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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 부산 야외수영장
Lotte Hotel Busan Swimming Pool
  • 얼라이브어스
  • 환경과조경 202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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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한국 정원 문화와 수영장


땅콩 모양으로 배치한 철쭉 등 관목 군락, 다채롭게 어우러진 하부 식재 위에 자리 잡은 곡간형 조형 소나무, 그리고 그 속을 굽이치는 산책 동선. 한국 정원이라고 정의하기에는 너무 거창하지만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일상적 조경 공간의 전형이자 익숙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너무나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어쩌면 클리셰라고 부를 수도 있을 정원의 모습에서 출발했다.

 

이 글은 우리가 제안한 수영장에 관한 이야기다. 대부분의 리조트와 호텔 수영장은 넓게 트여 개방감 있는 구성을 기반으로 그 자체의 스케일을 자랑하며 많은 사람이 모여 물놀이를 즐기는 활동적 공간으로 조성된다. 기존 수영장의 전형들에 대해서 반감이나 거부감은 없었다. 다만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정원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과의 사색적 교감을 수영장 공간을 통해 더욱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자연과 깊게 교감하는 사유의 정원으로서의 수영장, 그 지점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다.


온전히 몸을 담그는 자연

 

정원을 산책하며 식물을 바라보고 풀 내음을 맡으며 자연 속을 걷는 것은 매우 직접적인 자연과의 교류다. 이러한 교류를 프로젝트의 목표이자 공간에서 제공하는 주요 경험 중 하나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가 다뤄왔던, 혹은 완성도 있게 조성된 기존 정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자연과의 소통조차 여전히 자연이라는 대상과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사람들은 수영장이라는 유형의 공간에서 최대한 살갗이 자연과 맞닿은 채로 물 속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이라는 자연 그 자체에 온몸을 담그며 느끼게 된다. 이만큼 자연과 직접 강렬하게 교감하는 공간이 있을까.

 

오감의 활용과 공감각적 체험. 조경을 학문으로 접하면서부터 실무적으로 여러 난관을 돌파하고 있는 지금까지 설계를 하며 가장 자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이 개념을 실질적으로 적용할 기회라고 여겼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갈구하는 자연에 대한 요구를 채워주는 정원이라는 유형, 자연 소재 중 가장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면서도 다른 그 무엇보다도 자연 그 자체를 깊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물의 공간 수영장. 이 둘을 접합하는 접근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핵심 전략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설계 과정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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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적 정원과 수영장의 결합을 통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산책하는 수영장

 

자연 속을 천천히 걷고 또 걸으며 만나는 정원으로 수영장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우선 공간 전체의 골격을 흔들어야 했다. 우리의 의지도 그러했지만 발주처의 요구 사항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앞서 제안된 해외 설계사무소의 설계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했으며, 산책이 가능한 수영장의 레이아웃으로 구성했다. 정원은 크게 식물과 교감하는 구간, 물과 교감하는 구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굽이굽이 산책하며 식물과 물을 만나게 되는 길을 정원 형태로 조성하였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물 속에 들어가 유영하기도 하고, 또 어느 지점에서는 불현듯 마주친 정원 속에서 쉴 수도 있다. 더불어 전체 공간 속 다양한 시점에서 미학적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수영장이라는 주어진 프로그램을 더 풍성하게 경험하도록 섬 형태의 녹지들을 기준으로 서로 다른 공간들을 분리했다.


식재 설계

시공의 현실성을 고려해 교목의 수량을 극도로 제한했다. 목대가 굵은 다간형 교목을 심어 소수의 수량만 활용하면서 야생적이면서도 풍성한 공간감을 만들었다. 공간 전체를 시각적으로 장악하는 주요 수종으로 제주도에서 온 종가시나무를 선정했다. 다간형 상록수이며 제주도에서 자라는 뿌리가 깊지 않은 천근성 수종이라 현장의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할 최적의 수종이었다. 본래 공간 전체에 단일 수종으로 종가시나무만 식재해 단일 경관이 주는 웅장함을 연출하고자 했으나, 방문객들에게 더 다양한 볼거리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호텔 측 의견을 수용했다. 종가시나무와 홍가시나무를 주요 대교목으로 정했고, 작은 포인트 수목으로 꽃이 여러 번 피는 산다화, 물가를 향해 조형적으로 가지를 뻗어내는 곡간형 해송을 중앙부에 식재했다.

 

예상보다 녹지 구간의 폭이 협소했다. 충족해야 하는 수영장 면적뿐 아니라 선베드 등의 좌석 수가 수영장 운영의 핵심적인 부분이기에 녹지 폭을 다소 좁게 계획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풍성한 자연을 연출하기 위해 부피감이 크면서도 거친 질감으로 야생미를 발휘하는 식물들이 필요했다. 대표적으로 팔손이는 볼륨감이 우수할 뿐 아니라 넓은 잎들이 겹쳐 깊이감을 자아내기에, 차지하는 면적에 비해 매우 깊고 풍성함을 연출하는 주요 수종으로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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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 군락 형태를 통해 공간에 깊이감을 더했다.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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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시나무와 홍가시나무를 주요 대교목으로 삼고, 산다화와 곡간형 해송 등 다채로운 식재를 통해 볼거리를 선사한다.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중앙부 섬 형태의 녹지 구간은 대부분 치자나무 한 수종으로 군락을 조성했다. 하나의 수종으로 구성한 군식은 구불구불한 형태미를 드러냄과 동시에 작은 면적이지만 대경관을 보여준다. 치자나무 군락 사이사이에 독립수로 식재한 설류화는 반듯한 초록의 면 위로 거친 질감이 대비를 이루며, 이른 봄에는 하얀 꽃의 덩어리가 되어 또 다른 경관 포인트를 만들어 낸다. 교목뿐 아니라 모든 관목과 지피 초화는 현장에서 설계사 감리 하에 위치와 방향을 정했다. 설계자로서 현장을 방문하고 손으로 드로잉하며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세심하게 식재 수종과 위치를 정했지만, 배식만큼은 최종적으로 현장에서 결정한다. 실제 현장에서 느껴지는 공간감, 현장으로 배송된 실제 식물의 형태와 느낌 등을 면밀히 봐가며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식물들을 재배치했다. 완성된 후 정원의 식물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가 의도한 것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


포장과 시설물 설계

포장 소재 선정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맨발로 다녀야하는 수영장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쓰이는 데크나 타일 혹은 판석 석재가 아닌 철평석 부정형 판석 포장을 제안했다. 호텔 건물 7층에 위치한 400평 남짓한 공간에 깊은 자연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거친 느낌의 포장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설계자 스스로 확신을 갖기 위해 두세 달간 철평석 포장이 보일 때마다 맨발로 걸어보았다. 발주처와 운영팀 모두 수영장 운영 본연의 어려움을 감수하고 공간 전체의 콘셉트를 지키는 데 힘을 실어 주었다. 결국 흑색 철평석 포장이 수영장의 주요 포장재로 선정됐다.

 

벽면을 포함한 석재 시설물들의 디자인 콘셉트는 같은 석종에 다양한 마감 처리를 적용해 일관성을 갖춘 통일감 속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벽체 마감은 포천석으로 통일하되 피죽 마감, 자연면 마감, 잔다듬, 거친 정다듬 등 다양한 마감과 줄눈 디자인을 통해 공간적 위계와 다양성을 부여했다. 수영장으로 진입하는 계단도 마치 평상을 연상시키는 패턴을 적용하고 다듬기 정도에 따라 마감의 세밀한 변화를 주었다. 일부 벽체는 스타코 마감과 종석긁기 마감의 거칠기 정도 차이로 패턴을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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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노피, 벽면 마감, 플랜터, 바닥부터 야외 가구까지 통합적 설계로 이루어졌다.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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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평석 부정형 판석 포장으로 야생의 자연 분위기를 연출했다.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조경설계 팀이 건축과 인테리어를 포함한 프로젝트 총괄 PM 역할을 수행했다. 수영장과 맞닿은 레스토랑 건물, 스파 공간, 화장실과 사우나 시설 등 수영장을 이용하는 동안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건축물의 입면 설계까지 조경에서 제안했다. 조경 시설물은 기성품을 배제하고 제작에 기반한 설계를 진행해 구조 검토까지 포함한 과정을 수행하였고, 수영장에 놓일 야외 가구 선정도 조경이 진행했다. 타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이 부족하지만 과업을 수행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도움 받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 타 업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정원으로서의 수영장’이라고 해야 할지 ‘조경으로서의 수영장’이라고 해야 할지 표현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조경과 정원을 분리하고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필자는 둘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필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정원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는데 표현의 오해가 없길 바란다. 모든 과정에서 설계사의 본래 의도와 디자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노력한 발주처에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더불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 준 이향지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과 설계를 진행하며 설계 의도부터 소재 선정까지 마음껏 디자인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활동적 물놀이 공간으로서의 수영장이 아닌 차분하고 사색적인 산책형 정원으로서의 수영장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이용되길 희망한다. 진행 금민수 디자인 팽선민



김태경·이향지 인터뷰

자연과 교감하는 도심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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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정원, 공원, 리조트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김태경(이하 김) 해외 설계사무소의 설계안대로 공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식재 설계를 도와달라는 발주처의 요청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발주처가 수경 시설과 정원이 어우러진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며 수영장을 새로운 콘셉트로 기획해 보자고 제안했다. 평소에 식물과 정원을 토대로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재밌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았다. 오픈된 넓은 풀과 데크가 있고, 가구들로 구성된 개방감 있는 수영장으로 만들고자 했던 기존 설계안을 재검토하며 새로운 방향의 설계안을 만들어 나갔다. 발주처와의 여러 논의를 통해서 자연과 교감하며 산책하는 정원을 보여주는 수영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수영장을 정원으로 재해석한 것이 새롭다.

이향지(이하 이) 이용자들이 수영장에서 얻고자 하는 경험 자체를 다르게 해석해 봤다. 공간을 설계할 때 지역의 맥락을 고려해 정체성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부산이 바닷가 도시인만큼 바다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상지는 바다에서 다소 떨어진 도심 지역이기에 오션뷰를 가진 호텔만큼 바다의 감흥을 느낄 수 없는 장소였다. 대신 도심 속 호텔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산책 등 정적인 활동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선택한 요소가 바로 정원이었다. 일상 속 정원처럼 낯설지 않게 언덕을 만들거나 식재를 해 더욱 친밀하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했다. 수영장을 일종의 도심 정원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발주처가 이러한 콘셉트에 흔쾌히 동의하고 지원한 덕분에 가능했다.

 

조경은 자연과 교감하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다. 자연과 교감한다는 것은 감각 기관을 통해 소통하는 일이다. 숲에 들어갔을 때 좋은 이유는 풀 내음과 피부를 스치는 바람, 적당한 온도와 습도 등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체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키우는 화분을 통해 식물과 교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입체적인 경험이다. 이러한 자연과의 교감을 체험할 수 있는 작은 스케일의 공간 중 하나가 정원이다.

마찬가지로 수영장은 물속에 몸을 담그며 물이란 자연과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는 장소다. 호텔에서 오래 전부터 수영장이 유용한 요소로 활용됐던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특성을 적극 활용해 수영장과 정원의 결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둘 다 자연과의 교감이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 사이사이를 걸으며 눈높이에서 볼 수 있는 식물과 교감하고, 물에 몸을 담근 채 걸으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산책의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정원 공간을 섬 형태 녹지를 중심으로 나눈 이유는 무엇인가?

섬 형태로 녹지를 설계할 때 굉장히 여러 번 그리면서 각도와 위치 등을 고심했다. 우선 섬 형태로 녹지를 구성한 이유는 산책할 때 시야의 개폐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주고 싶었다. 숲 사이로 들어가서 걷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물이 잘 안 보이기도 하고, 탁 트인 수공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등 작은 공간이지만 다양한 보행 경험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또한 산책할 때 걷는 재미를 주고 싶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걷고자 하는 모든 길과 모든 요소가 보이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길이 뻔히 보이는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걷다가 새로운 공간을 마주치도록 굽이치는 곡선 형태로 중심 동선을 조성했다. 수영하며 뛰어놀 수 있는 수영장보다 유유히 산책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물속에서도 걸으면서 공간을 둘러볼 수 있게 일반 수영장에서 볼 수 있는 장방형이 아닌 곡선 형태로 수영장 풀을 만들었다. 특정한 포인트가 아니면 수공간 전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물 안에서 극적으로 자연을 느끼며 산책할 수 있다.

대상지는 지상층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 7층 옥상으로, 주변의 빌딩 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밖의 전망보다는 공간 내부에서의 경험이 중요했다. 내부에 들어와서 섰을 때 진짜 숲속에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섬 형태의 녹지를 중첩해 녹지 너머로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공간이 가려지고 보이도록 연출했다. 굽이치는 동선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공간을 구성해 다양한 전이 경험을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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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을 조망할 수 있는 2층 야외테라스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자쿠지 등 다양한 공간을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구성했나?

전체적으로 한눈에 보일 수 있도록 연출했다. 수영장의 자쿠지에서 키즈존까지 이어지는 곡선의 형태가 흐름이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했다. 자쿠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인 만큼 정원의 가장 깊은 숲에 배치해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선베드 등 수영장에는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요소가 있다 보니 녹지의 폭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식물의 높이나 식물의 잎사귀들이 만들어 내는 밀도를 통해서 공간의 깊이감을 형성해 작은 공간에서도 밀도 있게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수영장 자체는 인공 지반 위에 조성된 테라스 공간이지만, 전체적으로 실제 자연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싶었다. 플랜터에 심긴 나무가 주는 인위적인 느낌을 덜어내기 위해서 토심에 상관없이 플랜터를 사용하지 않고 식재했다. 진짜 숲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땅에 뿌리 내린 나무의 형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건축물의 입면 등에 여러 가지 마감 방식으로 패턴을 구현했다.

조경가의 역할 중 하나는 자연을 재해석한 공간을 통해 자연을 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일 석종을 이용해 건축물 입면부터 시작해서 바닥 포장까지 다양한 방식의 마감으로 패턴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자연 속 계류의 경관을 표현하고 싶었다.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의 계류에 가면 군데군데 나무도 있고, 깎아지른 큰 절벽도 있고, 석종은 같지만 마감이나 형태, 물성, 색감이 전부 다 다른 돌들이 흩어져 있지 않나. 이처럼 자연 속에서 단일한 석종의 다양한 마감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모티프로 삼아 이 프로젝트에 구현했다. 건축과의 협의를 통해 밝은색 화강석으로 석종을 통일하고, 마감과 패턴은 각 공간의 위계에 맞게 다양하게 처리해서 하나의 덩어리로 이루어지지만 단조롭지 않도록 만들었다.

 

거친 질감의 철평석 부정형 판석을 수영장에 사용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자연을 구현한 정원 속에서 딛는 땅들이 거친 자연 안에 놓인 대지처럼 느껴지기를 바라며 철평석 부정형 판석으로 바닥 포장을 했다. 철평석이란 소재를 수영장에 적용하면 운영상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한강 반포지구에 있는 다양한 철평석 포장을 맨발로 걸어보며 철평석 특유의 질감을 느껴봤다. 온몸으로 경험해 보면서 이 정원이 가진 특유의 자연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우려와 달리 발주처에서 운영상 어려움보다는 공간의 완성도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었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한 덕분에 철평석 부정형 판석을 바닥 포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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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의 입면에 여러 가지 마감 방식으로 패턴을 구현해 자연의 계류 경관을 재현하고자 했다.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이번 프로젝트에서 건축과 인테리어를 아우르는 PM을 맡았다.

프로젝트의 특 수성 덕분이다. 수영장을 중심으로 수영장을 둘러싼 건물 벽면을 포함한 전체적인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전체 디자인이 통일성을 갖도록 조율하는 총괄 디자이너가 필요했다. 발주처도 수영장과 건물을 따로 분리하지 말고 정원으로서 기능할 수영장의 배경을 맘껏 제안해 보라고 독려하면서 건축과 인테리어를 아우르는 역할을 맡게 됐다.

특별히 PM이란 공식 직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디자인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이런 역할을 처음 맡게 되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고, 많이 반성했다. 건축과 인테리어등 타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다행히 건축 쪽이 많은 도움을 줬다. 앞으로 PM과 같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으려면 타 분야에 대한 지식 습득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다년간 다뤘던 주택정원 프로젝트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나?

기본적으로 주택정원은 스토리나 맥락, 이용자, 땅의 위치 등 모든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설계할 때 실제 보이는 공간감이나 디테일이 중요하다. 또한 일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튀는 요소 없이 점점 예뻐지고 질리지 않게 하는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규모의 상업 공간에서는 주택정원에서 경험했던 공간감이나 디테일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리는 선이나 디자인은 조금 더 과감하게 시도하는 편이다. 또한 365일 내내 머무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해서 이용자들이 짧은 시간에 감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려고 한다.

 

상업 공간을 설계할 때 공간의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들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첫인상을 설계에 어떻게 반영했나?

전형적인 수영장의 풍경을 정원으로 해석해 전반적으로 독특한 경관을 자아낸다. 수영장인데 수영장 같지 않다고 할까. 하지만 이러한 경관을 진입하는 입구부터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6층에서 수영장으로 올라오는 계단은 보통의 호텔 로비처럼 만들었다.

수영장으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자연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며 공간에 대한 힌트를 일절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계단으로 올라와서 수영장을 처음으로 마주할 때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경관이 펼쳐지도록 만들었다. 이용자에게 공간의 첫인상을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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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잎사귀들이 만들어 내는 밀도를 통해서 공간의 깊이감을 형성해 작은 공간에서도 밀도 있게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최근 리조트, 호텔 등 큰 규모의 상업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러한 공간에서 나타나는 현재 조경 트렌드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

조경이 일종의 프리미엄 역할을 한다. 호텔이나 리조트는 객실에서 보이는 전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객실이 좋은 전망을 전부 가질 수 없다. 좋은 뷰를 가진 객실은 높은 가격으로 책정된다.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객실의 가치를 좀 더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조경을 활용한다. 높은 가격을 책정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뷰로 인한 객실 간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프리미엄 장치로 작동하는 것 같다.

 

호텔 등 상업 공간에서 조경 공간이 필요한 이유는?

조경 공간은 상업 공간에서 가성비 있는 투자다. 건축이나 인테리어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큰 공간적 경험을 창출한다. 특히 요새는 카페, 복합문화공간 등 다양한 상업 공간이 많이 생겨나면서 정말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도심 내에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작은 면적이라도 자연과 교감을 꾀할 수 있고,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조경 공간이 상업 공간에 들어서면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는 좋은 요소가 될 것이다. 특히 요즘 세대는 좋은 장소에 가서 좋은 시간을 보낸 걸 사진으로 남기고 SNS에 공유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조경 공간이라면 상업 공간의 매출과도 연계되는 매력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업 공간에서 조경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호텔이나 리조트는 그 지역에 놀러 오거나 쉬러 오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장소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가급적 호텔과 리조트는 그 지역만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어야 한다. 조경은 지역의 기후나 지역적 맥락을 고려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호텔이나 리조트 조경 공간을 작업할 때는 공간을 통해 그 지역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지역에 대한 이해를 돕는 스토리텔러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디자인 팽선민 사진 유청오,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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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형태로 녹지를 구성해 산책할 때 걷는 재미를 선사한다.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김태경 얼라이브어스 소장


조경설계 얼라이브어스

발주 부산 롯데호텔

시공 경원필드

CM 롯데CM 사업본부

위치 부산시 부산진구 가야대로 772

면적 1,600m2

완공 2022. 12.

사진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얼라이브어스(ALIVEUS)는 현대 도시를 만들어가는 건축, 조경, 도시재생, 문화 기획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 그룹이다. 평등한 커뮤니케이션과 유연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학제간 디자인을 추구하며, 이러한 방식이 도시의 다양한 문맥에 더 좋은 디자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태경은 고려대학교에서 생태공학을, 하버드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미국과 한국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부터 얼라이브어스를 운영하고 있다. 디테일과 식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다듬어진 공간의 미감에 주목한다.


이향지는 동아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한 후, 중국에서 기초 실무를 경험하고 한국에서 다년간 설계 경력을 쌓고 있다. 현재는 얼라이브어스의 구성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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