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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도시재생, 편의적이거나 인기영합적인 해석을 넘어
    ‘도시재생’이 공간 문제를 다루는 모든 학계와 업계의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라 전국 13개 도시에 도시재생 선도 지역이 선정되어 도시재생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그동안 부동산 경기 침체로 고생하던 학계와 업계도 도시재생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그러나 도시재생은 여전히 생경한 개념이다. ‘재생’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의 법제에서 그대로 따온 것으로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재활성화’가 더 이해하기 쉬운 용어다. 그 뜻을 새겨보면 예전에는 번성했던 곳을 ‘다시’ 활성화시킨다는 의미로, 그 전제 조건은 도시 쇠퇴다. 이러한 점에서 엄밀히 말해 한때 활력이 있었던 곳이 쇠퇴decline한 경우와 한 번도 발전한 적이 없었던 낙후backwardness의 경우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그러므로 도시재생을 ‘낙후 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수단’쯤으로 여기는 지자체들의 태도는 매우 안이하다. 번영했던 도시가 쇠퇴하면 공장과 상가가 문을 닫고 빈 집이 생기고 도로가 한산해지면서 그동안 도시 개발을 위해 투자되었던 각종 시설이 100% 활용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재활성화’에는 이렇게 미이용unused되거나 저이용under-used되고 있는 기존의 도시 시설을 다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재활용’의 의미가 그 기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영국에서 탈산업사회의 도래로 인해 가동이 중단된 수변 공간의 제조업 공장, 창고, 도크dock 등의 산업 유산을 문화 자산으로 재활용하거나, 일본에서 ‘읽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도심에 방치되었던 대단위 토지를 재활용하여 도시재생을 꾀하려고 했던 시도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시재생을 ‘부수지 않고 다시 이용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일정 부분 유효하다. 실상 많은 사람들에게 도시재생은 단적으로 재개발redevelopment 또는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철거 재개발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철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용한다는 개념은 일찍이 수복 재개발, 보전 재개발 등의 개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곧 도시재생은 수복 재개발, 보존 재개발을 의미하는 것일까? 유의할 점은 ‘부수냐 마느냐’는 방법 또는 수단일뿐,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정 지역의 ‘재활성화’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존의 것을 없애버리는 것보다 다시 활용하는 것이 지역의 재활성화에 보다 효과적이라면 보존하여 이용하고, 반대의 경우라면 철거해도 된다는 것이다. 재활용하기에는 너무 노후화되고 불량화되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거나 재활용할 만큼 희소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까지 모두 무조건 재활용하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재활용’은 건축물·시설물 등의 재활용뿐만 아니라 기성 시가지내에 이미 개발이 되었던 토지의 재활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건축물·시설물을 재활용하는 것이 지역의 재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예전의 것이 지니는 희소성의 가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예전에 수많은 달동네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신작로와 아파트는 매우 신기하고 희소한 존재였다. 그렇지만 그동안 거의 모든 달동네가 철거 재개발을 통해 아파트 숲으로 변모하게 됨에 따라 오히려 이제는 그나마 남아 있는 달동네와 골목길이 신기한 희소한 자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겨우 남겨진 철로, 공장, 창고, 점포, 한옥, 골목길, 계단길 등이 그 지역 고유의 유일하고unique 진정성 있는authentic 장소성을 나타내며 도시재생의 귀중한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도시재생은 종종 ‘마을만들기’와 혼용되기도 하면서 하향식top-down 방식에 대비되는 주민참여형의 상향식bottom-up 도시 정비·개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시 주민참여는 방법 또는 수단에 관한 사항이다.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의 ‘재활성화’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오늘날 계획 이론에 의하면 주민참여에 기초한 협력적 계획collaborative planning은 그 대상이 도시재생이든 새로운 지역의 개발이든 또는 비물리적 프로그램이든 절차적 합리성과 정당성이 재활성화와 같은 계획의 성공적 산출을 위해 매우 중요함을 보편적으로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실로 도시재생의 가장 큰 특성은 그 목적인 도시재활성화가 물리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측면을 통합적이고 균형 있게 고려한 개념이라는 데 있다. 즉, 종전의 재개발이 물리적 측면에서 도시 및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춘 데 비해, 도시재생은 물리적 환경이 개선되더라도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사회적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쇠퇴 도시의 재활성화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도시재생의 원조격인 영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카리브 해와 서남아시아의 이민자들이 공간적으로 집중됨으로써 나타난 빈곤, 치안, 인종적 갈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 제조업 쇠퇴에 따른 실업 등 경제적 문제를 도시 및 주거 환경 악화와 같은 물리적 문제와 함께 통합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일본의 경우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 도쿄 등 대도시 지역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경제적 요인이 도시재생을 외치게 된 주요 배경이었다. 이렇듯 도시재생이 물리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측면의 도시 재활성화를 통합적이고균형 있게 고려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기존의 낡은 건축물·시설물의 철거를 통해 물리적 환경만을 개선하려는 재개발의 개념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또한 사회적·경제적 여건 개선의 핵심은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민참여가 재활성화를 위한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재생이 갖는 시대적 화두의 의미는 통합적 또는 융·복합적 접근 방식에 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뿐만 아니라 여러 부처에서 벌이고 있는 도시, 주택, 교통, 환경, 경제·산업, 교육, 의료, 사회복지 관련 사업들이 지역 활성화라는 하나의 최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합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연계 사업’이야말로 도시재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최막중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로서 원장에 재임 중이다.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을 맡고있으며,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국무총리 소속 국토정책위원회 위원, 국토해양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등으로활동해 왔다.
    • 최막중[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원장,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 2014년10월 / 318
  • [에디토리얼] 도그마
    용도 폐기되어 방치된 지 16년 만에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꿈꾸며 진행된 ‘마포석유비축기지의 재생 및 공원화 사업을 위한 국제설계경기’가 막을 내렸다. 그 진행 과정과 수상작들을 보면서 일종의 도그마dogma라고도 할 수 있을 두 가지 쟁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참가 자격 문제가 그 하나다. 경쟁 끝에 선정된 당선작과 여러 수상작의 설계 개념과 해법보다 오히려 작품 외적인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환경’과 ‘재생’을 주제로 한 이 공모전은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제공할 수 있는 공원 조성을 목표”로 삼았음에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참가 자격 조건을 내걸었다. 대표자를 “건축사 면허를 소지하고 … 건축사사무소의 등록을 필한 자”로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공동 응모 시 응모자 모두 상기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제한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제한은 “푸른 도시, 건강한 도시, 매력적인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서울시의 정책 방향에 역행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전문분야의 협력과 융합이라는 시대정신에도 어긋난다. 이러한 극단적 폐쇄성의 원인이 서울시를 대리하여 공모를 전담 운영한 기관의 건축 교조주의dogmatism나 근본주의fundamentalism에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진행 과정상의 단순한 실수이거나 서울시의 행정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일이기를 바랄 뿐이다. 결과적으로 조경가는 설계 크레디트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환경과조경』은 그들의 역할을 기록하기 위해 수상작에 참여한 조경가의 이름을 본문에 포함시켰다(지면 관계상 수록하지 못한 가작 수상작에도 유승종, 정욱주, 최혜영 등의 조경가가 참여했음을, 이곳에서나마 밝혀둔다). 마포석유비축기지 공모전을 두고 함께 생각해 볼 또 다른 도그마는 산업 유산을 재활용하는 최근의 설계에서 드러나는 단선적 경향에 관한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기능을 다한 공장, 항만, 창고, 철로 등의 산업시설을 재활용하여 공원, 미술관, 복합문화시설로 전환하는 프로젝트가 20세기 후반 이후 줄을 이었고, 이러한 재활용이 주변 지역과 도시를 재생시키는 촉매가 된 성공 사례도 속속 탄생했다. 뒤스부르크-노르트 공원을 벤치마킹한 선유도공원이 국내 포스트-인더스트리얼 공원의 서막을 열었고, 콘크리트와 녹슨 철과 새로운 식물이 동거하는 선유도공원의 생경하면서도 숭고한 sublime 미감이 서울숲공원의 정수장 구역과 서서울호수공원 등 여러 공간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이제 공장이나 산업시설에 문화나 유산이라는 말을 대입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공업시설의 구조물, 흔적과 잔해, 재료와 물성을 그대로 남기고 적극적으로 재활용하는 것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일종의 설계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한 규범이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도그마로 치닫거나, 아니면 단순히 표피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면서 하나의 유행으로 복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마포석유비축기지는 1970년대의 두 차례에 걸친오일 쇼크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한 석유 비축사업의 결과물이다. 매봉산 자락에 콘크리트와 철제 구조물로 만든 5층 건물 높이의 탱크 다섯 개가 매설되었고 여기에 20여 년간 130만 배럴의 석유가 저장되었던, 한국 현대사의 독특한 산물이다. 새로운 변신을 기획하고 있는 이 땅의 설계에서 ‘재생’과 ‘남기기’가 중심 주제로 검토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방식은 보다 자유롭고 창조적일 필요도 있다. 석유를 저장했던 탱크는 형태와 물성만으로도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계의 다양한 해법을 제한하는 조건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당선작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은 탱크가 건설되던 당시의 작업 역순으로 그 과정의 기억을 복원하고자 한다. 암반을 뚫고 석유 탱크를 만들던 작업로를 다시 재현하고자 한다. 이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회는 “공간의 기억에 주목해 ‘건축의 고고학’을 전개한 작품”이라고 정의하고, “과도한 설계를 자제하면서 이 땅이 지닌 지형의 고유한 잠재력을 최대로 이끌어냄으로써 탱크와 풍경이 하나가 되게 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심사평처럼 이 작품은 건설 당시의 상황과 조건에 주목하여 설계를 전개했으며 새로운 물리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지혜를 발휘한 수작이다. 그러나 그러한 해법이 과연 이 땅과 주변 지역에 어떠한 재생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지 상상하기란 쉽지않다. 당선작뿐만 아니라 다른 수상작들도 과연 무엇을 재생하고자 한 것인지 의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탱크를 최대한 원래의 형태대로 남겨서 다시 쓰는 것과 이미지의 소비나 유행 사이의 경계는 아슬아슬하다. 지난 9월 초, 서울시는 철거가 예정되었던 서울역 고가도로를 “뉴욕의 하이라인처럼 공중 공원으로 바꿔 서울의 명물로 키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산업시대의 대표적 산물인 이 고가도로를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원형 구조물을 최대한 보존하여 휴식 공간으로 재생할 계획”이며, “도로 상하부에 ‘환경과 재생’을 주제로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한다. 10월에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연말까지 계획안을 선정하고 내년에는 구체적인 설계안을 발전시켜 2016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는 ‘토건시대적’ 스피드의 일정도 내걸었다. 이 프로젝트는 기억과 역사에서 지워질 예정이었던 1970년대의 구조물을 재활용해 서울에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낸다는 의의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을 순식간에 지우고 버린 후 다시 빠른 속도로 그리고 만들기를 반복해 왔던 우리 현대사에 대한 반성과 극복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서울의 도시 구조와 형태에, 또 주변 지역의 재생과 재활성화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가져 올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서울시가 발표한 급박한 일정대로 진행된다면, 연장 1km에 가까운 고가도로를 그대로 ‘남겨’ 다시 사용하는 것에만 초점을 둔다면, 이 프로젝트 역시 이미지의 소비이거나 도그마의 추종에 불과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번 호의 도시재생 특집에서 여러 필자들이 강조하고 있듯, 과거의 것을 남긴다고 해서 재생과 재활성화의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뉴욕의 하이라인을 모델로 삼았다는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가 여느 시장들의 전시적 대형 사업과 다름없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아니기를.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2014년10월 /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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