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봄이 왔고 나무에 생기가 흐른다. 겨울을 견디지 못한 개체들은 사월에도 가지가 말라 있다. 때 이른 더위에 꽃을 내미는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오목공원은 지난겨울 완공됐다. 해를 넘기지 말자고, 어찌어찌해 공사를 마무리했다. 가림막이 걷히고 모든 통행로가 열렸다. 농구장에서는 다시 아이들의 공놀이 소리가 들린다. 아직 가끔 쌀쌀하다. 몇몇은 볕을 찾아 의자를 들고 공원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다. 문득 궁금해졌다. 의자들은 무사한 걸까. 가을과 겨울이 지나는 동안 한 개의 의자가 분실됐다고 한다. 너무 가벼운 탓이었을까.
붙박이 벤치가 없는 공원을 상상했다. 공원은 극장이 아니므로 한쪽만 바라봐야 할 이유가 없다. 혼자도 오고 여럿이 함께 오기도 하기에, 따로 또 같이 앉을 수 있으면 좋다. 무리를 등지고 앉을 수도, 서로를 바라보고 앉을 수도 있어야 한다.
의자와 테이블은 세트다. 공원을 즐기려면 차를 마실 수 있어야 하고 맛있는 점심을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테이블 위에서 대화가 피어난다. 우리는 이런 공간을 라운지라고 부른다.
다양성은 좋은 말이지만 모호하다. 다목적은 합리적이지만 버겁다. 무언가가 선명하다는 것은 그것을 유지하려는 무게가 부담된다. 오목공원은 무목적 공원이다. 설계의 첫 단추는 앉는다는 행위였다. 걷는 것은 속도와 방향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목적이나 목표가 분명하다. 앉는다는 것은 걸음을 멈춰야만 할 수 있는 원초적 행동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앉아 있는 것은 우리가 공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필요한 행위다. 공원의 많은 공간을 앉는 행위를 위해 설계했다.
공간 혹은 장치
좁고 긴 통로를 따라 ‘걷는’ 회랑은 오목공원에 없다. 앉아 있는 공간을 단순히 덮고 있는, ‘회랑형 덮개’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덮개가 있으면 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주변의 높은 건물들을 가려주니 안온함이 생긴다.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어 쓰임새가 좋아진다. 하나의 시설물이 아닌 공원의 구심점으로 작동하는 공간적 장치다.
해는 계절마다 각도를 달리하며 뜨고 진다. 비바람의 방향도 일정하지 않다. 서로 다른 네 면을 가졌으므로 모든 면이 동시에 그늘지거나 똑같이 비바람이 들이치지는 않는다. 변화무쌍한 날씨로 인해 앉는 행위가 무참히 침해되지 않는다.
회랑 안쪽은 살짝 낮춰진 마당이다. 마당의 가장자리에 길게 걸터앉을 수 있다. 반대편을 바라보면 또 다른 무리가 앉아 있다. 앉는 행위는 때때로 전염되거나 닮아간다. 우리도 좀 앉았다 가자. 공원의 겨울은 길다. 찬바람을 피하고 몸을 녹일 공간이 필요하다. 회랑 아래 작은 실내 공간을 만들었다. 유리로 마감되어 있어서 낮은 각도로 들어오는 겨울철 볕을 모을 수 있다. 지난겨울, 강추위 속 마무리 공사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각각 작은 전시 공간으로, 책 쉼터로, 식물을 공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비록 협소하지만 필요한 장치다.
설계공모 당시 제안했던 커뮤니티 센터는 실현되지 못했다. 회랑과 연결되는 건축물이었다. 공원의 관리 기능과 주민들의 활동을 담을 것을 기대했으나 예산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생겼다. 대신 기존 관리사무소를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화장실, 수유실, 작은 창고, 관리 사무실로 재구성하고, 중심 공간은 미술관으로 꾸몄다. 지역 예술가들을 비롯해 청년 작가들, 아이들, 동네 예술 동호인들의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다. 공원 개장에 맞춰 ‘오목한 미술관’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키즈 카페는 공모 이후 서울시 예산으로 추가된 프로그램이다. 협소한 야외 놀이 시설을 보완한다. 공원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이용하기 좋은 공간이다. 부모들이 잠시 휴식을 즐기는 동안 아이들은 놀이를 즐긴다. 놀이 공간 구성은 별도의 전문 설계 팀이 맡았다. 바깥에는 작은 정원을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식물을 공부하고 가꾸는 장소로 활용하기를 기대한다.
업데이트
날카로운 기계톱 소리가 요란하다. 어른 팔뚝만한 가지들이 투두둑 잘려 나간다. 큰 나무를 많이 심지는 않았으나 오래된 나무들을 전정하는 작업은 필요했다. 나무 아래는 텅 비었고 위에는 무성한 가지들이 서로 엉켜 있었다. 잘라낸 가지들이 아래로 떨어지니 바닥이 한순간 풍성해졌다. 이만큼의 작은 나무들이 필요한 것이다.
숲은 여러 층이다. 1989년 나무들 아래로 2023년 나무들이 연이어 심긴다. 가장 아래층은 지면을 낮게 피복할 풀들이 차지한다. 중간층의 나무들은 도시를 부드럽게 순화시킨다. 눈에서 멀어지면 소음도 완화되는 법. 기꺼이 숲속에 머물 수 있다.
나무와 풀은 상부상조한다. 같이 모여 있어야 정겹고 아름답다. 오랜 시간 굳어진 땅을 뒤집으니 흙냄새가 피어오른다.
숲을 지나는 길은 살짝 떠 있다. 그 틈으로 풀이 연결되고 물이 흐른다. 벌레들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사람들은 단단한 길로만 다녀주세요. 여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길이 이어지다 넓어지는 곳에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으니, 여기는 일명 숲속 라운지다. 새들도 쉬어가는 곳. 공원 바깥 보도와 가까워서 드나들기에 좋다. 회랑이 삼삼오오 즐기는 곳이라면, 이곳은 혼자 책 읽고 음악 듣기에 좋다. 원래 큰 나무 아래 그늘은 인기가 많은 장소였다. 공원 리모델링 이전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차지하는 곳은 바로 이 숲속 벤치였다. 좋지만 벤치가 너무 부족했다.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진 빈터를 찾아 넓은 공간을 마련하고 의자와 테이블을 여러 개 놓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농구장과 어른들이 즐겨 찾는 체력 단련장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학생들의 소란함을 불편해하는 어르신도 많다. 기존 위치를 존중하되, 낡은 시설을 보수하고 쾌적성을 높였다. 리모델링 이전부터 가장 선호도가 높은 공간이었다.
농구장을 둘러친 높은 안전 펜스는 아이들이 공을 주우러 이리저리 다니는 수고를 덜어준다. 체력 단련장의 목재 데크는 비가 와도 물 빠짐이 좋아 운동하기 편하다. 적지 않은 예산의 투임이 있었으나, 좋은 재료로 공간을 개선하는 것은 공공을 위한 당연한 투자다.
비우고 채우기
공원은 때로는 한적하고 때로는 붐벼야 한다. 설계공모 당시 회랑의 다양한 기능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중 ‘일시적 시장’을 염두에 두었다.
생산적 교류가 중요하다. 지난 3월부터 마르쉐 농부 시장이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지역의 농부들과 소비자들이 화합하는 장터다.
도시공원은 광장의 기능도 해야 한다. 평소에는 비어있으나 어떤 때는 북적이는 활동을 담아야 한다. 회랑의 공간적 장치―지붕과 단차―가 장터를 만들기에 도움이 된다.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소리는 감동을 준다. 여기저기 걸터앉아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스몰 토크가 오고간다. 공원의 일상은 소소하다.
회랑의 지붕은 바닥에서 3.5m 정도 떠 있다. 저녁 때 공원을 방문하면 위층에서 산책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더 늦은 시간에 가보면 젊은 커플이 즐비하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행위는 즐겁다. 한 개 층 높이에 불과하지만, 시점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의자를 옮겨가며 아래 중정을 보거나 반대편 숲을 바라볼 수 있다. 폭은 제법 넓어서 필요한 활동을 더 담을 수 있다. 한정된 공원 면적을 늘린 셈이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편안한 이동이 절실한 사람 누구라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땅은 유한하다. 그러므로 땅을 점유한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실효적 행위에 속한다. 공원의 기본적 가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반영구적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것에 있다. 수천억에 달하는 땅을, 누군가 차지하지 않도록, 법을 만들고 행정을 통해 땅을 지킨다. 도시는 변화하고 공원도 진화한다. 오목공원은 30년동안 유지되었고 잘 자라주었다. 리모델링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됐다. 공원을 만들고, 고치고, 즐긴다. 공원은 조경가의 숙명이다. 진행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박승진·최상민·김희정 인터뷰
도심 속 공공 라운지를 만드는 일
오목공원 리노베이션은 ‘목동중심축 5대 공원 맞춤형 리모델링’ 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됐다.
박승진(이하 진) 오목공원이 위치한 양천구 목동은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목동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개발됐다.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공원의 필요성이 제기돼 건축, 조경, 도시계획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목동중심축에 다섯 개 공원을 조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는 많이 달라지고 성장했는데, 공원은 시설 보수만 진행됐다. 양천구는 시설 보수와 더불어 공원을 대하는 태도와 이용 방식에 접근해 순차적으로 공원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5대 공원 중 하나인 오목공원의 리노베이션은 다양해진 시민들의 공원 이용 방식을 고려해 진행됐다.
오목공원은 1차, 2차 공사를 거쳐 개장됐다. 1차 개장(2023년 9월)의 반응을 보고 2차 개장(2023년 12월) 전 설계에서 수정한 사항은 없는지 궁금하다.
최상민(이하 민) 두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다층적 수목 식재다. 나무 아래 식물을 더해 좀 더 풍성한 숲을 조성했다. 1차 공사를 진행하면서 공원에 맞는 규격, 형태, 물량의 수목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2차 때는 현장에서 시공사와 상의하고 상황에 맞게 수정해 나가며 진행했다. 덕분에 다양한 층을 가진 도시숲을 조성할 수 있었다.
둘째, 의자다. 오목공원에는 지붕이 있는 라운지, 숲 라운지 등이 있는데, 이곳을 오랜 시간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1차 개장 이후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는데 의자의 인기가 많았다. 아침 일찍 공원에 방문해 좋은 의자를 선점하지 않으면 앉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다양하고 많은 의자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양천구와 상의하며 필요한 영역에 의자를 추가 배치하는 등 보완해 나갔다.
김희정(이하 정) 건축적 시점에서 1차와 2차 개장에서 큰 차이가 나는 점은 오목한 미술관과 키즈 카페의 탄생이다. 목공방과 관리사무소로 사용하고 있던 건물이 있었다. 양천구가 이 건물을 미술관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하면서 오목한 미술관이 탄생했다. 붉은색 건물이 공원과 어울리지 않아 루버를 설치해 건물을 가렸다. 진한 색 루버 덕에 공원과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공모 때는 실내 놀이터, 화장실을 하나의 건물에서 소화하는 것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기존 화장실이 있어서 이를 리모델링하고 실내 놀이터를 키즈 카페로 바꿨다. 키즈 카페는 새로 건물을 지어 만들었고, 건물 외관을 회랑과 비슷한 분위기를 띠게 했다.
설계설명서의 마스터플랜 범례가 인상적이다. 공간의 용도를 적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어떤 공간에서 이용자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적었다.
민 기본계획도와 미스터플랜을 만들라는 공모 지침이 있었다. 기본계획도가 있는데 마스터플랜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마스터플랜은 대규모 공간이나 여러 단계로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도면이다. 오목공원 규모에는 맞지 않는 도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달리 해석해 도면을 풀어나갔다. 도시와의 관계, 즉 공원 주변까지 확장해 마스터플랜을 만든다는 의미로 접근해 이 공원에서 할 수 있는 100가지 행위를 뽑았다. 30년 동안 오목공원과 함께한 추억을 회상하고, 리모델링된 공원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등 공원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적어 내려갔다. 어떻게 보면 공원을 이렇게 사용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정 우리의 직업과 연관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 미루어 짐작하고 예상하는 게 설계를 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이런 과정이 설계에 반영되어 방문객들이 공간을 더 잘 이용할 수 있게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 도시에서 아무 목적 없이 편안하게 들렀다 갈 수 있는 공간이 공원이다. 다른 공간은 뚜렷한 목적이 있다. 길은 어디를 향해 걸어가는 곳이고, 음식점이나 카페는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는 곳이며, 영화관이나 공연장은 무언가를 보는 곳이다. 설계가는 사람들이 왜 공원을 찾는지 고민하고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시민들에겐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이 닿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의 마스터플랜은 왜 공원이 필요한지를 나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모 당시 다른 설계안들은 대부분 중앙을 부드러운 유선형 공간으로 설계했는데, ‘어반 퍼블릭 라운지’만 정사각형 회랑 디자인을 제안했다.
진 둥근 형태보다 사각형이 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원과 달리 중심에서 변 위의 한 지점에 이르는 길이가 각기 다르므로 사각형이 가진 분위기가 원보다 더 강하면서 부드럽다. 기존 공원에서는 원형 요소가 눈에 띄지만 자세히 보면 중앙과 주변 숲을 나눈 것은 직선의 산책로다. 이를 틀로 잡아 사각 모양을 도출했고 이 형태가 정사각형의 회랑까지 이어졌다.
정 공모에 참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박 소장이 사각형 회랑을 그린 도면을 보여주며 같이 공모에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설계안을 보며 기존 오목공원과 완전히 다른 풍경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네모이기에 설계하는 데 수월한 점이 많았다. 유선형 공간을 만들면 곡선이 생기는데, 이 곡선을 살려 건축물을 만들 경우 무리하게 설계해야 하는 부분이 발생한다. 사각형이어서 원보다 더 자연스럽게 설계할 수 있다.
주변 상업 시설의 유동 인구를 수용하기에는 공원의 규모가 작다. 많은 행위를 담으려면 공간이 입체적이어야 한다. 곡선에 벤치를 두면 빈 공간이 생기지만, 직선을 따라 벤치를 둘 수 있기에 쓸모없는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직선 덕분에 효율적이고 쓰임새가 많은 공간이 탄생했다.
공모 때 제안한 안과 완공된 공원을 비교해보니 회랑 2층을 사용하는 것과 회랑 사이의 수목이 잔디마당으로 옮겨진 점이 다르다.
진 공모에는 한 변 길이 40m, 폭 7.2m, 높이 3.8m의 정사각형 회랑을 제안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한 변의 길이는 짧아지고 폭은 더 넓어지고 높이는 낮아졌다. 지금의 회랑 모습과 비슷한 사례가 없어서 기차 플랫폼을 많이 참고했다. 설계 당시 대구를 자주 왔다갔다했다.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의 폭과 플랫폼들 사이의 폭을 걸음 수로 재보면서 공원에 어울리는 공간감을 찾았다. 사각형이라 맞은편 사람과 불편한 눈 맞춤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36m란 길이는 신기한 보호 거리를 만든다. 맞은편 사람의 성별 정도만 구분할 수 있을 뿐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당한 프라이버시 보호가 된다.
햇빛의 방향에 따라 그늘이 있는 곳이 달라지는데, 사각형이라서 하루 종일 그늘이 지거나 해만 드는 공간이 없다. 그늘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그늘 밑으로 의자를 들고 이동하면 된다. 나무 위치도 비슷한 원리를 적용해 햇빛이 회랑 어디까지 비추고 그늘이 어느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지는지에 따라 정했다.
정 회랑을 설치할 위치에 키가 큰 다섯 그루의 수목이 있었다. 회랑 지붕에 구멍을 만들어 수목을 보존하려니 나무 폭에 맞게 구멍을 뚫어야 하고, 지붕을 뚫고 나온 나뭇가지를 보호하는 난간을 만들어야 하는 등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 생겼다. 그런데 수목을 잔디마당으로 옮기자 문제가 쉽게 풀렸다. 잔디에 앉은 사람에게 그늘을 선사해주고 2층 산책로를 걷는 사람에게 눈높이에서 수목을 바라보는 경험을 제공해준다.
회랑을 완성하기까지 여러 문제에 부딪쳤을 것 같다.
정 수많은 문제에 직면했다. 회랑 2층이 공중 산책로로 바뀌면서 고민했던 부분은 기둥이다. 기둥의 굵기를 정하기 위해 거리에 설치된 전신주 둘레를 재보았다. 도시에 설치된 전신주의 굵기가 비슷한 줄 알았는데, 직접 확인해 보니 모두 크기와 굵기가 다르더라. 다양한 전신주 둘레를 회랑 기둥에 적용해 보며 회랑에 어울리는 기둥의 둘레를 시뮬레이션했다. 안정적이면서 회랑 높이와 폭의 비례와 맞는 기둥을 설치하고 싶었다. 하중을 견뎌야 하므로 재료도 신중하게 선택했다. 사용한 재료는 철골 기둥이다. 구조 계산으로 나온 기둥의 두께는 23mm인데, 설정한 기둥 사이즈에 맞는 철골을 찾을 수 없었다. 용접을 하지 않고 봉강에 열을 가해 가운데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심레스(seamless) 파이프에서 착안해 기둥을 제작했다. 용접으로 철골을 이어 붙이지 않고 하나하나 구부려가며 기둥 두께에 맞게 연결하고 속은 비워 단단한 기둥을 만들었다. 많은 고생을 했지만 원하는 모양대로 완성되어 뿌듯하다.
폭에 대한 고민도 깊었다. 박 소장이 나에게 준 미션이기도 했는데, 공중 산책로를 산책뿐 아니라 팝업 스토어가 운영되는 등 공간으로 기능하도록 하라는 제안이었다. 여러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폭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산책로를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길이로 만들고 여기에 여유 폭을 더했다. 이 여유 폭은 난간 밖으로 튀어나온 공간인데 난간에 발을 헛디뎌 추락할 위험을 줄인다. 이 공간을 비워두기보다는 화분을 두어 자연스럽게 공원과 어우러지게 하고 안정성까지 확보했다.
회랑 한가운데를 잔디마당으로 만들었다.
진 처음에는 여러 안을 고민했었다. 이곳을 가변형 공간이라고 생각하면서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회랑 어디서든 중정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고자 했고, 그래서 비워야겠다고 결정했다. 도시공원은 도심 속 숲이라 자연을 어느 정도 구현해야 한다. 그렇기에 공원에 나무를 가능한 한 많이 심어 녹지 공간으로 기능하게 해야 한다. 넓게 비워진 공간에 잔디를 깔았다. 잔디를 사용함으로써 녹지가 더해졌을 뿐 아니라 휴식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쓰임새가 많아진 것이다.
민 점심시간에 방문해 보니 직장인들이 회랑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담소를 나누기도 하지만 가만히 잔디를 바라보며 쉬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따라서 회랑에 앉아 잔디를 바라봤다. 푸른 잔디로 만든 빈 공간을 바라보는 것도 쉼이 된다는 걸 깨달았고 이런 휴식이 더 여유롭다고 느꼈다. 여러 프로그램으로 채워지는 빈 공간이지만 잔디 그 자체만으로 색다른 휴식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게 잔디가 가진 장점이지 않을까.
정 이 공간에 패턴을 더하고, 길을 만들었으면 공원과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잔디를 깔고 비워두어서 회랑과 그리고 공원과도 더 조화로울 수 있었다.
주로 잔디는 들어갈 수 없는 불가침 공간으로 여겨진다.
진 예전에는 잔디 관리가 어려워 들어가지 말라고 막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관리만 잘하면 잔디를 밟고 누울 수 있다. 잔디를 보식하고 보조제를 깔아서 잔디가 무게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끔 했다. 이곳에서는 잔디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중앙 잔디마당이 비가 오면 빗물을 저류해 수경관을 연출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실현되었나.
민 일시적으로 물을 모으려면 잔디마당의 중앙 지면을 낮춰야 한다. 물을 담을 수 있지만 배수 문제와 겹치게 되고, 잔디 생육 문제와도 연결된다. 잔디 생육을 위해 배수를 원활하게 하려면 잔디 중앙을 높여 가장자리로 물이 흐르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배수 문제도 있지만 잔디마당의 활용, 일시적인 수공간 연출을 위한 별도의 장치 마련, 유지·관리 방법 등 다양한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여러 사람과 논의한 끝에 아쉽지만 수공간 아이디어는 구현하지 않기로 했다.
정 가끔 상상한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잔디마당이 잠기면서 자그마한 호수가 생기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현재 상태에서 트렌치를 막고 방수 패드를 깔아 물을 담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회랑과 단차가 있으니 잠길 수 있을 것 같다. 상상은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실현되진 않을 테지만 잠시라도 도심 한복판에서 작은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건 낭만적일 것 같다.
공원 리모델링과 건축 리모델링에 차이가 있다면.
정 기술적 부분과 디테일 요소에선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똑같다. 설계란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경설계는 살아 있는 자연을 다루는 일이므로 건축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건축 리모델링은 페인트나 재료를 활용해 색을 바꾸고 기존 시설물을 없애거나 새로운 시설물로 교체하는 등 기술적 요소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데, 조경은 설계에 포함해야 할 요소가 많다. 회랑에 기존 나무를 보존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이때 나무는 설계의 방해 요소인 동시에 새로운 제안을 하는 기준이 되었다.
“로비가 서성이는 공간이라면, 라운지는 앉아서 떠드는 장소다. 공원은 일하러 오는 데가 아니다. 운동만 하는 곳도 아니다. 공원은 편하게 앉아 오래 머무르며 품위 있게 쉴 수 있는, 도시의 라운지(여야 한)다.” 박승진 소장이 어느 인터뷰(각주 1)에서 말한 내용인데, 오목공원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도시 라운지가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진 도시 라운지가 갖춰야 할 최소한 조건은 의자다. 오래 전 선유도공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벤치는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고 앉아 쉴 수 있는 시설이다. 당시 선유도공원이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았는데, 시민들이 의자를 원하는 곳으로 이리저리 옮기며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후 벤치가 모두 고정되었지만 잠시나마 시민들이 벤치를 자유롭게 활용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공원에 의자를 왜 붙박이로 해놔야 하는 지 의문을 가졌다. 오목공원을 설계할 때는 무조건 의자를 움직일 수 있게 할 것이라 마음먹었다.
라운지가 되려면 모여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의자, 특히 움직일 수 있는 의자다. 어느 공원을 가도 벤치는 한자리에서 내리쬐는 땡볕을 받아내고 비를 정통으로 맞기도 한다. 의자를 자율적으로 가지고 다니면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테이블도 같이 있어야 한다.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기도 하는데 테이블이 없으니 손에 들고 있거나 의자 사이에 두거나 땅에 놓기도 한다. 음식을 올려놓는 테이블이 필요하다.
정 최소한의 건축도 필요하다. 오목공원에는 실내 공간, 즉 실내 라운지를 조성해 공원의 쓰임을 풍요롭게 했다. 회랑 모서리에 실내 공간을 조성했다. 단순히 사방이 뚫린 통로로만 쓰이도록 비워 둘 수 있지만, 회랑에 작은 건축물을 더해 식물·책·그림 쉼터로 활용하면서 공간의 쓰임새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제 오목공원은 설계가의 손을 떠나 시민의 품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공원을 이용하기를 바라는가.
정 2차 공사를 하면서 본 방문객의 표정이 기억난다. 의자와 테이블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이리저리 옮겨가며 이용했다. 망설이던 표정이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공간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원을 자신의 아지트처럼 이용하면 좋겠다.
민 1차 개장하고 시민들이 자신의 집 마당에 들어온 기분이라 이야기했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고 그곳에서 캠핑하고 파티를 한다. 그런 행위를 이 공원에서도 할 수 있으니 더 좋은 반응이 나온 것 같다. 앉아 있는 동안은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면서 편안하게 공원을 대하면 좋겠다.
진 작년 가을 중정에서 버스킹, 오케스트라 연주 등 콘서트가 개최됐다.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마르쉐 농부 시장이 열린다. 처음부터 이렇게 활용되기를 염두에 두고 공간을 만들었는데, 실제로 잘 쓰이는 모습을 보니 보람을 느낀다. 디자인 팽선민
**각주 정리
1. 배정한, “오래 머무르는 공원, 도시의 라운지”, 「한겨례」 2023년 09월 24일.
글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사진 유청오
공원 설계 총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박승진)
조경 설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박승진, 최상민, 오지훈, 고희선, 김희서)
건축 설계(회랑, 실내 놀이터, 미술관, 관리실 리모델링) 모스건축사사무소(김희정, 정다현, 최찰, 이제현)
경관 조명 설계 이온에스엘디
전기 통신 설계 코담기술단
사이니지·회랑 실내 가구 설계 및 제작 마음 스튜디오(maumstudio)
실내 놀이터 구상 및 기획 설계 조경작업소 울
조경 시공 신성종합조경
회랑 시공 퍼스트종합건설
미술관 및 관리실 리모델링 웅산건설산업
실내 놀이터 건축 시공 새강종합건설
실내 놀이터 시설 설계 및 시공 아이땅
공사 감독 서울시설공단
발주 서울시 양천구청 공원녹지과
위치 서울시 양천구 목1동 921번지
면적 21,470m2
완공 2023. 12.
디자인 스튜디오 loci는 작은 설계 회사다. 푸른 별 지구, 우리가 사는 곳곳, 자연과 도시와 정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통의동 브릭웰 정원, 오목공원 리노베이션 등 사람과 자연을 잇는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박승진은 경관, 도시, 정원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대표소장이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를 거쳐 우리나라 1세대 조경설계 사무실인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했다. 워커힐호텔, 서울아산병원,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7년에 현재의 사무실을 열어 풀무원 물의 정원,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강릉 시마크호텔, 아모레퍼시픽의 기술연구원 및 오산 뷰티캠퍼스,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통의동 브릭웰정원, 대구 미래농원(mrnw) 등을 설계했다.
최상민은 단국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다. 조경설계사무소 디자인엘을 거쳐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으로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람이 자연을 경험하는 방식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통의동 브릭웰정원, 대구 미래농원(mrnw), 북촌 설화수의 집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김희정은 조성룡도시건축과 희림건축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2012년 스튜디오 유비에이씨(studio ubac)로 시작해 현재 모스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대표소장이다. 경주 금관총 보존전시 공간, 양양 기사 문항 어촌 뉴딜사업, 자양동 한국야쿠르트 사옥, 세계유산 축전 수원화성 파빌리온, 성북동 한양 도성길 순성쉼터, 제물포역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도시재생 가이드라인 수립, 남해 상주초등학교 나무로 만든 비밀기지 프로젝트 등 문화, 도시, 건축 그리고 일상에까지 이르는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구획된 분야와 장소의 경계를 넘나들며 건축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