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연작’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들을 관통하는 것은 ‘바닥’이다. 낮게 깔리는 것, 내려다봐야 하는 것, 수평적인 것, 그리고 우리가 하찮게 여겨왔던 것.
풍경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기하학은 바닥 면과 그에 직각으로 선 것들이다. 인류는 직립 보행을 시작하며 손의 자유를 얻었고, 그로 인해 두뇌가 발달하며 다른 동물들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갖게 됐다. 나아가 지표면에 수직적인 것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대표적 사례가 건축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조경 작업을 건축적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힘들어졌고, 자연과 경관에 내재한 고유의 언어와 법칙으로 우리의 작업을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산다. 아마도 수직에 저항하는 것, 높은 것에 반대되는 것, 보잘것없는 배경이나 바탕으로 치부되는 것, 손이 아닌 발의 영역에 속한 것에 대한 반항적 끌림이 지구의 표면, 풍경의 바닥으로 향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지구의 표면에는 어마어마한 생태계가 존재한다. 그중 하나인 메도우(meadow)는 천이의 초기 단계에서 볼 수 있는 초지로, 숲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사람들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 취약한 생태계다. 2021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에 설치된 블랙메도우(black meadow)는 초록과 생명이 사라진 자연을 의미하는 바닥 설치물이자 빗자루로 만든 카펫이다.
* 환경과조경 402호(2021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작가 김아연
디자인팀 시대조경(안형주, 최진호, 송민원, 김현근, 나준경, 이온),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김희원, 김선주, 이필립, 이주은, 윤정원, 진소형, 오혜지, 손영호, 김단비, 박정은, 김현정, 박공민, 한지훈, 강건희, 강성수, 이현우, 이영현)
전시 기획 2021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추진단
위치 이탈리아 베니스 카스텔로 공원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면적 50m2(지름 약 8m)
재료 빗자루, 마대
설치 2021. 5.
사진 김아연, 2021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추진단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외 정원, 놀이터, 공원, 캠퍼스, 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