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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7) 질감: 재료와 인간과의 교감
  • 환경과조경 2009년 7월

디테일과 질감

이번에는 질감이다. 질감은 지난 달의 주제인 디테일과 마찬가지로 재료와 연관된 이야기이다. 재료에 관한 또 다른 각도의 담론을 전개하라는 숙제를 받은 셈이 되었다. “디테일은 창조적인 디자인 행위이며, 단지 특정한 스케일로 이루어질 뿐이다”라는 커크우드의 지적대로라면 디테일은 스케일 상 소규모의 범주에 해당되지만 지난 호에서 김아연 교수는 “디테일은 전체 경관을 구성하는 시스템에 관한 것이라는 확장해석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는 전체 경관의 개념이 디테일 수준까지도 적용되는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으로의 가치를 지닌다. 작은 부분과 큰 전체의 연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디테일이라는 단어는 태생적으로 소규모적, 기술적, 도구적 뉘앙스를 풍긴다. 반면, 재료의 또 다른 담론 주제인 질감은 마이크로(micro) 뿐 아니라 매크로(macro) 스케일까지도 적용되며, 개념과 실제 사이의 중간자적 매체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질감, 영어로는 materiality(the quality or state of being material) 혹은 texture로 번역가능 하겠다. materiality는 물성이라는 더 포괄적인 단어로도 이해되고 texture는 표면촉감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어서, 여기서의 질감은 materiality와 texture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분야)는 질감보다는 재료나 소재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 비슷한 단어 같지만 질감은 재료로 유발되는 감에 주목하고, 의미상 (인간의) 감성적 판단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재료나 소재는 객관적인 물질을 지칭하므로 구별되어 사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물성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자연과학적 측면에서 재료의 성질과 상태(색상, 무게, 온도, 습기 등)보다는 이러한 재료(의 성상)들과 인간이 직접적으로 교감하는 방식과 적용이 필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그러므로 설계참고서의 성격을 가지는 이 글은 질감에 대해서 너무 개념적 고찰로 기울거나, 기술서적인 서술에 집중하기보다는 설계행위에의 적용을 염두에 둔 실질적 담론을 전개하고자 한다. 질감을 둘러싼 일상생활에서부터 시작하여, 질감에 관한 다양한 담론을 펼치고, 질감과 관련된 우리의 설계 관성을 되돌아본 뒤, 질감을 훈련하고 설계에 응용할 수 있는 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거시적입장에서 질감과 도시경관의 상관성에 관한 의견을 개진할 참이다.

조경 질감 설계

형태와 질감의 균형 _ 체계적으로 설계 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의 첫 훈련대상은 형태와 선이었다. 선은 형태를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스케치선의 구사는 설계가의 직지적인 판단을 신속하게 도면으로 옮겨주고, 가장 효율적으로 설계의 골격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널리 쓰인다. 다음 단계는 제도선의 구사이다. 로트링을 사용할 때도,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할 때도 0.1 정도의 가는 선들은 설계가의 태도를 정밀모드로 전환시키고, 설계구상을 구체적으로 정교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형태와 디테일은 선으로 탄생되고 다듬어진다. 따라서 설계에서의 ‘선빨’은 지극히 형태와 디테일에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작업스타일 상 설계를 진행할 때는 형태와 디테일에 집중하게 되지만, 공간 실제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도면처럼 한눈에 파악하기 힘든 평면 형태나, 남다른 관찰력이 요구되는 디테일 등은 쉽게 인지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재료의 질감이나 그 스케일이 더욱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인지요소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설계상 ‘면빨’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선과 질감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콜라주 설계의 병행은 시도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오래된 스튜디오 프로젝트 사이트였던 베니스 아일랜드(venice island)는 필라델피아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을 따라 북쪽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섬이다. 이 섬을 대상지로 도시정원 스튜디오 수업을 수강했는데, 답사 이후에 사이트의 인상(impression)을 주제로 콜라주 연습을 하였다. 직관적이고 추상적인 콜라주 이미지에서 선들을 정제해내는 평면설계 과정이 뒤를 이었고, 선의 반복적인 수정과 모형작업을 병행하면서 더욱 정교한 평면설계(delineation plan)를 단락 지었다. 한 벌의 평면을 트레이스(trace)한 다음 그 위로 질감평면(textural plan)을 구성하였다. 질감 플랜은 선으로 구획되는 공간에 구체적인 재료를 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간에 연출하고자 하는 질감을 대상지의 현황, 추상적 콜라주 연습을 고려하면서 적용하였다. 이는 질감 기본설계 정도의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형태가 결정되고 나서 재료의 선정에 들어가는 일상적인 설계과정에 비해서, 이 연습은 적절한 질감(의 조합)에 대한 판단의 기회를 제공하고, 구체적 재료를 선정하거나, 투시도를 만드는 데에 방향타 역할을 하였다. 형태 평면과 질감 평면을 함께 설계과정에 쓰는 것은 선으로 인한 정확성과 재질로 인한 공간감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질감보다 선에 대한 투자가 현격히 높은 기존의 설계관성을 벗어나는 유익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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