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에디토리얼] 정원의 기쁨과 슬픔
    『환경과조경』 2014년 4월호를 펼치면 이번 호 특집과 유사한 제목을 단 기획 지면, ‘다시, 정원을 말하다’를 만날 수 있다.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획 의도는 똑같다. 이례적인 정원 열풍의 이면을 되짚어 보자는 것. 바뀐 게 있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그 열풍의 강도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원 ‘열풍’ 앞에 붙일 수식어로 ‘대중적’과 ‘사회적’뿐 아니라 ‘국가적’을 골라도 전혀 과장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도시의 수장고에 곱게 모셔두었던 정원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원 현상, 정말 뜨겁다. 정원이 건강하고 안전한 공간에 대한 관심, 비인간 생명체와의 정서적 교감, 돌봄과 가꿈의 실천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트렌디한 이미지 상품으로까지 소비되면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 곳곳의 도시가 경쟁적으로 정원박람회를 열고 있다. 서른 곳 이상의 지자체는 ‘정원도시’를 선언했다. 서울시는 “어딜가든 서울가든”이라는 구호까지 내걸고 정원을 공원, 선형 녹지, 입체 녹지, 둘레길, 하천변, 도시재생지 모두를 포괄하는 우산 개념으로 삼고 있다. 모든 게 정원이어서 정원이 아무것도 아닌, 정원의 시대. 정원을 국가의 법과 제도로 지정하고 계획하는 유례없는 사업도 펼쳐지고 있다. 산림청이 지원하는 국가정원과 지방정원이 여러 지자체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정원 프로젝트를 지역 발전 전략의 한 축으로 삼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정원이 도시의 기반 공간으로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정원은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는 장소이고, 사색과 휴식의 장이며,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잘 디자인된 정원은 지역의 정체성을 담는 문화적 장소로 진화할 수 있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녹색 인프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열된 최근의 정원 현상을 반성적으로 되짚어 보면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는 전시 행정의 난맥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정원 개념이 지나치게 표피적으로 소비되는 양상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일부 정원박람회와 정원도시 프로젝트는 정원 문화 형성보다는 관광객유치를 위한 브랜딩 전략에 가깝다. 단기간에 화려한 경관을 꾸미는 데 치중하면서 지역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원이 선출직 지자체장들의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단골 메뉴로 동원되는 사례, 무분별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조경가―와 이른바 ‘정원 작가’―들이 정원이라는 이름의 녹색 면죄부를 발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 호 특집 ‘다시, 정원을 읽다’는 정원 현상의 이면을 살펴 정원과 동시대 조경 사이의 관계를 다시 검토하고 조율해 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다. 편집부와 함께 지면을 기획한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는 정부와 지자체 주도의 정원 정책과 정원 사업이 장차 유효한 성과를 내기 위해 풀어야 할 난제들을 점검한다. 황주영 박사(조경사 연구자)는 정원 열풍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혼란한 정원 개념을 재검토하고, 돌봄의 정원과 모두가 누리는 정원의 의미를 전한다. 권진욱 교수(영남대학교)는 정원박람회가 모방과 자기 복제에서 벗어나 고유의 정원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최재혁 소장(오픈니스 스튜디오)은 조경계의 전면에 부상한 정원이 조경 설계에 가져온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한다. 정홍가 소장(쌈지조경)은 지역 공동체의 형성과 협력을 이끄는 사회적 공간으로 정원을 작동하게 하는 정원 활동 사례를 살펴보고 주민 참여형 정원 문화의 방향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조혜령 소장(조경하다열음)은 정원이 그린워싱 이미지로 소비되는 정원 시대의 난맥을 짚는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필자들은 오는 4월 18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열릴 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의 특별 세미나에서 같은 주제로 발제하고 열띤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특집만으로 정원 열풍의 잠재력과 난점을 밀도 있게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마침 번역 출간된 『정원의 기쁨과 슬픔: 인간이 꿈꾸는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어크로스, 2025)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책은 『외로운 도시』로 널리 알려진 작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이사한 집에서 정원 만들기를 탐닉하며 희망의 에덴을 가꿔나간 기록이자, 배제와 공존이 교차하고 추방과 해방이 공존하는 모순의 정원 개념에 대한 세밀한 탐구이기도 하다. 원제는 ‘시간을 거스르는 정원: 공동의 낙원을 찾아서The Garden Against Time: In Search of a Common Paradise’다. 책의 마지막 문장을 옮긴다. “모두의 정원이라는 그 이단적인 꿈.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씨앗을 털자.”
  • [에디토리얼] 정원의 기쁨과 슬픔
    『환경과조경』 2014년 4월호를 펼치면 이번 호 특집과 유사한 제목을 단 기획 지면, ‘다시, 정원을 말하다’를 만날 수 있다.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획 의도는 똑같다. 이례적인 정원 열풍의 이면을 되짚어 보자는 것. 바뀐 게 있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그 열풍의 강도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원 ‘열풍’ 앞에 붙일 수식어로 ‘대중적’과 ‘사회적’뿐 아니라 ‘국가적’을 골라도 전혀 과장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도시의 수장고에 곱게 모셔두었던 정원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원 현상, 정말 뜨겁다. 정원이 건강하고 안전한 공간에 대한 관심, 비인간 생명체와의 정서적 교감, 돌봄과 가꿈의 실천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트렌디한 이미지 상품으로까지 소비되면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 곳곳의 도시가 경쟁적으로 정원박람회를 열고 있다. 서른 곳 이상의 지자체는 ‘정원도시’를 선언했다. 서울시는 “어딜가든 서울가든”이라는 구호까지 내걸고 정원을 공원, 선형 녹지, 입체 녹지, 둘레길, 하천변, 도시재생지 모두를 포괄하는 우산 개념으로 삼고 있다. 모든 게 정원이어서 정원이 아무것도 아닌, 정원의 시대. 정원을 국가의 법과 제도로 지정하고 계획하는 유례없는 사업도 펼쳐지고 있다. 산림청이 지원하는 국가정원과 지방정원이 여러 지자체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정원 프로젝트를 지역 발전 전략의 한 축으로 삼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정원이 도시의 기반 공간으로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정원은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는 장소이고, 사색과 휴식의 장이며,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잘 디자인된 정원은 지역의 정체성을 담는 문화적 장소로 진화할 수 있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녹색 인프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열된 최근의 정원 현상을 반성적으로 되짚어 보면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는 전시 행정의 난맥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정원 개념이 지나치게 표피적으로 소비되는 양상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일부 정원박람회와 정원도시 프로젝트는 정원 문화 형성보다는 관광객유치를 위한 브랜딩 전략에 가깝다. 단기간에 화려한 경관을 꾸미는 데 치중하면서 지역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원이 선출직 지자체장들의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단골 메뉴로 동원되는 사례, 무분별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조경가―와 이른바 ‘정원 작가’―들이 정원이라는 이름의 녹색 면죄부를 발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 호 특집 ‘다시, 정원을 읽다’는 정원 현상의 이면을 살펴 정원과 동시대 조경 사이의 관계를 다시 검토하고 조율해 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다. 편집부와 함께 지면을 기획한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는 정부와 지자체 주도의 정원 정책과 정원 사업이 장차 유효한 성과를 내기 위해 풀어야 할 난제들을 점검한다. 황주영 박사(조경사 연구자)는 정원 열풍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혼란한 정원 개념을 재검토하고, 돌봄의 정원과 모두가 누리는 정원의 의미를 전한다. 권진욱 교수(영남대학교)는 정원박람회가 모방과 자기 복제에서 벗어나 고유의 정원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최재혁 소장(오픈니스 스튜디오)은 조경계의 전면에 부상한 정원이 조경 설계에 가져온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한다. 정홍가 소장(쌈지조경)은 지역 공동체의 형성과 협력을 이끄는 사회적 공간으로 정원을 작동하게 하는 정원 활동 사례를 살펴보고 주민 참여형 정원 문화의 방향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조혜령 소장(조경하다열음)은 정원이 그린워싱 이미지로 소비되는 정원 시대의 난맥을 짚는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필자들은 오는 4월 18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열릴 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의 특별 세미나에서 같은 주제로 발제하고 열띤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특집만으로 정원 열풍의 잠재력과 난점을 밀도 있게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마침 번역 출간된 『정원의 기쁨과 슬픔: 인간이 꿈꾸는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어크로스, 2025)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책은 『외로운 도시』로 널리 알려진 작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이사한 집에서 정원 만들기를 탐닉하며 희망의 에덴을 가꿔나간 기록이자, 배제와 공존이 교차하고 추방과 해방이 공존하는 모순의 정원 개념에 대한 세밀한 탐구이기도 하다. 원제는 ‘시간을 거스르는 정원: 공동의 낙원을 찾아서The Garden Against Time: In Search of a Common Paradise’다. 책의 마지막 문장을 옮긴다. “모두의 정원이라는 그 이단적인 꿈.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씨앗을 털자.”
  • [에디토리얼] 정원의 기쁨과 슬픔
    『환경과조경』 2014년 4월호를 펼치면 이번 호 특집과 유사한 제목을 단 기획 지면, ‘다시, 정원을 말하다’를 만날 수 있다.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획 의도는 똑같다. 이례적인 정원 열풍의 이면을 되짚어 보자는 것. 바뀐 게 있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그 열풍의 강도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원 ‘열풍’ 앞에 붙일 수식어로 ‘대중적’과 ‘사회적’뿐 아니라 ‘국가적’을 골라도 전혀 과장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도시의 수장고에 곱게 모셔두었던 정원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원 현상, 정말 뜨겁다. 정원이 건강하고 안전한 공간에 대한 관심, 비인간 생명체와의 정서적 교감, 돌봄과 가꿈의 실천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트렌디한 이미지 상품으로까지 소비되면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 곳곳의 도시가 경쟁적으로 정원박람회를 열고 있다. 서른 곳 이상의 지자체는 ‘정원도시’를 선언했다. 서울시는 “어딜가든 서울가든”이라는 구호까지 내걸고 정원을 공원, 선형 녹지, 입체 녹지, 둘레길, 하천변, 도시재생지 모두를 포괄하는 우산 개념으로 삼고 있다. 모든 게 정원이어서 정원이 아무것도 아닌, 정원의 시대. 정원을 국가의 법과 제도로 지정하고 계획하는 유례없는 사업도 펼쳐지고 있다. 산림청이 지원하는 국가정원과 지방정원이 여러 지자체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정원 프로젝트를 지역 발전 전략의 한 축으로 삼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정원이 도시의 기반 공간으로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정원은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는 장소이고, 사색과 휴식의 장이며,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잘 디자인된 정원은 지역의 정체성을 담는 문화적 장소로 진화할 수 있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녹색 인프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열된 최근의 정원 현상을 반성적으로 되짚어 보면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는 전시 행정의 난맥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정원 개념이 지나치게 표피적으로 소비되는 양상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일부 정원박람회와 정원도시 프로젝트는 정원 문화 형성보다는 관광객유치를 위한 브랜딩 전략에 가깝다. 단기간에 화려한 경관을 꾸미는 데 치중하면서 지역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원이 선출직 지자체장들의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단골 메뉴로 동원되는 사례, 무분별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조경가―와 이른바 ‘정원 작가’―들이 정원이라는 이름의 녹색 면죄부를 발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 호 특집 ‘다시, 정원을 읽다’는 정원 현상의 이면을 살펴 정원과 동시대 조경 사이의 관계를 다시 검토하고 조율해 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다. 편집부와 함께 지면을 기획한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는 정부와 지자체 주도의 정원 정책과 정원 사업이 장차 유효한 성과를 내기 위해 풀어야 할 난제들을 점검한다. 황주영 박사(조경사 연구자)는 정원 열풍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혼란한 정원 개념을 재검토하고, 돌봄의 정원과 모두가 누리는 정원의 의미를 전한다. 권진욱 교수(영남대학교)는 정원박람회가 모방과 자기 복제에서 벗어나 고유의 정원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최재혁 소장(오픈니스 스튜디오)은 조경계의 전면에 부상한 정원이 조경 설계에 가져온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한다. 정홍가 소장(쌈지조경)은 지역 공동체의 형성과 협력을 이끄는 사회적 공간으로 정원을 작동하게 하는 정원 활동 사례를 살펴보고 주민 참여형 정원 문화의 방향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조혜령 소장(조경하다열음)은 정원이 그린워싱 이미지로 소비되는 정원 시대의 난맥을 짚는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필자들은 오는 4월 18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열릴 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의 특별 세미나에서 같은 주제로 발제하고 열띤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특집만으로 정원 열풍의 잠재력과 난점을 밀도 있게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마침 번역 출간된 『정원의 기쁨과 슬픔: 인간이 꿈꾸는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어크로스, 2025)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책은 『외로운 도시』로 널리 알려진 작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이사한 집에서 정원 만들기를 탐닉하며 희망의 에덴을 가꿔나간 기록이자, 배제와 공존이 교차하고 추방과 해방이 공존하는 모순의 정원 개념에 대한 세밀한 탐구이기도 하다. 원제는 ‘시간을 거스르는 정원: 공동의 낙원을 찾아서The Garden Against Time: In Search of a Common Paradise’다. 책의 마지막 문장을 옮긴다. “모두의 정원이라는 그 이단적인 꿈.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씨앗을 털자.”
  • [에디토리얼] 정원의 기쁨과 슬픔
    『환경과조경』 2014년 4월호를 펼치면 이번 호 특집과 유사한 제목을 단 기획 지면, ‘다시, 정원을 말하다’를 만날 수 있다.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획 의도는 똑같다. 이례적인 정원 열풍의 이면을 되짚어 보자는 것. 바뀐 게 있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그 열풍의 강도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원 ‘열풍’ 앞에 붙일 수식어로 ‘대중적’과 ‘사회적’뿐 아니라 ‘국가적’을 골라도 전혀 과장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도시의 수장고에 곱게 모셔두었던 정원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원 현상, 정말 뜨겁다. 정원이 건강하고 안전한 공간에 대한 관심, 비인간 생명체와의 정서적 교감, 돌봄과 가꿈의 실천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트렌디한 이미지 상품으로까지 소비되면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 곳곳의 도시가 경쟁적으로 정원박람회를 열고 있다. 서른 곳 이상의 지자체는 ‘정원도시’를 선언했다. 서울시는 “어딜가든 서울가든”이라는 구호까지 내걸고 정원을 공원, 선형 녹지, 입체 녹지, 둘레길, 하천변, 도시재생지 모두를 포괄하는 우산 개념으로 삼고 있다. 모든 게 정원이어서 정원이 아무것도 아닌, 정원의 시대. 정원을 국가의 법과 제도로 지정하고 계획하는 유례없는 사업도 펼쳐지고 있다. 산림청이 지원하는 국가정원과 지방정원이 여러 지자체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정원 프로젝트를 지역 발전 전략의 한 축으로 삼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정원이 도시의 기반 공간으로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정원은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는 장소이고, 사색과 휴식의 장이며,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잘 디자인된 정원은 지역의 정체성을 담는 문화적 장소로 진화할 수 있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녹색 인프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열된 최근의 정원 현상을 반성적으로 되짚어 보면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는 전시 행정의 난맥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정원 개념이 지나치게 표피적으로 소비되는 양상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일부 정원박람회와 정원도시 프로젝트는 정원 문화 형성보다는 관광객유치를 위한 브랜딩 전략에 가깝다. 단기간에 화려한 경관을 꾸미는 데 치중하면서 지역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원이 선출직 지자체장들의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단골 메뉴로 동원되는 사례, 무분별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조경가―와 이른바 ‘정원 작가’―들이 정원이라는 이름의 녹색 면죄부를 발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 호 특집 ‘다시, 정원을 읽다’는 정원 현상의 이면을 살펴 정원과 동시대 조경 사이의 관계를 다시 검토하고 조율해 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다. 편집부와 함께 지면을 기획한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는 정부와 지자체 주도의 정원 정책과 정원 사업이 장차 유효한 성과를 내기 위해 풀어야 할 난제들을 점검한다. 황주영 박사(조경사 연구자)는 정원 열풍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혼란한 정원 개념을 재검토하고, 돌봄의 정원과 모두가 누리는 정원의 의미를 전한다. 권진욱 교수(영남대학교)는 정원박람회가 모방과 자기 복제에서 벗어나 고유의 정원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최재혁 소장(오픈니스 스튜디오)은 조경계의 전면에 부상한 정원이 조경 설계에 가져온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한다. 정홍가 소장(쌈지조경)은 지역 공동체의 형성과 협력을 이끄는 사회적 공간으로 정원을 작동하게 하는 정원 활동 사례를 살펴보고 주민 참여형 정원 문화의 방향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조혜령 소장(조경하다열음)은 정원이 그린워싱 이미지로 소비되는 정원 시대의 난맥을 짚는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필자들은 오는 4월 18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열릴 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의 특별 세미나에서 같은 주제로 발제하고 열띤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특집만으로 정원 열풍의 잠재력과 난점을 밀도 있게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마침 번역 출간된 『정원의 기쁨과 슬픔: 인간이 꿈꾸는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어크로스, 2025)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책은 『외로운 도시』로 널리 알려진 작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이사한 집에서 정원 만들기를 탐닉하며 희망의 에덴을 가꿔나간 기록이자, 배제와 공존이 교차하고 추방과 해방이 공존하는 모순의 정원 개념에 대한 세밀한 탐구이기도 하다. 원제는 ‘시간을 거스르는 정원: 공동의 낙원을 찾아서The Garden Against Time: In Search of a Common Paradise’다. 책의 마지막 문장을 옮긴다. “모두의 정원이라는 그 이단적인 꿈.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씨앗을 털자.”
  • [에디토리얼] 정원의 기쁨과 슬픔
    『환경과조경』 2014년 4월호를 펼치면 이번 호 특집과 유사한 제목을 단 기획 지면, ‘다시, 정원을 말하다’를 만날 수 있다.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획 의도는 똑같다. 이례적인 정원 열풍의 이면을 되짚어 보자는 것. 바뀐 게 있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그 열풍의 강도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원 ‘열풍’ 앞에 붙일 수식어로 ‘대중적’과 ‘사회적’뿐 아니라 ‘국가적’을 골라도 전혀 과장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도시의 수장고에 곱게 모셔두었던 정원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원 현상, 정말 뜨겁다. 정원이 건강하고 안전한 공간에 대한 관심, 비인간 생명체와의 정서적 교감, 돌봄과 가꿈의 실천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트렌디한 이미지 상품으로까지 소비되면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 곳곳의 도시가 경쟁적으로 정원박람회를 열고 있다. 서른 곳 이상의 지자체는 ‘정원도시’를 선언했다. 서울시는 “어딜가든 서울가든”이라는 구호까지 내걸고 정원을 공원, 선형 녹지, 입체 녹지, 둘레길, 하천변, 도시재생지 모두를 포괄하는 우산 개념으로 삼고 있다. 모든 게 정원이어서 정원이 아무것도 아닌, 정원의 시대. 정원을 국가의 법과 제도로 지정하고 계획하는 유례없는 사업도 펼쳐지고 있다. 산림청이 지원하는 국가정원과 지방정원이 여러 지자체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정원 프로젝트를 지역 발전 전략의 한 축으로 삼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정원이 도시의 기반 공간으로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정원은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는 장소이고, 사색과 휴식의 장이며,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잘 디자인된 정원은 지역의 정체성을 담는 문화적 장소로 진화할 수 있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녹색 인프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열된 최근의 정원 현상을 반성적으로 되짚어 보면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는 전시 행정의 난맥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정원 개념이 지나치게 표피적으로 소비되는 양상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일부 정원박람회와 정원도시 프로젝트는 정원 문화 형성보다는 관광객유치를 위한 브랜딩 전략에 가깝다. 단기간에 화려한 경관을 꾸미는 데 치중하면서 지역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원이 선출직 지자체장들의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단골 메뉴로 동원되는 사례, 무분별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조경가―와 이른바 ‘정원 작가’―들이 정원이라는 이름의 녹색 면죄부를 발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 호 특집 ‘다시, 정원을 읽다’는 정원 현상의 이면을 살펴 정원과 동시대 조경 사이의 관계를 다시 검토하고 조율해 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다. 편집부와 함께 지면을 기획한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는 정부와 지자체 주도의 정원 정책과 정원 사업이 장차 유효한 성과를 내기 위해 풀어야 할 난제들을 점검한다. 황주영 박사(조경사 연구자)는 정원 열풍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혼란한 정원 개념을 재검토하고, 돌봄의 정원과 모두가 누리는 정원의 의미를 전한다. 권진욱 교수(영남대학교)는 정원박람회가 모방과 자기 복제에서 벗어나 고유의 정원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최재혁 소장(오픈니스 스튜디오)은 조경계의 전면에 부상한 정원이 조경 설계에 가져온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한다. 정홍가 소장(쌈지조경)은 지역 공동체의 형성과 협력을 이끄는 사회적 공간으로 정원을 작동하게 하는 정원 활동 사례를 살펴보고 주민 참여형 정원 문화의 방향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조혜령 소장(조경하다열음)은 정원이 그린워싱 이미지로 소비되는 정원 시대의 난맥을 짚는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필자들은 오는 4월 18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열릴 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의 특별 세미나에서 같은 주제로 발제하고 열띤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특집만으로 정원 열풍의 잠재력과 난점을 밀도 있게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마침 번역 출간된 『정원의 기쁨과 슬픔: 인간이 꿈꾸는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어크로스, 2025)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책은 『외로운 도시』로 널리 알려진 작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이사한 집에서 정원 만들기를 탐닉하며 희망의 에덴을 가꿔나간 기록이자, 배제와 공존이 교차하고 추방과 해방이 공존하는 모순의 정원 개념에 대한 세밀한 탐구이기도 하다. 원제는 ‘시간을 거스르는 정원: 공동의 낙원을 찾아서The Garden Against Time: In Search of a Common Paradise’다. 책의 마지막 문장을 옮긴다. “모두의 정원이라는 그 이단적인 꿈.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씨앗을 털자.”
  • [칼럼] 비장소, 헤테로토피아, 파빌리온 - 중中의 공간
    산업이 발전하고, 물류와 사람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도시가 성장하고 사람들의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우리 주변에는 이상한 공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공간들이 생겨났다는 것은 전에 없는 공간이라는 말이고, 당연히 그것은 변화하는 생활환경을 뒷받침하거나 이끌기 위해 우리가 만든 공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장소non-place라고 부른다. 비장소는 장소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장소가 근대 이전의 삶을 공간적으로 정의한다면, 비장소는 근대 이후의 삶을 공간적으로 규정한다. 물리학적으로 우리는 4차원 시공간에 살고 있다. 가로, 세로, 높이의 세 축을 가진 3차원 공간과 시간이라는 차원이 섞이면서 4차원 시공간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공간과 시간을 따로 떨어뜨릴 수 없다. 우리의 기억이나 추억, 생각, 앞으로의 예측, 과거에 대한 설명 등은 모두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상태의 이야기다. 더군다나 공간과 달리 장소는 공간에 섞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근대 이전의 공간은 이러한 장소와 거주의 문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장소는 곧 거주로 인식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정착민이든 유목민이든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집, 마당, 골목, 도시, 뒷산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나그네들이 쉬어 가는 주막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이야기가 생겨났다’는 것은 그것이 거주의 문제였다는 걸 증명한다. 그것이 이야기를 낳은 거주의 문제라는 것은 거기에 분명한 장소성이 있다는 말이다. 인류의 언어, 전설, 신화는 그들이 살았던 언덕, 고개, 초원 등과 무관하지 않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허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와의 하룻밤은 물레방앗간이라는 장소와 메밀꽃밭으로 연상되는 계절의 시간이 이어지면서 우연히 만난 동이와 허생원이 부자간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암시를 준다. 이 소설은 장돌뱅이들을 등장시킨 만큼 집이라는 거주의 장소보다는 계속 임시적인 공간, 즉 그 공간은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만 이용자들은 그저거쳐 가는 공간들이 나온다. 주막, 물레방앗간, 그리고 계절을 알려주는 메밀꽃밭 등이 그런 공간이다. 그러나 허생원은 물레방앗간에서의 하룻밤 정분을 잊지 못해 그 처녀를 만날까 하는 마음에 계속 봉평장을 찾는다. 물레방앗간이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공간에서 생긴 이야기로부터 이 소설의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이와 같이 근대 이전의 공간은 거기서 생긴 이야기를 공동체 모두가 공유하며 장소로 인식된다. 그러나 근대 이후 기계론적 합리주의와 시스템 속에 갇히면서 자아 상실과 의미 상실을 경험하며 우리는 장소를 상실한다. 우리는 거대한 쇼핑몰에서 우리가 뭘 사야 할지를 잊어버리고 자본의 스펙터클에 압도되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산다. 이미 밖에서는 자동차에게 길의 풍경을 내주었지만 쇼핑몰에서는 카트에게, 상품에게 우리의 길을 줘버린다. 그리고 계산대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내 뒤로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며 다시 물건을 취소할 엄두가 나지 않는 다. 거기서 부딪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허생원이나 동이와 같이 서로를 간섭하면서 친해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심지어 계산대 직원은 물건값도 모른다. 바코드 인식기가 모든 걸 해주고 거기에 맞춰 카드를 내면 된다. 공항 역시 마찬가지다. 검색대를 몇 차례 통과하면서 우리는 계속 신분증을 직원에게 건네지만 나는 계속 익명으로 존재한다. 그 익명 속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 익명성 덕택에 그곳은 늘 새롭다. 우리가 도시를 즐기는 이유는 거기에서는 우리가 어딜 가든, 영화관을 가든, 마트에 가든, 식당에 가든,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장소라고 부른다. 집이라고 비장소의 예외일 수는 없다. 거기서는 모두 잠만 잔다. 집에서 익명성을 거두어주는 사람은 주부지만 그렇게 모두들 집을 나가고 나면 그 공간에 의해서 주부마저 소외된다. 푸코는 이러한 현대 도시의 특징에 주목해서 개인적으로 한시적인 유토피아를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시적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비장소에 해당한다. 파빌리온pavilion 역시 이러한 비장소다. 파빌리온은 특별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건축이지만 건축의 역할이 없는 건축이다. 연극에서 역할이 없는 배우를 상상해 보라. 그러나 파빌리온은 건축에서, 혹은 조경에서 역할이 없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역할은 연극이 이루어지기 전의 무대와 같다. 무대에서 어떤 연극이 공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무대는 늘 어떤 연극을 기다린다. 파빌리온도 그렇다. 파빌리온은 어떤 성격도 가지지 않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는 헤테로토피아일 수도 있고, 비장소일 수도 있다. 또한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 이런 모호한 개념을 서양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차라리 동아시아 철학의 ‘중中’이라는 개념이 훨씬 유용하다. ‘중’은 유학에서는 ‘정확하다’는 의미다. 또한 불가에서는 ‘공空’의 의미를 ‘무자성無自性(non self-identity)’으로 해석한다. ‘무자성’이란 스스로 그렇다라고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말이다. 즉, 아무 성격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그래서 공은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어 있기 때문에 가능성으로 꽉 찬 상태고, 가능성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상태다. 유가와 불가는 각각 다른 철학이지만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같이 ‘중’으로 표현하는데, 파빌리온 같은 모호한 공간을 규정하기에는 더 없이 정확하다. 파빌리온은 아무런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무자성의 공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역할도 정확하게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의 공간’이기도 하다. 연금술에는 “모호는 모호한 것을 통해서, 미지는 미지의 것을 통해서”라는 격언이 있다. 모호한 것을 정확하게 규정하기 보다는 그 모호함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말로 모호를 설명하는 것이 때로는 가장 정확하다. 함성호는 1990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91년 『공간』에서 건축평론신인상을 받으며 건축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56억 7천만년의 고독』, 『성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키르티무카』가 있으며, 티베트 기행산문집 『허무의 기록』, 만화비평집 『만화당 인생』, 건축평론집 『건축의 스트레스』,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철학으로 읽는 옛집』, 『텃밭정원 도시미학』(공저), 『반하는 건축』,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공저)를 썼다.
  • [CODA] 권리와 의무
    ‘이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보통 이런 표현은 외부 필진의 원고에만 달리기 마련이다. 생뚱맞게 이런 대목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견해를 담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교과서적이고 원론적인 (한 마디로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너그럽게 보아달라는 엄살이기도 하다(이럴 땐 잡지지면에 이모티콘을 사용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이런 대목에서는 어울리는 이모티콘 하나쯤 달아주어야 하는데) 처음 한국조경사회 밴드에서 건설기술진흥법(이하 건진법) 문제를 접했을 때는,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공공부문 조경설계 용역은 기존처럼 엔지니어링활동주체와 기술사사무소도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기존의 입찰 참가 자격에 건설기술용역업이 하나 추가되는 것 정도로 인식한 것이다. 지금까지 멀쩡하게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이하 엔지니어링법)과 기술사법에 의해 조경 설계를 수행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제도가 확 바뀔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추측도 했다. 20년이 넘도록 큰 변화가 없던 시스템이어서 더욱 그랬다. 과거에는 ‘기술용역육성법’에 따라 건설용역업의 일환으로 조경설계를 수행했는데, 1992년 11월 25일 이후에는 기술용역육성법이 엔지니어링법과 기술사법으로 분리 제정됨에 따라 조경설계 용역 업체가 엔지니어링활동주체와 기술사사무로 이원화되었다(『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 - 한국조경백서1972~2008』 참고). 그리고 그 시스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달라질 기미도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안일한 생각 때문에, 시행령 별표1과 별표5는 물론이고 건진법 조항을 들여다보았지만, 의아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몇 군데 전화를 돌리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건진법이 건설기술용역업의 통합을 꾀하려는 취지가 있다고 해서, 엔지니어링법과 기술사법이 당장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일원화될 수 있는 것인가 싶었다. 또 그보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토목·건축 또는 기계분야 특급기술자가 조경설계를 비롯해서 다양한 건설 분야의 설계, 감리 등의 기술 용역을 모두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각 분야만의 고유한 전문성이 있고, 또 그 때문에 지금까지 세분화된 전문 분야별로 수많은 기술자를 양성해왔는데, 그 전문성을 지금에 와서 단번에 무시할 수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건진법 시행령 제4조 별표1에서 규정하고 있는 “건설기술자의 범위”를 보면 조경을 비롯해서 10가지의 세부 직무 분야를 두고 있다. 건축, 토목, 기계도 있지만, 도시·교통, 환경, 광업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같은 시행령 별표5에서는 건설기술용역업 중 ‘설계 등 용역’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토목·건축 또는 기계 분야 특급기술자 1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명시해 놓았다. 혼란스러웠다. 법을 조금 더 살펴보았다. 그런데 꼼꼼히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기존 법과의 관계도 찾아보았다.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 제4조는 ‘다른 법률과의 관계’에 대해 규정해 놓았는데,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 따른다”고 명시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으면, 그 법률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기술사법 역시 제3조 기술사의 직무 항목에서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 따른다”고 명기해 놓았다. 이후 이어진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담당자, 한국조경사회에서 법제를 담당하고 있는 진승범 부회장(이우환경디자인 대표), 처음으로 이 문제를 조경계에 알린 차욱진 대표(두인디앤씨)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그 여파가 실감되기 시작했다. 사실 문제의 심각성은 그보다 먼저 깨닫게 되었는데, 전국 여러 대학교의 조경학과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학생통신원들의 전화가 한 통 두 통 걸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조경설계사무소 대표, 조경학과 교수들과의 통화도 늘어났다. 최종적으로 정리된 내용은 이번 호에 실린 “건설기술진흥법, 조경설계업에 미칠 여파는”이란 기사(148쪽) 내용과 같으니, 더 이상의 중복은 피한다. 관련 내용을 파악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 중의 하나만 이야기해볼까 한다. 건진법 문제와 관련하여, 조경 단체의 관련 법 모니터링 시스템의 허점에 대한 지적이 꽤 나오고 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배어있는 경우도 있지만, 질책성 반응도 많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링협회에서는 이미 시행령에 대한 공람이 진행되었을 때, 관련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국토부에 전달했는데, 조경 단체는 시행령이 개정된 지 5개월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관련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조경기본법, 조경산업진흥법,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수목원 및 정원 법으로 개정 시도) 등 최근 들어 관련 법에 대한 첨예한 논의(제정을 위한 노력도 있었고, 개정 반대를 위한 논의도 많았다)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는데도, 정작 조경설계업에 지대한 여파가 미치는 법 개정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먼저 아주 간단한 사실 관계 하나만 살펴보면, 조경 분야에는 법인 단체는 있어도 법정 단체는 없다.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 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 등은 모두 국토부와 환경부 등에 사단법인 등록이 되어 있지만, 엔지니어링협회와 같은 법정 단체가 아니다. 엔지니어링협회는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 제5장 협회 및 공제조합’ 법령에 근거하여 설립되었다. 기술사회 역시 ‘기술사법 제14조 기술사회의 설립’ 조항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체다. 건축사협회 역시 ‘건축사법 제6장’에 근거하고 있고,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은 건축진흥원의 설립을 제5장에서 다루고 있다. 1980년 설립된 조경사회는 2000년에야 국토부(당시 건설교통부)에 사단법인 등록을 할 수 있었고(환경계획·조성협회는 1999년도에 환경부에 사단법인 등록), 2008년 11월 10일에야 독립된 사무국을 개소할 수 있었다.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 회장직을 맡은 대표의 사무실에서 조경사회업무를 함께 보았고, 사무국장 역시 조경사회 임원 중 한 명이 겸직했었다. 법정 단체가 아니다보니, 회원들의 회비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사무국을 꾸려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재정 상황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뜻있는 몇몇 회원들의 후원으로 지금처럼 별도의 사무국을 꾸려가는 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지나간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까지, 구구절절 이곳에 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교과서적인 결론도 사실 썩 내키지 않는다. 조경 단체의 상황이 이러하니, 관련 법 모니터링을 제대로 하지 못했더라도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조경사회의 정관 제4조에 명시되어 있는 조경사회의 주요 사업을 보면 “조경 및 관련 분야에 관한 자문 및 대정부 건의 / 조경 관련 정책, 법령 연구 및 제도개선 / 회원의 권익 및 복지 증진을 위해 필요한 사업”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업을 위해 설립된 조경 단체에게 관련 법제도를 살피고 개선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못한다면, 어디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정관 제7조에 명시된 ‘회원의 권리’ 못지않게, 제8조에 나와 있는 ‘회원의 의무’도 한번쯤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례 없이 조경을 둘러싼 법제도와 사회·경제적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시기에,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살펴보아야겠다. 그나저나 한창 조경가를 꿈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려운 숙제가 머릿속을 맴돈다.
  • 세상 속에 거주하기 2014 부산비엔날레, 11월 22일까지
    9월 20일부터 11월 22일까지(64일간) 부산문화회관 일원에서 2014 부산비엔날레가 열린다. 이번 비엔날레는 ‘세상 속에 거주하기Inhabiting the World’라는 주제로 부산시립박물관의 본 전시와 부산문화회관, 고려제강수영공장에서 각각 개최되는 2개의 특별전으로 꾸며진다. 본 전시에서는 30개국 161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484점의 작품을 통해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 예술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한다. 전시 감독인 올리비에 케플렝Olivier Kaeppelin은 이를 추상·운동, 우주, 건축적 공간, 정체성, 동물성, 역사/사회, 자연, 경관이라는 요소로 풀어낸다. 김수자(한국), 치하루 시오타Chiharu Shiota(일본), 파브리스 위베르Fabrice Hybert(프랑스), 애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인도) 등의 유명 작가들이 여럿 참여한다. 예술가들의 시각은 추상적인 회화에서부터 몽환적인 비디오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비엔날레 아카이브展 ‘한국현대미술 비엔날레 진출사50년’은 48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109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작가의 해외 비엔날레 출품작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아시안 큐레토리얼展 ‘간다, 파도를 만날 때까지 간다’는 9개국 36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한국과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해양 도시에서 활동하는 신진큐레이터들이 기획한 바다에 얽힌 네 가지 시선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대 행사도 함께 마련되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의 전문가 토론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 등이 마련되었으며, 매주 일요일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 수영공장에서는 일반 시민을 위한 공연이 열린다. 지난 2012 부산비엔날레에서는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해 민주적인 참여와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전시 내용과 연관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전시 공간 자체가 예술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했다. 대화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 주제나 작품 개념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 기회를 마련하고, 관람객이 주도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신경을 기울였다. 페미니스트적 작업을 해온 스페인 작가 필라 알바라신Pilar Albaracin은 이번 전시에 ‘당나귀Anseria’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박제된 당나귀가 무덤을 상징화한 책 더미 위에 서서 책을 읽는 모습을 의인화했는데, 기다란 얼굴에 짜리몽땅한 앞발을 쳐들고 책을 든 모습이 익살맞다. 한편으로 박제된 당나귀가 기이한 느낌을 자아낸다. 인류의 역사를 상징하는 책 더미와 그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 당나귀의 비유를 통해 문화 인류학적인 인간의 역사를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치하루 시오타의 작품 ‘집적-방향을 찾아서Accumulation-Searching for Destination’는 부유하는 신체를 비유하는 200여 개의 여행 가방을 공중에 매달아 디아스포라, 노마딕 주체의 무장소성, 유랑에 의한 불안정성, 미래의 불확실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이주의 경험이 있는 작가가 서구에서의 체험과 모국에서의 기억이 중첩되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한 주체의 형성 과정을 비유한다. 이 작품들은 ‘세상 속에 거주하기’라는 대 주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예술작품이 ‘세상 속에 거주’하면서 마주하는 경제적, 생태적, 지정학적, 실존적 문제들에 대한 처방책을 내지는 못하지만 ‘세상에 대한 통찰’을 사유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부산비엔날레에서 그 기회를 공유할 수 있다.
    • 이향지
  • 인사동 아이디어 텃밭전 북인사마당에서 10월 14일부터 6일간 개최
    지난 10월 14일부터 6일간 종로구(구청장 김영종) 공원녹지과의 후원 아래, ‘도시 농업’을 주제로 ‘인사동 아이디어 텃밭전’이 인사동 북인사마당에서 개최됐다. 2011년부터 진행되어 온 이 행사는 ‘초록빛 상상, 도심을 채우다! 대학생들의 감각있는 텃밭 전시’라는 부제로 진행되었고, 올해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계원예술대학교 화훼디자인·전시디자인과 학생 122명과 경기도 고양시에서 친환경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우보농장이 참여해 텃밭 전시, 기획 전시, 그리고 체험행사를 진행했다. 텃밭 전시에는 참신한 표현 방법을 사용하여 환경, 사회, 예술 등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낸 22개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는 ‘당신의 도시농부 타입은 :-)?(조현진 외 4인)’과 같은 참여형 작품, ‘시가렛 가든(최진호 외 1인)’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낸 작품 등 11개 작품을 선보였고, 계원예술대학교에서는 ‘신들의 당구(권정숙 외 6인)’와 같이 조형성이 두드러지는 작품과 ‘산세베리아(이고원 외 6인)’와 같이 환경오염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 등 총 10개 작품을 출품해 각자의 개성을 드러냈다. 작품 전시와 더불어 계원예술대 전시디자인학과의 주도하에 ‘씨드볼seed ball 만들기’, ‘친환경 퇴비 만들기(워크숍 명: 가든가든하다)’, ‘재활용 화분 만들기(워크숍 명: 꽃수아비)’ 등의 워크숍도 진행되어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노력도 엿보였고, 18일 진행된 기획 전시에서는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공동대표)의 벼, 밀, 콩 등의 토종 씨앗에 대한 관련 해설도 들을 수 있었다. 종로구에서는 “도시 텃밭이 서울 곳곳에서 좋은 경관적 효과를 내고 있고, 옥상녹화는 열섬 현상 등의 도시적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며 도시 농업과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개최된 ‘인사동 아이디어 텃밭전’이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행사장에서 만나본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학생들은 직접 ‘텃밭’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 것 자체에 만족스러움을 표시했다. 사실 현재의 조경학과 설계 교육에서 도면과 컴퓨터 모니터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실체가 없거나 상상 속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재현 학생(‘Organic Toilet’팀)은, “도면과 모델링에서 구상했던 것들이 실제 시공 단계에서 얼마나 잘못 기획되었고, 수정될 사항이 많을 수 있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며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같은 조의 김병호 학생은, “시공 자재의 유통 과정이나 재정 관리에도 직접 관여했는데, 배추하나 주문하는 일도 인터넷에서 신발 주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며 살아있는 식물을 다루고 텃밭을 조성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에 덧붙여 시공 과정뿐만 아니라 책과 강의로 만 전해 들어오던 ‘주민참여’ 활동을 진행해보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모습에서 전해오는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으로는 지금보다 시간 및 금전적 여유가 조금 더 주어졌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언급하기도 했다. 행사 후에 지급하기로 되어있는 시공 비용이 작업 과정에 있어 부담스럽게 다가온 것이 사실이었다며, 제작 비용이 먼저 확보된다면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리고 “행사 당일이 되어서야 작품별 설치 위치가 정해졌다는 점도 행사를 진행하는 데 애를 먹게 한 것이 사실”이라며 내년 사에서는 이러한 사항들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도심 속에서 점차 잊혀져가는 텃밭을 발굴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쾌적하고 건강한 종로를 만들”겠다는 주최 측의 시도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인사동 북인사마당은 잠시나마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었고 그에 대한 시민과 관광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사동 아이디어 텃밭전’이 더욱 뚜렷한 색깔과 의미를 갖는 지역 행사로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 양다빈
  • 문화 콘텐츠로서 정원의 가능성 한국정원디자인학회 창립총회
    조경 분야에서 정원이라는 주제는 그동안 대형 사업에 밀려 외면당해 왔다. 그런데 최근의 정원 열풍으로 조경 분야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조성주체에 따라 정원의 개념이 다양하게 쓰이면서 유관단체와 기관들 사이에는 용어 논쟁이 일기도 했다. 이에 정원과 관련한 여러 가지 담론이 형성되고 있으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전략을 세우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은 다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정원 관련 단체가 여럿 설립되었다. 지난 해 한국정원문화협회(회장 정주현)가 발족한 데 이어정원 문화 활성화와 정원 산업 진흥을 목표로 지난 9월 25일에는 정원문화포럼(회장 송정섭)이 창립총회를 가졌다. 한국조경학회는 올해 정원학연구센터(센터장 조경진)를 설립해 고양국제꽃박람회에서 정원문화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오는 12월에는 ‘정원학의 새로운 지평’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한국정원학회로 설립해 활동을 이어오다 외연 확대를 위해 개칭한 한국전통조경학회(회장 안계복)는 다시 원래 이름으로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0월 18일 푸르지오 밸리에서 한국정원디자인학회가 창립총회를 가져 그 설립 배경이 관심을 끈다. 학회 설립 배경 한국정원디자인학회 초대 회장에는 홍광표 교수(동국대학교)가 추대되었다. 이날 홍 교수는 학회의 설립 의의를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했다. 첫째는 융·복합적인 시스템의 구축이다. 정원이 조경 분야의 관심에서 멀어진 동안에도 정원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왔고 이제 보다 다양한 형태로 정원이 소비되고 있는데, 이를 조경의 틀로만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홍광표 교수는 “학제 간 연구를 통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학회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사회적 요구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다. 홍 교수는 “사회가 요구하는 정원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공공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공공디자인의 한 부분으로 기능하고 도시 경관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에 대한 연구가 공공성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정원 문화 정착을 위해 제도적 장치가 필수라는 점을 역설하며, 그 기반으로 정원학회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정원디자인학회의 비전 한국정원디자인학회가 역점을 기울이는 사업은 한국정원의 국제화 모델 개발과 해외 보급이다. 홍광표 교수는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 재임 시기부터 해외에 한국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해에는 미국 어바인Irvine 시와 협력 체계를 구축해 한국정원 조성을 위한 논의를 진척시킨 바 있으며, 윤후덕국회의원과 함께 ‘한국전통정원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해 발전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윤후덕 국회의원은 토론회 이후 “한국 전통 정원이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고유의 아름다움과 표현 방법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역사·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전한 바 있다. 이에 이번 한국정원디자인학회 설립을 지지하고 해외 한국 정원 조성 사업에도 힘을 보탤 예정이다. 윤 의원은 “우리 전통 정원이 문화 콘텐츠의 한 분야로 세계에 널리 소개된다면 해외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한류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제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강은 ‘도시의 녹지 공간과 정원(부제: 도시 정원의 본연의 모습과 미래상)’을 주제로 코시미즈 하지메 교수(메이지대학교)가 발표하고, 황지해 정원작가와 신현돈 대표(서안알앤디 디자인)가 해외에서 진행한 정원 작업의 과정과 성과를 소개했다. 황지해 작가는 첼시플라워쇼를 비롯해 국외 유수의 정원 박람회 참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소개했으며, 신현돈 대표는 ‘한국 전통 정원’을 주제로 해외에 조성한 공원 사례를 통해 제한 사항과 노하우를 공유했다. 특히 발표 내용 중 ‘황지해 작가의 첼시플라워쇼 금메달 수상’의 해외 온라인 노출량을 비교한 결과는 흥미로웠다. 황 작가의 관련 뉴스는 박찬욱 감독의 칸 영화제 수상 소식과 비슷한 수준이며, 임권택 감독의 칸 영화제 수상 소식의 3배, 이창동 감독의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 소식의 4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원의 파급력과 경제적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양질의 한국 정원을 해외에 조성해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이 한국정원디자인학회가 꿈꾸는 미래상이다.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한 전략, 한국 정원의 세계화 한편에서는 한국정원디자인학회 설립을 의아해 하는 시선도 있다. 지금도 조경 분야에는 많은 단체가 활동 중이고 중복 가입한 회원이 많기 때문에 역량이 분산되어 사실상 저변 확대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시선에 대해 조세환 교수(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는 “점점 더 복잡화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원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반론하며 한국정원디자인학회 설립을 반겼다. 하나의 구심점을 바탕으로 조경 분야가 더 다원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경계해야할 점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섬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류 바람은 대중문화를 넘어 제품과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특징을 보여주는 정원을 해외에 조성하는 일은 새로운 수요의 창출 가능성을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정원이 조성되는 국가와 문화 교류의 촉매제로서 정원의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 이는 조경의 외연 확대를 위한 전략이 되기도 한다. 한국정원디자인학회가 그 가능성을 어떻게 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