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Reading Jung Young Sun and Her Landscape Works
    지난 7월 3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에서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가 개최됐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연계 학술행사로 마련된 이 심포지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한국조경가협회와 본지가 협력해 진행했다. 행사는 ‘조경가 정영선을 읽다’, ‘정영선의 작업을 읽다’, ‘정영선과의 대화’의 세 개 세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세션 ‘조경가 정영선을 읽다’에서는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와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가 정영선에 대한 학술적 비평의 텍스트 두 편을 발제했다. 두 번째 세션 ‘정영선의 작업을 읽다’에는 협업 파트너, 사제지간 등 정영선과 다양하게 관계 맺은 6인의 발제자를 초대했다. 이들은 정영선이 설계한 장소를 조명하며 그의 설계 태도, 철학, 작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 세션 ‘정영선과의 대화’에서는 정영선이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배형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와 함께 대담을 나누고, 관객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의 발제와 대담을 지면에 글의 형태로 기록한다. 교차하고 비껴가는 여러 시선이 오늘날 조경설계에서 정영선이 갖는 가치를 새롭게 그려주기를 기대하며, 지면에 옮기는 과정에서 세션의 구분을 없앴다. 이번 학술행사를 촉발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오는 9월 22일까지 진행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태도가 경관이 될 때: 정영선의 조경_배정한 유산의 창조, 정영선이 만든 한국 조경설계의 변곡점_김아연 맥시멈과 미니멈_박승진 협업의 유산을 읽다_전은정 땅을 읽는 법을 배우다_이호영 선유도공원이 건네는 위로_조용준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과 디올 성수, 미래 세대의 수용_김선미 한국 조경 가치의 시각화, 아모레퍼시픽 본사_백규리 정영선과의 대화: 식물과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_정영선, 조경진, 배형민 정영선을 읽는 시간_글 최영준 2024년 여름, 우리는 정영선의 조경이 일반인에게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된 계절을 통과하고 있다. 일 평균 1,300명의 관람자가 조경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있고, 공중파 미디어 콘텐츠는 물론 아이들의 채널에서도 땅에 시를 쓰는 할머니가 인기다. 그 인기와 인지의 바탕이 1세대 여성 조경가 정영선이라는 커리어의 특수성과 소탈한 성품에서 기인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중이 가장 크게 놀란 순간은 아마 그가 설계하거나 기획을 이끈 일의 목록을 마주쳤을 때일 것이다. 많은 이가 일상적으로 방문하던 장소들이 그녀가 살아 숨 쉬는 많은 것을 담아낸 땅들이란 걸 알았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그 장소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궁금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학술행사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 기획의 시작점이었다. 그가 만든 여러 땅들의 작업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전통과 동시대성을 모두 품는 광폭의 시대정신, 국토를 다루는 공공과 기업 및 개인을 포괄하는 클라이언트의 다채로움, 작은 뜰에서 초대형 공원까지 다채로운 규모. 다양한 관련 분야와 협업해 온 두꺼운 포트폴리오는 다채로운 독자의 목소리로 들어볼 가치가 있는 현대 조경의 역사이자 흥미로운 독해의 대상이다.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는 첫 순서인 ‘조경가 정영선을 읽다’는 지난 50년 동안 조경가의 길을 걸어오며 땅과 관계 맺어 온 그녀의 인생과 지사地史를 관통해 줄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이 마땅했다. 전시 도록에도 수록된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의 글은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이야기와 변곡점이 된 주요 작업 세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정영선을 조망한다. 경관을 대하는 태도가 그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경관이 되었다는 해석은 정영선을 아는 데서 이해하는 단계로 이끌어 준다.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는 직접 조경 작업을 하는 현역 동료로서의 시선과 정영선이 한국 조경 분야에 드리우는 명과 암을 동시에 들려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한국 조경의 여러 변곡점을 짚으며 이어간 그의 발제는 정영선의 조경이 왜 가장 평범한 혁명일 수 있는지 피부에 와 닿도록 설명해준다. 두 번째 세션 ‘정영선의 작업을 읽다’에는 정영선이 만든 땅의 너른 스펙트럼을 담아줄 다채로운 성격의 발제자를 초대하고, 각자 한 장소에 대한 감상과 비평을 담아줄 것을 부탁했다. 다각도의 시선으로 작업을 읽기 위해, 정영선의 작업과 서로 다른 관계성을 갖는 세 그룹을 설정했다. 첫 그룹으로 조경설계 서안(이하 서안)이란 조경 작업의 울타리에서 정영선과 함께 협업하고 사제 및 조력 관계를 맺었던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 전은정 소장(조경포레)을 초청했다. 서안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근거리에서 정영선과 직접 상호 작용하며 배우고 호흡했던 조경 유산에 대해 들려준다. 다음으론 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의 작업을 관찰하고 경험하며 성장했고 현재 자신의 작업을 가장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동시대 조경가 이호영 소장(HLD)과 조용준 소장(CA조경기술사사무소)을 섭외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정영선의 조경이 그들에게 끼친 영향력과 자극,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도한 경험을 듣고 싶었다. 이호영 소장은 서안에서 실무를 시작했으나, 정영선과 직접적인 협업의 기회가 적었기에 ‘어깨너머 스스로 배운’ 정영선 조경에 대한 연구 기록과 그것이 본인의 작업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들려준다. 직접적 접점이 없었던 조용준 소장은 ‘원거리에서 관찰한’ 정영선의 조경을 선유도공원 평면의 모사를 통해 탐독한다. 세 번째 그룹에는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조경에 입문한 이들이자 조경계에서 각자의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김선미 부장(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과 백규리 매니저(현대엔지니어링 건축조경팀)를 초대했다. ‘다음 세대의 해석과 수용’이라 이름 붙인 이 그룹이 정영선이 만든 땅의 공동 생산자나 후속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어떻게 정영선의 조경을 받아들이고, 어떠한 태도와 호흡으로 청자에게 전달하는지를 담는 것도 의미있다고 보았다. 정영선이 작업을 통해 제시한 지속가능성과 한국성에 대한 정신과 그 해석을두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마지막 순서는 이번 전시의 작가인 정영선과의 직접 대화를 나누는 ‘정영선과의 대화’로 구성했다. 대화의 시작을 열고, 작가에게 주요한 질문을 던질 대담자로서 정영선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와 대학원에서 사제관계이기도 했던 배형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를 섭외했다. 최종 순서로 객석에서 질문을 받고 대답을 듣는 시간은 필자가 진행하며 마무리했다. 정영선의 작업과 다양한 접점을 갖는 여러 세대의 후배 조경가와 이론가의 생각을 하나로 엮는 이 기획은 정영선의 조경이 텍스트로서 얼마나 다양한 독해가 가능한지에 대한 기획이었다. 모두가 그의 작업과 삶으로부터 선한 영향력을 받았고, 그에 대한 유의미한 반추와 정리, 해석과 기록을 들려주었다. 학술행사가 끝나고 며칠 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많은 조경인에게 텍스트가 된 정영선의 조경이 있었는데, 과연 조경가 정영선에게 텍스트는 무엇이었을까. 교과 과정도 미완이었을 1세대에게는 무엇이 기초가 되는 텍스트이자 레퍼런스였을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 산천의 자연, (그녀가 정원이라 칭하는) 국토 경관’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할아버지의 과수원이 펼쳐져 있던 들판과 뒷산, 국토의 원형이 남아있던 개발 시대 이전 한국 땅의 본 모양새는 그가 땅에 작업을 하는 영감의 원천이자 근간이 되는 텍스트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참고할 정보와 이미지가 홍수인 시대, 원 경관의 흔적이 자본의 지우개로 소실되는 시대를 사는 우리 세대에게 조경가 정영선이 만든 땅의 고유성은 우리의 시각과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 / 2024년08월 / 436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태도가 경관이 될 때: 정영선의 조경
    조경가 정영선과 한국 조경 50년 1941년생 정영선은 1973년 신설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경학과에 1기로 입학하면서 조경과 연을 맺는다. 1인당 국민소득 320불에 불과하던 시절, 근대화와 국토 개발의 급류 속에서 한국가 통치자의 강력한 주도로 서구의 전문 직능이자 학문 분과인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 전격 수입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경제비서실 내에 조경비서관까지 임명했고(1972년), 제도권 조경은 불과 3년 만에 학제(1973년 학과 신설), 공공기관(1974년 한국조경공사 설립), 자격제도(1975년 조경기술사 시행)를 갖추게 된다.(각주 1) 이 이례적인 상황 속에서 시작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정영선의 조경 인생은 한국 조경 50년사의 궤적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 자신의 회고처럼, 그의 조경은 “오늘 우리 조경계가 안고 있는 고뇌”였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끝없는 갈등을 헤쳐 나온 우리 조경인들의 삶 그 자체”(각주 2)였다. 조경가 정영선을 통해 우리는 한국 조경의 50년 성장사와 그 명암을 다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영선의 조경은 곧 한국 현대 조경이라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지점에서 구별된다. 그는 주로 공공 발주 물량과 건설 시장 여건에 의존해 온 한국 조경계 전반의 불안정한 조건을 독자적 조경론과 경관 미학, 창의적 조경 실천을 통해 돌파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 2023년 세계조경가협회(IFLA)는 정영선에게 제15대 제프리 젤리코상(Sir Geoffrey Jellicoe Award)을 수여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정영선은 한국에서 조경설계를 개척하고 선도했을 뿐 아니라 서양에서 유래한 조경 개념을 한국의 대지와 경관에 맞게 ‘번역’해냈다. 그는 청계천 복원, 선유도공원 등 다수의 독보적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과 도시를 화해시키고 자연의 과정과 건조 환경을 통합하며 과거의 산업 흔적을 존중해 설계의 한 부분으로 포섭하는 최근의 세계적 경향을 예견하고 실천했다. 동시대 조경의 핵심인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명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작업에 내재해 있었다.”(각주 3) 이처럼 여러 걸음 앞서가며 새 지평을 연 정영선의 이론과 실천은 그 개인의 작품과 문화적 역량에 대한 조명과 인정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전문 직능으로서 조경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영선의 조경은 한국 조경 50년사에 대한 예리한 비평이기도 하다. 진화와 세 개의 변곡점 정영선의 손을 거친 조경 작품은 정확한 목록을 작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개인과 기업의 정원, 도시 가로와 광장, 근린공원, 기념공원, 생태공원, 산업시설 재활용 공원, 선형 공원, 묘역, 병원, 오피스, 상업시설, 복합문화공간, 공동주택 단지, 공장, 캠퍼스, 종교 시설과 단지, 테마파크, 리조트 등 그가 다룬 프로젝트의 유형은 조경 업역의 다양성과 복합성 그 자체를 예시한다. 작업의 양과 유형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조경 이론과 실천이 계속 진화해 왔다는 점이다. 그 진화의 함수에서 변곡점이 된 세 가지 작업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환경과조경436호(2024년 8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1970년대의 정치 지형과 사회 상황과 결부된 한국 조경 태동기의 사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할 것. 배정한, “근대의 굴레, 녹색의 이면: 한국 조경의 근대성과 박정희의 조경관”, 『건축·도시·조경의 지식 지형』, 나무도시, 2011, pp.152~181. 2. 정영선, “조경과의 조우, 그리고 나를 있게 한 소중한 것들”, 『환경과조경』 1998년 6월호, p.30. 3. International Federation of Landscape Architects, “Landscape Architect Youngsun Jung from South Korea is the 2023 Recipient of the Sir Geoffrey Jellocoe Award”, www.iflaworld.com/sgja-2023-winner, 2023. 배정한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며, 본지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조경 이론과 설계, 조경 미학과 비평의 접면을 확장해왔다. 대표 저서로 『공원의 위로』,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 『현대 조경설계의 이론과 쟁점』이 있으며, 『경관이 만드는 도시』와 『라지 파크』를 번역했다.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용산공원』, 『건축·도시·조경의 지식 지형』, 『공원을 읽다』, 『서울도시계획사』 등 이십여 권의 책을 기획하고 동학들과 함께 썼으며,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 등 다수의 대형 공원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유산의 창조, 정영선이 만든 한국 조경설계의 변곡점
    유산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혹은 현 세대가 앞 세대로부터 물려받는 물적·문화적 자산이다. 자산(asset)이 유산(heritage)이 되기 위해서는 세대를 초월하는 전승(pass on)이 필요하다. 조경가 정영선의 작업이 국토 근대화를 보정해 온 푸른 유산으로 남을 것인가 혹은 대한민국 조경 1세대의 예외적 사례로 기억될 것인가는 다음 세대의 실천에 달려 있다. 그의 작업이 현재를 성찰하는 준거가 될 때, 그리고 내일을 상상하는 영감의 샘으로 작동할 때,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유산은 창조된다. 이 전승의 과정에서 우리의 설계 현실을 반성하며 질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여덟 가지 쟁점을 제시한다. 조경 디자인의 특수성 “샛강에서 디자인한 곳이 어디예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어느 도시 전문가가 전화를 걸어왔다.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이하 샛강)에 가본 적이 있는데 너무 자연스럽다며 디자인한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했다. 인간적 쓸모를 만드는 근대적 의미의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샛강은 잘 보존된 하천 풍경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주차장과 관리사무소를 만들려는 서울시의 계획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정영선의 회고가 떠오른다. 그는 개발이라는 도시적 욕망과 인간적 질서의 외삽을 거부하고 하천에 내재된 자연 형성 과정의 조건을 만드는 일을 디자인의 이름으로 관철했다. 새로운 것, 인공적인 것, 수직적인 것, 눈에 띄는 것을 만드는 개발 시대의 디자인 관행 속에서, 원래의 것을 지키고 폭력적 개입에 저항하는 일 자체가 디자인의 과업이 될 수 있음을 샛강은 증명하고 있다. 자기완결성을 포기하고 ‘연결’과 ‘관계’를 통해 총체성을 만들고 자신을 낮춰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역설을 통해 디자인으로서 조경설계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자. 폭력적인 개발 드라이브와 발주처의 명령에 디자이너 개인이 맞서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용역자이기에 앞서 전문가라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디자인적 완성도는 어디에서 올까. 자신만의 매니페스토와 화려한 컴퓨터 조형에 취한 설계에 몰입하고 있진 않은지. 디자이너들의 자아도취적 발언과 시각적 포장의 재생산 관행, 인스타그래머블 풍경 만들기와 포토 스폿의 난무 역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샛강은 우리에게 조경 디자인의 고유한, 그래서 동시대에 더더욱 생경한 역할과 방향을 제시한다. 조경이라는 이름 “나는 조경이라는 말이 싫다.”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모두 정영선의 말이다. 사석에서 그는 경치를 ‘만든다’라는 조경造景이라는 이름을 애초에 잘못 붙였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공적으로 그는 조경의 가치와 역할을 ‘한편의 시’에 비유하며 울림을 준다. 그에게 조경은 애증이 서려 있는 단어다. TV 속 유재석의 입에서 ‘조경가’라는 단어가 발음될 때 조경은 새로운 뉘앙스를 갖는다. 정영선의 업적은 모두 조경가라는 직능명을 붙이고 이뤄낸 성과다. 그는 “후배 세대가 조경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며 늘 우리 분야의 가치와 조경설계의 역할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격려한다. 그는 조경가의 사회적 위상을 새로운 레벨로 올려놓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게 만들어준, 조경의 살아 있는 정의가 되었다. 그렇다면 조경가는 누구인가. 누가 조경가의 자격을 정하는가. 건축사와 같은 전문 설계 자격 제도를 법적으로 가지지 못한 우리 분야에서 조경가는 오랫동안 자격 여부에 상관없이 스스로 자부심을 부여할 수 있는 열린 단어였다. 단 한번의 공모전 당선으로 작가의 호칭을 획득하는 시대에 20~30년 넘게 설계 일을 해도 여전히 업자인 수많은 전문가에게는 어떤 새로운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까. 한국 조경 50년에도 조경이라는 이름에 대한 부끄러움과 불편함이 스며 있다. 대학 학과 명칭에서 조경이 사라지기도 하고, 대학마다 경쟁력 강화와 입시 경쟁률 제고를 이유로 조경학과의 명칭을 없애거나 변경하기도 한다. 일련의 논의 과정을 통해 우리 사이에도 찬반의 입장이 선명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각주 1)이름에 앞서 우리는 조경의 이름으로 행한 일들에 대한 성찰에 게을렀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성과 지역성 “나 옛날 살던 동네 같아요.” 학생들과의 토론 과정에서 영화 ‘땅에 쓰는 시’에 나오는 정영선의 양평 정원을 두고 나온 얘기다. 부모님이 살던 시골집도 양평 정원처럼 집으로 들어가는 어귀에개집과 심드렁한 흙 마당이 있었다. 그 주변으로 어린 눈에는 대단할 것 하나 없는 들풀이 나부꼈 다. 왜 많은 사람이 영화 속 풍경을 보고 자신만의 고향과 어린 시절을 떠올릴까. 정영선 작품의한국성을 희원과 같은 전통 정원에만 한정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영선은 원 경관을번역하고 재창조한다. 그의 창조 안에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기억으로서 자연이 내재되어 있다. 늘 보던 아름다움을 재발견해 재구성하는 정영선의 설계 방법은 그렇기 때문에 지역적이며,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 때문에 한국적이다. 그의 작품은 기억과 장소 애착 환기 장치trigger로서 풍경의 힘을 보여준다. 그가 구현하는 한국성은 조형 요소가 아닌 경험과 기억의 원형이며, 그가 다루는 과거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모두 내포하는, 옛것의 창의성과 창발성을 실현하는 시제다. 우리가 전통을 다루는 관행을 돌아보자. 전통은 형식적으로 재생산되고 많은 경우 공간 작명에 그치는 예스러운 것 그 이상이 아니다. 레트로 감성이라는 표제어로 과거는 상품 가치를 갖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옛것은 새롭지 않으면 가차 없이 폐기된다. 새롭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무한 브랜드 경쟁 시대에 느린 시간성으로 채울 수밖에 없는 조경이, 지속적으로 폐기되고 갱신되는 패스트 디자인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새삼 물어본다. 시그니처 식재 “어? 여기 정 선생님이 하셨나?” 십수 년 전, 김해 클레이아크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잠시 봉하마을을 거닐다가 나의 동료가 무심코 뱉은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마을 길가에 병아리꽃나무가 있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정원 열풍으로 이름 외우기도 벅찬 식물이 각종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니 병아리꽃나무가 무슨 대수냐 싶지만, 그때만 해도 흔히 쓰는 조경수의 종류는 손에 꼽을 만큼 빈약했다. 정영선의 손이 닿은 곳에는 일반적으로 쓰지 않은 한국 자생종이 어김없이 심겼다. 이름도 아름다운 것이 많았다. 이스라지, 미나리아재비, 노루오줌, 노루귀, 팥꽃나무, 꼬리풀 등. 식물 하나하나가 시의 언어다. 그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자생 식물을 조경설계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는 측면과 더불어 비싼 소나무와 몇몇 수종에 의지하던 관행적 식재 설계를 거부해 몸값에 따른 식물의 위계를 당당하게 해체했다는 점이다.(각주 2)그의 식재 디자인 어휘는 자연을 공부해서 얻은 그만의 사전에서 비롯된다. 어느 시인은 사전을 통틀어 여기에 쓸 수 있는 단어는 꼭 하나라고 얘기했다. 정영선의 사전에는 바로 그 장소에 필요한 우리 식물이라는 단어들이 채곡채곡 쟁여져 있다. 아름다움의 근원 “눈물겹게 아름다워요.” 정영선의 손을 거친 장소는 특유의 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서식처에 기반을 둔 건강한 생태계의 내재적 아름다움은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서는 또 다른 미적 경험을 선사한다. 정영선의 작업은 대상의 물리적 속성을 다루는 형식 미학에서 생태 미학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의 작품은 기후 위기 시대 우리 주변에 창궐하는 예쁘기만 한 자연의 모사품들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들은 지속가능한가. 정영선의 작품은 예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대경관이 주는 숭고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적 체험은 경관에 몰입하는 주관적 체험을 전제로 한다. 그는 풍경을 중첩시켜 단위 공간의 제한된 경계를 확장하고 깊이감을 형성한다. 경계의 디자인으로 철저하게 주변을 차단하거나 열고 중첩시켜 경관의 깊이와 몰입감을 준다. 그 아름다움은 시각적·표면적 아름다움을 넘어선 경험적·윤리적인 미적 태도를 형성한다. 윤리와 미학이 결합하고 의미와 아름다움이 합쳐진다. 최근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국가정원과 정원박람회 현상에서 대경관은 실종됐다. 국가정원과 정원박람회 후보지는 대체로 하천 부지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남은 큰 빈 땅이 그곳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각종 정원 행정이 하천의 하천다움, 강의 원 풍경을 얼마나 숙고해 추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예쁜 것만 살아남는 시대, 소비재로서 자연은 찰나적 풍경 이미지로 끊임없이(재)생산된다. 기후 위기 시대, 자연에 대한 위기의식이 결여된 자연의 상품화가 엄청난 예산으로 행해지고 있는 이 현실 앞에 우리는 침묵할 수 있는가. 공공 프로젝트의 도전 “공공이 해도 이럴 수 있다니.” 선유도공원은 대한민국 공원 디자인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서울시 행정가의 전폭적 지지와 현장 설계와 감리가 가능했던 예외적 상황이 크게 기여한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선유도공원을 공공 발주 프로젝트의 대표 사례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대표성은 동일한 범주의 다른 사례와의 유사성을 가져야 하는데 선유도공원은 일반적인 공원 만들기 관행에서 이질성이 훨씬 크다. 오히려 발주부터 시공까지의 공공 프로젝트 전 과정에 있어 프로세스의 변칙에 가까운 예외적 사례다. 우리는 왜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절차를 만드는 일에 인색하고, 예외적인 스타의 도래만 기다리는가. 한국 조경은 국가 주도의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하고 정착해왔다. 그 가운데 정영선은조경을 통한 사회적·지구적 책무를 자임해왔으며, 제도의 공백을 메운 설계가의 헌신과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이는 전문적 설계자 자격, 공정한 발주 방식, 현장 감리 제도가 없는 현실에서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가 주도의 사업이 넘쳐나던 풍요의 시대는 품질에 대한 치열함과내부 성찰 능력을 빈곤하게 만들었다. 설계의 기획-발주-심의-시공-감리 전반의 제도적 기반의 취약성은 또 다른 정영선의 탄생으로 메꿀 수 없는 근본적 한계다. 또한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작품 만들기에 대한 비판적·비평적 담론과 실천이 희박한 현실 역시 우리가 서있는 취약한지반이다. 작가로서 조경가 “조경가가 꼭 호미를 들어야 되나요?” 학생들과 토론하다 보면 꼭 등장하는 질문이다. 호미는 정원 가꾸기 전통이 훨씬 오래된 서구권에 역수출될 정도로 가드닝의 핵심 도구다. 이 시대 호미는 무엇을의미하는가. 누구나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호미라는 도구의 보편성은 조경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아이러니하게 정영선의 호미는 현장 감독 권력을 가진 자의 도구이며, 완성도에 대한 전문가적 집착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에게 호미가 상징하는 것은 땅과의 교감, 관찰의 방식, 직업 윤리와 책임감이다. 박승진은 이를 “작가적 태도로서 직접하기”라고 불렀다..(각주 3)직접하기는 경험적 지식을 축적한다. 실천적 학문으로서 조경은 이론과 개념을 구현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를 통해 진화한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의사결정과 연구 성과는 합리성과 첨단성을 보장하지만, 직접하기를 통한 검증은 나 몰라라 한다. 대중에게 호미는 조경의 강력한 아이콘이자 상징으로 작동한다. 많은 후배 디자이너 역시 호미를 들지 않으면 작가 반열에 오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산다. 반면 강력한 호미의 대중적 상징성은 조경의 정의와 조경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꽃 심는 상징적 행위에 제한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치열한 첨단 경쟁 사회에서 조경의 지향성이 아날로그 감성에 고착되는 것을 경계한다면, 우리의 직접하기와 현장성은 어떻게 진화해야 할 것인가. 이 또한 중요한 개인적, 나아가 시대적 고민거리다. 국토의 총체성과 정원 “국토는 하나의 정원입니다.” 정영선이 즐겨 하는 이야기다. 나는 이 아름다운 문장이 수많은 행정가들에게 왜곡된 영감을 줄 수 있음을 걱정한다. 정영선의 개별 프로젝트에는 국토 경관의 아름다움과 총체성이 관통하고 있다. 그는 성종상과의 대화.(각주 4)에서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쓰레기를 치우고 땅을 다듬어야” 함을 강조하며, 꽃을 심기 전 땅에 대한 밑 작업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에게 정원은 “잠시 빌려 쓰는 땅에 대한 헌사”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정원 사업에는 정원의 본질, 지구적 위기 의식, 국토 가꾸기의 철학이 상실되어 있다. 정원도시는 장식과 행사 중심으로 추진되는 지자체장의 정치 매니페스토가 되어가고 있고, 행정으으로서가드닝은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자하며 초기 효과에 골몰하고 있다. 흙이 보이지 않도록 빡빡하게 심으라는 어느 지자체의 지침은, 식물이 성장하며 고유의 형상과 건강한 생육을 위해 밀도를 낮춰 심는 자연주의 정원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국토는 하나의 정원”이라는 말이 국토의 정원 테마파크화로 변질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할 때다. 자산에서 유산으로 영화 ‘땅에 쓰는 시’에서 정영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번 경관을 잘못 건드려놓으면 되돌리는 데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요. 국토의 바다는 바다대로, 숲은 숲대로, 도심은 도심대로, 마을은 마을대로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 샛강은 샛강답고, 한강은 한강답고, 큰 강은 큰 강답고, 동네 산은 동네 산답고, 시골은 시골답고, 아파트는 아파트답게…….” 정영선의 작업은 대한민국 조경 50년의 중요한 질적 전환을 가져오는 변곡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지점 이후의 경로는 그의 몫이 아니다. 변곡점 그 자체는 상승도 하강도 아니다. 그가 만든 풍부한 자산과 변화를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유산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 세대의 실천에 달려 있다. 조경가 정영선의 작업이 현재를 성찰하는 준거가 될 때, 그리고 내일을 상상하는 영감의 샘으로 작동할 때,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우리 안에서 유산은 창조된다. **각주 정리 1. 2022년 한국조경학회가 주최한 월간 웨비나 ‘조경, 왓츠 유어 네임?’의 논의와 이를 발전시켜 게재한 『환경과조경』 2022년 7월호 특집 ‘조경, 그 이름을 묻다’를 참고. 2. 박승진은 정원학 심포지엄 기고문 “열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정영선의 정원미학”(2014)에서 정영선은 “정원 식물의 서열화”를 깨고 그의 작업 속 모든 정원 식물은 “동등한 지위를 획득”한다고 해석했다. 3. 박승진, “열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정영선의 정원미학”, 제2회 정원학 심포지엄 기고문, 2014. 4. 정영선, 성종상, “정원 대담: 우리 시대 한국인의 삶과 정원”,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 도서출판 한숲, 2021.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건축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 개선사업 설계팀의 디자인 감독을 맡았다.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 한다.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맥시멈과 미니멈
    설계는 생각을 도면 위에 그리는 행위다. 머릿속 이미지를 시각화해 명확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무한 반복의 피드백이 필요하다. 도면 위에 그려진 이미지는 다시 생각을 구동하게 만들고, 조정된 형태로 도면 위에 반영된다. 이러한 작업에서 설계자는 희열을 맛보기도 하고 깊은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그려진 도면은, 나름 완성된 도면은, 실제로 구현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최종의 결과물이며 설계자의 생각이 오롯이 드러난 창작물이다. 생각은 어떻게 정리되는가 설계의 단초는 다양하다. 건조한 문구로 채워진 과업지시서일 수도 있고, 열정적인 건축주와의 토론 결과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결론은 ‘잘 만들어 주세요.’ 그 순간 공은 이제 설계자에게 넘어온다. 답사하고 조사한다. 초기의 생각들은 간단한 스케치로 남겨진다. 그리기를 반복하면서 설계자의 의지가 투사된다. 욕심이 의지로 착각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디에서 보았음 직한 멋진 이미지를 구현해 보고 싶은 생각에 도면은 점점 과감해진다. 과도해진다. 생각이 정리될 즈음에는 엇나간 선들도 함께 소거되어야 하나, 끝까지 살아남아서 설계자를 괴롭힌다. 땅에 집중하자 마음을 비우는 것은 다시 처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쓸모없는 미사여구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축주의 집착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왜 만들고자 할까, 이 땅에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없어도 되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땅에 집중하자 마음을 비우는 것은 다시 처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쓸모없는 미사여구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축주의 집착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왜 만들고자 할까, 이 땅에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없어도 되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2007년 서울아산병원. 조경 공간이 구현될장소의 구조는 의외로 단순했다. 한쪽에는 거대한 병원 건축물이, 반대편에는 방대한 주차장이 있다. 바닥은 지하 주차장 상부, 길이 300m와 폭 60m. 웬만한 공원 규모에 버금간다. 아픈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직원까지 하루 유동 인구가 4만 명쯤 된다고 했다. 밀도 높은 숲이 필요했다. 나무는 최대한 조밀하게, 높은 키로 건물을 가릴 수 있기를. 환자들이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는 넘치더라도 많게, 나무 아래 앉을 수 있는 공간도 많게, 오래 앉아도 불편하지 않은 벤치를 충분하게, 풀과 꽃과 나비를 많이 만날 수 있게, 물가를 걷는 즐거움을, 물소리는 듣는 재미를, 어디 한적한 곳에 숨어서 미어지는 가슴을 달랠 수 있기를. 정영선의 생각은 분명했다.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모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콘크리트의 건조함밖에 없는 장소는, 완전히 다른 것들로 채워질 필요가 있었다. 이곳은 병원이었다. 설계자의 과욕이 표현될 공간은 없었다. 형태는 기능에 충실해야 했고, 디자인적 제스처는 배제되었다. 준공 후 15년 차, 숲은 높게 자랐고 여전히 환자들로 넘쳐난다. ‘맥시멈(maximum)’은 땅에 집중한 결과였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2008년 뉴욕 주 원불교 원다르마센터. 공항을 빠져나온 우리 일행은 파크웨이를 따라 두 시간 쯤을 달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저 멀리 애팔래치아 산맥이 보이는 낮은 구릉의 대상지. 땅은 아름다웠다. 남겨진 숲, 완만한 구릉을 따라 흐르는 넓은 초지, 그림 같이 자라난 야생 사과나무, 언제 비가 왔는지 아직 습지로 남아 있는 낮은 계곡. 바람이 불고 검은 구름이 몰려오니 금방 후드득 비가 내린다. 그러다가 언제 개었는지, 구름 사이로 햇빛이 쏟아진다. 여기는 원래이런 곳이라고 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의 변화무쌍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되는 땅. 건축가는 이곳에 명상을 위한 집 몇 채를 설계하고 있었다. 한국의 시골집을 닮은 구조라고했다. 규모는 소박했고, 배치는 자연스러웠다. 땅을 해치지 않는 디자인. 미주 원불교에서 추진하는 명상 공간을 위한 장소였다. 이곳에 ‘조경’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여기에 무엇을 더한다는 말인가. 땅을 깎고 담을 올리며, 나무를 심는 행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형도를 분석하고, 스터디 모형을 만들고, 답사한 자료들을 모았다. 이쯤 되면 설계자의 노트는 이런저런 스케치로 채워지고 있어야 하나, 여전히 빈 종이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결론은 의외로 명쾌하고 단순했다. 조경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걷기 명상을 위한 길을 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길은 굽이굽이 흐른다, 충분히 좁게 만든다, 한눈에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지형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미니멈(minimum)’ 디자인의 전략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설계는 도면집 두께로 판단되지 않는다. 생각은 땅을 이해하는 태도에서 출발하는 것이 옳다. 필요한 것들은 충분히 담겨야 하고,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히 배제되는 것이 좋다. 그것이 맥시멈이든 미니멈이든 정영선의 작업은 늘 땅에 집중한다. 그가 그의 작업을 ‘땅에 쓰는 시’라고 부르는 이유다 박승진은 경관, 도시, 정원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대표소장이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를 거쳐 한국 1세대 조경설계사무소 서안에서 실무를 했다. 2007년 지금의 사무실을 열었다. 조경건축가로서 푸른 별 지구,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 자연과 도시와 정원, 평범한 일상의 사람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서안에 재직하면서 정영선과 함께 워커힐 마스터플랜, 삼성전자 30주년 기념공원, 서울아산병원 등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후 loci를 운영하면서 뉴욕 원다르마센터,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과 원료식물원, 제주 오설록, 강릉 시마크호텔, 남해 사우스케이프 등 여러 작업을 함께 했다.
    • 박승진 / 2024년08월 / 436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협업의 유산을 읽다
    정영선의 ‘서양조경사’ 강의는 당시 대학교 3학년 조경학도들에게 서양 정원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어 주었다. 4학년이 되자 한국 정원을 하나라도 더 가슴에 심어주고 싶었는지 지금도 들어가기 힘든 성락원 복원 현장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1987년 가을, 전국 학생졸업작품전에 대학별로 출품해 경복궁역에서 전시와 심사가 열렸는데, 안타깝게도 자리가 모자라 한 작품이 걸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 팀만 남겨져 발을 동동 구르다 마침 어둡고 구석진 자리를 발견하고 근처 목공소의 도움을 받아 뒤늦게 작품을 걸게 되었다. 우연히 이 과정을 지켜보던 심사위원 정영선은 보통의 작품과는 달리 재개발 계획에 관한 설계와 모형을 들고 나온 우리 팀에게 가장 잘했다며 격려해 주었다. 이후 조경설계 서안(이하 서안)의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고, 졸업한 뒤에는 그의 추천으로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며 자연스레 환경대학원에 진학하였고 방학 중에는 서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지금 생각해 보면 정영선은 나에게 많은 기회를 열어주었다. 그와 함께한 여러 프로젝트 중 의미 있는 두 개의 마스터플랜과 비영리 재단과 협업한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선유도공원 설계공모 1999년 10월 말 선유정수장의 공원화 설계공모가 열렸고, 나는 설계공모 PM을 맡게 되었다. 대상지를 처음 만났을 때, 유학 시절 논문 주제였던 ‘장소의 기억-베르시 공원Le Parc de Bercy’이 떠올랐다. 파리 시가 오랜 기간 조사 및 연구 후 공원의 성격을 결정해 설계공모를 열었던 베르시 공원과는 달리, 선유도공원 설계공모에 주어진 시간과 자료는 몹시 빈약했다. 장소성 보전을 위해 기존 정수장 시설을 존치하거나 재활용하라는 지침이 따로 없었듯이 건축 도면은 제공되지 않았다. 선유도는 겸재 정선의 그림 속 신선이 노니는 섬처럼 아름다운 선유봉이었다는 것, 과거 섬 안에 큰 절과 유명한 약수가 있었다는 것을 지역 역사에서 찾으면서 물과 인연이 깊은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료를 찾으면서 정수장 지하실에서 프랑스 엔지니어링 회사가 설계한 묵은 도면집을 찾아냈고, 직원 허락 하에 개별 건축 도면을 복사할 수 있었다. 복사해 온 건축 도면을 누더기처럼 이어 붙이고 다시 도면화해 현황 모형을 만들어 보니 현장에서 보지 못한 다른 차원의 공간들이 나타났다. 우리는 정수장의 핵심 시설인 하부 공간에 주목했고 정수 공간의 흔적을 일부 남김으로써 장소의 기억을 회생시키면서 물과 수생 식물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부여하였다. 정영선은 젊은이들과의 협업에 포용적이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데 열려 있었다. 당선 후 부분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마스터플랜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는 그의 강한 의지로 지켜지고 실현되었다. 당시 산업 시설의 재활용에 대한 시선이 지금 같지 않아 어려움도 있었다. 취수 펌프장 건물 구조는 마치 수변에 다리를 걸친 정자를 떠올리게 해 정자에서 조망을 즐겼던 선조들의 풍류를 재현하는 의미에서 선유정이라 이름을 붙였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유도의 낭만적 장소성을 되살리고 한강 너머로 마주하고 있는 망원정과 함께 장소의 기억을 이어주는 상징적 공간이 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당선 후 서울시 심의에서 어느 시의원이 선유정을 지적하며 진짜 한국 전통 정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원안을 관철하지 못했다며 정영선은 심의를 나오자마자 너무 속상한 나머지 나에게 미안하다고 전화한 적도 있다. 그는 건축가와의 협업을 자주 강조했다. 실제로 공모전 팀 구성에 건축가가 포함된 팀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유도공원은 당선 후 건축과의 협업이 중요한 프로젝트였던 만큼 비슷한 가치와 생각을 공유하는 건축가와의 작업이 무척 중요했던 것 같다. 이때의 교훈을 깊이 새겨 프로젝트의 규모와 상관없이 건축가와의 협업이 필요하다면 초반부터 같이 작업하고 있다. *환경과조경436호(2024년 8월호)수록본 일부 전은정은 조경포레 소장이다.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졸업 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거쳐 파리 라빌레뜨 국립건축대학/국립고등사회과학대학원 협동박사과정 ‘정원, 경관, 지역’의 D.E.A.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을 거쳐 2004년 사무실을 열었다. 과거와 현대의 공존,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사단법인 도코모 모코리아 이사로 활동했다. 김해 수릉원, 동경주재 주일한국대사관, 강릉 라카이 샌드파인 리조트 조경설계 등을 수행했다. 용산공원 국제공모에서 서안과 협업해 3등에 당선된 바 있다. 틈틈이 설계와 시공을 병행,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 등 다수의 개인 정원을 작업했다.
    • 전은정 / 2024년08월 / 436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땅을 읽는 법을 배우다
    정영선의 작품과 철학은 오늘날 한국 조경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많은 후배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첫 직장인 조경설계 서안(이하 서안)에서 6년 가까이 일했지만, 직접 만나며 일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스케치와 도면, 보고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잠시 만나는 기회가 있으면 그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당시 정영선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과 배움을 독자와 나누고자 한다. 담담한 설계를 그리며 배우다 정영선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 있다. 어디까지가 그가 만든 경관이고 어디서부터가 원래 있던 자연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당시 그는 한국 조경의 특성을 ‘담담함’이라고 표현했다. 지금은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검이불루 화이불치’로 설명한다. 이러한 철학은 나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항상 나의 설계가 ‘담담함’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씩 생각해보며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2007년, 광교호수공원 설계공모 당시 하루종일 대상지를 돌아다니며 숲과 수변의 경관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장에서 들은 내용을 그때 그때 받아 적었다가 나중에 노트로 다시 한번 정리했다. “버드나무 가지가 밝으니 이른 봄에 아름답다”, “어두운 골짜기에 일찍 싹을 틔우는 귀룽나무를 심으면 좋겠다”, “흥덕지구 아파트를 가리기 위해 키 큰 상수리나무를 심자”, “호수 물가로 물풀을 심고, 축축한 들판에는 돌배나무가 좋겠다” 등 정영선은 현장에서 경관 계획의 큰 골격을 잡아갔다. 그는 내게 각 장소의 경관을 꼼꼼히 기록하며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을 가르쳐 주었다. 정영선의 세심한 관찰과 분석은 내가 경관을 크게 보고 지역에 맞게 계획을 세우는 방법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환경과조경436호(2024년 8월호)수록본 일부 이호영은 조경 분야에서 20년 이상의 설계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HLD 대표로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HLD 설립 전에는 조경설계 서안, AECOM, office ma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18년 제1회 젊은 조경가 상을 수상했고, 한국조경협회 부회장, 한국조경가협회 위원장, 서울시 공공조경가로 활동하고 있다.
    • 이호영 / 2024년08월 / 436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선유도공원이 건네는 위로
    선유도공원에는 배려와 풍부함 그리고 정제된 느낌의 분위기가 흐른다. 기존 시설과 새로운 건축물 그리고 이를 둘러싼 조경 사이에 주고 받는 일종의 상호 교류가 있다. 조경가 정영선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건축가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의 『분위기』(2013)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는 데 있어 아홉 가지 특징(건축의 몸, 물질의 양립성, 공간의 소리, 공간의 온도, 주변의 사물, 안정과 유혹 사이, 내부와 외부의 긴장, 친밀함의 수준, 사물을 비추는 빛)을 제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 춤토어의 설계는 건축과 그 주변 환경의 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이는 공백의 시간을 잇고 서로 다른 영역의 언어들을 포용하는 정영선의 철학 ‘조경가는 연결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땅을 읽는 정영선의 태도를 보면, 대상지에서부터 영감을 찾으며 면밀히 분석하고 관찰해 설계한다. 새로운 형태의 공간 골격을 만들어 내기보다 땅의 분위기를 읽어내어 그 땅에 필요한 것들을 주변과 관계 지으며 형태를 만든다.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독특한 분위기를 선유도공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공원 개장 이후 여러 번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시공된 공원 배치도를 모사(模寫)했다. 선을 따라 그리는 행위 속에서 공간의 골격을 상상해가며 설계 의도와 분위기를 읽어 나갔다. 이 과정을 통해 선유도공원의 해석을 위한 여섯 가지 틀(공간의 골격, 전이 공간, 절제된 요소들, 빛과 소리, 호기심과 관찰, 위로)을 세웠다. 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뤄지는데, 순차적 인과 관계로 설명하면서 선유도공원의 정제된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환경과조경436호(2024년 8월호)수록본 일부 조용준은 지난 20년간 작은 스케일의 공공 정원부터 큰 스케일의 도시계획까지 다양한 국내외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공공을 위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새로운 광화문광장, 국립새만금 수목원, 세운상가 녹지축 조성계획, KT 디지코 도시숲, 더 글라스 호텔정원, 나주 빛가람호수공원 등이 있다.
    • 조용준 / 2024년08월 / 436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과 디올 성수, 미래 세대의 수용
    경기도 오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2019)과 서울시 성동구의 디올 성수(2022)는 조경가 정영선의 손길로 탄생한 공간이다.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에는 동백과 장미 등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의 원료가 되는 식물들이 심겨 있고 삼지구엽초, 깽깽이풀 등이 포근하게 땅을 덮고 있다. 디올 성수에서도 데자뷔가 일어난다. 세계적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각주 1)가 사랑했던 장미와 라벤더로 분명히 프랑스 정원을 표현했는데, 모란과 작약, 잔잔한 한국 풀들이 어우러져 한국 정원 느낌이 난다. 단순히 둘을 합친 게 아니라 화학적 성분마저 풀어헤쳐 만들어낸 듯한 제3의 결과물이다. 짜깁기가 아닌 재편집이라는 측면에서 이것은 창조이자 혁신이다. 아모레퍼시픽과 크리스챤 디올, 두 브랜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창업가의 철학과 헤리티지가 녹아든 경영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서성환(1924~2003) 선대 회장이 1960년 첫 프랑스 방문 길에 들렀던 남프랑스 그라스의 라벤더 밭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세운 회사다. 프랑스 노르망디 그랑빌에서 어머니가 가꾸는 장미 정원에서 자란 크리스티앙 디오르(1905~1957)는 1951년 그라스의 성 ‘샤토 드 라 콜 누아르(Château de la Colle Noire)’를 사들여 세상을 뜰 때까지 향수 원료 식물을 재배했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조향사였던 그에게 식물은 영감의 원천이자 브랜드의 철학이었다. 둘째, 전통을 혁신해 미래 세대와 만난다는 점이다. 고 서성환 회장은 세계 각국에 있는 차 문화가 왜 우리에겐 없을까 안타까워하며 제주에 다원(茶園)을 일궜다. 요즘 제주 오설록을 찾는 미래 세대는 정영선이 곶자왈을 구현한 정원을 보며 녹차라테를 마시고 견고하게 스토리텔링된 녹차 성분의 화장품을 산다.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에 편입된 크리스챤 디올의 행보도 전략적이다. 글로벌 도시들을 돌면서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전시회를 열고, 미래 세대의 왕래가 잦은 핫플 지역에 매장을 낸다. 디올 성수도 그 전략 중 하나다 *환경과조경436호(2024년 8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인 ‘크리스챤 디올’은 미국 영어 표기법에 따라 적었고, 설립자인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프랑스어 표기법에 따라 적었다. 김선미는 2023년부터 동아일보에서 ‘김선미의 시크릿가든’을 연재하고 있다. 동아일보에서 논설위원, 뉴센테니얼본부 크리에이티브랩 팀장, 편집국 문화부와 산업부 차장 등을 거쳐 현재는 콘텐츠기획본부 부장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가볼 만한 24개의 정원을 소개한 『정원의 위로』(민음사, 2024)를 펴냈다. 산림교육전문가(숲 해설가)이자 현재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과정에 있다.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한국 조경 가치의 시각화, 아모레퍼시픽 본사
    조경, 그게 뭐 하는 건데 조경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자주 듣던 말은 “나무 심는 일 아니야?” 혹은 “이 나무 이름이 뭐야?” 였다. 여러 공종이 늘 협업하는 건설사에서 조경직으로 근무하니 이제 조경이 나무 심는 일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안다. 하지만 여전히 건축 외 남은 공간을 담당하는 업무로 여겨지곤 한다. 그래서 늘 하는 고민은 1) 다른 공종과 협업하면서도 조경이 돋보이는 디자인과 구현 방법, 2) 조경이 건축 외관을 더욱 풍부해 보이게 만드는 배경이 되면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고 건물과 상생하게 하는 방법이다. 고민에 대한 답을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이하 아모레퍼시픽)에서 찾았다. 대청마루에서 보는 풍경 아모레퍼시픽 지상층 조경은 밖에선 건축을 보고 안에선 조경을 보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만든다. 독특한 루버 디자인의 백색 건물을 배경으로 두고 있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조경에 감탄하며 자연스럽게 이끌려 걸어가면 바깥과 건물을 연결하며 자연스러운 전이 공간 역할을 하는 지상층 숲을 만나게 된다. 숲을 지나 필로티 하부에 서면 방금까지 봤던 도시 풍경이 잊히고 전혀 다른 공간에 온 듯하다. 이 풍경은 선조들이 휴식을 즐겼던 대청마루와 닮았다. 기둥들은 대들보가 되고 넓은 필로티 하부는 대청마루가 된다. 건물 하부에서 차가 달리는 도로가 바로 보였다면 이런 경험을 전혀 할 수 없고 그저 현대적 회랑으로만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건물 내부에서도 할 수 있다. 건물의 모든 창에서 외부 조경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전통 조경의 개념인 차경을 떠올리게 한다. 창의 위치와 크기, 건물 내부에서 보이는 풍경과의 거리를 고려한 식재 디자인이 건물 안으로 조경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조경은 이용자와 건축물의 관계를 맺어주며 이 공간을 지속해서 이용하도록 유도한다. 외부에서 본 숲이 건물과 외부를 분리시키며 자연 속으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면, 내부의 창을 통해 보이는 조경은 나만을 위한 정원이 되며 이용자를 머무르게 하고 건축과 더 소통하게 하는 연결사 역할을 한다. *환경과조경436호(2024년 8월호)수록본 일부 백규리는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졸업 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설계를 배웠다. 현재는 현대엔지니어링에서 설계와 시공을 담당하는 디자인지니어(design+engineer)다. 조경인에게 감동과 경험을 주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을 추구한다. 조경이 발길 닿는 모든 공간을 만진다는 점을 돋보이게 하는 데 관심이 크다.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식물과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제3자가 바라본 정영선의 이야기를 다룬 세션 1, 2가 끝나자 무대 위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 세 개가 놓였다. 이제 주인공이 직접 마이크를 쥘 시간. 세션 3 ‘정영선과의 대화’는 정영선과 두 명의 손님을 초대했다. 중앙 자리에는 정영선, 왼편에는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설계학과)의 자리가 마련됐다. 대담 진행을 맡은 이지회 학예연구사(국립현대미술관)는 조경진이 이번 전시와 어떻게 연을 맺게 되었는지 소개했다. “조경진 교수에게 이번 전시장 입구를 장식한 연보를 의뢰했다. 정영선의 삶과 작업의 역사, 한국 조경사, 그리고 세계 환경 관련 이슈의 연대기 작성을 이끌어주며 이번 전시회의 시공간적 맥락을 짚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오른편 자리에는 배형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가 앉았다. 배형민은 정영선의 작품 중 하나인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개관을 기념하며 출간한 『아모레퍼시픽의 건축』의 저자다. 그는 이지회와 함께 황금사자상을 받은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준비한 바 있는데, 이지회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베니스비엔날레의 기억을 자주 떠올렸다. 오늘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대담의 시작을 알렸다. 세 사람 사이의 대화는 느릿하고 은은하게 오갔다. 조경 철학을 파헤치거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대신, 오랜 세월 묵혀 둔 작업 뒤편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내는 식이었다. 대담 뒤에는 청중에게 질문을 받아 답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중 몇 가지를 뽑아 간단히 소개한다. 사우스케이프, 바위를 쪼아 만든 조경가의 조각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포스터 한가운데를 차지한 것은 식물도, 탁 트인 경관도 아닌 거대한 바위다. 거칠면서도 섬세한 단면이 돋보이는 이 바위는 남해 사우스케이프의 암각 동산이다. 이 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사우스케이프 설계 의뢰를 받아 처음 클라이언트 내외를 만나러 가던 날, 마당에 있는 억새풀과 들풀을 뜯어 가지고 들어갔어요. 대상지가 본래의 경관이 아름다운 남해인 만큼 이런 우리의 풀들이 보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직접 뽑은 억새풀과 들풀을 보여주며 말하니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대상지에 커다란 바위산이 있었는데, 숙박 시설과 주요 홀, 휴식 공간이 이 바위산을 빙 두르고 있었습니다. 건축 공사를 진행하며 이 바위를 없애보려고 했지만, 깨다 지쳤는지 그대로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이 바위가 너무 좋더라고요. 이 바위를 없애지 않고 다듬어, 주변을 두른 건축물의 다른 고유 기능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물과 꽃을 더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절 믿어준 건지 알아서 해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날부터 한 제자와 함께 호미와 망치를 들고 몇 날 며칠에 걸쳐 바위를 손으로 다듬었습니다. 이 바위는 조경가가 만든 조각인 셈입니다.” *환경과조경436호(2024년 8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