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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바우하우스 다시 읽기
조경의 모더니즘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정치와 경제의 무게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속속 이동했다. 예술과 문화 전반의 주류 역사도 대서양을 건넜다. 1930년대 말, 댄 카일리, 개릿 엑보, 제임스 로즈 삼총사에 이르러 미국의 모더니즘 조경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다. 이들은 1920~1930년대 프랑스 모더니즘 조경을 미국에 소개한 플레처 스틸, 최초의 모더니스트 조경가라 일컬어지는 토마스 처치, 영국의 조경 이론가 크리스토퍼 터나드로부터 자양분을 얻었다. 그러나 카일리, 엑보, 로즈의 모더니즘 정신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한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닌 바우하우스(Bauhaus)의 초대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다.
독일 바우하우스는 설립 14년 만에 나치에 의해 폐교됐다. 바우하우스의 교수진과 바우하우스 출신 인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적지 않은 이들이 정치적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시카고의 일리노이 공대에 자리를 잡았고, 발터 그로피우스는 하버드를 택했다. 그로피우스가 ‘기능주의에 따른 합리적 기계 미학’이라는 바우하우스 디자인 정신을 바탕으로 하버드의 건축 풍토를 혁신하고 미국 건축에 모더니즘의 씨앗을 뿌리던 바로 그 시기에, 카일리, 엑보, 로즈는 하버드 조경학과의 대학원생이었다. 이들은 보자르(beaux-arts)전통에 함몰되어 있던 조경학과의 장식적 교육에 반기를 들고 그로피우스식의 혁신적 디자인 교육을 요구했다. 이른바 ‘하버드의 반란(Harvard Rebellion)’이다. 반란은 성공했다. 젊은 대학원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러 저널의 지면을 확보하며 조경이 왜 모더니즘을 수용해야 하는지 역설했고,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이 반란자 삼총사의 모더니즘 조경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들은 건축과 디자인의 모더니즘 정신을 뒤따르며 역사적 양식을 부정했다. 역사를 거부하기 위해 강한 공간적 위계를 갖는 축선을 피하고 연속적이고 수평적인 비위계 공간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험은 새로운 시대의 생활 양식을 담아내고자 한 바우하우스 디자인 정신의 민주적·일상적·실용적 이념을 정면으로 마주했다기보다는 시각과 형태 중심의 피상적 모더니즘에 그쳤다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건축, 가구 디자인, 제품 디자인의 모더니즘이 단순화와 규격화를 바탕으로 표준과 대량 생산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면, 스타일 위주로 흐른 조경의 모더니즘은 ‘무늬만 모더니즘’이었다는 것이다.
2019년은 3·1 독립운동 100주년의 해이기도 하지만, 독일의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가 개교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맞아 독일은 물론 세계 전역에서 바우하우스의 성과를 재조명하는 전시회와 학술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바우하우스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일상의 삶에 디자인이 공존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일상의 집, 가구, 그릇, 각종 제품은 여전히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의 우산 아래에 있다『.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한숲, 2018)의 저자 고정희 박사가 이번 호부터 석 달 간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 조경”을 연재한다. 궁핍한 경제 상황 속에서도 민주주의와 평등을 지향하던 디자인 집단 바우하우스의 백 년 전 실험 정신, 그들의 유토피아적 에너지 속에서 모더니즘 시대의 조경을 다시 읽는 기회를 마련하고 동시대 조경의 희망과 과제를 발굴하는 단서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밖에 이번 호에는 학제 간 조경 저널LA+(U-PENN 디자인대학원, 2015년 창간)가 주최한 ‘센트럴 파크 우상 타파 설계공모’의 수상작들을 김정화 박사의 해설과 함께 소개한다. 현대 도시공원의 난공불락의 대명사인 센트럴 파크에 도전하고자 일면 과격한 이름을 달고 진행된 이 실험적 아이디어 공모전의 결과를 주최자인 LA+보다『 환경과조경』이 먼저 싣는 셈이다. 공원과 동시대 도시의 치열한 접면에 대해 도전적으로 질문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4월호부터 3회에 걸쳐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를 이어갈 필자는 조용준 소장(CA조경)이다. ‘당신의 사물들’은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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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 조경] 바우하우스의 탄생
1919년 독일의 소도시 바이마르(Weima)r에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이름의 미술공예학교가 문을 열었다. 기존의 모든 틀을 깨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겠다는 급진적 의지로 설립된 개혁 학교였다. 올해 2019년, 설립 100주년을 맞아 독일에선 ‘바우하우스 365일’을 모토로 내걸고 일 년 내내 잔치가 계획되어 있다.
데사우(Dessau)에선 바우하우스 박물관을 새로 짓고 베를린에선 증축하고 있다. 건축과 디자인의 역사에서 바우하우스가 차지하는 의미가 컸던 것은 이해하지만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매사에 과장이 없는 독일인들이 왜 이 난리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우리는 지금
21세기도 벌써 20년 가까이 지나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한물간 20세기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을 다시 꺼내 볼 필요가 있을까? 21세기를 제2의 모더니즘 시대라고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0년대부터 디지털 혁명과 함께 제2의 모더니즘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세계화의 시대라고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알고 보면 혼돈의 시대다. 우리는 지금 스마트폰이 지휘하는 대로 정보의 대홍수에 떠밀려가고 있다. 목적지가 어딘지 누가 알까?
혹시 비전이 필요하지 않은지? 돌파구를 찾고 싶지 않은지? 갈피를 못 잡아 머릿속이 어수선하지 않은지? 그렇다면 바우하우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헐벗고 굶주린 상태에서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폭발했던 백 년 전의 이야기. 이제 그 에너지가 점차 고갈되어 가고 있는데,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원천이 우리에겐 없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우하우스 입학생 하나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학장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건축사(史)도 배우나요?” 학장님이 답하기를 “바우하우스에서 역사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과거와의 완전한 결별. 바우하우스의 설립 취지 중 하나다. 바우하우스 팀들이 근본 없이 막된 인간들이어서 전통을 무시한 것이 아니다. ‘과거에 너무나 된통 당하고 실망을 넘어 절망’했던 까닭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이다. 이렇게 전통과 결별하고 나면 춥고 외로울 수도 있으나 새로 시작한다는 벅참도 있다. 배수진을 쳤으니 앞으로 나가야 했다. 바우하우스가설립됐던 1919년에 독일은 황제국과 결별하고 공화국을 세웠다. 이보다 더 새로운 출발이 있을까? 민주주의, 평등한 세상, 자유! 젊은 심장이 크게 박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 장면으 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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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원형에 대하여
방울방울 화면을 가득 채운 하얀 동그라미들의 중첩. 이번 사진의 정체는 뭘까요? 오른쪽 아래에 있는 스테인리스 난간이 힌트가 될 것 같습니다만.
답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번 사진은 바닷물에 반사된 햇빛입니다. 비밀이라면 조리개 값과 초점을 조금 흩트리는 약간의 요령! 반짝이는 빛을 찍을 때는 조리개 상태가 최종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조리개를 조이면(f값을 크게 하면)빛이 조리개 모양에 따라 갈라지는 것처럼 표현되고, 반대로 조리개를 열면(f값을 작게 하면)이 사진처럼 빛 모양이 원형으로, 때로는 다각형으로 나오거든요. 거기에 초점을 가까운 쪽에 맞추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자, 그럼 한번 따라해 보실까요? 조리개를 활짝 열고 모델은 가까운 곳에, 그리고 멀리 조명을 배경으로 야경을 촬영해 보세요. 조금만 응용하면 이 사진보다 훨씬 더 멋진 사진을 찍으실 수 있을 겁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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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물들] 스케일 자
“What is the spatial quality in this landscape? What makes this landscape unique?” 1학년 첫 디자인 수업 튜토리얼에서 받은 질문이다. 조경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단순하지만 퍽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어떠한 요소들이 공간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할 수 있을까?” 학사, 석사 과정을 거치고 설계 사무소를 다니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다. 사전적 의미의 공간성이란 공간에 대한 관념이나 공간으로서의 특성을 말한다. 때문에 공간성이 잘 드러나는 공간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특성을 가진 공간을 디자인할 것인가’, 나아가 ‘디자인 콘셉트를 어떻게 공간에 적용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디자인 콘셉트는 평면도를 통해, 평면으로 볼 수 없는 공간성은 연속적인 단면도와 투시도에서 표현하고 실험해볼 수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안연수는 런던에서 조경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셰필드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런던, 셰필드, 맨체스터 건축사무소의 조경팀과 조경 설계 스튜디오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8년부터 길레스피에스(Gillespies) 런던 오피스에서 근무하며 영국과 중동의 다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보다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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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생성적 경계
“대다수의 화가들이 자연의 모조품(simulacrum)을 만들기 위해 기교를 이용했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연의 작동 방식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회화에 자연을 가득 채울 수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들은 정확히 말하면 형태를 모방하려는 연구가 아니라, 실험과 다이어그램 사이의 무언가, 즉 작용하는 힘들을 꿰뚫어 보려는 시도들이었다.” _ 필립 볼『, 흐름』 중1
‘마이애미 왓슨 아일랜드(Watson Island)프로젝트’에서 해수면 상승에 따른 해류와 파도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여, 이에 대응하는 생성적 경계를 만들었다. 이 경계는 선적인 콘크리트 방파제가아닌 해류의 흐름에 반응하는 지점들을 이어 엮은 넓은 표면이다.
움직임은 패턴과 흐름을 만든다. 물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마야(Maya)2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사각 박스 안에 기둥을 만들고 물을 흘려보았다. 기둥의 개수, 간격, 배치에 따라 물의 패턴과 흐름이 달라진다. 이 간단한 시뮬레이션이 디자인의 시작이었다. 움직임을 바꾸는 임의적 개입은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고, 이는 새로운 패턴을 형성한다. 이러한 과정은 형태를 만드는, 즉 디자인하는 행위 그 자체다.
그렇다면 이 기초적인 시뮬레이션은 어떻게 구체적 형태와 시스템으로 이어질까? 3D로 구현된 왓슨 아일랜드 대상지에 마야 프로그램을 활용해 마이애미 해안의 기본 해류 데이터를 시뮬레이션했다. 이 과정에서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경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변화를 체크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영역인 육지(X)와 바다(Y)사이의 변수들을 찾고, 매개 변수를 설정해 도식화된 함수를 만들었다. 함수는 다음과 같은 순차적 구조를 가진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진양교 교수의 ‘채우기와 비우기’ 설계 이론과 제임스 코너의 실천적 어바니즘을 기반으로 한 간단명료한 디자인에 영감을 받았다. 15년여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 설계와 페이퍼 아키텍처를 추구하며, 독자적인 설계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깊이(invisible depth), 생성적 경계(generative boundary), 언플래트닝 랜드스케이프(unflattening landscape)를 탐구하고 있다. 최근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 팀의 당선을 이끌었으며, 개인 자격으로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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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조경] 풍경을 그리는 드로잉
조경이 다루는 대상, 즉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우리말 경관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풍경이나 풍경화를 가리킨다. 그래서인지 공간을 디자인하는 조경의 인접 분야인 건축과 도시설계의 드로잉과 비교해보면 조경 드로잉은 녹색의 자연으로 가득한 풍경의 이미지를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그림 1). 특히 설계공모 제출물 중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그래픽 소프트웨어로 공들여 생산한 이미지에는 조경의 자연 애호(biophilia)경향이 잘 드러난다. 설계가가 고안한 경관을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것처럼 그려낸 이러한 이미지는, 풍경화의 형식과 대체로 유사해 조경 드로잉에 익숙하지 않은 누구라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효율적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이처럼 풍경화 형식으로 그려진 드로잉을 투시도라고 부른다. 물론 첫 번째 연재(『환경과조경』 2019년 1월호)에서 말했듯, 선형 원근법에 기반한 투시도는 엄밀히 말해 평면도와 입단면도 같은 투사 드로잉 유형에 속한다. 다만 조경의 역사에서 투시도는 선형 원근법을 느슨하게 적용해 온 경향이 있고 이러한 드로잉 유형은 정원 설계의 양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기도 했기에, 주요 드로잉 유형 중 하나로 다룰만하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에 유행한 풍경화식 정원 설계에서 투시도는 주요한 드로잉 유형으로 등장했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17세기까지 정원 설계에서 평면도와 입단면도가 주로 이용됐다면, 18세기 영국에서는 정원을 설계할 때 풍경화와 비슷한 스케치, 말하자면 투시도를 빈번히 이용하기 시작했다.1 전자가 과학적 도구성에 기반한 드로잉 유형이라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예술적 상상력이 강화된 시각화 방식이다. 물론 17세기에도 투시도는 경관을 시각화할 때 유행했다. 하지만 18세기에 이르러 바라보는 지점이 버드 아이 뷰, 즉 새의 시점에서 사람의 눈높이로 내려온다. 인간의 자연 경험을 시각화하기 위한 시도는 조경 드로잉뿐만 아니라 회화에서도 동시에 나타난 현상이었다.2
시점이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선형 원근법에서 풍경의 묘사가 보다 자유롭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드로잉의 변화는 정원 설계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지난 연재(『환경과조경』 2019년 3월호)에서 살펴본 프랑스 정형식 정원의 엄격한 기하학적 질서, 즉 직선의 중심축을 따라 마지막에 위치하는 소실점으로 인간의 시선을 이끌어가는 대신에 이제 곡선(serpentine line)이 정원 조형의 원리가 되었다. 방문객은 곡선형의 길을 걸어가면서 식재나 점경물에 가려졌다 다시 나타나는 일련의 풍경의 변화를 경험하게 됐다.3몇몇 전망점은 풍경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기에 이 시기의 정원을 풍경화식 정원(landscape garden)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풍경화식 정원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스투어헤드(Stourhead)에는 17세기의 역사적 풍경화가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1600~1682)의 ‘아이네이아스가 있는 델로스 섬의 풍경(Landscape with Aeneas at Delos)’의 구성과 유사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점이 있다. 이러한 정원에서의 경험을 그려내는 데는 평면도나 입단면도보다 느슨한 투시도가 적합했던 것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투시도는 건축 드로잉의 역사에서 20세기 초반까지도평면도, 입단면도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건축사가 배형민은 20세기 초반까지도 아카데미에서는투시도가 중요하지 않았고 실무에서 클라이언트를설득하는 수단으로 주로 이용되었다고 본다(HyungMin Pai, The Portfolio and the Diagram:Architecture, Discourse, and Modernity inAmerica, Cambridge, MA: The MIT Press, 2002,p.29). 제임스 코너 역시 건축 드로잉에서 투시도가평면도나 입단면도보다 열등하게 여겨졌다고 말한다.전자가 건축의 이념을 표상하는 존재론적 드로잉으로간주된 반면, 후자는 종이에 행하는 단순한 표현 정도로여겨졌기 때문이다(James Corner, “Representationand Landscape: Drawing and Making in theLandscape Medium”, Word & Image: A Journalof Verbal/Visual Enquiry 8(3), 1992, p.255).
2.John Dixon Hunt, Greater Perfections: ThePractice of Garden Theory, Philadelphia: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00, p.42;John Dixon Hunt, The Figure in the Landscape:Poetry, Painting, and Gardening during theEighteenth Century, Baltimore: The JohnsHopkins University Press, 1989, pp.201~204.
3.영국의 풍경화식 정원 설계에서 정원의 모델은 자연이었고,곡선은 자연의 형태를 표현하는 언어로 간주되었다(WilliamHogarth, The Analysis of Beauty, Ronald Paulson,ed.,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7).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가천대학교와 원광대학교,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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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탄생, 1968~2018] 한국 도시화의 거시적 메커니즘, 계획 주체와 공간 지향
한국의 도시화 50년은 어떻게 작동했는가
지난 두 달간의 연재에서는 한국 도시화 50년의 거시적 현황과 일상적 현황을 각각 ‘쏠림 현상’과 ‘밀도의 향연’으로 규정했으며, 이와 같은 현상의 원동력으로서 지난 50년 동안 끊임없이 지속됐던 정부 주도의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연재에서는 한국의 도시화 50년을 작동하게 한 거시적 메커니즘을 ‘계획 주체와 공간 지향’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나의 개인적 일화를 통해 한국 도시화의 단적인 특성에 대해 언급하며 시작하고자 한다.
2011년 미국 워싱턴 대학교의 도시설계 및 계획학과에 박사 유학을 갔을 때의 일이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도시설계학자인 앤 무동(Anne V. Moudon)교수의 도시형태론 수업을 듣게 되었다. 어느 날 무동 교수는 한국의 청계천 복원사업 사례를 소개하며 수업 말미에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서울 사람과 시애틀 사람의 유전자를 섞어야 한다. 서울의 청계천 복원사업은 불과 27개월 만에 완료됐는데, 시애틀의 알래스카 고가 도로 철거 사업은 10여년 이상 지지부진하다.” 당시 이미 칠순에 가까웠던 그는 교수 재직 기간 동안 여러 한국 학생을 지도했으며,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도시 개발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런 그가 서울의 도시 개발을 상당히 중점적으로 다루고 일정 부분 긍정하는 것을 보며, 그때까지 너무나 익숙하기만 했던 우리의 도시를 다시금 바라본 적이 있다. 이와 함께 시애틀의 도시 개발에 대해서도 서울과의 비교적 관점에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1
계획 국가의 형성과 플레이어의 구성
한국의 정부 주도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은 1960년대 계획 국가의 형성과 함께 본격화됐다. 당시 계획의 출발은 경제 계획이었으며, 1차적 목표는 재건이었다. 일제 식민지기(1910~1945)와 미군정(1945~1948)그리고 한국 전쟁(1950~1953)을 겪으면서 경제 부흥과 재건은 1950년대 한국이 당면한 핵심 과제가 되었다. 실제로 정부 수립 이후부터 1957년까지 정부 기획처나 소관 부처에서 많은 경제부흥계획서가 작성됐으며, 196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경제 재건이 아닌 경제 개발을 목표로 하는 경제개발3개년계획(1960~1962)이 국무회의에 제출됐다.2 하지만 1960년 4·19혁명과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인해 경제개발계획은 연이어 늦추어졌으며, 마침내 1962년에 이르러서야 군부에 의해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1966)이 본격 시행됐다. 이를 통해 중앙 정부 중심으로 국가 발전 계획을 제시하고 행동하는 권위적 토대가 마련됐으며, 한국 사람들은 경제 개발을 통한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집단적 의식을 공유하게 됐다. 다시 말해, 1960년대 한국은 중앙 정부 중심, 경제 관료 중심의 권위적 계획 기구(planning agency)가 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주도하게 됐다. 따라서 지방 정부의 인사, 예산, 행정 등에 미치는 중앙 정부의 영향력은 지금의 선출을 기반으로 하는 지방 자치제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당시의 계획 기구가 연이어 발표하는 국가 주도 발전 계획은 소련의 스탈린주의 경제 개발을 연상하게 해 부정적 우려를 초래하기도 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계획 기구와 공무원 집단은 관료제와 순환 보직 체제였기 때문에, 이들을 지탱하기 위한 전문가 집단으로서 대학교수의 역할이 계획 국가 초기부터 상당히 중요했다. 이후 한국의 경제 개발 및 사회 발전이 더욱 진전되고 고도화되면서 중앙 정부의 국정 연구 기관과 지방 정부의 시정 연구 기관들이 점차 설립됐으며, 오늘날에는 다른 선진국에 손색없을 만큼 풍부하고 다층적인 정책 전문 연구 기관이 설립 및 운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 전문 연구 기관은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학술 연구 기관과 달리 설립 주체의 의도 및 지향점을 제도, 정책, 사업, 사례 등을 통해 시시각각 반영하고 현실화하는 계획의 싱크탱크think tank이자 계획 기구에 준하는 역할까지 감당하고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김충호, “시애틀 알래스카 고가도로 철거와 지하 대체 터널 건설”, 『건축과 도시공간』 15, 2014, pp.48~52.
2. 최상오, “1950년대 계획기구의 설립과 개편: 조직 및 기능 변화를 중심으로”, 『경제사학』 45, 2008, pp.179~208.
3. 이종석, “한국경제 반세기: 경제개발계획 시동”, 「이데일리」 2005년 5월 5일.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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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더 페이버릿
평면에서 입체로, 평범에서 왜곡으로
삐이익 삑, 핸드폰이 이런 소리도 낼 줄 아나 싶은 괴상한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땐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 폭설이나 태풍을 예보하는 경보였다. 요즘은 주로 미세 먼지로 굉음을 낸다. 여러 사람이 모인 카페에서는 동시에 울리며 더 큰 소리로 퍼지지만 이젠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몇 해 전 요르고스 안티모스(Yorgos Lanthimos)감독의 ‘더 랍스터(The Lobster)’(2015)를 보고받은 충격은 다음 작품인 ‘킬링 디어The Killing of Scared Deer’(2018)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2019)는 대체 어디까지 가게 될까.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거나 신화에 기대어 멀쩡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도 봤는데, 어지간한 기묘함과 충격에는 눈 깜짝 안 할 자신감이 생긴 터였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역사극이라 분위기는 이전보다 편했다. 18세기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 분)을 중심으로 권력의 실세인 사라(레이첼 와이즈 분)와 하녀 애비게일(엠마 스톤 분)의 밀고 당기는 관계를 그리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궁중 사극에서 시기와 질투로 죽고 죽이며 인형에 바늘을 꽂는 그런 장면 말이다. 아침 드라마는 또 어떤가. 재벌 2세 실장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싸가지 없고 경우도 없는 악한 강자와 외로워도 슬퍼도 웃음을 잃지 않는 콩쥐형 주인공, 사약을 드링킹하거나 해외 도피하는 악한의 파국, 바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초긍정적인 주인공은 끝내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이야기 유형. 이제 식상하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카페의 창문 밖으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해가 기우는 하굣길에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태극기를 봐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영화를 보기 전, 팝콘 봉지를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나 동해물과 백두산을 봐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운동장은 시간이 멈춘 듯 아득했고, 극장 안의 분위기는 생뚱맞았다. 같은 민족의 통일을 앞두고 언제까지 남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 눈치를 봐야할까. 여전히 아득하고, 생뚱맞다. 유관순 열사가 이 땅에서 독립을외친 지 올해로 100년이 흘렀다.