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말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색한 만남의 장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민주공원이 설계공모전에서의 잡음과 공원자체의 완성도 평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따가운 질책 속에 또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4.19 민주혁명과 부마민주항쟁, 그리고 6월 항쟁으로 이어지며 한국 근현대사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부산시민의 숭고한 민주항쟁 정신이 후세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공원으로 구현된다는 것은 어쩌면 설계가에겐 역사적 업적을 남기는 자부심을, 또한 녹지공간이 절대 부족한 부산시민들에게는 테마가 부여된 새로운 휴식명소를 선사하는 의미있는 기회였다는 측면에서 이번 민주공원의 조성은 시작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것이 사실이다.
민주공원은 지난 ’95년 8월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부마민주항쟁 기념탑과 기념관, 기념공원 조성을 추진하기로 결의한 이후 이듬해 7월 부산광역시장을 추진위원장으로 하는 ‘부산민주공원 조성 범시민 추진위원회’가 정식으로 발족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에 따라 ’96년 12월 아이디어 공모전과 ’97년 4월 설계공모를 통해 부산환경컨설턴트(조경)와 경보건설(건축), 엠조형연구소(조형물)의 안이 당선작으로 확정되었고 당해 10월 역사적인 과업의 첫 삽을 뜬 이후 만 2년 만에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조경가의 주도로 완성을 본 기념비적 공원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던 민주공원은 전 현직 대통령의 어색한 만남에서부터 그리 즐거운 장소로 탄생하지는 못한 듯하다. 더구나 조경분야의 자부심을 고양시키는 기분 좋은 쾌거라는 섣부른 자축이 나오기도 전에 조경가의 ‘허울 좋은 개념논리’를 공격하는 건축가의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에 주목하고자 한다. 부산 민주공원을 통해 조경은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 있으며 건축가들은, 조경가들은, 그리고 시민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또 받아들이고 있는지. 이번 민주공원이 한 밀레니엄을 마감하는 조경분야의 진지한 자성 속에서 2000년대 조경분야의 희망을 잉태할 수 있는 계기로 기억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민주공원이 남겨주는 교훈은 충분하리라고 본다.
※ 키워드 : 부산 민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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