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에 있어서 공간이나 형태 구성의 단계는 디자이너의 역량이 최대로 발휘되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디자이너의 내부적 사고체계에서 일어나는 닫힌 구조를 갖는다. 외부의 제3자가 명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작품을 보더라도, 나타난 결과물들이 설계과정 안에서 어떤 이유로 생성되었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쉬운 방법으로 작품을 이해하려 하게 된다. 설계 자료, 작가 노트, 작가의 개인적 성향, 이즘, 시대상황 및 역사적 배경 등을 이용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무엇보다 이들 자료는 객관성을 입증 받기 쉬우며, 그래서 큰 번민 없이 그를 통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로는 구성의 생성적 측면에서 벌어지는 내재율을 총체적으로 해석해내기가 불가능하며, 결국 우리가 하는 공부는 역사와 작가적 관점을 가지고 작품들에 대입하며 확인하는 것에 그치기 십상이다.
본 연재는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소위 생산적 작품분석의 유효한 방법론으로 구조주의의 접근법을 사용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작품을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 인식하고 그 안에 숨겨진 구성의 질서를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본 연재는 이론적 근거와 실천적 토대를 구조주의와 구조언어학의 방법론에 둔다. 필자가 참조로 하는 구조 개념은 시공적 관점에서 내력시스템으로서의 구조가 아니고 네덜란드의 구조형태주의자들 역시 아니다. 오히려 확정된 관점에서의 구조 개념, 의미를 명쾌하게 드러내기 위해 전체상을 구축하는 창조자의 사고과정으로 보는 관점을 택한다.
요컨대 연재의 주요 목적은 구성상에 있어서 그 생성의 내재율을 살펴보고자 함이다. 따라서 연재를 통해 소개하고 싶은 것은 이론으로서의 구조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실천적 가치로서의 방법론이 될 것이다. 내용상으로도 그런 방법들을 사용하여 개별 작품들을 해독해 보는 형식을 취할 참이다.
이와 같은 전체적 윤곽에 따라, 대략 다음의 순서를 가지고 격월로 연재가 진행될 것이다.
1. 연재를 시작하며
2. 조경구성의 체계와 구조의 이해
3. 구조로 본 작품 읽기1~5
개별 작품들의 해독에 할당되는 연재의 분량은 유연하게 가져가도록 할 것이다.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조경의 선들 사이에서 디자이너에게 미력하나마 작은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구성의 힘
추상적 의미나 상징 등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이는 디자인 언어의 상위체계로서 마땅한 기능이다. 반면에 형태와 공간구성은 이러한 추상적 의미를 구체적이고 구상적인 형태언어를 통해 명료하게 드러내도록하는, 설계에 있어서 사실상의 핵심 영역이다. 작가가 내세우고자 하는 상징적 의도나 의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디자이너에겐 그 사유를 구체적인 실체로 번안하는 과정이 빈약하다면, 결국 그 의미는 쓸데없는 사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디자이너로서 다른 이의 작품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바로 이런 구성의 원리들을 배우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것들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디자인을 전개해 나가는데에 있어서는 크게 효용이 없는 것 같다.
선유도 공원으로 답사를 간다. “…과연 알려진 바와 같이 기존에 물처리장으로 쓰였던 구조물을 그대로 존치하고, 녹색의 생명들이 그 위에서 자라나게 하겠다라는 개념이 구체적으로 이곳저곳에서 충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기존의 기둥구조물을 해체하지 않고 담쟁이덩굴이 자라나게 하여 초록색의 기둥들로 변화시킨다는 발상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역시 재생과 공생의 개념이 잘 표현된 의미있는 작품이다…”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지각은 분명히 실제적인 공간을 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각은 여전히 의미에만 매달려 있다. 초록기둥의 정원을 보고 재생과 공생의 개념이라는 의미를 대입하는 것과, ‘바로 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디자이너가 ‘형태’와 ‘공간’이라는 디자인 언어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초록기둥이라는 요소를 보고 그것과 연결되는 의미를 떠올리기는 하지만, 의당 해야 할 당연한 고민, 이를테면 어째서 그런 초록기둥들의 중간에 한 줄이 통째로 없어져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아해 하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고 작품은 형태로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나타난 형태 안에 감추어진 비밀을 풀어보려 하지 않는다. 눈은 형태를 보는 듯하나 실상은 그것을 통해 다른 것을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설계는 공허하다. 생각하는 의미와 그려야 하는 선 사이를 채울 것이 없다. 그 공허를 메꾸기 위해서 더 강한 의미를 만드는데에 치중한다. 이곳과 저곳 사이에 딸랑 선 두 개를 긋고는, ‘연결성을 극대화했다’라는 식의 소위 의미과잉의 병폐도 여기에 기인한다. 의미가 대단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그것이 설계의 질, 공간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성의 힘, 그것이 없다면, 조경은 조성인가 디자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