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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잡지의 시대
거짓말처럼 긴 줄이었다. 한 시쯤 도착하면 여유롭게 전시를 둘러 볼 수 있을 줄알았는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출판계에는 몇십 년째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떠도는데 ‘2018 서울국제도서전’을 보러 온 사람이 이렇게 많다 니. 북적이는 인파에 정신없이 휩쓸려 다니면서도, 사람들의 손에 들린 쇼핑백에 어떤 책이 담겨 있는지 자꾸만 궁금해졌다.
사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책 읽기’보다 ‘책 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아직 펴보지도 못한 책이 이미 책꽂이에 수두룩하기 때문이 다. 게다가 또 욕심은 어찌나 많은지, 마음에 드는 책을 사지 않고 지나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결심은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에 접속한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최근 몇 년간 잡지의 지형은 격렬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문 에디터들이 만든 다양한 모습의 작고 가벼운 잡지들이 속속 출간되어 서점의 평대를 다채 롭게 채우며 분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잡지의 시대’는 다양한 영역의 새로운 잡지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획전입니다. 독특하고 멋진 잡지들의 부스와 서점 더 북 소사이어티가 큐레이션한 독립 잡지들로 다채롭게 꾸며질 예정입니다.” 하필 전시 기간이 마감을 코앞에 둔 금쪽같은 휴일(보통 기자들이 ‘코다’나 ‘편집자의 서재’ 등 마지막 기사를 갈무리하는 시간)과 맞물려 있었지만 시간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발 디딜 틈 없는 인기 출판사 부스 뒤편의 꼭 다른 세상같이 한적한 곳, 거기에 ‘잡지의 시대’가 펼쳐져 있었다. 작년에 구독을 시작하여 이제 조금 친숙해진 문예지, 특정 분야를 깊숙이 파고드는 전문지, 디자인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총 31종의 잡지를 선보였는데, 종 수는 많지 않지만 다루는 영역의 폭은 그 이상으로 넓었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그 다채로운 책들에서 살아남기 위한 분전의 흔적이 느껴졌다.
특히 단행본과 잡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드는 기획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 4월 ‘편집자의 서재’에서 소개한 『프리즘오브(PRISMOf)』 (『환경과조경』 2018년 4월호 p.142 참조) 처럼 한 권에 단 하나의 주제만을 다루는 잡지가 부쩍 늘었다. 『감 매거진(GARM Magazine)』은 콘크리트, 목재 등 건축의 가장 작은 물리적 단위인 건축 재료 하나를 선정해 ‘개인의 창조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매거진 B(Magazine B)』는 아름다움, 실용성, 합리적인 가격, 브랜드 의식이 조화를 이룬 브랜드를 한 호에 하나씩 소개한다. 커다란 틀은 같지만 연속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단행본같이 완결성을 갖게 된다. 사진 잡지인 『보스토크(Vostok)』는 이러한 특성을 더 강하게 드러내는데, 일반적인 잡지가 같은 디자인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보스토크』는 매달 다른 형식과 느낌의 표지를 선보인다. 같은 잡지가 맞는지 헷갈릴 정도다. 이에 대한 답은 ‘잡지의 시대’와 더불어 진행된 라운드테이블 ‘분전’에 참여한 박지수 편집장 (『보스토크』) 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기존의 잡지는 광고주와 독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던 ‘풍 요로운 시대의 잡지’다. 그런 잡지가 멋지고 근사한 것은 알지만, 더 이상 풍요로운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며 『보스토크』가 태어났다. 『보스토크』는 매 호새로운 주제로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것을 꿈꾼다. 그래서 구성도 바꾸고 디자인도 바꾸고 콘셉트나 종이도 바꾸며, 언제나 조금씩 새로움을 모색하고 있다. 표지는 그러한 생각의 집약체다.”
몇몇 잡지의 목차에서는 좀 더 독자 가까이에서 호흡하려는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잡지가 다루는 분야 내부의 이슈에만 주목하지 않고, 일반적인 사회 이슈를 함께 엮어 다룬 콘텐츠가 많았다. 이는 이 분야 역시 당신의 일상과 함께 흐르는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강남역 살인 사건’ 1주기를 맞아 여성 혐오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던 2017년 9월 창간한 과학 비평 잡지 『에피 Epi』는 첫 번째 크리 틱으로 “과학 교과서의 젠더 편향성”을 소개했고, 지난 6월 문예지 『릿터 Littor』는 ‘선거’를 주제로 콘텐츠를 구성했다. 꼭 알아야 할 것을 소개할 뿐 아니라 분야 바깥의 사람도 흥미로워할 이야기를 선별하는 것이 잡지의 기본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에피』 창간호의 펴내는 글 “과학비평을 위하여”는 인상 깊다. "『에피』는 하나의 실험입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는 실험입니다. 『에피』라는 실험이 검증해보려는 가설은 더 많은 사람이 과학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할수록 과학이 더 넓고 풍부하고 탄탄해진다는 생각 입니다. 실험은 끝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과학 이야기가 아주 많이 나오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더 나은 실험을또 고안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매대 사이사이 심심치 않게 놓여 있던 ‘굿즈goods’들이다. 에코백이나 배지, 달력, 엽서 등 세련된 디자인의 굿즈가 구매욕을 부추기지만, 이들은 별도로 판매되지 않는, 잡지를 사야만 받을 수 있는 증정품이다. 그런데 이 굿즈가 지닌 또 다른 역할이 있다. 어떤 사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 ◯◯ 잡지를 정기구독해 받은 에코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에코백은 단순히 가방으로도 기능하지만, 에코백을 멘 사람이 ◯◯ 잡지를 구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도 한다. 이로써 그 사람은 ◯◯ 잡지가 다루는 감성과 지식을 향유하는 사람이 된다. 특정 굿즈를 가진 사람이 모여 일종의 연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실제로 남기준 편집장과 김정은 『공간』 편집장은 『씨네21』을 정기 구독하면 받을 수 있는 시계를 작년 내내 열심히 차고 다녔다. 서로 모르는 사람도 같은 문화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독특한 사물이다.
잡지 더미를 헤치고 다니다 슬슬 목이 말랐던 나는 다시 전시관의 입구로 향했다. 평소에 관심 있던 출판사의 책을 확인하려다 인산인해를 이룬 부스의 모습을 보고 뒤로 물러섰다. 비교적 한산했던 ‘잡지의 시대’의 풍경을 떠올리니 뙤약볕 아래서 한참을 걸은 것처럼 목이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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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조형미와 기능성을 동시에 갖춘 벤치 시리즈
다채롭고 모던한 디자인으로 공간에 생동감 부여
디자인 조경 시설물 전문 기업 (주)예건이 다양한 콘셉트와 기능을 가진 벤치를 선보인다. 나뭇잎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리프벤치 Leaf bench , 삼각형, 사각형, 원형 등의 로지스 조형 벤치 시리즈 Logis bench series, 궁궐의 만월문과 달문창호의 전통 선형을 모던하게 재해석한 문벤치 Moon bench, 리본의 리드미컬한 선형에서 영감을 받은 리듬벤치 등 10여 종의 벤치를 출시했다. 일부는 KS인증, Q마크 인증을 받은 제품이며, 이밖에도 태양광 조명을 활용해 휴대폰 충전이 가능한 벤치, 온열 블록이 설치되어 한겨울에도 따뜻한 벤치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스마트 벤치가 출시됐다.
TEL. 031-943-6114 WEB. www.yek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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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팅 아일랜드
물 위에 떠 있는 새로운 유형의 공공 공간
코펜하겐 항구 남쪽에 물 위를 떠다니는 플랫폼이 조성됐다. 덴마크어로 섬을 의미하는 외 Ø 에서 이름을 따온 ‘Ø1’은 ‘플로팅 아일랜드 floating Island’ 프로젝트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으로 바베큐, 별 보기, 겨울 수영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는 물 위의 공공 공간이 다. 호주의 건축가 마셜 블레처 Marshall Blecher 와 덴마 크의 디자인 스튜디오 폭스트롯 fokstrot 이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는 덴마크의 예술 재단 옴 스테이튼 쿤스트폰덴 Om statens kunstfonden 과 쿨터하운365 Kulturhavn365 등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으며, 새로운 유형의 공공 공간으로 코펜하겐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플로팅 아일랜드
면적 25㎡의 Ø1은 코펜하겐 항구 남쪽 선박 제조장 에서 제작된 오각형의 목재 섬이다. 전통적인 목조 선박 제조 방식에 따라 수작업으로 만들었으며, 재활용 목재 등 지속가능한 재료를 사용했다....(중략)...
* 환경과조경 362호(2018년 6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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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고가 하부, 즐거움 가득한 다락으로 다시 태어나다
어둡고 시시때때로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곳, 주변 경관을 해치고 슬럼화되기 쉽다는 이유로 도시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 왔던 곳. 그런 고가 하부가 지난 4월 1 일, 초록빛으로 반짝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서울시의 ‘고가 하부 공간 활용사업 종합계 획’ 1호 시범사업으로 조성된 ‘다락 옥수’ 이야기다.
많을 다 多 , 즐거울 락 樂 , 말 그대로 즐거움이 가득한 다락 옥수는 196m²규모의 다목적 문화 공간이다. 다락 옥수에서는 이제 차량의 소음과 매연 대신 다양한 문화 강좌와 어린이 북카페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의 웃음소 리가 울려 퍼질 예정이다. 다락 옥수의 문화 공간은 건물 내부에서 그치지 않는다. 은빛 슬로프 아래의 목재 테라스는 이벤트가 열릴 때면 야외무대 또는 관람석으로 변모한다.
다락 옥수를 설계한 조진만 대표 (조진만건축사사무소) 는 “외부 환경 개선과 지역 주민의 이용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를 진행했다. 안과 밖이 정확히 나뉜, 단열과 방음이 완벽한 공간을 만들기보다 애매하고, 유연하고, 유동적인 공간을 만들어 다양한 가능성을 끌어내고자 했다.” 옥수역 고가 하부에서 발견한 가능성은 무엇일까? 조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2호(2018년 6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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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출판하는 마음
대학교에서 설계를 배우며 얻은 덤이 있다면, 결과물에 투입된 애씀을 가늠하는 버릇이다. 언제부턴가 설계나 디자인 작품을 보면 영리한 아이디어와 촘촘한 구성 그 이면에 있는 누군가의 고민과 번뇌를 떠올린다. 졸업 작품 전시를 구경할 때였다. 잘 짜인 패널을 앞에 두고 평가보다는 안쓰러움과 존경이 동시에 일었다. 이 벽에 패널이 걸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와 지난한 여정이 있었을까, 손바닥 반의반만한 다이어 그램에는 최소 네다섯 시간 이상의 노동이 담겨 있겠지, 수없이 컨트롤+에스 ctrl+s(저장하기) 를 눌렀을 테고, ‘최종.psd’, ‘이게 최종.psd’, ‘진짜 끝.psd’, ‘진짜 최종 마지막.psd’를 지나 완성된 이 파일은 몇 번째 최종본이었을까, 시답잖은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독자에서 기자로, 출판계의 외부자에서 내부자로 위치 변동을 겪고 있는 요즈음, 책을 보는 내 시선도 사뭇 달라졌다. 책 표지를 보다가 표지 이미지와 제목의 위치를 두고 옥신각신했을 편집자, 저자, 디자이너를 떠올리고, 색다른 판형이나 서체를 쓴 책을 보며 누군가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다른 잡지를 보다 한 권에 든 노동 시간을 재본다. 한 명의 에디터가 담당한 꼭지의 개수를 세며, 얼굴도 모르는 에디터의 체력과 능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문장력과 빈틈없는 구성) 에 놀라고, 이번 달도 무사히 마감을 넘긴 그에게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것이다.
『출판하는 마음』은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작가의 출판 과정 취재기 이자 출판계 종사자들에 대한 르포르타주로, 한 권의 책에 꾹꾹 담긴 출판인들의 수고를 헤아린다. “책의 주인공으로 주목받는 작가의 책 뒤 판권 면에서 잠자는 얼굴들, 즉 편집자, 마케터, 제작자 등 출판계 종사자들”을 만나 묻고 듣는 인터뷰 형식이다. 저자 은유는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전문 작가지만 스스로 출판 과정에 무지했다고 말한다. 출판 단계를 10으로 볼 때 “작가는 원고를 출판사에 넘김으로써 1, 2단계에 개입했다가 빠지고, 독자일 때는 마지막 10단계에서 구매함 으로써 참여한다”며, “책의 0부터 10까지 하나하나 짚어보기 위해”, “레드카펫 위주인공보다는 그 레드카펫을 준비하고 깔고 치우는 사람들을 보이게 하는 작가적 소임”을 다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이들과 더 원활히 소통하고자 책의 작업 의뢰를 받아들였다.
날것의 원고가 책이 되어 독자의 눈에 띄고 손에 쥐어지기까지, 저자뿐만 아니라 편집자, 번역자, 북 디자이너, 출판 제작자, 출판 마케터, 온라인 서점 MD, 서점인등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책의 생장 과정에 ‘깊고 치밀하게’ 관여한다. 책은 글의 종합이 아니다. 숨은 노동이 책을 펴내고 시장에서 살아남게 한다. 더 좋은 만듦 새를 위한 디자이너의 욕심이 독자의 구매욕을 끌어올린다. 원고 파일을 ‘적정 가격에 맞춰’ 종이 냄새나는 책으로 만들기 위해 출판 제작자는 인쇄소, 제본소, 지업사를 돌고 돌고 돈다. 절판된 책을 수시로 확인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잘 만든 책은 특별한 조치 없이도 팔리고, 알아서 제짝 (독자) 을 찾아갈 거라는 생각은 시장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1년에 새로 나오는 책만 해도 4만 종, 하루 약 100권 의 책이 쏟아진다. 책은 너무 많고 책을 대신하는 재밋거리도 넘친다. 명망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책은 없다. ‘눈에 띄어야 한다, 기어코 팔아내야 한다’는 마케터의 고민과 은밀한 전략이 판매 부수를 높인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책 처방’이라는 독특한 판매 전략을 펼치는 독립 서점의 대표는 책을 구매하고 읽는 행위를 새로운 문화로 향유하게 만든다.
『출판하는 마음』이 책의 고귀함, 출판 노동의 가치를 과장되게 설파하는 책일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책에 대한 엄숙주의’ 를 내려놓고 책을 순전히 시장의 상품, 노동의 산물로 보게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출판인 각자의 처지에서 비롯한 “한 움큼의 서운함, 서러움, 아쉬움”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한다. 결국이 책은 ‘상품’과 ‘타인의 노동’에 대한 소소한 기록일 뿐임을 저자는 일찍이 머리말에서 짚고 넘어간다. “책만 그런 게 아니 다. 자본주의 사회의 세포 격인 상품을 우린 거의 모르고 사용한다. 농사짓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쌀을 얻어 밥을 먹고, 옷 만드는 사람의 처지와 얼굴을 모르고 옷을 사서 입는다. 결과물만 쏙쏙 취하니까 슬쩍 버리 기도 쉽다. 그렇게 편리를 누릴수록 능력은 잃어간다. 물건을 귀히 여기는 능력,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능력, 관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 누구나 직접 겪은 일에 한해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른 시선, 공감의 폭을 가진다. 하지만내 분야가 아닌 일에 대해서는 크게 알고 싶지도 않고 굳이 알 필요나 그럴 여유도 없다. 뭐가 어렵고 고된지 모르니 그 가치도 잘 알지 못한다. 지금 보는 이 책, 며칠 전 마냥 재밌게 봤던 영화, 어제 마셨던 커피가 새삼스럽다.
조경 공간이라고 다를까. 전체적인 실루엣을 결정하는 건 설계가지만 도면이 저절로 실제 공간이 되진 않는다. 누군가 머리를 싸매고 계산해 맞춘 비용으로, 누군가 힘써 만든 자재를 가져와, 누군가 잘 키운 식물을 심어 완성되면, 누군가 이 공간을 알리고, 누군가 이 공간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누군가 이 공간이 계속 아름다울 수 있도록 관리한다. 이번 달에도 여러 작품이 실렸다. 목차에 작품 이름과 설계가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작품 사진 밖 사람들을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들에 대한 특집을 꾸릴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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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이사 왔습니다
어지러이 널린 교정지 사이 난데없는 우드락 조각이 나뒹군다. 잡지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A3에 출력한 넉넉한 크기의 도면 하나도 덩그러니 있다. 책상 1, 서랍장 1, 책상 2, 중앙 테이블 등 자신의 쓰임새가 적힌 종이를 등에 업은 우드락 조각들이 참 바지런히도 도면 위를 오갔다. 2015년 1월 ‘파주시대’를 마감하고 ‘방 배동시대’를 연 『환경과조경』은 지금 ‘제2의 방배동시대’를 맞이할 이사 준비가 한창이다.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사실 새로운 사무실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 6월 중순 에서 말 사이, 우리는 이수역과 내방역을 연결하는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서 근처 평지 (!) 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이제 출근길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오르 거나,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마을버스에 꾸역꾸역 몸을 싣지 않아도 된다. 주로 평지에 있는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겠다고 긴 여행을 떠날 필요도 없다. 좋은 점이 어디 이뿐이랴,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가슴 설레는 일은 새로운 사무 공간,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무실을 지향하는 남기준 편집 장은 모두가 만족하는 근무 환경을 조성하고자 가구 배치 아이디어 공유회를 열었다. 졸업 설계를 끝으로 우드락, 칼 등 모델링 도구에 작별을 고한 윤정훈 기자, 신동훈 기자는 오랜만에 칼판 앞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성된 미니 가구 모형이 중앙 테이블에 올려졌다. 바쁜 업무에도 짬을 낸 직원들이 중앙 테이블에 들러 모형을 만지작거리다 떠나기를 반복했다.
푸른 식물이 가득한 생기 넘치는 테라스나 보기만 해도 아이디어를 샘솟게 할 오브젝트가 진열된 벽, 야근의 피로를 잊게 만들 하늘이 보이는 개방형 천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저마다 꿈꾸는 소박한 사무실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각기 다른 소망의 공통 지향점은 ‘원활하게 소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면서도,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모니터와 지저분한 책상을 감출 수 있는) 환경’이 아닐까. 그런데 두 숨이면 후루룩 읽을 이 짧은 문장 하나를 실현하기가 만만치 않다. 책상을 이렇게 틀자니 모니터가 다른 직원에게 훤히 노출되고, 반대로 돌리자니 모니 터가 입구를 향한다. 낯선 방문객에게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여줄 필요는 없다. 벽을 따라 책상을 쭉 배치하니 이번엔 중앙 테이블이 입구 앞에 떡하니 놓여 있다. 모든 조건을 만족시켰다 싶으면 언제 빠져나간 건지 ‘책상 5’와 ‘서랍장 5’가 도면 밖에서 얄밉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지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로 한 단체 카톡방에는 가구 모형을 배치한 서너 장의 사진이 올라온 후, 다시 평소와 같은 업무 관련 대화만이 오갔다.
이런 고민이 회사에서 끝났다면 좋으련만, 공교롭게도 우리 가족 역시 6월 말 이사를 계획 중이다. 집을 꾸미는 일은 새 사무실을 꾸리는 일보다 더 복잡하다. 단순 업무 공간이 아닌 ‘우리’ 가족의 집이기에, 우리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욕심이 한정된 공간과 예산 안에서 뒤엉킨다. 엄마가 새로 장만하고 싶다는 전자레인지 대를 들이자니, 그 옆에 TV 장을 둘 공간이 부족하다. 가뜩이나 사야 할 가구가 많은데 TV 장까지 새로 살 수는 없다. 주로 새벽에 작업하는 동생은 자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을 완벽히 분리하고 싶어 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공간을 갖고 싶은 나는 거실에 스탠드형 조명을 두고 싶지만, 그 자리는 귀한 화분님이 놓일 곳이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필자가 된 기분이다. 갈 곳 없는 가구를 이렇게 저렇게 끼워 넣다가, 문득 이 작업이 잡지 편집 디자인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잡지사의 방식은 알 수 없지만, 『환경과조경』의 편집자는 편집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적절한 사진을 선정한 뒤 그 사진을 어떻게 배치할지,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서너 번의 교정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디자이너와 끊임없이 논의한다. 3차 교정 작업에서 레이아웃을 바꾸는 과감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내용과 형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텍스트의 메시지와 이미지의 효과가 하나로 움직이는, 스타일이 정보를 지배하지 않고 정보의 본질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잡지”를 만드는 일은 꽤 고단한 과정을 동반한다. 디자이너의 눈과 편집자의 눈이 다르기에 사진 선정에 애를 먹는 상황도 발생한다. 특히 감각적인 구도와 멋진 분위기를 자랑하는 사진은 주 논쟁거리다. 충분히 아름답지만 담고 있는 정보가 부족한 사진은 결국 지면에서 제외되고 만다. 문득 이렇게 묻힌 수백 장의 사진이 아쉬워져, ‘살아남지 못한 B컷’이라는 제목을 막연히 상상해본다.
이사에서 편집 디자인까지, 마지막 문단에 오기까지의 여정이 참 길었다. 고작 (편 집자의 서재에서) 옆 페이지로 이사 왔을 뿐인데 글쓰기가 배는 어려웠다. 책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를 느껴야 하고, 글에 담긴 의미를 찾아야 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고, 먹고, 듣는 모든 것에서 글감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 악곡이나 악장의 끝맺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덧붙이는 악구, 코다 CODA . 그 의미가 이제야 무겁다. 완벽한 끝맺음은 아니더라도, 이 글이 편집부의 소소한 일상을 훔쳐보는 재미를 줬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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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화재 대응 기능을 갖춘 방재 퍼걸러
화재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소방 장비 겸비
설계부터 소재 개발, 시공, 관리까지, 토털 솔루션을 지향하는 조경사업자협동조합 ‘봄 VOM ’이 신제품 방재 퍼걸러를 출시했다. 화재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재난 대비 시설물로, 평소에는 휴게 및 경관 시설로 활용하다가 화재 발생 시 수납된 소방 장비를 사용해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목적 제품이다.
소화전1에는 소방 호스와 노즐이, 소화전2에는 소화기 두 대가 수납되어 있다. 상부의 태양광 패널 덕분에 정전 시에도 일정 시간 동안 조명 유지가 가능하다. 도서 지역이나 취약 지구의 비탈면 등 소방차의 접근이 불가능한 화재의 사각지대, 불법 주차로 인해 초기 대응이 어려운 곳에서 작은 화재가 대형 화재로 번지는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TEL.02-574-0570FAX. 02-570-0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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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블랑, 부산현대미술관에 수직정원을 만들다
부산현대미술관(관장 김성연)이 6월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천연기념물 제179호)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은 자연과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며, 생태와 뉴미디어를 아우르는 미술관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그러나 건립 초기부터 미술관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라는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미술관 측은 건물 외형을 보완하기 위해 식물학자 겸 아티스트인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을 초청해 미술관 외벽에 수직정원(Vertical Garden) 설치를 계획한다. 패트릭 블랑은 지난 4월 14일 미술관을 방문해 수직정원의 시공 상황을 확인하고,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동아대학교 학생들과의 식재 행사를 마치고 학생들의 기념 촬영과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하느라 인터뷰 시작이 예정보다 지체되었지만, 시종일관 열정적인 제스처와 함께 답변을 이어갔던 패트릭 블랑과의 대화를 옮긴다.
Q 2013년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 바 있다(최이규ㆍ박명권,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주목할 만한 조경가 12인’, 『환경과조경』 2013년 9월호, pp.100~111).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한국에 몇 번째 방문한 것인가?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이하 B) 예전에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과 함께 서울에서 개인주택(2003년) 작업을 했다. 그때 북한산에서 많은 식물을 볼 수 있었고, 10여 년쯤 전에는 제주도를 탐사했다. 제주는 섬 지역이라 서울과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부산은 작년 10월 처음 방문했는데, 서울이나 제주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Q 부산의 첫인상은 어땠나?
B 부산은 규모가 아주 큰 도시는 아니지만 그 다양성에 놀랐다. 많은 해산물을 보았고, 특히 시장에서 해산물을 사서 위의 식당에 올라가서 먹는 굉장한 경험을 했다. 해변의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 도시 전체적으로 현대식 건물이 많기는 하지만 경사지가 많고 곳곳에 전통적인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다양하다는 느낌을 준다. 지금 머물고 있는 코모도호텔도 전통적인 분위기의 호텔이다. 그렇게 다른 건축 양식이 공존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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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쇼코의 미소
핸드폰 액정이 반짝인다. “도무지 엄마를 좋아할 수가 없어.” A다. 엄마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는 그녀는,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먼저 닦냐, 밥을 먼저 먹냐는 문제로도 다투곤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A가 정 없는 사람이라 이야기하는데, 정작 그녀는 엄마처럼 대놓고 무안을 주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순전히 어머니의 기준에서) 단정치 않은 그녀의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어코 미용실에 가라는 잔소리로 A의 신경을 긁어 놓는다(A의 머리는 컬을 살짝 넣은 단발머리다). 둘은 서로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 매번 상처를 주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A는 여느 가족들처럼 그래도 어머니를 사랑한다. “서로 다투면서도 관계를 단절하고 싶은 건 아니란 말이지. 이렇게까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꼴 보기 싫다고까지 생각하지 않는 건, 역시 좋아하지는 못해도 사랑은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 어쨌거나 엄마가 상처받아서 속상해하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속상하긴 하니까. 뭐, 그러니까 좋아하진 않아도 사랑은 하는 거 같아.”
좋아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 서로 맞지 않으면 관계를 포기해버리면 좋을텐데, 세상에는 혈연이나 어떤 인연으로 만남을 이어가야 하는 사이가 많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해보려 ‘이유’를 찾는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렇게 말한 까닭이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 끊임없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상대의 모든 행동과 말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대를 좋아하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A의 말처럼 “아주 근본적인 부분부터 달라 서로 절충안을 찾을 수 없는” 관계도 있다. 그래서 A는 엄마를 이해하기보다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의 입장에 서보는 대신, 그냥 엄마는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여 버리는 것. 그렇게 하니 도리어 엄마를 좋아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해와 인정. 『쇼코의 미소』를 읽는 내내 두 단어가 계속 머리를 떠돌았다. 일곱 편의 단편을 엮은 『쇼코의 미소』의 공통 화두는 ‘이해’다. ‘쇼코의 미소’와 ‘한지와 영주’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직하게 마주한 최은영의 질문이라면,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은 이해라는 키워드를 공감과 유대로까지 확장한다.
‘미카엘라’에서 광화문광장에 선 익명의 여성들은 4월 16일 자신들의 딸이 배에 있었음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딸 중 하나인 미카엘라는 어느 교회에나 있을 법한 흔한 세례명이다. 주인공의 세례명도 미카엘라다. 어쩌면 나 또는 나의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 친척의 세례명이었을 수도 있던 미카엘라라는 이름이 “그저 운이 좋아서, 내가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음을"(각주 1)상기시킨다. 이를 깨닫는 순간 나 역시 광장을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미카엘라 중 하나가 된 듯 했다. 광장에 선 여성들의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처절하지도 않다. 최은영의 문체처럼 단정하기만 하다. 관조적이기까지 한 문체는 『쇼코의 미소』 전반에 깔려 있다. ‘먼 곳에서 온 노래’, ‘비밀’에서도 세월호를 간접적으로 다루는데, 작가는 결코 그들에게 위로를 건넨다거나 앞으로 우리는 이래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그저 빈 자리를 보며 긴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기만 한다. 이상하게도 이런 담담함이 등장인물의 마음에 공감하게 하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몰랐기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서로를 이해하거나 인정하는 일이 쉽게만 그려지는 건 아니다. ‘쇼코의 미소’의 소유는 “평생 좋은 소리 한 번 하는 법 없이 무뚝뚝하기만” 한 할아버지가 죽음을 앞뒀을 때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건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각주 2)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래도 할아버지는 소유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소유는 “비어져 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을 발견한다(각주 3).
소유가 할아버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두 시간 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하고 싶던 마음은 사랑의 일종이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소유의 모습에 A가 겹쳐진다. A와 그녀의 어머니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도무지 맞는 점이 없는 둘도 긴 세월 부대끼다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각주 정리
1.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2. 최은영,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 p.47.
3. 위의 책,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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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대안과 연대
『환경과조경』 2018년 5월호 특집,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는 우연한 기획의 산물이지만, 이 기획의 등장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기존 조경설계사무소나 단체와는 다른 형식의 그룹이 차츰 눈에 들어왔다. 최근 들어서는 부쩍 작품을 소개하거나 원고를 받을 때 그들이 속해 있는 또 다른 모임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그룹의 이름을 들으면 포스트잇에 적어 모니터 앞에 붙여 두곤 했다.
우연히 어느 편집회의 테이블에서 막연한 미래 아이템으로 적혀 있던 이 기획이 5월호의 특집으로 급부상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막상 손꼽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그룹이 있었고, 그렇게 놓고 보니 하나의 흐름으로 읽혔다.
‘대안과 연대’라는 다소 거창하고 딱딱한 키워드로 이루어진 가제로 섭외를 시작했다. 이들에게서는 조경을 기반으로 하지만 고전적인(기성의) 산업과 분야의 경계를 강조해서는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는 공통의 인식이 보인다. 공통의 지향 아래 모였으나 개개인의 차이를 존중하는 유연함이 특징이다. 물론 우리의 섭외를 고사한 그룹도 있다. 최대한 많은 모임을 통해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이 이번 특집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으나 미처 우리 편집부에 포착되지 않은 모임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서울에 편재되었다는 아쉬움이나 세대를 가르는 것이 아니냐는 불편함도 있을 수 있다는 고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기획이 새로운 흐름을 발굴하고 자극하는 첫 단추라 생각하며 섭외를 마무리했다.
특집의 최종 제목은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로 정했다. 잠시 ‘지향하다’를 고민했지만 곧 ‘실천하다’로 바꿨다. 이들이 보내온 원고에는 유난히 ‘실천’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자연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과 실천 … 새로운 영역의 일을 하나씩 실천하며 … 우리가 실천해나가는 일이 모여 우리가 속한 사회와 환경에 의미 있는 흔적과 영향을 만들어나가길 희망한다.”(자연감각) “이론과 실천, 앎과 삶의 합치를 꾀한다.”(하루.순) “단일 성격의 조경 단위가 하기 힘든 일을 풀어내는 동시에 조경 문화에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은 실천적 모임.”(팀 동산바치) “조경이상은 실천을 위한 모임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할 아이디어는 무의미하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기획하고 함께 해나가려는 의지가 구성원의 자격이자 조건이다.”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치자 대신, 서로 다름을 인정한 채로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우선 실천해보자는 것이 오래 회자된 ‘조경의 위기’에 대한 이들의 결론이다.
이번 5월호는 편집 디자인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옥상다반사’ 특집(2017년 2월호) 때 처음 시도했던 명조체의 큰 활자를 다시 한 번 적용했다. 잡지 지면의 메시지는 텍스트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어쩌면 훨씬 더 자주)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의도를 전달한다. 연대란 사람이 하는 것이니 사람이 중심에 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원고 청탁서를 보내며, 각 팀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단체 사진을 보내달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각 팀의 아이디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팽선민 디자이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막 데뷔를 앞둔 인디밴드의 첫 번째 앨범” 같은 풋풋한 연출의 사진부터, 현장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날것 같은 사진도 있다. 그러나 공통점이라면 이 단체 사진은 주연과 조연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 혹은 개인의 자의식을 과도하게 드러내기보다 모두가 주연인 수평적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이번 특집의 의도에 부합해 보였다.
표지 역시 팽 디자이너의 회심작이다. “다양한 그룹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표지에 이미지는 적절치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텍스트를 대안으로 선택한 거죠. 컬러는, 텍스트를 강조하기 위해 산뜻한 노란색과 검정색을 배치했어요.” 표지 역시 대안에 도전한 셈. 반면, 이 무크지 같기도 한 표지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편집부의 반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시안을 만드는 관례를 깨고, 우리는 더 이상의 대안을 만들지 않기로 모의했다. 우리의 연대와 대안(!)이 독자들에게도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코다의 코다
이번 361호를 마지막으로 제가 환경과조경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안녕이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라는 어느 노랫말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지만 당장은 아쉬움에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얼마 전 10여 년 만에 연락한 지인이 잡지를 보았노라며, “너는 여전히 이상주의자로 살고 있구나”라고 말하기에, “나도 시류에 영합하고 싶다”며 웃어 넘겼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매체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이 시점, 종이 잡지를 만드는 일은 시종일관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는 일일 터입니다. 한 호의 문을 닫는 이 지면을 되돌아보니, 종이 잡지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어떤 대안이 있을지 고민했던 글이 많습니다. 그간 함께 한 독자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박명권 발행인을 비롯해 배정한 편집주간, 남기준 편집장 그리고 동고동락한 기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변화에 적응하려는 시도 못지않게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도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없이 도전하는 환경과조경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저 역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