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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호수공원
    세종호수공원의 탄생과정 2013년 5월. 세종호수공원이 완공되었다. 2009년 3월 턴키설계를 시작하여 기본설계4개월, 실시설계 6개월 그리고 3년간 공사를 했으니, 꼬박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세종호수공원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의 탄생과 맥을 같이 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시절 ‘행정중심의 녹색도시’라는 슬로건 아래 열린 도시개념 국제공모전 당선작 중 안드레 스페레아 오르테가(Andres Perea Ortega)의 “천 개의 도시(The City of Thousand Cities)”안이 도시의 큰 틀과 중심행정타운, 중앙녹지공간 개념의 바탕이 되었다. 이후 정부청사가 위치하는 중심행정타운은 “Flat city/Link city/Zero city” 라는 제목으로 도시의 수평적 구조와 유연한 관계를 강조한 미국의 발모리 어소시에이트(Balmori Associates)와 해안건축의 마스터플랜이 당선되었으며 이 때 처음으로 세종호수공원과 중심행정타운의 뼈대가 잡혔다. 이후 중앙녹지공간에 대한 국제현상공모에서 해인조경의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 안이 당선되면서 중심행정타운과 중앙녹지공간을 매개하는 공간인 세종호수공원의 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2009년에는 ‘중심행정타운 블루그린네트워크 조성사업’ 턴키 결과 조경설계 서안과 계룡건설이 설계와 시공을 맡게 되었는데, 이는 중심행정타운 내 호수공원과 실개천 그리고 근린공원과 녹지를 아우르는 설계였다. 특히 이 사업은 LH에서 발주한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조경관련 턴키설계였는데, 준공이 된 현시점에서 그 과정의 장단점은 한 번쯤 되짚어봐야 할 중요한 사안일 것이다. 디자인 철학과 호수의 구조 세종호수공원에는 이 도시를 구상했던 많은 이들의 철학이 담겨 있다. 특히 도시의 중앙부를 비워두며 환상형의 민주적이며 기능이 분산된 위계가 없는 도시를 구상한 오르테가의 철학과 발모리의 마스터플랜에 담긴 수평적 구조의 시민친화적인 평평한 도시구조의 철학은 도시와 유연한 관계를 맺기 위한 바탕이 되었다. 특히 호수공원과 중앙녹지공간을 녹색의 공간으로 비워두고, 그 주변으로 도시상징문화시설도시건축박물관, 국가기록박물관, 도서관, 행정지원 및 컨벤션센터, 대통령기록관 등을 환상형으로 배치하는 세종시의 ‘도시상징프로젝트’는 호수의 구조를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Landscape Architecture _ SEO-AHN TOTAL LANDSCAPE Landscape Construction _ Kyeryong Construction Industrial co., ltd + Samsung Everland inc + Samsung C&T Corporation Client _ LH(Korea land & housing Corporation) Location _ Sejong-ri, Yeongi-myeon, Sejong-si, Korea Landscape Area _ 615,183m2(Lake _ 322,800m2~326,600m2) Competition _ 2009. 7. 14. Completion _ 2013. 5. Photograhp _ Park, Sang Baek Editor _ Kim, Jeoung Eun Translator _ Hwang, Ju Young
  • [에디토리얼] 오슬로의 추억
    노르웨이 오슬로에 거점을 둔 글로벌 디자인 그룹 스뇌헤타(Snøhetta)의 최근 조경 작업들로 이번 호 특집을 엮었다. 스뇌헤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조경가 이슬의 메일을 처음 받은 게 지난해 7월이니, 기획과 편집에 여덟 달 가까운 공을 들인 셈이다. 스뇌헤타 네 글자만 믿고 곧바로 특집호 편집을 결정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스뇌헤타 특유의 수평적 작업 문화가 디자인 과정과 작품 생산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조명하고 싶었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설계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뇌헤타의 공동 대표 셰틸 토르센(Kjetil Thorsen)이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의 인상적인 구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스뇌헤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 하나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민주적”이라고 답했다(월간 『디자인』 2018년 9월호). 스뇌헤타 뉴욕 오피스를 취재한 어느 기자는 작업 공간을 가로지르는 아주 긴 대형 테이블을 자세히 관찰해 묘사하며 그들의 작업 태도를 “투명성, 다양성, 교차성”이라고 표현했다(『Metropolis』 2015년 11월 10일). 이번 특집 지면 곳곳에서 볼 수 있듯, 스뇌헤타가 생산한 작품들의 핵심 개념인 대화와 관계, 맥락과 문지방(threshold)은, 시니어와 주니어 디자이너가 평등하게 발언하며 교류하고 건축가, 조경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가 고유 영역을 허물며 협력하는 그들의 작업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스뇌헤타의 제안 메일에 가슴이 뛴 더 큰 이유는 실은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의 추억 때문이었다. 2019년 9월, 피오르와 뭉크의 도시 오슬로에서 열린 세계조경가협회IFLA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매일 비가 내려 뭉크의 ‘절규’보다 더 우울했던 첫 방문 때와 달리, 두 번째 여행에서 만난 오슬로는 맑은 공기, 깨끗한 바다, 아름다운 언덕이 절묘한 비율로 혼합된 녹색 도시 그 자체였다. 낙후한 구도심 항만에서 활기찬 워터프런트로 탈바꿈한 비외르비카(Bjørvika) 지역의 문화적 앵커가 오슬로 국립 오페라하우스다. 배를 타고 다가가며 보거나 해변을 산책하며 멀리서 보면, 오페라하우스의 형태가 바다에 떠다니는 거대한 빙산이 육지에 얹혀 있는 모습임을 누구나 직감할 수 있다. 스뇌헤타는 순백의 대리석과 화강석 판을 힘찬 수평선과 사선으로 엮어 북구와 노르웨이 자연의 아이콘인 빙산의 형상을 재현했다. 직설적이고 직관적인 형태 재현의 강렬함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건 완만한 경사의 외부 공간이 바다로, 건물 지붕으로 바로 연결되는 경험의 흐름이었다. 맥락을 존중하고 경계와 관계를 넘나드는 스뇌헤타 디자인의 특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고급 공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마치 뒷산에 오르거나 공원을 산책하듯 부담 없이 걷다 보면 오페라하우스 지붕 위에 오를 수 있다. 도심의 낭만적인 경관과 협만의 피오르 풍경을 한눈에 품고 내려다볼 수 있다. IFLA 행사 마지막 날, 오페라하우스 지붕에 몸을 눕히고 오슬로의 장엄한 석양을 마음에 눌러 담았다. 곧 코로나19 시대가 닥쳤고, 오슬로는 나의 마지막 해외여행 도시로 남게 되었다. 스뇌헤타로부터 날아온 메일에 가슴이 쿵쾅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최종 교정을 보며 남기준 편집장은 “이번 호는 정기구독 외에 서점에서도 많이 팔릴 것 같다”는 전망을 했다. 25년 잡지 경력의 편집자 말이 틀릴 리 없을 테다. 비교적 잘 알려진 타임스퀘어와 킹 압둘아지즈 세계문화센터는 물론이고 라스코 Ⅳ, 맥스 Ⅳ, 오르드룹가드 미술관, 트라엘비코센, 페르스펙티벤베그 등의 근작에서 스뇌헤타의 조경을 관통하는 적응과 경계의 디자인을 직관적으로 만날 수 있다. 참, 조경가 이슬의 열정적인 협력이 없었다면 이번 스뇌헤타 특집을 꾸리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화여대와 서울대에서 환경디자인과 조경을 전공하고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에서 도시설계‧계획을 전공한 그는 MVRDV를 거쳐 2019년부터 스뇌헤타 인스부르크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다.
  • [풍경 감각] 풍경 도둑
    나의 산책 코스는 동네 아파트 단지였다. 곳곳의 작은 쪽문을 통해 들어서면 산수유 길, 조팝나무 길 같은 산책로가 있었고, 이 길들은 크고 작은 정원과 어린이 놀이터, 연못과 인공 실개천, 광장, 테니스장으로 연결되었다. 꽃 사진 찍는 사람들과 재잘거리는 아이들, 비 오는 날의 개구리 소리, 우비 입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우비 입은 사람. 무해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지난 봄부터 발길을 끊었다. 산수유가 지고 조팝나무 꽃이 하얗게 필 무렵 아파트 단지 외곽에 진회색 울타리가 들어섰다. 누구나 드나들던 쪽문에는 입주자 카드나 비밀번호가 없으면 열리지 않는 문이 설치됐다. 낯선 인기척에 잠 못 이루는 이가 있었던 걸까. 소음, 보안, 그리고 코로나19……,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짐작 가는 원인은 여럿이다. 여전히 경비원이 상주하는 정문과 배달 차량 출입로는 열려 있지만 풍경을 도둑질하는 기분이라 들어갈 수 없다. 닫힌 문 앞에는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들이 서성이곤 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시장에 다니던 분들인데, 입주자가 지나갈 때 열린 틈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먼 곳으로 작업실을 옮긴다. 내가 다른 산책 코스를 만드는 동안, 그 아파트의 문은 계속 잠겨 있을까? 할머니들은 계속 기다릴까? 아니면 장본 것을 끌고 빙돌아 집으로 돌아갈까? 봄이 오면 진회색 울타리 안에 노란 산수유와 하얀 조팝나무 꽃이 필 것이다.
  • [제도가 만든 도시] 제도의 한계: 제도는 효율적인가?
    지난 첫 연재에서는 제도를 정당화하는 가치인 ‘공공의 이익’이 어떤 한계를 지니는지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측면에서 제도의 형식과 실행 방식이 가지는 한계를 우리 도시의 여러 사례를 통해 짚어 보려고 한다. 제도는 효율적인가? 형식의 경직성 어떤 도시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의도한 바를 실현하는 여러 방안 중 가장 적절하여 그 적용의 강제가 납득되는 경우, 그 제도가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의 공간 이슈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확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좁은 길에서는 보도와 차도를 구분해 디자인하는 게 보행자에게 더 안전할까, 반대로 경계를 뚜렷하지 않도록 만들어 자동차의 서행을 유도하는 게 더 안전할까? 산을 가리고 늘어선 아파트 높이를 계단식으로 만들면 도시 경관이 나아질까? 작은 부정형 필지, 좁은 골목길은 없어져야 할까? 도시 제도는 이런 질문들에 확정적인 형식으로 존재한다. ◯◯◯ 지침, ◯◯◯에 관한 규정, 표준 ◯◯◯ 등은 보편적으로 최소의 수준을 보장할 수는 있지만, 제도가 최적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에런벤–조셉(Eran Ben-Joseph)이 말하는 바처럼 경직된 기준에 근거를 더하는 노력보다는 궁극적으로 제도가 목적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다른 대안들을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1 그렇다면 제도의 유연성과 포용성을 저해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다양하고 복잡다단한 도시 공간을 다루는 제도가 취하고 있는 형식에서 오는 한계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단속적 제도 공간 vs. 연속적 현실 공간 모든 도시 공간 제도의 작동 형식은 제도가 적용되는 대상을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시기본계획, 공원녹지기본계획, 지구단위계획 등 소위 ‘구역계’라든가 용도지역·용도지구·용도구역 등은 도시 공간 안에 확정적 구획을 그려 해당 제도가 적용되는 범위를 구분 짓는다. 또한 2층 이상 건축물에 적용되는 내진 설계나 대지 면적 200m2 이상일 때 확보해야 하는 대지 안의 조경과 같이 각종 법규는 확정적 숫자를 기준으로 적용 범위를 설정한다. 이러한 공간적 범위와 양적 범위를 가르는 선과 수치는 실제의 연속적 도시 공간이나 연속적 공간 현상 속에서는 실체가 없으며 임의적이다. 물론 도시 제도뿐 아니라 모든 제도는 그 적용 대상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매번 적용의 당위를 다퉈야 한다. 제도라는 사회적 장치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연속적 공간과 이를 임의적으로 구분하려는 도시 제도의 본질적 차이가 도시 공간에 야기하는 파열과 부조리가 있다는 점만큼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연속적 공간을 불연속적으로 다루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도로를 기준으로 구획하는 것이다. 물론 도로는 공간을 구획하는 경계로서 근거가 단순하고 인지와 운영이 용이하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아닌 이상 도시의 일반적인 도로는 도시 가로로 활성화되어 있을수록 사람들이 양측을 빈번하게 오가고 도로 양측의 기능적·공간적 특성이 해당 도시 가로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때 도로는 그 지역의 중심이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편의 상 도로를 구획의 경계로 삼기 때문에 실제 도시 공간의 인식적 구분과 제도의 운영이 어긋나게 된다. 자주 거론되는 예로 서울시의 강남대로는 두 행정구역(서초구, 강남구)의 경계이자 두 지구단위계획구역(서초로 구역, 테헤란로 제2지구 구역)의 경계다. 따라서 강남대로 양측은 두 지자체의 도시 공간 관련 조례부터 도시설계 지침, 가로의 경관 디자인까지 각각 다르게 적용된다(그림 2). 예전에 일했던 사무실 앞 성북로는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인데, 한편은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어서 술을 팔 수 있는 일반 음식점이 가능했고 반대편은 제1종 전용주거지역이어서 불가능했다. 도로를 기준으로 용도지역을 가르다 보면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환경과조경419호(2023년 3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Eran Ben-Joseph, The Code of the City: Standards and the Hidden Language of Place Making , Cambridge: The MIT Press, 2005.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 및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 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유영수
  • [모던스케이프] 죽음이 이르는 곳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될 일이지만 이를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특히 장례 문화는 종교와 사상, 신분, 환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되기 때문에 문명권마다 특징적인 고유의 장례 형식이 있다. 씨족사회의 전통을 가진 한국은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산을 두고 후손들이 정성껏 가계 묘를 관리하는 게 오랜 관습이었다. 비공식적으로 음택 풍수의 이치를 따져 길吉한 묫자리를 찾아 몰래 매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면 비천한 신분이나 무연고자처럼 개인 묘지를 가지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혹여 질병이나 자살 등 불경한 이유로 사망했다면 사정은 더 나빴다. 시신은 집장지集葬地라고 부르는 매장처에서 표식도 제대로 없이 처리됐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북망산北邙山이라고도 불렀다. 집장지는 지금으로 치면 공동묘지 같은 시설이다. 서울은 예로부터 인구가 많은 탓에 도성 주변에 집장지가 여럿 있었다.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곳은 한양 도성 동남쪽의 광희문 밖 집장지다. 광희문의 별칭이 ‘시구문屍柩門(시체가 나가는 문)’이었을 정도니, 이곳 분위기는 문물 교류, 송별 연회 등 활기 넘치고 번잡했던 사대문 주변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도성 밖 집장지와 산자락 여기저기에 자리 잡은 묫자리가 문제로 떠오른 건 식민지기에 이르러서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1910년대에 이미 도성 주변에 19개소의 집장지가 있었다고 조사된 바 있다. 이들 외에도 이 산 저 산에 산소가 많이 있었을 터인데, 근대 도시로 전환하는 데 있어 마구 없애기도 뭣한 애매한 장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국유 임야를 개인이 사유화해 묫자리로 쓰고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도 문제였다. 국가 토지를 관리하는 총독부, 경성부와 가족묘를 지키려는 이들의 대립은 첨예해졌고, 결국 전통적인 한반도의 장례 문화는 여러 면에서 위기를 맞게 된다. 1912년 조선총독부는 ‘묘지·화장장·매장 및 화장 취체 규칙’을 공포하고 주요 도시부터 묘지를 정비하기 시작한다. 묘지 정리의 명분은 위생과 미관이었다. 다만 조선인의 오랜 관습을 건드릴 때 발생할 수 있는 격렬한 저항과 분쟁을 고려하여 천천히 진행했다. 1914년 경성부에서는 경성부 일대의 19개소 집장지를 미아리, 신당리, 아현리, 이태원리, 신사리(응암동), 수철리(금호동) 여섯 곳으로 정리하고 공동묘지라는 이름으로 공식 운영하기 시작한다. 기존 집장지 등에 있던 묘지는 이장이나 화장하는 방식으로 정리하고, 새로 운영하게 된 공동묘지에서는 화장과 매장의 원칙을 정하여 묘지 구획, 묘지 사용료 등의 규칙을 갖추었다. *환경과조경419호(2023년 3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이향아, “공동묘지, 식민지 경성을 잉태하다: 식민지 경성 공동묘지의 정치경제학”, 『한국공간환경학회 추계학술대회』, 2014, pp.347~357. 다카무라 료헤이, “공동묘지를 통해서 본 식민지시대 서울: 1910년대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15, 2000, pp.131~165. 이의성, 『근대도시계획과정에서 나타난 공동묘지의 탄생과 소멸: 서울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1 유홍준, “망우리 별곡”, 「중앙일보」 2022년 5월 12일. 정재정, “망우역사문화공원과 근현대사 탐방”, 「서울신문」 2022년 11월 30일. “이태원공동묘지 이장공사 착수”, 「동아일보」 1936년 4월 9일. “무연분묘삼만기 망우리로 이장”, 「조선일보」 1936년 10월 10일. 망우역사문화공원 manguripark.or.kr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에디토리얼] 인류세의 조경, 작은 실천을 향한 첫걸음 12
    겨울이 매년 더 추워지고 있다. 추워도 너무 춥다. 한반도의 겨울에 한파가 찾아오는 건 계절 변화에 따른 일반적 현상이지만 전 지구적 기후변화의 여파로 겨울 추위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구 온난화로 녹은 해빙과 한반도 주변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해 북극 한파가 남하하기 좋은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생물 다양성 감소, 물 부족, 자원과 에너지 고갈 등 서로 연결된 복합적 난제가 지구와 인류의 운명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2020년 여름, 역사상 최고를 기록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이상 기온은 한국 면적의 20퍼센트에 달하는 땅을 불태웠다. 2021년 중국 허난성에는 1,000년 만에 최대량의 폭우가 쏟아졌다. 기후 재난과 더불어 코로나19 팬데믹은 과도하게 커진 인류의 힘과 감당할 수 없는 욕망으로 인해 지구 시스템의 균형이 붕괴되었다는 점을 실감하게 했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드러내고 있는 지구 환경의 다층적 변화와 균열은 지난 1만 년의 홀로세(Holocene)가 끝나고 이른바 ‘인류세’라고 지칭되는 새로운 지질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린다. ‘인류(anthropos)’와 지질학의 시대 구분 ‘세(-cene)’를 합친 말 ‘인류세(Anthropocene)’는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제안한 이후 이 시대의 새로운 화두가 됐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 환경을 바꾸는 지질학적 힘이 된 시대, 다시 말해 지구 역사에서 과거 어떤 시대보다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시대 상황을 뜻한다. 지질학을 비롯한 지구과학에서 제기된 인류세 논의는 생태주의 환경 운동, 탄소 저감을 위한 지구공학, 환경 정책과 정치학, 탈탄소 경제학, 포스트휴머니즘과 탈인간중심주의, 신유물론, 마르크스 생태학, 인류세 페미니즘, 생태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의제로 확산되고 있다. 인류세는 인류가 이룬 문명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상찬이 아니라, 지표면 형태의 변화, 종 다양성 감소, 기후변화 등 동시다발적 위기 상태가 낳은 지구 행성과 인간 삶의 절멸 상황에 대한 경고다.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이 다가오고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속속 나온다. 하지만 인류세가 인류의 종말을 목도하는 시대가 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가 이어지는데도 우리는 구체적인 행동과실천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인류세 위기의 규모가 인간의 지각 범위를 뛰어넘기 때문에 인식과 실감이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내가 죽고 난 뒤 먼 미래에 닥칠 일이라고 여긴다. 인류세의 위험은 치명적이지만 비가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과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 사이에 큰 인지적 부조화가 있는 것이다. 행동과 실천을 가로막는 또 다른 이유는 어차피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비관과 회의에 있다. 마치 타조가 평야에서 맹수나 사냥꾼을 만나면 모래에 머리를 파묻어버리는 것처럼 우리는 인류세의 위기를 외면하거나 회피하곤 한다. 이러한 인지 부조화와 회피의 문제를 넘어서려면 인류세 위기에 대한 일상적 관심을 촉발하고 공감하게 할 이야기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과학적 연구와 기술적 해법, 정책적 수단만으로는 행동과 실천을 끌어내기 힘들다.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와 계산, 과학적 관찰과 모델링을 통한 사실 확인과 예측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새로운 상상력으로, 구체적인 공감의 서사로 번역할 수 있어야 피부에 와닿는다. 바로 이 지점에 인류세를 사는 조경가의 작은 역할이 자리한다. 이번 호 ‘어떤 디자인 오피스’ 스튜디오테라(대표 김아연) 편에서 인류세와 조경을 연결하는 소중한 접점을,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의 첫걸음을 만날 수 있다. 본문에서 따와 다시 싣는다.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지금, 다양한 정책적, 전문가적 해결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이런 해결책들은 행정가, 정치인, 기업인,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바뀌어야 비로소 이러한 정책들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일상에서 자연을 더 잘 이해하고 자연에서 감동을 받고, 그래서 나와 자연을 이어주는 계기들을 계속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 조경이라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자연이 가지는 본연의 예술성을 드러내는 일 혹은 자연을 예술적으로 체험하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서서히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경과 예술은 지구를 살리는 실천으로 만날 수 있고, 그 실천에 우리는 동참하고 있다”(113쪽).
  • [풍경감각]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해도 될까?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밀양’이나 ‘올드보이’, ‘이터널 선샤인’ 같은 명작을 나열하지만, 사실 가장 즐겨 보는 건 아무래도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다.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러브 액츄얼리’는 물론, 왓챠 평점 기준 2점대(왓챠는 5점이 만점이다) 작품까지도 로코라면 무조건 챙겨보는 시절이 있었다. 단지 연애를 하고 싶어서 보았던 건 아니었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훨씬 더 구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코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 오해하고 티격태격하면서 위기에 봉착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든 결말에 이르면 문제는 풀리고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웃는다. 대략 두 시간 동안 펼쳐지는 뻔한 스토리와 허술한 대본, 어색한 연기는 모두 선물과도 같았다.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 서론에서 이야기한다.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 데에 잘못된 이유란 없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림을 즐기게 해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라고. 영화도, 그리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해피엔딩을 기다린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스튜디오테라 시대 골목에서 조경으로 시대를 고민하는 디자인 구멍가게
    오피스 철학 S는 묵음입니다 명함 뒷면의 로고를 보고 “스튜디오스 테라군요”라며 인사하는 사람에게 대답한다. 마치 영어 발음을 잘못한 사람처럼 멋쩍어하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테라 맥주가 나왔을 때 이제부터 폭탄주에는 무조건 테라라며 사람들은 장난을 건넸다. 흙, 땅, 대지, 나아가 지구를 의미하는 라틴어 테라(terra)는 대지의 여신이자 10의 12제곱(1조)이며, 온라인 게임의 이름이기도 하고 문제가 된 가상화폐 이름이기도 하다. 각양각색의 테라를 만날 때마다 2010년에 테라를 선점한 우리는 시대정신을 너무 앞서 간 게 아닐까 웃기도 한다. 스튜디오테라 는 조경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공유하는 느슨한 네트워크다. 스튜디오테라가 지향하는 바는 이름에 암호처럼 코딩되어 있다. 조경계의 새로운 종(species)이 되길 바라는 바람으로 학명을 닮은 이름을 지었고, 스튜디오가 뿌리 내린 동네와 대학의 약자(UOS)가 숨어있으며, 여느 생명체처럼 성장과 세포 분열을 통해 분화한 복수(plural)의 스튜디오 연합체(studios)를 추구한다. 그리고 땅에서 시작하고 땅으로 회귀하는 풍경의 근원인 대지terra의 총체성과 복합성, 근원성과 수평성을 추구한다. 설계적 연구 집단인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 리서치 스튜디오, 연구적 설계 실무 집단인 디자인 스튜디오, 그리고 아직 테스트 단계지만 만들고 실험하는 필드 스튜디오가 현재의 단위 스튜디오이며, 끈끈한 이웃 회사인 MDL(대표 송민원)과 시대조경이라는 공간 플랫폼을 함께 쓴다. 동네 어귀마다 터줏대감처럼 자리하던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편의점이 들어선 지 오래다. 작지만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구멍가게는 마을의 가장 중요한 공공 공간이자 사교의 장이었고, 가게 주인은 동네의 모든 정보를 꿰고 있는 거간꾼이자 감시자기도 하다. 우리는 작은 오피스다. 몸집이 크지 않지만 큰일을 하기 위해 연합한다. 시(립)대 옆 주택가 골목 귀퉁이라 동네 아주머니들의 잔소리는 익숙해져야 한다. 쪽문을 빠져 나온 학생들이 맘 편히 들락날락할 수 있도록 낮게 자리 잡았다. 연구와 실무의 복합적 탐구와 작업 방식의 결과로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세 가지 주제를 소개한다. 놀이를 탐색하다 우리가 만드는 수많은 공간의 본질은 놀이에 닿아있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놀이의 속성처럼 놀이는 노동과 공부, 목표를 좇는 숨 가쁜 삶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자발적이며 창의적인 재충전과 즐거움의 활동이다. 놀이를 담는 공간인 놀이터 디자인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놀이의 핵심은 어린이의 눈으로 간파할 수 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일련의 작업, 그리고 연세대학교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과의 협업은 이 단순한 질문을 무한대의 탐색으로 확장하였다. 갈수록 놀이 기구는 화려하고 다양해지며 각종 인증 기준으로 안전 문제와 위생이 개선되었지만 어린이와 야외 놀이 환경에 대한 사회의 근본적인 철학과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놀이터는 빈 그릇 같아야 한다. 물론 재미있는 그릇이어야 한다. 비어야 채울 수 있다. 어린이가 스스로 상상하고 변형시키며 채우는 그릇, 즉 공간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공간을 구성하는 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는 놀이터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며 이론적인 목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놀이터를 디자인하는 일은 놀이의 인프라, 혹은 놀이의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소우주를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 시절 바깥에서 놀았던 경험은 자연에 대한 원천의 관계를 형성하고 나아가 지구와 세계에 대한 근원적 태도를 만드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 그래서 놀이터를 만드는 일은 미래의 과거를 만드는 일, 그리고 어른의 바탕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초저출생 사회에서 수가 줄어든 아동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중요 사안이며 놀이는 아동의 발달과 행복의 핵심 요소다. 어린이놀이터는 공평한 생애 첫출발을 위한 그들만의 공공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개별 놀이터 디자인에 진심인 동시에 누구나 동등하게 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놀이 정책에도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주거를 탐구하다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집이라는 가장 원초적 공간을 개인 주택정원과 공동주택 외부 공간이라는 두 가지 틀 속에서 탐구해왔다. 주택정원은 주인의 자연관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니 그들의 인생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가 설계한 첫 번째 집은 자연이 가지는 생명력과 파괴력을 절제된 방식으로 구현하길 바랐다. 두 번째 집은 어린 시절 엄마가 가꾸던 꽃밭을 닮고 싶어 했다. 세 번째 집은 유년기에 누워서 바라보던 비행기가 상징하는 여행을 다룬다. 네 번째 집은 풍경을 큐레이팅하는 컬렉터의 시선으로 현재 진행형이다. 주택정원은 한 사람이 자연을 경험하고 사유해온 삶의 여정을 공간과 식물로 각색하고 그를 위한 헤테로토피아를 만드는 일이다. 아파트는 더 어렵다. 공간을 공유하지만 그들의 욕구는 균질하지 않다. 옆 단지보다 더 나은, 적어도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입주민들의 집에 대한 욕망은 아파트 조경을 공식처럼 만들었다. ‘해마다 리뉴얼되는 상품’이 된 공동주택의 조경 트렌드 속에, 잊거나 잃어가는 자연 본연의 모습이 아파트에 구현하는 게 과연 불가능한지 반문한다. 몇 차례 아파트 조경 디자인 가이드라인과 컨설팅 연구를 수행하며 한국 아파트 조경의 근본적인 문제와 새로운 지향점을 고민해왔다. 한국의 대표 주거 유형인 아파트가 변하면 주변의 풍경이 바뀔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만들어진 삼성 래미안 갤러리에 자연이 가진 근원성(origin)과 래미안 조경의 고유성(origin)을 담는 ‘오리지널 네이처(The Original Nature)’를 제안했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 삶이 돋보이는 조경을 구현하려는 네이처 갤러리에 미세 지형과 물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미기후와 환경적 요인을 분석하여 군락 식재 모델과 건강한 생장을 위한 식재 밀도를 제안했다. 관망하는 외관이 아닌 작동하는 외관(performative appearance)은 우리가 지향하는 원칙 중 하나다. 원 서식처의 군락 구조와 수종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숲과 계곡을 찾았고 경관적·기능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자생종과 원예종을 섞어 생육 환경에 따라 연출하였다. 도면 작업으로 경관과 서식처의 구역을 정하고 건물과 나무에 의한 음영, 빗물과 식재 기반에 따른 흙의 습기까지, 예상되는 땅의 환경을 고려해 후보 종을 선택하고 자세한 연출은 현장에서 진행했다. MDL과 함께 진행한 네이처 갤러리는 이후 스튜디오테라 초창기 멤버이자 제주도에서 식물 전문가로 거듭난 연수당의 신준호 대표가 합류해 발주처, 시공사와 한 팀으로 완성했다. 예술을 탐하다 우리는 조경 작업에 내재한 가치와 비전을 대중적인 언어와 예술적 표현으로 전달하려는 설치 작업을 병행해왔다. 이러한 설치 작업의 가장 큰 장점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로 재단되지 않은 작가의 개념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독립적이며 실험적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십여 차례에 걸쳐 미술관의 안과 밖에서 설치물을 만들거나 전시회를 기획하여 개최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나 생각을 나누고 바깥에서는 잘 쓰지 않은 재료와 공법을 공부한다. 이 과정을 통해 조경의 예술적 측면, 즉 자연이 가지는 시학과 감동을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탐구해 왔다.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지금, 다양한 정책적, 전문가적 해결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이런 해결책들은 행정가, 정치인, 기업인,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바뀌어야 비로소 이러한 정책들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일상에서 자연을 더 잘 이해하고 자연에서 감동을 받고, 그래서 나와 자연을 이어주는 계기들을 계속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 조경이라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자연이 가지는 본연의 예술성을 드러내는 일 혹은 자연을 예술적으로 체험하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서서히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경과 예술은 지구를 살리는 실천으로 만날 수 있고, 그 실천에 우리는 동참하고 있다. 우리의 낙선 다이어리 생각의 원석들 설계안은 자식 같아서 못나도 가장 예뻐 보이는 법이다. 참 많은 설계공모에서 떨어졌다. 당선됐지만 폐기된 설계안도 꽤 된다. 낙선은 우울함과 좌절감을 주지만 설계공모를 준비하면서 벼리는 디자인적 고민의 날은 무뎌질 뻔한 감각과 생각을 자극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든다. 떨어졌을 뿐 실패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지만, 꽤 두꺼워진 낙선 다이어리 속의 생각과 스케치들은 현실에 희석되지 않아 오히려 더 또렷한 힘을 가진다. 스케치와 파일로만 남아 있는 낙선작을 가끔 부여잡고 성찰하는 이유는 뒤끝이 아닌 그 안에 매장된 생각의 원석들을 언젠가 다시 채굴할 날이 올 거라는 소소한 바람 때문일 것이다. 광주공원 심사위원과 시민들의 투표로 당선안을 선정한 소위 ‘나는 가수다’식 지명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광주공원(2011)은 예산과 행정의 이유로 건축물만 지어졌지만, 우리는 시민회관이라는 건축적 자산이 공원으로 확장되고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유산과 시민의 힘이 공원의 정체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신했다. 춘천 시민공원 춘천 시민공원(구 캠프 페이지) 설계공모(2020) 때는 이미 사라진 미군기지의 흔적을 시민들의 공간 점유와 전유를 통한 자발적 해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공원문화의 최전선, 파키비움 춘천’을 제안한 ‘기록 장치로서의 공원(Parkiveum)’은 살아있는 유산 만들기로서 우리가 공원을 바라보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배곧신도시 배곧신도시 공원 설계공모(2012)는 기수역이라는 역동적 생태계와 도시의 질서가 공존할 수 있는 대안적 방식을 고민한 기회였다. 옛 염전의 기하학적 질서는 새로운 생태계가 태어나는 모눈종이 역할을 하며 도시와 바다의 경계(Urban Ecotone)에서 재구성된다. 만리동공원 공공미술 서울로 7017 초입 만리동 공원의 공공미술 작품 지명 설계공모(2016)에서는 전쟁 후 서울역을 매일 바라보며 가족을 기다리던 피난민들의 동네라는 만리동의 의미와 현대 도시의 새로운 아이코닉 장소 만들기에 집중했다. 약속을 의미하는 반지 모양의 구조물을 통해서 공공 미술의 기능을 하는 도시 정원을 제안했다. 테라의 어제와 오늘 테라 동창회의 월간테라 어떤 방식이든, 얼마만큼 머물렀든 스튜디오테라를 거쳐 간 많은 사람이 하나씩 쌓아 올린 돌담이 지금의 우리를 정의한다. 10년을 넘기는 어느 해 테라 동창들(Alumni terra)은 기념행사를 하자는 관성적 제안을 꺼내 들었다. 숫자가 주는 이상한 압박이 가끔은 어떤 계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형식적이며 물리적인 행사보다 10년 동안 스튜디오테라를 거쳐 간 여러 사람의 현재를 공유하기로 결정했다. 각자 지금 활동하는 곳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놓기로 말이다. 그것이 2021년 4월 이후 새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는 월간테라(Monthly terra)다. 그다음 연재를 맡은 친구는 창업과 사업 확장에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청년들이 활동하느라 바빠서 글쓰기에 소홀하다면 오히려 잘된 일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언젠가 그가 소수의 독자를 위해 연재를 재개해주길 기다린다. 지구에 최소한의 흔적 남기기 사는 동안 자연인으로 또 디자이너로서 우리는 최소한의 혹은 절제된 흔적을 남기기로 한다. 여기에는 과도한 조형적 어휘와 디지털 흔적도 포함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양한 온라인 매체 소통에 소홀하다는 꾸짖음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말과 자기 매니페스토가 초과 용량으로 밀려드는 정보 소화 불량 시대에, 말을 아낀 틈새에서 자라는 생각의 새싹들을 응시하는 일이 조금은 구닥다리인 우리에게 더 편안한 것 같다. 디자인은 자연과의 어떤 조우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어야하고, 디자인의 이름을 통해 행해지는 장치들이 공간의 본질을 뛰어넘는 그 자체의 조형으로 남지 않도록 자기 검열을 자주 한다. 우리를 몇 가지의 생각을 공유하는 느슨한 집단으로 소개했지만 사실 그게 정확히 무엇이며 몇 개의 생각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아마도 함께 실천하며 생각을 나누는 가운데 어느덧 수렴되는 수평선 같이 무언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에 가까울 것이다. 동네의 문지기이자 자연과 사람의 거간꾼, 작은 오피스 스튜디오테라는 오래된 것, 느린 것, 낮은 것, 수평적인 것, 작은 것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을 존중하며 디자인한다. 이 다짐이 아직 규정되지 않은 그 몇 가지의 생각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스튜디오테라는 조경에 대한 몇 가지의 생각을 공유하는 느슨한 네트워크다. 조경을 통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 수 있고, 좋은 생각과 상상력이 좋은 디자인을 만든다고 믿는다. 설계 실무 중심의 디자인 스튜디오(design studio), 연구 중심의 리서치 스튜디오(research studio), 만들고 실험하는 필드 스튜디오(field studio)가 독립적으로 혹은 연대하여 작업한다.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의 수장인 안형주는 송가림, 박근우, 육아 중인 최진호와 함께 일하며, 리서치 스튜디오는 윤정원, 손영호, 전효정, 김선주, 정영재, 임용재, 이수빈, 김문기가 4학기 제때 졸업을 목표로 공부하며 신입생들을 기다린다. 이 틈새에 김아연이 활동한다. 현재 원주의 미술관, 논산의 예술 놀이터, 네 번째 주택정원, 장항의 폐선 철도 공원을 설계 중이고, 양양의 어린이집과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가 공사 중이다.
  • [모던스케이프]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옥상정원
    옥상정원은 도시의 부족한 녹지 공간을 확대하는 장점도 지니지만 에너지 활용과 절감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어 패시브 하우스에서 종종 언급되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이런 유용성은 최근 부각된 것이고, 원래는 근대 건축과 근대적 소비 문화에 기반해 탄생한 공간이다. 옥상정원은 뾰족한 경사 지붕을 가진 옛 건축물에는 설치하기 힘들었지만, 철근 콘크리트 기둥에 의지해 세운 평면 슬래브 건축물은 옥상정원을 두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는 ‘근대 건축의 5원칙’에서 철근 콘크리트 건물 상부에 정원을 둘 것을 권장했다. 르 코르뷔지에에게 있어 녹색의 옥상정원은 건물로 상실된 자연의 대체재이자 건물에서 자연으로 나아가는 연속적 경험의 중간자다. 관찰자의 이동에 따라 펼쳐지는 건축적 산책의 종착지는 옥상정원인데, 관찰자는 벽체와 천장, 건축적 오브제를 거쳐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옥상정원에서 열린 하늘을 만나고 자연 경관을 조망하게 된다. 건축가들과 이론가들은 르 코르뷔지에의 옥상정원을 두고 자연과 건축 관계의 실례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지만, 이러한 담론과 무관하게 옥상정원은 근대 건축과 함께 점차 도시민에게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옥상정원이 주로 백화점이나 호텔에 처음 설치됐는데, 사람들은 도시 한복판 건물 최고층 높이에서 일상 공간을 내려다보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생소한 개방감과 낯선 시선을 경험했다. 모더니스트 시인 이상(1910~1937)은 미쓰코시백화점(三越百和店) 경성점 옥상정원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도시를 조망했고, 김기림(1908~?)은 그곳에서 바라보는 도시를 금붕어가 흐느적거리는 바닷속으로 표현했다. 세련된 장식과 시설, 최고급 서비스를 향유하는 서양식 사교 활동이 가능했기에, 자본과 권력을 가진 상류 계층은 물론 진보적 성향의 모던걸과 모던보이는 옥상정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김영민, “르 코르뷔지에의 자연관에 대한 비판의 전개 양상”,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7(6), 2021, pp.117~126. 박진아, “르 꼬르뷔지에 유토피아적 자연관의 절대적 이데올로기화 과정 연구”, 『건축역사연구』 13(2), 2004, pp.7~19. 신세계백화점 자료 제공, “미쓰코시 백화점 사진 자료”, 『이상리뷰』 3, 2004, pp.169~176. 이길훈, “미츠코시백화점의 설립과 경성 진출”,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2(1), 2016, pp.81~89. 전상인·김미영, 『옥상의 공간사회학』, 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2. 朝鮮建築会, 『朝鮮と建築』 11(9), 1930, pp.13~39. “옥상정원을 개조하여 호텔 개방을 계획하고 동시에 아래층 정원에도 손을 대 여름용 납량원을 만들다”, 「朝鮮時報」 1921년 6월 9일. “屋上庭園開放”, 「경성일보」 1924년 7월 12일.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사진 출처 그림 1. 『京城名所』 그림 2. 신세계백화점 자료 제공, “미스코시백화점 사진 자료”, 『이상리뷰』 3, 2004, p.174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에디토리얼] 한국 조경,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다
    한국 조경 50년 역사의 여운을 짙게 남긴 채 2022년이 저물었습니다. 지난 연말 선유도공원에서 열린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한국 조경 50년 기념전+IFLA 한국 개최 성과전’은 폭설과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전시회장을 찾은 조경가들은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의 기조 강연, 스페셜 세션, 라운드테이블, 학생 공모전과 학생샤레트 등을 다시 만나 뜨거웠던 광주의 사흘을 기억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특히 학생들과 젊은 조경인들은 기둥 형식으로 전시한 한국 현대 조경 대표작 50선, 서가에 눕혀 전시한 한국 조경 도서 100선, 바닥에 연도별로 펼쳐 전시한 50년사의 주요 사건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기성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작품, 도서, 사건이 젊은 세대에게는 생경하지만 경이로운 역사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러나 50년사의 궤적과 흔적이 낯설면서도 신선하다는 반응은 곧 우리 조경계가 그간 자료의 수집과 저장, 체계적 기록에 소홀했다는 점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전시회에서 만난 한 조경사 연구자는 “한국 조경의 분더카머(Wunderkammer)를 만난 것 같다”는 흥미로운 평을 했습니다. ‘분더카머’는 르네상스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귀족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진귀한 사물을 수집해 진열한 공간입니다. 현대 박물관의 전신에 해당하지만 주로 소유자의 취향을 반영하고 극화한다는 점에서 박물관과 다릅니다. 그가 말한 분더카머는 독특한 역사와 기억의 진열을 뜻하는 것이겠지만, 동시에 흔적의 파편적 집합체를 의미하는 비유이기도 한 셈입니다. 지난 50년간 한국 조경은 도시와 경관, 지역과 환경, 삶과 문화의 틀과 꼴을 직조하며 발전을 거듭했지만, 자료의 저장과 성과의 기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현대한국조경작품집 1963-1992』(1992), 『한국의 조경 1972-2002: 한국조경학회 창립 30주년 기념집』(2002), 『Park_Scape: 한국의 공원』(2006), 『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 한국조경백서 1972-2008』(2008), 『한국조경학회 창립 40주년 기념집』(2012), 『환경과조경』 통권 400호(2021년 8월호)를 비롯한 여러 기록물이 백서, 자료집, 작품집 형식으로 출간됐지만, 종합과 체계라는 기준에서 보면 불충분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난맥을 지난해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2022)을 편집하는 과정에서도마주쳤습니다. 책의 지향점은 한국 조경사 50년의 담론과 작품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 있었지만, ‘기록’의 측면만 놓고 보자면 아쉬움이 적지 않게 남습니다. 조경 50년사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체계적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은 다음 50년을 설계하는 토양이 될 기초 작업이지만, 책의 범위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카이브는 대상과 사건의 진위를 보여주는 가장 일차적인 자료이자 그 기록물의 저장소입니다. “기록의 집적물인 아카이브는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진정성에 기반을 둔 두터운 스토리텔링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이며, 과거와 미래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도 힘을” 지닙니다(박희성, 『환경과조경』 2020년 3월호). 이러한 기록과 저장의 힘을 실험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지난 연말의 기념전은 의미를 획득합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갈 때입니다.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50년, 한국 조경의 시선으로 도시와 경관을 둘러싼 글로벌 이슈를 대면하고 창의적 해법을 마련해가기 위한 필요 조건은 지난 50년의 성과, 작품, 제도, 교육, 인물을 촘촘히 기록하고 면밀히 저장하는 체계적 아카이브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소실되고 있는 자료와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수집, 정리, 공유, 소통하는 범 조경계 차원의 기획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환경과조경』의 편집도 “한국 조경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아카이브에 비중을 둘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2023년을 열며 ‘제5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인 최윤석(그람디자인 소장)을 특집으로 다룹니다. 에세이 “종합관계기술”에 담은 설계 철학, “여섯 가지 빌드업”으로 구성한 작업 성과, 김모아 기자의 인터뷰, 조혜령과 유청오의 에세이 등으로 꾸린 특집 지면에서 공간과 개인의 삶을 잇는 최윤석의 도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영수(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과 교수)의 격월 연재 ‘제도가 만든 도시’가 시작됩니다. 도시의 공간적 형태와 현상에 작동하는 제도의 양상을 다각적 차원에서 묻고 살필 것입니다. 설계 작업과 설계사무소 경영의 다채로운 뒷이야기를 담는 ‘어떤 디자인 오피스’의 올해 첫 순서는 ‘바이런’입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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