자인을 통한 주창과 혁신
    사상 공유 구역 HLD 조경이란 안녕하세요. 사상 공유 구역 HLD는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열네 명의 사람이 모여서 벌이는 사회 실험이자 본격 조경 서바이벌입니다. 『환경과조경』 원고 마감 4일 전, 참가자 전원은 조경과 관련된 사전 테스트에 참여했습니다. · 조경설계의 꽃은 식재 설계다. · 사회에서 조경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 회사 운영에 도움이 된다면 조금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도 수주해야 한다. · 공원 BF 인증 의무화는 이동 약자를 위한 당연한 조치이므로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 · 번아웃을 호소하는 사람은 사실 엄살인 경우가 많다. (등 총 72문항) 테스트는 네 개 차원에 대한 참가자의 점수를 측정하며 각각 역할, 관점, 재능, 변화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테스트 뒤 익명 채팅을 통해 선택만으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을 좀 더 들어보았습니다. 역할: 넓파 vs. 깊파 ‘역할’ 차원은 조경이라는 분야의 역할에 대한 범위를 측정합니다. ‘조경가는 식물 전문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계획적, 도시적 역할의 넓은 조경을 지향할수록 ‘넓파’,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는 공간으로서 조경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정원 중심의 깊은 조경을 지향할수록 ‘깊파’로 분류됩니다. “학교에서 넓게 배웠는데 나와 보니 좁다.” “제가 ‘조경가’로 불리는 게 맞나 싶고, 마찬가지로 HLD가 정확히 조경 회사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조경가가 식물을 몰라도 되는 건 아니지만 식물 전문가 취급 받는 것에 경계심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사실 식물이나 생태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문제에요. 정원이나 생태를 다루는 분들이 자주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음……. 나는 넓고 깊다.” 관점: 과학파 vs. 예술파 ‘관점’ 차원은 조경이 하는 일의 성격에 대한 전반적 태도를 측정합니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에 따른 산물이라고 생각할수록 ‘과학파’,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수록 ‘예술파’로 분류됩니다. “조경이 예술에 가깝다고 느끼는 이유: 디자인할 때는 철저하게 계산하고 많은 숫자에 기초해서 만들지만 결과물은 유기적인 예술품 같아서.” “순수 예술과는 분명히 다른 면이 있지만 그래도 어느 쪽이냐 하면 표현이 차지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설계했는가를 항상 논리적으로 답할 수 있지 않음.” “실시도면을 그릴 때 1mm 단위까지 신경 쓰는 거 보면 인공 위성 만드는 과학자나 공학자 같은데, 비율이나 비례, 조형적인 아름다움도 엄청 신경 쓰는 거 보면 예술가 같음. 조형미나 비례는 감이나 느낌에 의지할 때도 있기 때문.”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이라고 하면 좀 더 말이 될 것 같아요.” “못생긴 게 싫긴 함.” “예술은 메시지를 던지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고, 과학은 설정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목적을 둔다는 점이 차이라고 봐요. 특히 공공 프로젝트인 경우 과학적 설계안이 설득력 있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더 다양한 유형의 ‘예술적’ 공공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A 플랜이 좋은 공간이 좋은 건가, 공간이 결과적으로 좋아야 하는 건가 이야기해보고 싶다. B 오호. B 대치유수지 공원 생각나요. C 교수님이 플랜이 좋은 공간이 실제로도 좋은 공간이라고 가르쳐주셨어요. 그땐 그렇구나 했는데,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다 생각해요. D 스마트폰을 만들 때 논리를 아주 무시하고 설계할 수 없듯이 결국 사람이 쓰는 것이라면 인체 자체나 감각적인 부분을 뒷받침해주는 논리가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온전히 한쪽만으로는 설명 불가하다고 봅니다. B 유수지 가면 늘 진짜 좋은데 플랜만 봤다면 꽤 유치해보일 수도 있겠다는 얘기가 돌았었음. D 이걸 답하려면 좋은 공간의 정의부터 나와야 해요. A 좋은 공간이란? C 공간을 채운 요소의 퀄리티가 좋아서, 아님 단순히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서, 좋은 공간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는 듯해요. C 좋은 (외부) 공간의 경우 다시 오고 싶고, 다른 계절이나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싶은가로 가늠하기도 합니다. E 좋은 공간은 아주 많은 것에 관여를 받죠. 적당한 사람, 좋은 날씨와 빛 그림자 등. 좋은 공간이라고 느끼게 하는 건 아주 지극히 개인적일 거라 생각이 듭니다만. 조경설계를 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공간은 바로! B 바로 바로! E 어떻게 생긴 그릇이냐인데. 도시냐 시골이냐 자연 옆이냐 건물 주변이냐에 따라 아주 다양한 의견이 나오겠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요. I 플랜이 좋은 것은, 공간이 평면상에서 이해하기 쉽다? 아니면 설계자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 E 짜임새 있는 공간 구조. 즉 평면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D 근데 좋은 공간이라는 게 엄청 불편하고 식재 하나 없어도 메모리얼처럼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공간인 걸 인지하고, 그걸 잘하면 좋은 공간이 되기도 하잖아요? E 공간을 설계할 때 몇 명이 이용하느냐 누가 이용하느냐 어떤 문화적 주제가 필요하냐 등 다양한 조건에 부합해야 하는데, 그것을 3D 기반으로 설계하기는 어렵죠. 설계는 평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D 그래서 물리적 공간 요소랑 플랜으로 대응되는 공간 주제 전 달력은 필수불가분이죠. E 본질이 평면이기에 평면이 좋아야 모든 설계는 납득이 됩니다. F 좋은 플랜이라고 꼭 공간이 좋진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반대로 좋은 공간은 플랜도 어느 정도 좋을 거라는 생각. D 본질이 평면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ㅋㅋㅋ A 저는 단순하게 물이 흐르는데 옆에 수초도 있고 나무도 있고 그늘도 있는데 오리도 있고 이런 곳이 너무 좋다 이러고 있었음 → 생태적으로 나름 건강한 곳. F 공간이 좋다는 건, 조성된 목적의 제 기능을 하는 것? 외부 공간에 집중해서 말하는 거라면 아무래도 외부라는 강점을 잘 살려서 계절, 날씨, 시간대에 따라 갈 때마다 변화하는 곳이 매력적인 거 같아요. G 좋은 (설계된) 공간이란 자연환경을 포함한 대상지의 특성이나 환경을 풍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인 거 같아요. A 대상지의 역사 같은 것을 잘 살리면 좋은 설계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고유한 것은 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토리를 좋아해서? B 재미있는 주제. D 저는 설계자가 준 기능보다 경험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가 되었건 직관적으로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는 공간이 좋은 공간인 것 같아요. C 공간 조성의 목적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단순함이 미덕인 공간이라면 목적을 달성했느냐에 따라 좋은 공간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A 어린이 놀이터에서는 특히 더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D 조경이 본래 땅을 제외하곤 이야기할 수 없는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전 사람들이 이 땅을 어떻게 썼는지 또는 바라봤는지에 대한 축적된 고민을 학습할 수 있어서 정도인 것 같은데요. B 역사 길 만들기, 남아 있지 않은 역사를 물리적으로 억지로 이어붙이는 작업 같아 공간 경험자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어요. C 표현의 영역이라고 답한 것에 연장이긴 한데 부지의 히스토리는 표현의 모티브, 인스퍼레이션으로 기댈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봐요. A 옛것이 있을 때 뭔가 시간이 더 깊게 느껴져서 잠시 흥미로운 점은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다 새것으로만 만들었을 때보다 뭔가 더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된달까? 재능: 타고난 자 vs. 노력파 ‘재능’ 차원은 설계/계획에 대한 교육 및 타고난 능력을 측정합니다. 타고난 감각이 있거나 어린 시절부터 설계적으로 보고 배울 것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 ‘타고난 자’, 후천적인 노력이 좀 더 중요했던 경우 ‘노력파’로 분류됩니다. A HLD는 내가 아는 다른 설계사와 어떤 점이 다른지? C 집요함? H intensive work hours B 술을 강권(?)하지 않는다는 것이 단순하지만 여러 측면을 보여주는 듯. A 오 요새 술 강권하는 회사도 있나요? I 분업화를 추구하지 않는 것, like… 실시/계획 팀 나누기 / CG 하는 사람은 CG 특화시키기 / 캐드의 신 만들기 이런 것. A 분업화 원해요? I 저는 다양성과 밸런스를 추구합니다. C 미 투. 이건 확실히 효율적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팀원 개개인에게 좋은 방향은 아닌듯 합니다. 스페셜티 영역을 가진 제너럴리스트. I 조용하다? I 똑똑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에 5점 주신 분은 얼마나 자주 듣는지 궁금해요. H 자기 자신한테 똑똑하다고 칭찬해주는 것도 포함!?? I 매일 아침 나는 똑똑하다 삼창하면 인정. H 나 오늘 참 잘했어~ 변화: 개혁파 vs. 보수파 ‘변화’ 차원은 설계 일반의 관습에 대한 태도를 측정합니다. 지금 당장 달라져야 한다에 동의할수록 ‘개혁파’,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수록 ‘보수파’로 분류됩니다. “BF 인증, 좀 더 공부해보고 싶은 영역입니다. 장애학을 공부하는 건축가와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인증제 때문에 힘들다 하면서도, 별개로 장애 당사자의 경험을 공간 설계자로서 얼마나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도 하더라고요.” “BF 인증 기준 만들 때 설계자들이 손 놓고 있었다는 건 맞는 말인 듯. 반성할 부분이 분명 있어요.” “지금의 프로젝트 입찰 방식은 실력 있는 조경가를 선정하는 데 문제가 많다. 어떻게 바꿔야하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 * 설문과 익명 채팅 등의 형식은 웨이브(wavve)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를 참고했다. 유 노 HLD HLD 회사 이름의 시작은 이호영, 이해인의 영문 이니셜에서 따왔다. SWA의 S가 히데오 사사키Hideo Sasaki이고 W가 피터 워커Peter Walker라는 사실을 SWA를 볼때마다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HLD가 창업자 두 명에 대한 것보다는 그냥 고유명사로 불리기를 바라면서 지은 이름이다. 하이 랜드스케이프 디자인(High) (또는 High-end) Landscape Design, 하버드 랜드스케이프 디자인(Harvard Landscape Design)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고밀도 지단백질(High Density Lipoprotein)을 뜻하는 HDL로 오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괜찮다. 미션 스테이트먼트(mission statement) 창립 몇 달 이내에 홈페이지에 소개 글이 필요해 부랴부랴 우리 회사의 생각을 적었던 것이 아래의 글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어를 직역한 글 같아 어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글솜씨 문제를 빼고는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HLD의 태도를 잘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회사다. HLD의 디자인은 다양한 공간적 문제와 사회적 도전 과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핵심적 개입’을 제공한다. 핵심적 개입이란 물리적 측면 또는 운영 전략상 대상지의 잠재력을 발현할 연결고리를 찾아냄으로써 긍정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는 설계적 장치를 의미한다. ‘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우리의 설계는 시작된다. 우리는 피상적인 외관 개선이나 장식, 스타일 입히기를 지양한다. HLD의 핵심적 개입은 전통적인 조경설계의 범위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분석을 활용한다. 조경가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 그리고 대상지의 맥락에 대한 존중을 통해 촉각적 표현부터 지역적 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아이디어를 구현한다. HLD는 모든 스케일의 프로젝트에서 환경적,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근본적 접근을 추구한다.” 슬로건: advocacy & innovation by design 면접을 볼 때, ‘크리티컬 인터벤션(critical intervention)’에 크게 공감했다는 지원자를 많이 만났다. 하지만 실제로는 2017~2018년 즈음 로고를 새로 디자인하며 만든 ‘디자인을 통한 주창과 혁신(advocacy & innovation by design)’이라는 슬로건이 좀 더 명백하게 HLD의 목표와 개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이 슬로건에 대해 이야기한 지원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은 조금 의외다. (advocacy)는 주창이라고 번역한다. 특정 사회적 목표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어떤 아이디어나 정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추진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쓴 말이라서, 주장이나 옹호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혁신(innovation)도 변화나 발전, 개선보다 더 새로운 방식을 통해 더 큰 파급 효과를 주기 위해 고른 단어다. 업태: 조경설계, 학술 연구 + 사업자등록 상 업태는 조경설계와 학술 연구이긴 하지만, 2019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고 ‘creative design practices of nearly all kinds거의 모든 종류의 창의적 디자인 작업’라는 설명을 붙이면서, 단순히 명함에 플래닝(planning)이 들어가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역할을 협의의 조경 분야에 가두어 놓지 않겠다는 점을 더 분명하게 드러냈다. 특장점 HLD의 홍보 브로셔에는 네 가지를 HLD의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1) 질문 재정의하기(reframing the question). 단순히 주어진 공간을 좋게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주어진 질문을 재정의하고 사회적 가치를 더 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2) 디테일에 신경을 쓴 독특하고 새로운 디자인(uniquely new design with attention to details).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디자인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며 이를 뒷받침할 디테일에 애쓴다. 3) 세계 최고 수준의 퀄리티를 위한 최첨단 프로세스(cutting-edge process for world class quality). 세계적 수준의 결과물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협력, 신기술 도입을 통해 최선을 다한다. 4) 사고의 도구로서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as a thinking tool). 커뮤니케이션을 사고의 도구로 활용해 좋은 디자인 결정을 돕기 위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HLD 문화 HLD의 지향점이 무엇이냐 하는 측면에서는 분명 두 대표의 생각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HLD의 개성을 구성하는 것은 역시 다양한 구성원과 이들이 만들어온 문화다. 글 이해인 대표 HLD는 어떤 점이 다른가 디자이너로부터 HLD는 신입 디자이너 또는 인턴이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단순히 지시를 받고 주어진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능동적 자세로 프로젝트에 임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전략 도출에서 설계안 작성까지의 과정에서 초기에 수행한 조사 분석과 이를 통해 도출한 생각을 계속 활용한다. 이러한 바텀 업bottom up 방식을 통해 디자이너의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활용하고 개인이 좀 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한다. 이는 설계 능력을 한층 성장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HLD에 입사하면 받는 직책이 디자이너 인 이유다. 공정 경쟁 가끔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리더가 모든 설계안을 결정짓지 않고 다양한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 내부 디자인 공모를 진행한다. 모두가 하나의 프로젝트에 쓰일지 안 쓰일지 모르는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은 회사로서는 큰 투자다. 보통 짧게는 두어 시간, 길게는 반나절 정도 시간을 주고 전 직원이 글, 3D 모델, 모형, 스케치 등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뭐라도 만든다. 발표 시간은 달랑 1분, 질의 응답 시간도 1분만 주어진다. 투표로 당선작을 선정하면 정말 그 안을 기반으로 설계안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상품을 준다. 이기면 좋고, 안 이겨도 나쁘지 않다. 모형 만들기 HLD 설계가 단숨에 그려지는 몇 개의 선으로 결정되는 일은 드물다. 단숨에 많은 것을 확정짓지 않고 다지고 또 다진다. 평면 또는 3D 모델(라이노) 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1대100, 1대 50, 1대1 스케일의 모형을 만들어 함께 검토하고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 나간다. 효율적으로만 일하려고 한다면 맞지 않는 방식이겠지만, 실시설계 진행 중에도 필요한 검증은 한다. 시간과의 싸움으로 피로할 수 있으나, 최선이자 최고의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다. 공감대 형성 어쩌면 이러한 설계 과정과 결론 도출은 발주처를 설득하기 위해서라기보다 HLD 구성원들이 함께 공감하고 그 공감대를 기반으로 설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바탕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구성원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이 합을 이루어 주창하고 혁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HLD를 특별하게 만드는 철학 아닐까. 글 김주환 소장 집요함의 형태 내가 생각하는 HLD의 디자인 철학은 집요함이다. 어떤 공간에 대해 가장 효과적이고 적합한 설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끊임없이 설득하는 과정을 보며, 좋은 디자인에 대한 집요함이 HLD를 여기까지 이끌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리조트 프로젝트의 보고를 불과 며칠 앞두고 아무래도 발표 자료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며 소장님이 모형 제작을 부탁했다. 뷰를 보여주는 조감도와 다이어그램만으로는 클라이언트가 지형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료만 잘 마무리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인력도 부족한데 이게 현명한 일일까 의구심이 든 게 사실이지만, 결국 모형은 미팅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모형을 만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지형 설계와 동선 연결, 공간감 등이 이미지를 통한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도 있고, 디자이너가 스스로 주장하는 바에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기도 한다. HLD는 뷰, 다이어그램, 모형, 스케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장 이상적이고 적합한 설계를 이해시키고 관철하려 노력하는 집단이다. 고된 것 같더라도 좋은 설계와 좋은 공간을 실현하기 위해 집요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HLD다. 만약 노력하는 자신을 향해 주변이 던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돼?’ 라는 말에 좌절해 본 사람이라면 이곳으로 와 합류하길. 글 김윤하 팀장 평화를 빕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대부분 무계획 답사와 킥오프 미팅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회의가 시작되면 각자 답사를 통해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관점으로 프로젝트에 다가가야 의미 있는 설계가 나올 것인지에 대해 ‘아무 말 토론’이 펼쳐진다. 토론에서는 섬세한 대상지의 역사와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꽃과 풀과 새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대상지와 인근의 산업이나 경제적 특장점에 대한 논의도 있으며,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지만 나름 통찰력 있는 연관 주제에 대한 ‘외침’도 있고, 언제 공부한 건지 체계적인 공간 해부를 통해 이미 도출해버린 로드맵도 있다. 회의는 종종 산으로 간다. 다가오는 인구 절벽과 AI와 에너지 위기와 이상 고온 시대 속 조경의 의미를 지나 국내 조경 저변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와 함께 지속가능한 따릉이 출근에 대한 찬사를 거친 다음에야 한 단락 마무리 짓기 일쑤다. 물론 결론은커녕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한 채 쉼표도 없어 읽기조차 어지러운 회의록만 남기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 말 토론의 결과물이 생산적일 거라고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도, HLD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 과정을 겪어낸다. 좋은 설계에 욕심이 많기에 그렇다. 대상지가 가지고 있는 맥락을 모르고 답을 내릴 수 없다. 예쁜 공간만 만드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도시의 변화를 수용하는 공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 사회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수반한 지속가능하고 생태적인 시스템으로 변화를 이끄는 메시지를 전달하길 바란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넘어서서, 공간의 역사, 사회, 맥락과 자생 수종 분석 등 지금 당장 꼭 필요해 보이지 않는 주제에 대한 연구와 토론과 같은 ‘군불’을 늘 지피는 것이 HLD의 설계에 필요한 이유다. 그러니 HLD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기면 어김없이 즐겁게 새로운 군불을 땐다. 사실 이 과정에서 남들이 이걸 쓸모 있다 없다, 또는 효율적이다 아니다라 평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조경에 대한 좁은 인식이 바뀌어서 우리가 하는 가치 있는 일이 조금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HLD에서 일하는 것은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다.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치매 예방에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글 이정빈 실장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회사로,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설계 및 계획, 학술 연구와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이호영·이해인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송파의 두 공원
    에피소드 1. 보조 바퀴 떼던 날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다 채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시험지를 옆구리에 끼고 동네 카페에 앉았다. 사방팔방에서 정신을 두들겨 깨우는 진한 커피를 마시다 문득 생각이 난다.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따릉이가 보여서일까. 내 첫 ‘두발자전거’의 기억이다. 아직은 보조 바퀴에 의지해 동네를 오가던 시절, 어느 햇빛 좋은 일요일 오후. 내 자전거에서 보조 바퀴를 떼어내고 본연의 모습인 ‘삼천리 (두발) 자전거’를 타게 만들겠다는 의지의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끌고 ‘올림픽 프라자’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그 당시 올림픽공원은 멀다고 느껴졌었다. 아마 필자를 비롯한 동네 꼬마와 청소년에게 이곳 올림픽 프라자가 사실상의 어린이 체육공원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희한하게도 이 동네 상점가의 프라자조차도 거대한 광장, 오픈스페이스였다고 기억된다. 어릴 때라 모든 것이 크게 느껴졌다고 하기에는 팔다리의 길이적 변화가 크지 않으니 그저 성장에 따라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프라자 한복판, 당시 막 서울에 들어왔던 (그리고 얼마 후 문을 닫은) 파파이스 앞에서 굳은 얼굴로 자전거에 올라탔다. “아빠, 손 놓으면 안 돼요.” “어, 절대 안 놓을게.” “아빠, 진짜 손 놓지 마요.” “안 놓는다니까.” “진짜 놓으면 안 돼요!” “걱정하지 말래도!”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눈치챘겠지만, 우리 아버지는 이미 양손을 놓고 뒷짐을 진 채로 바퀴를 굴려 멀어져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게 프라자를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앞에서 허허 웃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던 그때 느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길로 바로 횡단보도를 건너며 함께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튜토리얼 끝. 이제 실전만이 남았다. 기세가 있을 때 완전히 익숙해져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지론이었기에, 무서움이 남아 있는 채로 침을 꿀꺽 삼키고 그 뒤를 따랐다. 차마 무섭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초등학생 시절이었기에(각주 1) 걱정을 속으로 삼키며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앞에 도착했다. 너무 힘을 꽉 주어 핏줄이 선 손으로 핸들을 부여잡고 크게 바퀴를 굴렸다. 우리도 공원이 있다? 올림픽공원 올림픽공원 이야기에는 필수적으로 88 서울올림픽에 관한 이야기가 동반된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Baden-Baden)에서 밀레니얼 직전, 소위 X세대를 비롯한 윗세대 한국인들에게 중요했던 순간. 제84차 IOC 총회에서 서울이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1988년 여름 올림픽대회 개최지로 선정됐던, 옛날 뉴스 영상 짤에서나 본 그 장면이다. 1981년 발표를 시작으로 몇 년에 걸쳐 서울시의 도시 조직과 녹지 계획이 급변한다. 발표 직후 ‘올림픽새마을 7개년 종합계획’이 발표됐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새마을운동의 도시미화 버전이다. 대회가 코앞에 도달한 1985년에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 서울시지부 주관으로 ‘범시민 손님맞이 및 도시공원화 새마을운동촉진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때 서울시는 친절함, 질서정연함을 시민들에게 요구하며 ‘아름답고 깨끗하게 가꿔진 서울의 참모습’을 외국에 보여주자는 내용을 역설했다.(각주 2) 아마 이 시기에 학교를 다니거나 전문 직군에 종사한 분이라면 직간접적으로 이 올림픽 열기에 동원됐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전반적으로 도시미화, 도시공원화, 건강도시 등의 슬로건이 혼합적으로 활용된 시기였음이 드러난다. 자연스럽게 겹쳐 떠오르는 시기가 있다. 바로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문턱에서 영미권을 강타했던 ‘도시미화’ 이론이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도시가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에서 비롯된다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많이 접해본 내용이다. 1982년 7월 올림픽공원 조성계획이, 이어서 9월에는 한강종합개발 시행계획이 발표됐다. 이듬해에 올림픽공원 조성에 착공하고 국립경기장 단지의 계획에 대한 현상공모와 설계 용역이 진행됐다.3 저수로 정비나 올림픽대로 건설과 같은 인프라 건설은 물론, 온갖 크고 작은 공사가 우후죽순 진행되던 바로 그 시대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쯤에는 거의 모든 준비가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고 했던가.4 1986년 조성이 끝나 완공된 올림픽공원에서 관리 운영 방안을 고심하던 조경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고 마는데……. *환경과조경434호(2024년 6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글의 전달성을 위한 거짓말이다. 사실 국민학생이었다. 2. “새마을운동 촉진대회”, 「매일경제」 1985년 4월 19일. www. mk.co.kr/news/economy/683095.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있다. @jin.everywhere
<<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