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사무실들은
경쟁에 참여하는 부담이 더 커지고,
승률은 더 낮아진다.
설계공모가 설계사무소들을 양극화시킨다.
설계공모가 만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설계공모가 바꾼 풍경
2007년 이전, 조경설계공모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설계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자리를 가격 경쟁(설계가 입찰)이나 자격 경쟁(PQ)이 대신했다. ‘용역’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시켜도 좋을 만한 자격’과 ‘적당한 비용’이 우선이었다. ‘경쟁이 없고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은 ‘경쟁력이 없다’의 다른 표현이다. 디자인 경쟁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면, 굳이 디자인을 고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무난한 조경이 양산된 이유이기도 하다. 설계에 대한 고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시에 여러 건의 설계를 진행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설계 시장이었다. 그 고단함을 견디게 한 것은 조경 동네 사람들의 정서적 유대감과 자긍심, 그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었다.
2007년 이후, 조경설계공모는 풍부해졌다.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국내 공모뿐만 아니라 국제 공모도 빈번해졌다. 승자는 대부분 국내 팀이었다. 한국 조경이 서구의 유명 설계사와 견줄 만큼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설계공모는 조경을 사회적으로 의제화하는 데 기여했고 관성적인 무난한 조경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공모에 당선된 설계사무소는 잉여 축적이 가능했다. 심사위원은 홍보 차 찾아오는 이들로 인해 새로운 설계 경향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발주처는 설계공모를 통해 이미지를 제고했다. 하지만 과다한 경쟁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조경 동네사람들의 정서적 유대감은 약화되고 경쟁자로서의 경계심은 커졌다. 자긍심은 비즈니스 마인드로 대체되었다. 대부분의 분야가 그렇듯이, 설계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 공모에 당선되면 잉여를 바탕으로 인적 자산과 경험을 축적해 공모전 승률을 높인다. 설계 경쟁에 참여하는 일은 많은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승률이 낮아질수록 비용은 증가한다. 떨어진 사무실들은 경쟁에 참여하는 부담이 더 커지고, 승률은 더 낮아진다. 설계공모가 설계사무소들을 양극화시킨다. 설계공모가 만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설계공모 무용론
설계공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분야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식만큼이나 “설계공모가 왜 필요한가”라는 부정적 인식도 많다. 비용이 많이 들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설계공모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는 한 것이냐고 묻는다. 설계공모를 통해 조성된 공원이나 일반 입찰을 통해 설계된 공원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최정민은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설계 실천과 교육 사이의 간극을 고민 중이다. 대한주택공사(현 LH)에서 판교신도시 조경설계 총괄 등의 일을 했고,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서 다양한 프로젝트와 설계공모에 참여했다.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도시기반시설 조경설계, 잠실 한강공원 설계, 화성 동탄2신도시시범단지 마스터플랜 설계공모 등에 당선되었다. 조경비평 ‘봄’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현실 조경 비평을 통해 조경 담론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