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그들이 설계하는 법]
    9 좋지 않은 예감은 늘 맞는다면서 서울역 고가의 설계는 우리에게 좋은 경험이었을까. 아직도 간혹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을 하곤 한다. 작년 초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최종 엔트리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작년 1월부터 설계를 시작해서 4월 말에 제출을 하고 심사위원들을 앞에 두고 작품 발표도 했다. 처음 초청 작가 선정위원회에서 몇 차례의 선정 심의를 거쳐 초청 작가의한 사람으로 결정되었으니 참가하겠냐고 의향을 물어왔을 때, 바로 그러겠다고 답을 했다. 나 개인으로서도 영광이었고, 우리 설계사무소의 참여 경력이나 경험을 보아서라도 참여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정작 설계공모 지침을 받아 들었을 때 뭔가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초청 작가의 구성을 외국 설계사 넷, 한국 설계사 셋으로 균형을 맞춘 건 괜찮았는데, 초청 작가의 분야별 분배가 이상했다. 건축 분야 다섯 팀, 조경 분야 두 팀이었다. 원래 건축 네 팀, 조경 세 팀으로 추진했지만 건축의 반대로 지금처럼 구성되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초청된 조경 설계사가 두 팀밖에 안되고 그나마 두 팀 중 한 팀은 외국 설계사였다. 간단히 말해서 한국의 조경설계사로서는 우리만 초청된 거였다. 그래서 좋다기보다 뭔가 이거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 아니야 하는 찜찜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건 심사위원의 구성을 알았을 때였다. 총 5인의 심사위원 중 조경 한 명, 도시 한 명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이 건축 분야였다. 짐작이 되는 바가 있었다.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어떤 결과든 건축의 의지로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터득한 감으로 볼 때, 안 될 확률이 90%가 넘을 것 같은데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게다가 서울시의 디자인 분야를 총괄하는 부 시장 급 고위 공무원 한 사람이 초청 작가 중 한 사람과 매우 친하다는 루머도 있었다. 어쨌든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장밋빛 결과를 그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하기로 했다. 참여 비용도 준다는데, 그리고 참여 팀의 하나라는 자체가 이미 설계사무실로는 자랑할 만한 커리어가 되는 건데, 안할 이유가 없었다. 결과가 뻔할지라도 좋은 안을 한번 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비록 불리하기는 하지만 한번 안을 내서 비교해 보고 싶다는 경쟁심도 불끈 솟기 시작했다. 그래도 건축보다는 조경 쪽에서 푸는 안이 맞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혹 또 누가 알랴. 넓디넓은 하해와 같은 마음이 갑자기 물밀듯이 서울시와 건축계를 강타해, 분야에 상관없이 가장 좋은 안으로 우리 안을 뽑아줄지, 우리의 손을 들어줄지 모르는 일이었다. 10 뭐 고백하자면 우리의 서울역 고가 안은 지금 보아도 마음에 든다. 우리가 해서겠지만 이걸 뽑았으면 서울시민을 위해서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하지만 하나 고백하자면, 서울역 고가 설계공모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나는 서울역 고가의 보행 활용 반대론자였다. 특히 나는 서울역 고가를 뉴욕의 하이라인과 같은 선상에서 접근하는 게 그리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뉴욕의 하이라인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서울역 고가가 하이라인과 얼마나 다른 지를 금방 알 것이다. 하이라인에 비해 서울역 고가는 보행 접근성이 좋지 않고, 차도 한가운데에 놓여 있어 공간적 여건도 전혀 다르다. 높이도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다른 이유에서라면 몰라도 하이라인처럼 만들겠다는 것이 서울역 고가 보행화의 의도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공식적으로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초청 작가로 지명을 받고 나서 바로 견해를 바꿨다. 찬성으로. 서울역 고가 보행화가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말이다. 꼼꼼히 들여다보니 제법 필요한 사업이기도 했다. 소신과 지조, 우리 시대에 정말 필요한 덕목이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걸 지키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는 소신보다 우리 설계사무소를 지키고 사무소 직원들의 월급을 밀리지 않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제 집 아이들이 다 컸고, 그런대로 사무실도 굴러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이 지면이 ‘설계하는 법’에 대해 작가로서의 철학과 소신을 내세우는 자리라면, 내가 하는 이런 얘기는 도통 걸맞지 않을 것이니 안타깝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설계를 하는 것이 때론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사랑이 변하듯 소신도 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신 없는 설계’라기보다 변화에 즉각 대응하는 ‘융통성 있는 설계’라고 이해해주면 고마울 일이다. 11 누군들 지고 싶겠어 나는 지는 것이 싫다. 이기면 기쁘고 지면 우울하다. 그렇다고 졌을 때의 좌절과 우울함을 오래 간직하는 건 아니다. 곧 털어 버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거나 아예 잊기도 한다. 일을 하면서 그동안 셀 수도 없이 졌고 셀 수도 없이 이겼다. 괜찮은 건 그래도 그동안 진 것보다는 이긴 게 더 많았다는 것이다. 지지 않으려고 애쓴 덕분에, 경쟁이 삶인 곳에서 많이 이긴 탓에 지금의 설계사무실을 지탱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싸우지 않고 설계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일할기회는 적고 할 사람은 많다. 단순한 논리다. 좋은 일일수록 하려는 사람은 더 많고 더 많이 싸워야 한다. 공식적인 공모전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을 따기 위해서는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일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다. 우리도 상처를 준 사람들이 많고 우리도 상처를 받았다. 경쟁에서 이긴다는 건 누구에게든 상처를 주었다는 얘기다. 프로젝트의 소개를 받아 건축주를 만난 자리에서 한참 얘기를 하다가 원 설계사가 있다는 걸 알고 후퇴한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여건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 기회에 우리에게 상처를 받은 분들에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오해가 원인이 되어 사무실 간에 감정이 쌓이는 경우도 있다. 청계천 복원 당시, 사업의 중책을 맡고 있는 분의 선거 캠프에 우리가 도움을 준 적이 있다. 그 일이 고마웠는지 일을 딸 수 있을지도 모르니 가보라고 추천한 건설사가 몇 군데 있었다. 그중 한 곳은 이미 원설계사가 있어서 같이 작업 중이었다. 외국 사례 출장도 이미 함께 다녀왔고 일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턴키 설계 방식 때문에 비밀리에 진행되어 누가 참여하는 지 알려지지 않는 탓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로 서는 ‘아, 그랬군요’하고 물러나야 하는 시점이었다. 해당 주관 엔지니어링 임원이 미안해서인지 우리를 붙잡고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볼 테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어떤 얘기가 그 회사 임원을 통해 원 설계사에게 전달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바로 포기했고 다른 건설사의 팀에 참여했다. 설계사가 이미 정해진 줄 알았다. 면 이 작은 동네에서, 이 좁은 업계에서 누가 일을 달라고 조를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짜증이 날 정도로 여기저기서 소리를 듣고 구체적인 대응도 받았다. 아무리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이쯤 되면 피곤해진다. 서울역 고가 설계공모의 결과는 당연히 예상대로였다. 당선작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의아하기는 하지만 나도 좋아하는 작가라 당선 작가에 대해서는 아무 불만이 없다. 하지만 심사 과정은 좀 이상했다. 본래 당선작가의 프레젠테이션 시간은 오후였지만, 발표 후 오후 비행기로 한국을 떠나야하기 때문에 오전에 발표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싶었다. 심사 결과를 그날 저녁에 발표하고 다음날 당선 작가의 기자 회견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작품 발표가 끝나고 아무리 기다려도 심사 결과가 공지되지 않았다. 저녁 9시가 넘어서 결과 발표가 며칠 미루어졌다는 연락이 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선 작가가 오후에 출국을 하고 며칠 뒤에 돌아오기 때문에 그 사람이 기자 회견을 할 수 있는 시기에 맞추어 심사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거였다. 기다리고 있었던 우리는 뭐지 그때서야 ‘들러리도 이런 들러리가 없네’하고 허허 웃음이 났다. 그런 훌륭한 작가가 참여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서 그랬는지, 지침을 바꾸어 가면서까지 그 사람의 일정에 맞추는 서울시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울함이 다른 프로젝트보다 좀 더 오래간 이유가 그랬다. 12 건축, 애증의 관계 떨어진 작가로서 당선작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건 조심스럽다.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왜 그러나 싶을 것이고, 그렇다고 비판을 하기에는 감정이 섞여 있다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나는 당선 작가인 비니 마스의 작품을 몇 개 접한 적 있고 작품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비니 마스는 한마디로 멋진 현대 건축가 중 한 명이다. 델프트 공과대학교에서 그 사람이 주관한다는 더 와이 팩토리(The Why Factory)는 ‘질문 공장’이라는 의미답게 건축에 관련된 모든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강의의 장으로 유명하다. 주황색 아니면 노란색이라고 기억되는데, 로비 중앙의 스탠드 겸 계단 구조물은 정말 멋지다! 하지만 나는 그가 던지는 화두, ‘More with More’ 같은 말장난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렘 콜하스의 ‘More is More?’ 아이고, 무엇을 어떻게 주장하든 모두 미스 반 데어 로에의 ‘Less is More’의 값싼 아류들이다. 어찌되었던 비니 마스는 실험적인 건축을 추구하며, 네덜란드 건축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대단한 건축가임에 틀림없다. 고가도로는 일종의 외부 공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고가도로는 바닥만을 갖고 있으며 벽과 천장이 없는 열린 공간이다. 열린 외부 공간을 누가 설계하는 것이 가장 옳을까. ‘외부 공간이니까 조경이 해야해’라는 말은 그리 논리적이지 않다.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옳다. 그럼 누가 더 잘할 수 있느냐다. 물론 건축하는 사람들도 천차만별이고 조경하는 사람 중에는 뛰어난 건축적인 감각과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아서 어느 분야가 해야 한다고 꼬집어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벽과 천장이 없는 열린 공간이라는 공간의 속성상 서울역 고가는 조경하는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다는 게 내 견해다. 서울역 고가는 독특한 여건 하에 있지만 어찌됐든 외부 공간의 한 부류다. 건축 분야가 건축 공간 없이 외부 공간 만을 주 대상으로 다루게 되면 자신의 전문성을 잃기 쉽다. 베르나르 츄미의 라빌레트는 독특한 경우다. 건축적인 매스를 해체시켜 공원에 뿌려놓았다. 건축적인 해법으로 외부 공간을 다룬 셈이다. 만약, 외부 공간을 건축가가 건축적인 방법으로 풀지 않고 더 나아가서 조경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나 소재—예를 들면, 수목 자체나 수목의 배치—로 설계를 풀려한다면 재앙이 시작된다. 이 견해의 타당성은 역설적으로 당선작의 내용에서 드러난다. 차라리 조성룡의 설계안이 건축가에 의한, 건축가의 안답다. 비니 마스에게 서울역 고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매스를 다루는 천재적인 창의성 그리고 다른 사람이 따라오기 어려운 미적 균형, 상상을 초월하는 실험성 등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멋진 소양은 서울역 고가에서 발휘되기 쉽지 않다. 새로운 교량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교량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행이란 다소 단순한 옥외 공간의 기능을 담아내야 하는 게 서울역 고가에 주어진 과제이다. 쉽게 말해, 서울역 고가는 탁월한 건축적 감각을 선보이기엔 걸맞지 않은 대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비니 마스는 참여를 했고 또 서울시는 비니 마스의 작품을 뽑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의 이름을 걸고 싶었던 게지’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그래도 건축가 중에는 일부러 전화를 해서 우리 안의 장점을 언급해주고, 당선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 안의 장점을 읽을 수 있는 건축가가 있다는 건 그나마 고맙고 꽤 위안이 되는 일이다. 13 서울애벌레 누구는 전체 서울역 고가의 형태를 나무로 보았지만, 나는 서울역 고가를 한 마리의 애벌레로 보고 싶었다. 서울역 고가를 차도에서 보도로 바꾼다는 의미는 단지 보행 환경의 강조라기보다 달리기만 했던 서울이 ‘느림’과 ‘느림의 도시’를 지향하는 선언이라고 보았다. 작품의 슬로건도 원래는 서울라바(Seoul Larva)라고 하려 했었다. ‘라바’라는 우리나라의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도 있어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제목이라고 보았다. ‘애벌레’라는 어휘가 지칭하는 대상이 표현하는 건 느림,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생태적이며 자연적이다 등으로, 애벌레는 그 모든 의미를 잘 함축하는 메타포고 멋진 알레고리라고 봤다. 우리 팀원들은 그 제목을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건축 파트너들로부터는 격한 비판을 받았다. 너무 장난스럽다는 것이다. 결국 ‘느림, 영혼, 서울(Slow, Soul, Seoul)’이라는 애매하고 평범한 제목이 달리게 됐다. 나중에 서울수목원 같은 제목을 보게 되면서 그냥 강하게 밀어 붙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노란색—차도 중앙선의 노란색은 차도를 다른 공간과 구별하는 가장 강한 지표다. 또한 보행을 유도하는 점자 블록의 노란색은 차도와 보도의 분리 또는 보행 유도선으로 쓰이므로 여러모로 우리의 설계와 잘 맞는 듯 보였다—은 우리가 통상 애벌레라는 대상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색이기도 했다. 우리가 만든 개념 다이어그램 중에 노란선들이 서울역 고가 밖으로부터 서울역 고가로 밝게 모여드는 다이어그램이 있다. 우리가 노란색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느림, 애벌레, 노란색, 걷기, 쉬기, 머무르기, 3.5m, 살아있는 유기체, 17m, 13톤, 거더(girder), 슬래브, 아스콘, 복층 패스(path) 또는 복층 데크, 멋지게 보이기, 바람, 초지, 모듈, 우물 마루, 그늘 등이 우리가 염두에 두었던 설계 어휘였다. 14 좁아서 어떡할 건데 서울역 고가의 슬래브는 두께가 25cm밖에 되지 않고 난간과 거더 높이를 더해도 120cm에 불과하다. 폭원 100m에 달하는 한강로에서 볼 때 그리 인상적인 시각 대상물이 될 수 없다. 아마 얇은 종이판 같은 것으로 읽힐 것이다. 고가 상부 슬래브 위에 키 큰 나무를 심는 것도 우스울 것으로 판단했다. 비례가 안 맞을 게 뻔했다. 그럼 나무는 안 심는다 치고 저 얇아 빠진 구조물은 어떻게 하지. 빈약한 슬래브와 더불어 서울역 고가의 폭도 걱정이 됐다. 옛날 서울역 광장으로 내려가던 램프 도로가 있던 부위처럼 넓은 곳도 있긴 하지만, 10m의 폭이 대부분의 구간이다. 800m의 길을 걷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또 걷기만 하려고 17m를 오를 사람은 없을 테니 걷고 쉬고 머무르는 모든 공간 수요를 다 담으려면 충분한 폭원이 필요했다. 걷기엔 폭원 10m에 녹지를 일부 두어도 나쁘지 않다. 잠시 쉬는 공간으로도 아주 좁지는 않다. 하이라인이나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도 폭이 10m 내외인 구간이 꽤 있다. 하지만 머무르는 공간까지 포함하려면 폭 10m로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최소 현재 폭의 두 배 정도는 필요하다고 보았다. 접근 동선과 보행 밀도를 시뮬레이션 해보면 서울역 고가는 대체적으로 모든 구간이 좁다. 특히 한강로 구간에서 보행 적체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강로 구간은 숭례문을 바라보기에 최고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한강 쪽의 한강로가 꽤 그럴듯한 개방감을 준다. 때문에 조망을 하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필히 머무르고 쉬는 장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그 구간이 10m의 여유밖에 없는 한정된 고가 상부라는 점이다. 하이라인과 프롬나드 플랑테를 잠시 되돌아보자. 하이라인이나 프롬나드 플랑테의 폭은 평균 12~15m가 넘는 구간이 많다. 운이 좋은 경우다. 10m 내외의 구간도 인접한 진출입 동선이 많아서 보행 적체 없이 무난히 보행의 흐름을 소화한다. 폭원에 여유가 있으니까 충분한 녹지와 쉬는 공간을 만들어주고도 오가는 보행자를 위한 보행로는 넉넉한 폭원을 유지한다. 우리의 서울역 고가가 하이라인과 다른 맥락에 있다는 것을 간명히 보여주는 내용이다. 15복층의 라바 데크(Larva Deck) 우리는 복층의 보행로인 더블 데크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더블 데크의 설치 여부는 의외로 초기 개념 회의 때부터 등장했다. 건축 파트너들도 전폭적으로 찬성했다. 좁은 폭원의 문제를 더블 데크가 해결할 수 있는데다가, 빈약한 서울역 고가의 몸체를 키울 수 있는 방안이라 보았다. 우리가 취하려는 라바의 개념과 형태적 유사성도 잘 맞았다. 복층의 보행 패스는 두툼한 노란색 피부를 두르고 시각적 랜드마크가 되어, 한강로에서 바라보면 마치 느린 애벌레 한 마리가 꿈틀꿈틀 기어가는 모습으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블 데크의 구조 문제는 지게 모양의 보강 기둥으로 해결했다. 복층 데크의 또 하나의 장점은 그늘을 줄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키 큰 나무를 심지 못한다고 보았을 때 서울역 고가의 상부는 뙤약볕에 노출되게 된다. 건물이 바로 인접해있는 프롬나드 플랑테나 하이라인은 주변 건물이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에 상부에 키 큰 나무를 많이 심지 않아도 좋다. 키 큰 나무를 심은 곳도 있지만 그런 경우 고가 철도 하부의 아치 두께가 충분해 키 큰 나무를 심더라도 비례가 생뚱맞지는 않다. 우리가 제안한 더블 데크는 아래층 데크에 그늘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을 마련해준다. 우리의 의욕에 비해 더블 데크의 의도와 의미는 심사위원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CG 상의 실수였을수도 있는데, 더블 데크가 건물처럼 읽히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전체 조감도가 실수였다. 서울역 고가가 전체적으로 읽히고 더블 데크가 복층 보행 패스로서 부분적으로 강조되는 방식이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의 조감도는 고가에 건축물을 얹어 놓은 것처럼 읽히는데다가 더블 데크가 너무 강조된 느낌이었다. 문제를 알았을 때는 이미 조감도가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형태를 꼼꼼히 뜯어보면 알겠지만, 더블 데크는 복층의 멋진 보행로일 뿐 아니라 숭례문을 바라보는 최고의 조망 스탠드 겸 소규모 문화 공연이 가능한 행잉 스튜디오다. 이렇듯 우리에게 더블 데크는 꼭 필요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의도가 잘 읽히지 않았을 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 같은 것이기도 했다. 더블 데크의 유려한 매스와 디테일은 같은 팀원이었던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서예례 교수가 완성했다. 16 하이라인과 비슷하다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작품 발표를 할 때 하이라인에 대한 얘기를 듣거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발표 순서가 오후로 바뀐 탓에 한참을 기다렸다 발표를 시작했다. 발표장에는 발표자인 나와 서예례 교수가 함께 들어갔다. 열심히 발표를 했다. 연습도 많이 했고 발표문을 몇 번이나 고쳐 썼는지 모른다. 동시통역을 한다기에 미리 한글 원고도 준비해 통역사에게 전달했다. 발표가 끝나고 질문이 시작됐다. 도시 분야의 한국 심사위원의 질문이 있었고 답변을 했다. 두 번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공공 건축가라는 심사위원이었는데 그 양반 질문이 묘했다. 질문을 의역하지 않고 직역해보면, ‘하이라인과 유사하게 보이는데 왜 하이라인처럼 디자인했느냐’는 것이었다. 하이라인과 유사하게 본 것도 의아한데 왜 그렇게 했느냐 하니 참 황당했다. 같잖은 질문이었지만 그래도 성의껏 답변을 했다. 내 답변은 대충 이랬다. “하이라인과 유사하게 보인다는 건 우리에게 그리 나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하이라인의 성공으로 볼 때 칭찬으로 들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어쨌든 우리 안은 하이라인과 많이 다릅니다. 같을 수가 없지요. 주변 공간의 맥락이 다르고 바탕이 되는 구조체의 제원도 많이 다릅니다. 아마도 우리가 고가 상부에서 표현한 초지로만 구성된 CG의 뷰들이 다소 하이라인의 이미지들과 유사한 까닭에 그리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안은 다릅니다.” 스페인 심사위원의 질문은 질문이라기보다 지적 같았다. 성의껏 답변하면 예의상이라도 고개를 끄덕인다든지 알았다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반응이 썩 마뜩찮았다. 그때 하이라인에 대한 건축계의 부정적 인식이 서울역 고가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하이라인 공모전 때 자하 하디드 같은 건축가의 안이 아닌, 조경가 제임스 코너의 안이 선정된 것에 대한 건축계의 불만이 대단하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게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십 년 가까이 지난 이 시점에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면 안 되는 건데, 그 얘기를 내가 듣고 있었다. 절대 다시 하이라인이어서는 안 돼, 조경가가 풀어서는 안 돼 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은 느낌이랄까.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때 분위기는 확실히 그랬다. 이유를 정말 이해할 수 없지만, 서울역 고가가 하이라인의 재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건축계에서 있었던 건 확실하다. 처음 서울역 고가의 보행화가 하이라인의 벤치마킹에서 시작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추진하고 마무리하는 건축계의 입장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서울역 고가 설계에서 건축과 조경의 대결 구도는 피해야 했다. 누가 되었든 순리대로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좋았다. 나야 물론 조경쪽에서 하는 게 순리라고 보지만, 더 잘하는 사람이 건축가라면 상관없다. 미리 건축가가 해야 한다고 정해놓고 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좋았다. 17 개념과 슬로건의 차이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위안을 해본다. 건축 파트너들과 함께 개념에 대해 토의했던 오랜 논의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 매끄럽기보다 싸우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덕분에 개념과 설계에 대한 생각을 팀원들과 함께 리뷰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설계 개념, 이리 많이 쓰면서도 정의되지 않은 어휘가 또 있을까 싶다. 개념이란 설계를 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 설계를 시작하고 발전시키며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아니면 그 자체가 설계 내용의 몸체를 이루는 어떤 것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설계 개념과 슬로건 또는 캐치프레이즈를 쉽게 혼동한다. 우리가 서울역 고가에 내세웠던 ‘Slow, Soul, Seoul’은 개념일까 아니면 슬로건일까. 슬로건이다. 슬로건은 그냥 작품 제목 같은 것이다. 개념이 슬로건과 다른 점은 개념은 설계를 직접적으로 관장하는 도구이고 수단이라는 것이다. 설계를 직접적으로 관장하거나 돕는다는 말은 설계의 선을 내고 형태를 잡는 데 개념이 활용된다는 것이다. 설계에 사용되는 선과 형태를 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은 잘못 끌려왔거나 아예 처음부터 있지 않았던 것이다. 슬로건은 설계의 선을 내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가 없고 관심도 없다. 슬로건은 밖으로 내놓기 위한 것이고, 개념은 안에서 쓰는 것이다. 개념은 밖으로 나올때도 있고 그냥 사라질 때도 있다. 개념은 나타나는 게 목적이 아니고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다. 슬로건은 나타나야 하고 개념은 쓰여야 한다. 서울역 고가에서 우리가 사용한 설계 개념은 ‘애벌레’다. 애벌레가 갖는 특성, 보드랍고 유연하며 느린 움직임들은 실제 서울역 고가의 선을 내는데 사용됐다. 더블 데크의 형상이 한강로에서 볼 때 두툼한 부드러움의 노란색 애벌레로 읽혔으면 했으니, 애벌레는 개념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 개념과 슬로건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둘 다 필요하다. 비록 설계를 직접 도울 수는 없어도 슬로건은 사람들을 작품에 주목하게 하는 가장 효율적 수단이다. 슬로건은 홍보다. 우리는 ‘비창(Pathetique)’이란 제목을 통해서 베토벤의 작품을 접한다. 비창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지칭하는 제목이자 슬로건이다. 쉽게 얘기해 설계가 끝나고 모여서 작품을 무엇으로 부를까 생각하고 있다면 슬로건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념은 나무, 달, 지렁이, 땅벌레 등과 같이 구체적이어야 하고 눈에 쉽게 그리거나 상상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꼭 살아있는 대상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동산 또는 오름, 계곡, 폭포, 강, 바다 등과 같이 지형일 수도 있고 다리, 탑, 계단 같은 인공 구조물일수도 있다. 바다 보다 아틀란틱(Atlantic)이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한 개념이 될 수 있다. 파리의 아틀랑티크 정원(Le Jardin Atlantique)은 ‘대서양으로 향하는 TGV 역의 지고지순한 소망’을 슬로건으로 하고, 개념으로 대서양의 파도와 해안의 바람을 담아냈다. 정원의 공간 곳곳에 대서양을 향한 꿈과 소망이 오롯이 담겨있다. 18 청심 홍심 우리 조경의 경우, 슬로건을 개념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건 경계해야 할 일이다. 화합, 지속가능한 생태, 그린 코리더 등과 같은 건 아무래도 슬로건이지 개념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늘 슬로건과 개념의 구분이 명확한 것은 아니어서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구분이 어려울 때도 있다는 걸 덧붙여 둔다. 우리 설계 중에 독특한 사례가 하나 있는데, 2014년 여름에 한 조각 공원 설계다. ‘청심’이라는 재단에서 추진한 조각 공원 청심아트파크(Chung-Sim Art Park)다. 청심은 아마도 우리 회사의 프로젝트 중에 가장 화려한 그리고 가장 다양한 설계 개념과 슬로건으로 무장한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이미 몇몇 유명 조각가의 작품이 선정된상태였기 때문에, 거꾸로 선정된 조각 작품들을 설명할 수 있는 세부적인 설계 개념과 그것들을 하나 또는 여럿으로 묶는 슬로건이 필요했다. 조각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약 1.2km의 순환 동선에서, 가는 길은 예술가의 삶과 죽음을 대상으로 예술가의 한정된 삶, 즉 사랑과 짧은 삶에 대한 아쉬움과 죽음을, 오는 길은 예술가가 죽고 난 이후 영원으로 승화된 예술의 세계, 즉 균형, 대칭, 조화 등을 다뤘다. ‘예술가는 죽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게 청심아트파크가 지향하는 통通 슬로건이었다. 가는 길에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 뮤즈, 자연, 뱀 그리고 죽음을 의미하는 것들, 어둠, 갇힘, 또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거울, 빛, 비침 등이 개념으로 사용됐다. 오는 길에는 영원한 예술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들 즉, 예술의 요소, 균형, 대칭, 절제, 조화 등의 개념—물론 균형, 대칭 등은 아직 추상적인 어휘들이어서 개념이 될 수 있을까 싶지만, 이 프로젝트의 경우는 무조건 개념으로 사용해야만 했다—을 물, 돌, 나무들을 소재로 사용했다. 청심 프로젝트는 넘치는 슬로건과 무지막지한 개념을 무차별로 제한 없이 마음껏 전개해도 좋았다. 오히려 개념과 슬로건의 ‘지나침’이 요구되는 프로젝트였다. 우리 안이 채택이 되지 않아서 결국 청심은 홍심이 돼버렸지만, 결과 여부에 상관없이 설계 과정을 가장 즐겼던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개념은 평범한 설계에 번득임이 깃들게 하고, 슬로건은 이름 없는 설계에 족보를 만들어준다. 어떻게든 어깨를 견주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의 우리 설계 분야에서,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서, 그나마 개념과 슬로건 만들기는 큰 위안이다. 진양교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조경학과 및 도시지역계획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강원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1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2년부터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열고 실무의 최전방을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다. 2010년 봄부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전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주요 설계 작품으로 하늘공원, 한강 반포공원 등이있으며, 저서로 『기억과 상징으로의 여행』, 『건축의 바깥』 등이 있다.
    • 진양교[email protected] / CA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 2016년08월 / 340
  • [재료와 디테일] 그림자
    그림자는 빛이 지닌 속성인 직진성에서 연유한다. 절대적이며 원초적인 속성을 지닌 빛이 가던 길을 마저 가지 못하고 부딪쳐 그림자라는 감각적인 현상학적 물체를 만들어낸다. 무릇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존재의 이유를 막론하고 세상에 태어나면생명의 상징을 갖게 되는데, 그림자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림자에 대한 여러 이야기는 신화에서 과학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종교적 상징, 심리학, 문화, 예술 등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각기 다르지만, 그림자의 생명성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살아있지 않지만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 참으로 기이하면서 신비롭다. 설계 도면을 그리다 마지막에 수목과 시설물의 그림자를 넣고 나면 무언가 꽉 채웠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 그림자가 가장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이때다. 설계가 조금 덜 됐다고 생각되지만, 그림자를 넣고 나면 도면이 꽉 차 보이니 눈속임을 할 수 있다.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뿌듯하게 집으로 향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막상 협의를 하러 가서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이라도 마주하게 되면 여지없이 처참하게 당하고 만다. 그림자가 장식으로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같은 삼복더위에 바깥에서 마주하는 나무 그림자는 에어컨의 시원함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그늘의 방향이 변하니, 그 위치를 예측해 설계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우리를 위해 뜨거운 태양과 격렬하게 마주하고 있는 나무란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림자에게 약간의 고마움을 느낄 뿐. 시설물을 설계할 때면 형태를 만들고 색을 입히고 재료를 덮고 난 후, 그 모양에 혹해 빠져들 때가 있다. 나름대로 비례도 좋고 깔도 좋아서 명품이 될 것 같은 예감에 설레기도 한다. 그렇지만 막상 바깥에 나가면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게 된다. 빛이다. 빛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빛은 태양 고도에 따라 변하기에 하루 또는 일년 내내 같은 모습으로 있을 수 없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www.studio89.co.kr
    • 이대영[email protected] /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 엘 소장 / 2016년08월 / 340
  • [공간 공감] 정독도서관의 여름 뜰
    ‘정독’이라는 어감은 어쩐지 좀 무겁다. 강한 받침이 연속될 뿐 아니라 혀뿌리가 목구멍을 탁 막으면서 나오는 소리로 끝나는지라, 여운도 없이 냉정하기만 하다. 더욱이 ‘도서관’이라는 좀 지루한 느낌의 단어가 이어지다보니, 이 공간에는 참 무거운 공기가 흐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답사를 위해 찾은 일행의 발걸음도, 잡지에 실을 만한 장면을 찾아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도 좀 크게 느껴져 고요히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살며시 미안함이 느껴졌다. 그러니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이 공간에 그대로 스며 있다는 생각도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스스로를 수형자로 여기고 마치 감옥에 갇힌 듯 공부에 열중하는 이들에게 바깥의 뜰은 어떤 의미일까? 삼십 년도 더 지난 고교 시절, 새벽잠을 설치고 도달한 도서관 앞 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던 열여섯 소년은 그 뜰을 기억하지 못한다. 바르게 읽는다는 뜻의 정독正讀도서관에서 중첩된 시간을 읽어내는 일은 즐겁다. 1976년에 경기고등학교가 지금의 강남 삼성동으로 이전하면서 그 터에 지어진 것이 오늘의 정독도서관이다. 벌써 40년이나 되었다. 당시 교사校舍로 쓰이던 건물들이 보수되어 도서관이 되었고, 학교 운동장으로 사용되던 곳을 정원으로 만든것이 이 뜰의 역사다. 도서관으로 1977년 1월에 개관했으니, 1년 미만의 공사를 마치고 만들어진 뜰이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개관 당시 도서관보의 표지에 건물과 뜰의 조감도가 그려져 있는데,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위성 사진에서 보면 마치 한자 ‘서울 경景’을 본뜬 것 같은 정형적인 평면 구조가 선명히 드러난다. 대부분의 녹지는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비워져 있고, 그 둘레를 따라 향나무며 몇몇의 낙엽수들이 나이 든 모습으로 서 있어 공간에 위엄을 드러낸다. 나무 기둥의둘레가 오십 센티미터쯤 되는 벚나무에서 그간 뜰을 스치고 간 시간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오로지 걷는 것과 앉아서 머무는 것만 허용되는 이 뜰은 어쩌면 북촌에 남겨진 고성과 같은 곳이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노들섬, 공모 과정을 실험하다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 3차 설계공모
    최근 유럽에서 파격적인 방식으로 도시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 사례가 있다. 바로 2014년 11월에 시작된 ‘파리 재창조Réinventer Paris’다. 파리 최초의 여성 시장인 안 이달고Anne Hidalgo와 장루이미시카Jean-Louis Missika 부시장의 주도 하에 파리 시는 시 소유의 크고 작은 유휴 부지에 대한 프로젝트 안을 공개 모집했다. 언뜻 보면 여느 공공 개발 사업과 비슷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독특한 게임의 법칙이 있다. 시 소유 토지를 민간에 매각하거나 공공이 직접 사업 주체가 되지 않을 것. 파리 시에 가장 필요한 용도, 혁신적인 건축, 효과적인 운영 방식, 실현 가능한 파이낸싱 전략을 제안하는 팀을 선정할 것. 단, 시의 재원에 의존하지 않을 것. 시는 민간의 주도로 개발 수행이 가능하게끔 여건을 조성하고 커뮤니티를 동참시킬 것. 이러한 룰에 따라 23개의 대상지를 선정했고, 2015년 말까지 개발 안을 접수했다.1 가장 높은 공공 용지 입찰가를 제시한 디벨로퍼에게 땅을 매각하고 개발을 규제하는 소극적인 도시 관리 기법이 아니라, 가장 혁신적인 설계·운영·파이낸싱·커뮤니티 참여 패키지를 고안한 팀에게 개발권을 주고 파리 시는 이 팀을 위한 러닝메이트가 되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공모 방식의 연장선에 ‘노들꿈섬 공모’(이하 노들섬 공모)가 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2005년 서울시가 노들섬을 매입한 후, ‘노들섬 예술센터 국제 아이디어공모’(2005)부터 ‘노들섬 예술센터 1차 지명초청 설계공모’(2006), 이후 ‘노들섬 공연예술센터 2차 지명초청 설계공모’(2008), ‘한강예술섬 조성공사 설계용역’(2009), 또 ‘한강예술섬 설립·운영에 관한 조례 제정 및 폐지’(2010), 그리고 조성 사업 보류 결정(2012)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에 걸쳐 릴레이식 논의가 진행되었다. 노들섬 총괄계획가 서현 교수에 따르면 3차에 걸친 노들섬 공모는 시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관행에 대한 반성과 공모 과정 자체를 혁신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엘리트가 나서서 어떤 종류의 건축물을 집어넣고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한 후, 이를 통해 결과물을 결정하는 것은 구시대적 방식”이다. 그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노들섬을 위한 새로운 공모 방식을 고안하는 데 1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다. 그 신호탄으로 2015년 8월에 마무리된 ‘1차 운영구상 공모’에서 “합리적인 상상력을 통해 노들섬에서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았고, 같은 해 11월 ‘2차 운영계획ㆍ시설구상 공모’에서는 이런 상상력을 어떻게 노들섬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에 적용하느냐는 고민 끝에 어반트랜스포머(대표 김정빈 교수) 팀의 ‘밴드 오브 노들’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6월, ‘3차 공간ㆍ시설조성 공모’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를 통해 선정된 공간 조성 팀은 2차 공모 당선 팀과의 협의를 통해 “어떻게 바둑의 룰을 바둑판 위에 올려놓을까”를 결정하게 된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 대학교 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을 가르치고 스튜디오 수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김세훈[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 2016년08월 / 340
  • 3등작: 서울 그린 닷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 3차 설계공모
    노들꿈섬, 네버랜드 노들꿈섬은 피터팬의 네버랜드처럼 때 묻지 않은 기억과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반면 현재의 서울은 복합적인 고밀도 개발을 통해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지향하는 ‘콤팩트 시티’로 빈틈없이 개발되어 왔다. 서울이 살기 즐겁고 꿈꿀 수 있는 도시, 진정한 지속가능한 도시로 그려져 나가기 위해서는 빼곡하고 복잡한 도심을 변화시켜 줄 기폭제가 필요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네버랜드인 노들꿈섬에서 그린 닷 프로젝트Green Dot Project는 단계적인 계획을 제시하며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디자인 모델이자 플랫폼을 제안하고자 한다. 노들꿈섬은 문화적, 상업적, 사회적 수요와 용도에 따라 유기적으로 반응하고 변화할 것이며, 그린 닷 프로젝트는 새로운 도시적 삶의 방식을 제안할 것이다. 그린 닷 마스터플랜 그린 닷은 크게 플라자Plaza, 게이트웨이Gateway, 빌리지Village, 비치Beach, 폰드Pond, 포레스트Forest라는 여섯 개 장소로 구성된다. 이 안에는 모임, 작업, 문화·예술, 스포츠, 생태, 교육, 친환경 에너지 시설, 농장, 컨벤션, 휴식, 쇼핑 등을 위한 공간이 형성될 것이다. 이와 같은 공간을 통해서 노들섬은 다양한 행사, 기획, 활동의 중심이 되고 여러 사람들의 활발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도심 속 또 하나의 특별한 도시가 된다. 디자인 전략 오늘날 우리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많은 양의 자원을 소비하며 생태계의 심각한 불균형을 가져오고 있다. 지속가능성, 경제성, 사회적 가치, 유연성, 친환경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여섯 가지 디자인 전략을 제안한다. 노들섬은 현대의 문제와 도전에 유연하게 대응할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도시의 요구를 예측할 것이다. 또한 문화·예술의 발전을 장려하는 플랫폼으로서 시민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체험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노들섬은 현대 도시의 이상적인 디자인 모델이 되고자 한다.
    • group8asia, 남성택, Boydens engineering, Ney + partners / group8asia, 남성택, Boydens engineering, Ney + partners / 2016년08월 / 340
  • 2등작: 노들 플랫폼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 3차 설계공모
    문화 네트워크의 플랫폼 노들섬은 한강을 넘어 도시로 확장되어 도시적, 문화적, 자연적 네트워크의 구성 요소가 되어야 한다. 도시 속 고립된 섬이 아닌, 시민들이 쉽게 다가가 점유할 수 있는 문화 네트워크의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도시 네트워크의 회복: 노들섬은 한강으로 나뉜 강북과 강남의 연결점에 놓여있다. 이곳에 도시와 문화 시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광장의 역할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보행자가 섬에 진입하고 서로 연결되는 도시 네트워크가 구성된다. 자연 네트워크의 흐름: 옥외 전시·휴식·이벤트 공간, 자연 공원, 산책로 등을 연계시킨 자연 네트워크를 조성한다. 문화 네트워크의 중심: 문화의 감상·창작·정보 제공·체험 등을 통해 작품과 관객이 교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조를 제공한다. 공연장, 창작 지원 시설, 다목적홀, 전시장, 미디어 센터 등과 연계된 문화 네트워크의 새로운 중심 공간을 구성한다. 인터랙티브 문화 스테이지 노들섬은 서울의 문화·음악·예술을 담는 새로운 그릇으로서 스테이지 역할을 해야 한다. 노들섬을 변형해 랜드스케이프, 이벤트, 퍼포먼스, 콘서트, 문화 창작 등 다양한 코드의 음악적·문화적 결합을 가능하게 만드는 문화적 광장을 구현한다. 문화, 예술, 자연, 도시 등다양한 코드를 설정해 노들섬을 입체적인 문화 스테이지로 변모시킨다. 이를 통해 노들섬은 자연을 넘어 음악적 깊이와 젊음의 문화를 만들어 서울의 문화 코드를 대표하는 다차원적인 장소가 된다. 또한 다양한 예술적인 채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음악 광장이 될 것이다.
    • 운생동, 서로아키텍츠, KnL 환경디자인, EMA / 운생동, 서로아키텍츠, KnL 환경디자인, EMA / 2016년08월 / 340
  • 1등작: 재구성된 땅, 노들마을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 3차 설계공모
    오랫동안 고립된 노들섬을 어떤 환경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열어줄 것인지가 이번 공모의 핵심이다. 우리는 노들섬의 땅을 재구성해 한강대교와 한강변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자연환경, 서울의 풍경이 어우러지는 노들마을을 제안한다. 기존의 양녕로와 노들섬 사이의 레벨차를 이용해 도로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플랫폼을 제안한다. 이 새로운 플랫폼은 상층과 하층으로 나뉘는데, 상층에는 유연한 공간 활용을 통해 다양한 문화 행사를 담을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와 녹지를 문화 시설과 함께 배치한다. 다목적 스탠드는 하층의 노들마당과 연결되어 상층을 하나의 큰 문화 마당으로 만든다. 양녕로 동측에는 노들숲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 하층에는 대중예술 공연장과 다양한 창작·창업 지원 시설, 광장, 보행로, 녹지 등을 배치해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루어지는 노들마을을 조성한다. 또한 보이드, 계단, 엘리베이터 등 수직 동선을 배치해 상층과 하층을 물리적·시각적으로 연결한다. 설계 개념 연결: 섬의 상단부 외곽과 하단부를 잇는 두 가지 루프를 조직한다. 이를 통해 노들마당과 노들숲이 연결되어 한강대교부터 한강변까지 이어지는 복합적인 자연적·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열기: 섬 상단부의 서측에 노들마당을 배치해 한강을 향한 조망을 확보한다. 한강과 서울의 풍경을 노들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 이벤트의 배경으로 만든다. 프로그램: 노들섬의 자연 경관을 되살리고 필요한 공공장소를 적절히 배치해 시민에게 열린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섬의 서측에는 대중음악 공연장, 창작·창업지원 시설, 노들마당을 배치한다. 동측에는 다목적 홀, 강의실을 배치하고 노들숲을 보존·개선해 연결한다.노들숲과 섬의 하단부에는 생태 교육 센터, 전망대, 카페, 야외 공연장, 노들 비치, 자전거 센터 등이 마련되어 시민들은 섬 곳곳을 탐험하고 즐길 수 있다.
    • Studio MMK, 박태형 / Studio MMK, 박태형 / 2016년08월 / 340
  •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3차) 설계공모 NODEUL DREAMS ISLAND MASTER PLAN AND SPACE·FACILITY DESIGN COMPETITION: THE 3RD STAGE
    설계공모 경과와 심사평 6월 22일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3차) 설계공모의 당선작으로 Studio MMK와 박태형의 ‘재구성된 땅, 노들마을’이 선정되었다. 이로써 2015년 6월에 시작해 총 3단계로 진행된 노들꿈섬 공모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2015년 6월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운영구상(1차) 공모가 열렸고, 103개 팀 중 10개 팀이 선정됐다. 같은 해 9월, 10개 팀을 대상으로 진행된 운영계획·시설구상 공모(2차)에서는 어반트랜스포머 팀(대표 김정빈)의 ‘밴드 오브 노들’이 당선됐다. 밴드 오브 노들의 목표는 노들섬을 ‘음악을 중심으로 한 예술 창작 기지’로 만드는 것이다. 서울시가 추진했던 ‘노들섬 예술센터’(2005)나 ‘한강예술섬’(2009)처럼 음악을 콘텐츠로 삼고 있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그간 서울시는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처럼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강조된 오페라 극장, 야외무대 등을 조성해 노들섬을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 공연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반면 서현 교수(노들섬 총괄계획가)의 말에 따르면, 밴드오브 노들은 “노들섬이 생계 걱정 없이 음악을 할 수 있는 실험실이자 억눌린 마음을 표출하는 해방구가 되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음악을 매개로한 공공 문화 예술 프로그램과 여러 분야가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서현 교수는 “노들섬 예술센터가 한강변에서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자 했다면, 밴드 오브 노들은 한강과 서울의 풍경을 노들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 이벤트의 배경으로 만들 것”이라며기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3차) 공모는 노들섬을 크게 건축 가능 영역, 1등급 비오톱 영역, 하천 부지, 도로로 나누어 다뤘다. 이를 바탕으로 시설 배치, 동선, 조경, 친환경 계획에 대한 설계 지침이 마련됐다. 대부분 섬의 동측에 위치하고 있는 1등급 비오톱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용이 빈번한 시설(공연장, 창작·창업 지원 시설)은 섬의 서측에, 상대적으로 이용률이 낮은 다목적 시설은 동측에 배치해야 했다. 보행로와 차도 역시 비오톱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에서 계획해야 한다. 양녕로로 인해 동서로 분리된 섬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였다. 동서측뿐만 아니라 노들섬의 상단부(양녕로 레벨)와 하단부(노들섬 지면 레벨)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동선 계획이 요구됐다. 특히 섬의 서측에 조성되는 보행로 사이에는 음악 공연 등 소규모 활동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야 한다. 엘리베이터 등의 보행 약자를 위한 수직 동선의 조성 유무도 심사 대상이었다. 이번 공모의 핵심 목표는 2차 공모의 당선 팀이 제안한 7개의 프로그램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공연장의 경우 어반트랜스포머 팀이 요구한 면적과 세부 기능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특히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가변성’ 있는 공간 조성이 중요한 평가요소로 작용했는데, 이는 많은 작품들이 비슷한 설계전략을 취하게 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해 서현 교수는 “확장이 가능한 공간을 조성하도록 유도한 지침이 격자 혹은 테트리스 타입의 구조물을 제안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1등작과 2등작 역시 격자 타입의 구조물을 제안했는데, 접근 및 배치 방식이 달랐다. 이어서 그는 “1등작은 양녕로와 같은 레벨의 판을 조성하고, 그 아래에 모든 공간을 집어넣었다. 이로 인해 공간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강점이다. 2등작은 대부분의 작품이 노들섬을 동서로 나눈 것과는 다르게 남북으로 나누어 해석한 것이 독특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시설의 활용도가 떨어졌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앞으로 서울시는 2·3차 당선자와 협의 및 조정 과정을 거쳐, 기본 및 실시설계를 위한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성공적인 노들꿈섬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밴드 오브 노들의 파일럿 테스트도 노들꿈섬 완공 목표 시점인 2018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다음은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3차) 설계공모의 심사평의 전문이다. “노들섬과 관련해 2005년 이후 지난 십 년의 과정은 우리 사회가 바라보고 있는 지향점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대규모 문화 시설인 ‘노들섬 예술센터’ 조성을 위한 두 번의 국제 설계공모에도 불구하고, 여러 내외부적 문제로 인해 ‘한강예술섬 설립·운영에 관한 조례’마저 폐기되면서 동력을 잃고 중단됐다. 문화조차도 규모와 경제 가치로 평가되는 시절이 지나자, 한편에서는 시민 사회가 주도하는 자생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라났다. 이후 2년여에 걸친 다양한 시민, 전문가의 의견 수렴 과정과 더불어 노들꿈섬을만드는 운영구상(1차), 운영계획·시설구상(2차), 공간·시설조성(3차)에 이르는 긴 공모 과정이 있었다. 이는 최고의 랜드마크가 될 작품을 선정하는 일이 아니라, 시민과 다양한 분야가 참여함으로써 경험과 사유가 집적되어 만들어지는 민주주의 실험 과정의 결과물이다. 심사위원회는 총괄계획가와 2차 공모 당선자인 ‘밴드오브 노들’ 운영 팀에게 공모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고, 자체 논의를 거처 다음과 같은 심사 기준을 갖게 됐다. 첫째, 새로운 시설은 시대의 흔적을 담을 수 있는 운영 전략을 바탕으로 조성되어야 한다. 둘째, 미래의 변화에 대해 유연하면서도 현재에도 충분한 완성도를 갖추고 작동하는 시설이어야 한다. 심사에 앞서 제출된 48개 작품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전 기술 심사에서 지침의 내용을 위반한 작품들이 일부 보고 되었으나, 실격 사유는 아니었기 때문에 심사대상에 포함했다. 수상작의 범주에 들 경우 감점 여부를 재론하기로 했으나, 이에 해당하는 작품은 없었다. 심사위원회는 매 단계 심사에서 위원별로 복수의 수상후보작을 추천했고, 단 한 표를 받은 작품의 경우에도 추천한 심사위원의 충분한 의견을 듣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듭했다. 심사위원회는 7개의 상위 수상작 외에 세 작품을 추가 선정했는데, 공모가 지향하는 목표에부합하는 수준 높은 작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념비적인 형태보다는 프로그램에 반응하는 고유한 결합 방법을 가진 작은 단위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한 작품들이 많았다. 자연환경과 시설, 사람들의 활동이 융합되어 시간의 흐름 속에 덧씌워져가는 서사적 풍경을 이루는 작업들이 심사위원들의 공감대를 얻었다. 좋은 작업들 사이에서 당선작은 도시와 강, 자연환경 사이에서 보다 명확한 태도와 실현 가능성 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결정되었다. 재구성된 땅, 노들마을은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가변적인 공간 모듈을 배열하되 노들섬의 중앙 도로인 양녕로 높이에 맞는 새로운 레벨을 만들었다. 이 레벨을 경계로 하부의 수평적으로 확장되는 공간과 상부의 단순한 볼륨이 대비되며 이루는 공간 구조의 가능성이 높이 평가됐다. 근소한 차이로 2등이 된 노들 플랫폼은 자연지형을 연상하는 작은 픽셀들이 모여 도시와 강을 배경으로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순환 동선과 다양한 레벨의 옥상의 활용성이 지적됐다. 3등작인 서울 그린 닷은 투명성을 갖는 철골 프레임으로 건축과 자연의 경계를 흐리며 시적으로 통합시킨 수준 높은 작업이다. 하지만 계획 구역 전체를 둘러싼, 완결된 형태가 아쉽다. 노들꿈섬 공모는 건축가의 개성이 강조되거나 화려한 형태를 뽑는 경연이 아니다. 다양한 계층의 의견 수렴을 통해 운영 및 시설 계획이 만들어졌고, 예측 가능한 방법과 민주적 절차에 의해 건축과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경험을 축적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당선자는 서울시와 운영 팀과의 수많은 조정 과정을 남겨두고 있다. 새로운 방법은 늘 낯설고 어렵다. 지금 계획된 프로그램을 담기에 최선인 건축이라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이다. 이제부터 중요한 일은 잘 만들 수 있도록 건축가에게 끊임없는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일이다.” 1등작재구성된 땅, 노들마을Reconfigured Ground, Nodeul Maeul Studio MMK, 박태형 2등작노들 플랫폼Indeterminate Platform 운생동, 서로아키텍츠, KnL 환경디자인, EMA 3등작서울 그린 닷Seoul Green Dot group8asia, 남성택, Boydens engineering,Ney + partners 가작노들, 언 플러그드Noduel, (Un) Plugged HLD, Ilshin Architects and Associates, 유은정, 정승영, Mingyu Yin 가작노들마당Nodeul Madang Studio Akkerhuis, Buro Happold International (Hong Kong), Theatre Projects Consultants, 건축공방, Anne-Sophie Verriest 가작수석Susok NAAD, François Bourgine, Viviane Le Deunff, Elia Viesi,Teizo Okumura 가작시민을 위한 섬Citizen’s Stage Juhyunkim Architecture 심사위원 특별상음악 회랑The Music Cloister PlaceMakers 심사위원 특별상노들 빌리지Nodeul Village 동심원조경, PRAUD, salmworkshop, 예창건축사 심사위원 특별상컬티베이팅 터레인Cultivating Terrain Urban Terrains Lab, 건축실험실, Studio OL, 인터조경, 건민
    • 조한결, 김모아 / 2016년08월 / 340
  • 영종하늘도시 씨사이드 파크 Yeongjong Sky City Seaside Park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으로 지정된 송도, 청라, 영종은 국제 기업 도시로서 아시아의 새로운 허브로 발돋움하고 있다. 하지만 영종하늘도시에는 송도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와 달리 차별화된 공간이 전무해 새로운 랜드마크 도입이 시급했다. 이에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위해 조성됐던 해안 도로를 중심으로 하는 씨사이드 파크Seaside Park를 계획했다. 폭 20m의 해안 도로는 바다와 맞닿아 있어 밀물과 썰물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갯벌의 모습, 석양이 비치는 서해의 웅장한 풍경 등 이색적인 경관을 제공한다. 다양한 해변의 경관과 이를 활용한 수변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씨사이드 파크는 영종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해안 도로 길이가 7.8km에 달하는 구 해안 도로는 걷는 내내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다채로운 공간으로 조성됐다. 해안 도로는 공간의 성격에 따라 경관 체험형, 생태 경관형, 여가 유희형으로 분류된다. 경관 체험형 구간에는 단순한 바닥 포장과 수목 및 시설의 배치가 이루어졌다.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구간에 월파방지벽—파도가 강하게 충돌하는 것을 막아주는 벽—, 스카이 데크와 같은 상징적 시설을 도입해 공간의 장소성을 제고했다. 높이 1.5m의 월파방지벽에는 모자이크 타일을 이용해 일출, 일몰, 해당화, 이제는 사라져버린 염전 등 영종도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담았다. 이를 통해 방문객들은 영종의 장소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천대교 기념관과 송산그린시티전망대 사이에 설치된 스카이 데크는 문화와 소통을 상징하는 두 개의 반지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다양한 높낮이의 데크에서 서해의 낙조와 영종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데크의 하부에는 소망의 벽이 조성되고, 중앙에는 소망의 나무가 식재되어 영종을 찾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염원의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망·휴게·놀이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이 시설물은 씨사이드 파크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다.생태 경관형 구간은 수변공원의 갯벌 생태계, 송산공원의 생태계가 서해의 해안 생태계와 연결되는 공간이다. 회색 아스팔트로 덮인 도로에 푸르른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다섯 가지 형태의 녹지를 조성했다. 큰 면으로 이루어진 매스형, 플랜터 등을 이용한 원형의 스팟형, 대지의 형태를 조작해 만든 폴딩형, 긴 선형으로 펼쳐진 가로형, 레일바이크 레일 주위에 식재된 수목 터널형 녹지가 보행자에게 보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제공한다. 여가 유희형 구간에는 조형 폴리와 레일바이크 시설이 설치됐다. 영종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노랑부리백로와 크레인을 모티브로 한 조형 폴리는 휴게 쉼터 및 조망대로 사용된다. 태양광 발전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데, 이는 공원의 유지·관리에 이용될 예정이다. 송산공원에서 시작해 영종진공원까지 이어지는 레일바이크는 친자연형 교통수단으로 지역의 명물이 될 것이다. 총 길이가 2.5km 달하며 복선 운행이 가능하도록 계획되었다. 폭 5m의 레일 좌측에는 녹지대, 우측에는 안전 난간 및 보도, 월파방지벽이 배치되어 달리는 동안 다채로운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트리를 도입해 야간 운행 시에도 특색 있는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설계 기술사사무소 동인조경마당 시행사 LH 청라영종사업본부, 인천도시공사 복합개발사업처 시공사 건림원, 금호, 한솔, 청도 사업명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지구 영종하늘도시 개발사업 위치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 운남, 중산동 일원 사업 면적 19,316,000m2 공원 및 녹지 면적 전체: 5,337,596m2 해안에 면한 공원 및 녹지 면적: 1,842,770m2(31.42%) 추진 과정 조경기본 및 실시설계 공모 공고: 2008. 8. 착공: 2011. 10. 완공: 2016. 5. 동인조경마당은 황용득 대표를 중심으로 1995년 11월에 설립되어 20여 년 동안 공원·광장, 경관 연출, 건축 및 주거 단지, 도시계획, 정원 분야에서 폭넓은 조경 설계를 선보여 왔다. 조경에 대한 지식과 현대 예술, 인문학에 대한 연구를 결합해 영종하늘도시 및 씨사이드 파크, 동부산관광단지, 강남 세곡 보금자리주택지구, 대전 서남부 도시기반시설, 의정부 민락지구 도시기반시설, 파주 운정 유비 파크(Ubi Park), 광주 엑스포 도자기 조각공원, 상상어린이공원,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주민참여 푸른마을 가꾸기 사업 등 200여 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 동인조경마당 / 동인조경마당 / 2016년08월 / 340
  • 경의선숲길 3단계 Gyeongui Line Forest Park, the 3rd Phase
    2011년 3월 경의선숲길 공원 조성 사업의 첫 삽을 뜨게 된 이후 5년 3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1단계 구간(대흥동 구간, 2012년 4월 준공)과 2단계 구간(새창고개·염리동·연남동 구간, 2015년 6월 준공)이 완료되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올해 7월 비로소 3단계 구간의 공사가 완료되어 전체 길이 6.3km의 선형 공원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경의선숲길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길의 일부 구간이 지하화됨에 따라 지상부의 철도 부지에 조성된 공원으로, 용산과 마포 지역의 낙후된 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도심 속 선형의 그린 인프라 구축을 통해 도시재생에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경의선의 역사적 의의를 전달하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의선숲길 프로젝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3단계 구간은 재료, 형태, 질감 등의 디자인 요소를 기존 2단계구간과 동일하게 적용하여, 도로와 복합 역사로 분절된 각각의 공간을 체험하더라도 연속적이고 통일감 있는 장소로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설계 대상지는1, 2단계 구간에 비해, 옛 철길이 운행될 당시의 지형과 주변 건물이 상당 부분 남아있어 경의선 특유의 정취가 배어있다. 주변이 이미 개발되었거나 주변의 개발속도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2단계 구간과 달리, 3단계 구간은 철도 부지의 분위기가 살아있고 앞으로도 그러한 공간감을 유지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설계에 있어서도 장소성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요소를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경의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도록 했다. 또한 각 구간의 동시대적 장소성을 반영하여, 경의선이라는 공통의 디자인 언어 외에 각 지역의 개성을 담아낼 수 있도록 했다. 와우교 구간 경의선숲길 와우교 구간은 홍대 인디 음악의 발원지인 ‘땡땡거리’가 위치하고 있는 구간이다. 땡땡거리는 경의선 철길이 와우교 아래로 지나던 시절, 기차가 지나갈때마다 ‘땡땡’ 소리가 나던 철도 건널목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예전의 지형과 철길 주변의 노후 주택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기찻길의 향수를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땡땡거리 주변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생활하면서 커뮤니티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참고하여 와우교 구간은 땡땡거리 주변으로 남아있는 옛 철길의 감성 위에 홍대의 문화·예술이 결합된 공원으로 설계했다. 철길의 패턴을 응용하여 대상지 전 구간에 통일성 있게 적용했고, 지역 커뮤니티의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여유 공간을 곳곳에 확보했다. 기본 및 실시설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대표 안계동) 시공 한일개발, 우보건설(현장소장 문준연) 감리 (주)유신(감리단장 윤상렬) 발주 서울특별시 길이 와우교 구간: 370m 신수동 구간: 420m 원효로 구간: 360m 면적 와우교 구간: 8,650m2 신수동 구간: 8,800m2 원효로 구간: 7,900m2 완공 2016. 7. 안계동은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서인환경, 두산개발을 거쳐 동심원조경을 설립했다. 평화의공원, 서울숲, 난지한강공원처럼 굵직한 작품부터 사도감어린이공원, 율수원처럼 소규모 작품까지 다양한 층위의 프로젝트를 맡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임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동심원조경에서 일하고 있다. 2012년 여름부터 경의선숲길 프로젝트를 담당했으며, 경의선숲길지기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 1 2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