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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화로운 삶 활자산책
    몇 년 전 아버지께서 시골에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을 때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했다. 멀쩡히 다니시던 직장을 뒤로 하고 전원생활이라니! 이전부터 나무나 꽃을 키우시는 일을 좋아하셨고 생태나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셨던 아버지께서는 시골에 내려가신 뒤로 아예 ‘생태주의자’를 자처하셨다. 적당히 제초제를 치라고 어머니와 내가 그렇게 말씀을드려도, 아버지는 허리가 꼬부라지실 때까지 손으로 잡초를 뽑으셨다. 아버지가 손수 가꾼 정원을 내게 처음으로 보여주셨을 때, (아버지께 미안하지만) 나는 그것이 정원이 아니라 정글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더할 나위없이 친환경적이었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이 환경적으로는 완벽한 정글 같은 정원을 어떻게 하면 번듯하게 바꿀 수 있을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신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저녁 밥상에 내놓은 채소도 사실은 실망스러웠다. 아버지의 정원에 사는 온갖 풀벌레들이 선심쓰듯 남겨놓은 채소에 감지덕지하며 부족한 듯 배를 채워야 했다. 우리 가족이 전원으로 이사한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드디어 ‘웰빙’을 실천하게 되었냐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웰빙Well-being’이지 사실은 온갖 불편함과 고된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삶이다. 최근 ‘에코라이프스타일’로 유명한 모 연예인이 블로그에 ‘모순덩어리 삶’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관심을 받았다. 그는 ‘개는 사랑하지만 가죽 구두를 신’으며 ‘숲을 사랑 하지만 집을 짓는다’고 했다. ‘웰빙’, ‘에코 라이프스타일’ 등 최근 유행하고 있는 생활양식은 사실 그리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짚신과 가죽 구두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삶이다. 그런데 여기 이 모순덩어리 삶에 대해 ‘조화로운 삶’ 이라 부르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에게 ‘조화로운 삶’에 대한 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또 반쯤은 ‘조화로운 삶이라니, 어디 들어나 보자’ 하는 불손한 마음으로 책을 집었다. 그들이 말하는 ‘조화로운 삶’에 비추어 내 모순덩어리 삶을 반추해본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헬렌 니어링·스코트 니어링, 『조화로운 삶』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 스코트 니어링이 남긴 말이다. 그의 말에는 ‘삶의 방식’ 그 자체보다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담겼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삶과 불편하지만 소박한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성숙하게 만들 것이라는 작가의 신념에 용기를 얻는다.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과는 반대로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편리함, 이기주의, 물욕 등의 유혹에 맞선 투쟁의 기록이다. 니어링 부부는 도시를 떠나 버몬트 숲 속으로 들어가며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독립된 경제를 꾸리는 것,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것이 그 목표였다. 이 목표를 위해 그들은 채식주의를 지킬 것, 자급자족할 것, 노동은 시간을 나눠서 할 것, 기계에 의존하지 말 것, 남는 음식은 필요한 사람에게 줄 것 등의 세부 원칙을 만들고 철저하게 지켰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때로는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유기물로 된 퇴비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차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위해 노력했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버몬트 주민들은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의 과정을 고백하는 그들의 문체는 투쟁적이기보다는 담담하고 진솔하다. 목표의 성공 여부보다는 ‘희망과 인내, 그 일에 쏟아 붓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1 담담하고 서정적이기까지 한 니어링 부부의 글에 이끌려 낭만적인 환상을 품지 말기를 당부한다. 니어링 부부는 속편, 『조화로운 삶의 지속』에서 이렇게 주의사항을 전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은 어느 순간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거듭되는 고민 속에서 내린 결정이고, 그 결정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앞날을 내다보고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르는 결정이어야 한다. 처음 3년을 보내기가 가장 힘들고 어렵다. 적어도 그만큼은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한다.” 나는 내 본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즐겁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앞서 소개한 『조화로운 삶』은 『월든』이 출간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에 출간된 책이다. 니어링 부부보다 100년을 앞서 소로는 문명으로부터 벗어난 월든 호숫가에서 손과 발의 노동만으로 생활을 꾸려 나갔다. 두 책이 비슷한 점도 많지만, 수기적 성격이 강한 『조화로운 삶』에 비해 『월든』은 실험적, 연구적 성격이 강하다. 그는 책의 ‘경제’ 챕터에서 당시의 식량 가격을 종류별로 정확하게 기록했으며 자신의 수입과 지출을 세세하게 정리해 놓았다. 또한 계절 별로 변하는 호수의 풍경과 자신이 보고 관찰한 동·식물의 행동과 특징을 아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한 예로 그는 호수에서 낚시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호숫가로부터 낚시를 한 지점까지의 거리, 닻을 내린 지점의 수심, 낚싯줄을 드리운 길이까지 기록했다. 그의 자질구레하고 세밀한 기록은 19세기 중반 미국의 풍속사에 마니아적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둔다.
  • 미래 도시 디트로이트 도시재생의 새로운 국면
    미래 도시 디트로이트Detroit Future City 스토스Stoss는 일련의 도시계획 전문가들과 함께 디트로이트 시 전역에 걸친 도시설계 작업인 디트로이트웍스 프로젝트Detroit Works Project에 참여했다. 본 프로젝트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사회적·경제적·생태적 시스템 사이의 긴밀한 연계성을 확립함으로써 생산적 효율성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통합된 해결책을 바탕으로 도시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 생활, 도시에서의 새로운 생산 방식, 그리고 생산적인 그린인프라를 제안하고자 한다. 스토스는 경관landscape을 단지 여가 공간으로만 간주했던 전통적 인식을 재정의하는 동시에 이를 다변화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경관이 도시의 건전성 및 거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단일한 기능만을 지닌 수동적 경관은 자원만 소비할 뿐이다. 반면 현대의 생산적 경관은 자원 자체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도시 거주민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환경 문제를 줄여줄 수 있다. 생산적인 경관을 만들어내는 것이 스토스의 작업의 기준이 되는 원칙이다. 생산적 경관과 그린인프라는 공기, 물, 그리고 토양을 정화시키며 보다 건강한 도심 생태계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혁신적 경관은 다양한 유형의 블루·그린인프라 조성에 초점을 맞춰 물과 공기의 정화를 추구하며, 식량 및 에너지 등의 생산 기반 시설, 지역 사회의 참여, 그리고 연구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이 계획은 새로운 도시 구조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촉매제로서 종합적 경관 기반 시설의 확립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스토스(Stoss)는 도시 및 사회적 공간 조성 과정에서 조경의 생산적인역할을 추구하는 설계사무소다. 스토스는 기본적으로 공공의 영역과 관련된 일을 한다. 공원이나 캠퍼스 및 오픈스페이스, 지역 및 도시 조성전략, 다양한 스케일의 경관 기반 시설, 개발 및 재개발 등의 공간 조성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다. 스토스는 창의적이면서 실용적인, 동시에아름다우면서 기능적인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기술적 접근과하이브리드적인 해결책을 제안한다.
    • Stoss / Stoss / 2014년10월 / 318
  • 창조적 파괴와 전략적 버리기 도시재생의 새로운 국면
    창조와 파괴만큼 도시·조경설계 분야에서 흥미로운 논란을 일으키는 행위도 드물다. 도시 자체가 크고 작은 창조와 발명의 결과다. 19세기 중반 바르셀로나에 도시 격자를 카펫처럼 덮은 일데폰스 세르다Ildefons Cerdà, 그리고 비슷한 시기 보스턴 커먼Boston Common에서 프랭클린 파크Franklin Park에 이르기까지 7마일에 달하는 에메랄드 네클리스Emerald Necklace를 도시에 선사한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 이들은 아름다운 흔적을 도시에 남긴 창조자들이다. 이들은 종종 전대미문의 독창적인 계획가이자 용감한 개척자로 대접받는다. 그에 비해 파괴는 도시의 일부를 없애거나 중요성을 격하시키는 작업이다. 도시를 파괴한 사람은 때로는 도시 문명의 적 혹은 몰지각한 불도저라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이렇게 전혀 반대되는 의미의 두 단어를 결합한 개념인 ‘창조적 파괴creativedestruction’가 최근 도시계획 분야에서 자주 논의되고 있다. 1940년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에 의해 널리 쓰이게 된 이 말은 최근 뉴욕타임즈 지에 따르면 시애틀, LA, 디트로이트 등의 도시를 쇠퇴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1 창조적 파괴는 흔히 기존 환경을 의도적으로 파괴함으로써 바람직한 결과를 얻게 된다는 식의 지나친 단순화를 통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개념이 자주 인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도시 쇠퇴 과정이 성장과 발전의 정반대가 아니며 가능하면 피해야 할 절대악도 아니라고 보는 신선함 때문일 것이다. 이는 한 시기에만들어진 도시의 부분이 가까운 미래에 필요한 기능이나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점차 교체되어야 하며, 현재 세계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쇠퇴decline가 바로 그 파괴와 교체 과정의 생산적 준비단계라는 관점이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최근의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잘 나타난다. 다음은 디트로이트의 다소 불명예스러운 통계 중 일부이다. •미국 역사상 파산한 도시 중 가장 큰 도시(2013년 7월 파산 신청) •도시 총 부채 약 18조5천억 원(인구 1인당 약 3천만 원의 부채) •1950년대 180만 인구에서 2014년 70만 인구로 감소•남은 인구의 약 82%가 고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 •최소 약 4만 채의 집이 즉시 철거 대상으로 지정됨: 총 건축물의 30%가 극도로 열악함 혹은 빈집 •시 전체 가로등 약 8만8천 개 중 3만5천 개만 작동 •단위 인구 당 살인 사건 발생률 뉴욕 시의 11배 1900년대 초 미국의 실리콘밸리,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빅3, 즉 포드Ford, GMGeneral Motors, 크라이슬러Chrysler가 가져온 자동차 상업화 및 대중화의 진원지로 잘 알려졌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생산이 이루어지기 전 이미 운하와 철도가 지나가는 물류 거점이자 내륙 워터프런트를 활용한 선박 제조 기지로 자리매김하며 1890년 약 21만 명 규모의 도시로 성장했다.3 당시의 디트로이트는 모험가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기술 혁신을 이끌고 있는 1900년대 판 실리콘밸리였다. 흔히 ‘포디즘Fordism 자본주의’나 영국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혹은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서 직간접적으로 묘사된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가 이 시기 디트로이트에 등장한다. 1903년 포드사를 설립한 그는 1906년 ‘Model N’의 상업적 성공을 토대로 대량 생산 시스템을 적용해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춘 ‘Model T’로 자동차 대중화의 꿈을 이룬다. 하지만이 도시는 몇몇 성공한 기업가들의 독무대는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두뇌들, 열정적인 소자본 창업가, 그리고 이들의 혁신을 지원하는 수많은 창업 인큐베이터와 경쟁력 있는 컨설턴트들이 당시의 디트로이트를 담금질했다. 1901년 자체적으로 자동차 부품 워크숍을 설립하고 포드사에 자금을 조달한 닷지 브라더스Dodge Brothers를 포함해 1908년 GM, 1925년 크라이슬러 등이 혁신의 도시 디트로이트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 1850~1890년 10배 가까이 증가한 도시 인구는 다시 1890~1950년 8배 이상 늘어났다. 1950~2013년: 산업 쇠퇴, 악마의 밤, 그리고 파산 선고 그러나 195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이 혁신 도시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다. 미국내외 자동차 산업 간의 과도한 경쟁, 1950년대 본격화된 백인 중산층의 대규모 교외 이주, 1960년대 불거진 사회 불안과 폭동, 1973~1974년 석유 파동 등의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비슷한 시기 디트로이트 빅3는 시설 투자의 방향을 급선회한다. 1947~1958년 신규 자동차 공장 25개를 전통적으로 혁신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 도심부가 아닌 교외 지역의 저렴하고 넓은 토지에 설립한다.4 게다가 자동차 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산업이나 서비스를 도입해 변신에 성공한 뉴욕이나 보스턴과는 달리 디트로이트의 도심부는 제2, 제3의 신산업 유치에 실패하고 만다. 이곳은 더 가난하고, 더 분노에 찬, 그리고 혁신의 감각을 망각한 흑인 커뮤니티로 가득 차게 된다.5 1980년대를 기점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집단적 의식처럼 번진 ‘악마의 밤Devil’ Night’은 매년 수백 가구의 방화 피해와 살인 사건으로 이어졌다. 디트로이트는 계속된 산업 쇠퇴와 사회 불안, 정부 부채 누적으로 결국 2013년 7월 공식적으로 파산 선고를 하게 된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 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과 협동과정 도시설계학전공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중국·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김세훈[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 2014년10월 / 318
  • 부산 도시재생의 경험과 비전 도시재생의 새로운 국면
    부산이라는 도시 - 01 모든 도시는 인간이 모여 머물며 어우러져 살기 위해 선택한 삶터다. 그중, 항구 도시는 해양과 육지의 자원을 기반으로 경제적 가치를 보다 많이 창출하기 위해 사람들 스스로 선택한 보금자리다. 또 해양과 관련한 각종 산업이 발달해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의 항구는 이러한 경제적 목적 외에 또 다른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 1876년 개항, 1945년 광복, 1950년 한국전쟁 등 일련의 사건에서 부산이 담당했던 ‘국가 문제 해결지’로서의 기능이다. 부산은 개항 직후부터 전쟁 후인 1960년대까지 급속한 변화 속에 놓여 있었다. 개항 후 140여 년의 시간 속에서 부산은 대한민국의 근대사와 켜를 같이 했다. 일제강점기, 광복, 경제개발기의 인프라와 부산의 사회체제, 공간 조직, 건축물, 장소들은 맞닿거나 연이어 있다. 또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상황에서도 움직였던 민초들의 공동체적 활동과 한국전쟁 후유증의 극복 과정이 지난 60여 년 동안 부산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일상과 사건의 배경이 되었으며 근거를 제공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은 부산이 특별한 준비 기간을 거치지 못한 채 역사적 사건들의 과정과 결과를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게 했다. 이로 인해 부산은 제대로된 도시계획과 중·장기 도시발전 전략을 수립할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결국 이러한 시간은 부산을 근대기에 출발한 도시임에도 근대사를 느낄 수 없는, 근대기에 발전된 도시임에도 근대 문화를 인지할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했다. ‘토목의 도시’, ‘기억 상실의 도시’라는 혹평을 들을 정도로 부산은 그동안 ‘부산만의 도시상都市像’ 구축에 소홀했다.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진입 도로 확폭이라는 미명아래 부산대교를 건설하며 시행된 부산세관 철거(1979년)가 무분별한 개발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점이 아니었나 싶다. 88올림픽을 준비하며 서울과 유사하게 시작된 공동 주거 단지의 본격적인 건설과 연이은 재개발 붐은 부산 곳곳의 산록과 해안에 스며있던 자연과 역사의 기억을 급격하게 해체시켰다. 그즈음 1992년의 시청 이전(남포동에서 양정으로)과 직할시에서 광역시로의 개칭(1995년)은 원도심의 쇠퇴를 불러왔고 근대 부산의 위상 또한 격하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부산이라는 도시 - 02 부산은 타 지역에 비해 해운대, 영가대, 태종대, 이기대, 신선대, 몰운대, 시랑대 등 ‘대臺’로 끝나는 장소들이 유난히 많다. 이유는 바다 쪽으로 향한 지형의 끝점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대와 대 사이는 완곡한 모래사장과 크고 작은 포구와 항구가 자리를 잡았고, 이를 중심으로 동네와 시가지가 형성됐다. 그래서 연안부에 자리 잡은 시가지들은 대부분 앞으로 바다가 펼쳐진 배산임해背山臨海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부산의 연안부는 본토부와 연결된 여러 지점에서 들락날락하는 목을 이루고 있어, 여러 개의 작은 만과 반도들이 선으로 연결된 지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해안가에서 짧게는 50m, 길게는 1,000m 정도 내륙으로 이격된 배면부에 산들이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있다. 연안을 배경으로 병풍처럼 서 있는 승학산, 엄광산, 봉래산, 보수산, 구봉산, 수정산, 황령산, 금련산, 장산 등의 산봉우리들과 그 사이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던 보수천, 영주천, 초량천, 부산천, 동천(호계천, 가야천, 부전천, 전포천), 남천, 수영강, 춘천 등이 부산 연안 경관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부산의 도심 연안은 부산진성과 자성대 근처를 중심으로 하는 ‘점點’ 형태에서 출발했다. 구한말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연안부는 군사·경제적목적에 의한 침탈의 대상으로 악용되면서 절토와 매축에 의해 기다랗게 연결된 ‘선線’의 형태로 돌변했다. 전쟁 후, 1960~70년대를 거치며 부산 연안은 지형지세에 따라 지구地區 별로 가지각색의 목적을 가진 ‘면面’형태로 확장되었다. 강동진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와 역사 경관에 대한 꿈을 키웠다. 현재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에서 자연, 문화, 역사, 경관 등을 키워드로 하는 ‘도시재생’ 작업을 통해, 학생들이 도시재창조에 대한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함께고민하고 지도하고 있다. 특히 버려지거나 황폐해 가는 도시 유산(산업유산, 근대화 유산, 역사 마을 등)을 지키고 힘을 싣기 위한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더불어 캠프 하야리아 부지의 시민공원화를 위한 전문가 그룹인 ‘하야리아공원포럼’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강동진[email protected] /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 2014년10월 / 318
  • 주민이 주도한 전주의 노후 주거지 재생 경험 도시재생의 새로운 국면
    2007년 국토해양부는 도시재생사업단을 출범해 노후 주거지에 대한 지역자력형 재생 방안을 연구했다. 그동안 연구한 성과의 실용성 검증을 위해 2011년에 전주와 창원을 대상으로 테스트베드TB를 운영했고, 전주의 주거지 재생 TB 대상으로는 노송마을이 선정되었다. 전주의 테스트베드, 노송마을 1970년대 전주역은 지금의 전주시청 자리에 입지하고 있었다. 열차의 완행과 야간통금 때문에 역 주변에서는 필수 시설이었던 저렴한 여인숙촌이 역사 건너편에 자리하여 홍등가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이 홍등가와 면한 주거지가 노송마을이다. 철도 뒤로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는 입지적 특성으로 이곳은 1950년대 피난민촌이 형성되었다. 때문에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면한 불규칙하고 작은 필지 위에 다닥다닥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도시 성장을 억제하는 철도로 인해 전주의 동부가 개발되지 못하자 1980년대 초에 역을 동측으로 2~3km 이동시키면서 홍등가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기존 전주역사 자리에는 전주시청이 이전해 왔고, 철도 부지가 도시 간선 가로로 대체되면서 이 대로변에는 고층의 업무 시설이 집적되었다. 그러나 업무시설의 이면에 낡고 어두운 홍등가가 계속 운영되면서 노송마을은 전주시에서 거주환경이 가장 열악한 마을 중 하나가 되었다. 이에 전주시는 주거지 재생을 위한 TB로 노송마을을 가장 적합한 곳이라 판단한 듯했다. TB 운영을 위해 연구진이 노송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의 현황은 매우 암담했다. 면적 약 14만5천m2에 950세대 1,9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노송마을은 10여 년 전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한 곳이다. 이때 개설된 격자형의 소방도로에 의해 불규칙한 필지들은 더욱 작아져 다수의 과소 필지가 형성되었으며, 격자형 가로망이 개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가 통행 가능한 도로에 면한 필지는 35% 미만이었다. 산재한 공·폐가와 재활용을 이유로 너부러진 폐기물, 자투리땅에 방치된 쓰레기 더미 등이 마을의 경관적·위생적·방범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시청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도시가스도 하수도도 미정비 상태였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저소득 고령자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었으며, 가구주의 소득 수준이 월85만원 미만인 세대가 47.5%에 달했다. 주민 설득에서 참여까지 도시재생 TB에 대한 이해가 없던 주민들은 사업비 하나 없이 주민 주도에 의한 선 계획 후 타당성 있는 사업의 실행을 약속하는 연구진에게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마을을 직접 돌아보고 문제를 진단하기 위한 최초의 주민 워크숍 ‘동네 한바퀴’에 100여 명이 참가하여 연구진도, 행정도, 주민들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부녀회장, 방범대장, 통장, 청년회장 등 마을의 다양한 조직의 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전 주민 대표 그룹과 집집마다 방문해 사업의 의미를 설명한 도시재생센터 연구진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주민들은 10여 명이 한 조가 되어 마을을 돌아보고 일상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진단했으며 조별 발표를 통해 이를공유했다. MP팀은 도출된 문제의 범주를 주택 중심의 사유 공간, 주차장화 된 경사 가로와 소공원 중심의 공공 공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환경, 마을 쓰레기 및 방범 문제 중심의 마을 관리 및 복지로 구분했다. 이렇게 구분된 범주별 문제에 대해 워크숍에 참여한 주민들로 하여금 개인적 관심 분야를 선택하도록 했으며, 각 문제에 대해 주민 스스로 대안을 모색하도록 유도했다.각 범주별로 주민들이 파악한 대표적인 문제와 대안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먼저 사유 공간에 대해서는 방치된 폐가에 의한 위생적·방범적 문제, 과소 필지로 인한 주택 신축 및 확장의 어려움, 노후 주택 수리의 필요성 등이 파악되었다. 그리고 행정의 협조를 통한 폐가 철거 및 텃밭 활용, 자투리땅의 저렴한 매입 중계에 의한 재건축 촉진, 담장 정비 등을 제안했다. 공공 공간에 대해서는 가파른 경사지 및 불법 주차로 인한 통행의 어려움, 골목길의 노후화, 야간의 범죄 우려, 소공원 관리 문제 등을 파악하고 가로의 재구성 및 정비, 주차 단속, 방범 장치 강화 등을 제안했다. 일자리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남성을 중심으로 폐가 철거 및 집수리 사업이, 여성을 중심으로는 동네 식당 및 텃밭 가꾸기 등을 제안했다. 마을 관리와 복지 측면에서는 쓰레기 무단 배출, 도시가스 미공급, 어린이 및 노인들을 위한 시설 부족, 점집 및 정신장애인복지시설의 확장 등이 지적되었으며, 주민 주도의 청소 및 화단 가꾸기, 학생을 위한 공부방 및 노인을 위한 사랑방 조성 등의 방안이 제시되었다. MP팀은 사유 공간과 공공 공간의 정비를 물리적 재생으로, 일자리 창출은 경제적 재생으로, 마을 관리와 복지는 사회적 재생으로 구분했다. 김현숙은 1983년 전북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서 도시설계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도시계획기술사 자격을 취득하여 21C도시건축연구소장으로서 도시계획 및 설계실무에 종사했으며, 1998년부터 전북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로 도시설계 연구실을 관장하고 있다.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 국가건축정책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토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도시설계,도시 경관, 도시재생에 관한 연구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김현숙[email protected] / 전북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 2014년10월 / 318
  • ‘도시재생특별법’ 제정과 정책 추진 방향 도시재생의 새로운 국면
    2013년 6월, 다양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의 종합적인 기능 회복을 도모하기 위해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도시재생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도시재생특별법’은 쇠퇴하는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경제 기반을 확충하고 근린 생활권 단위의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활동 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 법은 앞으로 도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중요한 기반으로 작동할 것이다. 정책 기반으로서의 도시재생특별법 ‘도시재생특별법’은 제1조에 “도시의 경제·사회·문화적 활력 회복을 위해 공공의 역할과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도시의 자생적 성장 기반을 확충하고 도시의 경쟁력을 제고하며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등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된 바와 같이, 지원법 성격이 강하다. 즉, 지자체가 직접 계획하고 실행하며 국가는 이를 지원하는 체계와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도시재생’이란 법 제2조에서 정의된 것처럼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재생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크게 주민과 지자체중심의 계획 수립, 도시재생 추진을 위한 중앙과 지방의 조직 구성, 도시재생 사업 지원, ‘도시재생선도지역’지정 등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계획 체계 ‘도시재생특별법’에서는 먼저 국가가 ‘국가도시재생기본방침’을 수립하여 도시재생 시책, ‘도시재생전략계획’ 및 ‘도시재생활성화계획’ 작성에 관한 원칙, 선도지역 지정 기준, 도시 쇠퇴 기준 및 진단 기준, 기초 생활 인프라 기준 등을 제시하도록 했다. 도시재생 추진을 위한 계획 체계는 ‘도시재생전략계획’과 ‘도시재생활성화계획’(실행 계획)의 2단계로 구분되었다. 먼저 ‘도시재생전략계획’은 ‘전략계획수립권자’1가 ‘국가도시재생기본방침’을 고려하여 도시 전체 또는 일부 지역, 필요한 경우 둘 이상의 도시에 대하여 도시재생과 관련한 각종 계획, 사업, 프로그램, 유·무형의 지역 자산 등을 조사·발굴하고,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을 지정하는 등 도시재생을 위한 추진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했다. 한편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은 ‘도시재생전략계획’에 부합하도록 활성화 지역 내 도시재생 사업들을 연계하고 시행하기 위한 실행 계획으로, ‘도시경제기반형’과 ‘근린재생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도시경제기반형’ 활성화 계획이 산업 단지, 항만, 공항, 철도, 일반 국도, 하천 등 국가의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도시계획 시설을 정비하고 개발과 연계해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고 고용 기반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면, ‘근린재생형’ 활성화 계획은 생활권 단위의 생활환경 개선, 기초 생활 인프라 확충, 공동체 활성화, 골목 경제 살리기 등을 위한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을 의미한다. 이상민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와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 국토연구원 부설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로는 「도시 공공공간개선방향 설정을 위한 개념 정립 및 현황 조사연구」, 「도시 공공공간의통합적 계획을 위한 제도 개선방안 연구」, 「도시 생활밀착형 공공공간조성 방안 및 매뉴얼 개발 연구」, 「도시 공공공간 확보 및 질적 향상을위한 공개공지 제도 개선방안 연구」, 「도시공원 정책 수립을 위한 공원평가 모델 개발 연구」 등이 있다.
    • 이상민[email protected] /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연구위원 / 2014년10월 / 318
  • ‘도시재생’에 대해 생각해 볼 몇 가지 도시재생의 새로운 국면
    지난 달 서울에서 교수 생활을 한 지 (벌써) 10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학생들과 함께 연구실에 쌓아 놓은 자료들을 다시 살펴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작게는 한 연구실의 10년 살림살이 기록이지만, 크게는 우리나라 도시ㆍ건축ㆍ조경 분야의 연구와 사업 생태계에 ‘적응’하며 쌓게 된 생존 노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시ㆍ건축ㆍ조경 분야의 연구나 사업의 진행 방식을 접하면서 귀국 초기에 내가 가졌던 가장 강한 느낌은, 내용 그 자체에 대한 어려움보다 이것이 생성되고 실행되는 구조에 대한 어리둥절함이었다. 도시ㆍ건축ㆍ조경 분야에 관련된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 R&D를 대하는 태도와 참여 방식에 대해 나는 솔직히 경이로움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연구와 사업의 생태계 초고층 건물 연구 사업, 경관법 관련 논의, U-city 연구개발,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도시재생 사업 등 굵직굵직한 과제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는데, 주제가 그 무엇이든지 진행 구조와 프로세스는 유사했다. 해외의 트렌드를 빠르게 전도하는 것을 전문성으로 내세우는 교수나 연구원들이 뭔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는 담당 공무원이 원하는 과업 내용을 아주 빠르고 유용하게 가공·정리해 제공하면, 이를 바탕으로 정부 주도의 시범 사업을 속히 실행해보고, 새로이 지원법도 만들면서 지속적 추진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도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공무원은 승진도 하고, 교수는 요약 보고서형 논문 편수도 늘린다. 그러면 이제 신속하게 새로운 과제로 넘어갈 차비를 하게 된다. 그 빠른 추진력과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시범 사업 이후 연구가 얼마나 지속·심화되고 있는지, 그래서 우리 도시ㆍ건축ㆍ조경 현실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더 나아졌는지 얕게라도 추적해 보며 나는 불안감을 반복적으로 쌓아 왔다. 나의 불안감, 더 나아가 절망감의 근저가 되는 요인 중하나로, 현재 우리나라 도시ㆍ건축ㆍ조경 현실에서 우리가 무엇을 왜 절실하게 문제로 삼고 있는지, 그 문제에 대한 냉정한 진단을 회피한 채 성급하게 답을 찾아 적용해보려는 우리 전문가들의 부실한 ‘생각의 구조’를 먼저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스스로 우리 도시와 지역 현장의 본질적 특성이나 절박한 문제의 핵심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뽑아내지 않았는데(못했는데), 일본의 지구계획이나 경관법, 도시재생촉진특별법과 도시재생본부 구성 등 타지의 해법을 빠르게 수입해서, 공무원들이 진행하고자 하는 국가 사업의 구도에 맞게끔 우선 정리해주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불안하다. 도시재생은 뭐가 좀 다를까? 뭐라도 빠르게 가공해내는 분들보다, 이리 삐딱하게 초를 치는 내가 더 게으른 것은 아닐까 반성도 하게 된다. 도시재생 사업에서 보이는 희망 생성 구조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도시재생에 대해서는 그래도 조금 다른 희망을 갖고 있다. 기존의 정부 주도 시범 사업처럼 일단 한번 해보는 정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들지만, 도시재생 사업은 이전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그리고 그 이후의 재정비촉진 사업과는 분명 차별되는 구체적인 목표와 방법을 기반으로 한다. 물리적 환경의 측면은 물론, 주민 생활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적 측면, 그리고 지역 문화와 산업에 기반을 두는 경제적 측면을 모두 균형 있게 고려하려는 목표와 전략을 새롭게 마련했다. 도시재생의 대표적 지향 중 하나인 소위 ‘자력수복형’ 도시재생, 즉 ‘시민 참여를 통해 지역 사회의 문제를 부분적·점진적으로 해결 한다’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1 ‘자력’과 ‘수복’이 각기 표방하는 내용에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레토릭으로 끝날지라도, 참여자들 간의 자발적인 협치에의해 갈등을 조정하며 지역활성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한다는 점에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지역 주민은 전문가보다 훨씬 먼저, 이전 시대와는 사뭇 다른 도시 생활의 가치를 추구하며 현실적인 지역 공동체 운동을 전개해 왔다. 지역 주민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주민자치 공동체 운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이미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시재생에 대한 문화적 공감대가 비교적 넓게 형성되어 있다. 주민 공동체 운동이 참여형 도시재생 계획의 지속적 주체로 보편화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겠으나, 우리 사회는 시기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주민 주도, 주민참여형 계획과 사업을 일상적으로 진행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점이 희망을 준다.
  • 도시재생의 새로운 국면 NEW ASPECTS OF URBAN REGENERATION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개발 시대를 거쳐 쇠퇴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도시의 현실은 어느덧 ‘재생’을 초대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 신도시, 산업 단지, 뉴타운 개발 등 팽창 위주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도시를 양적으로 정비했다면 오늘날에는 대규모 개발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중소 규모의 ‘주민참여형 도시재생’위주로 도시를 질적으로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제 ‘도시재생’은 그간 일부 전문가의 개별적 노력이나 시민운동의 차원을 넘어서 법과 제도의 지원을 받는 단계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13년 6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좀더 체계적인 지원과 경험의 공유를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도시재생’은 우리의 도시가 앓고 있는 여러 고질병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지역성에 대한 고려, 지역 주민과의 소통, 지속적 관심과 투자를 통한 자립성 구축 등의 노력 없이 성공 사례 베끼기에 급급한 ‘도시재생’은 또 다른 도시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도시재생’의 전략을 모색할 때다. ‘도시재생’의 개념과 그에 따른 실천이 또 하나의 유행이나 열병처럼 우리 도시를 휩쓸고 지나가지 않게 하려면, 보다 심층적인 이론적 연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번 기획이 보다 실천적이고 전략적인 접근과 그 성과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노력의 하나가 되기를 기대한다. 1. ‘도시재생’에 대해 생각해 볼 몇 가지 _ 박소현 2. ‘도시재생특별법’ 제정과 정책 추진 방향 _ 이상민 3. 주민이 주도한 전주의 노후 주거지 재생 경험 _ 김현숙 4. 부산 도시재생의 경험과 비전 _ 강동진 5. 창조적 파괴와 전략적 버리기 _ 김세훈 6. 미래 도시 디트로이트 _ Stoss
    • 편집부 / 2014년10월 /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