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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4)
  • 환경과조경 2009년 4월
형태: 보이지 않는 것도 디자인하는 형태적 상상력


리플

최근에 자하 하디드(Zaha Hadid ) “스타일”로 설계해달라는 암묵적인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고, 클라이언트의 취향이니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당히 검토해보겠다고 하고 흘려버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이번호의 주제인 형태와 지난호의 주제인 정체성에 관한 혼돈이 양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일이 일상적으로 부딪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미장원에서 한번쯤 해봄직한 일, 잡지를 뒤적이며 유명 연예인의 스타일과 같이 해달라고 주문하는 일 말이다. 원하는 스타일대로 척척 가공해주는 헤어스타일리스트가 유능한 걸까? 혹은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나에게만 어울리는, 나만을 위한 마법을 부려주는 사람이 유능한 걸까? 우리는 고객이 주문하는 요구에 따라 어떤 형태(혹은 스타일)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설계가의 능력이 어떤 고객이 원하는 어떤 스타일로도 해줄 수 있는 다재다능함일까? 그렇게 된다면 설계가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나에게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스타일이 있어서 마치 “시그너쳐 룩”을 구사하는 패션디자이너처럼 설계적 정체성이 형태적으로도 존재해야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들이 엉키면서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어렵고 무거우면서도 우리 주변 일상에서 늘 부딪칠 만큼 공기같이 가벼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정체성의 문제가 아주 쉽게 형태적 정체성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해 솔직담백한 얘기보따리를 풀어주신 정욱주 교수에 이어 이번 주제는 형태이다. 뒤져보니 체계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았지만 이런 저런 설계를 하다가 끄적여놓은 단상의 흔적들이 형태에 관련된 것이 많다. 아마도 설계의 여러 단계 중에서도 합목적적이면서도 유연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낯선“형태를 찾는 과정” 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집착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이번호는 그렇기에 형태라는 큰 화두 아래 사라질 뻔했던 메모들을 정리하여 모자이크하는 식으로 구성해볼까 한다.

설계에 있어서 형태

케빈 린치(Kevin Lynch)와 개리 핵(Gary Hack)은『단지설계Site Design』라는 책에서 설계는 결국 특정 프로그램을 만족시키는 형태를 찾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설계의 범위와 정의, 그리고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는 해도 설계 혹은 디자인의 본질적인 측면은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만큼 형태에 대한 논의는 설계에 대한 대화에 있어서 핵심적일 것이다. 모더니즘 건축의 모토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명제는 이전시대의 형태와 장식을 구별하여 가장 순수한 기능에 기초한 형태만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사고에 기반한다. 역사적으로 건축물이나 정원 혹은 공원의 형태는 당대의 시대적 양식과 관련이 깊다. 쉬운 예로 유럽의 풍경식 정원과 정형식 정원의 뚜렷한 대비는 그 시대의 지배적인 미적 관점 혹은 문화적 양식이 어떠한 형태로 외부공간에 반영되었는지를 증명하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다원화되고 단일한 양식이 지배하지 않는 현대에 있어서 건조환경의 형태 역시 다원화되고, 개별적인 설계가의 관점에 의해 부여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형태에 대한 준거는 매우 다양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조경설계에 있어서 형태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 정의되고 있을까? 우리가 말하는 소위“선빨”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우리는 형태에 대한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가? 왜 수많은 공원들은 지루한 형태적인 반복을 하고 있는가? 아마도 설계에 대한 고민 중 상당 부분은 형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제 형태에 대한 몇 가지 소주제를 통해“왜 이렇게 형태잡기가 힘든가”에 대한 냉정한 자기반성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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