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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2) 개념: 휘발성 개념에서 촉각적 개념으로
  • 환경과조경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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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설계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을 꼽으라면, 아마 아직까지도 학생 시절 설계 수업에서 느꼈던 좌절감을 뚜렷이 기억한다는 점일 것이다. 학생들에게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하지 않도록 가르쳐야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수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대책 없는 과욕이었다는 진단을 스스로 내린다. 당연하게도 나의 학생들은 여전히 내가 절망했던 부분에서 또다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결국 3년이 지난 지금, 그러한 순진한 욕심이 증발되기 전에 과도하게 설정한 목표의 좌표값을 재조정하고 문제점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실질적인 내용을 축적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설계 자체의 학습은 스스로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깨우쳐야 하는 자기학습과정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속성 때문에 아무리 좋은 선생과 교과서가 있어도 암기만으로는 훈련될 수 없다. 이번 연재의 제목이 읽는 사람들에게 교과서 비슷한 텍스트로 읽혀 잘못된 인상을 줄까봐 걱정이다. 이런 교과서에 대한 심리적 거북함이 결국 내가 교과서를 통해 받아왔던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 때문이라는 점을 최근의 교과서 개정논란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교과서의 내용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가르치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교과서의 내용을 암기하는 것에는 능숙하나 그 내용을 어떻게 스스로 비평하는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결국 교과서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내용이 비판에 너그럽지 않은 절대적인 권위를 고집하려 할 때이다.

교과서에 대한 불편함은 바로 교과서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서 나 스스로가 잘 몰랐던 까닭에 기인한다. 이 때문에 나는 학생들에게 설계에 대한 체계적인 가이드라인을 정리된 형태로 제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학생들에게 설계라는 망망대해의 탐험여행으로 초대하면서 제대로 된 항해지도 하나 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든다. 이에 주저하던 마음을 떨쳐버리고 연재를 시작한다. 정욱주 교수가 시작글에서 암시하였듯 내가 겪었던 문제 자체를 공공적인 장소에 노출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냉정한 시각으로 함께 바라보고 같이 고민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이제 개인적 경험과 지식의 범위라는 바탕 위에 반복적으로 부딪치는 암초들의 속성과 좌표의 맵핑을 시작한다. 이 지도를 혹시라도 참조한다면 기억해야 한다. 결국 이 지도를 손에 들고 직접 장애물을 극복하며 자기 자신의 지도를 만드는 것은 여행자의 몫이라는 것을.


“개념”의 개념

“선생님, 개념이 뭐예요?” 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이며 고백하자면 가장 명쾌하지 않은 대답을 해왔던 질문이다. 연재의 시작을“개념”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에 대한 개인적인 반성에서 출발하자는 소박한 바람과, 현재 조경설계 관행에서 개념만큼 모호하면서도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단어가 없다는 다소 합리적 판단 때문이다.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_ 칸트, 순수이성비판

“한 무리의 개개個個의 것에서 공통적인 성질을 빼내어 새로 만든 관념觀念” _ 네이버 백과사전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한 결과로서 갖게 되는 구체적인 사고로서, 개념 형성과정은 어떤 대상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성을 찾아 분리시키는 과정”_ 구본덕, 건축학회논문

“설계 개념은 설계안에 대한 구조적 사고의 틀”_ 김영대, 조경설계론

“개념이란 설계의 조형화에 관계되는 여러 가지 공간적인 요구에 답하는 것으로 몇몇 요소나 특성을 통합하는 것”_ 조경진, LOCUS 2

“조경설계에 있어서 개념은 물에 빠진 사람에게 지푸라기와 같다. 잡으면 살 것 같지만 결국 잡아도 아무 쓸모없는 것이다.”_ 40대 조경설계사무소 소장, 지나가는 말

인용된 몇 문장에서 보는 것처럼‘개념’에 대한 개념은 매우 다양하며 포괄적이기도 하고 모 호하며 산만하기까지 하다. 특히 설계분야에서 개념이라는 어휘가 지칭하는 내용의 진폭이 매우 크다. 조경설계에서 쓰이는 ‘개념’의 개념은 여러 층위의 단위가 혼재되어 있고, 불행히도 많은 경우에 냉철한 규정 없이 통용되고 있다.

설계에서 개념을 유형별로 추상적 개념, 구성적 개념, 형태적 개념으로 나누고 있는 구본덕의 구분은 이러한 다양한 겹의 유통경로를 이해하는 데에 좋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는 추상적 개념은 설계의 초기단계에 전체적인 주제를 형성하여 여러 가지 설계 개념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건축적 실마리는 제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한다. 결국 추상적 개념 하나만으로는 설계안을 주도하기 힘들며, 구성적 개념(공간의 구성에 관련된 측면) 혹은 형태적 개념(건축물의 형태에 관련된 측면)으로 이어져야 효과적이라고 분석한다.

개념은 현상 혹은 대상을 보는 관점이자 태도이며 인식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인식의 주체가 중요해진다. 즉 설계 개념은 설계가 개개인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설계가의 개인적인 철학과 창의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개념의 위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설계가가 전체 설계과정에서 어떠한 매개개념이 필요한지를 쉽게 점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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