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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달콤한 나의 도시
퇴근길, 『환경과조경』 사옥이 자리 잡고 있는 파주출판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자유로를 달려 합정역에 내린다. 그리곤 서너 정거장 남짓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향한다. 날씨 좋은 요즘 그 길가는 각양각색의 가게에서 내놓은 테이블로 가득하다. 나는 폴딩도어를 열어젖히고 고기를 굽고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쳐가며 꿋꿋하게 길을 걷는다. ‘이번 마감이 끝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전통 시장이 있는 길을 누비기도 하고, 구석구석에 있는 서점이나 카페를 눈여겨보며 나름의 품평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두건을 쓰고 연탄불에 황태를 굽고 있는 젊은 가게 주인을 발견하면 집에 거의 다다른 것이다. 간혹 ‘저 주인은 나를 기억할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른 후 집으로 들어간다. 생활의 터전을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동네로 옮기고 보니, 나의 일상적 즐거움이 ‘동네 생활’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부쩍 강렬해졌다. 이는 과거의 골목길과 그에 얽혀있는 끈끈한 공동체에 대한 향수와는 또 다른 정서다. 이런(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아닌) 동네의 매력은 걸으며 구경하는 재미와 곳곳에서 소비하는 소소한 즐거움에 있다. 나의 자잘한 일상의 팔 할은 집 밖의 여러 상점과 카페, 세탁소와 공원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들은 모두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도시 생활의 매력은 상업 공간과 공공 영역이 맞물리는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란 생각이 체감으로 더욱 공고해지는 요즘이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7. 29~9. 28)을 개최했다. ‘이상향理想鄕’을 주제로 한 동아시아 산수화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였다. 중국 호남성 동정호 일대의 절경을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와 주자의 은거처를 이상화하여 그린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파생된 ‘도원도桃源圖’ 등이 전시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이 실경이든 상상 속의 경관이든 자연(산수)의 모습이 이상향으로 제시된다. 이런 회화 작품 가운데 개인적인 하이라이트는 단연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였다. 마치 추억의 그림인 ‘윌리를 찾아라’를 보는 듯 8폭의 병풍 가득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태평성시도’에는 무려 2,12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18세기에 조선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에는 성안 도시의 번창한 상점과 화려한 건물, 각종 행렬과 놀이, 작업 활동이 묘사되어 있다. 연못과 화분이 들어찬 주택 정원이 있는가하면, 각종 꽃이나 포목 등을 파는 상점이 있고,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천 준설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마디로 도시 생활의 활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이러한 건물과 사람들의 복식이 조선의 것은 아니다. ‘태평성시도’가 최초로 공개된 것은 200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시대 풍속화’전에서였는데, 당시에도 작품명을 어떻게 붙일지, 과연 조선의 화가가 그린 것은 맞는지 등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이수미의 연구2에 따르면 이 ‘태평성시도’는 중국 도성 내 번화한 정경을 묘사한 그림인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명대본明代本과 중국의 풍속화인 ‘패문재경직도佩文齋耕織圖’의 도상을 조선의 상황과 생활양식에 맞게 변형하고, 중국에 다녀온 사신들이 전해온 첨단 문물에 대한 정보가 반영되어 이상적인 사회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그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형식과 주제를 가진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비록 중국의 도시이기는 하지만 “현실과 차원을 달리하는 별도의 세상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목표로서의 이상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태평성시도’에는 상업이 발달하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심이 넘실대는 등 변화로 꿈틀대는 18세기 조선의 도시적 삶에 대한 기대가 드러난다. 은거隱居나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아니라 소비와 문화의 측면이 강조된, 즉 도시성(도시적 삶)이 극대화된 공간으로서 도시가 이상향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경훈 교수(국민대학교 건축대학)는 저서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3에서 ‘걷기’야말로 도시성의 총체이며, 인도와 거리를 메우고 있는 상점이야말로 가장 도시적이며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고 역설한다. 신사동 가로수길을 보자. 이 거리에는 독특하고 세련된 상품을 진열한 상점과 소위 핫한 카페들이 즐비하다. “상점의 쇼윈도는 교류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데다, 무엇보다 ‘걷게 하는’ 도시의 장치로서 의미가 크다.”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한 깊은 애정과 찬사를 보내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도 “도시에서만 가능한 전형적인 삶을 포착하고 스타일을 찾아냈다.
주인공들은 걸어서 출근하고, 걸으며 사랑하고, 거리에서 이별하거나 옛 애인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리고 거의 매회 주말 아침에 모여서 브런치를 즐기며 서로의 지난 한 주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국의 도시, 특히 서울이 도시성을 갖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는 까닭은 상업적 건축을 배격하는 근엄하고 엉뚱한 체면과 현실적이지 않은 청렴 의식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영국의 문화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시골과 도시The country and the city』4에서 베르길리우스에서 현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목가시에서 과학소설까지를 망라하는 다양한 시대의 방대한 텍스트들이 대체로 시골을 진정한 공동체의 모델로 설정하고 있으며, 또 그 공동체가 ‘이제 막’ 사라졌음을 한탄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렇지만 이 방대한 텍스트들이 소멸을 아쉬워하는 공동체는 언제 어디서도 실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자연으로’를 외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공동체의 미덕을 모르는 덜 된 인간쯤으로 취급받는 것도 불편하다. 아마도 그래서 이상향을 주제로 한 전시회에서 만난 ‘태평성시도’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그림은 도시의 삶이 결코 저열하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이상향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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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정원, 인간의 조건에 대하여
이제는 빛바랜 추억이 된 어린 시절, 어머니는 공들여 정원을 가꾸셨고 아버지와 동생은 집안을 휘젓고 다니던 강아지에게 애정을 듬뿍 쏟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정원에 제대로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강아지를 안아준 기억도 없다. 아파트로 이사한 후,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못다 한 정원의 꿈을 펼치셨지만 나는 여전히 물 줄 생각도 않는 무심한 딸이었다. 조경학과를 꽃을 가꾸는 과로 아시던 어머니는 대학 때 꽃꽂이를 배우게 하셨다. 지나친 자녀 걱정이 취미였던 그녀는 정원에 관심 없던 딸이 학업에 뒤처질까 봐 일종의 과외 공부를 시키셨던 것이다. 하지만 화병에 꽃을 보기 좋게 담아내는 것과 생명이 있는 식물이 잘 자라도록 심고 돌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오랫동안 화분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서 “저런 애가 어떻게 조경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네”라는 어머니의 염려를 달고 사는 딸이었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 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라는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글을 인용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요 모티브를 가져와 한 남자가 기억을 소환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 살 때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폴은 그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피아노를 치며 두 이모와 살아간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 4층 언저리(4층 약간 안 되는 계단 중간에 출입문이 있음)에 사는 프루스트 부인을 알게 되고, 그녀가 주는 차를 마시면서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찾아가게 된다. 삶이 매번 아름답지 않은 것처럼 기억은 독약이 되기도 하고 진정제가 되기도 한다.
영화의 원제는 ‘Attila Marcel’로 폴의 아버지 이름이다. 해외 포스터는 아버지의 이름이 크게 적힌 광고를 쳐다보는 장면을 담고 있다. 기억의 퍼즐이 맞춰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던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되고, 첫 장면에서 아버지가 하던 대사를 마지막 장면에서 폴이 반복하며 영화가 끝난다.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민낯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것이다. 영화는 무의식과 현실을 넘나드는 다소 철학적인 메시지를 무겁게 다루기보다는 환상적인 색감과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 문학적인 대사와 함께 한편의 동화처럼 따뜻하게 그린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한겨레 영화평론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전공으로 삼아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극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그것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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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풍경의 귀환
#27
산업 자연의 낭만 - 엠셔 지방의 풍경
‘반지의 제왕’ 삼부작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이 후속편으로 연작 ‘호빗’을 만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호빗족의 빌보배긴스는 키 작은 종족 드베르그들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 무시무시한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긴 보물을 찾기 위해 지하 왕국에 잠입한다는 이야기다. 드베르그족이 건설한 지하 왕국의 엄청난 부는 그들이 캐내는 지하자원에서 유래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연작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반지와 라인 강의 보물을 만든 장인 알베리히 역시 몸집은 작지만 힘세며 재주가 뛰어난 종족, ‘니벨룽겐’에 속한다. 백설공주 동화에 등장하는 난쟁이들 역시 광산에서 일했다. 이렇듯 유럽 신화에서 키 작은 종족 혹은 난쟁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이들은 인류의 광산자원 이용의 역사를 미화한 것에서 유래한다. 땅을 파고 들어가 어두운 곳에서 살며 금과 은, 구리, 철, 석탄을 캐내어 인류 문명을 번성케 한 무리들. 힘들게 캐낸 시커먼 흙더미와 돌덩어리에서 빛나는 금관을 만들어 왕의 머리를 장식하고, 철을 연마해 무기를 만들어 무사의 손에 쥐여준 장본인들. 이들은 국가 체제를 확립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다만 오랜 지하의 삶으로 어느새 모습이 바뀌고 허리가 굽어 난쟁이가 되었고, 그로 인해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라인 강과도 관련이 깊다. 전설 속에서는 라인 강바닥에 깊이 묻혀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보물을 만들었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소위 ‘라인 강의 기적’을 일으킨 주역으로서 루르 지방의 도시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라인강이 모든 공적을 혼자 차지하긴 했지만 사실 라인 강과 라인 강의 지류인 엠셔Emscher 강 사이에 있는 철광과 탄광지대가 독일 경제 부흥의 기반이 되어 주었다. 이 지역이 바로 루르Ruhr 지방이다. 엠셔 강가에서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어 연명하던 작은 마을들이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철강 산업과 철도 사업의 붐을 타고 수십 년 사이에 산업 도시로 급성장했다. 뒤스부르크, 에센, 보쿰, 도르트문트 등 널리 알려진 산업 도시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성장이 빨랐던 만큼 하강세도 빨랐다. 1950년대 말에 시작된 석탄 위기로 탄광들이 하나 둘 폐쇄되기 시작했다. 철강 산업은 1980년대까지 유지되었으나 그 역시 산업 구조의 변화로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철광과 탄광은 1980년대에 거의 폐쇄되었고 철강 산업 역시 해외로 옮겨가면서 수십 개의 산업체가 문을 닫고 환경 잔해로 남게 되었다.
약 백 년간에 걸친 집중적인 산업 이용으로 루르 지방의 자연 경관은 문자 그대로 안팎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대지진이 지나간 자리처럼 모든 것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한때 농경문화 경관이 지배하던 곳에 하늘을 찌르는 높은 굴뚝의 스카이라인이 들어섰고, 수십 미터 높이의 산업 건축물과 함께 수백 개의 구덩이와 산이 새로 생겼다. 하천은 더 이상 경관을 적시는 생명줄이 아니었다. 오히려 썩은 물을 흘려보내 자연을 병들게 했다. 루르 지방은 이제 총800km2의 면적, 즉 서울, 수원, 안양을 합친 것보다 조금 더 큰 면적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의 죽어가는 경관을 재생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루르 지방에 존재하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도시들이 모이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정부의 후원을 받아 1989년 4월 1일 엠셔 지방 재생 사업이 발족되었다. 엠셔 지방 재생 사업은 다른 이름으로 ‘세계 건설 박람회 엠셔 파크IBA Emscher Park’라고 불린다. 엠셔 지방 전체가 곧 박람회장이다. 17개의 크고 작은 도시가 참여해 총 120개의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이와 병행하여 기형이 되어 버린 엠셔의 풍경을 서로 연결해 거대한 엠셔 랜드스케이프 파크Emscher Landschaftspark를 조성했다. 엠셔 랜드스케이프 파크는 하나의 공원이 아니라 이십여 개의 지역 공원과 정원을 서로 연결한 공원 네트워크다. 엠셔 재생 사업은 1999년까지 십 년에 걸쳐 재생 사업의 과정과 절차를 세상에 공개하고 많은 토론을 유도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중 가장 먼저 완성되었고 널리 알려진 공원이 ‘뒤스부르크-노르트Duisburg-Nord’다. 뒤스부르크-노르트는 피터 라츠Peter Latz라는 조경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는 말이 있듯 루르 지방의 시급한 과제는 피터 라츠라는 훌륭한 조경가를 낳았다. 그는 지나간 흔적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시간을 두고 상처가 아물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인간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라츠는 마스터플랜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되었다. 그는 “마스터플랜은 자연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1 라츠가 한 일은 우선 폐허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이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의 경관적 잠재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마치 고고학자가 켜켜이 쌓인 유적을 하나씩 들어내듯 그는 산업 폐허의 성격을 분류해냈고 이름을 붙였다.2 썩은 물이 흐르는 배수로와 하수 처리 시설을 합하니 미래의 수 경관이 보였다. 사내 철도 시설이 레일 공원이 되었으며 각종 산업 도로망과 교량을 연결하니 하염없이 긴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되었다. 건물을 그대로 두고 이를 전시장, 공연장으로 명명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 자연’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산업 자연은 단순히 산업 시설의 잔재나 지형 변화로 만들어진 환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 이용으로 인해 더 심각한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지표면의 화학적 성질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 결과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자연’이 형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실제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동식물이 서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앞으로도 인류는 자연을 화학적으로 변형시켜 더 많은 산업 자연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2009년 뮌헨 공과대학 조경학과에 ‘산업 경관과 조경’이라는 학과가 신설되었다.3 엠셔의 풍경처럼 시간이 만들어 놓은 마스터플랜으로 되돌아올 산업 자연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일까.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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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유치해지기
유치한 녀석
오늘 작업을 함께 하는 녀석과 크게 싸웠다. 처음 녀석과 같은 조가 되었을 때는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좀 거만한 편이기는 했지만 세련된 감각과 손재주로 설계 시간만큼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던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 녀석이 내가 열심히 고민한 설계안을 다 듣고 나서 한마디를 던졌다. “유치한 녀석.”
내 설계에 직설적인 디자인 모티브가 많은 것은 인정한다. 고래 분수, 코끼리 놀이터, 꽃무늬 포장.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복잡한 설계 이론은 잘 모른다. 최신 외국 사례를 열심히 들여다본 적도 없다. 하지만 좋은 디자인이라고 해서 꼭 유럽에서 건너온 듯 세련되어야 하고 어려운 개념을 통해서 설명되어야 하는 걸까? 나는 좋은 설계란 여든이 넘으신 우리 할머니도 쉽게 이해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일까? 아니면 그 녀석의 비아냥거림처럼 그냥 내 설계 능력이 유치한 수준인 걸까
라스베이거스의 교훈
1968년 가을, 벤츄리Robert Venturi는 학교 스튜디오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라스베이거스Las Vegas로 향한다. 이후 수업의 결과는 책으로 출판되어 건축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당시 라스베이거스는 건축적으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도시였다. 학계는 물론이고 건축가들도 모두 라스베이거스를 상업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유치함과 천박함의 표상으로 여겼다. 벤츄리는 가난한 욕망을 위한 잡동사니의 총체인 라스베이거스에서 어떠한 교훈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다음은 벤츄리의 말이다.
“하나는 비너스 동상 옆의 에이비스Avis1 상표,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 신전 모양 지붕 아래 있는 쉘Shell 주유소 간판과 잭 베니Jack Benny2 사진, 혹은 수백억짜리 카지노 옆의 주유소. 이들은 내포의 건축Architecture of Inclusion이 선사한 생기를 보여주며, 우아함과 총체적인 디자인에 과도하게 사로잡힌 무기력함과 대비된다(그림1).”3 벤츄리는 라스베이거스를 통해서 당시 건축계를 지배하고 있던 모더니즘 건축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모더니즘 건축의 업적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모더니즘은 19세기 말 대량 생산을 바탕으로 한 기성 자본주의 문화에 기반을 두고 형성되었다. 20세기 중반, 바야흐로 대량 생산의 시대는 가고 대량 소비를 지향하는 후기자본주의가 도래했다. 그런데 여전히 모더니즘은 시대적 흐름과 괴리된 채 50년 전의 주장만을 되풀이한다. 현대 예술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몬드리안, 칸딘스키로 대표되는 추상과 아방가르드의 시대는 오래전에 막을 내리고 앤디 워홀Andy Warhol, 로이 리헨슈타인Roy Lichtenstein과 같은 작가가 새로운 양식의 예술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 건축의 방향을 제대로 지시하고 있는 대상은 모더니즘의 후예들이 이끌고 있는 엘리트 건축이 아니라 라스베이거스의 잡동사니인 것이다.
그렇다고 벤츄리가 현대 건축이 라스베이거스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교훈은 지침이 될 만한 가르침일 뿐 정답은 아니다. 벤츄리는 ‘추하고 평범한 건축Ugly and Ordinary Architecture’이라는 비평문에서 당대 최고의 모더니스트였던 루돌프Paul Rudolph의 ‘크로포드 매너Crawford Manor’와 자신이 설계한 ‘길드 하우스Guild House’를비교한다.4 그는 크로포드 매너를 영웅적이고 독창적Heroic and Original이라고 추켜세움과 동시에 길드 하우스를 추하고 평범하다고 깎아내린다.5 얼핏 들으면 선배에 대한 살신성인의 각오를 동반한 아부처럼 들리지만 이 칭찬과 비판은 곧 역전된다.
모더니즘 건축은 ‘Less is more’라는 유명한 모토처럼 모든 장식을 건축에서 배제한 기능적인 미학을 추구했다. 20세기 초 모더니스트들은 자신들이 과거의 모든 건축 양식을 파기했고 새로운 건축을 추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벤츄리는 이것이 대단한 착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상 그들도 당시 교량이나 구조물에서 나타난 산업시대의 양식을 모방했으며 그들이 모델로 삼은 기능적 구조물에서조차 장식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벤츄리는 구차한 장식 없이 구조적인 완결성을 구현한 듯 보이는 크로포드 매너의 외관이 가식임을 밝힌다. 영웅적인 독창성은 이미지에 불과할 뿐 실제 크로포드 매너에서 사용된 공법과 구조는 고전적이고 평범하다. 결국 크로포드 매너는 스스로 아방가르드 건축처럼 보이기 위한 장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그림2). 반면 길드 하우스는 의도적으로 건축에 장식을 다시 도입한다. 길드 하우스에서는 일상적으로 늘 마주치는 건축적 요소들을 볼 수 있다. 동네 대부분의 건물들처럼 벽돌로 만들어진 길드 하우스는 얼핏 보기에 별다른 특징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건물은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일상적인 건축적 요소들이 모두 의도적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길드 하우스의 이름이 새겨진 간판은 과도하게 거대하다. 정면의 황금색 안테나는 조각품과 흡사하게 디자인되었다. 창틀 역시 기성 제품처럼 보이지만 보통의 창틀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일반적인 면적 구성의 비율은 파괴된다. 그리고 길드 하우스의 전면부는 르네상스 시기의 고전적 파사드를 그대로 모방한다. 모더니즘에서 금기시 되어오던 과거 양식의 부활인 것이다(그림3).
벤츄리는 크로포드 매너의 겉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더욱 강력한 결정타를 날린다. 모더니즘 건축은 시대착오적이며 더 나아가 공허하고 지루하다. 유치함을 거부하고자 했던 모더니즘의 양식은 20세기 중반 이후 너무나 과도하게 소비되어 스스로 유치한 상징이자 장식이 되어버렸다. 마치 우스꽝스러운 오리 모양의 집처럼 말이다. 이제는 유치함을 거부하기보다 오히려 제대로 유치해져야 역설적으로 세련되어 보일수 있다. 우리는 상업자본과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쉬운 설계
“지루한 건축이 재미있는가Is boring architecture interesting?” 벤츄리가 던진 이 질문은 대중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제시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양식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반드시 모더니즘 건축의 폐기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굳이 장식을 디자인에 복귀시키지 않아도, 과거의 양식을 재해석 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건축은 가능하다. 그 한 가지 방법이 쉬운 설계다.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가장 탄탄한 이론적 기반을 바탕으로 설계를 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이지만 가장 대중적인 설계를 하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자들만이 현대 건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편견임을 증명한다.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계는 이론적기반이 약하다는 건축가들의 선입견도 철저하게 파괴한다. 다음은 OMA에서 진행한 시애틀 중앙도서관의 설계다(그림4).
지식의 양적 증대와 함께 도시의 인구도 늘어나면서 시애틀 중앙도서관은 이미 여러 차례 증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은 여전히 이용자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에 역부족이었다. 1998년 시애틀 시는 과거의 도서관을 아예 철거하고 미래의 변화를 유동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도서관을 설계하고자 했다. 콜하스는 이 도서관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은 서고와 관리실처럼 고정된 공간과 열람실처럼 고정되지 않은 공간으로 구분된다. 모든 도서관의 문제는 책이 늘어나면서 고정된 공간이 고정되지 않은 공간을 잠식하면서 발생한다. 고정되지 않은 공간도 서고처럼 기능에 따라 구분한다면 서로의 영역을 잠식하지 않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재단된 유동성Tailored Flexibility’6 이것이 콜하스가 제시한 해결책이었다(그림5).
당시 시애틀 도서관의 공간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책을 위한 공간이 32%, 나머지 기능을 위한 공간이 68%의 공간을 차지한다(그림6). 콜하스는 ‘나머지 기능’들이 무엇인지 살펴본 뒤 책과 ‘나머지 기능’의 영역들을 성격에 맞게 결합시킨다. 이렇게 다섯 개의 고정된 공간과 네 개의 고정되지 않은 공간으로 도서관을 재구성할 수 있다.7 그럼 건축적인형태는? 두 가지 공간을 성격이 중복되지 않게 번갈아 배치한다. 그대로 쌓아 올리면 재미가 없으니 프로그램의 블
록들을 밀고 당겨보자. 그러면 어떤 공간은 햇빛도 더 들어오고 어떤 공간에서는 거리 풍경도 잘 보인다. 이제 블록다이어그램에 외피를 씌우면 건축적 형태는 완성된다. 벽돌 쌓기만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설계다(그림7).
콜하스가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건축가라면 조경에는 제임스 코너James Corner가 있다. 이론가가 아닌 건축가로서 시작한 콜하스와는 달리 코너의 출발점은 학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이론과 초기의 설계는 깊이 있고 난해하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최근의 설계 작품을 보면 까다로운 코너 씨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그림8).
유선형의 지형이 만들어내는 조형적 경관을 보면 산타모니카에 위치한 통바 파크Tongva Park의 설계 개념이 무척 궁금해진다.8 코너는 캘리포니아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계곡 지형인 아로요Arroyo에 주목하여 세 가지 설계 개념을 제시한다.9 첫째는 아로요 흐름Arroyo Wash이다. 말 그대로 폭우가 만들어낸 물줄기가 건조한 사막 지대를 지나가면서형성한 유선형의 형태다. 둘째는 아로요 협곡Arroyo Ravine. 물줄기가 집중되면 양쪽에 절벽을 만들면서 흐르는데, 두 번째 안은 절벽의 형태를 디자인에 그대로 도입하였다. 셋째는 아로요 둔덕Arroyo Dune. 물이 흐르며 계곡을 형성하면 자연히 계곡 옆에는 유동적인 모래 언덕이 형성된다. 세 번째 안은 이러한 사구의 형태를 형상화하였다. 세 가지의 개념 중에서 최종적으로 첫 번째 개념인 아로요 흐름이 공원의 설계 개념으로 선택되었다(그림9).
이렇게 듣고 나니 황당할 정도로 간단하다. 거의 유치원 꼬마들을 데리고 미술 시간에 “물줄기 모양을 그려볼까요? 아니면 언덕처럼 그려볼까요”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이 성의 없다고 생각한다면 반문을 해보자.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 공원은 주민들이 편안한 반바지 차림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관광객과 어우러져 산책을 하는장소다. 굳이 다양한 사회적 층위의 중첩과 교차, 공간과 시간의 충돌과 혼성이 매개된 까다로운 설계가 필요할까? 누군가 여전히 통바 파크의 설계 방식이 너무 쉽다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이 공원의 디자인이 훌륭하지 않다고 함부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계 개념, 그리고 설계 방식의 새로움은 그 공간이 좋고 나쁨과는 의외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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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의 서재] 책과 헤어지지 않기 1
시집 활용법
돌이켜보건대 내 독서 생활은 어디까지나 그저 책에서 손을 완전히 떼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모양 좋은 책들을 여럿 사서여기저기 꽂아두고 쌓아두었지만, 간혹 생각난다 싶을 때에만 깨작깨작 들춰보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설계 일을 시작하면서는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당당하게 일정 기간 아예 책을 멀리한 적도 많았고, 설령 읽었다고 하더라도 그리 심오하지도 않은 책을 띄엄띄엄 조금씩 아껴가며 훑었을 뿐이다. 그나마도 읽고 난 뒤 메모나 서평을 따로 써둔 적도 없는 터라 세상의 책들과 그리 끈끈한 사이가 아니다. 그런 나에게 ‘조경가의 서재’라는 타이틀은 부담스럽고도 민망하기 짝이 없다. 물론 집에 서재라고 따로 정한방도 없거니와.
그리하여 여러 밤낮을 찌푸린 낯으로 끙끙댔다. 고민끝에 ‘교양인으로서의 삶’을 근근이 이어가기 위해서 읽기 편한 책을 가려내던 나름의 수법과 알량한 독서수준에도 불구하고 이를 야무지게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쓰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보잘것 없이 아주 조금만 읽었지만 줄기차게 많이도 써먹었던 방법, 과문寡聞함을 거뭇한 먹구름으로 가리고 그 사이로 언뜻 드러나는 빛줄기처럼 남다른 감성을 은근히 과시하는 방법이랄까.
설계하는 사람은 책을 언제 어떻게 읽을까? 출퇴근 시간 잠깐 올라 탄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야근 끝에 돌아간 늦은 밤 방구석에서나 짧게 틈을 내어 책장을 펼칠 것이다. 심신이 피곤하면 그마저도 힘들다. 비단 설계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아예 공부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꾸준히 매일 한두 시간씩 시간을 정해놓고 책을 읽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쁘기로는 세상에서 둘째라면 서러워 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어른들이니 말이다(그런데도 가공할 만한 독서량으로 이름 난 ‘로쟈’ 이현우는 서평집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에서 사람들이 날마다 무려 60~70쪽, 그러니까 한 주 한 권의 책을 꾸준히 독파하는 ‘독서력을 갖춘 사회’를 만들어보자고 이야기한다).
정말 이토록 가련한 형편이라면, 그래서 지속적인 읽기가 수월치 않아서 좀처럼 책 펴기가 힘들다면, 숨을 끊어가면서 읽을 수 있는 시집들을 우선 권해본다. 뭔 소린지 통 모르겠다며 서점의 시집 코너 앞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경우는 이렇다. ‘교양 있는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차피 제대로 된 시詩가 아니지’라는 당돌한 자세로 자신감을 상승시키며 눈에 들어오는 시집을 여러 권 집어 든다.
그러고는 방 책상에 올려두거나 가방에 넣어 두고 틈나는 대로 이리저리 훑어본다(화장실 또한 시집 보기에 꽤나 좋은 장소일 터). 앞에서부터 봐도 상관없고 마음에 드는 제목만 골라서 봐도 상관없다. 다만 한 가지! 한 장 한장 넘기다가 마음에 들거나 눈에 쏙 들어오는 부분은 책장 끝부분을 세모꼴로 접어둔다. 나아가 마구 떠오르는 잡생각을 널따란 주변 여백에 재빠르게 끼적거려도 좋겠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면 시집 맨 뒤에 나오는 시평詩評을 본 내용에 앞서 읽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론가나 동료 시인들이 해설해 놓은 내용이 전반적인 이해에 도움이 될뿐더러 여기서 인용한 시나 시구만 먼저 찾아보는 것도 알뜰한 독법讀法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집을 시리즈로 내는 출판사로는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사, 세계사, 실천문학사 등이 있다. 내 경우에는 그중에서도 유독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된 시집을 많이 사두었다. 익숙한 시인을 즐겨 찾게 마련이고 내용 또한 비슷한 맥락을 이어가며 구입한 탓이겠지만, 여기에는 시인 겸 소설가 겸 화가인 이제하가 그린 시인 캐리커처가 담긴 담백한 표지 디자인이 한몫 단단히 했을 듯싶다.사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내 돈 주고 시집을 산 이후로 맘에 들어서 기억할 만하거나 능히 써먹을 만한 대목이 있으면 꼭 책장 모서리를 접어두곤 했다. 가깝게는 몇 달 뒤나 멀리는 몇 년 후쯤 그걸 찾아서 읽어 보시라.접어 둔 페이지나 밑줄 그은 시구나 휘갈겨 쓴 메모를 보면서 당시 그렇게 한 이유를 혼자서 추리해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받았다. 졸업 후 1999년부터 16년째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니고 있다. 4년 전부터는 개인 주택 정원, 어린이집과 학교의 외부 공간, 농장 조경계획, 공장 외부환경 개선사업, 아파트 조경 가이드라인 등 하나하나성격이 다른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중에 그 공간에서 머무는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생각으로, 즐겁게 일하는 조경설계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현재 스튜디오 테라(STUDIOS terra)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공저로 『철새협동鳥합』이 있고, 제프 마노가 쓴 『빌딩 블로그』를 번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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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비정통적 기회주의자
얼마 전 중국 베이징 대학교에서 수퍼매스 스튜디오(Supermass Studio)의 작업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 제목을 달라고 해서 사무실을 시작할 때 내세운 세 가지의 방법론 중 두 가지를 뽑아 ‘Unorthodox & Opportunistic’이라고 보내주었다. 헌데 발표장에 가서 공고 포스터를 보니 제목이 ‘비정통적 기회주의자’로 번역되어 있어 당황한 적이 있다. 비정통적인 기회주의자라니! 얼핏 들으면 아주 하류의 질 나쁜 시정잡배처럼 보일 수가 있으니 (이에 대한 설명으로) 내가 설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비정통적 창의성(Unorthodox Creativity)’, ‘기회주의적 다양성(Opportunistic Diversity)’, ‘사회적·환경적 책임감(Social Environmental Responsibility)’은 수퍼매스 스튜디오를 시작하면서 작업 방법의 근간으로 내세운 세 가지 가치다. 생소한 개념인 것 같지만 이 세 가지 가치에 그동안 내가 학업과 실무를 통해 경험하고 쌓아온 조경에 대한 모든 생각이 담겨 있다.
비정통적 창의성
설계가라면 누구나 창의적인 설계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설계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창의적인 행위니 모든 설계가들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창의적인 작업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설계가에게 창의적인 접근이 당연한 것이라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만 ‘남과 다른’ 창의적 접근을 할 수 있을까? 비정통적 창의성은 이러한 주류 창의성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하였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남다른 추구는 1990년대 초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황기원 교수가 가르치던 ‘경관의 해석’ 수업시간에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과제가 있었다. 나는 옴스테드가 설계한 센트럴파크의 성공이후 자연풍경식으로 일관되어온 20세기 현대 조경에 대해 일침을 가했고 “이제는 전혀 다른 가치와 미학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현대 조경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라는 나름 거창한 선언을 했다. 더불어 내가 기억하는 1990년대는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새로운것에 대한 강한 갈망이 있었다.
조경에서는 피터 워커(Peter Walker)를 비롯한 조지 하그리브스(George Hargreaves), 마사 슈왈츠(Martha Schwartz), 마이클 반 발켄버그(Michael Van Valkenburgh) 등의 미국을 위주로 한 일단의 조경가들이 기존의 조경 미학에 반하는 파격적인 개념과 형태를 내세워 조경 설계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실체 자체도 모호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개념을 통해 근대화를 거치며 적체되어 온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이해하려 했다. 1997년에 나온 애플 컴퓨터의 가장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 ‘다르게 생각하자(Think Different)’는 이러한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갈망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었는데 특히 규범과 질서를 따르는 모범생과 착한 학생이 아닌 말썽꾼, 왕따, 반항아, 그러나 세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고자 하였던 선구자들을 기리는 ‘정상이 아닌 이들을 위하여!(Here’s to the Crazy Ones)’ TV 광고는 아직까지도 나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2000년대 중반 제임스 코너와 함께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에서 일하면서 이러한 ‘비정통적’ 또는 ‘비정형적’ 창의성의 추구에 대한 생각이 점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당시의 필드 오퍼레이션스는 일찍이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공공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으며, 이제까지 아무도 사용해 보지 않았던 방법을 도입하고 싶어 했다. 이전에 이미 만들어진 것, 했던 것들은 무조건 열외로 밀어냈고 엉뚱한 것, 말이 안 되는 것을 찾아 말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주요 관심사였다.
개념과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물리적 공간 형성으로 완성되던 기존의 방법론을 뒤엎고, 공간의 물리적인 틀을 먼저 구성한 뒤 여기에 프로그램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개념을 도출시키는 방법론이 시도 되었다. 전혀 상관이 없는 여러 가지 패턴들을 대상지 위에 이리 저리 엎어보면서 공간의 구성과 프로그램간의 연계성을 찾으려는 작업들이 이때 시도되었다.
당시 설계공모 당선안과 계획안들을 통해 이름을 얻고 있던 제임스 코너는 실제 실무의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장님 무서운 것 없다’는 말처럼 이러한 무경험이 오히려 당시의 필드 오퍼레이션스의 작업을 더욱 모험적으로 만들었고 기존의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시기에 진행했던 춘천 G5 설계공모 당선안은 이러한 패턴의 적용, 물리적 틀의 형성을 통한 프로그램의 도출 등과 같은 새로운 방법론이 대표적으로 사용되었던 사례다.
2000년대 후반 다국적 건축·엔지니어링 업체인 EDAW/AECOM(지금은 AECOM으로 통합)의 설계 총괄 담당(Design Director)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비정통적 창의성에 대한 개념이 점점 확고해졌다. 조경계의 거대 기업이었던 EDAW는 창의성을 강조하였지만 이는 매우 제도화되고 규범화된 이른바 ‘정통적’인 의미의 창의성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조경설계사무소이기도 한 EDAW는 몇십여 년간 자신들이 해 오던 방식이 있었다. 이와 같이 틀에 박힌 진부한 설계에서 벗어나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이 설계 총괄로서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전 세계에 업무 네트워크가 있고 막대한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EDAW에는, 매년 세계 각국의 사무실에서 가장 뛰어난 설계 인력들을 한자리에 모아 서로의 방법론을 공유하고 창의적 업무 방향을 논의하는 설계정상회의(Design Summit)라는 행사가 있었다. 여기에 참석하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EDAW 내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이른바 진보파 설계가들이었다. 어느 해인가 논의의 주제가 ‘변방에 서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커팅 에지(cutting edge)가 될 것’인가 아니면 ‘중심에서 주류 사회를 이끌어 가는 리딩 에지(leading edge)가 될 것’인가에 모아진 적이 있다. 이때 결론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바다에서 먹이를 찾아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비유해서 ‘끊임없이 변방에서 헤엄치지만 언제나 중심을 향해 움직인다(swarming toward the center but swimming on the edge)'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결론이었는데 궁극적으로 주류를 염두에 두지 않은 비주류의 추구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적 다양성
1996년 하버드 GSD에서 공부할 때 렘 콜하스와 함께 ‘하버드 도시 연구(Harvard Project on the City)’라는 연구 프로젝트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십여 명의 건축, 도시설계, 조경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모여 1년 동안 특정한 도시 현상을 다각적인 방향에서 연구하는 것이었는데 우리의 연구 주제는 쇼핑이었다. 지금은 유명 건축가들이 너도나도 프라다니 샤넬이니 고급 상업 부티크(boutique)를 설계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명한 건축가들은 상업 시설을 설계하지 않았다. 미술관, 학교, 공공 건물과 같은 고상한 건물들을 설계하면 이른바 건축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상가나 백화점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쇼핑 건축가라고 하여 저급하게 취급받는 때였다.
그러나 우리는 쇼핑이 이미 우리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가에 주목했고 상업 시설의 건축, 조경, 생태, 마케팅, 테크놀로지, 브랜딩 등 쇼핑과 관련지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연구했다. 그 결과는 쇼핑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도시의 중요한 물리적 환경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콜하스는 상업 건축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뉴욕 소호의 프라다 매장을 처음으로 설계하게 된다. 콜하스와의 쇼핑 연구는 나의 설계관 및 방법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이것이 오늘 이야기하는 기회주의적 다양성이라는 개념의 밑바탕이 되었다.
내가 쇼핑 연구를 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도 건축(조경을 포함해서)에는 옳은 건축과 그렇지 않은 건축에 대한 구분이 있었다. 이는 당시의 건축이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대의를 중요시하지만 생각을 경직시키고 사물을 흑백 논리로 끌고 갈 수 있다. 이데올로기에 근거하게 되면 ‘해야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이 분명해지는데, 이를테면 상업 논리에 바탕을 둔 쇼핑이 하지 말아야 할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다변화·다가치가 점점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과거의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접근법은 명확히 선을 긋기 어려운 애매한 경우가 종종 있다.
기회주의적 접근은 이러한 경우를 마주칠 때 재빨리 기회를 포착하고 그 속에서 공허한 대의 대신 실리를 선택한다. ‘모 아니면 도’라는 강경함 대신 위기와 제약을 기회로 바꾸는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한다. 이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찾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에게 기회주의적이란 것은 모든 프로젝트가 그 나름의 기회와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기회와 가능성이 설계를 통해 어떻게 구현되는지는 전적으로 설계가에게 달려있다. 많은 설계가들이 ‘왜 자신이 하는 프로젝트는 이리도 재미가 없고 진부하고 천편일률적인지’에 대해 회의하는데, 내가 볼 때에 설계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도 설계가이고 이를 진부하게 만드는 것도 설계가다.
수퍼매스 스튜디오에서 진행했고 2012년 미국조경가협회 뉴욕 지부에서 계획 분야의 상을 받기도 했던 브라질 농업생태신도시 계획안은 이러한 제약 요건을 재빨리 기회로 전환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브라질의 주요 농업 개발 지역인 북동부 사바나 지역에 유기농업을 위한 대규모 생태 신도시를 계획하는 작업이었는데 쓸모없는 황무지인줄 알고 시작한 사업 대상지가 최근 십여 년 사이에 아마존 열대우림에 버금가는 종 다양성을 갖는 생태계의 보고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프로젝트는 개발 프로젝트에서 개발을 가장한 생태 보존 프로젝트로 급선회하게 되었다. 대상지 내에 생태적으로 가장 민감한 자연 배수로 지역과 인접한 습지를 먼저 보존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보존 지구로 지정한 후 나머지 지역을 농업 지구로 개발함으로써 개발 사업으로는 흔치 않은 선 보존·후 개발이라는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회주의적 접근은 다양한 유형의 프로젝트를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하는데, 이는 곧 작업의 다양성과 연결된다. 나는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능하면 다양한 유형의 프로젝트를 하도록 노력한다. 수퍼매스 스튜디오에서 다루는 프로젝트 유형을 보면 대단위 마스터플랜부터 주거단지 계획, 업무 시설, 전시 시설, 캠퍼스, 공원 계획, 광장, 호텔, 주택 정원, 공동주택, 수변 개발, 설치 예술에 이르기까지 공공, 민간, 상업, 문화, 업무, 주거, 예술 시설 등을 망라한다. 여기에 이전 회사에서 다루었던 프로젝트까지 더하면 식물원, 동물원, 놀이공원, 카지노, 리조트 등 실로 다양한 분야와 성격의 프로젝트를 포함한다. 이렇게 작업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데는 창의적인 욕구에 대한 만족 그 이상의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보다 조직화 되면 업무 분야를 분화 및 특화시키려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내가 이전에 일했던 AECOM도 마찬가지여서 처음 시작할 때 회사에서는 나에게 전문 업무 분야(practice line)를 선택하여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를 원했다. 당시 AECOM은 공공 공간(public realm), 커뮤니티 단지 설계(community design), 호텔 및 리조트(resort hospitality), 캠퍼스 설계(campus design & planning), 생태 설계(ecological design) 등과 같이 업무 분야를 특화하여 이 중 자기가 관심 있고 잘 할 수 있는 한 분야를 선택해 발주처 관리부터 마케팅, 프로젝트 운영, 설계에 이르기까지 선택 분야에 집중하도록 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경기가 좋을 때는 효율성을 발휘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경기를 타는 특정 분야가 직접적 인 타격을 입게 된다. 실제로 2000년대 후반 미국 경기가 급격한 불황으로 빠져들게 되자 민간 중심의 주거 커뮤니티 개발과 호텔·리조트 개발 사업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었고 이 분야로 특화되어 있던 담당 소장들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특정한 업무 분야로 빠지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설계 총괄 소장으로 회사 내의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던 나는 불황이 시작되자 경기를 심하게 타는 민간 개발 팀을 떠나 공공 개발 팀으로 용이하게 전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뭐든지 다 할 줄 아는 사람은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세울 수 있는 특화 분야가 있는 것이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고 프로젝트를 따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본인들이 필요로 하는 요구 사항이 명확하기 때문에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원하지 다른 것을 이것저것 다 한다고 특별히 더 좋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수퍼매스 스튜디오에서는 이러한 특화 분야를 특정한 프로젝트 유형이 아닌 프로젝트에 특화된 방법론으로 접근한다. 수퍼매스 스튜디오가 특화점을 갖고 있는 분야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 친환경 기술의 시각적·경험적 구현, 공간의 조직적·구조적 처리 등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특화된 방법론은 모든 프로젝트 유형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사회적·환경적 책임감
예전 회사에서 일할 당시 우리끼리 하던 농담이 있었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한다(We’ll do anything for one magazine shot).” 물론 최고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공간을 더 많은 대중에게 제공하고자 했지만 그 이면에는 그 작업이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고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가 무척이나 강했던 것이다. 친환경성을 가장 중요한 기치로 내세우는 회사에서 일하며 가장 친환경적인 경관을 만들고자 할 때에도 이러한 것들이 결국은 회사의 수익이 맞춰진 후에야 시작된다는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대다수의 뛰어난 설계사무소들은 모두 최상의 설계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설계의 질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고 이를 통해 조경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이러한 노력이 정당하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뛰어난 회사들을 거쳐 오면서 나는 아직도 많은 설계가들이 (특히 그들의 설계가 뛰어날수록) 우리가 처한 사회적·환경적 문제의 많은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가 설계하는 대부분의 공간은 다수의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이러한 ‘일반 대중’에 속하지 못하는 빈곤층과 소외계층이 존재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를 조금만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눈을 돌리면 우리의 빈곤층·소외계층의 생활에도 미치지 못하는 생활을 하며, 최소한의 기본권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너무도 많이 있다. 친환경적 설계 또한 이제는 거의 기본이 되어버렸지만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지금, 설계가들이 과연 우리가 처한 절박한 환경적 위기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수퍼매스 스튜디오의 세 번째 가치인 사회적·환경적 책임감은 이러한 자각에서 시작됐다. 때마침 사무실을 시작하던 해인 2011년 가을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박물관이 기획한 ‘나머지 90%와 함께 하는 디자인(Design with the Other 90%)’이라는 획기적인 전시가 있었다. 지구촌 65억 인구 중 90%에 해당하는 58억의 인구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기본적인 생필품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그중 절반은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먹을 것과 깨끗한물, 그리고 잠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디자인을 통해 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들을 찾고자 하는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는 나에게 매우 큰 감명을 주었고 설계가의 보다 실천적인 사회 참여에 대한 적극적 인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수퍼매스 스튜디오는 지난 3년간 직·간접적으로 이와 같은 다양한 사회 문제의 해결에 참여하고 있다. 2011년에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주제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12명의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들이 공동으로 기획한 ‘지구촌의 위기와 디자인(Global Crisis & Design)’ 전시회에 참가해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2012년에는 필리핀 태풍 와시의 피해를 입은 이재민 구호를 위한 정착민 마을 조성 기본 계획안을 필리핀 당국에 제안하였으며, 지진으로 황폐된 아이티(Haiti)에 산림녹화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에 간접적인 지원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비정통적 창의성’과 ‘기회주의적 다양성’은 2006년 『건축문화Architecture and Culture』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당시 필드 오퍼레이션스에서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개념이었다. 이것이 AECOM에서의 작업을 통해 보다 구체화되고 여기에 ‘사회적·환경적 책임감’이 더해지면서 수퍼매스 스튜디오의 실무 철학이 된 것이다. 그러나 2006년의 첫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이런 용어들은 내가 만들어낸 말들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훨씬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수퍼매스 스튜디오가 설계하는 법에 대해 다시 한 번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한 줄로 답할 것이다.
“남과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러나 책임감 있게 한다.”
차태욱은 미국 뉴욕에 위치한 수퍼매스 스튜디오(Supermass Studio)의 대표로 미국을 근거로 한 17년간의 국제적 설계 경력을 통해 설계및 프로젝트 운영, 시공에 이르는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하버드 GSD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뉴욕, 매사추세츠,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에 공식 등록된 미국 공인 조경가로서 친환경전문자격증(LEED)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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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루이 비네쉬
루이 비네쉬 페이자지스트 대표
조경 설계에 문외한이 아니더라도, 베르사유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파리 근교, 조그만 전원 마을인 베르사유에 도착하면 그 한가한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생경하게 서 있는 궁전과 정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입장 차례를 기다리는 과정은 인내심을 요하고, 마리앙투아네트의 궁정 생활에 대한 몽환적 상상은 까다로운 관람 규정으로 증발되어 버린다. 화려하지만 구석구석 슬픔이 배어있는 금빛 가득한 방들을 지나 드디어 만나게 되는 정원 또한 기대만큼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다. 항공사진으로만 보던 회화적인 자수 화단도 발치 가까이에 놓여있으니 그리 대단하지도 않고조금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저 커다랗기만 한 분수들은 영광스럽기보다는 낡아서 안쓰럽고 황량한 느낌이다. 이곳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주인공은 회색빛 허공을 배회하는 프랑스의 햇빛이다.
휴먼 스케일을 넘어 극단적으로 인위적이고 장식적인 베르사유의 공간 구성은 자연을 인간의 통치 아래로 복속하려는 어리석고 실패한 시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껏 부풀었던 기대와 달리 사뭇 실망스럽다. 화려하지만 애정 어린 손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차가운 공간에서 살아야만 했던 프랑스 왕족들의 광기도 사뭇이해할 만하다. 북악과 인왕으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우리 궁궐 정원의 자연스럽고 간결한 아름다움이 새삼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정원이 그렇듯, 위대한 정원이란 당대의 시대상을 아낌없이 구현하는 공간이다. 베르사유는 17세기 절대 왕정의 상황을 반영하는 거울로서 프랑스의 고전주의 양식을 대표한다. 그중에서도 정원은 그저건물의 배경이 아니라 공간 계획의 핵심이었다. ‘루이 14세’라는 인물을 고려하지 않고 형태적인 측면에서만 베르사유를 분석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상당한 착오를 낳는다. 베르사유는 단순히 당시에 축적된 잉여적 부를 과시하는 궁궐과 정원 프로젝트가 아니라, 명확한 목적과 근거를 두고 진행한 프랑스식 행정 복합 신도시였기 때문이다. 종종 오해받는 것처럼 베르사유는 프랑스 왕가의 별장이 아니다. 루이 14세는 왕정의 통치 체제뿐만 아니라 모든 귀족 사회와 관료 집단을 루브르에서 베르사유로 옮겨왔다. 베르사유에는 그가 꿈꾸던 ‘새로운 국가, 프랑스’에 대한 신념과 중앙집권적 표상, 무엇보다도 ‘프랑스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사상이 담겨 있다. 17세기 중반만 해도 유럽의 문화적 중심은 이탈리아였다. 프랑스는 유럽 최고의 부와 군사력을 보유한 강국으로 떠올랐지만, 예술과 문화에 있어서는 여전히 이탈리아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루이는 프랑스의 패션과 예술, 건축을 보호하고 장려해 독자적인 문화적 전통을 구축하려 했고 베르사유는 그 전적인 수단이었다.
건축사가 빈센트 스컬리Vincent Scully가 지적했듯, 경사와 비탈면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이탈리아 정원과 달리 베르사유는 일드 프랑스Ile-de-France의 대평원에 건설된 프랑스식 정원이다. 또한 평생을 영토 확장과 전쟁으로 보낸 루이의 자랑스러운 군대와 프랑스 영토를 표현한 추상화이며,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순수한 르네상스적 아이디어에서 영향을 받은 앙드레 르노트르André Le Nôtre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다. 절반을 차지하는 하늘 또한 르 노트르가 의도한 바였다. 망사르Jules Hardouin-M. Mansart의 ‘거울의 방’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루이 14세의 상징성을 표현한 것처럼 태양을 자처했던 루이 14세가 깃들 수 있는 끝없는 하늘과 무한히 뻗은 지평선의 정원은 더없이 어울리는 설계였다. 휴먼 스케일을 벗어나는 계획의 성격 또한 자신에 대한 초월적 기준을 세우고 왕으로서 초인적 면모를 구축하려 했던 루이의 의지가 정확히 반영된 결과였다. 루이는 매일 세 차례의 사냥, 세 차례의 관료회의, 세 차례의 성관계를 철칙으로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베르사유 또한 그가 새롭게 이룩하려 한 프랑스적 격식과 이지적이고 복잡한 문화 예식의 3차원적 구현이었다. 다시 말해 베르사유는 프랑스의 국가적 기강과 문화적 기풍을 다시 세우는 사업이었다. 베르사유의 입구인 군사 광장Place d’rmes에는 세종대왕이나 링컨처럼 옥좌에 앉은 통치자가 아니라 말을 타고 돌격을 외치는 루이의 기마상이 서있다.
베르사유는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현대적 개발 방식의 시초가 되었다고 할 만하다. 베르사유는 루이 14세의 꿈을 실현할 중앙 정치 무대가 되어야 했기에 늪지대가 아름다운 숲과 정원으로 바뀔 때까지 수십 년의 세월을 기다릴 수 없었다. 루이는 빠른 결과를 원했으며, 르 노트르는 프랑스 전 국토에서 장대한 수목을 구해 성목을 이식함으로써 깜짝 놀랄만한 경관의 변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만큼 베르사유는 빠르게 건설되었고 또 빠르게 파괴되었다. 프랑스혁명의 혼란을 거치며 황폐화의 길을 걷던 정원은 근 200년간 복원의 대상이었다. 루이 14세와 르 노트르가 세웠던 비전을 해석하고 이상적 상태를 회복하는 일이 베르사유의 임무로 전승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관점에 변화가 시작됐다. 폭풍 피해로 훼손된 ‘물의 극장이 있는 숲Le Bosquet du Théâtre d’au’ 정원의 재조성 과정에서 원형중심의 역사적 복원이 아니라 베르사유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을 도입한 것이다. 이 역사적인 과업을 맡은 조경가가 프랑스의 정원사, 루이 비네쉬다.
역사와 전통의 층이 겹겹이 축적된 베르사유를 해석하고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정원에 담는 작업은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내년 봄에 선보일 비네쉬의 정원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지 무척 궁금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작품 또한 베르사유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해석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엄격한 격식과 초월적 이상을 표현한 베르사유의 중앙 축과 대비되는 숲속 정원들은 파티와 공연의 무대가 된 그야말로 자유와 환상의 세계였다.
2011년 공모전에 당선된 비네쉬가 1674년 르 노트르가 설계한 물의 극장을 재조성하게 되었다. 루이 비네쉬는 법학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묘목장의 견습생으로 다시 출발하며 정원사의 길을 걸었다. 그는 프랑스 곳곳의 대규모 저택 정원과 성채, 전통 경관을 디자인하며 르 노트르 이후 베르사유 최초의 독창적 정원을 선보일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특히 1990년대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비네쉬는 서울의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 최이규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지소장 / 2014년10월 /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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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백남준아트센터
대상지를 방문하기 전에 들었던 첫 번째 궁금증은 ‘왜 용인이었을까’하는 점이다. 백남준은 서울 태생이며 일본, 독일을 거쳐 미국에서 활동한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백남준 미술관 설립은 일종의 유치전 성격을 띤 사업이었는데 경기도가 가장 발 빠르게 대처해 선점한 것으로 보인다. 백남준은 가장 먼저 적극성을 보인 경기도에 ‘전 세계 미술관 중에서 백남준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미술관’이라는 권리를 부여했다고 한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글로벌한 예술가가 고국으로 선물을 보내면서 특정 장소와의 결부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백남준아트센터의 본명은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었다.
백남준이 생전에 미술관 부지를 확정하고 직접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이 좀 길어서인지 혹은 외국인에게 기억되기 힘들어서인지 고인의 작명은 사라지고 백남준 미술관으로 한동안 불리다 지금은 백남준아트센터가 되었다. 평생을 파격으로 점철한 예술가의 기념 미술관인데 이름이 좀 파격적이어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초기의 아이디어 중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이름 뿐만은 아니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였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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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발굴과 지속
추억, 아름다운 것
추억은 아름다운 것, 놓쳐버린 것에 대한 갈망이나 마찬가지.
-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추억은 아름답다. 그 대상이 상실되어 더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녹슨 탱크를 보며 우리는 덧없이 스러져간 것들을 떠올린다. 따라서 마포석유비축기지는 우리가 지켜낸 기억이기보다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의 표상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본 설계경기는 동시대 한국의 건축이 ‘도시의 기억’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갈망이 발현되는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가을장마가 한창이던 9월의 어느 날, 탱크는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매봉산 산책로에서 내려다본 녹슨 탱크는 불시착한 UFO처럼 서서히 산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탱크의 상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비를 피해 들어간 탱크는 몹시 어둡고 깊었다. 탱크는 산비탈 구덩이에 묻혀있었고, 높이 15m에 달하는 탱크는 세찬 빗줄기에 퉁! 퉁!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비가 그친 뒤 탱크의 붉은색은 한층 도드라져 보였다.
실제로 목격한 탱크의 붉은 빛깔은 너무나 강렬해서 그것을 잠식하고 있는 산조차 자신의 배경으로 만들어 버린다. 도시 속 자연에 묻힌 산업 유산이라는 독특한 대상지의 조건은 그 자체가 이미 매력적인 공원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다. 그래서인지 본 공모전의 설계 가이드라인은 매우 간결하다. 다섯 탱크의 내·외부를 활용하여 상설·기획전시 공간, 공연 공간, 도서관 및 강의실로 구성된 정보 교류 공간을 마련할 것, 적어도 하나 이상의 탱크는 원형 그대로 보존할 것, 그리고 비축기지 전면의 임시 주차장 부지를 공원의 진입부로 계획할 것 정도가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다.
설계지침의 초점은 매우 명확하다. “옛 것은 무조건 철거하고 새 것을 지어온 과거의 관습적 태도에서 벗어나, 오래된 구조물의 기억과 역사를 소중하게 살리고… 서울의 건축이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본 공모전의 의의에서 방점은 ‘옛 것, 오래된 구조물’에 찍힌다. 지침은 “자연스러운 부식을 통해… 각 탱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시각적, 공간적 오브제로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반복적으로 땅과 구조물을 분리해서 언급한다. 따라서 공원의 구성보다는 구조의 활용이, 현재의 쓰임보다는 과거의 감상이 설계의 핵심이 된다.
실제로 공원의 쓰임, 즉 공원의 운영 주체와 구체적 프로그램이 설정되기 전에 이미 공원화 계획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본 공모의 성격은 일반적인 공원의 설계보다는 산업 유산을 추억하는 메모리얼에 가까워진다. 결과적으로 마포석유비축기지 공원화 사업은 ‘기억’에 대한 건축적 실험의 장이 되었고, 이와 더불어 건축가에게만 그 설계가 허락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공원 설계의 역사에서 독특한 위상을 획득하게 되었다.
기억의 발굴
무엇이든 오래도록 바라보면 흥미로운 것이 된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
설계지침은 최초의 설계다. 지침은 설계에 대한 최초의 관점으로써 다가올 설계들의 진폭을 결정한다. 대다수의 작품이 다섯 개의 탱크를 활용하여 다양한 공간을 연출하고자 했으며, 일부 작품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구조체를 도입해서 옛 것과 새것의 충돌을 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은 서울시가 제공한 설계 예시도의 모습에서 크게 더 전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마도 사고의 진폭이 공간적으로는 탱크와 옹벽이라는 구조체를, 시간적으로는 30년간 부식된 표면 위를 맴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등작 ‘땅石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은 지침과는 다른 공간적, 시간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어떻게 탱크를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할 때, ‘어떻게 탱크를 바라볼 것인가’를 먼저 고민했다. “찾아냄이 시작이며, 나타나게 함이 종결이다”라는 설계설명서의 구절처럼, 그들은 찬찬히 대상지의 기억을 들추어보고 이를 드러내기 위해 고민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비축기지가 조성된 과정을 유추해본다. 북측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피하기 위해 탱크는 남쪽으로 열린 경사면에 배치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설물의 안전을 위해 부지 전체가 암반 지형이어야 한다. 탱크를 매설하기 위해 암반은 원형으로 절개되었고, 절개면을 따라 옹벽이 들어섰다. 옹벽 내부에 탱크를 매설한 다음 이를 보호·차폐하기 위해 절개면의 입구는 토사로 메워졌다.
이경근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조경비평 ‘봄’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봄, 조경 사회 디자인』, 『공원을 읽다』, 『PennDesignSubstance Journal』 등에 필자로 참여했다. 용산공원 조성 기본계획, 순천만 국제습지센터 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하였으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설계공모, 상상어린이공원 조성 기본계획(안) 현상공모, ASLA Student Award, 환경조경대전 등 여러 설계공모전의 수상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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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석유비축기지 참가 자격 논란
공원화 사업임에도 참가 자격을 ‘건축사’로만 제한 ‘마포석유비축기지 재생 및 공원화 사업을 위한 국제설계경기’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제공할 수 있는 ‘공원’ 조성을 목표로 했다. 대상지 전체를 하나의 ‘열린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 핵심 목표였으며, 석유비축탱크를 품고 있는 대상지는 도시적·지형적으로 독특한 조건을 가진 땅이다. 때문에 이번 설계경기는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여러 전문가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접근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이번 설계경기는 그 참가 자격을 ‘건축사’로 한정하여 조경가의 공식적인 참여를 배제했다. 이에 본지는 공모전을 주최한 서울시에 참가 자격을 제한한 배경과 이유를 질의했다. 다음은 그에 대한 서울시(도시계획국 공공건축팀)의 답변이다.
참가 자격 관련 질의에 대한 서울시의 회신
“운영위원회에서는 당초 ‘참가 자격’을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는데, 그 까닭은 ‘오래된 것은 무조건 철거해왔던 종래의 관습적 태도가 아니라 잃어버린 도시의 기억과 역사를 살려 산업 유산을 재생하고 활용하기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다양하고 창의적인 설계안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초 자격 요건: 참가자는 단독응모의 경우 한국건축사 혹은 외국건축사이어야 한다. 공동응모의 경우 한국 혹은 외국건축사 1인을 팀의 대표자로 지명하고 나머지 팀원은 4인 이하로 하여 전문분야에 제한 없이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다만 주최자의 소속 직원,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이 소속된 조직의 구성원, 중복으로 응모한 자, 자격 정지 중인 건축사는 참가할 수 없다.’
그러나 ‘참가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경우 계약 관계법령에 맞지 않는다’는 기술용역 타당성 심사 결과에 따라 계약부서(재무과) 및 안전행정부 협의를 거치면서 부득이하게 현행법령 규정에 맞도록 공모지침상 참가자격을 변경하여 공고하였습니다. 또한 운영위원회는‘본 설계경기의 핵심은 기존 석유탱크의 재생 및 활용’이라고 판단하여 참가자의 대표는 국내외 건축사로 지난 5차 위원회에서 결정했었고, 변경된 참가 자격에서도 DDP와 같은 설계비 폭증 및 계약 관련 분쟁 등을 방지하기 위해 향후 ‘기본 및 실시설계’ 계약시 관련법령에 따라 건축사사무소를 등록한 자를 주계약자로 선정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상지와 주변 여건상 공원이 많고 도시계획 변경, 토목 등 다양한 분야와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 시행령’ 규정에 따른 조경기술사 등 다른 전문가들의 참가를 적극 검토하였으나, 참가자의 대표가 국내 건축사사무소를 등록한 자로 한정되고 공동응모는 2개사를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하면서 참가 분야를 전부 명시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계약 시 시비가 발생될 여지가 있고, 컨소시엄 구성에 따른 참여업체가 오히려 지나치게 적어질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참가 자격을 변경하는 실무 과정에서 다른 전문분야가 불가피하게 제한되었습니다. 우리 시는 ‘최근 국제설계경기의 흐름은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해법을 도출해 내는 협력적 작업이 필요하다’는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에 동의하며 본 설계경기에도 적용하려 하였으나, 위와 같은 제도상 문제 등으로 인하여 다양한 분야에 참여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기와 같은 문제들이 향후 시행될 설계경기에서는 발생되지 않도록 우리 시에서는 건축정책위원회를 통해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법령 개정 건의등 후속 조치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협력적 작업을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
지난 6월 최종 우승팀을 발표한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 설계공모는 CNN이 선정한 2013년 최고의 아이디어에 이름을 올렸는데, 여러 단계에 걸친 공모 과정과 전문가 집단의 학제 간 협력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도시설계, 건축, 조경, 원예, 해양학, 엔지니어링, 생태, 교육, 그래픽 디자인, 예술, 재정-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함으로써 복합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다. 최근 국제설계경기의 흐름은,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해법을 도출해내는 협력적 작업을 크게 장려하고 있다. 기본 개념을 도출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여러 전문 분야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점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계공모의 핵심은 ‘공개’ 경쟁
이번 설계경기에 참가한 조경가들은 한결같이, 오일탱크에 대한 건축적 설계 해법이 중요한 대상지였으므로 대표자를 건축사로 한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공원화 사업’이란 타이틀이 붙은 설계공모임에도 조경가가 공식적으로 공동 참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참가 자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분야 이기주의나 영역 다툼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공개경쟁방식으로 진행되는 설계공모에 참가조차 할 수 없도록 자격을 제한한 지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그 성격이 다르다. 가장 좋은 안을 뽑기 위해, 다양하고 폭넓은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보다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확대하는 것은 주최 측의 당연한 의무다. 다양한 층위의 안을 폭넓게 받은 후에, 대상지에 가장 적합한 안을 뽑는 것은 심사위원의 몫이자 역량이다. 미리부터 참가를 제한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6.4 지방선거 당시 서울역 고가도로를 재활용하여 뉴욕의 하이라인과 같은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서울시(주무부처 도로관리과)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대상으로 국제지명초청공모를 진행하기 위해 설계지침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이 참가 자격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마감중인 9월 22일 현재, 공식적인 설계공모 요강이 발표되지 않았다). 한국조경사회는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의 경우, 건축, 조경, 토목구조 3개 분야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을 서울시에 전달한 상태다. 또 조경 관련 6개 단체장(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 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 대한건설협회 조경위원회,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공사업협의회, 한국환경조경자재산업협회) 공동 명의로 서울시장 면담도 요청해놓았다. 이 자리에서 이번 설계경기의 참가 자격 제한에 대한 문제 제기를 비롯해서, 다양한 조경 관련 정책 제안, 제도 개선 요구 등이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란이 공정한 경쟁의 장이 마련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