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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숲 깊은 자연과의 조우
The Origin of Forest
  • 스튜디오일공일
  • 환경과조경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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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순


씨앗숲 정원은 청주시가 개최한 2024 청주 가드닝페스티벌의 기업참여정원으로 조성된 공공 정원이다. 후원사인 현대백화점그룹은 시민단체 생명의숲과 진행 중인 도시숲운동 후원 사업의 일환으로 이 정원이 조성되길 희망했다. 이는 정원의 개념과 방향 설정에 있어 기본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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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싹이 콘크리트 바닥을 툭하고 깨고 나오는 상상적 연출을 통해, 작지만 커다란 자연의 힘을 표현했다. Ⓒ안상순

 

혼재된 시간의 감흥, 동부창고

대상지인 청주의 동부창고는 2014년 리노베이션을 통해 옛 연초제조창의 담뱃잎 보관 창고를 다양한 문화 및 예술 이벤트와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시민 참여 거점 공간으로 변화시킨 포스트-인더스트리얼 공간이다.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기존 창고 건물들이 간직한 시간의 흔적과 그 안을 새롭게 채운 다양한 예술적·문화적 체험, 혼재된 시간의 감흥이 주는 장소의 감동이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내 아쉬움을 느꼈다.

 

남겨진 창고의 흔적은 이 대지에 쌓인 엄청난 시간의 켜 중 지극히 단편적인 인간의 흔적이 아닌가. 그저 몇 십 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이 땅은 우암산 자락의 숲과 계곡이 무심천까지 연결되었던 깊은 자연이 숨 쉬던 곳이었다.

 

숲의 관점에서 이 대상지가 가장 빛난 시절은 오히려 창고가 지어지기 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인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원생의 숲이 울창하던 때가 아니었을까. 혹시 이곳 어딘가 콘크리트 포장 아래 깊은 자연의 씨앗이 유적처럼 남아 있진 않을까. 보도블록 틈새에서 블록을 들썩하고 들어 올리며 자라나는 잡초처럼, 인간의 손이 닿기 전 원형의 자연이었을 도시 표면 아래 어딘가에 숲의 씨앗이 움틀 날만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씨앗숲은 이러한 상상에서 비롯됐다. 나아가 가드닝페스티벌의 취지를 담아 정원 문화 및 도시숲이 동부창고를 시작으로 더 많은 도시로 확산되어 그 싹을 틔우길 바라는 희망을 동시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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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하게 위요된 숲 안에 스툴 벤치를 배치해 편안한 휴게 및 산책 공간을 계획했다. Ⓒ안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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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콘크리트 패널들이 들썩인 모습은 자연의 강한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안상순

 

시간이 융합된 비밀의 정원

콘크리트로 뒤덮인 대상지 아래 깊은 곳에 숨죽이고 있던, 원생의 자연을 간직한 숲의 씨앗이 작은 물줄기를 만나 커다란 콘크리트 바닥을 툭하고 깨고 나오는 상상적 연출을 통해, 작지만 커다란 자연의 힘을 표현했다. 동부창고 자체가 간직한 시간의 층위에 창고가 들어서기 전 우암산 자락의 계곡 숲이었던 깊은 자연의 기억을 더하고자 했다. 다양한 습지 및 초지 식재, 넓은 콘크리트 패널, 창고와 배수로 등 숲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경관 요소들은 다양한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경관이 된다.


공간은 두 개 영역으로 나뉜다. 정원의 입구부는 도시의 콘크리트를 깨고 나온 씨앗숲이 오래 간직해 온 원형의 깊은 자연을 표현한 공간이다. 오래된 숲을 상징하는 키 큰 메타세쿼이아와 원초적 습지 경관을 통해 나이 든 깊은 숲의 경관을 연출하고, 미스트로 자연의 경외적 신비감을 더했다. 땅 아래로부터 솟아난 깊은 자연에 의해 대지를 덮고 있었던 커다란 콘크리트 패널들이 들썩인 모습으로 자연의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정원의 상징적 조형물을 표현했다. 안쪽 계수나무와 신나무로 만든 낮은 숲 공간은 리노베이션된 동부창고의 외부 공간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시간의 층위의 요소들이 자연을 통해 하나의 경관으로 융합되며 성장하는 숲의 정원이다. 포근하게 위요된 숲 안에 스툴 벤치를 배치해 편안한 휴게 및 산책 공간을 계획했다. 씨앗숲의 근원이 되는 샘물 바위와 좁은 계류는 작지만 큰 변화를 만드는 자연의 숨겨진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정원의 명상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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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101

 

식재 계획

도시와 대비되는 자연을 표현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그러나 이 작은 정원을 공간에 내재된 시간의 켜와 연결하고 원초성을 표현하는 것은 씨앗숲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였다. 우암산의 능선이 보이는 씨앗숲이 터져나온 지점의 바닥에는 자연의 욕망을, 적벽돌의 학교를 배경 삼아 단정한 계수나무 수관을 이루는 심장저心臟底의 잎사귀의 나부낌을, 생명에 무감각한 도시로부터는 숲을 보호하는 망토군락林緣을 담아냈다.


식재의 외관은 크게 네 개로 나뉜다. ① 크고 작은 나무 무리와 여러 질감의 양치류, 숲 숙근초, ② 큰 나무의 얼기설기한 골격과 수로 사이의 드문 하층, ③ 목본-덤불형 관목-아관목-키 큰 숙근초-낮은 숙근초의 명확한 층위, ④ 1번과 3번의 식재 구조를 연결하는 열식과 매스형 초본층. 우선 들썩들썩한 콘크리트 패널부에는 큰 어른 같은 메타세쿼이아가 자리한다. 바늘잎같이 섬세하게 갈라진 잎이며 솔방울을 매단 그러나 낙엽이 지는, 침엽수와 활엽수의 진화 사이에 탄생한 것 같은 이 나무의 기근이 나와 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어린 물철쭉은 갈라진 콘크리트 패널 틈에서 줄기를 뻗는다. 패널 하부에 숨겨진 공간에는 홍지네고사리, 관중 등 양치류, 천남성을 심었다. 오목한 지형 측면 돌무더기 사이로 돌단풍, 바닥에는 양탄자를 만들어 줄 미나리아재비 군락, 산뚝사초, 긴 덩굴로 무리를 만드는 구와산바위취, 육지(건조지)로 올라오면서 등장하는 중간 볼륨의 키 작은 노루오줌, 털머위, 조금 늦은 봄의 레오코줌 ‘그레이브타이 자이언트’, 자란, 섬노루귀와 같은 자생숙근초를 혼식했다. 실제 숲과는 다르지만 숲의 욕망과 생명의 조각을 단편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충분한 공중 습도와 유기질의 부재를 보완하고자 토양 개량을 병행했다.


콘크리트 바닥을 가로지르는 선명한 수로에는 이테아 ‘헨리스 가닛’, 꼬랑사초 등을 드문드문 배치했다. 정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순백의 단정한 한라백당, 중간 키의 노루오줌, 적당한 군거를 이룰 무늬둥굴레, 호스타 등과 함께 그 사이로 잔잔한 초봄의 군무를 만드는 매화헐떡이풀 ‘닌자’를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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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물철쭉은 갈라진 콘크리트 패널 틈에서 줄기를 뻗는다. 패널 하부에 숨겨진 공간에는 홍지네고사리, 관중 등 양치류, 천남성을 심었다. Ⓒ안상순

 

병풍처럼 늘어선 좁고 길쭉한 녹지에는 계수나무와 신나무의 열식, 그 하부에 몰리니아 ‘무어헥세’, 무늬북사초, 개맥문동 매스 사이로 라일락 ‘아그네스 스미스’, 알구타조팝나무를 점점이 배치했다. 수평적 매스 사이로 돌출되는 숙근초, 쥐오줌풀 무리, 참나리 등을 심어 자연 발생적 느낌을 강조했다. 씨앗숲의 계절은 봄과 여름에 잔잔하게 개화하는 화관목과 숙근초, 단풍의 그라데이션이 기대되는 목본으로 구성된다. 화려한 꽃은 없지만 잎의 형태가, 식물의 생활형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공공 정원이다. 임의의 군락이 본래의 습성대로 살아가는 과정을 이 정원에서 지켜보며 동부창고의 하나의 외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완성도를 위한 협업

몇년 전부터 봄이면 수많은 지역별 정원박람회뿐 아니라 지자체별로 집중된 정원 공사로 인해 정원 전문 시공사 선정이 쉽지 않게 됐다. 정원의 주 상징 요소인 기울어진 대형 콘크리트 패널들은 공사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게다가 디자인 2주, 실시설계 2주, 공사 기간 4주로 처음부터 짧게 잡힌 일정은 치명적이었다. 공사는 힘든 과정이었고 공사비마저 상당히 초과되었다. 하지만 안기수 대표(공간시공 에이원)의 시공과 이양희 대표(스튜디오 천변만화)의 식재 등 다양한 협업과 도움 덕분에 높은 완성도를 갖출 수 있다. 함께 일하는 내내 그들의 추진력과 직업 의식에 감탄했다.



글 김현민 스튜디오일공일 대표

    이양희 스튜디오 천변만화 대표


정원설계 및 디자인 감리 스튜디오일공일(김현민, 이현옥, 이세희, 김선우, 박지원, 김아현)

정원 시공 공간시공 에이원

식재 계획 및 시공 스튜디오 천변만화(이양희)

콘크리트 시공 아름다운길

미스트 분수 및 수경 시설 시공 그린비스(주형재)

후원 현대백화점그룹, 생명의숲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덕벌로 30 동부창고 일원

면적 약 250m2

완공 2024. 5.

사진 안상순, 스튜디오일공일


스튜디오일공일(STUDIO101)의 ‘101’은 100 다음의 새롭게 시작하는 ‘1’을 의미한다. 기본에 충실한 것이 곧 새로움의 시작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통해 실험성, 심미성, 실현성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는 실천적 조경설계사무소다. 정원, 오피스, 공원, 주거 특화설계, 리조트 및 테마파크 등 실제 시공으로 이어지는 공공과 민간 영역의 다양한 외부 공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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