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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올해의 조경인-산업분야: 김경윤(제15대 (사)한국조경사회 회장, (주)한림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전통과 비전 제시, 과거 현재 미래 조화와전례 없는 성대한 30주년 기념식으로 호평 일색"
“아주 오래전 성직자를 꿈꾸던 적이 있었습니다. 신앙은 일상적인 삶 속에 있고, 또한 먼 미래를 바라본다는 의미에서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그러나, 그 길은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걸 알았습니다. 내 능력의 부족함과 자격이 없음을 인정했죠.”
마치 신 앞에 선 인간처럼 자신이 한참 작은 존재임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항상 겸허하고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서인지, 이번 올해의 조경인상 산업부문 수상자인 김경윤 회장((사)한국조경사회)은 선배 조경가에 대한 존경과 올 한해 함께 일을 해준 조경사회 임원진에 대한 감사의 말로 수상 소감의 대부분을 채웠다. 앞선 조경 1세대들의 헌신에 감사하고, 특히 살신성인의 자세로 올 한해 함께 일해 준 조경사회 일꾼들 덕에 상을 받게 된 것이라고.“현직에 있으면서 이런 상을 타도 되나 싶었는데, 이번 수상자 명단을 보니 많이 부끄럽지는 않겠구나 싶었어요.” 그는 재밌는 심경을 담아 말문을 열었다. 그간 한국조경사회의 회장으로서 남들에게 상을 주는 일은 많이 해보았는데, 반대로 상을 받는 입장이 되니 처음엔 너무 미안하고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몰랐단다. 그래도 이번 수상자 명단에 현직 단체장님이 함께 올라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면서 활짝 웃어보였다.김경윤 회장은 잠시 성직자의 길을 꿈꾸긴 했지만,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조경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서울시립대 조경학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종합조경(주)에 입사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1988년 10월 (주)한림환경 엔지니어링으로옮긴뒤, 1997년 4월부터 현재까지는 (주)한림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오랜 세월동안 조경설계 실무분야의 최일선을 묵묵히 지켜왔다.초창기 조경업계의 현실에 대해 묻자“절로 사명감이 생기던 때”라고 회고했는데, 개인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당시에는 너 나 가릴 것이 없었고, 아직은 조경시장이 많이 발전해야지.”라는 마음이 더 컸다고. 이번 수상도 재임기간 동안 추진한 여러 사업과 업적에 더해서 기꺼이 조경분야의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그의 사명감이 인정을 받은 결과였으리라.
한국조경사회 30주년 기념행사 성료너무나 많은 업적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를 받은 것은“한국조경사회 30주년”행사였다. 올해로 한국조경사회가 30주년을 맞게 되면서 그에 걸맞는 기념행사를 치루기 위한 회장 및 임원진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규모도 그렇지만 내용적으로도 과거 30년과 미래 30년의 역사와 비전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행사가 되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전례 없는 인력 및 물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실제로도 창립 30주년 기념식, 기자간담회, 로고 및 슬로건 공모전, 대한민국 조경박람회, 창립 30주년 심포지엄, 공공기관 조경기술 세미나,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 심포지엄, 한중일 세미나, 한중일 설계작품 전시회, 조경가 오휘영 회고전-한국근대조경 태동기의 기록, 명사기증 바자회 등등 매우 다채롭고 성대하게 치루어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다. 특히 이번 기념식에 맞춰 지난 30년의 자료들을 모아 방대한 분량의 기념집을 발간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로서, 이는 두고두고 소중한 자료로 남을 것이다.김경윤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어렵지 않은 행사가 하나도 없었다”며, 기념집과 설계작품집이 간신히 행사일에 맞춰 발간된 일, 한중일 설계작품전에 전시할 중국 작품에 문제가 생겨 마지막까지 전시장을 세팅하는데 애를 먹었던 일, 매일 열렸던 심포지엄과 세미나 일정으로 회사보다는 행사장으로 출퇴근을 했던 일 등 아슬아슬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사고가 없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정말 행사가 잘 되었다”며 많은 이들의 호평 속에 행사를 마치게 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특히 “조경사회 부회장님들과 분과장님들의 헌신적인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 기회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했다.
도시공원법 개악 저지, 조경기본법 제정 진척작년과 올해는 조경관련 법 제정 및 개정에 대한 이슈가 많았다. 이러한 법·제도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조경인들의 이해를 잘 대변해 왔던 것도 성과로 꼽힌다. 우선 올해 초에 조경기본법이 국회에 상정이 되었는데, 이는 조경인들의 관심이 매우 높은 사안이었다. 조경기본법 제정은 조경학회 등 관련 단체들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으로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왔으나, 올해에는 국회에 법안이 상정되면서 실질적인 진척을 이루게 된 것이다. 또한 조경을 하부공정으로 몰아간 건축기본법과 자연환경보전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관련 기관이나 단체들과 지속적으로 공조해 온 것도 시의적절한 대응이라는 평가이다. 무엇보다 도시공원위원회의 폐지를 골자로 하는 도시공원법 개정(안)을 서울특별시와 공조체제를 구축하여 저지시킴으로써 위원회의 존치를 이끌어 낸 것은 확실한 리더십을 발휘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조경문화의 대중화, 전문영역의 확대김경윤 회장은 평소‘조경문화의 대중화’와‘전문영역의 확대’가 우리 분야의 당면 과제라는 생각을 해 왔는데, 그러한 소신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조경의 대중화를 위해 모든 행사마다 대외 홍보를 강화하였는데, 30주년 기념행사 때 기자간담회를 최초로 개최한 것은 좋은 사례이다. 또한 정원문화가 조경과 대중이 만나는 중요한 키워드라는 생각으로 경기정원문화박람회를 적극 지원하고, 인천시와는 2011 조경전람회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정원박람회와 가든쇼가 일반화되어 전국민의 조경인화를 이루는 것이 조경의 대중화를 위해 좋은 전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전문영역의 확대를 위해서 경관분과, 감리분과, 시설분과 등 3개의 분과를 신설하는 조직정비를 하였다. 이를 통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경관 업무를 지원하고, 전문영역으로서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는 여러 조경감리인들의 요구를 반영하고자 노력했는데, 세미나 등 관련 행사에 기대 이상의 참여와 반응을 보여주어 큰 보람을 느꼈다. 그 외에도 조경실무아카데미 개최, 지회설립 추진, 라오스 희망어린이놀이터 조성 등 발전적인 많은 사업들이 완료되거나 진척이 되었다.
미래는 조경인의 것“미래도시 하면 보통 최첨단 하이테크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세계의 전 도시가 그리노폴리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조경인들의 것입니다.”그는 당장 어려운 조경분야의 현실을 놓고 곧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궁극적으로 미래는 조경인들의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인터뷰 말미까지도 그의 희망사항은 여전히 조경분야의 성장과 발전에 관한 것이었다. 이렇게 항상 조경분야의 비상을 꿈꾸어 온 그에게 이번 상이 얼마나 큰 보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조경분야가 당신의 노고를 알고 있고, 또한 지지하고 있다는 힘찬 응원의 메시지는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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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올해의 조경인-학술분야: 조세환(제19대 (사)한국조경학회 회장,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
"통섭과 융합을 통한 조경정체성 확립으로제도권 속 조경분야 육성위한 기틀 마련해"
“올 한 해 동안 한국조경학회 회장으로서 바쁘게 움직여 오고, 그 가운데 자연스럽게 학술관련 일을 수행한 것 뿐 인데, 영예로운 수상소식이 기쁘기도 하지만 그래서 한편으로 민망하기도 합니다.” 2010년을 누구보다 바쁘게 보냈던 조세환 교수는 (사)한국조경학회 회장이란 책무를 다했을 뿐이었단 말로 수상소감을 대신하며, 그를 추천해준 모든 분과 조경인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그동안의 공적을 낮추는 조세환 교수이지만, 학회장을 맡으며, 그가 보여준 진취성과 실천력은 조경분야의 그 누구보다도 빛났다. 2009, 2010년 화두였던 ‘조경정체성’, ‘통섭’, ‘융합’의 키워드를 조경분야의 중심으로 끌어온 당사자가 바로 조교수였으며, 2010년 한국계획관련학회장 연석회의를 주도하며 인접분야와의 소통을 실천한 것도 바로 그이다. 최근엔 대한민국 조경문화제를 성공리에 개최하며 화합과 새로운 도전의 미래를 보여주었다.조세환 교수는 앞선 그의 행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동안 조경 정체성 찾기를 시작으로 융합, 통섭, 화합 등을 키워드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사업들은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시금 작업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그가 말하는 ‘중요한 목표’란 과연 무엇일까? 조세환 교수는 조경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자신의 소신을 밝히며 그 ‘중요한 목표’를 향해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조경의 정체성 확립“나의 이름을 스스로 불러보며 자각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체성이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정확히 불러주고, 인정해야지 바로 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조경분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다른 의미로 ‘관계를 맺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조세환 교수이다. 결국 그가 강조했던 조경정체성 찾기는 조경의 학술적 성격과 내용 등 내부적 정리만이 아니라 분야 안팎을 넘나드는 소통과 협력까지 아우르고자 했던 것이다.인접분야 및 관련 기관과의 교류에 주력했던 것 역시 ‘조경정체성 찾기’가 배경이라는 게 조교수의 설명이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결국 ‘한국계획관련학회장 연석회의’라는 협의체 구성과 국토해양부 녹색도시과 등과의 소통이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 기폭제가 되었다.‘한국계획관련학회장 연석회의’는 계획관련 9개 학회 회장단의 분기별 정기모임이다. 현재까지는 공동심포지엄 개최와 서적발간에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앞으로 다양한 계획관련 공동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조 교수는 밝혔다. 그 첫 단추를 끼운 것이 지난 9월에 ‘21세기 미래도시의 지역지구제’란 주제로 개최된 공동심포지엄이었고, 이것을 통해 앞으로 본격적인 협력의 기틀이 마련 될 것이라고 한다.
융합, 통섭, 협업지난해 한국조경학회와 국토·도시계획학회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제안경쟁으로 당선된 ‘용산공원종합정비계획’, 그리고 국토연구원과 컨소시엄을 맺었던 ‘저탄소 녹색성장 공원조성 및 관리전략’의 낙찰역시 인접분야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한 조경정체성사업의 연장선상에 있다.전자는 최초의 국가도시공원이라는 상징성 강한 ‘용산공원’의 공원계획 연구용역을 한국조경학회가 수주함으로써 ‘공원’ 프로젝트에 대한 조경 전문분야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된 의미 있는 사건이다.올해 국토해양부에서 발주한 ‘저탄소 녹색성장 공원조성 및 관리전략’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 역시 공원이 조경분야의 확실한 업무영역임을 중앙정부로부터 인정받은 근거로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연구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앞으로 쏟아져 나올 녹색성장 차원의 저탄소 공원 리모델링 사업에서 조경분야가 주도권을 잡고 참여할 수 있는 시발점을 한국조경학회가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새길 수 있다.조세환 교수를 위시한 한국조경학회가 성취한 두 프로젝트는 인접분야와의 연대를 통해 조경분야의 역할을 국가기관을 통해 인정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함축적으로 ‘조경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실천적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과 조경의 확장조세환 교수는 한양대 도시대학원에 국내 최초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전공을 개설함으로써 국내에 관련 학문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장본인이다. “학문적 차원을 넘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갖는 현실적 의의는 무엇보다 우리 조경분야의 영역을 거시적으로 확산시키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조세환 교수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란 실천 전략과 수단은 도시적 차원으로 조경의 범주를 넓히는 하나의 비전이라 내다본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천에 있어서 생태적으로 작동되는 도시를 위한 그린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도시계획 등 인접분야의 협력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대한민국 조경문화제 기간 중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 큰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조경의 도시로의 확산을 위한 도시계획분야와의 협력체계 구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반대로 우리 조경분야가 도시계획 분야의 새로운 변화를 유발시키는데 일조를 하는 것이 됩니다. 바로 분야 간 협력을 통한 새로운 가치창출 모델이 되는 것이지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통한 인접분야의 소통은 비록 언어로서 다른 형태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하나라고 말하는 조세환 교수다.그동안 협업과 통섭을 주창했던 그의 목소리가 하나의 흐름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모든 것은 조경기본법을 향한다도입부에서 조세환 교수가 언급했던‘중요한 목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조경기본법 제정’이다. 처음 그는 나무를 심는 것만을 조경의 전부로 인식하는 대중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한다.동시에 조경에서 하던 일이 법적으로 건축, 임학의 일로 유출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형세를 체감하면서 제도적 차원에서 조경분야의 자리매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법과 중복되지 않는 조경의 또 다른 영역을 찾기 위해 ‘조경정체성’을 화두로 내세우게 되었고, 수석부회장 시절부터 주도해온 각종 심포지엄 개최와 함께 최근의 도시조경기본계획, 도시용도지역지구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등에 관한 각종 심포지엄을 주관하였으며, 중앙정부 관계관과 해당 국회의원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조세환 교수의 이와 같은 행보는 조경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영역을 찾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고 수단이었던 것이다.인터뷰를 마치며, 조세환 교수는 “기회는 찾는 사람에게만 다가온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면 언젠가 기회는 열리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앞으로 조경기본법 관련 공청회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경기본법 제정에 대한 설명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그이다. 그러나 자신이 걷는 지금 이 길이 조경인 모두의 권익과 위상을 끌어올리는데 기여를 하게 된다면 그것 역시 본인에게 부여된 기회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조교수는 웃으면서 말했다. 한국조경학회장이라는 책임을 넘어 조경분야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소명의식을 그의 말과 실천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환경과조경이 선정한 올해의 조경인 조세환 교수를 만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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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조경인 첫 해외봉사활동 성공적 성과(1)
라오스 ‘희망놀이터’기부사업여성조경인들의 구심점 ‘LAWN’(사)한국조경사회에는 여성조경인들의 모임인 여성분과위원회가 있으며, 이 분과위원회에서는 변금옥 위원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성분과위원회는 오래전부터 의미 있는 사업의 진행을 논의해 오던 중, LAWN(Landscape Architects Women’s Network : 점차 증가하고 있는 여성조경가들의 사회활동을 위해 네트워크를 형성, 서로간 힘이 되는 정보의 공유를 위해 결성된 소모임)을 중심으로 획기적인 사업을 기획, 추진하게 되었다. 즉, '우리들이 지닌 능력으로 보다 보람있는 일을 실행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높인다.’는 취지와 함께 라오스에 어린이놀이터를 조성, 기부하는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채선엽 한국조경사회 부회장과 변금옥 여성분과위원장 등이 참여했던 지난 7월 5일 LAWN의 모임에서 이 사업의 시행여부를 결정하였고, 놀이시설물 업체의 기증과 여성분과의 모금,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재원마련 등에 대한 논의와 함께 자발적인 기금 출현이 이루어졌다. 놀이터의 이름은 ‘희망놀이터’로 명명했다.
두 여성조경가의 의기투합‘메콩강변 종합개발사업’의 조경설계를 담당했던 (주)이산의 변금옥 전무와 박기숙 이사는 공원 내에 어린이 놀이시설물이 유명무실하게 되자 무척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한 달 이상 현지에서 진행된 현장조사와 자료수집 과정 중에 알게 된 라오스의 현실 때문이었다. 라오스의 공식명칭은 라오 인민민주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다. 국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은 사회주의 체제의 나라로서 인구는 약 670만 정도이며,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는 약 53만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이곳 현지인들의 평균수명이 약 56세 정도라고 하니 삶의 질에 있어서 우리와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영아사망률 또한 높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 놀이 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라오스 내에서 비교적 시설이 좋다고 하는 국제학교에도 그네와 시소 등 단순 놀이시설 몇 개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변금옥, 박기숙 두 여성조경가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창의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놀이환경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이러한 노력이 반영되지 못하고 유명무실하게 되자 아쉬움이 컸다. 라오스의 어린이 놀이 환경 개선에 일조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사라지자 어린이를 보듬는 마음으로 색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우리가 만들 수는 없을까?”현재 놀이터 기부사업의 부단장을 맡고 있는 (주)이산의 변금옥 전무는 다년간 여성분과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여성회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추진할 방안을 찾고 있었다. 기부사업은 기부금을 모은 후에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으나, 우연한 기회가 또 다른 좋은 계기를 부여할 수도 있다. 메콩강변의 ‘희망놀이터 기부사업’은 후자로 여겨진다. 사라질 위기에 있는 놀이터 되살리기 작업을 위해 추진력 있는 두 여성조경가는 ‘희망놀이터 기부사업’을 신속하고도 과감하게 기획하여, 여성분과위원회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 오늘의 성과를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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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주민 참여로 완성한 도시 내 공공정원, 새로운 도시 정원 문화를 꿈꾸다
점점 척박해져가는 도시 환경 속에서 녹지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이때, 오랜 인류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 자연을 보다 가까이 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 함축된 정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비록 작긴 하지만 아파트 베란다 한켠에 꾸며 놓은 소박한 정원이 바로 그러한 예. 이렇듯 메마른 도시의 일상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정원이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된 곳이 있다. 바로 지난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경기도 시흥시 옥구공원에서 개최된 “2010 경기정원문화박람회” 현장이다.경기도와 시흥시가 주최하고 경기농림진흥재단이 주관한 이번 박람회는 ‘도시, 정원을 꿈꾸다’란 주제로 다양한 정원들이 선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경기정원문화박람회는 도시 정원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국내 최초의 시민참여형 공원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 일례로 행사 이후 모든 시설물이 철거되는 여타 박람회와 달리 행사를 위해 가꾼 정원과 시설물을 그대로 존치시켜 공원의 인프라로 활용하고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점이 그러하다.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정원박람회가 아닌 ‘정원문화박람회’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도 일회성 정원 축제가 아닌 새로운 도시정원 문화를 제시하고 확산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도시 정원문화’를 표방한 경기정원문화박람회의 특징은 ‘주민참여로 완성된공공정원’, ‘기업의 나눔문화 실천의 장’, ‘지역 축제를 통한 공원 리모델링’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 중 첫 번째 주민참여는 이번 박람회의 핵심가치. 공원 안에 시민들이 직접 정원을 디자인하고 디딤돌을 놓으며 꽃과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가꿈으로써 낙후된 공원이 더 이상 주인 없이 방치된 공간이 아닌 도시의 공공 정원으로, 또한 시민 모두가 애착을 갖는 공공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둘째는 주민참여 방안의 하나로 기업들의 자발적인 나눔문화의 실천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기부문화가 크게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이나 지역 업체들이 공원에 정원을 조성하여 기부한 점은 앞으로 공공 정원의 조성 활성화에 있어서 모범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이번 박람회를 통해 도시의 중요한 그린 인프라인 공원이 리모델링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브랜드 가치 상승 및 재생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점이다. 이번 박람회 개최지인 시흥시 옥구공원은 1999년 공공근로로 완성된 뜻깊은 공간이지만 완공 이후 여러 해가 지나면서 시설이 낙후되어 시민들이 애착을 갖고 이용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점이 있었다. 또한 그동안 시화호와 시화산업단지로 인해 열악한 환경의 대명사로 꼽히던 시흥시는 시 전체 면적의 70% 이상이 개발제한구역(Green Belt)으로 묶여 있어 상대적 개발 지연이라는 불편을 겪어 왔으나 이번 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친환경 생태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높은 지가와 대상지의 부족으로 도심 내 신규 공원 조성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원 조성을 통한 옥구공원의 리모델링 사례는 다른 지자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새롭게 단장된 공원 내에는 국내 최초의 정원박람회인 만큼 국내 최고의 조경 전문가들이 참여한 ‘모델정원’, 조경 관련학과 대학생 및 교수들의 자유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인‘실험정원’, 시민들이 직접 자신이 가꾸고픈 정원을 선보인‘시민정원’, 정원문화 확산에 기여하고자 기업들이 나눔문화를 실천한 ‘참여정원’ 등 다양한 유형을 총망라한 정원들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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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김해시 도시경관 디자인 작품 공모전
역사와 문화가 함께하는 김해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기대되경남 김해시는 전국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도시경관 향상을 위한 정비방안을 모색하고 도시의 정체성, 쾌적성, 환경성을 정립하기 위해 ‘제8회 김해시 도시경관 디자인 작품 공모전’을 실시하였다. 작품의 주제는 자유주제와 지정주제로 나누어지는데, 자유과제의 경우 ‘테마거리 가로환경 조성방안’과 ‘테마공원 계획안’이며, 지정주제의 경우 ‘김해시내 가로환경시설물 디자인(안)’과 ‘진입상징조형물 조성방안(부원동 986번지 일대)’등이다. 전문가로 구성된 경관심사위원회는 심사 결과, 동국대 조경학과에서 제출한 “해동아, 어데가노?”를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 작품은 외동 해반천과 버스터미널의 자연스러운 연계와 김해시 내 관광명소들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김해의 새 이미지를 만들어주었다. _ 편집자주
대상해동아 어데가노? 오준환, 권대근, 김진현, 이상아, 김미영(동국대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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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도시경관 디자인 작품 공모전
통영의 역사성을 반영한 도시경관의 발굴경상남도 통영시는 문화예술의 도시 통영의 주변 환경과 조화되고 역사성이 반영된 도시경관모델의 발굴을 위해 전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통영시 도시경관 디자인 작품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주제는 ‘충렬사 경내 및 주변부지 경관디자인’으로 지난 9월 8일 수상작이 선정되었다. 이에 본지에서는 대상을 소개한다. _편집자주
대상統營통영을 다시 걷다 이종회, 홍동기(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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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을 말하다(3)
디자인 文化의 시대, 조경을 넘어태풍 곤파스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었던 충남과 인천의 해안 수림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곳곳에서 소나무 기둥이 부러지고, 뿌리가 깊지 않은 활엽수림은 힘없이 쓰러져 밑둥을 드러냈다. 비교적 해안에 가까운 아파트 단지 내 조경수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오래전에 지은 판상형 고층 아파트 단지 내 수목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빌딩풍 영향으로 특히 피해가 컸다.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사회의 단면이 드러난 것이다. 서해안 소나무 군락지의 심각할 정도의 피해상황을 접하면서 조림사업 이후 허술한 관리로 인한 피해가 특히 컸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고, 평소 바람 피해가 미미했던 인천 등지에서의 경관 숲 조성에 있어서도 재해안전망을 위한 보다 치밀한 계획이 수반되지 않은 채 미관지향의 식재가 되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곤파스가 할퀴고 간 도심 아파트 단지 내 조경공간은 군데군데 부러지고, 자빠진 나무를 잘라 낸 뒤 생겨난 빈자리로 인해 공간의 숨통이 트였다는 인상을 깊이 받았다. 종전까지는 바람에 찢기고, 맥없이 쓰러진 나무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는데 어느 정도 보수가 된 후 지금은 정반대의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자연재해라기보다는 과학적이지 못한 단지계획과 방만한 조경 식재와 관리시스템에 대한 자연치유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곤파스로 인한 막대한 피해의 여파가 생활경제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종래의 도시조경을 새로이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교훈이 적지 않다.
조경분야가 디자인 지향형의 발전을 거듭해오면서 도시 내 경관을 규정짓는 중요한 장르로 급부상했다. 현대 조경사에 남을만한 의미 있는 공원설계와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 내 조경 디자인의 괄목할만한 성장으로 말미암아 적어도 외부 공간에서 만나는 조경의 실재로 인해 그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삶의 질에 변화가 생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때 한평공원 조성을 범시민운동 차원에서 보급에 앞장섰던 도시연대와 같은 단체의 노력도 배가되어 우리가 사는 도시 곳곳의 버려진 구석구석까지 새로운 생명공간으로 회복된 사례를 보았다. 이 같은 변화의 긍정적 효과로 조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도시민들에게 싹텄고, 어느덧 조경의 질이 삶의 질을 담보한다는 가치 발견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배면에는 건축과 조경의 절묘한 배합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건축의 내·외부 공간을 완성시키는 조경의 시선은 단순 시각적 장치를 넘어서 공간의 성격을 좌우하는 주연의 자리를 차지한다. 조경된 공간은 그곳을 중심으로 실내외 각급의 공간이 관계를 맺게끔 프로그램화 되면서 건축동선의 순환을 조장함과 동시에 건축된 공간의 상호 간섭을 돕는 투명성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그로써 건축과 조경의 경계는 사라지고 네트워크가 강조된 공간을 생성시킨다. 지난 10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조경은 건축과 도시를 완성시키는 수단이자 디자인 이슈로 자리매김하였다. 조경가에 대한 사회적 지위도 한층 강화되었고, 조경이 문화의 큰 축을 담당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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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의 식물이야기(7): 고대 약용식물 이야기 3, 세종대왕 편
세종대왕의 유산세종대왕의 업적 중 거대한 두 개의 산맥은 한글창제와 탁월한 과학기술적 성과일 것이다. 이 두 산맥이 하도 크고 높기 때문에 그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나머지 업적들도 대단한 것들이다. 국토의 확장을 통해 국력을 신장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고 이를 위해 화기개발에 힘썼으며 성의 수축, 병선 개량, 병서 간행 등 국방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이 밖에도 아악을 정리하고 금속 화폐인 조선통보를 주조했으며 불서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단군사당을 세워 국가의 근본을 확실히 했다. 그는 심지어 처용가의 곡절을 참작하여 가사(歌辭)를 개찬하여 봉황음(鳳凰吟)이라 이름하며, 조정의의 정악(正樂)으로 삼았다고 하니 가무에도 관심과 조예가 깊었음을 말해준다.이렇게 다방면에 조예가 깊던 세종대왕이었으나 정원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나보다. 만약 관심을 두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집현전 학자들을 시켜 조원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게 했을 것이다. 물론 조원 관련 관직과 교육제도를 마련하고, 조원용 소재의 생산과 수급 체계도 확실히 자리 잡아 놓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건 대왕이 다른 분야에서 보여준 철저함으로 미루어 보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자취는 아쉽게도 아직 찾아지지 않는다.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관심이 없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니다. 위의 방대한 사료들을 제대로 정리하다 보면 조원에 관한 자료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많은 학자들이 나름대로 각기 전문분야의 세종 업적을 연구하고 있지만 그 학자들 자신이 조원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정리하는 과정에서 간과했을 확률도 없지 않다. 우리가 해야 하는 작업일 것이다.그러나 만약 세종대왕이 조원에 대한 체계를 잡았다한들 지금 우리 조경계가 달라졌을까?전통이 모자라기 때문에 맥락이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고 보면 그것도 해답은 되지 못한다. 사실 세종의 업적 중 한글창제만이 역사의 소용돌이를 뛰어넘어 존속하였을 뿐이다. 그 외의 것은, 특히 15세기에 이미 유럽을 능가했던 과학기술은 그 맥을 제대로 이어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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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따라 밟아본 삼국지 유적과 경관(8)
봉추선생 방통이 젊은 나이에 죽은 면죽 낙봉파낙봉파는 사천성 면죽(綿竹)을 지나 산길로 20킬로미터 들어간 곳에 있다. 이곳에는 방통묘뿐 아니라 백마파, 백마관, 방통사 등이 있다. 인근 계곡에 낙봉파 표석을 세웠고 그 옆 죽은 자리에 혈묘를 자그마하게 만들었다. 백마관(白馬關)은 본래 한나라 때부터 군사요충지로 성도와 농서 사이를 잇는 고역도(古驛道)였다. 본래 산 이름을 따서 녹두관(鹿頭關)이었으나 방통이 탔던 백마 이름을 따라 바뀌었다. 방통묘는 다른 묘와 달리 돌로 견고하게 만들었다. 큰 공적도 못 세우고 젊어서 죽은 방통에게는 과분한 것 같았다. 묘 앞에는 방통을 죽게 한 백마모형을 만들어 놓아 방통의 한을 기리게 했다. 방통사(龐統祠)는 두 채로 되어 있는데 앞의 용봉이사전은 제갈량과 방통을 같이 모셨고 뒤의 서봉전은 방통만 모셨다. 중간에 작은 사당이 있어 장비가 버티고 앉아 있는데 이렇게 장비는 어디서나 친근하고 애교스런 표정을 띠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통에 관련되는 여러 비석을 모아 놓은 봉추 비랑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100미터쯤 가면 낙봉파가 나오고 그 언덕에 방통이 피를 뿌리며 죽은 자리에 혈묘(血墓)가 있다. 묘 바로 옆에 우리와 여행을 같이 한 전한중박물관장 서홍조(徐鴻藻) 씨가 설명하고 있다. 그는 삼국지에 정통한 중국인 학자로서 성도에서 한중까지 소위 ‘고촉도(古蜀道)’를 여행하는 동안 우리에게 많은 유적 현장을 안내했다. 마지막으로 작은 골짜기에 ‘낙봉파’라는 비석이 서 있다. 자그마한 언덕일 뿐이어서 삼국지를 읽으며 심산유곡의 험난한 골짜기를 상상했던 우리에게는 실망만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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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
Geoncheonggung건청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경복궁 내 위치하며, 면적은 3,300㎡로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이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궁집으로, 구한말 신문화를 적용한 장소이자, 명성황후 시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의 무대였으며, 한국근대사를 이해하는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 경내와 그 주변에는 장안당, 추수부용루, 곤녕합, 옥호루, 사시향루, 집옥재, 향원정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造營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내 위치한 건청궁은 구한말 신문화를 적용한 장소이자, 명성황후 시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의 무대였으며, 한국근대사를 이해하는 역사적 상징성이 매우 크다. 실제 고종 10년(1873) 경복궁 중건을 마무리하면서 국가 재정이 아닌 내탕금(왕의 사비)을 들여 궁궐 안의 가장 깊숙한 곳에 또 하나의 “궁”을 짓기 시작하였다. 고종은 1884년부터 이곳에서 기거하면서 정무를 처리하였다. 또한 고종이 인근에 서재 용도로 지은 집옥재(集玉齎)는 전통 한옥이 아닌 중국식 벽돌로 지어졌으며, 집옥재 옆에는 전통 시계인 자격루 대신 서양식 시계탑이 세워졌다. 또한 건청궁 내 장안당 뒤쪽의 관문각은 외국 외교관들을 접대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는데, 완전한 서양식 건물로 지어져 양관(洋官)이라고도 불렀다. 이후 1887년에는 건청궁 내 조선 최초로 전등이 설치되었는데, 이는 중국이나 일본의 궁정 설비보다 2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이처럼 건청궁은 신문물을 수용하여 근대화를 도모한 산실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의 근대화 의지가 외세에 의하여 꺾인 곳이기도 하다. 특히 고종은 아관파천 후 건청궁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주인을 잃은 건청궁은 1909년 완전히 멸실되었다. 이후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다. 광복 후 건청궁 자리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세워졌고, 동쪽에 명성황후가 난을 당한 곳이라는 뜻의 ‘명성황후조난지지(明成皇后遭難之地)’라는 표석과 함께 당시의 참상을 그린 기록화가 전시되어 있다가 경복궁 장기복원사업에 따라 2007년 10월 20일 복원이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Geoncheonggung which is located in the back yard of Gyeongbok Palace is 3,300㎡. It is King Gojong’, the 26th ruler of Joseon dynasty, private palace that he expressed the will of political independence from his father, Heungseon Daewongun. It was broken by Japan in 1896 after that, it was reconstructed in 2007 as the present. The aesthetic of adap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with Jangandang, Chusubuyongru, Gonnyeonghap, Okhoru, Sasihyangru, Jibokjae and Hyangwon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