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사보아의 옥상정원
옥상정원, 조경의 동네에서는 새롭지도 않은 주제인데, 80여 년 전에 지어진 건축가의 옥상정원이라 얼핏 보니 참으로 심심하기 그지없다. 바닥포장의 패턴도 영 허전하기만 하고 도입된 시설물(?)이라 해봐야 화단 두 개와 테이블 한 개가 고작이다. 모더니즘건축의 대가라더니 건축에만 신경을 썼는지 조경은 영 심심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벌 막스(Burle Marx)의 옥상정원이나, 비교적 최근의 것으로 켄 스미스(Ken Smith)의 MOMA옥상정원이 조경의 모더니즘을 더욱 잘 설명할 것만 같다. 예술로서 조경의 모더니즘, 추상의 재현이라는 주제는 흥미롭지만 디자인에서 과연 그것만이 전부일까? 이번에도 변함없이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자.
사진 2를 보자. 건물의 서측에서 옥상정원을 향해 찍은 것이다. 2층의 새하얀 벽면의 개구부, 저 너머에 옥상정원이 위치한다. 헌데, 저 개구부 사이로 보이는 기둥들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다른 것들에 비해 두께(직경)가 절반에 가깝게 가늘어져 있다. 이유는 뭘까?
예상답변1. 그렇게 하는 것이 어느 편에서 보나 경쾌해 보이고, 또한 비례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가능한 답변이다. 그런데 그 경쾌함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 누구의 감각이며 또한 단순히 비례적으로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과연 어디로부터, 누구로부터 나온 이야기인가? 어쩌면 사람에 따라서는 기둥두께가 동일하게 두툼한 것이 오히려 ‘비례적으로 안정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설계라는 것이 감각의 제국이 아닐진대 비례감, 조화감, 경쾌함 등의 형용언어로 정답을 대신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예상답변 2. 그렇다면 ‘구조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이 기둥들은 더 이상 상부의 하중을 지탱할 필요가 없으므로 아래층의 것들보다 가늘어져도 되기 때문이다.’ 라는 대답은 어떠한지?
역시 가능한 대답이다. 그런데 이 역시 “그렇다면 구태여 왜 가늘어져야 하느냐?”라는 첫 번째 질문을 또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답을 찾는 와중에서 이처럼 우왕좌왕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충분한 사유를 거치지 않고 성급한 마음에 그때그때의 감상에 의지하려는 습관 때문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우리의 작품읽기가 자칫 먼 나라 이웃나라의 어설픈 나의문화유산 답사기가 되지 않으려면 일단 질문에 대한 성급한 대답은 최대한 뒤로 유보하고, 작품에서 드러나는 요소들의 속성에 집중하여 부분이 전체 안에서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그 형편으로 있어야만 하는 이른바 ‘구조적인 이유’를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위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와중에 자연스레 ‘구조적인 관계’안에서 ‘발견’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작품이 스스로 말을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