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PREV 2021 Year NEXT           PREV 10 October NEXT

환경과조경 2021년 10월

정보
출간일
이매거진 가격 9,000
잡지 가격 10,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공터의 힘
개관과 동시에 장소 덕후들의 성지로 등극한 안국동 서울공예박물관. 400년 수령의 장엄한 은행나무, 테라코타 관을 둥그렇게 쌓은 크레이프 케이크 형태의 파사드, 곡선형 콘크리트로 유려하게 지형 틀을 잡은 경사 초지, 지극히 이질적인 이 세 요소를 한 프레임에 담으면 대충 찍어도 어느 각도에서나 그림이 나온다. 요즘 인스타그램을 도배하고 있는 장면이다. 공예박물관 안마당의 이 매력적인 풍경은 포토제닉할 뿐 아니라 고즈넉한 산책과 휴식도 넉넉히 담아낸다. 그러나 공예박물관의 도시적 잠재력은 감고당길과 안국역 쪽으로 담장 없이 활짝 열린 박물관 앞마당에서 펼쳐진다. 이 공터는 2017년까지 70년 넘게 풍문여고의 운동장으로 쓰였다. 겹겹이 쌓인 기억의 지층은 훨씬 더 두껍다. 감고당길 입구에는 ‘안동별궁 터’ 표지석이 서 있다. “조선 초부터 왕실의 거처였다가 마지막 황제 순종의 가례처로 사용된 궁터.” 안동별궁은 세종의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별궁으로 쓰였고, 세종이 승하한 곳이자 문종의 즉위식이 열린 곳이며, 고종이 건물을 개축해 순종의 혼례를 역사상 가장 성대하게 치른 축제의 장이기도 했다. 근대 여성 교육을 이끈 학교로 변모했다가 이제 공공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안동별궁과 풍문여고를 함께 써넣어 검색해보면 풍문여고 교정 안에 안동별궁이 있는 1950년대의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뜬다. 근대식 교사에 옛 별궁 한옥들이 이어져 있고 그 앞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줄 맞춰 조회를 하는 기묘한 광경이다. 게다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인사동과 북촌 사이라는 도시적 맥락까지 겹친 장소성, 만만치 않다. 설계공모 당선 이후 박물관 건축을 주도한 송하엽 교수(중앙대)의 말처럼, 이곳은 “시간을 걷는 공간”이다. 하지만 공예박물관 외부 공간이 뿜어내는 힘의 원천은 시간도, 기억도 아니다. 그 힘의 열쇠는 빈 땅 그 자체에 있다. 안국역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모두에게 열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터와 담장을 둘러친 학교 운동장의 차이를 바로 실감할 수 있다. 여름과 가을의 기 싸움이 팽팽하던 오후, 조경 설계로 이 빈 땅의 잠재력을 극대화한 박윤진 소장(오피스박김)을 만나 공터 곳곳을 느릿느릿 산책했다. “처음 방문한 날, 풍문여고 흙 운동장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어요. 설계비만 계산하면 손해일 게 뻔했지만 무조건 프로젝트를 맡기로 마음먹었죠. 담장만 걷어낼 수 있다면 서울에서 가장 인상적인 오픈스페이스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어요.” 이미 블로썸 파크(『환경과조경』 2016년 9월호)와 경기도 북부청사 광장(2020년 5월호)뿐 아니라 민간과 공공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작업에서 바닥면 실험과 지형 설계 혁신을 실천해온 오피스박김은, 빠듯한 예산과 층층시하 간섭이라는 서울시 프로젝트의 고질적 난맥을 설계 역량과 노하우로 극복하며 도심 공터의 장소적 가치를 가시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애초의 생각처럼 폐쇄적 담장을 허무는 데 성공했음은 물론이다. 풍문여고 담장을 헐면서 옛 안동별궁 담장의 기단석과 행각 터가 발견되었고 문화재위원회는 노출 전시를 결정했다. 야심 찬 계획과 달리 허술하게 완결되기 마련인 공공 도시·건축 프로젝트를 조경가의 안목과 솜씨가 어떻게 살려냈는지, 세세한 설명은 아끼기로 한다. 가보면 바로 느낄 수 있다. 조경가의 안목과 지혜를. 감고당길을 사이에 두고 서울공예박물관 맞은편에는 이건희미술관의 유력 후보지인 송현동 숲이 자리한다. 박물관 교육동 전망대에 오르면 야생의 숲처럼 장엄한 송현동 일대의 녹색 풍경이 멀리 인왕산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다. 주변 고층 건물에서 찍은 조감 사진은 고밀한 도시 조직, 송현동 숲, 공예박물관 공터의 극명한 대조와 긴장을 전시한다. 열린 공터의 도시적 잠재력을 감각적으로 깨닫지 않을 수 없다. 감고당길에 서서 박물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관람 목적을 가지고 오는 사람 못지않게 목적 없이 ‘그냥’ 들고나는 사람이 많다. 모처럼 도심 산책을 즐기다가, 즐거운 퇴근 걸음으로 안국역으로 향하다가 뻥 뚫린 공간을 보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공터에 들어서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 뭐지? 외마디 혼잣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의 매력, 담 없는 도시 공터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공예박물관 앞마당은 길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부지 서쪽 감고당길과 동쪽 윤보선길을 가로지를 수 있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연결 통로인 셈이다. 박윤진 소장과 나도 통과 동선으로 박물관 앞마당을 사용하는 이들 뒤를 쫓아 윤보선길로 접어들었다. 인왕산에 걸린 노을을 따라 골목을 걷다 보니 마침 그럴싸한 노포 호프집이 등장했다. 유달리 높고 파란 하늘과 불타는 노을 사진으로 SNS가 북적이는 이 가을, 잠시 틈을 내 가볼 만한 조경 작업과 전시도 풍성하다. 오피스박김의 ‘서울공예박물관’뿐 아니라 이달 지면에 모은 김아연의 ‘가든카펫’(덕수궁, ‘상상의 정원’ 전), 김봉찬·신준호의 ‘어반 포레스트 가든’과 정영선의 ‘나의 정원’(피크닉, ‘정원 만들기’ 전), 안마당더랩의 ‘일분일초’(소다미술관, ‘오픈 뮤지엄 가든: 우리들의 정원’ 전)에서 반나절 가을 나들이의 여유를 맛보시길. 아쉬운 소식을 전한다. 2018년 6월호(362호)부터 함께 지면을 만든 윤정훈 기자가 402호를 끝으로 환경과조경 생활을 마무리한다. 마흔한 권 잡지 곳곳에 밴 그의 흔적을 기억하며, 새로운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풍경 감각] 스노볼의 파수꾼
한낮 버스에 앉아 창밖 보는 걸 좋아한다. 파란 하늘 아래 산들거리는 가로수와 제각기 다른 차림으로 오가는 사람들. 신호등 불이 자리를 바꾸면 자전거가 멈춰 서고 버스가 다시 움직인다. 평범한 풍경이지만 버스 창문 너머로 보면 무엇이든 안온하고 괜찮아 보인다. 늘 평화로운 스노볼처럼.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이런 감상은 모두 휘발되어 사라진다.뭉개진 은행나무 열매 냄새와 간판을 가리는 무성한 가로수에 불평하는 목소리가 도시의 소음과 뒤섞여 시끄럽다.
서울공예박물관
구법의 기술 처음 방문한 풍문여고의 흙 운동장에 반해서,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무조건 프로젝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지금의 폐쇄적인 담장만 허물 수 있다면, 도시의 인상적인 오픈스페이스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공공 공간을 설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프로젝트 초청 당시 서울공예박물관장이 오피스박김에게 보여준 신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자문과 심의 그리고 동료의 불평 불만 속에서 초기안은 당연히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그동안 만들고 구현한 ‘박김사례’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었고, 그 안에 담겨진 구법의 기술은 수많은 사변을 넘어서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구법의 진화 형태나 형상이 아닌 과거의 물성―풍문여고의 흙 운동장, 안동별궁 터의 지형 언덕―을 구현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를 위해 재료 실험을 했고 수차례에 걸친 목업시공을 통해 배수가 잘되며 하이힐을 신고도 편히 다닐 수 있는 흙 포장을 구현할 수 있었다. 관행적인 흙포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 새로운 흙 포장은 야구장에서 착안한 것으로, 마사토와 섞였을 때 점성이 생겨부드럽지만 단단한 경도를 갖는다. 수직으로 단절된 축대 위에 놓인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완만한 지형 언덕을 구상했다. 이미 사라진 안동별궁의 지형을 재현하되 오피스박김만의 진화된 방식으로 제안했다. 선형의 콘크리트는 지형의 높이와 함께 경관에 변화를 만들어내며, 지형의 미세한 차이를 더욱 드러낸다. 우리는 이 선형의 콘크리트를 ‘지형틀’이라고 불렀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및 시공 감리 오피스박김(박윤진, 김정윤) 시공 아이엠유건설(김충호) 발주 서울공예박물관 위치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3길 4 면적12,830m2 준공2021 사진 김종오 오피스박김(PARKKIM)은 2004년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박윤진, 김정윤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다. 2006년 서울로 이전했고, 2018년 김정윤 대표의 하버드 GSD 교수 임용을 계기로 보스턴 지사를 개소했다.
블랙메도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연작’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들을 관통하는 것은 ‘바닥’이다. 낮게 깔리는 것, 내려다봐야 하는 것, 수평적인 것, 그리고 우리가 하찮게 여겨왔던 것. 풍경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기하학은 바닥 면과 그에 직각으로 선 것들이다. 인류는 직립 보행을 시작하며 손의 자유를 얻었고, 그로 인해 두뇌가 발달하며 다른 동물들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갖게 됐다. 나아가 지표면에 수직적인 것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대표적 사례가 건축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조경 작업을 건축적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힘들어졌고, 자연과 경관에 내재한 고유의 언어와 법칙으로 우리의 작업을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산다. 아마도 수직에 저항하는 것, 높은 것에 반대되는 것, 보잘것없는 배경이나 바탕으로 치부되는 것, 손이 아닌 발의 영역에 속한 것에 대한 반항적 끌림이 지구의 표면, 풍경의 바닥으로 향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지구의 표면에는 어마어마한 생태계가 존재한다. 그중 하나인 메도우(meadow)는 천이의 초기 단계에서 볼 수 있는 초지로, 숲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사람들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 취약한 생태계다. 2021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에 설치된 블랙메도우(black meadow)는 초록과 생명이 사라진 자연을 의미하는 바닥 설치물이자 빗자루로 만든 카펫이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작가 김아연 디자인팀시대조경(안형주,최진호,송민원,김현근,나준경,이온),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김희원,김선주,이필립,이주은,윤정원,진소형,오혜지,손영호,김단비,박정은,김현정,박공민,한지훈,강건희,강성수,이현우,이영현) 전시 기획2021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추진단 위치 이탈리아 베니스 카스텔로 공원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면적50m2(지름 약8m) 재료 빗자루,마대 설치2021. 5. 사진 김아연, 2021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추진단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국내외 정원,놀이터,공원,캠퍼스,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메도우카펫
한국의 주거 유형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다. 부동산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약속되는 아파트는 ‘집’이라는 삶의 영역이 아닌 정치의 영역이 되었다. 이웃과 소통하고 기억과 이야기가 축적되는 ‘마을만들기’로서의 주거 단지 개념은 설계 스튜디오나 설계공모 안에서만 힘을 얻는 것 같다.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아파트 설계가 제일 어려웠다. 익혀야 할 공식과 규칙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인동간격처럼 다양한 계산식을 통해 도출되는 단지 배치의 구조뿐 아니라 자연을 다루는 조경 역시 관습의 영역에 있었다. 단지 입구에는 소나무를 군식한 뒤 석가산을 만들고, 출입구와 시선이 꽂히는 모퉁이에는 선주목, 생활 가로에는 왕벚나무, 주동 측벽에는 메타세쿼이아를 심어야 한다. 1m2당 심어야 하는 식물의 밀도가 주요 수종별로 정해져 있고, 녹지 경계에는 회양목과 철쭉을 밀식하고, 수급과 관리가 어려운 초화류는 준공 직후 입주민들을 ‘웰커밍(welcoming)’하는 용도로는 쓰되 과도하게 사용하면 안 된다. 화목류를 중간중간 섞어 계절감을 살리고 겨울철 녹시율과 상록수 법정 의무 비율을 채우기 위해 경계부나 군식 녹지대에는 저렴한 스트로브잣나무를 심는다. 건설사와 공사는 촘촘한 그들만의 공식을 정해두었고 설계사의 창의성은 그 안에서만 허락된다. 아마 입주민의 민원을 최소화하는, 수십 년 동안 검증된 노하우가 만들어낸 안전장치였을 것이다. IMF 시대를 거치면서 아파트 조경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했다. 건축 설계의 하도업이 아니라 아파트의 브랜드 가치를 좌우할 핵심 상품이 됐다. 건설사의 조경팀은 주택상품개발부서에 편입되고, 매해 상품 개발을 위해 경쟁한다. 상품은 끊임없이 개발되고 곧 복제된다. 새로운 상품의 개발은 곧 새로운 공식의 생산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시장이고, 아파트 조경은 시장에 내놓은 상품이다. 이러한 아파트 조경의 자기 복제성이 가장 장소적이어야 할 집과 동네를 비장소적, 탈장소적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파트는 한국을 전형적인 ‘무인도시’1로 만드는 주범이자 그 결과물이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디자인팀 스튜디오테라(안형주, 최진호, 오혜지) 시공 스튜디오 이레, 다원녹화건설 위치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690-1 면적 약 200m2 재료 식물, 목재, 석재, 타일 등 복합 재료 완공2021. 1. 사진 현대건설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국내외 정원,놀이터,공원,캠퍼스,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가든카펫
서구식 근대화를 꿈꿨던 고종은 대한제국을 공간적으로 근대화하기 시작했다. 도시적으로 독립문과 파고다공원 건설을 포함한 도시 개조 사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건축적으로 덕수궁 내 서양 공관들을 건설하고 서구식 생활 양식을 도입했다. 서구식 공간은 건축물의 구조와 외관뿐만 아니라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 자체를 바꿨으며, 근대적 생활 양식에 걸맞은 가구가 도입되면서 황실의 바닥 역시 변화했다. 그렇게 근대의 삶 바닥에는 카펫이 놓였다. 카펫은 공간의 영역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이자 그 자체로 정원을 상징하기도 한다. 깔개 하나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간편한 창의성과 깔개 문양의 상징 체계가 만들어내는 한시적 헤테로피아(heterotopia)의 상상적 측면은 나를 매료시킨다. 나아가 문명이 만들어내는 수직적 기념비와 대비되는 수평적 공간은 두께를 갖는 대지의 표면이자 낮은 곳에 주목하게 하는 지구의 근원적 기하학이다. 카펫(carpet)은 ‘털을 뽑다pluck’라는 의미의 라틴어 카르피타(carpita)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서아시아나 유럽의 건조하고 냉랭한 기후에 버티기 위한 유목민의 생필품이었던 카펫은 서구의 상류 계층에 소개되면서 신분과 문화적 취향을 나타내는 기호품이 됐다. 또한 종교 예술과 결합해 낙원을 상징하는 화려한 문양과 상징체계를 가지게 됐고, 각국의 왕실은 권력을 과시하는 화려한 카펫을 수입하거나 제작했다. 가든카펫의 문양은 1918년 「매일신보」에 게재된 고종 황제 일가의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됐다. 대한제국의 황궁인 경운궁 석조전에 도입됐던 가구들은 영국 메이플사Maple & Co의 제품으로 추정된다.1 주문 제작이 아닌 기성품을 수입했다는 사실은 당시의 국력을 보여주는 쓸쓸한 증거다. 카펫에 대한 단서는 남아있지 않지만 가구와 함께 수입되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그렇다면 정원으로서의 카펫, 황실의 상징으로서의 식물 문양을 새롭게 구성하여 상상의 정원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일반적으로 카펫의 문양은 구성 방식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석조전의 카펫은 올 오버(all over)구도, 즉 중심부에 메달(medal2)과 같은 핵심 상징이 없이 바탕에 같은 문양이 반복되는 유형3으로 볼 수 있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김윤희, “대한제국기 덕수궁 석조전 건립과 서양가구 유입”, 『문화재』 47권 3호, 2014, pp.4~23. 2. 신의 눈 혹은 눈물을 상징하는 신성한 문양으로, 이를 상징하는 화려한 패턴이 중심에 자리한 패턴을 메달리언(medallion) 구도라고 부른다. 디자인팀 안형주, 최진호, 박근우, 오혜지, 손영호, 하영권, 이필립, 이주은 시공 쌔즈믄 식물 천지식물원 크기900×1,800×40cm 재료 식물, 목재 등 복합 재료 전시명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 전시 위치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정원 및 전각 전시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 전시 기획 박혜성(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전시 기간2021. 9. 10. ~ 2021. 11. 28. 사진 김경태, 김아연
일분일초
오픈 뮤지엄 가든: 우리들의 정원 소다미술관은 경기도 화성시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건설이 중단된 후 오랫동안 방치된 대형 찜질방을 디자인·건축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문화 예술 재생 공간이다. 지난 5월, 소다미술관이 선보인 ‘오픈 뮤지엄 가든(Open Museum Garden): 우리들의 정원’ 전은 조경가와 디자이너, 예술가가 모여 미술관 앞마당을 관객이 소요할 수 있는 야외 정원으로 변화시키는 프로젝트다. 팬데믹 시대, 미술관이라는 용도에서 잠시 벗어나 지역민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구현하고 그곳에 예술을 얹어 공동체가 함께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 의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에 일분일초라는 주제의 정원을 조성했다. 일분일초 일분일초(一分一初)는 극히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시간성에 일분일초一盆一草(하나의 분, 하나의 식물)라는 자연의 의미를 더했다. 자연은 짧은 순간에도 변화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은 공간에 분위기를 생성한다. 자연은 물리적으로 객관화된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자연을 모방하거나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 자연을 관조한다. 바라보며 떠올린 감정으로 자연 안에서 정서적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분위기로 연출되며, 분위기를 지각하는 주체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을 이해한다. 분위기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자연을 경험하는 주체가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경험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일분일초라는 시간 속에서도 일분일초라는 자연 속에서도 무한한 공간의 분위기가 생산된다. 하나의 건축물 안에도 어떤 곳은 빛이, 어떤 곳은 바람이 잘 통하는 등 다양한 조건의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을 이용해 부서져 들어오는 햇살과 교목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돌과 건축물이 만나 보여주는 물성을 극대화한 분위기,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풀의 분위기를 담는 세 개의 공간을 계획했다. 나무, 돌, 풀의 재료를 각 공간에 분리하여 배치해 재료 자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도출했다. 어느 시점에서는 재료들이 겹쳐지며 조화를 이루게 된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정원 기획·설계·시공 안마당더랩(이범수, 오현주, 이상아, 김명천, 이주현, 백찬민) 전시 기획 소다미술관(장동선, 류다움, 김민정)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전시지원팀 위치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707번길 30 전시 기간2021. 5. 1. ~ 2021. 10. 31. 사진 소다미술관, 유영진(255mov), 박성욱(still negative club) 안마당더랩(Anmadang the Lab)은 이범수, 오현주가 2016년 공동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로, 조경 지식을 기반으로 외부 공간을 기획, 설계, 시공하는 디자인 작업실이다.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외부 공간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작동하지 않던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자 한다. 섬세함이 만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예술성과 대중성의 중간에서 새로운 환경을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공공 공간, 상업 시설, 개인 주택, 전시, 실내 연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어반 포레스트 가든
남산 자락에 위치한 피크닉(Piknic)은 1970년대 지어진 제약 회사 사옥을 리모델링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카페, 레스토랑, 전시관을 갖춘 이곳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공간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전시를 기획해 왔다. 올해 열린 ‘정원 만들기’ 전은 외부 공간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시다. 그 일환으로 건물 옥상과 지상 외부 공간에 정원을 조성해 전시가 열리는 봄부터 가을까지 정원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게 했다. 인공 지반에 마련된 숲과 초원 어반 포레스트 가든(Urban Forest Garden)은 도심 속에서 오래된 숲과 자연스러운 초원을 경험할 수 있는 정원이다. 단순히 식물로 가득 채워진 녹지가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들여 진정한 자연의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다. 자연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이 자연이 지닌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로 인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랐다. 취향 또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그저 구경거리나 즐길 거리에 그치는 정원이 아닌, 다양한 생명을 담는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콘크리트 위에 재현한 초원과 숲의 식생에는 생태적 식재 기법과 정원 조성 기술이 적용됐다. 빛과 어둠, 생기 있는 것과 시든 것, 있다가 사라지고 없다가도 다시 생겨나는 것들의 반복을 통해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자 했다. 거대한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주변 풍경까지 아름다워 보일 수 있도록 메마르고 황량한 도심 속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오아시스와 같은 숲을 구상했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더가든(김봉찬, 신준호, 지소희) 시공 더가든(김봉찬, 신준호, 지소희, 박선영), 김미홍 시설물 에스디레이저 설비 금강SK 전시 기획 피크닉(Piknic) 위치 서울시 중구 퇴계로6가길 30 면적 276.8m2 준공 2021. 4. 사진 더가든, 이형주, 피크닉 김봉찬은 서귀포에서 나고 자라 제주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생태학을 전공했다. 자연과 식물 사회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정원 공부를 시작했으며 평강식물원, 백두대간수목원, 서울식물원 조성에 참여했다. 자연의 원리를 이용한 생태정원과 자연주의정원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최근 베케정원을 비롯해 아모레 성수, 모노하 한남 등에 정원을 조성했다. 신준호는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서울시립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조경을 전공했다. 2007년 미국조경가협회 학생부문과 2008 함부르크 국제정원박람회 학생공모전에서 수상했다. 2015년부터 더가든에서 근무하며 김봉찬과 다수의 정원 작업을 함께 했으며, 2021년 7월 ‘자연스럽게 심는 집’이라는 뜻의 가든 스튜디오 연수당(然樹堂)을 개소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정원
“나만의 정원을 갖는다는 건 그저 몽상에 불과한 걸까?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노력은 그것이 결코 불가능한 꿈만은 아님을 일깨워 준다. 흙을 가꿀 한 뼘의 땅이 아직 없다 해도 상관 없다. 실내든 옥탑이든, 설령 너무 비좁거나 그늘진 공간밖에 없어도 괜찮다. 시작하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풀 한 포기에 기울이는 관심과 사랑,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이다.”(피크닉 ‘정원 만들기’ 전 작품 소개문 일부) 나의 정원은 피크닉 ‘정원 만들기’ 전시의 일환으로 만든 정원이다. 지난 4월에 시작한 이 전시는 정원을 통해 헌신과 돌봄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확인하게 하고, 나아가 모두가 자신만의 한 평 정원을 만드는 꿈을 꾸도록 독려한다. 전시는 늦가을인 10월에 마무리되지만 전시관 4층 옥상에 조성된 나의 정원은 존치된다. 나의 정원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 있어도, 한결같이 아름다운 풀과 꽃과 나무를 불러 모아 정원을 만드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서울은 흔히 난개발의 도시, 밀도 높은 고층 아파트로 꽉 찬 도시로 인식된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남산을 비롯한 산들로 켜켜이 둘러싸여 있고 한강이 유유히 흐르며, 옛 궁궐들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건물 옥상, 테라스, 베란다, 밋밋하게 솟아오른 건축 벽면을 활용한 정원은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게 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풍요로움을, 나아가 자연과의 교우를 선사할 것이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조경설계 서안(정영선) 시공 조경설계 서안 전시 기획 피크닉(Piknic) 위치 서울시 중구 퇴계로6가길 30 면적 230m2 준공 2021. 4. 사진 조경설계 서안, 피크닉 정영선은 1941년 대구에서 출생한 한국의 조경가다. 1987년 조경설계 서안을 설립했다. 주요 작품으로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희원’, 예술의전당, 선유도공원, 국립중앙박물관, 청계천, 광화문광장,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기본 및 실시설계 등이 있다. 희원으로 환경문화대상(1998), 선유도공원으로 서울시건축상(2003), 세계조경가협회 동부지역회의 조경작품상(2004), 미국조경가협회 프로페셔널어워드(2004), 한미 원불교 원다르마센터 조경설계로 미국건축가협회상(2013)을 받았다.
EV6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
기업 전시 공간 기획에 조경이 무얼 한다고 프로젝트의 시작은 기아의 새 전기차 ‘EV6’를 홍보하는 전시 기획 중 조경 공간의 의뢰를 HLD가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기획 초기 단계부터 조경이 전시의 시퀀스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논의가 진행됐다. 전기의 흐름과 에너지에서 영감을 받은 유동적 3D 디자인 언어, 자동차의 엔진과 프레임 등을 첨경물로 활용한 쇼 가든, 차를 타고 산과 강을 여행하는 콘셉트의 구릉과 수경 시설 등 거칠지만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아이디어 제안과 논의가 이루어졌다. 수개월간 장소를 물색한 끝에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의 성수동 레이어10을 전시 공간으로 결정했다. 레이어10은 큰 규모의 촬영 스튜디오로 쓰이던 공간으로, 촬영 장비를 나르는 차량을 위한 주차 공간이 널찍한 부지였다. 이 주차장을 정원으로 탈바꿈시켜 전시 공간의 앞마당이자 앞뜰로 역할하도록 하는 공간 기획의 방향을 설정했다. 한 프로젝트에 두 조경 디자인 회사가 양립할 수 있을까 기획이 본 궤도에 오를 시점부터, 공간을 실제로 만들어 나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과 토의를 시작했다.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은 머릿속 생각과 디자인을 실현할 ‘재료’에 대한 것이었다. 그중 식물 재료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이전에 전시 공간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정원사 친구들이 떠올랐다. 인더스트리얼한 공간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자연스럽고, 화려하면서도, 과하지 않고, 트렌디한 정원을 만들 정원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원사 친구들은 프로젝트 참여 제안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든든한 조력자가 생겨 기뻤지만 한 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디자인 팀이 다수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팀들이 각자 개성을 발휘하느라 좋지 못한 결과를 낸 사례를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으며 함께 논의했고 다행히도 순탄하게 서로의 역할을 정리할 수 있었다. HLD가 총괄 디자인 및 공사 감리를 수행하고, 정원사 친구들이 세부 식재 계획과 식재 공사를 맡았다. 좋은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두 조경 회사의 협업이 시작됐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HLD 조경 시공 정원사 친구들(식재 계획 및 가드닝), 아름다운길(포장) 발주 기아자동차, 이노션 월드와이드 건축 설계 및 시공CA Plan(CA 플랜) 위치 서울시 성동구 상원4길 10 준공2021. 8. 사진 유청오 안동혁은 HLD에서 조경가, 도시설계가,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의 JCFO에서 9년간 근무하며 필라델피아 레이스 스트리트 피어, 부산시민공원,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홍콩 침사추이 워터프런트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2년간 대림산업 상품개발팀에서 아크로, e편한세상 브랜드의 조경 상품을 총괄하는 디자인 디렉터로 일했다. 조혜령은 경희대학교, 영국 그리니치 대학교, 서울대학교에서 원예와 조경을 전공했다. 현재 정원사 친구들에서 정원을 계획하고 만드는 일을 한다. 정원은 개인적 휴식과 위안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만남과 소통을 위한 공동체적 가치를 지닌다고 믿고, 프로젝트마다 의미 있는 성과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부산과 서울의 대림e갤러리, 국립수목원 어린이숲정원, 서울식물원 온실기획전시 ‘식물탐험대’와 ‘식물극장’을 기획하고 시공했다. 서울을 시작으로 런던, 파리, 요하네스 버스를 순회하고 있는 ‘DMZ 가든’ 전에도 참여했다.
포레스트 포 체인지
글로벌 목표에 대응하는 파빌리온 포레스트 포 체인지(Forest for Change)는 지난 6월에 열린 2021 런던 디자인 비엔날레(London Design Biennale 2021)전시장에 설치된 파빌리온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디자인이 이 시대의 주요 과제에 어떤 해결책을 줄 수 있는지 묻고자 ‘공명(resonance)’을 주제로 기획되었다. 예술을 통해 우리 삶의 방식과 선택이 가져오는 파급 효과를 살피는 동시에 전염병과 기후변화, 평등과 이민에 이르는 다양한 문제를 탐구했다. 서머셋 하우스(Sommerset House)앞마당에 세워진 파빌리온은 거대한 숲의 형태를 띠며 비엔날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파빌리온 중심부에 세워진 17개의 기둥 조형물은 빈곤 종식, 불평등 해소, 기후변화 대응 등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UN의 글로벌 목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변화가 시작되는 숲 파빌리온 디자인은 이번 비엔날레의 예술 감독인 에스 데블린(Es Devlin)이 맡았다. 그는 비엔날레 기획에 앞서 전시장을 둘러보았는데, 건물 구상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으로 인해 미술관 안뜰에 나무를 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태도에 반기를 들고자 숲이 안뜰 전체를 차지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든Arden 숲이나 그림형제가 보여주는 마법에 걸린 숲이 그러하듯, 문학 작품 속에서 숲은 변화의 공간으로 종종 그려진다. 인류의 행동 변화를 명확히 제시하는 글로벌 목표를 숲에서 만나 상호 작용하는 경험이 변화의 씨앗을 싹틔우기를 바랐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Artist Es Devlin Landscape Designers Philip Jaffa, Fahmi Ardi (Scape Design) Executive Producers Richard Curtis, Kate Garvey and Rachel Waldron Co-Creators and Global Goals Lead Project Everyone Bird Song Soundscape Brian Eno, Cheryl Tipp and the British Library Board Pavilion Music Robert M Thomas Associate Designer Jack Headford (Es Devlin Studio) Production Team Angus Cunningham, Darren Bosworth (Scotscape) Principle Contractor Jez Clarke, Jez Gooden (Beautiful Wonder) Lighting Design and Luminaires John Cullen Lighting Sound Supplier Andrew Hedges (Autograph Sound) Structural Engineers Neil Thomas, Christopher Matthews (Atelier One) 17th Pillar Executive Producer Hannah Cameron 17th Pillar Interactive Creative Director Tom Seymour 17th Pillar Production&Installation Artists&Engineers, Olayade Marcos, William Young, Francis Redman, Elise Plans Supporters Google.org, Salesforce, Pangaia, Google Arts and Culture, Bloomberg Philanthropies Material Partner Amorim Location Somerset House, London, UK Installation 2021. 6. 1. ~ 2021. 6. 27. Photographs Ed Reeve, Project Everyone, Scotscape 에스 데블린(Es Devlin)은 영국 출신의 예술가이자 무대 디자이너다. 음악, 언어, 빛을 융합해 역동적인 조형물과 공간을 선보여왔다. 2016년 리우 올림픽 개막식과 2012년 런던 올림픽 폐회식 무대, 2021년 두바이 엑스포 영국관 등을 디자인했으며, 2021년 런던 디자인 비엔날레의 예술 감독을 맡았다.
고케다마 포레스트
‘필라델피아 플라워 쇼(Philadelphia Flower Show)’는 펜실베이니아 원예협회가 매년 개최하는 원예 및 정원 행사다. 2021년 6월, 필라델피아 플라워 쇼의 일환으로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공원FDR Park에 ‘고케다마 포레스트(Kokedama Forest)’가 조성되었다. 식물과 토양의 관계 고케다마 포레스트는 조형적으로 구현해낸 숲의 미니어처다. 섬세한 금속 네트워크 위로 1,200개 이상의고케다마들이 뒤집힌 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일본어고케다마는 이끼공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고케(こけ)는 이끼, 다마(だま)는 응어리를 의미한다. 이 고케다마를토양과 식물의 친밀한 관계를 시적으로 승화시킨 자연과 예술의 결합으로 해석했다. 고케다마 포레스트에 들어서면 공중에 떠 있는 고케다마들이 환영해주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2.3m높이의 3차원 금속 구조물이 고케다마에서 자라난 수백 그루의 묘목을 지탱하며 토양과의 친밀한 관계를보여준다. 이때 강철 소재는 살아 있는 생태계에 내재된 강인함과 섬세함이라는 모순적 조화를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틱한 경관을 선사하는 이 조형적 숲은 중요한 생물 서식지이지만 늘 주목받지 못하는 토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Architect/Landscape Architect Nomad Studio Partners Kazumi Garden, Timber Forge Woodworks, PrecisionSigns & Labels, PinelandsNursery, Tyler Arboretum, NorthParkCenter Collaborators Daniel Bures, Carlos Comendador, Isabel MartinCabello, Luke Amey Volunteers Gadea de la Fuente, Ana Stolle, Ana Nieto, Fernandode la Fuente Location FDR Park, Philadelphia, Pennsylvania, USA Area 92m2 Installation 2021. 7. 노마드 스튜디오(Nomad Studio)는 윌리엄 로버츠(William E. Roberts)와 로라 샌틴(Laura Santin)이 2009년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스튜디오다. 혁신적인 장소특정적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예술과 경관의 상호 작용을 탐구하고, 이 상호 작용이 사회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다.
대구 남산 롯데캐슬 센트럴스카이
대구 롯데 남산 센트럴스카이는 11개동 987세대를 수용하는 주거 단지다. 대구의 오랜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남산동에 있으며, 주변으로 구한말 천주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남산100년 향수길이 흐른다. 단지 남쪽 경계가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과 맞닿아 있는데, 일제 식민지기에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으로 지은 건축물로 짙은 적갈색 점토 벽돌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휘게(hygge)라이프를 콘셉트로 순간을 즐기고 여유 넘치는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외부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다.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적벽돌을 도입해 옛 정취를 풍기는 독특한 단지의 감성을 형성하고, 동과 동 사이로 야트막한 언덕과 정감 있는 마을 풍경이 자연스럽게 보이게 했다. 곳곳에 조성한 정원과 정원 사이의 소로에는 단지 바깥의 낮은 건축물과 어울리는 낮은 교목을 심었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바깥의 풍경이 내부의 풍경과 하나가 된다. 더불어 이팝나무길, 느티나무길, 청단풍길, 왕벚나무길 등 다양한 산책로를 조성했다. 계절에 상관없이 잎과 꽃을 틔우는 수목 덕분에 단지를 거니는 내내 녹음을 즐길 수 있다. 단지는 크게 여섯 공간으로 나뉜다. 사계절 내내 꽃을 틔우는 콘셉트로 만든 계절정원(봄정원, 여름정원, 가을정원, 겨울정원), 커뮤니티 시설과 연결된 선큰 공간의 분재원,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쉼터인 숲속도서관이 주민들에게 다채로운 야외 활동의 장을 제공한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제이티이엔지 시공 롯데건설(권용석, 문상용) 조경 시공 다원녹화건설(김지용, 이한영) 위치 대구시 중구 재마루길 77 일원 규모11개동 987세대 면적12,736.41m2 완공2021. 9. 사진 유청오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은근히 낯은 가려도 프로젝트는 안 가려요
수취인 불명의 전파 라디오 웨이브 연재를 통해 미개봉작(업)을 개봉하게 돼서 기쁜 한편, 철(학) 없음, 눈치 없음, 맥락 없음, 판단 착오, 아마추어리즘 등 그다지 대단한 게 ‘없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크다. 경험과 학력, 스펙이 미천해 작은 회사를 운영 중이고 소개할 프로젝트가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원고 청탁을 거절하지 않은 이유는 엘리트, 에이스, 주류 집단에 소속되지 않거나 공모 수상, 비범한 능력, 트렌디한 감각을 당장 갖추지 않더라도 지속적 조경 활동을 할 수 있음을 누군가에게는 알리기 위함이다. 조경 덕후 나는 스스로를 ‘조경 덕후’로 소개한다. 조경과 관련된 인물, 새로 만든 공간, 도시·녹지 관련 정책과 법규, 도면 및 내역, 공모 결과 등 거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탐방하고, 사모으고, 읽고, 저장하고, 대화를 나눈다. 덕후로서 공들이는 것 중 하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에서 조경의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다. 작은 프로젝트여도 거절하지 못하고 발전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일에도 진심으로 임한다. 그 과정에서 회사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거나 정식 참여사로 이름을 올리지 못해도 조경의 가치를 프로젝트 관계자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말이다(그렇다고 회사 운영이 위험해질 상황은 만들지 않는다). 나의 미개봉작은 대개 덕후적 선택과 기계적 집중의 결과이자 조경 관련 작업, 활동, 행위를 사랑해서 생긴 부산물이다. 대부분 미완의 작업이거나 망상적 희망의 결과물이다. 조경가이자 일반인으로서 해야 할 말과 담아야 할 시대상을 주목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에 투영한다. 즐겁다. 응원과 인정도 받는다. 공식적 역할을 인정받을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라디오 또는 김지환의 정체성이 반영될 가능성은 커진다. 큰 프로젝트일수록 사공이 많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내 뜻대로 이끌 수 있는 이름 없는 작업을 지속한다. 공모, 제안 이외에 무상으로 하는 일은 없다. 민주주의정원 ‘민주주의정원’은 2016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출품작으로, 2015 코리아가든쇼 출품작 ‘소 잃은 외양간’, 2016 서울정원박람회 출품작 ‘아낌없이 쓰는 사람’과 함께 사회 문제 3연작을 이룬다. ‘소 잃은 외양간’은 세월호와 관련해 사회적 대참사를 언급했고, ‘아낌없이 쓰는 사람’은 평창올림픽을 위해 500년 된 원시림을 훼손한 사건을 주제로 개발과 보존을 이야기했다. 민주주의정원에는 2015년의 사회 분위기를 담았다. 당시 중앙정부는 집권을 위해 지방정부를 탄압하고 헌법에 보장된 지방자치제를 축소하는 듯했다. 이를 반영하고자 정원을 이루는 모든 개념을 헌법에서 가져왔다. 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모티브 삼아 정원 입구에 대나무숲을 만들고, 숲 속의 외침을 밖으로 퍼트리는 붉은 깔때기를 더했다. 조선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 연출 기법, 식물 배치, 의미 부여와 같은 답 없는 한국성 찾기의 일환이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로 한국성을 표현하려는 실험이자 단순하고도 강렬한 이미지를 찾으려는 강박에서 비롯된 디자인이다. 가든쇼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혼합 식재, 비움과 위요, 한국성을 위시한 조선 시대풍에 반발하는 33세 김지환의 분열적 정신 세계의 반영이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김지환은 영남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씨토포스와 스튜디오엘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는 조경작업장 라디오의 대표다. 스스로를 작업반장, 설계공이라 칭하듯 설계와 시공 사이의 중재자(신호등) 역할의 중요성을 인지해 그 관계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사회적 대기업을 만들어 도시 내 모든 디자인을 손대고 싶어 하는 야망과 유명 건축가와 조경가의 작업을 보며 절망과 환호를 즐기는 이상주의적 성향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고 믿는다. 때론 못다 한 말을 해시태그로 덧붙이기도 한다. #라디오에이스 #정원작가 #은근히낯가려요 #조경뚱
[숲자락 식재 탐험기] 식물적용학과 숲자락 서식처
디자인은 점과 선 그리고 면으로 이루어진다. 꽃잎이 점이라면, 바람에 흩날리는 가느다란 잎은 선이다. 멀리서 바라본 숲은 하나의 면이 되기도 한다. 살아 있는 혹은 죽을 수도 있는 식물을 소재로 디자인하는 조경가들은 아름다운 도면 한 장으로 디자인을 완성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조경가들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식물을 바라보는 대중의 안목이 높아졌다. 정원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공간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취향이 다양해져서 모든 것이 하나의 유행을 따라 물밀듯 밀려가는 시대는 이제 옛일이 되었다. 정원을 주제로 한 전시에 사람들이 주목하고, 플랜테리어로 내부를 꾸린 상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 공간의 규모와 스펙트럼이 다양해지고 있다. 조경가가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식물적용학이라는 말이 생소할 것이다. 식물적용학은 평면의 형태와 입면에 그치지 않고 계절과 미기후, 토양과 입지 조건 등의 환경을 바탕으로 자연의 순리에 맞게 바른 장소에 바른 식물을 ‘적용’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식물지리학과 식물사회학에서 파생된 과학적인 접근법을 취한다. 식물을 소재로 다루는 조경가가 갖춰야 할 당연한 소양처럼 보이지만, 컴퓨터 속 이미지로 식물을 심는 사람들에겐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다. 조경학과를 막 나온 졸업생이 설계사무실에서 도면을 그릴 때 아는 식물이 몇 종류나 될까. 도면에 그린 식물을 정확히 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마 그때 도면에 그린 원들은 식물이 빛을 얼마나 받는지, 토양의 상태는 어떠한지 고려하지 못한 채 녹지 면적을 채운 동그라미들에 불과할 것이다. 2021년 봄,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thirdspace-berlin.com)에서 온라인으로 식물적용학 시즌 1 강의가 진행됐다. 수강생 중 42명이 식물탐험대를 결성했고, 첫 번째 과제로 숲자락 식물을 찾아내는 일이 주어졌다. 고정희 대표(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가 말하는 식물적용학이란 ‘식물과 함께’ 정원을 만들기 위해 또는 도시 공간의 생태적 환경을 책임지기 위해 필요한 기초 이론과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며, 식물지리학, 식물형태학, 식물사회학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최종 목표는 지속가능한 정원과 도시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종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전략,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공간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식물탐험대는 2021년 봄,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의 식물적용학 수강생 42명이 결성한 그룹이다. 강보경, 김은정, 김장훈, 노진선, 오세훈, 이양희, 정은하 등 42명의 대원들을 대표하는 일곱 명의 집필진은 정원·조경 분야의 실무자와 학계, 수목원·식물원의 연구자 등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숲자락의 단면을 정원에 도입하기 위해 떠난 흥미롭고 유익한 탐험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북 스케이프] 인생의 여름 같은 정원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
아무 말이나 써놓고 끝에 ‘여름이었다’만 붙이면 그럴싸해진다는 말이 트위터에서 유행하더니, 청춘의 눈부신 한순간을 수식하는 말이 되었다. 이 중의적 여름과 정원을 연결 지어 생각해본다. 끊임없는 시간의 변화를 모두 담는 곳이 정원이라지만, 영국의 소설가 에블린 워(Evelyn Waugh)의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Brideshead Revisited)』(1945) 속 정원만큼 이 여름에 어울리는 곳이 또 있을까.1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영국, 모든 것에 열정을 잃기 시작한 39세의 찰스 라이더 중대장이 20년 만에 브라이즈헤드 저택을 보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부대가 숙영하는 장소의 이름을 듣는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 매료되었던 세월의 환영들”이 날아오른다. 부하가 이런 데를 본 적이 없을 거라고 하자 찰스는 예전에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 있었다. 그곳을 다 알았다. 그곳은 브라이즈헤드, 찰스의 아르카디아(Arcadia)였다. 찰스가 회상하는 20년 전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 다시는 이런 전쟁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1920년대의 영국이다. 막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한 중산층 출신의 찰스는 우연한 기회로 귀족 가문의 세바스찬에게 매혹당하고 친구가 된다. 소년에서 성인이 되는 시기, 이들이 함께 보낸 이 찬란한 시간은 유년기의 마지막 여름이었다. 6월의 구름 한 점 없는 날, 메도스위트 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의 온갖 향기로 공기가 묵직할 때 찰스는 브라이즈헤드를 처음 방문한다. 이후 여러 번 이곳을 찾았지만 찰스의 마음에는 이날의 모습이 각인되었다. 브라이즈헤드는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저택과 방대하고 전형적인 풍경화식 정원으로 묘사된다. “1대가 집을 지으면 2세가 돔을 올리고 3세가 부속 건물을 확장하고 댐을 짓던” 시기는 지났지만, 다양한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저택 내부 장식은 “그 자체로 미학 교육”일 정도로 풍요롭다. 테라스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원에는 호수가 여럿 있고, 별관 너머로는 과수원이, 그 뒤로는 나무가 우거진 산비탈이 이어진다. 장려한 정원은 화단과 회양목 토피어리로 장식되었고, 조각상과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분수가 인상적이다. 저자가 모델로 삼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드라마와 영화 모두 영국 요크에 있는 캐슬 하워드(Castle Howard)를 배경으로 한다. 찰스는 브라이즈헤드 저택에서 아름다움을 새로 발견한다. 그의 예술적 충동이 깨어난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국내에서는 『옥스포드의 떠돌이들』(강종철 역, 김영사, 1983)이라는 제목으로 첫 출간되어 절판됐고, 현재는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백지민 역, 민음사, 2018)가 있다. 1981년 영국에서 방영된 동명의 11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서는 제레미 아이언스가 찰스 라이더 역을 맡았다. 2015년아셰트 오디오(Hachette Audio)가 제작한 오디오북에서 그의 원서 낭송을 들을 수 있다. 2008년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목마·신트리 공원 맞춤형 리모델링 설계공모
지난 8월 20일, ‘목마·신트리 공원 맞춤형 리모델링 설계공모’(이하 목마·신트리 설계공모)의 당선작이 발표됐다. 양천구는 2018년부터 1980년대 목동지구 택지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다섯 개 공원(목마공원, 파리공원, 오목공원, 양천공원, 신트리공원)을 리모델링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조성된 지 30년이 넘은 노후 공원을 현재와 미래 세대의 다양한 여가를 수용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취지다.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양천공원을 재조성했으며, 파리공원은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다. 5월 31일부터 7월 31일까지 열린 목마·신트리 설계공모의 목표는 양천구 내 주요 생태 축을 잇고 공원을 경계로 분할된 지역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목마공원과 신트리공원에 대한 리모델링 계획을 각각 세워 두 개의 설계안을 제시해야 했다. 성종상(서울대학교 교수), 최원만(신화컨설팅 대표), 김현(단국대학교 교수), 서영애(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여섯 개의 참가 팀 중 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바이런VIRON+스튜디오이공일 조경기술사사무소의 ‘오늘의 문화, 내일의 공원’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작은 기존의 공간 구조와 식생을 적절히 살리면서 새로운 질서와 쓰임새를 적극적으로 제안했으며, 목마공원의 경우 과거와 현재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건강 치유’라는 독특한 주제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등작은 공원 내 기존 숲의 장점을 극대화한 지오조경기술사사무소에게, 3등작은 정원을 콘셉트로 시민이 참여하는 공원을 제시한 그람디자인에게 돌아갔다. 당선 팀은 기본 및 실시설계를 올해까지 마무리하고 2022년 착공에 돌입한다. 양천구는 추후 공모 수상작에 대한 전시를 열어 다양한 도시공원 리모델링 아이디어를 시민들과 공유할 예정이다. 새롭게 변모할 목마공원과 신트리공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당선작을 소개한다. 오늘의 문화, 내일의 공원 1980년대의 신도시 공원은 법적 요구 조건에 따라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기반 시설로 조성되었다. 당시의 공원들은 건조한 도시 환경 속에서 녹지를 제공하며 잠깐의 여유와 휴식을 제공하는 기본적 기능만을 수행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 도로 소음을 줄이기 위해 조성된 지형과 녹지는 울창한 숲이 되었고, 빈 잔디밭과 다목적 마당은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받아들여 지역의 삶과 문화를 담은 공간으로 변모했다. 공원에 축적된 지역 문화를 보존하고 미래 세대의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자 한다. 기존 공원의 골격과 중요 프로그램을 존중하되 공공성을 부여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을 만든다. 무질서하게 산재한 시설을 개선하고 공원의 중심이 되는 시설을 배치해 다양한 편익을 제공한다. 활용도가 낮고 비좁은 잔디 마당은 그 면적을 넓혀 개방성을 확보한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기웃거리는 편집자] 서울공예박물관, 의도와 의도 사이
“도심 한가운데 이런 오픈스페이스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죠.” 서울공예박물관 앞마당으로 들어서며 박윤진 소장(오피스박김)이 말했다. 마른 흙바닥과 부분부분 들어선 석재 포장, 둥그런 잔디밭과 가장자리에 놓인 몇그루 나무가 공간의 전부였다. 박 소장의 이야기를 듣고 뒤를 돌아보니 안국동 일대를 빼곡하게 채운 건물과 도로가 새삼스럽다. 항상 둘러싸여 있어 갑갑한 줄도 몰랐네. 번잡한 풍경으로부터 돌아서 탁 트인 앞마당을 마주한다. 눈이 한결 편안하다. 공백이 있어 더 나은, 필요에 의해 비워 만든 공간이다. 에디터로서 가장 반가운 소식은 새로운 공간의 준공이다. 조경의 경우 가뭄에 콩 나듯 들려오지만, 가을엔 이따금씩 좋은 소식이 날아든다. 미리 받은 설계 자료를 챙겨 사무실 밖을 나선다. 합법적으로(?)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취재의 또 다른 묘미는 공간에 대한 이해와 감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곳이든 직접 가보고 안 가보고의 차이는 크니까. 여기에 설계가의 동행이 더해지면 좀 더 흥이 난다. 만든 사람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무의식 저편에 있던 직업 정신이 소생한다. 아주 잠깐이지만 일할 맛이 난다. 박물관은 본래 오래된 고등학교였다. 건물로 들어가 내부를 구경하는데 박윤진 소장이 계단에서 멈췄다. “이 계단의 느낌, 너무 좋지 않나요?” 박물관 안엔 학교였을 시절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웠는데, 그나마 계단이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익숙한 석재 계단과 그 끝의 황동 신주. 이런 계단이었지. 급식 먹으러 두 칸 세 칸 겁 없이 뛰어 내려가던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지만 박소장처럼 사랑(?)에 빠지진 않았다. 건물 밖을 나가서야 옛 학교의 계단이 불 지핀 설계 욕구를 어떤 식으로 해소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박물관 맞은편의 도로와 인접한 진입 계단이 그 대상이다. 사각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켜켜이 쌓아 만든 계단은 어렴풋하게 옛 계단과 닮아 있었다. 건물 주변부를 부드럽게 침투하는 낮고 평평한 지형은 대상지에 낮게 깔린 과거와 맥을 같이 한다. 흙바닥이 풍문여고의 운동장을 기리듯 석재 및 콘크리트 포장과 잔디밭 또한 땅의 기억을 반영하고 있다. 박물관 뒤편엔 둥치가 아름은 되는 은행나무가 있고, 그 아래로 야트막한 잔디 지형이 펼쳐진다. 진입 공간의 잔디와는 다른 구배로 설계된 이 언덕은 예전 조선 시대 별궁이 있을 때의 지형을 살린 거라고 했다. 당시의 땅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하던 중, 한 남자와 그의 무릎 높이밖에 안 되는 작은 아이가 보였다. 좁은 보폭으로 아장아장 언덕을 오르는 아이의 발을 통해 미세한 지형 변화가 읽히는 듯도 했다. 언덕을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천천히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 잔디를 따라 층층이 놓인 선형의 콘크리트 띠 때문인지 내려가는 발걸음은 사뿐사뿐. 반대편에 서니 시선은 자연스럽게 은행나무로 향했다. “은행나무를 셀러브레이션(celebration)”했다는 설명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 말 때문에 몇 번 더 나무를 보았고, 그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의 흐름과 결을 같이 할 것만 같은 언덕을 두세 번 더 오르내렸다. 수백 년 된 나무가 보아온 풍경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했던 것 같다. 나무도 보고 있었을까? 방금 언덕을 오르던 작은 아이를. 취재를 다녀와 며칠 후, 인터넷 쇼핑을 하던 중 모델이 등지고 있는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공예박물관의 앞마당과 잔디 언덕이었다. 오픈한 지 얼마나 됐다고. 사람들 참 빠르다. 프로젝트 소개를 위해 오피스박김이 제공한 자료에는 다양한 인스타그램 계정에 게시된 공예박물관의 사진도 있었다. 여러 웹사이트에 진열된 공간을 종이 위에 다시 펼치며 생각한다. 이미 많은 사람이 나름대로 잘 즐기고 있는 공간에 담긴 의도를 굳이 알려야 할 필요가 있나? 아 주 그렇다고는 못하지만 마냥 무용하지도 않다고 말하고 싶다. 만든 이의 의도와 의도 사이를 배회할 때 들려오는 어떤 이야기가 있 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따금 찾아오는 그런 순간이 나쁘지 않기도 하고.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어떤 종류의 상상력
할아버지의 단짝 친구인 고물상 아저씨는 가끔 자신의 파란 트럭 아래를 살핀다. 거기에는 동네 고양이들을 위한 작은 그릇 두 개가 있다. 하루는 그 습하고 어두운 곳의 풍경이 궁금해 트럭 아래를 들여다봤다가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생각과 달리 아주 아늑했고 배를 불린 채 누운 고양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날 이후 가끔 골목을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간식을 주는 사람이 많은 독서실 앞 쉼터가 그들에게는 자판기 같은 공간일까, 무릎 높이 정도 되는 화분이 옹기종기 모인 곳은 작은 공원 같을까. 작은 상상력을 동원하면 지겹기만 했던 일상 공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흔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드는 창의적 힘을 상상력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사실 상상력의 범주는 더 넓고, 타자의 삶에 나를 이입해 세계를 넓히는 데도 상상력이 쓰인다. 내가 고양이의 시선으로 골목을 이해하려 애쓴 것처럼 말이다. 황현산은 이를 ‘어떤 종류의 상상력’이라고 불렀는데, 이 능력은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더욱 그 가치를 발한다. 가령 “세상에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은 구의역의 수리공을 진실로 제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위선자가 아닌지 자문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비록 위선적일지라도 그 생각을 마음에 새기려고 애쓰는 사람도 많다.”1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은 “어떤 종류의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이며, 슬퍼할 줄도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들과 가장 작은 감정까지 간접화2된 사람들의 차이이다. 사이코패스를 다른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이 독특한 능력을 키우고 싶을 때 전시장에 가곤 한다. 물론 작품에 담긴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구시렁대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전시장의 작품들은 내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예술에서의 조경을 다룬 작품을 여럿 실은 이달에는 꼭 한 번은 전시장에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추석 연휴를 틈타 기형적인 단절이 일어나는 세계 속의 두 남자를 만나러 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3 한 남자가 눈이 잔뜩 내린 산길을 오른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외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곳의 이름은 자유의 마을. 하지만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남한도 북한도 아니게 된 이 지역은 외부와의 통행이 제한된, 자유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주민들은 서른두 살이 되면 마을에서 계속 살아갈지 밖으로 떠날지 결정해야 한다. 줄곧 땅만 보며 걷던 남자는 돌연 무릎을 꿇고 앉아 눈 속에 파묻힌 식물을 소중히 캐낸다. 채집된 식물들은 얼마 뒤 풍선에 매달려 하늘을 난다. 마을에 남는 쪽을 택한 남자가 바깥 세상에 가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보내는 식물이다. 둥실둥실 떠오른 식물은 먼 미래 또 다른 고립된 세계에 살고 있는 남자에게 가닿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무균실을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매일 같은 일과를 보내던 그는 우연히 하늘을 떠돌던 식물 표본을 접하고, 있는 줄 몰랐던 바깥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두 남자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모니터에서 상영된다. 고립된 세계를 암시하듯 모니터는 서로 등을 맞대고 있지만, 조명과 스피커는 공유되기에 경보음이 울리거나 느닷없이 불빛이 점멸할 때면 건너편 세계가 곧장 이쪽 세계를 침범한다. 이런 장치는 영상과 더불어 자유의 마을의 이야기를 팬데믹으로 수많은 단절을 경험하게 된 우리의 현실로 확장시킨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미래의 남자가 식물을 통해 그린 세상의 모습이 궁금했다. 머릿속에 어떤 풍경이 펼쳐졌기에 안온한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오고 싶어졌을까. 아마 그 역시 어떤 종류의 상상력을 지닌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 식물이 사라진다는 건 그와 연관된 복합 생태계와 인류 문화유산의 한 부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김아연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34쪽). 시시각각 망가지는 지구를 조금씩이나마 치유해주는 건 아마 작은 씨앗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늘 그들에게 빚을 지고 얹혀 간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때때로 골목을 길고양이나 돌 틈에 핀 잡초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면서. *각주 정리 1.황현산, “간접화의 세계”, 「한겨레」 2016년 7월 14일. 2.황현산은 사람들이 수많은 인터페이스를 거쳐 실제 상황을 접하며 우리가 삶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과 위험,치욕, 때로는 죽음까지도 간접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3.문경원과 전준호의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2022년 2월 20일까지 열린다. 2009년부터 함께 활동한 두 작가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예술의 역할을 탐구했다. 그중 ‘미지에서 온 소식’은 2012년부터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로 지난 10여 년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PRODCUT] 여름부터 겨울까지 활용도 높은 ‘스마트 그늘막’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도시 곳곳에 그늘막이 설치되고 있다. 하지만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 대부분의 그늘 시설물은 여름철에만 활발히 사용되며, 일반적인 어닝 구조의 그늘막은 잦은 고장을 일으켜 도리어 불편을 안기기도 한다. 디자인파크개발의 ‘스마트 그늘막’은 자동 개폐식 텔레스코픽 차양, 미세먼지 알림, 온습도 측정 등의 기능을 갖추고 있어 사계절 내내 편리한 이용이 가능하다. 스마트 그늘막은 기본형과 고급형으로 나뉜다. 기본형은 일정 조도를 기준으로 차양이 접혔다 펴지며, 갑작스러운 강풍이나 우천에 대응해 자동으로 접힌다. 고급형은 기본형에 온습도와 미세먼지 농도를 표시하는 기능을 더한 제품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할 수 있어 사람이 일일이 다니며 그늘막을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 개별 그늘막뿐만 아니라 관리 대상을 구역 단위로 설정하면 여러 개의 그늘막을 한꺼번에 열고 닫을 수 있다. 강판, ABS 플라스틱, 방수천, 알루미늄 등 변색과 부식에 강한 소재로 구성되어 유동 인구가 많은 교차로, 가로수가 많지 않은 오픈스페이스, 버스 정류장 등에 설치하기 적합하다. TEL. 1577-0343 WEB. designpar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