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텅빈 것이 아니라, 온갖 사물들로 가득 차 있다. 지표상의 아주 미세한 공간에서부터 이 천체의 우주 공간에 이르기까지 완전 진공상태로 비어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물론 그 공간 속의 사물들은 고정불변으로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화해 간다. 이러한 점에서 공간은 마치 그 속의 사물과는 분리될 수 있으며, 따라서 사물을 담는 그릇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은 단순한 사물의 그릇 이상의 철학적, 사회적의미를 가진다. 즉 현실의 공간은 데카르트의 절대좌표처럼 선험적으로 주어진 공간 또는 백지 상에 그려지는 기하학적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물의 생성과 변화를 위한 존재론적 기반이 되며, 모든 인간 활동들이 전개되는 사회생활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의 조건으로서 공간과 권력
공간(그리고 시간)상에서 존재하는 사물은 지속적으로 생성, 변화하면서 또한 자신이 위치지워져 있는 공간을 변화시켜 나간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기본적으로 공간상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성을 벗어날 수 없듯이, 태어난 장소에서부터 죽음의 장소에 이르기까지 공간상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간다. 이로 인해 인간의 모든 활동들은 시·공간적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며, 사회의 구성과 발전은 시·공간적으로 조건지워진다. 즉 공간은 모든 사회적 생활의 물적 토대이며, 사회적 관계의 매개수단이요, 사회적 조직의 무대가 된다. 이러한 인간 사회의 활동은 시간의 역사를 만들어 가듯이, 공간의 지리를 생산하고 변화시켜 나간다.
이와 같이 인간 사회의 모든 활동들은 공간적 차원을 내포하고 있지만, 정치적 활동은 특히 그러하다. 왜냐하면, 권력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간적 관계의 망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 공간은 텅 비어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항상 권력으로 충만하고 지배를 위해 편성?통제되고, 억압/저항의 정치가 전개되고 있는 힘관계의 장이다. 정치 권력은 공간상에서 공간을 매개로 공간에 의해 생성·작동·소멸한다. 이러한 점에서, 프랑스의 탈구조주의 철학자 푸코(Foucault)는, “모든 역사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다시 쓰여져야 한다 - 이는 또한 동시에 권력의 역사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대적 공간의 생산과 권력의 창출
푸코에 의하면, 공간은 지배의 유희가 거듭해서 등장하는 무대, 권력과 지식에 관한 담론들이 실제적 권력 관계로 끊임없이 전환하는 장소로 간주된다. 에서 그는 벤담(Bentham)이 설계한 원형감옥(Panopticon)을 권력과 공간 간의 권계에 관한 연구에서 패러다임적 사례로 제시한다. 원형감옥은 그 중앙통제탑에서 직접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각 감방의 죄수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원형감옥의 기술은 수인(囚人)들의 감화뿐만 아니라 근대적 공간의 발달에서 모든 측면들, 예로 정신병자들의 수용, 학교 아동들의 교육, 공장직공의 감시 등등 수많은 제도들의 공간구성에 응용된다.
물론 근대 이전의 정치 권력들도 공간 상에서 그리고 공간을 통해 창출?행사되었다. 이집트의 고대 국가들은 홍수가 범람하는 나일강 유역의 물리적 공간에 대한 통제와 더불어 피라밋과 스핑크스라는 공간적 상징물들을 통해 지배를 유지?강화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정치는 아테네의 구릉위에 높이 솟은 신전이나 도시의 아고라(agora, 광장)에서의 시민들 간 토론을 통해 발달했다. 뿐만 아니라 동양사회에서도 고대 중국은 황하의 치수를 통해 전제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고, 그 전제적 권력이 입지한 거대한 궁궐의 건축물들은 노골적 또는 암묵적으로 정치권력을 가장 잘 표현하고 행사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이러한 공간의 생산과 정치 권력 간 관계는 근대성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치밀해 진다. 특히 지식의 발달과 내재적 관계를 가지는 근대적 정치 권력은 정치적 합리화를 위한 공간 통제의 도구적 지식 또는 테크롤로지와 함께 발전해 나간다. 즉 근대적 정치 권력은 통제와 지배를 위한 공간 기술과 이의 실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공간의 생성은 지배 집단의 권력이 가장 효과적으로 현시되도록 설계된 건축물의 구조나 공간적 편성 뿐만 아니라 개인의 미시적 신체 공간을 감시하기 위한 기술과 도구의 발달에서, 지역 사회 구성원들 간 공간적 포섭과 격리, 근대국가의 발달과 더불어 국경내 전체 영토를 통제하고 효율화하기 위한 계획, 나아가 세계적 규모로 전개되는 국가들 간 연합과 전쟁의 지정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적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근대 국가의 형성과 새로운 영토 구축
한 국가의 권력이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영토의 개념이 규정된 것은 근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도 물론 국가, 국경 또는 백성의 개념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을 통해, 오늘날과 같이 명확한 선으로 국경과 영토가 설정되고, 그 안에서 배타적 권력으로서 국가 주권이 규정되며, 이 주권이 행사되는 영토 내에서 정치적 공동체로서 국민의 개념이 형성되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 국민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영토 공간의 배타적 지배를 위하여 다양한 국토계획을 수립하고 개발사업들을 시행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국토계획과 개발사업들은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새로운 도로나 철도, 항만 등이 조성되었고, 공업단지와 주거단지들이 대대적으로 확충되었으며, 도심의 고층빌딩들이 대규모로 건설되게 되었다. 이러한 국토계획과 개발은 일차적 목적을 경제성장에 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당시 정권은 자신의 정치권력을 정당화 시키고 더욱 강화시키고자 했다.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은 이러한 측면에서 당시 대표적인 국토사업의 사례로 제시될 수 있다. 엄청난 해외 차관과 월남전 참전의 피땀으로 얻은 자금을 투입하여 건설한 경부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공간 축이었으며, 또한 동시에 이를 통해 서울로 인구와 경제적 및 정치적 권력이 집중하게 되는 지리적 통로가 되었다. 물론 조선 시대 이전에도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도로가 있었고, 우리나라의 새로운 도로 건설은 사실 일제의 침탈과정에서 본격화되었다. 일제는 한반도 침탈을 위하여 국토의 지질과 토지이용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사업을 시행하여 엄청난 공간정보를 확보하고, 나아가 경인선과 경부선, 경의선 등의 철도를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로, 이른바 신작로(新作路)를 건설하여, 한반도 통치를 위한 물리적 기반을 조성했다. 그 이전의 좁고 꾸불꾸불한 거리와는 달리 직선으로 쭉 뻗은 넓은 도로는 신문명과 연결되는 통로처럼 보였다. 그러나 신작로는 군대와 물자의 이동을 신속하게 함으로써 식민지 지배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한 공간정책이었다.
신작로나 고속도로의 건설과 같이 속도를 내기 위한 거리의 직선화는 정치적, 군사적 지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즉 거리의 직선화를 포함하여 공간 거리(즉 공간적 마찰)의 극복을 위한 새로운 수단과 시설들은 정치권력의 행사를 보다 신속하게 함으로써 공간의 지배를 용이하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맑스가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즉 자본의 신속한 회전을 위한 공간 거리의 가속적 단축)이라는 개념은 단지 경제 성장의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 권력의 차원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오늘날, 교통·통신수단의 급속한 발전에서 상당 부분은 군사적 목적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며 특히 전쟁과정을 통해 이루어 졌거나 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미국에 의한 이라크 전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전쟁은 이라크 침공에서 미국 군사력의 신속한 배치와 이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 상황을 실시간대에 전세계에 송신하여 일방적으로 미국의 입장에서 전쟁을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세계적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도록 했다.
최 병 두 Choi, Byung Doo · 대구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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