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되돌아온 바통
두 달 참 짧다. 돌아서면 원고마감이 등 뒤로 바짝 다가와 있다. 마감이 주는 압박감은 언제나 묵직하지만, 그 무게를 상쇄하는 혜택도 존재한다. ‘짜여진 틀과 프로그램에 의해’언젠가는 다뤄봐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있었던 몇몇 사고에 대해 실행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품고만 다니던 숙제중 하나는 형태와 프로그램과의 상관성에 관한 것이다.
지난 호 김아연 교수의 형태에 관한 텍스트에서 프로그램이라는 단어가 12번 쓰였다. 그중 절반은 컴퓨터에 관련된 것이었으므로 차치한다고 해도 다른 절반의 언급은 형태와 프로그램의 긴밀성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싶다. 글의 초반 케빈 린치와 게리 핵이 내린 ‘특정 프로그램을 만족시키는 형태를 찾는 과정’이라는 설계의 정의는‘형태=프로그램 최적 구현 방식’이라는 모더니즘적 믿음을 반영하고 있으며, 어린이놀이터 설계를 예로 든 세밀한 공간프로그램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 제기 역시 형태와 프로그램의 밀접한 동승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렘 쿨하스의 ‘트리시티’의 예는 프로그램의 종속적 형태와 형태의 종속적 프로그램이라는 측면에서 두 키워드 간의 균형점과 상관성에 대한 논의를 유발한다. 그런데 맺는 부분에서 내린 ‘형태의 절대성(고정성)은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가변성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는 현대 설계판의 진단은 필자로 하여금 형태와 프로그램이 아주 ‘긴밀한 남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도 한다. 상식으로 통하는 설계와 프로그램의 긴밀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건축과 조경분야에서 프로그램에 대한 담론의 형성은 그다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생각의 조각과 갈래들이 한번쯤 진지하게 프로그램에 대한 고찰을 하도록 손을 이끈다.
형태는 고정적이고, 실제적이다. 반면 프로그램은 유동적이고, 자칫 공허하기까지 하다. 이 유연함과 공허함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양극으로 치닫게 하고 있지 않을까? 결국 프로그램은 잘 활용하면 형태의 고정성 위로 꽃피울 수 있는 약이요, 그렇지 않으면 독이 될 수 있다. 제대로 고찰하지 아니하고 장식재처럼 쓰는 프로그램은 뜬구름 잡는 상상으로 취급받고, 나아가 형태의 수월성까지도 잡아 내리는 악재가 된다. 글을 진행하면서 필자 역시 형태 잡는 일에 90을 투자하고, 화룡점정 한답시고 마지막에 그럴듯한 작명의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코팅하는 작업에 10을 할애하지 않았는지 자성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글의 초반이라 결론에 뭐라고 적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지로 끝을 낸다면, 과연 프로그램 작업에 내재된 가치를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형태, 기능적인 프로그램 제공이라는 설계의 당연지사를 놓고 형용사를 교차해본다. 기능적인 형태는 괜찮지만, 아름다운 프로그램은 어떠한가? 어색한가? 형태와 프로그램이 한몸과 같은 상호긴밀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 표현 역시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서술할 수 있다면 프로그램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해피엔딩의 결말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