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디오 가게에서 어떤 영화인지 모르고 첫 번째 칸부터 차례로 비디오를 빌려보던 시절부터 코엔 형제 감독의 팬이었다. 그들의 초기 영화인 ‘아리조나 유괴 사건’(1987)은 여러 번 봐도 재미있다. 코엔 형제 특유의 코미디 코드가 나와 맞았는지 사소한 장면에도 배를 잡고 웃었다. 최근 그들의 영화는 무거워졌고 잔혹해지기도 했지만 이번 ‘헤일, 시저!’(2016)는 코미디에 가깝다. 다시 그들의 초창기 영화에 반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해서 반갑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는 가볍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에 종사하는 이들의 민낯과 이들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대형 영화 제작사 매니저의 27시간을 통해 대중문화인 영화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대 배경은 할리우드 시스템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드는 시점인 1950년대 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사람이든 사회든 사유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지만 그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 되면 기존 노선에 반기를 드는 집단이 생기고, 새로운 비전을 가진 혁신이 밀려온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움을 받아들일 것인가. 고된 현재를 유지할 것인가.
세계 대중문화를 이끄는 대형 영화 제작사의 총괄 매니저가 하는 일은 허접하기 짝이 없다. 그의 일과는 새벽부터 멍청한 배우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일로 시작된다. 진행 중인 촬영과 편집을 점검하는 기본 업무 외에도 수중 발레극 주인공의 임신 문제 같은 배우의 사생활도 해결해야 한다. 뉴욕의 사장은 서부 영화 전문 배우를 드라마 주인공으로 낙점하는데 감독은 그의 ‘발 연기’에 결국 폭발하고 영화사 대표 에디 매닉스(조슈브롤린 분)에게 불평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대형 시대극 ‘헤일, 시저!’의 주인공이 가장 중요한 라스트신을 앞두고 납치당한다. 이런 문제들에 봉착한 그의 주변에는 쌍둥이 기자가 기삿거리를 캐내기 위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코엔 형제다운 유머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헤일, 시저!’의 종교적인 부분에 대한 사전 검토를 위해 자문 회의를 개최하지만 계파를 대표하는 종교인들은 엉뚱하게도 신의 본질에 대한 논쟁만 한다거나, 납치당한 주연 배우가 약 기운에서 깨어날 때 문 밖에 들리던 무시무시한 기계 소음이 알고 보니 청소기 소리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몸값인 10만 달러를 마련했지만 가방이 작아서 잘 잠기지 않아 애를 쓰는 모습도 웃음을 자아낸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