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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복수의 얼굴을 지닌 홍콩, 표면 너머의 도시
Wandering Eyes, Curator's View: Hong Kong, the Multifaceted City
  • 환경과조경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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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작가 케이시 웡(Kacey Wong)의 초소형 수상 가옥 ‘패들링 홈(Paddling Home, 2009)’ Wood, Ceramic Tiles, Aluminum Windows, Stainless Steel Gate, Pipes, Plastic Barrels 278 × 220 × 290cm.

 

지난 2월호에 소개한 아시아의 신흥 도시 선전에 비해 홍콩은 거의 100년을 앞서 나간 대선배 격 메가 시티다. 일찍이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아시아에서 나름 ‘오래된 현대 도시’가 되었으나, 여전히 홍콩은 첨단 도시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중이다. 국제 금융 경제 도시, 개성 있는 마천루, 화려한 야경과 몰려드는 쇼핑족, 코즈모폴리턴 시티, 동서양이 혼재된 도시 풍경, 왕가위 영화와 홍콩 느와르 전성시대, 딤섬과 다국적 식당, 영어와 광둥어의 교차, 아시아의 대표 아트 마켓인 아트 바젤 홍콩, 세계적인 미술 경매 회사, 중국으로의 반환 이후 사회·정치적 변화 등 홍콩하면 연상되는 이미지와 키워드는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홍콩이라는 이름 하나에 붙은 ‘복수의 얼굴’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번 지면에서는 홍콩을 향한 수많은 클리셰를 벗어나 도시의 리얼리티에 침투하는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표면 너머의 도시성에 접근하고자 한다.


홍콩이라는 스펙터클, 거대 자본의 최첨단 문화 도시: 아트 바젤 홍콩

최근 홍콩은 금융, 경제, 관광 도시라는 기존의 타이틀에 더해 문화 도시라는 명성도 쌓았다. 그 대표적인 행사로는 매해 3월에 열리는 아트 페어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을 들 수 있다.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이 ‘홍콩 아트 페어’를 2012년 인수하면서 급부상한 ‘아트 바젤 홍콩’은 동서양 40여 나라의 250여 갤러리의 참여를 끌어내는 등 전 세계 미술인과 컬렉터를 홍콩으로 불러 모아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에 섰다. 페어 기간 동안 문화 예술 기관과 홍콩 미술계가 대거 협력한 부대 프로그램만도 200여 개가 진행되고 있어, 상업적 가치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퀄리티를 갖춘 홍콩 최고의 문화 예술 행사다. 이러한 가운데 2014년부터 시도된 초대형 ‘오디오-비주얼 프로젝트’는 국제 도시 홍콩의 스펙터클을 화려하게 뽐낸 획기적인 사례로 평가 받는다. 마천루의 도시 야경을 활용한 이 프로젝트에서, 2014년 독일 작가 카스텐니콜라이Carsten Nicolai는 490m의 국제상업센터ICC에 특정 주파수의 조명을 비춰 도시 경관 전체를 미디어 아트로 만들었다.


현대 미술은 막강한 자본의 힘을 빌려 도시 이미지를 첨단 예술 문화 도시로 업그레이드시킨다. 이러한 문화 도시 이미지는 전 세계의 수많은 도시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으며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델이다. 하지만 최고의 자본, 기술, 미술의 만남으로부터 실현된 ‘찬란한 밤’을 조망하는 사람들은 결국 현대 미술의 향유층, 즉 호화로운 파티에 초대된 전 세계의 VIP뿐이다. 건물 표면을 스크린 마냥 자유롭게 유동하는 인공의 불빛은 마천루로 상징화된 금융 도시 이미지를 세련된 첨단 현대 미술로 재포장한다. 끝없이 하늘로 솟는 마천루로 시선이 향할수록, 우리는 이 도시의 리얼리티로부터 미끄러진다.

도시 경관이 스크린이 된 홍콩, 그 뒤로는 건물의 밀집도 이상으로 겹겹이 쌓여온 시공간의 레이어가 가려진다. 마천루를 타고 미끄러지는 매혹적인 표면을 꿰뚫고 그 안에 숨겨진 도시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홍콩처럼 스펙터클의 범주가 다양할 경우에는 더욱 쉽지 않다. 경험의 횟수만으로 홍콩의 실체는 경험되지 않는다. 발걸음이 잦아질수록 도시의 표면에 작동하는 ‘복수의 얼굴’만을 경험한다. 홍콩의 스펙터클에 매료된 관광객이나 이방인이라면 스펙터클의 표면을 파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복수의 얼굴이 대변하는 혼재의 도시, 혼잡의 도시 홍콩을 어떻게 들여다 볼 것인가? 도시의 표면 아래 작동하는 다층의 이야기는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홍콩의 도시성을 파고드는 예술가의 작업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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